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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상 글 >
새 날
글 : 작가 미상
새 날입니다.
새로 산 양말 한 켤레를 꺼내
조심스레 상표를 떼는 기분으로,
깨끗이 빨아 다려 놓은 하얀 손수건을
주머니에 넣는 마음으로,
아직 아무것도 씌어 있지 않은 새 수첩에
정성스레 이름을 적어 넣는 마음으로,
그렇게 상큼하게 시작하는 날입니다.
‘가슴에 묵혀 둔 잘못을 털어내고
고해소에서 나오던 그때처럼
더욱 사랑하며 살리라’ 그렇게 다짐하는 날입니다.
후회스러운 과거일랑 미련없이 보내 버리고,
새로운 희망을 가슴에 품는 날입니다.
눈처럼 하얀 축복이 내리는 날입니다.
< 생활성서 > 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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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자료 >
주일 미사와 고해성사에 대한 한국 천주교회 공동 사목 방안 - 제3부
- 주교회의 2014년 춘계 정기총회 승인 -
2 ) 전례 교육
신자들이 미사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미사 자체에 대한 이해와 이를 위한 전례 교육이 필수적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도 “영혼의 목자들은 부지런히 또 꾸준히 신자들의 전례 교육에 힘써, 그들의 연령, 신분, 생활 방식, 종교적 교양의 정도에 따라, 내적 외적으로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하여야 한다.
그럼으로써 목자들은 하느님 신비의 충실한 분배자로서 주요 임무의 하나를 완수하는 것이다. 또한 목자들은 이러한 일에서 말로만이 아니라 모범으로도 자기 양 떼를 이끌어야 한다.”(전례헌장, 19항)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교구별 토론에서 확인되었듯이 오늘날 대부분의 본당들에서 전례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본당 전례교육은 주로 특별한 전례시기―특히 주일 중의 주일이라고 할 수 있는 성삼일과 이를 준비하는 사순시기, 대림과 성탄시기―에 집중해서 이루어지거나, 그 대상도 전례위원회나 전례분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전 신자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에는 강론과 공지사항 시간을 이용해서, 또는 주보를 이용해서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교구나 지구에서 실시하는 전례교육에 대한 신자들의 인지도와 참여도, 만족도는 높지 않았습니다. 교구로 불러서 하는 교육보다 강사를 본당으로 파견해서 실시하는 교육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교구 주보를 이용하여 전례교육을 실시하고, 교육 내용으로는 「미사 경본 총지침」을 충실히 교육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출하였습니다.
본당에서 여러 여건상 해줄 수 없는 교육을 교구나 지구(대리구)에서 담당할 필요가 있으며, 이때 전례교육의 내용으로는 형식적이고 기능적인 것보다 전례의 내적인 의미를 이해하게 하는 교육이 필요할 것입니다. 또한 사제마다 전례 집전 방식이나 교육 내용이 달라서 혼란스럽기에 통일된 전례교육 지침 등을 교구별로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전례교육들이 전례 봉사자들만이 아니라 전 신자들을 대상으로 본당에서 정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3 ) 본당 전례(분과)위원회의 운영
미사가 형식화되고 예식들이 습관적으로 반복된다는 이야기는 일차적으로 미사 전례 거행의 준비가 충실하지 못함을 반영한다고 하겠습니다. 전례를 주관하는 주례 사제나 참례하는 신자들의 준비 소홀은 풍요로운 미사 전례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 요인일 것입니다.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전례헌장, 30.124항)를 촉진하고, “신자들이 천상은총을 충만히 받도록 올바른 마음의 자세로 전례에 참여”(「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 제40조 1항)하게 하려면 공동체가 함께하는 전례 준비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각 본당에서는 전례분과 또는 전례위원회를 설치 운영하고 있습니다. 전례위원회에서는 주로 주일 미사 전례의 방향과 세부 내용을 설정하고, 이에 따른 전례 봉사자들의 역할 분담과 교육 실시가 우선적입니다.
교구별 토론에서는 각 본당마다 전례분과가 설치되어 운영되고 있다는 답변이 많았습니다. 모임은 보통 월 1회나 격월로 있고, 특별한 시기나 대축일에는 준비를 위한 교육이 있었습니다. 전례분과 모임은 크게 활성화되어 있지 못하다는 의견이 더 많았습니다. 곧 월 1회 모여서 해설자, 독서자 등 부문별 전례 봉사자 배정 정도만 하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본당 전례(분과)위원회는 가급적이면 일주일에 한 번씩 개최하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참석자는 주례 사제, 제의실 관련자, 성가대 대표, 해설자, 보편지향기도 담당자, 사무장 등입니다. 여기서 다가오는 주일이나 축일의 주제를 설명하고 관련 사항들을 논의합니다. 고유 주제의 성격과 전개에 따라 제대의 준비, 성가의 선택, 보편 지향 기도의 지향 등을 정합니다. 이어서 그날의 특성에 맞추어 특별 기도나 다른 형태의 예식이 가능한지를 논의합니다.
본당 전례(분과)위원회에서는 또한 봉사자 교육을 수시로 실시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전례 봉사자로서 소명과 긍지를 심어주어야 합니다. 이 전례분과를 통해 복사단 관리, 독서자 양성, 예물 봉헌자, 보편 지향 기도 등에 대한 교육을 실시할 수 있습니다. 또한, 주일 중의 주일이라고 할 수 있는 성삼일과 이를 준비하는 사순시기와 같은 특별 절기와 대축일을 앞두고는 특별히 전례 준비와 관련 봉사자들에 대한 설명과 교육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것은 미리 전례력에 따른 사목 프로그램 안에서 전례를 준비하고 봉사자를 양성해야 함을 말합니다.
4 ) 성경 봉독과 사제의 강론
풍요로운 미사 전례를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하느님 말씀에 대한 준비입니다. 그런데 바쁜 현대 생활 속에서 신자들은 주일 미사 참례 자체에만 의의를 둘 뿐 그에 합당한 준비, 특히 주일 독서와 복음에 대한 최소한의 준비도 하지 못한 채 미사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성경 봉독의 중요성에 대해서 「미사 경본 총지침」은 “교회 안에서 성경이 봉독될 때에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말씀하시며 말씀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선포하신다. 그러므로 모든 이는 전례의 중요한 요소인 하느님 말씀을 봉독할 때 존경하는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29항)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사목자들은 적어도 주일의 성경 말씀은 미리 읽어오도록 지속적으로 교육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편으로 성경 봉독은 사제의 강론으로 이어지는데, 이와 관련해서 「미사 경본 총지침」은 “성경 봉독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시므로 누구나 그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다. 그러나 전례 행위의 한 부분으로서, 살아 있는 풀이인 강론으로 말씀을 더욱 완전히 이해하여 더 큰 효과를 얻게 해야 한다.”(29항)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도 “설교의 직무는 가장 충실하고 바르게 이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설교는 주로 성경과 전례의 샘에서 길어 올려야 한다.”(전례헌장, 35항)라고 가르칩니다. 강론은 바로 말씀(독서와 복음)을 해설하고 또 이 복음의 빛으로 우리의 삶을 비추는 것입니다. 곧 사제에 의해 재해석된 성경 말씀이 신자들의 삶 안에서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이 강론의 역할일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적절한 강론 시간, 효율적인 강론 도구들이 이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 2월호에 제4부 연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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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영적지도신부 훈화 >
새해에는 말씀을 통한 빛과 희망을...!
글 : 윤 클레멘트 (양호) 신부님
<전주교구 소속 지도신부>
우리의 지난날들을 이끄시고 섭리하여 주신 하느님께 찬미와 흠숭을 드립니다.
우리의 지난 세월을 사랑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사랑하는 성서형제회 형제자매 여러분!
벌써 한해가 가고, 또 하나의 새로운 한해가 밝아왔습니다.
지난 시간들은 떠나가고, 지금의 시간들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다시 사랑하고 사랑해야 할 때임을 봅니다.
하느님을 섬기고 봉사하며, 말씀을 사랑하고 기도하며, 기족과 이웃을 사랑하고 희생해 오시는 성서형제회 모든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와 마음의 인사를 드립니다.
새해에도 하느님의 복과 은혜가 회원님들과 참가자들, 가족들, 자녀들 모두에게 가득히 함께하기를 소망하며 두 손 모읍니다.
우리가 모두 느끼고 알며, 체험하고 사랑하며 기도해 왔듯이, 우리 모두는 말씀을 사랑해 왔습니다.
우리는 말씀 안에서, 말씀과 함께, 말씀을 통하여, 말씀으로 살아오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언제나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고, 늘 빛 희망 평화를 선물해 왔습니다.
말씀은 우리 자신의 믿음과 삶의 길에서 등불이고 길잡이였습니다.
말씀이 희망이고 빛인 것은, 말씀이 위로이고 생명인 것은 저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 자신의 한 인간의 길에서나, 작은 사제로서의 길에서나 항상 말씀은 늘 힘과 새로움을 주어왔습니다.
말씀이 있으셨고, 말씀이 존재했으며, 말씀이 살아계시는 까닭에 저 자신도 한 ‘인간의 길’, 한 ‘사제의 길’에도 지탱해 오고, 한 목숨 부지(扶支)해 올 수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성서형제회 가족여러분!
다시 밝은 새해에는 더욱 말씀과 함께, 말씀 안에서, 말씀을 통하여, 밝고 힘차게 살아가기로 해요.
다시 시작된 한 해는 더욱 말씀으로부터 샘솟아 나오는 빛 평화 기쁨으로 살아가기로 해요!
말씀이 빛입니다.
말씀이 희망입니다.
말씀이 생명입니다.
말씀이 위로입니다.
말씀이 샘입니다.
말씀이 기쁨입니다.
말씀이 은총입니다.
우리 모두 말씀으로부터 오는 생명과 평화의 빛을 받아, 새해 내내 희망과 기쁨의 말씀지기, 말씀의 도구, 말씀의 봉사자, 말씀의 묵상가, 말씀의 사람들이 되기로 해요!
성서형제회원님들 모두 파이팅! 감사드립니다.
- 신부님의 '영성의 물가‘ 中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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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 세계 평화의 날
2017. 1. 1
루카 2, 16~21
♠ 복음 공부 - 목자들이 예수님을 뵙다
<참된 제자가 되는 길> 마태오는 세례자 함을 명시한다.
* 16~18절 : “마리아처럼(1.39) 목자들 역시 서둘러 길을 떠난다.‘서둘러 가다’란 말은 루카가 즐겨 사용하는 단어다.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전해듣고 경배하러 온 이들은 천하고 사회로부터 소외 당했던 목자들이 복음의 첫 증인이 된 것이다. 증인으로서의 그들은 보고 들은 하느님께서 베푸신 이 구원의 기쁨을 자신들만 간직할 수 없어 널리 퍼뜨리게 된다. 그들이 받아드린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데 루카 복음 안에서 이 보잘 것 없는 자들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그분의 탄생이 모든 가난한 이들에게 기쁨이 될 것을 예고하고 있다. 그때 천사들의 무리가 말한 아기의 탄생이 하느님께는 영광이며 사람 에게는 평화를 줄 것이라고 찬미 찬양하며 목동들은 돌아갔다.
* 19~21절 : 목동들이 전해준 천사의 말을 듣고 사람들은 놀라워하나, 마리아는 신비에 접할 때마다 그것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기도 안에 되새기곤한다. 이는 모든 이가 본받아야 할 자세다.
♠ 복음 요약 : 이 짧은 이야기에서 우리들은 첫 번째 맞은 성탄의 기쁜 소식이 하위계층이며 죄인 취급을 당했던 목자들에게 전해졌다는 것이다. 복음은 낮은 곳에 임하시는 주님, 그분을 영접하는 낮은 자들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복음을 통하여 성모님은 가난한 자로 남기를 원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 탄생에 기여한 분이셨지만 한 발짝 물러나 우리처럼 호들갑을 떨거나 나팔을 불지 않으시고 조용히 마음에 새겨 묵상하셨다. 그분도 우리와 똑 같은 인간이었기에 교만해지고 독선에 빠질 위험도 있으련만 참으로 한평생 ‘작은 자, 가난한 자, 아나윔’으로 남기를 원하셨다. 올 한 해 우리가 겪게 될 고통과 십자가, 이해 못할 사건들 앞에서 불만을 늘어놓지 말고 성모님처럼 침묵했으면 좋겠다..
♠ 대화 방향 : 마리아는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깁니다. 놀랍거나 이해 못할 일들을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는 어떠한가요?
♠ 참고 문헌 : ▪ 루카복음 맛들이기 <수원카톨릭대학교 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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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공현 대축일
2017. 1. 8
마태오 2, 1~12
♠ 복음 공부 - 동방박사의 방문과 별 이야기
* 1~3절 : 예수님 탄생의 시대적 배경이 되었던 ‘헤로데 임금’이 대왕을 나타낸다는 것은 2장22절에서 아르켈라오스가 아버지 헤로데를 이어 유다를 다스린다는 표현으로 분명해진다. 헤로데 대왕은 기원전 4년에 서거했으므로 예수님은 그 이전 예루살렘에서 8km 가량 떨어진 ‘유다 베틀레헴’(빵의 집)에서 태어나셨다. 이스라엘 북쪽에 있는 페르시아나 바빌로니아, 아라베아 방면이라 여겨지는 이방 지역에서 멀리 별을 따라 그 누구보다도 먼저 유다인의 임금을 경배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박사들은 신비스러운 지혜를 지닌 현인들이나 마술사를 뜻하는 단어인데(μαγσι마고이, Magi), 마태오 복음의 문맥으로 보아 점성술사나 천문학자를 가리킨다. 그러나 후대의 그리스도교 전승에는 한 나라를 다스리는 권능을 지닌 임금들이 경배하러 온 것으로 보아, 만군의 주님으로서의 위상을 나타내 보이려고 하였다(이사 60.3참조). 동방박사들이 말한 ‘유대인의 임금’이란 표현은 유대인으로 태어나 그들을 구원으로 이끌고, 그들을 통해 만민을 구원으로 인도하실 구세주를 뜻하는 말이었다. 이에 헤로데는 ‘유대인의 임금’이란 말을 듣자 예수님을 자기처럼 권력과 힘으로 통치할 새로운 왕으로 착각한다.
* 4~8절 : 헤로데는 자신의 왕권에 위협을 느끼고 대사제와 율법학자를 불러모아 성경에 통치에 관한 내용이 있는지, 그리고 구체적인 지명과 연관이 있는지 점검한 후 미카5.1절에서 이스라엘을 통치자가 나올 ‘유다 부족들’가운데 베틀레헴을 언급함으로써 (5-6절) 자문단을 통해 알아낸 장소, 별이 나타난 정확한 시간, 그리고 유다인의 임금으로 경배받을 아이가 누구인지를 집요하게 추적하는 헤로데의 모습이 점진적으로 묘사된다. 동방박사들처럼 자신도 경배하러 가겠다는 헤로데의 모략은 아기들의 학살 사건으로 미카 예언이 실현될 시기가 무르익음을 시사한다. 大 그레고리오는 헤로데를 두고 거짓으로 주님을 찾지만, 결코 그분을 찾지 못하는 모든 사람을 상징한다고 가르친다.
* 9~12절 : 고대에는 위대한 인물이 태어나거나 죽을 때는 천문 현상이 동반한다고 여겼다. 어떤 그 현상을 ‘그분의 별’로 보았는지 여러 의견이있으나 기원전 7-6년에 목성과 토성 일직선상에 놓였던 사건일 수도 있으나, 그 천문현상을 유다인들이 갈망하던 메시아 대망 사상과 결부시킬 수 있는 안목이 놀랍다. 민수기 24.15-17의 발라암 예언이 연상된다. 그리고 마태오의 청중에게 별과 왕의 이미지는 이사야서 60장1-3의 아름다운 노래를 회상시킨다. 먼 여행 끝에 마리아와 아기 예수님을 만나러 ‘집’으로 들어간다. 루카와는 달리 구유가 아닌 베틀레헴에서 생활해오다 아기를 낳은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동방박사들은 고대 전설에 의하면 만민을 대표한 : 백인 노인 발타사르, 황인종 중장년 멜키올, 흑인 청년 가스파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최초의 이방인들로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고, 임금의 상징인 황금과,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그리스도께 기도와 찬미를 바치는 마음으로 유황을, 그리고 예수님께서 참 사람이시기 때문에 무덤에 불과한 인간의 삶에 어울리는 장례에 사용되는 유황을 예물로 바치고 경배한 후, 헤로데에게 가지 않고 다른 길로 돌아갔다. 교부들은 헤로데에게서 그리스도께로 온 사람이 그 길을 되돌아가는 일은 있을 수 없으며, (대그레구리우스), 죄의 길을 버리고 그리스도가 인도하시는 길로 나아가게 된다고 풀이한다. 인생의 방향이나 여정을 나타내는 길의 표상으로서 신앙을 갖기 전에 안주하기보다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갈 것을 촉구한다.
♠ 복음 요약 : 예수님 탄생 소식을 들은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이 대비된다. 헤로데와 율법학자들은 예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된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예수님이 바로 그분이심을 깨닫지 못했다. 동방박사가 멀리서 별을 따라 예수님께 경배하러 왔는데, 헤로데 임금과 온 예루살렘은 동방박사들이 전한 소식을 듣고야 알게 되었으며, 그 이후 수석사제와 율법학자들은 태어난 장소를 밝혔음에도 경배하러 가지 않고, 헤로데도 경배하러 가겠다고 약속하지만 가지 않는다. 동방박사들만 여행을 계속하여 예수님을 찾고, 예물을 바치고 경배드린다.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 이라는 전갈이 이 모든 반응을 야기하는 핵심으로 헤로데는 자기의 왕권을 위협하는 경쟁자로 여기고 그날부터 잠을 못 이루고 죽일 궁리만 하고,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전문 지식을 뽐내지만, 동방박사들은 오로지 경배할 목적으로 예수님을 찾는다.
♠ 대화 방향 : 우리의 각자 마음속에도 동방박사와 같은 마음 또는 헤로데나 율법학자들과 같은 마음이 자리 잡고 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예수님의 빛(인도)에 따라 열심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반면에, 자신의 일에 바빠서 눈도 귀도 닫고 세상일에 이권을 챙기려 예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① 그러면 우리는 과연 누구일까요? ② 어떤 부류의 사람과 더 닮아 있나요?
♠ 참고 문헌 : ▪ 성경주해 마태오 복음 (이우식 지음 / 바오로의딸 출판사, 한남성서연구소 공동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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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주일
2017. 1. 15
요한 1, 29~34
♠ 복음 공부 – 하느님의 어린 양
* 29절 : 이튿날 - 각 단락의 이야기를 연결시켜 주기 위해서 복음사가에 의해 표시된 것에 불과하다. 이런 표현은 35절, 43절에서도 볼 수 있다. 그리스도교의 신앙고백 내용이 예수의 메시아성을 증언하는 세례자 요한의 입을 통해서 선포된 말이다. 즉 예수의 십자가상 죽음을 온 인류의 죄를 치워 없애는 대속적인 죽음으로 여기고 예수를 신약의 해방절 양으로 상징하여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표현한 것이다. 물론 이 표상에는 고통 받는 ‘야훼의 종’에 관한 내용도 포함된다. 그리고 ‘세상의 죄를 없앤다.’는 말은 예수의 일회적이고 보편적인 속죄행위를 표현하는 것으로 인간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로부터 해방되었고 죄 없는 그리스도와 함께 일치하고 머물러 있음으로써 죄를 더 이상 범하지 않게 된다는 뜻이다.
* 30-31절 : 세례자 요한이 증언해야 할 분과 자기 자신과의 현격한 차이를 표현한 말이다. 즉 예수의 신비에 대해서 전혀 아무것도 몰랐었는데 하느님으로부터 자기 자신이 파견되어 그분을 증언하게 되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요한복음서에서 ‘이스라엘’은 ‘유대인들’과는 달리 항상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즉 계시와 약속을 받은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을 가리키는 명예스런 칭호다. 그리고 메시아는 ‘이스라엘의 왕’으로 표현, 언급되기도 한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주로 예수의 적수들로 언급된다. ‘알려지시게 하려는 것이었다.’는 메시아가 이미 백성 가운데 드러나지 않은 채 머물다가 어느 날 공개적으로 드러나신다는 즉 메시아 비밀사상이 전제되어 있다.
* 32절 : 성령이 예수의 세례시에 비둘기로 상징되어 강림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1) 죄에 대해서 순결하신 그리스도의 본성 , (2) 온유하신 그리스도의 성품, (3) 하느님의 사랑과 총애를 받으시는 그리스도의 사역 등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 임한 성령은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세례 요한이 눈으로 볼 수 있게끔 임하였음이 분명하다.
* 33절 : 성령께서 내려와 - 32절의 반복적 증언으로서, 32절이 요한의 목격에 근거를 두고 있다면 본문은 요한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계시에 근거한다..
* 34절 : 나는 보았다... 증거하였다. - 세례 요한의 이러한 증언은 막연한 추측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들려온 하느님의 음성을 생생하게 반복한 것이다.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사복음서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주장이며, 특히 본서에서는 하느님 아버지와 말씀이신 그리스도와의 관계로부터 시작하여 하느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에 관해 보다 심도있게 묘사하고 있다.
♠ 복음 요약 : 세례자 요한의 독백 형식으로 엮어진 증언 내용인데 청중이 누구인지 분명치는 않다. 31절의 내용에 비추어볼 때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어떤 하나의 무리로 추정할 뿐이다. 이 증언의 의미는 예수를 ‘하느님의 어린양’, ‘하느님의 아들’로 소개하고 알리는 데 있다.
♠ 대화 방향 : 우리의 이기심이 극에 달해 있을 때 많은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탐욕이 끝없이 부풀어 갈 때 드러나지 않게 가난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이기심, 탐욕, 무관심 등 커져 갈수록 오늘의 어린양들은 더욱 무거워져 가는 속죄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지금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어려운 시기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자신과 무관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잘못이나 다른 사람의 오류로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이 땅에 오시는 예수님은 과연 나에게는 어떤 존재인지요. 그리고 나의 이웃을 찾아가시는 예수님은 어떤 모습이기를 바라는지 성서형제회공동체를 통하여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서스럼 없이 나누워 봅시다.
♠ 참고 문헌 : ▪ 보득솔 <가톨릭 청년성서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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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주일
2017. 1. 22
마태오 4, 12~23
♠ 복음 공부
* 12~17절 : 예수님이 활동을 시작하시자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 올랐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모든곳이 어둠과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곳이었다. 이 말씀은 매일 아침 성무일도에서 기도하는 즈가리아의 노래에서도 비슷한 표현이 나온다. “아기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리고 주님을 앞서가 그분의 길을 준비하리니, 죄를 용서받아 구원됨을 주님의 백성에게 깨우쳐 주려는 것이다.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 오시어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것이다” (루가 1, 76-79)
* 18~22절 : 예수님은 갈릴래아 호숫가에 있는 카파르나움을 첫번째 활동지로 선택하신 이유를 우리는 이 구절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제자들을 만나시기 위함임을. 베드로, 안드레아, 야고보, 요한 네 사람을 제자로 부르셨다. 그리고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주셨다.
♠ 복음 요약 : 주님께서는 드디어 갈릴래아에서 첫 발걸음을 시작하신다. 그리고 네명의 제자들을 부르셨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고 제자들을 역시 갈릴래아에서 다시 만나셨다. 갈릴래아 호숫가는 제자들이 어부로써의 삶을 살았던 현장이며, 우리 삶의 현장과 비슷하다. 우리 역시 삶의 여정에서 예수님을 만났다.
♠ 대화 방향 :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서 우리들을 부르신다. 그리고 우리를 가르치시고 우리에게 복음을 선포하시고 우리를 치유해주신고 계신다. 송봉모신부님의 “세상 한 복판에서 그 분과 함께”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느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품어 안는 넉넉한 마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하느님의 현존을 깨닫는 마음이 있다면 이 세상은 더욱 행복해질 것입니다. 주님이 진정 바라시는 것은 일이나 수고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관심이며 우리가 주님과 하나 되어 인격적인 만남을 이루고 친교를 나누는 것을 강조하신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만나신곳 갈릴래아는 바로 우리들이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의 현장이다. 예수님을 만난 우리가 서 있는 이 땅은 예수님으로 인해 어둠과 죽음의 땅이 아니라 빛이 있는 곳이다. 우리들의 삶속에서 예수님을 만난 체험을 서로 나누며 서로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관심을 나누어 보자.
♠ 참고 문헌 : ▪ 세상 한 복판에서 그분과 함께 <송봉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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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4주일 / 해외 원조 주일
2017. 1. 29
마태 5, 1~12ㄴ
♠ 복음 연구
* 1-2절 : 산상설교의 중요성은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 않으셨다는 사실로 더욱 부각된다. 산은 전통적으로 신적인 가르침이 내리는 장소이며 앉는 자세는 스승의 자세이다. 따라서 이 가르침은 권위를 가지고 제자들과 이스라엘인들 그리고 제자가 되라고 불림 받은 모든 이들을 향해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이시며 지금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 3절 : 구약시대 초기에는 부가 하느님의 축복의 포시로 중시되고 가난한 이들은 전혀 존중받지 못했으나 후기에 와서는 점차 가난하고 억눌린 이들이 하느님의 은총에 가까이 있는 자들로 여겨진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가난한 이들은 현세의 재물이나 권력에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느님께 의지하여 풍부한 영적이익과 자우와 겸손과 희망을 갖게 된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은 반드시 가난해야만 한다. 세상 재물의 중압과 자기 과시의 중압으로부터 자유로와 질 때 비로소 하느님 나라가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다.
* 4절 : 마음의 근심과 고통에 대한 부르짖음으로 하느님께 말씀드리는 자들은 자신들의 고통뿐 아니라 보편적인 슬픔과 고통 속에 있는 세계를 보면서 하느님께 그 마음을 열어 놓는 자들이다. 그들을 하느님이 친히 위로해 주실 것이다.
* 5절 : 온유한 이들은 가난한 이들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이들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며 하느님의 자비에 완전히 의존하는 겸손한 자들이다. 여기에서 땅이란 것은 처음에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뜻했지만 오래전부터 영적인 의미로 변하여 불멸의 유산인 천국을 표상한다. 이 땅은 비천한 사람들, 온유한 사람들의 차지가 될 것이다.
* 6절 : 옳은 일 즉 의로움이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자 하는 갈망인 것이다. 인간 안에 내재 된 하느님을 향한 마음,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습대로 되고 하는 의를 추구하며 목말라 하는 이는 하느님 앞에 섰을 때 영원한 만족을 얻는다는 것이다.
* 7절 : 선을 행하고 자신의 권리보다 자비를 중히 여기며 이웃의 고통을 덜어주고 상처를 낫게 해주는 이들은 자신이 하느님의 자비에 의존해야만 되며 끊임없이 의존해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아는 이들이다. 심판 때에 그들의 자비가 하느님의 자비를 얻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다.
* 8절 : 마음이 깨끗한 내면의 정결과 맑음을 뜻하며 그 안에서 선한 것이 나오고 사랑과 자비의 마음 그리고 하느님과 하느님의 의로우심에 대한 갈망을 지닌다. 죄들이 그 마음을 더럽힐 수 없으며 깨끗한 마음만이 하느님을 뵙게 된다.
* 9절 : 평화란 단지 전쟁이나 분쟁들의 해소나 온건함, 관용, 양보하는 마음이 아니라 하느님과 사람사이의 화해로 평화를 이룩하는 이들의 수고를 말한다.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평화를 다른 이에게 전하는 사람들이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다.
* 10절 :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예는 세례자 요한의 일을 들 수 있고 장차 예수님께서도 이 일을 당하게 되실 것이다. 옳은 일을 하다가 고통과 치욕과 박해를 받는 모든 이들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 이 약속을 보장해 주고 있으며 이 말씀으로 고통에 지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밝게 들어 올려 주신다.
* 11-12절 : 예수님을 위해 박해 받는 사람은 누구나 정의를 위해 박해를 받고 있는 것이다. 참된 정의란 예수그리스도와 그분의 가르침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도 유대인들의 조롱과 욕설과 고통의 십자가를 통해서 하느님 나라의 영광에 이르셨듯이 제자들도 이 세상에서 보상을 얻으려 해서는 안 되며, 하늘에서 받을 큰 상을 기대하라고 하신다.
♠ 복음 요약 :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느님이 선택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려는 모든 이들과 지금의 우리들에게 주신 가르침이다. 하느님만을 의지하는 가난함과 하느님의 의를 추구하는 겸손함과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며 이웃에게 향하는 자비와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진리와 정의를 위해 박해를 무릅쓰는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얻는 것과 하느님의 자녀 되는 구원의 기쁜 소식을 주신다.
♠ 대화 방향 : ① 예수님 때문에 모욕을 받거나 박해를 받은 적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②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평화를 이웃에게 나누어주기 위해 내가 했던 일이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나누어 봅시다.
♠ 참고 문헌 : ▪ 영적독서를 위한 마태오 복음 (성요셉 출판사)
▪ 성서묵상 마태오 복음 (바오로 딸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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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월례회의 스케치 >
주님을 기다리며 원곡에서 월례회의를...
안산 원곡동 세르브스 팀 FB
서기보 권 토마 (순)
다들 주님이 오심을 간절히 기다리며 준비하는 대림 한가운데서 무슨 일인지 ‘FB 50주년준비위원장’이 개인적인 이유로 그에 대한 토론을 연기하기로 함으로써 원래대로 원곡모임이 시작한다.
10시미사 후 전 원곡동대표봉사자가 계단을 내려오면서 다른 지역에서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걱정하신다.
얼마 되지 않아서 서울팀이, 그리고 전주팀이 도착했다.
먼 곳에서 오신 분은 승용차로, 나머지는 걸어서 이건우 요셉피나(원곡지구봉사자)의 집으로 갔다.
그곳에서 이미 푸짐한 음식이 차려져 있고, 이후에 수원과 서울 이문동팀이 오셨고, 육적 양식을 취한 후 모두가 말씀나눔 대열에 합류한다.
월례회 참석 현황은 서울 당산동 3명, 이문동 1명, 그리고 전주팀 명2분, 그리고 데레시아수녀님 안산식구를 포함해서 16명이었다.
12시 삼종기도를 드린 후 공동식사가 이어지니, 그때야 갖가지 진귀한 산나물이 보인다.
겨울로 막 접어드는 때에 장아찌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구수한 숭늉도 한자리를 차지한다.
오광근 스테파노 형제님은 타지에서 오시는 귀한 분들을 모시러 수시로 안산역을 들락거린다.
코이노니아는 이어지고, 원래 2시20분 쯤까지 묵상나눔이 진행되었다.
어느 때처럼 필리피서 4장4절이 율동과 함께 선포되었으며, 묵주는 ‘환희의 신비’ 1단을 바쳤다.
오늘 말씀은 마태오복음 11장 2~11절로 세례자요한에 대한 예수님말씀이다.
시작은 수녀님이 하셨고, 우리들이 나아가는 데는 길잡이로 말씀 운을 뗀다.
우선 구약의 제일 끝권인 말라기 예언서 3장 23절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서를 보내리라는 말씀이 400여년이 지난 그날 예수님을 통해 성취되는 세례자요한의 일이 마르코복음서에 처음 기록되어서 실현된다.
수녀님은 토요일 제1독서 말씀인 집회서 내용인 ‘엘리야가 다시오리라’ 는 성서말씀도 덧붙이신다.
“당신을 본 사람은... 잠든 사람은 행복하다... ”
아마도 수도회에서 예수회신부님을 통해 들은 강론을 인용하시면서 그런 일은 무엇을 의미할까?
구약의 계약준수가 신약의 예수님 사랑으로 이어졌음을...
이를 통해 우리들에게 여러 가지의 질문을 던지신다.
‘이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행복. 사랑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이 존재함으로 비롯되는 것일까?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 라는 기본적인 것부터 ‘그분은 나에게 행복을 준 사람일까?’ 하는 아주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신다. 그 외에 여러 가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참가자들의 묵상나눔이 다양한 관점에서 풍성하게 이루어졌다...
숨가쁜 긴 묵상나눔을 마치고, 잠시 10분간 쉬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이어서 안건토의가 있었다. 지난 11월달에 한 일들을 전국조정과 각 팀에서 대화식으로 이어나갔다.
내년 3월에 하는 묵상회 주제 성귀를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마태오복음 4장 4ㄴ절)로 정해졌다.
차기월례회의 당산동모임은 시작시각은 종전처럼 하고, 50주년 준비토의를 하기로 합의했다.
오후 3시에 기도와 영광송, 그리고 오늘 많은 것을 내어주신 분을 위한 가정방문기도를 끝으로 2017년을 기약하며 주님이 주시는 터전으로 되돌아간다.
오늘 모든 행사를 준비해주시고, 관심가져 주시고, 참석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전국조정봉사자의 이름으로 감사드린다.
웬일인지 보이지 않는 아폴로니아, 모니카(전주)와 보나벤뚜라, 베드로(당산동)가 갑자기 보고 싶은지 잘 모르겠네요.
사람은 자리에 없어져봐야 그 진가를 확연히 느낀다는 어머니의 말씀이 새삼 떠오른다.
그리고 전국서기 역할(서기가 아님), 수원지구 서기(원곡성당지구) 역할을 하다보니까, 제대로 좋은 말씀과 나눔이 제대로 전달되고 있지 않고 있는데... 순전히 필자의 과오이다.
이 자리를 빌어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오래 전부터 오늘 저희가 활동할 수 있도록 해주신 선배봉사자이신 광주의 모이세. 다니엘 형제님을 기억하며, 실제적으로나 정신적인 지주이신 전주교구장, 병중에서도 늘 저희를 위해 애쓰시는 지도신부님을 비롯한 전주공동체 사람들... 박명숙 보나. 나범순 보나. 강봉호 세레자요한. 특히 도미니꼬사비오 등등... 그 밖에 알아내지 못한 많은 형제자매님들...
과거 기록을 찾아서 최대한 기억해 보려고 했지만, 아마도 다들 기뻐하실 것 같아서 이 자리를 빌어서 불러본다...
제가 미처 찾아내지 못하시는 분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동계묵상회가 있기 전에 소식지에 게재될 것이다.
이 모든 이들을 주님께서는 분명히 기억하시고 축복해주실 것이다.
50주년을 기대하면서 성서형제회 이름으로 기억될 것이다... 아멘!
“오시는 주님을 잘 맞이하시고, 성탄 기쁨을 주위의 모든 이들과 아무런 조건 없이, 특히 나약하고 모자라는 이들과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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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 기고 >
어린이의 마음으로 참석했던 성탄미사
광주 / 장 도미니코사비오 (철호)
성서형제회 초기 성서형제회를 지도하셨던 원선오신부님, 모예수신부님들이 머무르셨던 광주 살레시오 수도원입니다.
저는 주말마다 살레시오 수도원으로 미사를 갑니다.
미국에서 선교사로 오신 노승피로베르또 신부님에게 성서형제회 창설신부님 최신부님을 물어보았더니 이름을 즉각 알고 계셨습니다.
노신부님은 최근 평화방송에서 녹화를 하셨습니다.
조만간 신부님의 생애에 대해 방송이 된다고 합니다.
성탄 미사에서 미사 시작하자마자 살레시오 수도원 나눔의 집 (사비오의 집)에 사는 어린이가 주님을 상징하는 별을 스크린에서 따다가 구유 옆에 놓았습니다.
그리고 수사님들의 연주로 고요한밤 거룩한 밤이 연주되면서 거룩한 미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미사 중에 화답송 시간에는 신부님 세분이서 마리아 품에 잠들은 그 아기는 누구일까? 성가를 합창했습니다.
그리고 미사 후 수사님들의 뮤지컬 자비의 문이 공연되었습니다.
저는 어린시절 성당에 다니지 않았기에 성탄이 되면 성당이나 교회 다니는 얘들이 부러웠습니다.
남동생이 교회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 다녔는데, 성탄절에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는 성극을 했는데, 그 성극을 보러 동네 아이들과 우르르 몰려 간적이 있었습니다. 성극이 끝나고 유치원에서 우리들은 팥도너츠와 우유를 성찬 선물로 받았습니다.
매말랐던 어린시절의 성탄의 공백을 주님께서 채워 주시는것 같았습니다. 어린이의 마음으로 학예회에 참석한 것처럼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기쁨을 주신 아기 예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뜻밖의 은총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성서형제회 연수 때면 성극을 합니다.
그런데 성가와 악기 연주도 함께 주께 올리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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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I 재정 회계 보고 >
☧ 매월 FB본부로 보내주시는 의연금은 본당별로 보내지 말고, 각 팀별로 회계 정산하시어,
금액이 크든 적든 매월 꾸준히 보내주셔야 합니다…….
✟ 2016년 11월 입출금 내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