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4,월화산문(65)/잘 죽기 위한 깨우침/김용원
애초 경험이 별로 없는 우리 같은 초짜들에게는 무리한 산행 코스였다. 산은 가파랗고, 산길은 낙엽이 쌓여 있어 바닥의 음흉한 속셈을 알 수 없었다. 따라서 내려올 때는 연신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러다 허방을 밟아 몸이 하늘로 붕 뜨는 듯싶더니 뭔가 딱딱한 물체가 내 오른쪽 광대뼈 주위를 때리면서 코에서 익은 번데기 냄새가 났다. 몇 미터만 내려가면 낭떠러지인데 몸은 대책 없이 뒹굴어 내려갔다. 나로선 대책이 없어 몸을 또르르 말고 가는 데까지 가기로 했다. 어느 순간 굴러가던 몸뚱이가 멈췄다. 다행히 정신은 멀쩡했다. 정수리를 찍혔지 싶은데, 뇌진탕 정도의 충격은 아닌 것 같았다. 안경은 박살났고, 얼굴에서는 피가 흘러 입으로 들어와 간간짭짤했다. 어쨌든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었거나 더 큰 부상을 입지 않은 것만도 천만다행이었다.
순간의 실족이 나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을 괴롭게 만들고 말았다. 동행인들 모두에게 심려를 끼쳤고, 일과계획에도 차질이 있었다. 그중에는 그날 다른 행사에 참여해야만 했던 현직 국회의원도 있었는데, 그냥 갈 수 없었던지 기다렸다가 위롯말을 남기느라 시간에 쫓겼다고 한다.
여기서 나는 아주 값진 교훈을 얻었다. 실족은 순간이고 후유증은 긴 고통이라는 것. 그러고 보니 나 자신도 그랬고, 주위를 둘러봄에 순간의 실족으로 엄청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많이도 있었다. 주식으로 재산을 날린 사람도 있고, 남의 빚보증을 잘못 섰다가 길거리에 나앉은 사람도 있었다. 남의 여자 눈독들였다가 그것이 이혼으로 이어지고, 가정이 파탄나면서 말년을 힘들게 사는 사람도 있다. 어떤 이는 노름으로, 어떤 이는 마약으로 패가망신을 했다. 또는 음주 운전을 하다 교통사고를 일으켜 불구가 된 사람도 있다.
그날의 내 실족도 따져보면 이유가 있었다. 다시 말하면 실족의 원인제공자는 바로 나였다. 다른 산행인들과 떨어져 난 체하며 앞서갔던 것이 첫 번째 잘못이었고, 다음은 시원한 막걸리 한잔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던 것이 또 하나의 실족 원인이었다. 또한 신바람이 나서 속력을 내어 뛰어내려오다시피 한 것도 잘못이요, 앞에 주저앉은 사람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비켜가려 했던 것도 원인이 되었다. 그 모든 것은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어쨌든 지금까지는 잘 지내왔다. 아니, 잘 늙어왔다. 남은 앞날, 죽을 그날까지 큰 탈 없이 온전히 살려면 그날의 실족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하겠다. 무엇보다도 서둘지 말아야 한다. 나이에 맞지 않게 촐랑대지 말고 나이에 맞지 않게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 남에게 산을 잘타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 산다람쥐 흉내를 내다보면 그날 꼴을 당하기 십상이다. 남보다 빨리 내려가서 산을 아주 잘 탄다는 칭찬을 받고 뒤늦게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마치 승리자처럼 헤헤거리며 막걸리를 들이키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욕심을 부리다 보면 그 꼴을 당하기 마련이다. 잘 살아왔으니 이제는 잘 죽기 위한 짧은 앞길 마련을 위해 그날을 떠올려 되씹어봤다.
/어슬렁#산행#욕심#패가망신#
첫댓글 이제 남은건 잘죽기가
숙제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