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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교 80주년 - 특별 협참금을 기다립니다.
(각종 행사 개최 및 운동부 후원에 사용)
1. 십이일반(十匙一飯) 모금
- 각 소모임별 모임 시 모임 회비 5~10% 후원
- 개인별 특별한 의미가 있는 뜻을 기념하여 후원
2. 개인 및 소모임, 각 회별 특별협찬금
- 개교 기념을 축하할 통 큰 독지가 또는 단체
개교 80주년 특별협찬금은 국민은행 822401-04-143320 예금주 용산고동창회로 입금
<후원금> - 100만 원: 이희명(18회), 김계방(19회), 손인국(19회), 익명
<십시일반> - 용당29회: 20,000원(누계 6,500원), 박현우(57회): 50,000원
칼럼 | 허 장·13회·홍맥회 창설자
고귀한 죽음-퇴계와 니체
조선시대 이 퇴계는 애초 가난한 집안을 일으키려 벼슬길에 나선 전문 관료였습니다.
그는 니체보다 300년 전에 태어난 철학자로서, 니체와 마찬가지로 바람직한 인간의 삶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자 관직을 통한 정치보다는 道學(도학) 연구에 심취하게 됩니다.
퇴계와 니체는 둘 다 완전한 인간상을 꿈꿨지만 출발부터 달랐습니다.
니체는 신에게의 의지조차 인간의 나약함 때문이라고 배척했지만 퇴계는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착한 마음을 닦는 것을 인간의 도리로 보았습니다. 때문에 퇴계는 인간을 공경하고 하늘을 공경해야 한다는 敬(경) 사상을 자신의 학문의 핵심으로 삼았습니다. 한마디로 弘益思想이 철저한 善(선)한 마음을 지닌 “선비”라 하겠습니다.
아무것에도 의지하지 말라고, 인간 자신만을 갈고 닦아 신이 두렵지 않은 지경까지 도달하라고 닦달한 니체와는 너무도 다른 인간관이었습니다.
퇴계는 평생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반듯하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당대의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많은 제자들을 기르다 1570년 12월 8일(음력), 69세의 나이로 운명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죽음은 니체와 너무도 달랐습니다.
퇴계는 죽기 한 달 전쯤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습니다. 그러자 선생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마무리 강론을 편 후 제자들을 돌려보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당시 봉화 현감으로 재직 중이던 맏아들 준에게 명합니다. 관직을 내려놓고 집으로 오라고 말입니다. 당시 사대부 집안의 전통이 그러했으니 자신이 죽으면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아들도 3년상을 치를 것이고 갑자기 그리하면 현직 관리로서 나랏일에 지장이 있을까 염려한 것이지요.
그리고 운명하기 5일 전인 12월 3일, 자제들을 시켜 그동안 빌렸던 책들을 돌려주게 합니다. 12월 4일에 는 조카에게 명해 유서를 작성합니다. 조정에서 내리는 예장을 사양할 것, 거창한 비석 대신 조그만 돌에 자신의 이름과 조상의 내력, 행적만 간단히 적을 것을 당부합니다.
5일에는 시신 염습 준비를 시키고 7일에는 아끼던 제자에게 남은 서적의 관리를 부탁합니다. 그리고 8일 오전, 여느 때보다 일찍 일어나 깨끗이 세수한 다음 머리맡에 있던 매화 화분을 다른 곳으로 옮기게 합니다. 이른 나이에 아내를 잃고 관직에 있으면서 맺었던 관기 두향과의 짧은 인연을 그리며 선생이 평생 간직했던 화분입니다.
그 매화에게 자신의 죽음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런 다음 자리에 누운 선생은 그날 오후 자식들과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니체가 퇴계를 알았다면 그가 그토록 갈망했던 가장 인간적인, 인간으로서 가장 고귀하고 존엄한 죽음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해야 그런 죽음을 맞을 수 있는지 알았을 텐데 말입니다.
토리노의 광장에는 아직도 채찍질 당하는 말의 비명이 맴돌고 있습니다.
그러나 도산서원에는 사랑이 가득합니다.
9개월간의 만남 이후 21년간 얼굴을 맞대지 않았던 두향은 선생의 죽음을 확인하고 남한강에 몸을 던졌습니다. 그 두향의 매화가 지금도 대를 이어 도산서원 입구에서 향을 피우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
퇴계의 삶과 죽음을 보면 답이 보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자신의 본분을 지키며 제자들 앞에서 조용히 세상을 마감한 聖人(성인), 소크라테스를 생각하게 하는군요
큰그릇 3
어리석은 삶, 지혜로운 삶 99: 김상대·7회·아주대 명예교수
반대가 진리다.
1. 자기 계발
우리는 끊임없이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지금의 자신으로는 만족하지 않으며, 현재의 모습은 극복해야 할 상태라고 여긴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을 롤모델로 삼아 흉내도 내고, 유명인의 삶을 따라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한다.
장미는 백합이 되려 하지 않는다. 소나무는 대나무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물고기는 새가 되지 못해 괴로워하지 않는다. 그런데 인간만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를 거부한다. 그래서 인간은 점점 더 불안해지고 병들어간다. 인류가 지닌 수많은 정신적 고통의뿌리 가운데 하나도 바로 여기에 있다.
자기자신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믿는 것, 그래서 끝없이 또 다른 이상향의 얼굴을 쫓아가는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정반대다. 다른 무엇이 되려는 노력을 멈출 때 비로소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게 된다.
신은 이미 우리를 완성된 하나의 존재로 창조했다. 신은 장미에게 장미로 살라 하고, 나무에게 나무로 있으라고 한
다. 인간에게도 마찬가지다. 신은 우리가 다른 무언가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오직 자기 자신으로 피어나기를 바랄 뿐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깊이 받아들이는 순간 긴장은 사라진다. 더 이상 어디론가 도달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비교할 필요도 없고, 자신을 억지로 끌어올릴 필요도 없다. 그 순간 삶은 투쟁이 아니라 축제가 된다.
참된 변화는 자신을 부정할 때가 아니라 자신을 받아들일 때 일어난다. 억지로 다른 존재가 되려는 노력 속에서는 광기가 자라나지만, 자기 자신으로 꽃 피어날 때는 평화와 기쁨이 자라난다. 세속적인 자기 계발을 멈출 때 비로소 가장 깊은 성장이 시작된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삶은 원래부터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한 경주가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꽃 피어나는 것임을. 억지로 자신을 개조하려 할 때 인간은 갈라진다. 한쪽은 현재의 자기이고, 다른 한쪽은 미래의 이상향이다. 그 둘 사이의 틈에서 불안과 긴장이 생겨난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 분열은 사라지고 인간은 하나가 된다.
참된 평화는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데서 오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데서 온다. 신은 이미 우리를 충분히 독특하고 완전한 존재로 만들었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믿지 못하는 데있다.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라. 그러면 삶은 애써 만들어내는 피땀이아니라 저절로 피어나는 향기가 된다.
2. 탄생과 삶
우리는 일정한 나이가 되면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고 학업을 마치면 직업을 갖고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며 그것이 곧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삶을 더 편리하고 더 멋지게 살기 위한 방편으로 더 많은 돈, 더 높은 지위, 더 큰 성공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내면은 거의 돌보지 않는다. 마음속에는 탐욕과 분노, 질투와 증오가 가득 차 있는데도 그것을 당연한 인간 본성처럼 여기며 살아간다.
이렇게 내면의 잡초를 방치하면서 꽃이 피어나기를 기대한다. 욕망과 경쟁심으로 가득 찬 삶 속에서 평화와 행복을 기원하기도 한다. 그러나 황폐한 땅에서 장미가 피어날 수는 없다.
삶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피워내야 하는 예술이다. 탄생은 시작일 뿐이다. 씨앗이 땅에 떨어졌다고 해서 저절로 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씨앗은 어둠 속에서 견디고, 불필요한 것을 벗어내며, 자신의 내부를 변화시켜야 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우리 안에는 너무 많은 잡초가 자라고 있다. 탐욕과 분노, 증오와 집착은 존재의 빛을 가리는 돌무더기와 같다. 그것들을 직시하고 내려놓을 때 비로소 내면의 토양은 비옥해진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조금씩 사랑과 평화와 기쁨의 꽃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참된 삶은 밖에서 무엇을 더 얻는 데 있지 않다. 자기 안에서 무엇을 덜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채우는 삶이 아니라 비우는 삶 속에서 인간은 점점 더 아름다워진다. 더 많이 가지려 할수록 삶은 황폐해지고, 더 많이 버릴수록 삶은 향기로워진다.
인간은 무엇을 더 쌓아 올릴 때 위대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기 안의 불필요한 것들이 사라질수록 존재는 점점 더 맑아진다.
마치 흐린 물이 가라앉으면 본래의 투명함이 드러나는 것과 같다.
우리는 늘 밖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하지만, 삶의 향기는 내면이 정화될 때 저절로 피어난다. 사랑도 평화도 기쁨도 외부에서 얻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본래 우리 존재 깊은 곳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다만 탐욕과 두려움과 집착이 그것을 가리고 있을 뿐이다.
내면의 잡초를 하나씩 걷어낼 때 인간은 점점 더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기 존재 자체가 하나의 꽃처럼 향기를 내기 시작한다. 그때 비로소 삶은 생존이 아니라 축제가 된다.
그리고 인간은 처음으로 신에게 바칠 만한 삶을 갖게 된다.
3. 소외감
우리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세상과 어딘가 어긋난 느낌이 들면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떻게든 군중 속에 섞이려고 애쓴다. 남들과 비슷하게 말하고, 비슷하게 생각하고, 비슷하게 살아가려 한다. 세상은 끊임없이 동화를 요구한다.
튀지 말라고 하고, 다수와 다른 길을 가는 사람을 불안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정받기 위해 자기 내면을 배반한다. 자기 생각을 숨기고, 자기 감정을 억누르고, 자기 영혼을 접어둔 채 세상에 맞추어 살아간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세상 속에서는 성공했지만 자기 존재 안에서는 길을 잃어버렸다. 모두와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자기 자신과는 단절되어 있다. 그래서 끊임없이 허전하고 불안하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른 채 살아간다.
세상 속에서 소외감을 느낀다는 것은 아직 자기 영혼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깨어있는 사람은 병든 세상에 완전히 적응할 수 없다. 탐욕과 경쟁,위선과 폭력이 당연한 세상에서 깊은 불편함
을 느끼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다.
만일 그런 세상 속에서 아무 갈등도 느끼지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더 위험한 일인지도 모른다. 참된 인간은 세상 안에서 살아가지만 세상에 매몰되지는 않는다.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고 사람들과 어울리지만, 자기 존재의 중심만은 잃지 않는다. 그는 군중 속에 있으면서도 자기 자신으로 남아 있다.
소외감은 극복해야 할 병이 아니다. 때로 그것은 자기 존재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깨어있음이다. 자기 영혼이 아직 완전히 군중속에서 잠들지 않았다는 신호이다. 세상에 완전히 적응할수록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고, 세상과 어딘가 어긋나 있을 때 비로소 자기 자신에게 가까워진다.
우리는 세상을 떠나 산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세상 안에서 살아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상 속에 살면서도 자기 영혼까지 세상에 넘겨주지 않는 일이다. 군중은 늘 우리를 자기들과 똑같이 만들려 한다. 하지만 신은 우리를 하나의 독특한 존재로 창조했다. 나무들이 모두 다르듯이, 꽃들이 저마다 다른 향기를 지니듯이 인간 또한 각자 다른 존재 방식으로 피어나야 한다.
그래서 때로 소외감은 축복이다. 그것은 우리가 아직 완전히 기계처럼 살아가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아직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잃지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참된 인간은 세상 속에 있으면서도 자기 존재의 중심에 머문다.
그리고 바로 그때그는 외로움 속에서도 이상한 평화와 자유를느끼기 시작한다.
큰그릇 5
AI 이야기 1 호모 에이아이언스(Homo AIens) 천상욱·42회
2026년! 우리는 모두 호모 에이아이언스가 된다
나의 하루에 AI는 몇 번 등장했는가?
저는 공학을 공부했고, 건설회사를 15년 다녔습니다. 문화예술 리뷰 기자로 2,500편의 글을 썼고, 심리학 책 2권과 웹소설 4편(11권)을 썼습니다. 지금은 공연 기획 및 연출, 행사 사회를 보고, AI로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올해 63분 장편영화 1편과 10분 내외의 단편영화 5편을 만들었습니다.
“전공이 뭔가요?”라는 질문 앞에서 공학인지, 저널리즘인지, 심리학인지, 영화인지늘 망설였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올해, 그 이야기를 AI와 함께 만들고 있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호모 에이아이언스(Homo AIens)라고 부릅니다.
AI와 함께 진화하는 인간을 뜻합니다. AI를 두려워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AI와 협업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사람입니다.
이 연재를 통해 여러분도 호모 에이아이언스가 되길 바랍니다.
친숙해지는 첫 번째 —하나만 쓰지 마라
처음 AI를 접하는 분들께 드리는 첫 번째 조언입니다. ChatGPT, Gemini(제미나이), Perplexity(퍼플렉시티), Claude(클
로드). 최소한 네 가지를 모두 사용하기를 바랍니다.
똑같은 질문을 네 개의 AI에 동시에 해보세요. 그 결과를 비교하여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의 AI에서 나온 결과를 다른 AI에서 검증하거나 보완하는 법도 좋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네 가지를 모두 썼습니다. 지금도 새로운 주제를 시작할 때는 네 가지를 모두 씁니다. 어떤 AI가 독보적으로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주로 일하는 AI는 Claude입니다. 잘 맞아서 입니다.
Claude와 대화하는 저만의 방식이 생겼습니다.
‘ChatGPT’는 아이디어를 빠르게 펼쳐주는 브레인스토밍의 달인입니다.
‘제미나이’는 구글의 방대한 정보와 검색을 연결하는 정보 통합자입니다. ‘퍼플렉시티’는 출처를 밝히며 최신 정보를 정확하게 찾아주는 리서치 전문가입니다. ‘클로드’는 맥락을 깊이 이해하고 긴 대화에서 창작과 분석을 함께 하는 협업자입니다. 중요한 건 어떤 AI를 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대화하느냐’입니다. 지금 컴퓨터를 켜고 네 개의 AI 창을 여십시오. 회원 가입은 구글 아이디가 편합니다.
AI는 인공기계가 아니라 인공지능이다
여기서 중요한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AI를 단순한 도구로 보는 분들이 많습니다. 검색 엔진처럼, 계산기처럼 쓰는 것입니다.
하지만 AI는 인공기계(Artificial Machine)가 아니라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입니다.
이 차이가 큽니다. 똑똑한 사람은 자신보다 더 똑똑한 사람을 절대 무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배우려 합니다.
반대로 뛰어난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결국 자신의 무지를 드러낼 뿐입니다. AI도 마찬가지입니다.
천재와 단 둘이 이야기할 시간이 주어졌다고 합시다. 내가 똑똑하지 못하면, 고급 대화가 어렵습니다. 상대가 아무리 천재여도 대화수준은 낮을 겁니다. 특히 나보다 어린 천재일 경우 더욱 그렇습니다. 아티스트와 단 둘이 있을 기회가 생겨도, 예술을 모르는 사람이 깊은 대화를 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AI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이유?
AI의 문제가 아닌 대화하는 사람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AI는 대화하는 사람의 수준만큼 답을 합니다. 깊이 있는 질문에는 깊이 있는 답이 나오고, 단순한 명령에는 단순한 결과가 나옵니다. AI와 깊이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은, 인간관계에서도 깊이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소통의 원리는 같습니다. AI에게 반드시 존댓말로 해야 한다는 게 아닙니다. AI에게 존댓말을 쓴다고 결과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형식이 아니라 맥락입니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명령하지 말고 맥락을 줘라
이제 실전입니다. 많은 분들이 AI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여행 계획 짜줘.”
“사업계획서 써줘.”
“이메일 써줘.”
이건 명령입니다. 명령에는 최소한의 답이 돌아옵니다. 평범하고 무난한 결과물입니다. 저는 다르게 말합니다.
사람에게 말하듯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1) 나는 도쿄에 혼자 가려고 해. (2) 미술관과 골목 탐방이 목적이고, 하루 예산은 15만 원이야. (3) 3박 4일 일정을 만들어보자. (4) 많은 것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특정한 순간에 머물러 생각하며 느끼고도 싶어. (5) 혼술이 가능한 곳, 혼술 여행객에게 너그러운 곳의 정보도 필요해.”
차이가 보이십니까? 이것이 I-메시지 프롬프트입니다. 심리학에서 I-메시지(나 메시지)는 관계를 열고 소통을 깊게 만듭니다. I-메시지는 나를 주어로 하여, 내 감정을 솔직하게 전달하는 소통법입니다.
AI와의 대화도 똑같습니다. “해줘” 대신 “나는 ~하고 싶어”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결과물이 달라집니다.
프롬프트의 3가지 핵심 요소입니다.
첫째, 역할(Role)
“너는 20년 경력의 여행 전문가야.”
AI에게 어떤 관점으로 답할지를 알려줍니다.
둘째, 맥락(Context)
“목적은 ~~이고, 대상은 ~~야.”
왜 이걸 하는지, 누구를 위한 건지를 알려줍니다. 가장 중요합니
다. 이 질문을 통해 내가 확실히 얻고 싶은 게 무엇인지 명확히
알려줘야 합니다.
셋째, 조건(Constraint)
“~~는 하지 말고, ~~로 써줘.“
원하는 형식, 피해야 할 것, 분량을 알려줍니다.
AI의 국적은 미국이다 —명확하게 말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실용적인 팁입니다. ChatGPT, Gemini, Perplexity, Claude 모두 미국에서 만들었습니다. 미국식 사고방식
과 영어 중심으로 학습됐다는 뜻입니다.
한국어로 대화할 수 있지만, 한국적 뉘앙스와 맥락을 100% 이해하지는 못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명확하게 말해야 합니다.
① 쉼표와 마침표를 분명하게 사용.
② 문장을 길게 늘어뜨리지 말고 끊어서.
③ 긴 요청일 경우 (1), (2), (3)처럼 번호를 붙입니다. 번호를 붙이면 AI가 각 조건을 정확하게 처리합니다. 빠뜨리는 것도 줄어듭니다.
오늘 당장 해볼 내용입니다.
ChatGPT, Gemini, Perplexity,Claude 네 가지를 모두 열어서 같은 질문을 하십시오.
“나는 ____한 사람인데, ___를 하고 싶어.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결과가 다르다는 걸 직접 경험하는 것!
그게 호모 에이아이언스의 첫 걸음입니다.
천상욱(42회) 영화감독·작가·작사가·공연 연출·행사 사회. AI를 활용한 창작과 비즈니스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큰그릇 7
이택순(21회)의 역사 기행 11: 아무르강을 따라 우리의 얼을 찾다
환희에서 통곡으로, 라즈돌노예
1870년대 초부터 1930년대 초까지, 신세계 라즈돌노예 평원에서 고려인들은 고국 조선에 비해 매우 풍족한 삶과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을사늑약(1905년 을사보호조약) 이후 절망한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망명 지사들이 연해주로 쏟아져 들어왔다. 연해주는 새 삶의 개척지이며, 항일투쟁의 최대 성지가 된 것이다.
1917년 러시아혁명으로 왕정이 무너지고 소비에트사회주의 체제가 들어섰지만, 고려인 사회는 비교적 안정을 유지해왔다. 70여 년간 가꾸어 온 고려인들의 기대가 한창 영글어 갈 즈음, 청천벽력의 악랄한 정책이 소련당국에 의해 펼쳐진다.
그것은 1930년대 들어 스탈린 독재정권이 비밀리에 시도한 ‘고려인 강제 이주 정책’이었다. 18만 고려인 전부를 잠재적 위험 요소로 간주해, 극동 국경지방에서 내륙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키는 것이었다. 일본과의 전쟁 시 ‘일본을 위한 간첩행위의 우려’가 있다는 인종적 편견 때문이었다.
1937년 9월 9일 어둠이 찾아올 무렵, 라즈돌노예 기차역에서는 대륙의 한기가 수많은 고려인들의 두툼한 옷깃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한기에 더해, 짓누르는 공포와 끝없는 불안이 역 광장을 휘감았다. 소비에트 비밀경찰의 감시 눈초리는 매서운 매의 눈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수많은 고려인들이 겁에 질린 채 삼삼오오 보따리 몇 개를 들고, 영문도 모른 채 시베리아행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제 이주 통보는 겨우 1주일 전에 받았다. 어느 곳으로 가는지도 몰랐다. 조상 때부터 70여 년간 개척하며가꾼 정든 집과 농토였다. 가재도구와 농작물, 가축을 그대로 두고, 무조건 라즈돌노예역으로 모이라는 날벼락 같은 통보였다.
쥐꼬리만 한 보상을 손에 쥐여 주고, 마치 인도적 대우를 하는 것처럼 위장한 고려인 말살 책략, 인종 차별책이었다.
이런 조치와 강제 이주는 연해주 고려인뿐만 아니라 전 러시아에 진출한 고려인에게 적용되었다. 현역군인 장교조차도 전역 조치 후 체포 이동을 명령받았다. 하바롭스크의 충성스러운 빨치산 출신 투사, 흑해 연안에서 대학에 다니던 고려인 학생에게도 체포 명령을 내렸다.
거부하는 자는 일본 간첩으로 몰아 체포 구금 처형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개 같은 대우가 아니라, 개만도 못한 취급을 당하게 되었다’라고 고려인은 울부짖었다.
2025년 6월의 태양이 작열하는 한낮, 라즈돌노예 철도 역사는 인적조차 드물고 길고도 깊은 정적이 깔려 있었다. 투박한 공장처럼 생긴 새 역사 건물에서 1937년의 비참한 모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주변에는 사람의 인기척이 전혀 없다.
건물의 모든 문은 굳게 닫혀있다.
아! 이런 한가한 시골 역에서 강제 이주를 시작했구나! 그것은 외부의 눈, 여론과 언론의 추적을 따 돌리며 시도한 코리안 디아스포라(Korean-Diaspora)의 시작에 불과했다.
고려인의 개척정신과 근면성을 활용해 내륙 초원지대를 농경지대로 만들려는 원대한 시도라고 말하는 순진한 분석도 있었다. 그것은 강제 이주의 폐해와 심각한 인권유린에 눈 감는 어용 논거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동과정에서 어린이와 노약자 수천 명이 죽어 나갔다.
이 역이 시민이 이용하는 철도 역사인지, 창고인지 구별이 안 되는 것은 그날의 공포가 어른거려서였을까?
이유를 알 수 없는 깊은 침묵과 시간이 정지한 정적이드리워져 있다.
아직도 러시아 곳곳에는 스탈린 탄압 정치와 소비에트 유산이 깊게 드리워져 있음을 느끼게 된다.
1870년대, 이곳에서 고려인들은 두만강 접경지역을 벗어나 러시안 드림을 꿈꾸며 새로운 정착지로 이동하
는 감격에 눈물 흘렸다. 그리고 70년 뒤, 산천을 울리는 커다란 통곡소리가 흘러나왔고, 그들은 짐짝처럼 화물칸에 실려 피눈물 흘리며 어두운 대륙을 유랑하게 된다 .
시베리아 횡단 철길에는 그날의 비극을 상기시키는듯, 유라시아행 화물열차가 아주 길게 차량을 매달고 유유히 대륙의 길을 달려 나간다
큰그릇 9
김세봉의 고전산책 48: 김세봉·28회·(사)유도회 한문연수원 교수
임금 노릇 해 먹기 힘들다
조선 제17대 임금인 효종(孝宗, 1619∼1659)의 사위중에 동평위(東平尉) 정재륜(鄭載崙, 1648∼1723)이 있다. 그는 영의정을 지낸 정태화(鄭太和, 1602∼1673)의 아들이나 임금의 사위라 벼슬은 못했다. 그는 왕의 부마로서 궁중에 출입하며 보고 들은 이야기를 《공사견문록(公私見聞錄)》이라는 책으로 정리하였다.
《공사견문록》에 선조(宣祖: 조선 제14대 임금)에 관한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화가 전해온다. 그 기록에 의하면
선조는 항상 왕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너희들은 내가 임금 노릇을 하는 것을 즐겁다고 여기는 줄 아는가? 한 사람의 백성이라도 제 자리를 찾지 못하면 그것이 모두 내게는 근심거리이다.
어찌 너희들처럼 마음대로 출입하면서 얽매이는 바가 없는 것과 같겠는가? 나로 하여금 하성군(河城君: 선조의 왕자 시절
호칭)으로서 받는 녹봉으로 조석(朝夕)이나 제공받으며 마음에 근심할 바가 없다면 반드시 임금 노릇을 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
대개 사람들은 왕이 되면 마냥 좋을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과연 그러한가를 돌아보게 하는 언급으로 보인다.
어떤 나라가 존재하려면 왕이나 대통령의 역할을 해야 할 사람이 필요하다. 원컨 원치 않건 그것은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일 수많은 사람의 다양한 생각들을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롭게 방임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야말로 무질서의 아수라장이 되고말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필요한 대표자에게는 그의 임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그에 따른 권한과 함께 큰 책임이 수반된다. 문제는 그런 일을 맡아 제대로 임무를 수행할 적임자가 누구이며 그런 사람은 어떻게 결정되는가이다. 왕조시대에는 세습에 의해 최고 통치자가 정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가 지도자로서 적합한가의 여부보다 관행에 따라 장자가 왕이 되거나 형제 중 우수한 자가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대상자의 범위가 넓지 않은 만큼 제대로 된 적격자가 계승하는 데도 한계랄까 위험성이 적지 않다. 다행히 세종(世宗 1397∼1450)이나 정조(正祖 1752∼1800) 같은 인물이 왕위에 오르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그 폐해는 고스란히 백성이나 국민이 떠안게 된다.
위에서 임금 노릇 하기 어렵다던 선조는 40여 년이나 왕위를 누렸다. 그렇다면 그는 과연 그가 인식하고 있던 그 어려운 역할을 잘 수행하였는가?
보는 이에 따라 평가가 다를 수는 있겠지만 대체로 그에 대한 평가는 좋은 편은 못 되는 것 같다. 조선 건국 이래 그의 치세 시기에 가장 큰 전란(戰亂)을 겪었고 그에 대한 피해가 막심하였던 사실을 들 수 있다.
사화(士禍)가 끝난 시기에 사림(士林) 정치가 본궤도에 오르면서 선조 초년에 동서(東西) 분당이 생기고, 다시 남인(南人)과 북인(北人) 등 붕당정치(朋黨政治)가 발생하였다. 붕당 간에 갈등으로 인해 크고 작은 정변들이 일어나 정계를 시끄럽게 하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한 문제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등 7년여 간의 전쟁을 겪으면서 국가가 피폐화되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불과 20여 일 만에 한양이 침탈당하고 의주까지 몽진(蒙塵)하며 까딱하면 나라를 송두리째 왜적에게 빼앗길 뻔하지 않았던가. 그가 말한 대로 임금노릇 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좀 더 철저하게 대비하고 잘 관리를 했어야만 했다.
임금 노릇 하기 어렵다는 것은 지금 대통령제 아래에 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정치인이 대통령을 꿈꾸면서 언제나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라고 외치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보면 그들의 주장과 달리 자신의 권력 추구에 경도되어 나라를 해치는 경우가 적지않다.
과거에 비해 민도(民度)는 월등하게 높아져 정치인의 웬만한 속임수는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가면 갈수록 이 땅에서 참된 지도자가 되려면 훌륭한 인격과 능력을 갖추고 진정성 있는 태도로 국민을 섬기는자세로 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10 큰그릇
개교 80주년 기념 : 기억 속의 사진 한 장 5
피란학교에서 복교
한국전쟁으로 부산 송도에 피란학교를 운영했던 모교가 1955년 7월 1일 고등학교 본관과 그 부속 시설 전부를 인수 받아 수업을 시작하였다. 그 상징적 모습인 본관 국기 게양대에서 미군이 성조기를 내려 정리하고 용산고 교기를 학생들이 게양하는 모습을 찍은사진이다.
3년여 진행되었던 한국전쟁이 1953년 7월 27일에 휴전협정이 조인되었고, 8월 15일 피란 정부가 서울로 돌아오면서 용산고도 여름방학 기간을 이용해 선발대가 서울로 올라와 본교에 주둔해 있던 미군과 학교 복귀를 협의하여 복교 준비를 마치고 1953년 9월 18일 부터 서울에서 수업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서울에서 수업은 시작하였으나 본교로의 완전한 복귀는 아니었다. 전쟁 중에도 학교 건물은 폭격이나 화재를 당하지 않아 옛 모습을 지키고 있었으나, 미8군 제3철도수송대가 본관 등 학교시설 대다수를 사용하고 있어 학생들은 지금 용산중학교 자리에 있는 목조 건물에서 중·고등학교가 함께 수업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2년여를 중학교 건물에서 수업을 하고, 1955년 7월 1일 본관 등 학교 모든 시설을 미군으로부터 인계받아 본관에서 고등학교 수업을 시작하며 본관 국기 게양대에 걸린 미국 성조기를 내리고, 용산고등학교 교기를 게양하는 순간이 사진으로 남았다.
글 박만흠·29회·편집위원장
동문기고: 노기홍·21회·자유기고가
제7회 총동창회장배 당구 대회 참전기
올해 ‘총동창회장배 당구 대회’는 개교 80주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당구대회인데 모든 총동창회 행사에 참가율이 높은 우리
동기(21회)들이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2팀이 참가하기로 했다.
선수단 구성은 팀당 3명인데 고수들이 뭉친 A팀과 참가에 뜻을 두고 게임을 즐기는 B팀으로 선수단을 짜서 신청하고 참가비도 보냈다.
나는 당구대회에 참가할 실력은 안 되지만 용당회 회장 자격으로 B팀 선수 한 자리를 꿰찼다.
대회장은 우리 용당회 정기 모임 장소인 종각역 MT 당구장이어서 우리들에게는 안방 같은 편안한 장소다.
그러나 대회장 문을 열고 들어가니 많은 인원에 기가 눌린다.
대회 참가팀은 22팀이고 팀당 선수 3명, 진행요원과 응원단을 포함하니 거의 80여 명이 되어 테이블 12대가 있는 당구장이 꽉 찼다. 기수로는 20회가 최고참이며 아들뻘 되는 48회가 막내다.
우리 동기 중에서도 윤 사무총장, 박기석용당회 총무 등이 응원 나와서 사진도 찍어주고 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우리 팀은 대진표 추첨을 동창회에 위임했는데 A팀은 26회, B팀은 29회 A팀과 1차전에서 맞붙게 되었다. 게임 방식은 이름도 거창한 ‘변형 스카치 더블’, 3명의 선수가 각자 5점씩 릴레이로 쳐서 15점을 먼저 뽑는 팀이 이기는 룰이다.
규칙이야 어찌 됐든 공 3개를 잘만 맞히면 된다.
배정받은 테이블로 가서 29회 후배에게 인사받고 가위 바위 보를 이겨서 우리가 선공이다. 우리 팀의 선봉장인 김 프로가 나섰다. 상대 선수가 뿌려준 첫 배치가 운 좋게 쉬운 공으로 왔다. 김프로 실력으로는 99% 맞힐 수 있는 뒤돌리기다. 김 프로가 두툼하게 뒤돌려 치며 키스를 빼고 가볍게 1점을 올리며 첫 공격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아뿔싸 다음 공이 어렵다. 내가 볼 때 평범하게 치면 키스가 보이는 난구다, 그러나 김 프로는 우리 팀의 1장답게 이 난구를 성공시키고 첫 이닝에서 연거푸 3점을 쓸어 담았다. 시작이 아주 좋다. 그러나 후배들의 당구 실력은 장난이 아니었다.
29회 A팀 녀석들은 모두 25점 이상 되는 고수들이 분명했다.
상대 팀의 선봉이 5점을 치고 선수 교체하자 우리 김 프로도 질세라 5점을 채우고 내가 2장으로 들어갔다. 그동안 ‘초보 당구 탈출기’ 를 용당 모임 후기로 연재하며 유튜브로 당구 시스템을 공부하고 정기 모임 시간보다 일찍 나가서 시스템을 연습하여 나름대로 당구 실력을 연마했는데 제3자와 공식적인 경기를 하니 머리가 하얘지며 공부한 시스템이 떠오르지 않는다.
역시 당구는 머리가 아닌 몸이 기억해야 내 것이 되는가 보다. 그러나 다행히 쉬운 공을 몇 번 받아서 간신히 5점을 치고 3장 문 프로한테 바톤을 넘겼다. 상대 팀은 2장이 나머지 점수를 득점하고 3장으로 교체되어 3장끼리 결전이 되었다.
그런데 29회 A팀은 선수 배치에서 고수를 3장으로 배치했는지 괴물이 등장했다. 3장 경기를 관전해 보니 아무리 얇게 맥시멈 회전을 주더라도 모자랄 것 같은데 두꺼운 스핀 샷으로 비틀어 성공시킨다.
내가 치면 못 맞힐 것 같은 난구도 연달아 성공시키는 실력을 보여준다. 29회 A팀의 괴물을 상대로 문 프로가 선전했지만 객관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석패하고 말았다. 우리 팀이 끝나고 들려오는 A팀소식은 참패했단다. 우리 A팀의 3장은 큐도 잡아보지 못하고 패자부활전으로 밀려났다고 한다.
곧 이어 시작된 패자 부활전에서 우리 A팀은 29회 B팀과, 내가 속한 B팀은 막내 48회와 패자 부활전을 치렀는데 우리 A팀은 29회를 가볍게 물리치고 부활해 2차전으로 올라갔고 우리 B팀은 막내팀에게 져서 완전 탈락하는 줄 알았는데 토너먼트 대진 팀 수를 맞추느라 1팀을 승격시키는 추첨에 신의 가호로 당첨되어 패자 부활 2차전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점심을 든든히 먹고 치러진 부활 2차전에서 우리 A팀은 34회와 격돌했고 B팀은 최고 기수 20회 선배와 상대하게 되었다. 20회 선배님들 하고는 같이 학교 다녔기 때문에 우리 응원 나온 친구가 20회 선배님을 알아보고 몸 장난을 치며 반갑게 인사하면서 분위기를 달구는 덕분에 편안하게 경기를 시작했다.
1장인 김 프로와 상대 1장이 비슷하게 5점을 다 치고 2장에게 넘겼다. 나도 운 좋게 좋은 공을 받아 내 몫을 다치고 1점 앞선 상태에서 3장인 문 프로에게 넘겨 주었는데 문 프로가 받는 공은 대부분 난구다. 상대 선수가 치기 어려운 공은 득점을 포기하고 수비 위주로 치는지 문 프로에게 계속 어렵게 놓인다.
문 프로가 쳐야 할 수구는 코너나 큐션에 걸쳐 있고 목적구들은 한쪽에 모여 있다.
역전된 상황이지만 그래도 문 프로가 포기하지 않고 따라갔다.
2점 뒤진 상황에서 문 프로는 어드레스가 부자연스러운 자세에서 난구를 어렵게 성공시켜서 우리 팀의 박수를 받았는데 같이 경기한 20회 선배 왈 문 프로가 샷을 할 때 제2 적구를건드렸다고 한다.
나는 보지 못했는데 부자연스러운 자세에서 샷을 하려다 허리춤에 내려온 셔츠 자락이 공을 건드렸나 보다. 이 공격 득점이 아니라고 선배가 주장하니 문 프로는 항의도 못하고…….
시간이 다 경과되어 득점 수로 승패를 결정해야 하는데 우리 득점 수가 적어서 패하고 말았다. 우리 팀이 옷자락으로 공을 건드린 공격이 유효 득점으로 인정됐다면 그다음 공격이 성공될 수도 있고 후구 공격기회, 승부치기 등으로 승부가 바뀔 수도 있으니까 무효 처리 된 득점이 상당히 아쉬웠다. 섭섭한 생각을 접고 A팀 소식을 알아보니 우리 A팀은 34회를 격파하고 8강(패자 부활이 있으니 10강 정도?)으로 진출했단다.
우리 B팀은 완전 탈락하고 30회와 8강전을 벌이고 있는 A팀 경기의 갤러리가 되었다. 서로 2장까지는 막상막하 점수가 크게 벌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30회가 먼저 3장으로 교체된 후 30회가 경기의흐름을 가져갔다.
우리 팀 2장과 30회 3장의 대결이다. 상대 팀 3장은 몇 이닝을 깻잎 한 장 두께로 아슬아슬하게 빗나가서 득점을 실패하더니 어느 한 이닝에 5점을 순식간에 득점해 버리고 경기를 마무리 한다.
우리 팀의 3장은 큐를 잡아보지 못하고 끝났다. 한 이닝에 끝내버린 30회 3장은 당구장 사장님이시란다. 아마도 당구 지수가 35점은 되지 않을까 싶은데 현직 당구장 사장님을 어떻게 이길 수 있나? 모두 탈락하여끝까지 남아서 고수들의 진기 명기를 볼 수있는 기회를 접고 동기 일행과 대회장을 떠나게 되어 아쉬움이 크다.
당구장 사장님 같은 고수들을 상대로 8강까지 올라간 우리 A팀은 정말 잘 싸웠고 참가하는데 의의를 가졌던 B팀도 3번이나 경기를 치르며 괴물을 상대했으니 나름대로 제 몫을 톡톡히 했다. 2팀이나 참가하여 후배들한테 ‘참여하여 즐기는 당구’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준 것 같아 뿌듯하다.
총동창회에서 주최하는 당구대회는 매년 참가할 생각이고 내년엔 당구 시스템을 기본적인 Five & Half System은 물론 튜즐 시스템 정도도 머리가 아닌 몸으로 반응하도록 마스터 해서 후배들에게 도전해 보자
큰그릇 13
동문기고: 김호림·17회·수필가
헛다리
5월 끝자락 비 갠 흐린 날, 육십여 명의 우산을 든 시니어들이 상춘객이 되었다. 올해는 예순과 여든이 가끔 오버랩이 되는 해다. 공교롭게도 우리의 연수가 산수(傘壽)의 나이에 접어들자, 고교 개교 80주년과 졸업60주년이 되었다. 60여 명이 참가한 남이섬 봄 소풍이그 기념행사의 하나다.
섬의 중앙 잣나무길을 따라 한참을 걷다가 메타세쿼이아길로 접어들었다. 그곳 메타 나루에서 모터보트로 호수의 물살을 가르기도 하고, 강변 오솔길을 따라 섬가장자리를 한가히 거닐기도 하였다.
낙엽 지는 가을이면 은행나무길도 한번 걸어 보고 싶은 운치가 있는 곳이다. 숲 여기저기에서 야생 토끼들이 옹기종기 평온하게 풀을 뜯고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에 보는 아늑한 달나라 그림이다. 포식자가 없어서인지 몸짓도 부요해 보인다.
섬 아래쪽의 순례를 끝내자, 강변에 놓인 나무다리가 시선을 잡는다. 그런데 나무 팻말에 적힌 이름이 섬뜩하다. ‘헛다리’라는 문구가 출입을 막는다. 순간 둔탁한 물 체에 머리를 부딪힌 듯 멍하다.
돌아보면 험한 세상을 살아가려고 얼마나 숱한 헛수고로 세월을 지나쳤을까.
헛다리란 대상을 잘못짚어 아무 성과 없이 헛걸음하거나 일을 그르치는 착각과 헛수고를 뜻한다,
그때는 그런 줄도 모른 채 앞만 보고 달려갔으니. 그 팻말은 더 이상 어리석지 말라는 경고문이자, 이제는 현자가 되라는
아포리즘으로 보인다.
시각을 달리해 보자. 다리 이름은 이 땅에서 모든 것을 누린 자의 허무와 허탈감의 진솔한 표현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솔로몬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말로 지혜서인 전도서를시작한다.
그는 이 땅에서 아무도 누려보지 못했던 영광인 지혜.
부. 권력, 여인을 가졌다. 이러한 축복이 오히려 영적 타락과 덧없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늦은 깨달음이었다.
영원한 진리 곧 창조주를 떠난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는 사실을 깨우치기 위한 고백이었으리라. 부질없는 욕망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군상들에게, 혹 ‘헛다리’란 상징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다리는 서로 다른 공간이나 시간, 마음을 잇는 연결과 소통의 매개체이다. 또한 장애물을 건너 목적지로 나아가는 통로인 극복과 이동의 도구 역할도 한다. ‘사이먼과 가펑클’의 팝송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를 무척 좋아했던 때가 있었다. 험한 세상의 거센 물살을 건너지 못해 고통받는 타인을 향해 밟고 지나갈 수 있는 다리가 되어주겠다는 마음이 얼마나 따뜻한 위로인가.
다리란 헛수고의 질곡에서 벗어나게 하는 도구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저승에 이르는 강이 다섯 곳이나 흐른다고 전한다.
그중 ‘비통’의 강은 배를 타고, 나머지는 혼자서 건너야 하는 강이다. 다리도 없는 강 건너기가 얼마나 외로운 발걸음이었을까.
더러는 숙명적인 만남의 장소이기도 하다. 오래전 피렌체 여행에서 단테가 그의 영원한 연인 베아트리체를 처음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 아르노강의 ‘베키오 다리’를 건넌 적이 있었다.
《신곡》에서 베아트리체는 단테를 천국으로 인도하여 신성한 빛과 진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구원의 인도자 역할을 담당한다.
놓친 곳도 있었다. ‘거꾸로 자라는 나무’를 보았더라면 좋았을 터인데, 미리 알지 못했다. 섬 중앙 ‘도깨비동산(Goblin Forest)’에 위치한 독특한 나무다.
뿌리가 하늘을 향하고 줄기가 땅을 향하도록 거꾸로 매달아 놓은 이색적인 조형물이다. 유쾌한 예술적 상상력과 역발
상을 보여주는 작품을 느끼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헛다리’의 상징들 모두가 양면성과 역발상을 산출해낼 수 있는 도구로 보였다. 남은 시간이나마 즐거운 역발상을 하며 자유인으로 느리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할수 있으면 작은 외나무다리라도 되고 싶다
이제 이 땅의 언덕을 내려올 연수이다.
올라갈 때보다 더 힘들고 어려울지도 모른다.
행선지(行先地)가 보이지 않는 낯선 길이기 때문이다.
이 길에서도 헛수고를되풀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큰그릇 15
형제결연, 장학기금 협찬 동문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학력증진비로 장학금 지원 지속
2026 형제결연 장학사업 참여 안내
•2026년 신규 1계좌 180만 원(분납 가능)
•기부금 영수증 발급 가능
•국민은행 055-01-0450-253 (재)용산동문장학회
해외동문은 개인 수표 이용(Pay to: Yongsan HighSchool Alumni Scholarship Foundation 기재)
모교발전금 참여 안내
•국민은행 055-25-0002-520 (재)용산동문장학회
•기부금 영수증 발급 가능
•소액(1만 원 이상) 참여도 환영합니다.
모교발전금 모금 지속 2026.5.16~2026.6.15
8회 이범재 1십만 원(합계 17,700,000원)
19회 이호성 2십만 원(합계 31,400,000원)
54회 조철현 5만 원
큰그릇 17
행사소식
12회 동창회 봄 나들이
12회 동창회 봄 나들이 행사가 지난 5월 19일 화요일 43명 회원이참가한 가운데 이촌동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을 둘러보는 행사로 진행되었다.
이날 참석 동문은 전시 중인 국보급 자료와 특별전으로 ‘각(角)진 백자 이야기’ 등을 둘러본 후 공덕역 인근 부산갈매기식당에서 오찬을 함께하고 다음 모임에서 만날 것을 다짐하였다
회장 김인배 010-7720-2812
총무이사 류명현 010-3723-5556
15회 동창회 2026년 봄 소풍
15회 동창회에서 봄 소풍을 지난 5월 21일 64명이 참가한 가운데 논산 탑정호 일원으로 다녀왔다.
이번 봄 소풍은 논산 관촉사 관람 후 탑정호수 출렁다리를 건너 커피점에서 즐거운 시간을 만들었다.
상경 버스에서는 윤상필 동기가 지난 각종 모임 영상을 준비해 반가운 옛 기억을 돌아보는 즐거운 호사를 누렸다.
회장 박근주 010-5053-3595
총무이사 전영렬 010-3320-2472
17회 동창회 봄 소풍
17회 동창회에서 봄 소풍을 지난 5월 27일 63명 동기 및 가족이 참가한 가운데 춘천시 남산면에 있는 나미나라공회국(남이섬)으로 다녀왔다.
이날 참석 회원 및 가족들은 국내 최대 규모의 민간정원으로 조성된 문화 예술의 섬 남이섬 곳곳을 돌아보고 남이섬 내 한식당에서 우렁된장 쌈밥으로 오찬을 함께하며 즐거운 시간을 만들었다
회장 김윤일 010-5323-0371
총무이사 김윤진 010-8970-2165
20회 2026년 체육대회
20회 동창회에서 2026년 체육대회 행사를 지난 6월 6일 토요일 83명 회원 및 가족이 참가한 가운데 우면산 등산으로 진행했다.
이날 참석회원 및 가족들은 사당역 3번 출구를 출발하여 우면산 둘레길을 걷고 쉼터에서 음료와 간식을 먹으며 숲속 정기를 나누고 예술의 전당 인근 미진 식당에서 미역국 정찬과 숯불구이로 화합의 시간을 만들었다
회장 박영우 010-2838-9039
총무이사 유재성 010-4293-0955
용한회 2분기 정기모임
강동구·송파구·하남시 지역 동문 친목모임인 용한회 2분기 정기모임이 지난 5월 19일 화요일 오후 6시 30분 가락동 더푸른바다횟집에서 개최되었다.
이날 모임에는 전형식(16회) 옥광빈(22회) 두 동문이 새롭게 참가하여 환영의 박수를 받았고, 참석 회원들은 그간 안부와 함께 건강을 기원하는 힘찬 건배로 다음 만남을 약속했다
회장 고동근(14회) 010-8772-7269
총무 한재호(41회) 010-3356-6770
용성회 창립총회
용성회(성남시 동문회) 창립총회가 지난 5월 18일 월요일 오후 6시30분 분당 서현동 만강홍 중식당에서 8회 엄기염 동문부터 45회 박정섭 동문까지 50여 명의 동문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되었다.
이날 참석 회원은 이정로(27회) 동문 사회로 경과보고에 이어 용성회 회칙을 의결하고 초대 회장은 다음 모임에서 선임하기로 하였다.
이어 이상부(27회) 전총회장 및 신상진(27회) 성남시장 축사 후 만찬을 함께하며 선후배 간 정겹고 반가운 모임을 만들자고 다짐하였다
[모교소식]
용산! 칭화대부고 또 꺾고 우승했다!
2026 Jr.NBA 국제 챔피언십 초청대회
모교 농구부 후배들이 지난 6월 19일 금요일 오후 7시 30분 중국 장쑤성 쑤저우시에서 열린 2026 Jr.NBA 국제 챔피언십 초청대회 결승전에서 중국 칭화대부속고등학교를 만나 85:73으로 승리하여 작년 싱가폴 NBA RSI대회에 이어 칭화대부속고를 2년 연속으로 85:73으로 제압하고 아시아 정상 자리에 올랐다.
지난 15일 상해 홍차오 국제공항에 도착한 모교 운동부를 상해 동문회(회장 이상철·32회)에서 환영 현수막을 들고 영접하며 응원했으며 16일 첫 경기에서 난적 호주 로빈 세컨더리 컬리지를 93:90를 꺾으며 산뜻한 출발을 한 모교는 이어 난징 제9고와 이빈 제1고를 106:70, 81:60으로 차례로 완파하고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전에서는 작년 싱가폴 대회 패배를 설욕하려는 칭화대부속고를 만나 신장 2미터가 넘는 선수가 즐비한 제공권 싸움의 불리함을 이겨내고 이세범(44회) 정선규(49회) 코치 지휘에 따라 팀 주장 곽건우(3학년)가 3학년 이승준 이서준 조강인, 2학년 박범진 박범윤 박태준,1학년 남현우 이승민 김준영 차정윤 이우주 조하람 등 선수 전원이 함께 힘을 합쳐 노력한 결과 지난해에 이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영광을 차지했다.(주장 김민기(3학년·연령제한) 배대범(2학년·부상)
은 불참)
대회 개인상으로 매 경기 활약한 곽건우가 MVP 또 팀을 우승으로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이세범 코치가 BEST COACH로 선정되었고 대회 베스트 5에는 곽건우 박태준이 이름을 올렸다.
이번 대회 참가 모교 농구부를 총동창회와 삼농회(34회 최광호 회장 외 회원) 상해동문회(강종일(25회) 서동석(29회) 이상철(32회) 백승윤(34회))에서 후원하여 승리를 일구는데 힘을 보탰다.
큰그릇 18
시집 ‘학 울음’ 펴내
류종민(11회) 동문
서울대 미술대학 및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학장을 지낸 류종민(11회·중앙대 명예교수)동문이 2002년 1월 첫 시집 ‘천강의 달 그림자’ 이후 여덟 번째 시집인 ‘학 울음’을 2025년 5월 펴냈다.
류 동문은 2024년 12월 26일일붕 서경보 박사가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장 시절 신인 작가들을 발굴하여 양성하고자 제
정한 상인 일붕문학상을 시집 ‘영혼의 도장’으로 시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어 수상했다.
이번 시집 ‘학 울음’에 실린 작품에서는 순리에 순응하지 않는 시끄러운 세상에 대한 경고와 성찰, 그리고 시인 특유의 내면 깊은 울림으로 형상화된 깨달음의 시학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인의 말을 통해 류 동문은 “조용한 세상이 시끄러운 것은 순리가아닌 것이 옳다는 신념으로 소음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 학 울음은인간이 그리워하는 한 소리의 성찰이다.
부디 이 소리가 조용한 파문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강조한다.
‘수학박사의 실전 비즈니스 탐험기’ 펴내
박정호(39회) 동문
박정호(39회) 동문은 연세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수치해석으로 석사와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KT에 입사하여 30여 년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신사업 기획과 발굴 업무에 종사한 신사업 전문가다.
특히, IPTV사업, 모바일 TV(이동단말 기반) 실감형미디어 (VR/AR/XR 기반) 사업을 모두 다 경험한 국내 유일한 전문가로 AI 기반 학생 맞춤형 교수학습플랫폼 사업을 주도적으로 런칭하여, 국내 최초로 학교 현장에 서비스를 제공한 경험을 지니고 있다.
박 동문은 책에서 수학이라는 학문이 일반 회사, 그것도 통신을 중심으로 한 신사업 기획/발굴하는 부서에서 일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고 무엇에 장점이 되었는지를 먼저 수학이라는 학문을 왜 공부하게 되었는지부터 시작해 비즈니스에 활용하는 핵심 방법과 프로세스, 신사업 스토리와 미래에 대해 자세히 편안하게 읽을 수 있도록 정리하였
고, “책을 읽는 모든 분들이 본인의 자리에서 새로운 도전을 통해 멋진 결실을 맺어나가기를 바란다”라고 서문에서 밝혔다
18 큰그릇
상해동문회(귀임자) 및 원주동문회 합동 동문 행사
상해에서 활동하다 귀국한 동문 모임과 원주 동문회가 합동 야유회 행사가 지난 6월 6일부터 1박 2일로 평창 뇌운계곡에 있는 썬 밸리에서 20여 명 회원이 참가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참석 회원들은 첫날 평창군 발왕산 케이블카 탑승 후 썬 밸리 펜션에서 만찬을 함께하며 마오타이를 포함한 중국 명주와 함께 기억에 남을 흥겨운 만찬을 함께하였다.
7일 아침에는 황태해장국으로 전날 과음한 속을 달래고 인근 뇌운계곡 산책에 이어 방림메밀막국수에서 점심식사 후 해산하였다. 두 모임은 정기적인 교류를 갖기로 약속하였으며 헤어지기 전 상해동문회에서는 내년부터 동창회에 도움이 될 의미 있는 행사를 만들어 보자고 다짐하였다.
상해동문회 회장 최호경(30회) 010-5325-1778 총무 김용환(38회) 010-5091-5448
원주동문회 회장 박윤후(27회) 010-3191-9101 총무 김원만(48회) 010-2311-2272
22회 졸업 55주년 기념식 및 2026 정기총회
22회 동창회는 지난해 정기총회에서, 향후 총회는 봄에, 가을에는 야외행사를 갖기로 정하고, 졸업 55주년 기념식 및 2026 정기총회를 5월 15일 낮 12시 더 리버사이드호텔에서 개최하였다.
식전 행사로 장수사진 촬영에 이어 1부 정기총회에서는 결산 승인 및 이정로 현 회장 연임 의결, 스승의 날을 맞아 두 분 담임선생님께 카네이션 선물, 케이크 커팅, 은사님 축사에 이어 2부 행사로 은사님 건배사, 오찬 후 명사 초청 강의, 행운권 추첨, 전체 기념촬영, 교가 제창 순으로 진행하며 즐거운 하루를 만들었다.
회장 이정로 010-8731-0705 총무이사 최세영 010-5266-5078
식전 행사로 진행된 장수사진 촬영 (10일 전부터 스튜디오에서 찍은 사진 포함 최상의 모습을 담아 액자 제작 후달 전 예정)
[행사일정 안내]
■개교 80주년 기념 음악회
9.9(수) 19:00 서울시교육청 대강당
■바둑대회
10.9(금) 09:00 모교강당
■ 테니스대회
10.9(금) 09:00 경인교대 테니스장
■ 골프대회
10월 마지막주 장소 미정
■ 정기총회
11.16(월) 18:30 롯데호텔 2층 크리스탈볼룸
총동창회 연회비제(5만 원) 참여는
총동창회 운영을 건실하게 하는 최선책입니다
입금동문수: 1위 27회 참여율: 1위 12회 총액: 1위 11회
총동창회 연회비 보내주시면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정성스럽게 보내주시는 총동창회 연회비는 아래와 같이 동문 여러분을 위해 사용됩니다.
동기회비와 별도로 총동창회 연회비가 필요합니다.
1. 동문 친목강화를 위한 행사에 사용됩니다.
등산대회, 바둑대회, 테니스대회, 골프대회, 농구대회 지원, 정기총회, 이사회 등 개최 및 지원
2. 동문 연결 및 정보 교환에 사용됩니다.
월간 ‘큰그릇’ 발간으로 동문소식 전달 및 동문상호 연결
‘큰그릇’ e-book 및 스마트폰 앱으로 서비스 제공
총동창회 홈페이지(http://www.yongsango.net) 유지 관리
‘큰그릇’ e-book 및 스마트폰 앱으로 서비스 제공
총동창회 홈페이지(http://www.yongsango.net) 유지 관리
3. 모교 지원 및 발전 사업 추진
장학재단 사업(장학금 지급, 우수학생 해외연수) 외 교사 격려
학생 특별활동 등 각종 행사 지원
4. 총동창회 사무국 운영
동문들에게 행정 서비스. 인건비, 통신비 등 용산고등학교동창회 발전과 모교 후원을 위해 사용되는 총동창회 연회비 납부에 동문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후원을 기대합니다.
연회비 납부
국민은행 055237-04-005315 용산고등학교 동칭회(성명, 횟수 기재 바랍니다.)
여러분이 정성스럽게 보내주시는 총동창회 연회비는 아래와 같이 동문 여러분을 위해 사용됩니다.
동기회비와 별도로 총동창회 연회비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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