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21:1~14)
잠언은 퍼붓듯 귀한 공감의 말씀들이
쏟아진다.
오늘도 당연 그랬다.
그중에
'가난한 사람의 부르짖음에 귀를 막으면
자기도 부르짓게 될 때 아무에게도 응답받지 못할 것이다.'(13절)
이 말씀에 가장 마음이 갔다.
그러면서도 그런 인식만 강할 뿐
전혀 현실에서의 실천능력, 행할 근육이 없는
내가 요즘 증빙되면서
또 잠깐의 침륜에 빠졌다.
단 0.1mm만큼씩이라도 성장하겠지,
성장하고 있겠지, 라는 식으로 변명하며
잠시의 침륜을 넘긴다.
오늘 묵상에세이 중에서,
경쟁 건축가가 경영난에 허덕이는 것을 알고서는
자기 회사에서 수주하는 프로젝트의 일부를
그 경쟁 회사에 양도해 준 이야기에 감동을 받았다.
그는 '당신의 삶이 우리의 비즈니스다.'라는 신조를
가슴에 담고 사는 사람이다.
언제부터인가
산업사회, 지독한 자본주의적 삶에 들어가면서
정부, 대기업, 중소기업, 노동자의 일련의
철저한 수직적 구조 속에서 살게 되어
함께 존재하면서도
이웃, 마을, 공유 등 수평적 양상은 자취를 감추었다.
옆 호실의 아파트 주민을 수 년을 살아도
얼굴조차 모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마을, 이웃, 공유경제, 상호문화, 지역 화폐, 상생,
협동조합' 등의 용어는 이러한 병적 현상을 치유하는
키워드들이다.
아래로부터의 생명력,
내 주변을 바라보는 일,
내 이웃을 실천적으로 돌보는 일의 가치가 꿈틀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