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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선입견 없는 사람들이 좋아요
“아유, 뭐가 대단한지 모르겠어요. 항상 연기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순조롭게 살았던 거 같애요.” 한길만 걸어온 연기 인생 47년이 놀랍다 하자, 나문희씨는 그냥 그런 것일 뿐이라며 특유의 소탈한 웃음을 짓는다. ‘안 해본 사람은 어려운 거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직접 경험한 사람으로서는, 어려운 거야 남들 겪는 만큼 겪는 것이고, 다 그렇게 해나가는 것 아니겠냐’고. 그냥 어느새 세월이 흘렀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일에 매진하며 평생을 산다는 것이 쉽기만 할까. 나문희씨는 ‘거침없이’ 말했다. “선입견 안 갖고 일만 좋아하는 사람들이 제일 힘이 됐어요.
동료들이라든가, 감독이라든가, 작가라든가. 아무 생각 안 하고 일 자체만 생각하는 ‘쟁이들’ 하고 일하면 나도 그렇게 몰입이 되고 참 큰 힘이 돼요. 그래서 난 선입견 없는 사람들이 좋아요.” 사회적인 선입견이든 외모에 대한 선입견이든 어떤 개인에 대한 선입견이든…. 마음에서 지워버릴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지워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다. 선입견을 안 가져야 일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나문희 연기’의 기본이었다. 그래서인가. 그 누구도 <거침없이 하이킥>에서의 ‘준하 엄마’를 보며 <굿바이 솔로>에서 실어증에 걸린 ‘미영 할머니’를 떠올리지 않는다, 돌리고 돌리고를 외치며 코믹한 춤을 추던 <소문난 칠공주>의 푼수 ‘남달구’를 떠올리지 않는다.
나문희씨는 신인보다 더 긴장하고 더 연습하기로도 유명하다. <소문난 칠공주>에서 함께 연기했던 이태란씨는 “촬영 전에 대사를 직접 녹음해서 이어폰을 꽂고 체크하는 선생님을 보고는 무척 놀랐다”고 말한다. 영화 <열혈남아>에서 함께 열연한 배우 설경구씨의 어느 인터뷰 한 대목. “영화 찍기 전 대본 연습하러 모였는데, 나문희 선생님 시나리오가 벌써 너덜너덜한 거예요.
제 건 아직 깨끗했거든요. 정말 부끄러웠어요.” 밤을 새서라도 완벽하게 배역과 하나가 되어오는 나문희씨의 노력은 후배들의 귀감이 됐지만, 나문희씨는 그런 말을 듣는 것조차 민망해한다.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건 누구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전 특별히 준비할 줄도, 노력할 줄도 몰라요. 그냥 연기자니까 그야말로 연기할 때가 내 본자리 같고, 작품 속으로 쏙 들어가서 사는 게 생활 자체고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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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대본 연습, 후배들 귀감
1961년 제1기 MBC 라디오 성우로 입사한 이후 언제나 그랬다.
한때 <주말의 명화> 주인공을 도맡아 더빙을 했던 인기 성우 나문희씨는 ‘멍게엄마’라는 작품에서 동갑내기 이대근씨의 엄마 역으로 연기를 시작한다. 스물아홉 살 때였다. 키 165cm, 당시 여배우로서는 큰 키와 체격 때문인지 20대 때부터 엄마나 노역을 주로 해야 했다. 개인적으로 힘든 일도 겪었다. “1976년인가. 우리 애들 아빠가 영어 선생인데 무슨 사업을 한다고 해보다가 잘 안되서 마음이 많이 슬펐지. 내가 지금은 세상이 좀 보여. 사업을 할 만한 사람은 따로 있구나, 우리 남편한테는 선생님이 딱 맞았던 거예요.”
경제적으로, 심정적으로 힘들 때였다. 그 소식을 들은 김수현 작가가 <여고 동창생>이라는 작품에 캐스팅을 해주었다. 실제 상황과는 달리 희극적인 요소가 있는 역할이었지만 나문희씨는 더욱 배역에 몰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연기자는 힘든 일이 있을 때 연기가 더 잘되는 것 같아요. 누구나 그럴 거예요. 힘든 일에 지면 낙오자가 되고, 지지 않고 극복하면 에너지가 되고. 더구나 연기자는 감정을 쓰는 일이니까 그게 더 잘되요. 누가 쿡 찌르기만 해도 눈물이 펑펑 나고.” 그래서 젊은 배우들에게 너무 편한 길을 바라지 말라고 한단다. 나에게 큰 고민이 없거나 고통이 없을수록 정도를 걸으라고. 정도를 걷기 위해 생기는 어려움은 일에 집중하고 노력하는 것으로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나문희씨는 1995년에 이르러 KBS 일일드라마 <바람은 불어도>의 할머니 역을 통해 큰 주목을 받게 된다. 거친 평안도 사투리, 신발을 뻥뻥 날리는 드센 할머니 연기는 드라마 전체를 살려내는 데 큰 비중을 차지했다. “문영남 작가가 신발을 벗을 때 뻥 날린다고 대본에 써 놨어요. 그래서 어떤 신발이 제일 잘 던져질까 이 신발, 저 신발 다 해봤는데 실내화가 제일 잘 날아가더라구요.” 어떡하면 작가의 의도를 잘 살릴 수 있을까, 지문을 꼼꼼히 분석하고 연구하는 나문희씨는 <바람은 불어도>의 문영남 작가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의 노희경 작가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는다. “문영남씨나 노희경씨는 고맙다거나 감사하다는 말로 다 표현이 안 되는 좋은 인연이에요.
정말 그 사람들 만나서 내가 오십이 넘어서 연기생활이 무르익고 박수도 많이 받을 수 있었어요.”
진짜 닮고 싶은 분은 우리 엄마야
실제 두 작가의 작품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 나문희씨는 이후, 특정한 형용사로는 한정 지어지지 않는 다양한 엄마의 모습으로 드라마와 연극, 영화를 종횡무진한다. 아픈 엄마, 이기적인 엄마, 철없는 엄마, 희생적인 엄마, 푼수 같은 엄마, 강인한 엄마…. 나문희씨의 연기를 보며 한번쯤 자신의 엄마를 떠올리지 않은 시청자가 있을까. 어느 땐 진짜 ‘우리 엄마’ 같았다고 하자, “그럼 그냥 엄마라고 불러요, 뭐 어때?”라며 넉넉하게 웃는다. 연기에 대한 찬사를 들을 때마다 나문희씨가 더욱 감사한 사람들은 바로 평범한 이웃들이다. <바람은 불어도>의 평안도 사투리 쓰는 할머니도 이웃 아주머니가 모델이었다. “항상 관찰하고, 사람 쳐다보는 걸 좋아해요. 논픽션, 뉴스, 다큐 같은 데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새로 개발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주변 사람들한테 아이디어를 얻어요. 작품을 보면 이건 누구다! 하고 떠오를 때가 많죠.
말하자면 옆에 있는 사람을 ‘나’화(化) 하는 거지. 우리 이모님 같은 경우는 드라마에 열 번도 더 출연하셨어.”(웃음)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준하야양~’ 하는 코맹맹이 소리도 이모에게서 따온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뼛속 깊이, 마음 깊이 영향을 주는 사람은 바로 어머니 이희재 여사다. “진짜 닮고 싶은 분은 우리 엄마가 표본이야. 엄마처럼 늙고 싶어요. 요즘은 귀가 잘 안 들리시니까 늘 뒤에서 조용히 계시면서 자식들 위해 기도하는 모습이 참 곱고. 연세가 86세이신데 지금도 쓰레기 직접 다 갖다 버리고, 잠시도 쉬지 않는 것도 존경스럽고.” 어머니의 그런 모습은 노희경 작 <굿바이 솔로>에서 말 못하는 ‘미영 할머니’의 역할을 할 때 고스란히 묻어나왔다.
언제나 한발 뒤에서 넉넉히 지켜보고, 수줍게 웃는 인물….
엄마 하면 사랑, 동그라미, 우주… 그런 게 떠올라요
나문희씨의 아버지는 ‘수원의 나부자’라고 불리던 집안에서 국내 첫 여류 서양화가 나혜석씨를 고모로 두고 태어났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돈 버는 능력이 있는 분은 아니었다. 한때 중국에서 살아 나문희씨의 출생지가 북경이 되었지만 그녀가 다섯 살 되던 해 다시 한국으로 나왔고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가난과의 싸움이었고 어머니의 고생 또한 컸다. 자식 셋의 뒷바라지를 어렵게 해낸 후에는 연기하느라 바쁜 딸을 위해 손녀 셋을 키워주셨던 어머니…. 언제나 편안한 친정엄마지만 때로는 무섭고 엄하기도 하셨다.
“내가 계속 밖으로 나가서 일을 해야 하니까 집안일 도와주는 분이 있잖아요. 한번은 그분한테 싫은 소리를 좀 심하게 했더니, 어머니가 그냥 걸어서 당신 집까지 가버렸어. 내가 그러는 거 보고 싶지도 않고 싫으셨던 거야. 그때는 어머니도 여유가 없고 나도 여유가 없고 겨우겨우 살 때였거든요. 엄마가 그 연세에 주머니에 한 푼도 없어서 돈암동 우리 집에서부터 비원 근처 당신 집까지 걸어가셨으니, 내가 얼마나 속상하겠어요.” 당신한테 잘못한 것에는 너그러워도 남에게 잘못하는 건 봐주지 않는 어머니. 차라리 회초리라도 때리면 마음이 편하겠는데, 어머니는 그렇게 마음의 벌을 받게 했다.
어머니는 그런 존재다. 어떻게 하라고 직접 말하진 않지만 보고 자라면서 저절로 그려지는 그림, 그것이 나문희씨가 엄마 역할을 해내는 데 가장 큰 밑그림이 되었다. “‘엄마’ 하면 사랑, 동그라미, 우주…. 그런 게 떠오르는 거 같애. 엄마는 하나가 되게 하고, 끌어안고 싶고, 닮고 싶잖아. 그렇죠?” 이제 장성하여 각자의 생활에 바쁜 세 딸에게 자신도 그런 엄마이고 싶다는 나문희씨. 바로 그 엄마의 마음으로 세 딸과 젊은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바르게 살고, 남한테 폐 안 끼치고, 자기 하는 일에 분명한 사람이 되면 좋겠고. 감당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꾸준히 좋은 일도 하면서,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자유로운 중에서도 정말 선입견은 갖지 말고.” 나문희씨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정말 선입견 없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결심하게 된다. 자고로 엄마 말씀은 잘 들어야 한다는 마음이 들면서.
연기자 나 문 희 님은 1941년 중국 북경에서 태어났습니다. 다섯 살 되던 해 한국으로 들어왔으며 창덕여고를 졸업했고 1961년 MBC라디오 1기 공채 성우로 방송 생활을 시작합니다. 어떤 역할이든 완벽하게 해낸다는 평을 듣는 님은 드라마 <바람은 불어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내 이름은 김삼순> <거침없이 하이킥> 등에서, 영화 <조용한 가족> <주먹이 운다> <너는 내 운명> 등 수많은 작품을 통해 언제나 개성 넘치는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수상 경력으로 KBS 연기대상(1995), 제32회 백상예술대상 인기상(1996), SBS 연기대상 연기상(2002), 제42회 대종상영화제 여우조연상(2005), 올해의 여성영화인 연기상(2006), 제4회 최고의 영화상 최고의 여자조연배우상(2007) 등이 있습니다.
첫댓글 1등ㅋㅋ
건빵 댓글 다는 것 좀 바라 ㅋㅋ 웃겨서 원 ㅋㅋ
푸하하하하
4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