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스가
자유론에서 주장하는 공정으로서의 정의의 핵심은 ‘원초적 상황’과
‘무지의 장막’이다. 여기서
얘기하는 원초적 상황이라 함은 원초적 상황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게 될지 모르는 상황을 의미한다.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함으로써, 그들이 합의할 원칙들이 우연적 불평등에
의해 왜곡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회의 참여자들이 자신의 이익에 비춰 합리적으로 행동하며
자신에게 많은 이익이 돌아오게 하려는 행위를 사전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기존의 관념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독립된 상태에서 평등하고 합당한 관념을 형성하고 수정하며 합리적으로 추구하는 것을 추구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여기서의 평등이라 함은 실제의 세계에 존재하는 무작위적 위치의 상황의 평등을 뜻하는 것이 아닌 기본적인
인권의 자유와 광범위한 전체에 대한 평등한 권리를 뜻하는 것이다. 또 한가지의 의미는 최소 극대화의
관념적 평등이다. 자신이 어느 위치에 속할지 모르는 상황에서의 평등에 대한 합의는 자신이 최악의 위치에
속할 때의 피해의 최소화를 합의하게 된다는 것이다. 최악의 위치가 오히려 전체에 비교했을 때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 이 합의는 유지되게 된다.
이러한
원초적 상황의 설명은 공리주의와 상반된 의견을 지닌 자유주의자들의 논쟁거리를 제공한다. 원초적 상황에서
전제한 기존의 관념이나 목적, 사회로부터 분리된 자유로운 상태의 인간이라 하는 것은 공동체주의자에게는
불가능한 전제로 여겨진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러한 기존의 관념과 사회로부터 만들어진 사회적 동물인데
어떻게, 그러한 것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할 수 있냐는 반론을 제기한다. 이러한 논쟁은 롤스의 주장에서의 특수한 상황 자체에 주목하기보다는 그에 전제된 인간관에 주목하는 것으로 원초적
상황이라는 특수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원초적 상황에 등장하는 대로 인간이 과연 기존의
관념들로부터 독립적일 수 있는가에 대한 것과 가정하는 독립적 인간이라는 것이 전반적인 도덕적 행위에 대해 합의할 때인지 ‘정의’에 대해 논할 때에 국한되는지 여부, 또한 가정된 자유로운 인간들이 합의한 내용이 전 인류적, 즉 문화를
초월하여 적용되는지에 대한 질문, 그렇게 정해진 합의 라는 것이 정말로 ‘옳음’인지, 그렇게 믿기로
한 합의인지에 대한 질문들을 거치게 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질문들을 거친다해도 마지막에 남는 질문은
이러한 전제를 한 인간관이 과연 바람직한가라는 문제가 남게 된다는 점은 비판에 대한 정확한 반론은 되지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롤스가 주장하는 자유주의를 이해하는데 있어 이러한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 주요할 것이다.
자유주의에
대한 두 번째 비판은 자유주의가 개인과 사회 혹은 공동체와의 관계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주장과 관련된다. 공동체주의자들이
보기에 사람들이 어떤 사회에 속해 있는가에 따라 자신에 대해 그리고 어떻게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해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는 것이다. 사회계약론적 기반을 두었을 때, 공동체주의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 자유주의자가 정의하는 사회란, 개인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협동적
모험에 불과한 것 개인주의로 간과하며, 개인은 자신의 정체성과 관심사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형성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개인주의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사회라 전제함으로써 사회에
존재하는 극히 공동체적인 선을 차별하고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자유주의가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것이 공동체주의자가 강조하는 사회적 배경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것인지는 결코 분명하지 않다. 사람의 목적은
사회 이전에 이미 고정되어 있거나 주어져 있으며 그리하여 사람들은 타인의 간섭 없이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어야만 사회 내에서 협동하는 데 합의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한 가지 방법이긴 하지만, 이것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사실 사람들의 목적이 사회 이전에 정해져 있다면 그들이 자신의 마음을 바꿀 수 있도록 합의를 하거나 필요한
사회적 조건을 보장하는 데 마음을 쓸 이유가 없을 것이다.
다음의
질문은 보편성에 관련된다. 위에서 언급해온 것처럼 원초적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결론이 보편적으로 즉 문화에
상관없이 적용된다고 주장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공동체주의자들은, 한
공동체가 어떻게 정치적으로 조직되어야 하는지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에는 문화적 특수성의 인정이 그 관건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롤스가 말하는 원초적 상황에서 말하는 최고 관심사를 통한 보편성을 지닌 독립적 상황에서의 동질성을 지닌
행위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롤즈의 주장에서 특수한 사회적 위치와 특정한
이전의 관념으로부터의 추상이 있기는 하지만 이것이 특수성을 지닌 문화적 전통이나 사회적 관행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추상을 반드시 함축하지는 않는다.
다음의
질문은 주관성과 객관성에 관한 것이다. 자유주의를 도덕적 주관주의 혹은 회의주의와 결부시키는 것인데, 어떤 삶의 방식도 여타의 것보다 낫지 않다면, 단순히 선호의 표현에
불과한 것이라면, 국가는 특정한 삶의 방식의 권장을 정당화하지 못할 것이다. 무엇이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가에 대한 견해에 있어 일치하지 않는 데다가 서로 간에 자신의 관점에 대한 결정적인
논거를 제시할 수 없다는 사실은 누가 옳은지 판단할 합리적인 방법이 없다는 주장에 대한 증거로 곧잘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자유주의가 곧바로 주관성의 무조건적인 확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객관적이며 주관적인
자유주의의 특성을 동시에 지니게 되는데, 이성적 판단을 통해 주관성에 의한 다양성의 인정과, 객관적 삶의 가치를 판단한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가치를 지닌 삶이
존재하지만 이를 선택하는 것은 개인의 몫으로 두는 주관적 판단의 여지를 두는 것이다. 즉 사회가 판단하기에
선택할 수 있는 삶들에 가치의 경중은 존재하되, 판단을 하는 개인의 기호에 따라 그 삶의 가치의 척도는
주관적으로 매겨진다는 것이다. 물론 객관적 자유주의의 성립을 위한 일종의 권리의 체제나 사회적 믿음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마지막은
반완전성과 중립성의 문제에 관한 것이다. 개인들의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국가라는 조직은 구성원들이 추구하는
모든 선관념을 행하려 하기보다 일부 혹은 완전히 무시하는 반완전성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자유주의적 특성에서 지니는 모든 개인의 주관적 행위를 모두 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개인이 어떻게 삶을 영위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할 때 완전주의적 이상을 배제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사외에서
삶의 지침이 되는 도덕적 고려사항을 정하는 정치적 국가의 형태를 정하는 문제에 있어 완전주의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국가라는 체제는 구성원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사회에서 사는 것이며, 완전주의적
이상이라는 것은 모두에게 불일치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가라는 전체적인 모토에서 볼 때 모두를 만족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그러한 이상들을 제외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반완전주의적
자유주의자가 주장하는 국가는 일종의 중립성을 지닌 국가를 요구한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중립성이란
삶의 방식을 정하는 선호의 문제에 있어서의 중립성이며, 어떤 한 방식에 편향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정의나 옳음에 대해 판단하는 것에 대해서도 중립적인 것은 아니다.
~$주의와 공동체주의 서론- 조현상.doc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