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대가 만난 사람 2. 옥산 옥빛골권역 이경희(42) 사무장
의성으로 귀촌해온 구미새댁 옥산에서 살 만 하니껴!
꽃샘바람이 세차게 불던 날, 10년간의 구미생활을 접고 2010년 11월에 의성 옥산으로 귀촌하여 현재 옥빛골 권역 사무장으로 일하고 있는 이경희(42) 사무장을 만나기 위해 안계에서 의성 가는 버스를 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평소보다 손님이 어찌나 많은지 예정시간 보다 늦게 의성에 도착하여 옥산으로 가는 10시 30분차를 놓치고 말았다. 1시간여의 추운 기다림 끝에 11시 30분차를 타고 옥산면사무소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경희 사무장을 만나 입암에서 점심을 먹고 옥빛골권역 사무실에서 작약꽃차로 믹스커피에 중독 된 목을 달래며 본격적인 인터뷰에 들어갔다.
귀촌을 생각하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나요?
결혼을 하고 구미에서 살았는데 신랑은 LG계열사에 다니고 있고 난 초등학교 방과 후 강사를 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첫째, 둘째 아이 어린이집 교육비가 한 달에 100만원씩이나 들어갔지만 막상 아이들은 행복해 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첫째는 낯가림 있어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했고요. 이렇게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는 도시 환경 속에서 앞으로도 계속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막내가 7살이 되는 해에 농촌으로 귀촌을 해서 시골학교에 입학을 시킨다는 나름의 계획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린 자녀를 둔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도시에서의 경쟁에 밀리지 않게 하기 위해 더 많은 투자와 더 많은 교육을 시키려고 하는데 반대로 아이들을 위해서 귀촌을 생각하는 경우는 드문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만으로 귀촌을 하기는 쉽지 않는데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예를 들면 첫 아이가 낯가림이 심해서 왕따를 당했거나 성적 때문에 안 좋은 일 아니면 본인이나 신랑이 도시에서의 안 좋은 경험, 생태적인 삶의 실천 등과 같은 특별한 이유?
구미에 살면서 특별히 문제가 될 만한 일은 없었습니다. 다른 것은 없고 그냥 아이들을 위해서 귀촌을 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옥산에는 연고가 있었습니까?
신랑 고향은 해평이고 제 고향은 대구 성서입니다. 신랑과 저의 직접적인 연고는 없지만 손위 시누이가 옥산에 오래 전에 귀농을 해서 사과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누이 집에 화재가 나서 새집을 짓고 집들이 할 때 옥산에 처음 다녀가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준비하고 언제 귀촌을 했습니까?
옥산에 있는 시누이 집에 다녀가고 얼마 후 철학관에 가서 손금을 보는데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 과일 나무가 있는 땅을 사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운명처럼 느껴졌습니다. 바로 옥산에 있는 시누이에게 조그마한 과수원을 알아 봐 달라고 부탁을 해서 460평짜리 과수원을 2009년에 매입하게 되었습니다. 과수원에 있는 사과 고목을 다 뽑아내고 어린 사과나무 묘목을 심어 주말마다 가꾸기 시작했습니다. 옆에 살면서 제대로 관리를 하지 못하니 병이 들고 죽기도 하더군요. 날씨도 덥고 몸도 지친 7월 말 어느 날 신랑과 근처에 있는 옥전 초등학교에 무심코 바람을 쐬러 갔습니다. 방학인데도 불구하고 선생님 한분과 아이들이 나무 그늘 아래에서 기타를 치고 있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과 몇 가지 대화를 나누다가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 문제에 대해 물어보니 유치원선생님과 직접 상담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셔서 유치원 선생님을 찾아뵙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아이들을 위해서 당장 이사를 오는 것이 좋겠다는 결심이 서게 되었습니다. 남편도 동의를 하여 마을 이장님을 찾아뵙고 집 짓는 것을 상의하고 과수원 터에다 집을 지었습니다. 9월에 이사 날을 잡아 놓았는데 시어른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늦추어져서 2010년 11월 17일 이사를 하였습니다. 이때 큰 딸이 7살 이었는데 원래 계획보다 몇 년 빠르게 귀촌을 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귀촌 희망자들이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주저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어떻게 해결하고 있습니까?
남편이 출퇴근을 하면서 구미 직장을 계속 다니고 있어 생활에는 어려움이 없습니다. 저는 귀촌을 한 다음해부터 옥전초등학교에서 돌봄 교사를 했었고 옥빛골권역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다가 2013년부터 주위에서 권유를 해서 현재 옥빛골권역 사무장으로 일하면서 월급을 받고 있습니다.
귀촌 전과 귀촌 후의 차이가 있다면?
아이들의 경우 잔병치레를 많이 해서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병원에 갔습니다. 농촌에는 병원이 가까이 있지 않아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귀촌을 하고 신기하게 잔병이 싹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적응도 잘하고 자존감이 많이 높아졌습니다. 남편의 경우 구미에 있을 때는 술을 많이 마셨는데 귀촌을 하고 출퇴근을 해서인지 지금은 술을 입에 대지 않습니다. 저의 경우 도시에서는 짜여 진 틀에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내가 맞추어 가는 삶을 살았는데 농촌에 와서는 내가 만들어 가는 삶을 사는 것이 가장 큰 차이 인 것 같습니다.
귀촌생활에서 어려움을 느낀 적은 없습니까?
저희는 농사를 전업으로 하는 귀농이 아니라 생활공간을 농촌으로 옮긴 귀촌이기 때문에 특별히 어려움을 느낀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지역의 미래를 놓고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과의 생각차이 때문에 가끔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까지는 아이들을 위해 농촌학교가 좋기는 하지만 중고등학교 교육은 좀 더 전문적인 교육이 필요한 것 같아 앞으로 솔직히 걱정이 됩니다.
아이들과 본인이 느끼는 농촌 생활의 좋은 점이 있다면?
아이들이 스쿨버스를 기다리면서 텃밭에서 키운 딸기며 방울토마토 등을 따 먹을 때 너무 좋아라 해요. 또 자전거와 인라인을 마음껏 탈 수 있어서도 좋다고 합니다. 저는 농촌에 와서 교육을 받는 것이 너무 좋아요. 왜냐하면 교육을 받을 때마다 꿈이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시간이 나면 꽃차도 배우고 문화관광 해설사 등 여러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아침에 새소리 등 자연이 주는 선물을 아이들과 함께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 합니다. 가장 인상적인 기억은 노란 결명자 꽃입니다. 도시에서는 열매만 만나지 과정을 만날 수 없잖아요! 결명자 씨앗에서 싹이 나서 자라고 노란색 꽃을 피울 때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자연을 느끼고 꽃을 대하는 이런 감성은 도시에서 자란 사람에게는 잘 생기지 않는 감성인데 의외입니다?
태어난 곳은 성서이지만 김천 지레에 있는 외갓집에서 초등학교 들어가지 전에 동생과 같이 살았고 방학 때도 빠짐없이 갔습니다. 3살 많은 외삼촌이 우리를 데리고 놀았는데 수박을 서리해 와서 바위 위에서 먹었던 일도 기억이 나고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여름이 되면 하드장사가 일주일에 한번 씩 마을에 왔는데 마늘 다섯 통을 주면 하드 하나를 바꿔 주었거든요. 마늘 다섯 통을 들고 그 하드 아저씨를 눈 빠지게 기다렸습니다. 마늘이 없을 때는 비료 포대로 바꿔 먹었는데 한번은 비료포대가 없어 비료포대로 만든 부채를 들고 갔는데 아저씨가 하드로 바꿔 주시더라구요.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어른이 되어 생각하니 너무 아름다운 추억들이 많았습니다.(이 이야기를 듣고 난 무릎을 쳤다. 귀촌의 배경에는 이경희 사무장이 어린 시절 경험했던 시골 외갓집의 아름다운 추억을 아이들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작용한 것이라고...)
앞으로 꿈이 있다면?
현재 꽃차를 배우고 문화관광해설을 배우고 있습니다. 배운 것을 활용하여 의성 문화와 연결한 체험과 꽃차를 만드는 체험교육장을 직접 운영하는 것이 앞으로의 꿈입니다. 남편이 고맙게도 내 꿈을 도와주기 위해 대형면허증을 따 놓았답니다.
통계에 의하면 2013년 의성군 귀촌세대는 전년도에 비해 110% 늘어난 295세대 492명이라고 한다. 참고로 필자도 2003년에 귀촌을 하였다. 당시에는 귀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은 상태라 아이들 교육 환경이 나쁜 농촌으로 왜 들어갔느냐며 걱정하는 사람이 많았다. 나는 오히려 아이들 교육 때문에 농촌으로 들어갔다고 말하면 상대방은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나는 이렇게 추가 설명을 했다. “수학문제 하나 더 풀고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는 교육은 도시가 좋습니다. 그러나 온전한 한 인간이 되기 위한 전인교육이라면 도시보다 농촌이 휠 씬 더 좋습니다.” 사회인으로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능지수(IQ), 감성지수(EQ), 창의력지수(CQ), 도덕지수(MQ), 역경지수(AQ), 사회성지수(SQ) 여섯 가지의 지수가 필요 하다고 한다. 자녀들의 지능지수(IQ) 하나를 높이기 위해 부모들은 아이들의 다섯 가지의 지수를 죽이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녀들의 성적만 크게 보이고 자녀들의 추억은 보이지 않는 시대! 자녀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주기 위해 귀촌을 실천했고 농촌생활을 통해 자신의 꿈을 건강하게 키워가고 있는 이경희 사무장을 통해 삶의 진정한 가치와 행복을 생각하게 된다.
- '종대가 만난 사람'은 의성군민신문 오피니언란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첫댓글 좋아요ᆞ 꽃 차 한번 마시고도 싶고요
작약꽃차 독특한 맛이더라구요^^
꽃 차가 독은 없을까?
마셨는데 아직 살아 있습니다^^
송국장님 아직 살아 있네.... 이원걸!
총장님 잘 지내시죠^^
@송국장 ㅎㅎㅎㅎㅎㅎㅎㅎㅎ 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