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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3(주일) 호세아 4:1~14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신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듣게 됩니다. 특히,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부재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본문 6절에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말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지식’은 크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 ‘자기 자신을 하는 지식’, ‘세상의 지식’, ‘구원의 지식’으로 나뉩니다.
첫째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세 가지 정도로 살펴볼 수 있는데, 1) 구원에 관한 지식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진리를 깨닫고 믿는 지식입니다. 이는 단순한 이론적인 지식이 아니라, 삶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믿음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서 성경전체의 요절과도 같은 요한복음 3:16입니다.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2)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지식이 포함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 자비, 공의 등의 성품을 깊이 이해하고 경험하는 지식입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이루는 데 필수적인 지식입니다. 예를 들어서 에베소서 1:17-19 말씀을 보시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셋째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입니다. 이 지식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 뜻대로 살고자 하는 지식입니다. 이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2:2을 보시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둘째로, ‘세상을 아는 지식’이 있는데요, 이 지식에는
1) 자연의 지식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의 질서와 법칙을 이해하는 지식입니다. 과학적인 지식과도 연결될 수 있지만,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창조를 경외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이끕니다. 시편 19: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2) 사람의 본성을 아는 지식입니다. 이는 인간의 죄성과 연약함,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이해하는 지식입니다. 이는 타인과의 관계를 맺고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를 제공합니다. 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3) 역사의 지식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시고 인류를 인도하신다는 것을 이해하는 지식입니다. 이 지식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며, 미래를 향한 비전을 제시합니다. 예를 들어 다니엘서 2장의 내용이 그렇습니다.
셋째로, ‘자기 자신을 아는 지식’입니다.
1) 자신의 죄성을 아는 지식입니다. 이 지식은 자신이 부족하고 연약하며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깨닫는 지식입니다. 이는 겸손하게 하나님께 의지하게 만듭니다. 로마서 7장이 대표적인 성경구절입니다.
2) 자신의 은사를 아는 지식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고유한 재능과 능력을 깨닫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지식입니다(고린도전서 12장).
3) 자신의 정체성을 아는 지식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세상의 가치관에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지식입니다. 요한일서 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넷째로, ‘구별되는 지식’입니다.
1) 세상의 지식입니다. 이는 세상의 가치관과 철학에 근거한 지식입니다. 이 세상의 지식은 성경의 가르침과 상충될 수 있으며, 삶의 방향을 잃게 만들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 영적인 지식입니다. 이 지식은 성령님을 통해 얻는 초자연적인 지식입니다. 세상의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영적인 진리를 깨닫게 해줍니다. 고린도전서 2:10,11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결론적으로, 성경에서 말하는 '지식'은 단순히 정보를 아는 것을 넘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세상을 올바르게 이해하며,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본문 6절에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말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라고 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내 백성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망하게 된다 너희는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으니, 나도 너희를 제사장의 직무에서 쫓아낼 것이다. 이 하나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두지 않으니, 나도 너희 자녀를 마음에 두지 않으리라.”라고 합니다.
1.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부재(1~6절).
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므로 진실과 인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고 오히려 저주와 속임, 살인과 도둑질, 간음, 살육이 가득했습니다(1,2절). 여기서 ‘인애’란 ‘헤세드’ 라는 말로서 약하고 고통받는 자를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자비, 언약에 기초한 사랑으로서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은총과 긍휼을 의미합니다. 또한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이스라엘은 그 결과로 사회는 무질서해지고 자연재해도 일어났습니다(3절). 또한 이스라엘 백성은 제사장과 다투면서 율법을 떠나 서로를 대적하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4~6절). 호세아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안다고 고백했지만, 그들의 삶은 그렇게 증명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진실과 인애를 잃어버리고, 죄악에 빠져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고, 우상숭배에 빠져 살았습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6절)에서 ‘지식’은 단순히 정보를 아는 것을 넘어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그 분의 뜻을 분별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란 ‘다아트’라는 말로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경험에서 얻게 되는 체험적 지식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서 얻어지는 지식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는 지식이 있는 자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부르고, 봉사를 하고, 기도하고, 전도하고, 헌금하는 것을 원하고 계십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체험적으로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 분의 뜻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멸망하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즉,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무지한 상태를 넘어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을 의미합니다. 말씀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로 인한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매일 말씀을 묵상하며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종교 개혁자 죤 칼빈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이는 자기를 알 수 없고 자기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요17:3)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죄를 범하게 되었고, 그 죄의 결과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잠언 1장 7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시편 14편 1절에 보면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고 말한다고 했습니다. 지식의 근본이 없는 어리석은 인생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없다’라는 어리석은 말을 자랑삼아 합니다. 그것은 무서운 죄악이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호세아 선지자는 우리에게 “여호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도 힘써 여호와를 알아야 합니다”라고 힘써 강조합니다(호6:3).
[큐티인묵상간증] ‘완강한 암소처럼’ 최계선님
당대신앙인인 저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굳건하지 않아 행복을 꿈꾸며 믿지 않는 사람과 교제를 하였습니다. 혼자 교회를 열심히 다녔지만, 진실과 인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에 세상 욕심만 가득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남자친구와 결혼을 약속한 뒤로는 음란한 마음에 미혹되어 혼전순결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후 혼전임신을 하게 된 저는 세상의 이목과 비방을 받을 것이 두려워 낙태라는 살인죄를 저질렀습니다.
결혼 후 남편은 다니던 대기업을 나와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저희 부부에게 사업도 잘 되게 하시고 자녀도 주셨지만, 그럴수록 남편은 음행과 포도주에 마음을 빼앗겨 가정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결국 사업이 망하여 빚을 지게 되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남편의 외도가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그 때 저는 남편이 구원받도록 기도하기보다 나의 옳고 그름의 잣대로 남편을 정죄하며 대적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포악함으로 저에게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자녀와 돈우상과 연합하여 완강한 암소처럼 완강하니 하나님이 망하고 빚지는 일과 이혼 위기를 당하게 하신 것입니다(16~17, 19절).
그제서야 저와 저희 가족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러 벧엘과 같은 말씀 공동체로 올라갔습니다(1절) 이후 하나님은 매주 정한 예배와 공동체 나눔, 여러 양육으로 제 속에 가득한 음행과 살인, 원망과 마음의 죄악들을 직면하여 분수령적인 회개를 하게 하셨습니다.
심판을 받아 마땅한 저를 십자가 사랑으로 품어주시고, 인애로 내 죄를 속량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깨닫지 못하는 백성이 되어 망할 뻔한 저를 끝까지 참아주시고 길갈에서 돌이켜 구속사의 말씀을 붙드는 벧엘 공동체로 오게 하신 주의 은혜를 전하며 살겠습니다(14~15절).
적용) 두 딸에게 제가 부끄러운 죄인임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겠습니다. 내일 어린이 날을 맞이하여 조카들에게 새싹 큐티인과 어린이 큐티인을 선물하겠습니다.
전체 적용)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반복적으로 짓고 있는 죄는 무엇입니까?
2.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중요성(7~14절).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칩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안다면, 우리는 거룩한 삶을 살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번성하게 하셨지만, 그들은 죄짓기에 바빴습니다. 제사장마저 사명을 감당하지 않고 백성의 속죄제물을 먹고 축적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습니다(7~10절).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는 삶을 살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신전의 나무와 막대기에 묻고 복을 빌 뿐 아니라 음행을 저질렀습니다(11~14절). 또한 하나님을 알아갈수록 우리는 영적으로 성장하고, 하나님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적으로 무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선지자들의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아니라 바알 종교에 미혹되어 영적으로, 육적으로 황폐화되었습니다. 11절에 포도주가 사람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듯이 음란한 마음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버리도록 미혹합니다. 음란에 취한 이스라엘은 자기 딸들과 며느리들이 음행하고 간음을 저질러도 깨닫지 못합니다. 영적음행은 곧 우상숭배입니다. 이처럼 성도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악하고 음란한 세상문화에 빠져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됩니다. 적용) 음란하고 타락한 이 세대의 문화로부터 어떻게 나를 지키고 있습니까?
3.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얻는 방법.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한 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입니다. 호세아 6장 3절은 “오직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빛 같이 확실하니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할 것이요 흑운 같이 비를 내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힘써'라고 하는 히브리어 ‘라다프’는 '추적하다', '뒤따르다'란 뜻으로 여호와를 알고 섬기는 일에 온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열심히 따라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수도사가 스승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찾을 수 있을까요?" 스승은 대답했습니다. "갈망함으로써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느니라" 수도사는 다음날도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스승은 역시 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며칠 동안 똑같은 대답을 들은 수도사는 다시 물었습니다. "저는 온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아직도 그 분을 못 찾고 있을까요?" 스승은 제자의 물음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일어나 제자를 데리고 강가로 나갔습니다. 그리고는 갑자기 제자의 머리를 잡아 물 속에 밀어 넣었습니다. 스승의 행동에 놀란 제자는 스승의 손아귀에서 풀려나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쳤습니다. 한참이 지나자 스승은 제자의 머리를 놓아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번에는 스승이 묻습니다. "자네, 내가 머리를 물 속에 넣었을 때 왜 그렇게 몸부림을 쳤나?" "그야 숨이 막혀서 그랬습니다 " 그 때 스승이 말합니다. "바로 그렇게 하나님을 숨 막히게 찾으면 하나님을 찾게 될 걸세"...
하나님을 알아가는 가장 확실하고 풍부한 지식의 보고는 성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셨으며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 계획, 그리고 우리와의 관계를 깊이있게 탐구할 수 있습니다.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할 때, 의사는 자기의 온 정성과 마음과 기술을 다해서 환자를 도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골치 아프고 손을 떼고 싶거나 돕고 싶지 않은 환자도 있다고 합니다.
그 첫 번째가 치료하는 의사보다 더 많이 아는 척하는, 잔소리 많은 환자라고 합니다. 진찰 결과라든가, 처방이라든가, 약이라든가, 의사가 말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이 없습니다. 다 의심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다 압니다. 이런 환자는 '차라리 당신 스스로 고치라'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영 대하기 싫다고 합니다.
두 번째 환자는 따지기 좋아하는 환자라고 합니다. 왜 그러느냐, 그러면 이렇게 된다, 또는 공식에 의해서 모든 것을 따지는 그런 체질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의사가 이렇게 저렇게 치료를 하면, 이것 먹으면 낫느냐, 이렇게 하면 꼭 낫느냐, 왜 그러느냐, 결과가 어떻게 되느냐 합니다. 치료라는 것이 A+B는 아며 최선을 다할 뿐임에도 불구하고 자꾸 따지니까 의사가 그에게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이 사람, 참 골치 아픈 환자구나 할 밖에 대답할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환자는 조급한 마음을 가진 환자라 합니다. 항생제 같은 약은 투여하고 나서 적어도 사흘이 지 나서야 효과가 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약을 한 봉지 먹고는 왜 안 낫느냐, 아침에 치료받고는 저녁에 왜 안 낫느냐, 그리고 왜 이렇게 아프냐고 한답니다. 그래서 보따리 싸가지고 이 병원 저 병원으로 옮겨 다니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 만나면 아주 골치 아프고 '빨리 다른 데로 가라'하고 싶답니다. 의사들도 이런 사람을 만나면 아주 골치 아파한다합니다.
우리의 교육도, 우리의 신앙도, 우리의 인격도 마찬가지입니다. 순종할 줄을 모르고, 믿음이 없고, 만사를 조급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첫째, 말씀 묵상을 해야 합니다. 묵상이란 하나님의 생명을 내 영혼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묵상을 가리켜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은 말씀을 묵상하지 않고 밥을 먹는 사람은 ‘돼지와 같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묵상하지 않고 밥을 먹으면 ‘아, 나는 오늘 돼지가 되었네!’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사랑하는 여러분, 묵상하지 않았다고 여러분 자신을 너무 심하게 정죄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묵상은 즐거운 것이 되어야 하지, 결코 부담이나 의무나 일로 여겨져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1분 만에 밥을 후딱 먹어치우고 출근하고 혹은 등교하는 것처럼 묵상을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묵상은 즐거워야 합니다 .말씀을 읽으면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마치 밭에 숨긴 보배를 발견하는 즐거움과 같습니다. 이것은 세상이 주는 어떤 즐거움보다 더 즐거운 것입니다 둘째, 기도해야 합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자 최고의 일은 ‘기도’입니다. “사람이 일을 하면 사람이 일할 뿐이지만 사람이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일을 잘해도 사람 수준일 뿐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수준으로 일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도의 능력’을 저술한 ‘E.M. 바운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이 돕고 싶으셔도 도우실 수가 없다.”
셋째, 교회 공동체와 함께 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신 하나님 소유의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부르신 가족입니다. 하나님 자녀, 천국 백성, 성도, 그리스도인, 명칭은 다양하지만 결국 하나입니다. 하나님 가족입니다. 다른 성도들과 함께 성경을 나누고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면서 더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예배에 참여함을 통해 말씀을 듣고 묵상하며 신앙을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넷째,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예수를 믿자마자 변화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점점 더 범사에 좋은 것을 취하게 되고, 악은 버리게 되어 우리의 삶이 아름답게 변화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우리의 문제와 삶을 성령님께 맡겨야 합니다. 적용) 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까?
결 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호세아 4장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특히,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부재’가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 지를 경고합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을 잃어버리면, 영적인 혼란과 방황이 오고, 죄에 대해 무감각해지며, 세상 가치관에 쉽게 휩쓸릴 수 있습니다. 결국 물질, 명예, 쾌락을 추구하며, 영원한 가치를 놓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여호와를 알되, 힘써 여호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 영적으로 건강해지고, 올바른 길로 인도함을 받으며, 하나님과 더욱 친밀한 교제를 통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은혜가 모든 성도님들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