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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2-14간삼척시이사부길(새천년길).영경묘.준경묘.인제군방태산자연휴양림관광이야기.
(여행출발과 목적지 경로 등)
2019.11.12.일 아침 09시31분경 도봉동 아파트를 출발했다.조수석에는 집사람을 태웠다.내비에는 삼척시 이사부길(새천년길) 주소인 “삼척시 정라동 79번지”를 입력시켰다.이사부길이 시작되는 정라동 행정복지센터(정라동 동사무소)의 주소가 정라동 79번지였다.이것은 삼척시 관광정책과에서 안내해준 주소였다.
삼척시 관광명소를 인터넷으로 검색했더니 이사부길은 삼척시의 해안 드라이브 길로 유명하다는 홍보내용이 있었다.그래서 이사부길(새천년길)을 둘러보려고 나섰다.
서울양양간고속도로-양양jc-동해고속도로-동해ic-동해시-삼척시-정라동79번지 정라동 행정복지센터에 도착하니 시간은 14시50분이었다. 이 시간에는 동해 휴게소에서 점심 먹느라고 약 1시간 가량을 소비한 시간이 포함된 것이다.
(동해 휴게소)
동해휴게소는 동해고속도로상에 있는 강릉시와 동해시의 경계선 부근에 있는 휴게소다. 동해고속도로의 하행선 휴게소는 동해휴게소이고 상행선 휴게소는 옥계휴게소이다.이 두 휴게소의 공통 특징은 (1)“바다가 보이는 휴게소”라는 명칭이 휴게소 간판에 적혀 있는 휴게소다.이처럼 동해나 옥계휴게소에서는 동해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아주 뛰어난 휴게소다.(2)또 이 두 개의 휴게소는 다같이 염가로 서비스되는 주유소도 있다.휘발유 리터당 1495원 정도로 제공되었다.대부분의 다른 주유소에서는 리터당 1500원이상의 고가로 파는데 이곳에서는 1495원 정도의 염가로 판매했다.
(동해고속도로 하행선상의 동해휴게소 모습.동해바다가
보이는 휴게소 모습.염가 주유소가 있는 휴게소임)
(이사부길 즉 새천년길의 풍경)
삼척시 정라동에는 삼척항(=정라항)이 있고 이곳부터 북쪽으로 삼척해변(=삼척해수욕장)까지 약 4.6km의 구간이 이사부길이었다.이 길을 새천년길이라고도 했다. 이 길은(이사부길=새천년길) 해변가 육지와 동해바다 사이로 도로와 도보용 데크 길이 잘 구축되어 있다. 중간 군데군데는 도로에서 바닷가로 내려가는 층계도 있다.이 층계를 타고 바닷가로 내려가면 바닷가 바위 옆에 쉼터 벤치도 있다.바닷가 바위에서 낚시하는 낚시꾼도 여러명이었다.
(삼척시 이사부길과 산책용 데크길 모습.환상의 드라이브
길.)
(삼척시 이사부길 모습.환상의 드라이브길로 유명함)
(삼척시 이사부실 바닷가에서 낚시하는 낚시군 모습1)
(삼척시 이사부길 바닷가에서 낚시하는 낚시군 모습 2)
(삼척시 이사부길 바닷가에서 낚시하는 낚시군 모습 3)
(삼척시 이사부길에서 바라본 동해바다 파도가 밀려오는
모습)
바닷가 산책용 데크길에는 전망이 좋은 곳마다 망원경이 비치되어 있어서 먼 바다를 가까이까지 끌어다 볼 수도 있었다.또 도로변에는 주차장은 아니지만 드라이브 차량이 잠깐 주차할 수 있도록 도로폭이 넓은 공간도 마련되어 있어서 차를 세워두고 바다도 구경할 수가 있었다.
(삼척시 이사부길 모습.환상의 드라이브 길 모습.)
이 이사부길의(새천년길) 중간쯤은 삼척시 정라동과 교동의 경계선 같았다.여기에는 새천년 소망탑이 있다.2000년부터 새로운 1000년의 소망을 기원하는 탑이란 뜻 같았다. 이 탑의 내부 3개 벽면에는 건립비 기부자 이름이 깨알 같이 적혀 있다.전국 시도별로 기부자 명단이 정리되어 있다.삼척시 근덕면 공갑순,서울시 동대문구 김남중 등과 같이 새겨져 있다.
(삼척시 이사부길 중간쯤 바닷가에 있는 새천년 소망탑
모습 )
(삼척시 이사부길 중간쯤의 바닷가에 있는 새천년소망탑
내부 벽면에 붙어 있는 탑 건립비 기부자 명단 모습)
이 새천년 소망탑을 지나면 삼척시 후진항과 삼척해변 즉 삼척 해수욕장의 백사장이었다.백사장의 모래가 무척 부드럽고 고았다.남북으로 쭉 뻗어 있는 백사장 길이는 1km이상은 되어 보였다.
백사장 너머 수평선에서 밀려오는 파도 소리가 무섭게 들린다.바람이 없는 날인데도 파도 높이는 1미터 이상은 되어 보인다.파도가 바닷물 아래 지면에 끌리면서 뱉어내는 소리가 악마의 포효처럼 무섭게 들린다.이렇게 이사부길(새천년길)을 다 둘러보고 나니 시간은 16시06분경이었다.다시 동해 고속도로를 타고 숙소인 속초시 서울시 공무원 수련원에 돌아오니 시간은 17시52분경이었다.
(삼척시 이사부길 북쪽 종점에 있는 삼척 해수욕장 모습
바닷물이 수면 아래 지면에 끌리면서 만들어내는 파도
소리가 마치 맹수의 포효소리 같이 들리는 곳임)
(삼척시 이사부길 종점에 있는 삼척 해수욕장 모습)
(태조 이성계 5대조 할머니인 영경묘 구경)
1박을 하고 이튿날인 11.13일 오전 10시경에 다시 동해 고속도로를 타고 영경묘 구경에 나섰다.문제는 “왜 태조 이성계의 5대조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묘가 삼척시 미로면에 있단 말인가” 하는 의문점 때문에 꼭 한번 찾아보고 싶었다.영경묘 주소인“삼척시 미로면 하사전리 산53번지”를 차량 내비에 입력시키고 출발했다.
도착해 보니 영경묘가 있는 삼척시 미로면 하사전리는 첩첩산중의 조그만 마을이었다.마을길 우측 산비탈로 들어섰다.
(삼척시 미로면 하사전리 마을에 있는 영경묘와 준경묘
안내판 모습)
(삼척시 미로면 하사전리 마을 전경.첩첩산중임.)
이 안내판으로 봐서 이 마을 주변 산속에는 금강송 소나무 숲이 잘 발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아래의 안내도에서 보듯이 금강송숲 치유길이 영경묘 북쪽 산비탈에 등산로로 잘 표시되어 있다.금강송은 우리가 평상시 산속에서 자주 보는 적송나무를(=줄기가 붉은 빛의 소나무) 금강송으로 부르는 것 같았다.이것을 황장송이라고도 하는데 나무 속이 질겨서 임금님의 관을 짤 때는 반드시 이 금강송을 사용한다고 했다.
영경마을 금강송 치유 숲길 안내도
금강소나무숲-잘 보전된 아름드리 소나무숲은 사람들의 삶을 행복하게 해주는 원천입니다.소나무를 두고 ‘만 백성의 향기’라고 노래한 시인도 있습니다.
영경묘 금강소나무숲은 ‘어머니의 숲 여성의 숲’입니다.소나무숲에서 잠시 머뭄.그리고 치유.... 삼척시 미로면 하사전리 산53번지 일대에 위치한 영경묘 금강소나무숲은 문화재청 소유로 면적은 33핵타르이며,숲 중심부에는 평균연령 100년,수고 35미터,경급 70cm의 대경목이 생립하고 있으며,영경묘와 더불어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524호로 지정 보호 관리하고 있습니다.
(삼척시 미로면 하사전리 마을의 금강송 치유숲 안내도
모습)
삼척 영경묘
“이성계의 5대 조모이며 이양무의 부인이고 목조의 어머니가 되는 이씨의 묘임.이씨부인은 이양무와 함께 전라도 전주에서 이곳으로 이주하여 살다가 별세하자 아들 목조가 이곳에 안장하고 함경도로 이주했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나라에서 (1)제사를 지내고 (2)수호군을 두었으며 (3)고종 때(1899) 묘호를 영경으로 추봉하고 묘소 수축,제각,비각 건립 등 대정비를 했다.
이곳은 명당이니 그의 5대손인 이성계가 임금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라는 내용이었다.그러나 영경묘 터가 명당이라는 말에는 공감이 가지 않았다. 그저 평범하게 산비탈에 자리잡은 땅으로 만 보였다.그러나 묘역 주변에는 금강송 소나무가 많이 들어서 있다.과연 금강송 숲속에 있는 묘였다.
(삼척시 미로면 하사전리 마을의 영경묘 안내판 모습)
(삼척시 미로면의 영경묘 입구에 있는 제실과 비각 모습)
(삼척시 미로면 하사전리 산속에 위치한 영경묘 전경 모습)
(삼척시 미로면 하사전리의 영경묘 주변 금강송 숲 모습)
(태조 이성계의 5대조 할아버지인 준경묘 구경)
이렇게 영경묘 구경을 마친 우리는 준경묘쪽으로 이동했다.영경묘에서 준경묘까지는 3.6km 떨어진 곳에 있었다.도로는 잘 포장되었다.고개를 한번 넘어서니 준경묘 제실과 비각이 있었다.지금 한참 공사중이라서 내부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의 준경묘 제실 모습)
준경묘 제실과 비각을 구경한 뒤 하천 하나를 건너니 준경묘 주차장이었다.이곳의 행정구역은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였다.같은 미로면인데 영경묘는 하사전리에 있고 준경묘는 활기리에 있었다.
주차장에서 준경묘 묘역까지는 차량으로는 들어갈 수 없었다.반드시 도보로 가야하는데 그 거리가 산속으로 1.8km떨어진 곳에 있다는 것이 안내표지판 설명이었다.그런데 걸어가 보니 실제 거리는 3.8km가 되는 거리 같았다.45도의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섰다가 평지길로 2km는 걸어야 했다.또한 안내표지판을 보니 준경묘는 두타산과 청옥산 남쪽 기슭에 있는 묘였다.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의 준경묘 주차장 입구 안내도.준
경묘는 유명한 두타산과 청옥산 남쪽 기슭에 위치함을
표시하고 있음)
(삼척 준경묘 안내판)
준경묘에 도착하니 입구에 “삼척 준경묘”안내표지판이 서 있다.그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삼척 준경묘
“이곳은 조선태조 이성계의 5대조이며 목조의 아버지인 이양무 장군의 묘이다.이양무는 본래 전라도 전주에 거주하였는데 이곳으로 170여호와 함께 이주하여 살다가 별세하여 이곳에 안장되었다.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후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고 수호군을 두고 관리했으며 삼척을 선대의 묘가 있는 곳이라 하여 현에서 부로 승격시켰다.고종 때(1899) 이르러 묘호를 준경으로 공식 추봉하고 묘소 수축,제각 및 비각 건립 등 대대적인 정비를 하였다.
이곳은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이며 목조가 한 도승이 시키는 대로 이곳에 선친을 안장하니 5대에 이르러 이성계가 탄생하여 조선을 건국했다는 백우금관의 전설이 있다.”
(*백우금관의 전설이란 백마리의 소를 잡아 제사 지내고 금으로 만든 것으로 관을 감싸서 장사 지내면 5대손안에 왕자가 태어나 나라의 창업주가 될 명당이란 뜻이다.
이양무의 아들인 목조는 준경묘의 묘자리 터가 이 백우금관의 명당이란 이야기를 어떤 도승으로부터 들었다.그리고 100마리의 소를 구할 수가 없으니 대신에 흰소 한 마리를 구해서 이 흰소 한 마리가 바로 100마리의 소와 같다는 논리를 목조는 생각해 낸 것이다. 일백 백자의 百자와 소 牛자를 따면 百牛이다.즉 100마리의 소가 된다. 이 百牛가 흰소 한 마리와 같다고 생각했다. 즉 100마리의 소와 흰 소 한 마리가 같은 값을 가진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떻게 그런 논리가 성립할 수 있는가. 이 일백 百 자는 한글로 같은 소리인 흰 白자로 변형시키면 일백 백의 百牛는 흰백의 白牛가 된다. 따라서 일백 백의 백우는 흰백의 백우와 같다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면 白牛 즉 흰 소 한 마리는 百牛 즉 100마리의 소가 된다고 죽은 이양무의 아들인 목조는 생각해 냈다. 그래서 목조는 자신의 처갓집에서 흰소 한 마리를 빌려왔다.(흰소의 흰을 한문으로 바꾸면 백우인데 이대 백자를 일백 백자로 바꿔쓰면 100마리의 소가됨) 그리고 이 빌려온 흰소 한 마리는 100마리의 소라고 간주했다.그리고 자기 아버지인 이양무의 장사 때 100마리의 소를 대신해서 흰소 한 마리를 잡아서 아버지 장사 지낼 때 제수용품으로 썼다.
또한 이양무의 아들 목조는 황금이 없으니 아버지의 시신을 담은 관을 황금색으로 감쌀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목조는 황금색을 띤 귀리집으로 아버지 이양무의 관을 감싸서 이곳에 매장했다는 것이다.그래서 이곳은 사실상 백우금관의 명당이 되도록 실천했다. 그래서 그후로 이양무의 5대손인 이성계가 태어나서 조선을 건국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 소재의 준경묘 안내판 모습)
(영경묘 안내판과 준경묘 안내판의 차이점)
영경묘 안내판과 준경묘 안내판의 차이점은 아래와 같았다.
차이점(1)
(가)영경묘 안내판에는 목조의 아버지인 이양무라는 이름 뒤에 “장군”이란 호칭이 없다.
(나)준경묘 안내판에는 목조의 아버지인 이양무라는 이름 뒤에는 “장군”이라는 호칭이 붙어 있다.준경묘에는 이곳은 이양무 장군의 묘라고 그 격을 한층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차이점(2)
(가)영경묘 안내판에는 이성계의 5대조인 이양무와 그 부인이 전라도 전주에서 삼척시 미로면으로 이주했다고만 기록하고 있다.
(나)준경묘 안내판에는 이양무와 그 부인이 전라도 전주에서 삼척시 미로면으로 이주할 때 170여호와 함께 이주했다고 기록하고 있다.170호와 함께 이주했다는 것은 강력한 통치력의 존재를 암시한다.단순한 일개 개인의 의사결정으로 이주해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암시한다.
차이점(3)
(가)영경묘 안내판에는 선대묘가 있는 삼척시를 현에서 부로 승격시켰다는 기록이 없다.
(나)준경묘 안내판에는 선대의 묘가 있는 삼척시를 현에서 부로 승격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선대묘가 있는 삼척 고을에 특혜를 줘서 묘지 관리를 독려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삼척시 준경묘의 묘역 모습)
삼척시 준경모 안내판 앞에 서서 묘역을 바라보니 이렇게 깊은 산속에 널다란 분지가 나타났다.분지 안쪽 깊숙한 곳에 묘소가 있고 묘소 북쪽으로 나지막한 봉우리의 주봉이 있다.서쪽과 동쪽은 주봉보다 훨씬더 높아 보이는 높은 봉우리가 우뚝 서서 좌청룡 우백호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좌청룡과 우백호 하단으로는 실개천이 흘렀다.이 실개천은 묘지앞 계곡 시작점에서 합류해 남쪽으로 흘렀다. 이런 남쪽으로의 뻥 뚫린 계곡은 동해바다를 향하고 있다.그리고 북쪽의 주봉,좌청룡,우백호와 남쪽의 계곡 산비탈에는 금강송 소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준경묘 터는 정말 훌륭한 명당 자리로 보였다.명당 자리란 이런곳을 의미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최고의 명당자리 요건을 갖추고 있고 또한 최고의 금강송 숲에 둘러싸인 모습이 경이로울 뿐이었다.
준경묘 묘지앞으로 다가 가니 준경묘 진응수라는 샘물이 있다.이 샘물에서는 물이 펑펑 쏟아졌다.이런 물을 진응수라고 했다. 진응수란 명당의 龍勢가 왕성하여 땅의 생기가 뭉친 곳을 채우고도 남아도는 기운을 지상으로 분출시키는 샘물을 의미한다고 안내판은 정의하고 있다.
이 물을 마시면 활력이 넘치고 자손이 번성한다고 한다고 하지만 나는 이 물을 마시고 싶지는 않았다.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 소재의 준경묘 묘역 전경 모습.주
변은 금강송 숲으로 둘러싸인 모습)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 소재의 준경묘 앞에 있는 진응수
라는 샘물 모습)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 준경묘 묘역 앞에서 남쪽의 출입
구를 바라본 모습)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 소재 준경묘 출입구 부근의 금강
송 숲 모습)
영경묘와 준경묘를 보고난후의 의문점(1)
이런 명당자리에 조선왕조 선대의 묘가 있어도 왜 조선은 519년만에 비참한 모습으로 왕실의 문을 닫아야 했는가 라는 의문이 남는다.이 명당의 터가 이양무씨의 후손들에게 조선이란 국가운영이 잘 되도록 인도했다면 왕조의 문을 닫는 일까지는 없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영국 왕실은 선대의 묘가 명당 터가 아니어도 지금까지 존재하는 왕실이고 국민의 존경까지 받는 국가가 아닌가 말이다.태국도 일본도 같은 경우가 아닌가 싶다.
영경묘와 준경묘를 보고난후의 의문점(2)
왜 비옥한 땅 전주에서 삼척의 깊은 산속 마을로 이양무씨 부부는 이주해 왔는가.구전되는 소문에 의하면 전주에서 양가집 규수를 겁탈한 사건으로 전주에서는 살 수가 없어서 삼척의 깊은 산골로 피신해 왔다는 설이 있다.
영경묘와 준경묘를 보고난후의 의문점(3)
1899년에 고종은 삼척의 준경묘와 영경묘를 대대적으로 정비했다고 한다. 이 시기는 국가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대였다.1894년에는 동학혁명,청일전쟁,갑오경장이 있었다. 1895년에는 을미사변이 있었다(민비시해 사건).1896년에는 아관파천이 있었다(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이주한 사건).1904년에는 노일전쟁이 있었다. 1905년에는 을사조약이 있었다(대한제국의 외교권 박탈).이렇게 조선왕조가 백척간두에 처해 있던 시절에 영경묘와 준경묘의 대대적인 정비사업에 신경을 쓸 겨를이 있었단 말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인제군 기린면 방동리 방태산 자연휴양림)
이렇게 우리는 영경묘와 준경묘 구경을 마치고 속초시 수련원 숙소로 귀환했다가 1박을 하고 이튿날인 11.14일날은 속초를 떠나 강원도 인제군 방동리 방태산 자연휴양림으로 향했다.차량 내비에는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방동리 산282-1번지”를 입력시켰다.
도착해서 보니 방태산 휴양림은 협소한 계곡 사이로 소량의 계곡물이 흘렀다. 계곡 좌우측은 절벽 같은 산비탈의 연속이었다. 주차장에는 방태산 등산객들이 타고온 차량만 서너대가 주차되어 있다.우리는 등산할 입장이 아니고 등산준비도 안 돼 있어 그냥 귀경길에 올랐다.다른 자연휴양림에는 숲속에 휴식과 치유의 쉼터가 상당히 많이 마련돼 있는데 방태산은 그렇지 못했다.등산객이나 찾아오는 그런 산으로만 보였다.
(강원도 인제군 방태산 입구에 있는 방태산 숙박시설 모습)
(맺는 말)
방태산 자연휴양림을 슬쩍 둘러보고 서울에 도착하니 시간은 15시13분 경이었다.이렇게 해서 삼척시 이사부길,영경묘,준경묘,인제군 기린면 방동리 방태산 자연휴양림을 잘 구경한 2박3일간의 여행이었다.
(1)3일간 주행거리는 900km
(2)3일간 평균연비는 22.3km/리터.
* 날씨가 추우니 연비가 떨어진 같았다.
(3)휘발값은 900km/22.3km*1495원=60,336원
(4)고속도로 통행료는 하이패스 후불(미정).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