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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8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진실-국정원1차장 홍장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3인, 국회에서 선출하는 3인,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 등 총 9인으로 구성되는 독립된 합의제 헌법기관이며, 위원의 임기는 6년입니다.
위원은 국회의 인사청문을 거쳐 임명·선출 또는 지명하여야 하며, 위원장과 상임위원은 위원 중에서 호선합니다.
위원장 : 노태악
상임위원 : 김필곤
위원 : 김창보 이승택 정은숙 조병현 조성대 박순영 남래진
위원회는 위원장, 상임위원 그리고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위원장은 상근을 하지 않고 국무위원급인 상임위원이 상근을 하며 위원장을 보좌하고, 그의 명을 받아 사무처를 감독하며,
위원회에 사무처와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를 두고 있습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관리 실무업무는 사무총장이 담당한다.
선관위 사무총장 김용빈이다.
김용빈사무총장은 1959년 11월 13일 경기도 포천 출생. 1979년 중경고등학교를 졸업,
1979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79학번)에 입학,
1984년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
1987년 사법연수원을 제16기로 수료,
1987년 5월 30일 육군 군법무관으로 임관,
1990년 2월 28일 중위로 전역.
1990년 3월 판사로 임용되어 이후 30여년간 인천지방법원 판사,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춘천지방법원 영월지원장,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서울서부지방법원 수석부장판사,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춘천지방법원장 등의 보직을 거쳤다.
윤석열은 2022년5월10일 20대 대통령에 취임후,
2023년 7월26일 서울대학교 법학과 동기생 김용빈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에 임명하였다.
김용빈은 윤석열 대통령과는 서울대 법대 동기(79학번)다.
김용빈이 윤 대통령의 대학 동기인 탓에 선관위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한다는 우려가 야권으로부터 선거중립성에 우려가 나왔었지요.
윤석열은 20대 대통령선거에서 중앙선관위로부터 0.73%차이로 이겨 당선증을 받았으며, 제8회 2022년 6월 1일에 치러진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집권 여당 국민의힘의 압승, 야당 더불어민주당의 참패로 끝났다.
그러나 22대 2024.4.10. 치러진 국회의원선거에서
국민의힘 108석
민주당 175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진보당 1석
새로운미래 1석
총300석의 의석 중 여당 국민의힘은 108석, 야당은 192석으로 참패하였다.
윤석열은 선거에서 참패하였으면 국정기조를 바꾸고 야당과 협치를 해야 국정이 굴러가는데 오직 고집불통으로 통치하다가, 말도 않되는 선관리위원회의 부정선거를 빌미로 쿠테타를 감행하여 실패, 반국가 내란사범 우두머리가 되어 공수처에 체포되여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였다.
윤석열은 서울대 동기동창을 선거사령탑 선관위 사무총장으로 지명하여 않혀 놓았으면서도 적반하장으로 쿠테타를 일으키고 대한민국을 부정선거라는 온갖 궤변으로 나라를 혼란으로 몰고 있다.
☛12.3내란 중앙선관위 침탈 장악시도
윤석열은 대통령에 당선된후 2022년5월10일 이후 검찰과 경찰을 동원하여 165건의 압수수생이 이루어졌다.
윤석열 정부 들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수사기관 압수수색이 모두 30차례 진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 선거 관련 정보와 시스템을 관리하는 정보관리국 산하 조직에 대한 압수수색이 12차례나 있었다.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 대통령은 “선관위는 영장에 의한 압수수색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군 병력을 보내 중앙선관위 서버를 통째로 뜯어가려 했는데, 윤 대통령의 거짓말이 다시 한 번 확인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장악 시도와 관련해 “국방장관에게 선관위 전산시스템을 점검하도록 지시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검찰이 밝힌 수사 내용은 적나라하다. 민간인인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사전 모의를 통해 선관위 전산 서버실을 장악할 것을 지시했고, 문상호 당시 정보사령관은 이것이 윤 대통령 지시라고 언급했다. 선관위 직원 체포조로 동원된 정보사 요원 36명은 송곳·안대·포승줄·야구방망이·망치 등을 준비했다.
12·3 내란사태 수사 과정에서 중앙선관위 직원을 케이블타이와 포승줄 등으로 묶은 뒤 망치와 야구 배트, 송곳, 작두 등으로 고문해 부정선거를 ‘실토’하게 하려 했다는 정황도 드러난 바 있다.
12.3 비상계엄이 성공하였다면 꿈찍한 고문이 벌어졌을 것이다.
선관위 직원들의 거짓 자백을 유도하기 위해 작두까지 준비하다니 손목을 자르려고 한것인가, 목을 베려고 한것인가 상상 할수도 없네.
고문도구로 작두까지 준비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물리력을 행사하면 다 불게 돼 있다"고 말한 걸로 전해집니다.
21세기 선진 대한민국에 이런나라가 되면 않되지.
어디 후진국 아프리카도 아니고 말이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법원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할 만한 부정선거 근거가 없다는 것을 수사 전문가인 윤 대통령이 몰랐을 리가 없다. 결국 총선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극우 세력을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야당이 제1 당인 국회 해산을 통해 장기적인 국정 장악을 위한 친위 쿠데타를 한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의‘친위 쿠데타’는 실패로 끝났다.
친위 쿠데타를 일으킬만한 명분이 부족했다.
나라가 위태로운 상황도 아니고 오직 자신과 김건희의 비리를 덮기위해 친위쿠테타를 감행한 것이 아닌가 말이다.
명분을 삼기위해 윤석열은 부정선거를 빌미로 쿠테타를 일으켰으나 친위쿠테타가 실패하여 반국가 내란수괴가 된거여.
윤석열은 적반하장으로 반국가세력을 처단한다고 계엄포고령에 명시하였는데 그가 반국가내란사범이여.
☞국가정보원 제1차장 홍장원의 증언
1964년생 경상남도 진해시(現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출신으로 부친은 대한민국 해군의 제독이며 모친은 간호장교 출신이라고 한다.
육군사관학교를 43기로 졸업하였다.
제707특수임무대대에서 중대장으로 근무했다.
1992년 6월 30일 육군사관학교에서 대위로 5년차 전역후 국정원 근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2024년 1월 조태용 전 국가안보실장이 새 국가정보원장으로 부임하기 전까지 국가정보원장 직무대행
2024년 12월 6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참석해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 선포 관련 내부 폭로를 했다. 일단 그를 면담했던 김병기 의원에 따르면 계엄 선포 직후인 3일 오후 10시53분쯤 윤석열 대통령이 전화로 "이번 기회에 싹 다 잡아들여, 싹 다 정리해, 국정원에도 대공 수사권을 줄 테니 우선 방첩사령부를 지원해. 자금이면 자금, 인력이면 인력 무조건 도우라"며 지시했고, 이에 육군사관학교 후배인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대통령의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이에 여 사령관도 홍 차장에게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줄테니 휴대전화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리고 김 의원이 당시 이를 받아적던 '홍 차장이 기억하는 순서'라는 전제로 밝힌 대상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우원식 국회의장,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김민석 최고위원,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정청래 법제사법위원장,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김명수 전 대법원장 및 권순일 전 대법관, 김민웅 촛불행동 상임공동대표, 그리고 이름과 소속이 기억나지 않는 노총위원장 1인 등이라고 한다. 그리고 당시 홍장원은 받아적다가 전 대법원장이나 대법관까지 나오는 걸 보고 '미친 X인가?'라고 생각하며 더 이상 받아적기를 그만두고 뒤이어 여 사령관이 "1차, 2차 검거 대상을 순차적으로 검거할 예정이며 (경기도 과천) 방첩사에 있는 구금시설에 구금해 조사할 예정"이라고 하자 "알았다"고 함으로서 통화를 마쳤다고 한다. 직후 어떻게 봐도 '말이 안된다'고 생각해 지시불이행 후 계엄이 해제되자 퇴근했다고 한다.
☞1월 22일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
《저 대통령 좋아했습니다. 시키는 거 다 하고 싶었습니다. 근데 그 명단을 보니까, 그거는 안 되겠더라고요.
예를 들어 위원장님이 집에 가셔서 편안하게 가족들하고 저녁 식사하고 TV 보시는데 방첩사 수사관과 국정원 조사관들이 뛰어들어서 수갑 채워서 벙커에 갖다 넣었다?
대한민국이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런 게 매일매일 일어나는 나라가 있습니다. 어디? 평양.
그런 일을 매일매일 하는 기관 어디? 북한 보위부.
이상입니다.
2025년 1월 22일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 중》
"대통령 좋아했다, 하지만!" 작심발언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 "대한민국이 그러면 안 되는거 아닙니까!"
대한민국 큰일날뻔 했구나.
홍장원이 윤석열의 지시를 따랐다면 북한의 장성택이 처형되었던처럼 한동훈이도 죽음을 당할뻔 했네.
홍장원 국정원1차장님의 확고한 국가관으로 윤석열의 군사 쿠데타, 비상계엄령이 실패했다.
하마터면 대한민국이 야만국가가 될뻔 했수다.
☛국정원1차장 홍장원 대한민국을 살리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5/1/26 비상계엄령을 선포한지 54일만에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특수본)에 의하여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기소 되었다.
국정원1차장 홍장원은 윤석열의 심복중의 심복인데 체포14명의 명단을 확인하고 도저히 납득할수 없고 수긍할수 없어
윤석열의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
국정원1차장 홍장원은 반국가내란수괴 윤석열의 명령에 따라 실천에 옮겨 여야정치인들을 체포하여, 혹여나 친위쿠테타가 성공하였다면 어찌되었겠는가 말이다.
불법적인 친위쿠테타를 선포한 윤석열 반국가내란사범의 명령에 따르지 아니한 국정원1차장 홍장원이 대한민국을 살렸다.
김영삼대통령께서도 쿠테타를 통해 정권은 잡았던 전두환 노태우를 내란사범으로 법정에 세워 사형으로 죄값을 치르게 하였다.
윤석열 반국가 내란수괴는 헌법에 의하여 법정최고형인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해질 것이다.
윤석열대통령은 12.3 비상계엄 선포후 오후 10시 53분께 국정원1차장은 윤 대통령으로부터 "이번에 다 잡아들여서 싹 다 정리하라"는 전화를 받고, 간첩사건인 줄 알았다.
1/22 국회 내란 국조특위 청문회에서
"저 (윤석열)대통령 좋아했습니다. 시키는 거 다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체포) 명단을 보니까 그거는 안 되겠더라고요. 예를 들어 (안규백)위원장님이 집에 가셔서 편안하게 가족들과 저녁식사하고 TV 보는데 방첩사 수사관과 국정원 조사관들이 뛰어 들어서 수갑을 채워서 벙커에 갖다 넣는다? 대한민국이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런 게 매일매일 일어나는 나라가 하나 있습니다. 어디? 평양. 그런 일을 매일매일 하는 기관이 북한 보위부입니다."
체포 대상자 14명의 명단을 보자.
우원식 국회의장,
이재명 민주당 대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
이학영 국회부의장,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
조해주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방송인 김어준씨,
김민웅 촛불행동 대표,
김명수 전 대법원장,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이다.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는 왜 실패했는가
-작전개시시간(H아워) 뜻 이해 못한 윤과 김용현
-불분명한 명령으로 출동시간 늦어진 주력부대
-시민들 저항 앞에 부끄러워 머뭇거린 쿠데타군
-계엄상황 대비하고 기민하게 움직였던 민주당
☞계엄 대비했던 민주당, 분노와 증오로 분별력 잃었던 윤석열
계엄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야당은 어떻게 사간과의 싸움에서 윤석열과 김용현을 이길 수 있었을까. 오래 전부터 계엄 상황에 대한 충분한 경고가 있었고 이에 대비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전의 경고가 없었더라면 윤석열이 계엄을 발표하는 장면에 너무 충격을 받아 허둥지둥했을 것이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윤석열 담화가 끝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의원 소집명령을 전파시키고 실제로 국회에 도착해서 허술한 경찰의 봉쇄를 뚫고 국회에 진입하는 적극적인 행동을 개시할 수 있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즉각적인 감각, 이것이 없었더라면 경계도 느슨했을 것이고, 대응도 느렸을 거다.
계엄이 선포되고 두 시간 만인 새벽 1시에 질서 있게 계엄 해제 요구안을 의결한 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기적이었다. 이는 쿠데타를 결행하는 측보다 쿠데타를 막는 측이 더 용기와 대담성에서 앞서 있었고 또한 냉철했기 때문이다. H아워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이 저지른 일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는 윤석열은 권력의 오만으로 사태를 진단하고 판단하는 지혜와 분별력을 잃었다. “국회를 다 쓸어버려라”는 윤석열은 분노와 증오에 불타고 있었지만 무능력했고 몹시 흥분해서 도무지 계엄을 지도할 자질이 아니었다. 사태가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윤석열은 특전사령관과 수도방위사령관에게 전화하여 자신이 직접 군을 지휘하려고 했지만 이는 윤석열 자신이 내란 수괴라는 치명적 증거를 남기고 말았다. 그 이전에 조태용 국정원장이 아닌 홍장원 국정원 1차장에게 국회의원 체포를 지시한 것도 스스로 증거를 남긴 잘못된 행동이었다.
1980년의 계엄군은 '어디 감히 군인에게 저항하냐'며 서스럼 없이 군홧발로 광주 시민들을 짓밟았지만 2024년의 계엄군은 '어떻게 저희가 비무장한 민간인을 공격하냐'며 최소한의 물리력만을 행사했다. 20년간 이어진 군사독재정권의 군인과 30년 넘게 정착된 민주 정부의 군인은 그렇게 다를 수밖에 없었다.
☛민초의 생각
2024/12/3 비상계엄령이라는 내란이 발생한지 두달이 다 되어 가고 있다.
평화로운 한국땅에 내란수괴 괴물 윤석열이 민주공화정을 파괴하고 군대와 경찰 비선을 동원하여 총통제 독재국가를 꿈꾼 것 같다.
1960년 이승만이 3.15부정선거로 인하여 이승만은 하와이로 망명하고 이기붕 일가는 권총으로 일가족이 자결하였다.
민초의 생각은 반국가사범 윤석열과 김건희는 관저에서 자결로 인생을 마감할줄 알았는데, 전광훈사이비목사와 극우태극기부대에 동조하여 나라를 혼란에 몰아넣고 2025/1/19 서부지방법원 폭동사태까지 발생하였다.
윤석열을 추종하는 군장성과 그의 부하들 10여명이 내란을 일으킨 죄목으로 감옥에 갇혀 있다면 윤석열은 내란수괴 우두머리로서 책임을 져야 인간의 도리인데 부하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니 깡패만도 못한 잡범이라고 할 수밖에 없구나.
2025/1/26 검찰은 내란수괴 우두머리 윤석열을 구속 기소함으로서 감옥에 있으면서 재판을 받을 것이다.
민주공화정을 파괴한 반국가사범 내란수괴 우두머리 윤석열은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해질 것이다.
내란이 성공했다면 대한민국은 윤석열의 나라 독재국가가 되어 국정원과 방첩사가 죄없는 양심수 끌어다가 고문으로 전두환의 망령이 아른거리는 나라로 되었을거여.
국정원1차장 홍장원의 말데로 대한민국이 북한의 매일매일 그런 일이 일어나는 나라는 어디? 평양.
그런 일을 매일매일 하는 기관은 어디? 북한 보위부. 이상입니다.
반국가사범 내란수괴 윤석열의 부당한 명령에 따르지 않은 국정원1차장 홍장원이 대한민국을 살렸다.
아무리 홍장원이 윤석열의 심복이지만 부당한 명령에 따르지 않아 그도 살고 나라를 살렸지.
☛한동훈대표 12.3비상계엄령 체포명단에 목숨위험했다.
내란수괴 윤석열과 한동훈은 윤석열이 검찰총장 재직시 일본말로“오야봉”과 “꼬봉”사이라고 한다면 틀린말은 아닐꺼여.
한동훈은 김건희와 수백 통 카톡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는데,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고나서 꼬봉 한동훈을 법무장관에 앉혀 놓았지.
한동훈은 법무장관을 사임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되어 총선을 지휘하며 “김건희 리스크”의 심각성을 절감하여 김건희의 국정농단을 차단하려다가 김건희로부터 미움을 샀다.
김건희가 한동훈한테 배신당해 되게 미워한다고 하더니만, 체포명단에 있는것 보면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여 한동훈을 죽이려고 한거여.
계엄 당일 한동훈 살린 건 안규백이었다.
안규백은 22대 국회에서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장이다.
안규백은 방첩사에서 체포명단을 통보받아 "내가 계엄 체포 명단 한동훈에 전달"
한동훈 “계엄 당일, ‘국회 가면 목숨 위험’ 전화 받았다”고 말했다.
3일 밤 계엄 선포 당시 국회에 가는 도중 한 여권 관계자에게 전화를 받고 "국회에 절대 가지 마라. 내가 들은 첩보인데 가면 체포될 거고 목숨이 위험할 수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친위쿠테타가 성공했더라면 한동훈 큰일 날뻔 했네.
♧조동화의 벗님들!
겨울철 매서운 동장군이 찾아오는 계절에 조동화의 오랜 친구 신원철기관사님이 중풍으로 쓰러져 사경을 헤메이고 있기에 옛 추억을 더듬고자 혀.
신원철기관사님은 1946년생으로 2024/1/8 자택에서 뇌졸증으로 쓰러져 친구가 발견 원대병원으로 긴급 후송하여 다행이 생명은 건지었는데 언어 장애와 한쪽이 마비되여 솔찬히 중증이다.
조동화가 철도에 입문하여 1991년7월18일 무사고 40만키로를 달성하였는데 신원철기관사님과 승조가 되여 사진이 기록으로 남았다.
경부선과 호남선을 질주하며 들력에서 일하는 농부들을 향해 손을 흘들어댓던 그시절 내나이 41세였다.
<1991년 7월18일 화창한 날씨속에 지상의 마도로스 조동화기관사는 고객님들을 태우고 서울역을 출발직전이다.>
<이날은 내가 무사고40만키로를 주파하는 날이기에 같이 승무하는 신원철기관사님이 기념사진을 남기었다. >
<조동화가 무사고40만키로를 돌파하고 이리역에 도착 신원철기관사님과 기념사진을 남기었구나.
신원철기관사님과 조동화는 생사고락을 같이하며 기관사직무를 수행하였었지.
세월의 여로에서 돌아올수 없는시간!
뇌출혈로 인한 언어장애 및 신체마비로 전화도 받지 못하는 옛 친구 신원철님의 빠른 회복을 빌어본다.
언제나 회복될는지 날마다 전화해 봐도 전화기가 꺼져 있네.
한번뿐인 인생길 아무리 100세시대라 한들 건강관리 잘하여 아프지말고 건강히 오래 살아야지요. >
<조동화기관사는 7232호 3000마력의 위용을 자랑하며 우렁찬 기적소리를 울리면서 달리고 달려 지구를 열바퀴 무사고로 돌파하였다. >
<이리역에 도착하여 1950년 6.25 전쟁중 산화한 50여명의 기관차사무소 순직비에 헌화하여 추모하였다.
산화한 사람중에 나의 처 외삼촌 강휘영님의 이름도 세겨져 있다.>
<조동화의 무사고 40만키로 돌파를 축하 해주기 위해 지도계장님들과 문한봉친구가 이리역홈에 나와 축하해 주다.
한준섭 서정만 이수현지도계장님들은 일찍 저세상사람이 되었다.
그러고본게 세상살이가 인생무상이로구먼>
<지구한바퀴가 4만키로 그러니까 지구를 10바퀴를 무사고로 돌파한 조동화기관사의 장엄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친구들로 부터 축하선물도 한아름 받았다.>
사는일
사는 일이 너무 바빠
봄이 간 후에야 봄이 온 줄 알았네
청춘도 이와 같아
꽃만 꽃이 아니고
나 또한 꽃이었음을
젊음이 지난 후에야 젊음인 줄 알았네
인생이 길다 한들
천년만년 살 것이며
인생이 짧다 한들
가는 세월 어찌 막으리
봄은 늦고 여름은 이른
칠월과 같은 사람들아
피고 지는 이치가
어디 꽃 뿐이라 할까...
-좋은글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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