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여성주의자들을 열광하게 만든 도금봉, 그 회고전의 의의
1960년대 황금기의 한국영화에는 최은희, 황정순, 문정숙, 주증녀 등 훌륭한 여배우들이 많이 나온다. 희고 오동통한 얼굴과 독특한 음색을 지닌 도금봉은 때로는 이들 기라성 같은 스타들의 옆에 서 있는 조연으로, 때로는 틈새를 꿰찬 주연으로 자기만의 자리를 만들었다. 도금봉의 무엇이 오늘날 현대적인 여성주의자로 하여금 쾌재를 부르게 하는지, 여기 그 비밀의 지도를 펼쳐보기로 한다.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는 다름 아닌 ‘기억’이다. 우리는 기억을 통해서 스스로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역사를 써내려가기도 하고 자아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런데 20세기를 화려하게 장식하며 대중들을 위무해온 대중문화 속에서도 영화는 이러한 기억의 의미나 역할에 있어서 가장 중심을 차지한다. 영화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대중들의 기억을 재구성하는 과정이라면 영화를 본다는 것은 재구성된 그 기억 속으로 기꺼이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되돌아본다’는 의미의 ‘회고전’은 대중들의 문화적 기억을 영화를 매개로 해서 공식화시켜내는 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회고전’은 한국 영화사 속에서 전설적이고 이단적인 요부, ‘도금봉’을 그 경로로 채택하고 있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오!”
‘도금봉’. 그 이름은 무엇을 연상시키고 어떻게 기억될까? 사람마다, 연령과 세대에 따라서 그 내용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때로는 아스라한 기억 저편에서 그녀를 불러낼 수도 있고 때로는 무의식 속에 억압되어있던 공포와 혐오감을 수반한 채로 그녀가 나타날지도 모를 일이다. 연극 무대와 악극단 등에서 활동하다가 1957년에 조긍하 감독의 <황진이>로 영화에 데뷔한 이래 약 500여편의 출연작을 갖고 있는 그녀는 ‘세기의 요우(妖優)’, ‘모던 글래머’, ‘동(動)과 관능의 페르조나’와 같은 수식어가 증명하듯이, 독특하면서도 강렬한 악녀의 이미지로 스크린을 누볐던 배우이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다른 여배우들과의 비교해 볼 때, 그녀가 갖는 위치는 모호하고 양가적인 측면이 강하다. 그녀의 이미지는 한편으로는 ‘서민물의 올드퀸’으로 불리던 황정순이나 ‘가장 한국적 여인상’으로 평가받던 최은희와는 거의 반대되는 위치에 놓여졌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녀보다 조금 늦게 데뷔한 좀 더 모던하고 서구화된 ‘아름다운 악녀’ 또는 ‘글래머 스타’였던 김혜정이나 최지희의 이미지와도 차별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처럼 양가적인 면모와 모호한 위치성은 출연작의 목록을 통해서도 읽혀지는데, 그녀는 성과 권력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힌 ‘진성여왕’이나 ‘천하일색 양귀비’이기도 했지만, 민족이나 가족에 대해서 자기 희생적이고 영웅적인 면모를 지닌 ‘유관순’이나 ‘또순이’일 수도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녀는 하녀나 후처와 같은 주변적인 인물들에서부터 흡혈귀나 간부(奸婦)와 같은 비천하고 사악한 성격까지 개성있게 소화해냈다.
<또순이> <백골령의 마검>
이처럼 상호 모순적이기까지 한 다양한 캐릭터들을 그녀가 연기할 수 있었다는 것은 물론 당시 영화산업의 상업적 요구나 팬덤의 가변적 기호에 맞추어진 것이기도 하겠지만, 그녀의 이미지 자체가 스테레오타입화된 여성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것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도금봉은 대체로 당시의 하층계급 여성들이 선망하거나 동일시할 수 있는 캐릭터들을 통해서 금기시되던 욕망을 노골적으로 추구하기도 하고 보기 드문 자율성과 힘을 강력하게 표출해냄으로써 남성 관객들에는 위협적인 반면에 여성 관객들에게는 해방감과 대리만족의 쾌감을 가져다주는 여배우였다. 그런 만큼 그녀의 스타 이미지는 경탄과 혐오, 비판과 찬사 사이를 극적으로 오가는 것이자, 고유한 전복성을 일관되게 갖는 것이었다.
<또순이>(1963, 박상호)는 당시 인기를 끌면서 수백만 여성 청취자를 울렸던 <행복의 탄생>이라는 라디오 드라마를 영화화하여 흥행에도 성공하고, 도금봉에게 ‘아시아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의 계기가 되었던 작품이다. 이 작품은 프린트가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나리오를 통해서만 그 영화의 면모를 짐작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16mm 프린트를 입수해서 상영하게 됨으로써 <또순이>라는 영화의 실재를 확인할 수 있다는 역사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또순이>는 함경도 출신으로 자수성가했으나 권위적이고 인색한 아버지로부터의 경제적 독립을 선언한 후, 떡장수, 타이어장수, 밀수품 장수는 물론이고 세차와 짐나르기를 비롯한 온갖 종류의 거칠고 힘든 육체노동 등을 통하여 악착같이 돈을 모은다. 그 과정에서 소개장 한 장 들고 ‘또순이’ 아버지를 찾아와 운전수 자리를 구하던 심재구와의 로맨스가 펼쳐지고, 영화는 ‘또순이’가 사랑하는 심재구를 위해 ‘새나라 택시’를 마련하는 것으로 끝난다.
억척스러운 여성의 대명사하면 ‘또순이’일 정도로, 이 영화는 독립적이고 경제력강한 여주인공의 강인하고 타협없는 모습을 통해서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는 긍정적인 여성상을 실감나게 그려낸다. 반면에 맹목적일 정도의 ‘노동 기계’ 또는 ‘목적론적 인간형’을 통해서는 당시에 요구되던 내핍과 근면의 이데올로기는 물론이고 강력한 지도자상에 대한 대중적 열망을 읽어볼 수 있게 해준다. 그만큼 ‘또순이’라는 캐릭터 속에는 한편으로는 여성의 자발적인 욕망의 표현과 주체 선언이, 다른 한편으로는 온갖 비천함과 고난을 ‘경제적 성공’이라는 물신화된 가치에 대한 추구를 통해 견뎌내야 했던 당시 대중들의 심리가 담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산불> <월하의 공동묘지>
공포와 에로 사이, 카리스마가 빛나다
<백골령의 마검>(박윤교, 1969)은 그 주제의식이나 영화적 스타일에 있어서 작년 제4회 서울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묘녀>와 같은 계보의 영화로 분류될 수 있다. <묘녀>가 기이하고 끈끈한 인연으로 맺어진 연상녀-연하남 커플의 가공할 이야기를 통해서 여성의 과잉 성욕을 괴물화시켜내고 있다면, <백골령의 마검> 역시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갖는 위협성을 ‘흡혈귀’라는 이국적인 소재를 통해서 거칠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두 편의 영화는 모두 공포와 에로라는 두 가지 영화적 코드들을 결합시켜서 도발적인 상상력과 자극적인 화면들을 펼쳐보인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여기에서 도금봉이 연기하는 여자 흡혈귀는 더없이 사악하고 비천한 존재로서 혐오감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그녀의 거침없는 유혹과 육체적 에너지는 비상한 카리스마로 화면을 가득 채우는 동시에 관객으로 하여금 선한 주인공보다 그녀와 더 동일화하도록 만드는 역설을 빚어낸다.
B급 공포영화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월하의 공동묘지>(권철휘, 1967)는 한국 괴기영화가 붐을 맞이하는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기본틀을 마련한 작품이다. 일제 식민 지배 하의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하여, 학생에서 기생이 그리고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다가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여성의 원한과 복수 그리고 간교하고 잔인한 음모를 통해서 그 가정의 하녀에서 아내의 자리를 차지한 여성의 파멸이 묘사되는 이면에는 내적 붕괴를 거듭해가면서 점차 악몽의 공간이 되어가는 피식민지 부르조아 가정의 음울한 운명이 자리잡는다. 기생의 비극적 인생 유전을 다루는 신파적 전통에 기반하고 있는 이 영화 속에서 도금봉은 카리스마와 에너지가 넘치는 악녀와 악처의 연기를 통해서 비련의 주체이자 괴기스러운 타자인 여주인공을 오히려 압도한다.
도금봉은 <성춘향>(신상옥, 1961)과 <사랑방손님과 어머니>(신상옥, 1961) 같은 작품들을 통해서 ‘최은희’의 정적이고 절제된 여성상과 대조되는 동적이고 자기표현적인 캐릭터를 연기했다. <산불>(김수용, 1967)에서도 역시 그녀는 낯선 남자와의 금기된 관계에 빠져들다가 결국 인종과 자기 희생을 선택하는 주증녀(점례)와 대립되는 위치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다가 비참하게 파멸되고 처벌받는 역할(사월이)을 맡는다. 좌우 이념 대립이 낳은 신경증이 모든 등장인물들을 팽팽하게 사로잡고 있는 가운데, 성적 불만족에 휩싸인 도금봉의 긴장된 육체와 터질 듯한 욕망은 거부할 수 없는 매혹을 선사하는 동시에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도록 만드는 불안감과 역동성을 자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