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노춘석 갤러리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자유 게시판 스크랩 이승조, 조형의 근원을 그리다
phoenix 추천 0 조회 45 12.08.30 18:0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한국에서 80년대 학번을 가진 회화 전공자들에게 공통적인 경험이 있다면 입시 화실의 형광등 불빛을 받고 있는 하얀 석고상들과 정물대의 흰 천이나 신문지 위에 놓여진 갈색 항아리, 노랗고 하얀 가짜 국화 그리고 오래되어 물렁물렁해진 사과들과 소주병, 맥주병들을 수도 없이 그려본 것이리라. 그리스와 로마시대의 인물상들을 멋지게 그려 보려고 연필을 열심히 그어댔던 그 시절이 지나고 필자도 대학을 입학하게 되었다.

 

 

NUCLEUS 10, oil on canvas, 130*100cm, 1968

 

 

엄정한 비율의 메카닉한 형태미 추구
1987년 서울 혜화동. 일명 대학로 거리는 젊은이들이 많이 다니는 예술적인 거리였고 그곳을 거닐던 필자는 우연히 어느 갤러리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곳에서 이승조 선생의 작품을 처음 대면하게 되었던 것이다. 새내기 대학생으로 입시미술에 여전히 경도되어 있던 필자의 눈에 선생의 작품은 낮설기만 할 뿐이었다. 중년의 한 남자와 몇 명의 젊은이들이 작품을 설치하고 있었다. 갤러리 벽면을 수직과 수평의 원통형들이 마치 파이프 라인처럼 온통 가로 지르고 있었다. ‘과연 이런 모양이 예술 작품으로 성립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과 함께 손으로 그려진 것이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매끄럽게 기계로 찍어낸 듯한 엄정한 비율의 그 형태들이 주는 기이한 울림에 한 동안 그 전시장을 떠나지 못했던 기억은 지금도 또렷하다. 3년 후, 향년 49세를 일기로 이승조 선생은 숙환으로 타계하게 되었고 그 전시가 마지막 전시가 되었음을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다.
세월은 어느덧 20년이 흘러갔다. 그동안 필자가 실제로 대면했던 이승조 선생의 작품은 4점 뿐이었다. 그 20년 동안 필자의 그림 보는 시야가 많은 변화를 겪었음은 사실이다. 좋아했던 작품들이 이젠 한계점에 이르렀고 알아채지 못했던 작품들에게서 이제 와서야 그 진가를 확인하고 감동을 받기도 하는 시절들이 지나갔다.

 

 

NUCLEUS 86-28, oil on canvas, 181*227cm, 1986,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NUCLEUS 80-07, oil on canvas, 1980, 삼성 호암미술관 소장

 

 

끈질긴 논리화의 작업으로 승화된 예술혼
22년 전의 그 감동을 더듬어 최근 필자는 이승조 선생의 작업실이 있는 경기도 안성을 다녀오게 되었다. 그곳에서 선생의 부인과 자제들을 만나게 되었고 작가는 부재하지만 선생의 작품들을 감상해 볼 수 있었다. 그 고즈넉한 외딴 작업실의 공기를 마시고 선생의 작품들이 주는 예술적 파장을 느껴보면서 20여 년 전에는 낯설고 이해하지 못했던 그의 작품들이 이제야 매력적으로 다가서는 이유를 생각해 보고는 역시 미술이라는 실체는 그 속살을 쉽게 드러내지 않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볼 수 있었다.
1996년 토탈미술관과 현대화랑에서 선생의 유작전이 열리게 되었는데 그 전시 도록에는 선생의 작품에 대한 많은 찬사가 실려져 있었다. 당시 환기미술관 관장이었던 평론가 오광수씨는 그의 글 말미를 이렇게 쓰고 있다. “많은 사람이 지적했듯이 고집스럽게 한 방향을 추진해온 작가로서의 이승조가 갖는 이미지는 변화와 부침이 많은 우리의 풍토에서는 대단히 귀중한 존재로 부각된다. 더욱이 논리적인 작업의 전통이나 체험이 빈약한 우리의 현대미술 속에서 그가 보여주었던 끈질긴 논리화의 작업은 더없이 이채롭게 보인다. 이 하나의 작업과정으로도 그는 우리 현대미술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이제 많은 비평가나 미술가들이 이승조 선생에 대하여 한국현대미술의 궤적 속에 뚜렷이 남을 작가임을 말하고 있지만 정작 선생의 작품들은 긴 은둔 속에 있었던 것 같다. 선생의 작업실을 나서며 필자의 머리 속에는 그의 작품들이 생명력 있는 모습으로 어떤 지점을 향해 흘러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그곳은 미술의 전당이며 결국 선생은 은둔을 떠나 그곳에 서 있게 될 것이다.
내년이면 그가 타계한 지 20주년이다. 이제 한국미술사에서 꼭 기억해야만 할 이승조 선생의 작품들을 전체적으로 조망해 볼 좋은 기회를 감상자들은 만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 LEADER vol.6 no.2 <김정대의 그림읽기>중에서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