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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유명한 신학자 본회퍼가 쓴 책에서 나온 의미 있는 이야기 있습니다. 중세 시대 한 성직자가 있었는데 자신이 남들보다 하나님과 더 가까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는 수준이 맞지 않는다 생각하고 교회도 떠나고 공동체도 떠났습니다. 그리고 혼자서 사막에 머물며 살았습니다. 사람들은 이 성직자를 가르켜 ‘히어로’라는 또 다른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성직자인 히어로는 무려 50년 동안이나 사막에 머물렀고, 어떤 공적 예배나 행사에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히어로가 어느 날 마을에 나타나 빈 우물 속으로 몸을 던졌습니다. “하나님이 구해주실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몸을 던지라”라는 음성을 들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히어로는 우물 바닥에 고꾸라졌고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사람들이 구해주려고 달려왔지만, 히어로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우물 안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구해주실 거라는 음성을 들었소. 사람의 도움은 필요 없소.” 그런데 성직자 히어로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결국 우물 안에서 숨을 거두웠다는 이야기입니다.
혼자라면 누구나 항상 외롭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인간을 창조하시고 독처하는 것이 외롭게 느껴지셨기에 돕는 자가 필요 하겠다 여기시고 하와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한문 인(人: 사람인)자도 좌우 작대기 하나씩 서로 의지하는 모습으로 인간이란 단어를 만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노래처럼 아름다운 소리는 없습니다. 저는 악보를 보면서 신기하게 여긴 것은 복잡하게 그려진 수많은 음표와 쉼표가 어울려 아름다운 노래가 만들어진다는 것 신기하지 않습니까? 도레미파솔라시도 서로 다른 일곱소리가 하나가 되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것 이것이 연합이요 공동체의 가치요 소중함 입니다.
기독교신앙은 홀로 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어떤 종교처럼 산속에 들어가 홀로 도를 닦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은 함께 어울림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서로 다른 누가와도 반갑고 즐겁고 행복해 질 수 있는 아름다움이 교회공동체 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주일아침에 되면 저는 일찍 교회에 나오는데 10시30분에 작은 공동체의 만남이 기다려집니다. 교회 옆 아파트 별빛공동체에서 생활하는 4명의 여 청년들이 아파트숙소에서 출발하여 교회로 옵니다. 교회 오는 소리가 교회정문 10m 전방에서부터 소리가 들리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서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교회 들어올 때는 한 청년이 아름다운 찬양을 하며 들어옵니다........ 이런 모습 자체가 아름다운공동체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을 보십시오 짧은 3절 말씀이지만 제목이 있습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했습니다. 이 시는 다윗의 시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다윗은 하나님마음에 꼭 맞은 사람으로 칭찬받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가 하나님마음에 꼭 맞는 사람으로 칭찬받은 것 중에 하나는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한 성전을 향한 노래에 있습니다.
다윗이 그만큼 성전에 대한 애착은 다윗이 왕이 된 후에 통일 왕국을 이루게 될 때 가장 먼저 했던 일은 하나님의 말씀인 법궤를 찾아와 예루살렘 성막에 옮겨 왔고 이스라엘 백성 12지파가 하나가 되어 성전을 향하여 공동체로써 하나님께 예배하고 경배하는 모습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칭찬만 받기에는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는 상처가 있습니다. 말씀 시작을 보십시오 1절...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연합하고 동거 있는 거 얼마나 아름답습니까?.....그런데 함께 연합하고 동거하여 왔는데 어느 순간 깨어짐을 경험한 사람에게는 마음이 많이 아프고 쓰린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시편송을 부를 때 이 말씀이 더욱 와 닿을 듯합니다...... 다윗 집안은 좀 콩가루집안처럼 느껴집니다. 맏아들 암논이 배다른 누이를 강간하고, 그 오빠가 암논을 살해합니다. 다윗왕은 살인자인 아들 압살롬을 용서했지만 자신은 막상 아들의 배신으로 인해 죽음을 피해 도망합니다. 사울과의 관계에서도 다윗은 오직 나라를 위해 싸웠지만 정작 장인인 사울에게 쫓겨 도망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다윗이 그렇게 사랑했던 친구 요나단과의 헤어져야 했고 다윗이 헤브론에서 왕이 된 다음에도, 유다지파에 속해 있던 소수의 사람들 말고는 자신의 적이 되어 버린 나머지 10지파와 7년 6개월 동안 동족들과 싸워야 했던 시간들을 생각할 때 다윗에게는 연합과 동거가 어울리지 않는 쓰라린 아픔을 경험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다윗을 보세요 순례자들이 성전에 오르는 모습을 통해 선하고 아름다운고 이렇게 노래하고 있어요
누구든 공동체 속에서 연합하고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습니다......문제는 사람의 관점으로 보느냐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느냐 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보실 때 선하고 아름다워야 합니다.
성도여러분!!..... “연합” 과 “동거” 같은 말 같지만 좀 다릅니다. 연합은 성도가 서로 다른 모습이라고 할지라도 한 목적을 가지고 모여 함께 협력하여 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동거는 연합을 넘어서 운명 공동체를 말합니다. 좀 극단적으로 말하면 “살아도 함께 살고 함께 죽는 것”으로 같은 결과를 가지고 나아가는 것이 동거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든 연합 할 수 있고 동거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써 우리가 성전에서 예배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성격이 다릅니다. 생각도 다르고 사는 환경도 다르고 배운 지식도 다 다릅니다.
하지만 한 마음된 하나됨은 긍극적 목적이 같습니다.......천국을 소망하는 것은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도 같습니다...... 이 목적을 가지고 주향교회 성도가 하나된 공동체로 사는 것 하나님이 보실 때 선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공동체 연합과 동거를 다윗은 어떻게 노래하고 있습니까?
2절..... “머리 위에 부은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을 타고 흘러서 그 옷깃까지 흘러내림 같고” 라고 다윗은 노래합니다.
성경에 쓰여진 기름은 감람나무에 맺은 열매를 짓눌려 으깨어서 기름이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감람기름이 거룩한 제사장을 임명할 때 머리에 기름을 붓는 의식이 있는데 이때 이 기름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보배로운 기름이라고 부릅니다.(출29:7,9)
이미 이 땅에 예수님 메시야로 오셨지만 구약시대에 오실 메시야를 기대하지 않았습니까? 메시야의 뜻이 기름 부름을 받는 자란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왕으로 제사장으로 선지자로 기름부음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거룩된 기름부음의 의식이기에 보배로운 기름이라 부른 것입니다.
성경에서 사용된 기름은 성령님을 의미합니다. 우리예수님이 처음 회당에서 설교하실 때 눅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신다고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제가 회중기도할 때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임하게 하옵소서 기도 할 때가 있습니다. 세상과 구별시켜 거룩된 기름 부으심이 임하도록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 한 것입니다.
또한 기름이 아픈 사람의 상처를 치료하는 영적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선한이웃 사마리아사람에 대해 비유로 말씀하실 때 강도 만난 이웃을 사마리아인이 상처입은 이웃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교회 장로들에게 아픈 자들을 위해 기도할 때도 상처에 기름을 바르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기름 부으심은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치유하심이 나타납니다. 이처럼 보배로운 기름이 아론의 수염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수염은 권위의 상징이 있습니다.
구약시대 수염과 관계된 한 사건이 있는데 다윗이 왕으로 있을 때에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가 죽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나하스왕이 살아있을 때 자신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었기에 조문사절단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나하스의 아들 하눈 왕이 신하들의 왜곡된 조언을 듣고서 조문사절단의 수염과 엉덩이가 보일 정도로 옷을 잘라서 수치를 주었습니다. 더구나 수염을 절반만 깎아 돌려보냄으로 극도로 모멸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다윗은 여리고에 머물게 하고 수염이 자란 후에 올 것을 배려해 준 적이 있습니다. 사려 깊은 다윗왕은 조문사절단의 무너진 권위를 세워 준 적이 있었습니다...... 이런 권위로 여겨진 수염에 보배로운 기름이 흘러 내린 것입니다.
이제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을 타고 다시 어디로 흘러내렸다고 했습니까?
제사장이 입은 예봇 옷깃까지 흘러 내렸습니다. 그런데 제사장이 입은 예봇 옷깃에는 12지파를 상징하는 보석이 달린 흉패가 달려있는데 보배로운 기름이 이스라엘전체에 미친 상징적의미가 있습니다. 그만큼 제사장 임직식 때 사용된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과 옷깃까지 적혀 거룩한 임직의식이 이루어집니다.
이런 의식을 잘 알고 있는 다윗은 성전으로 나아가는 공동체에서 제사장 임직식 같은 모습이 떠올라 순례자들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고 선하게 보여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십자가 보혈의 은혜를 입은 자에게 어떤 자격을 주셨습니까?
벧전2:9.......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습니다. 주님 보혈로 구원 받은 자로 거룩한 백성 왕 같은 제사장의 모습으로 우리가 예배 공동체로 나아갑니다.
만약 저와 여러분이 한마음 한뜻으로 예배하는데 서로 다른 생각과 모습이라면 그 예배는 하나님 앞에 합당한 예배가 아닙니다...... 우리가 예배할 때 찬송도 기도도 말씀을 듣는 자세도 모두 하나 된 연합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 택한 받은 거룩한 백성으로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주님예수 같은 주로 섬기나니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여 친구들이여 한 몸 같이 친밀하고 마음조차 하나 되어 우리 주님 크신 뜻을 지성으로 준행하세 ♪♩
보배로운 기름이 머리에서부터 시작되어 수염을 거쳐 가슴으로 흘러내리고 성전에 오른 예배 순례자들에게 또 어떤 모습으로 하나 됨을 볼 수 있습니까?
3절 상반절을 보면......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다고 했습니다.
헐몬산은 이스라엘 북쪽에 위치한 눈 덮힌 높은 산으로(2815M) 항상 눈으로 덮혀 있어 이슬의 양이 많아 마치 밤새 비가 온 것처럼 느껴진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무덥고 물이 부족한 나라이기에 헐몬산에서 내린 이슬은 최고의 복입니다. 그런데 이슬이 어디까지 미칩니까?..... 시온 산까지 라고 했어요
“북부 지방의 높은 헐몬산과 남쪽 지역의 낮은 언덕 시온 산까지 이슬이 미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헐몬산와 시온산에 이슬이 하나 되어 연합이 이루어지는데 이것은 기적과 같은 연합입니다.
시온은 나중에 다른 이름 예루살렘으로 바꿔지는데 이곳이 곧 거룩한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오늘날 교회를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교회 안에는 다양한 문화 인종 계급 이런 것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연합이 이루어집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도 교회를 향해 신비적으로 기적으로 보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텔라비브 욥바교회에 시무하시는 유공석목사님이 시133편을 설교하실 때 교회연합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회에 대한 여러 이미지가 있는데, 학교로서의 교회, 병원으로서의 교회, 훈련소로서의 교회, 수도원으로서의 교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대중목욕탕으로서의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교회로 본다면 민들레 회복 센타로써 교회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살면서 때를 묻히지 않을 수 없어요 이것을 인정할 때 우리는 서로의 때를 닦아주며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의 교회입니다....... 은혜가 되지 않습니까? 대중목욕탕 같은 교회, 때밀이 목사, 때밀이 성도라고 했습니다.... 참 은혜가 되는 말입니다.
이 땅에 완전한 교회는 없습니다....... 100% 정결한 교회도 없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님앞에 나와 죄를 고백하며 서로 죄를 용서해주고 사랑해주고 용납해주는 교회가 아름다울 뿐입니다.
주님이 세우신 교회 안에 예수그리스도로 통해 한 몸 된 아름다운 공동체를 하나님께서 어떤 복을 주십니까?.....공동체 속에 “영생” 이란 소중한 복을 주셨습니다.
영생은 우리의 노력과 애씀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한몸 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이 곧 영생입니다.
요3: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5:2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영생 엄청난 복은 누구에게나 주어집니다......공동체 안에 누구나 예외가 없습니다...... 차별이 없습니다....... 빈부귀천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공동체속에 허락된 영생은 그이름을 믿는 자 오직 예수님 보혈의 공로로 형제가 연합하고 동거하는 것만이 아름다운 공동체입니다.
한국교회가 그렇게 되어야합니다.,,,,,,우리교회가 그렇게 되어야합니다... 우리 가정이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런 공동체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올해도 보며 체험의 역사가 기름 부으심으로 나타나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