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讀後記】 김영배 수필집 『사랑이 맞닿은 지평』
논강 김영배 수필가 ‘문학비 건립’을 바라보며
- 고인이 저술로 남긴 ‘문학의 향기’, ‘인간의 향기’에 가슴 적시다 -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충남수필문학회장
대전·충남수필문학회 초대 회장을 지낸 논강(論江) 김영배 수필가의 ‘문학비’가 최근에 작가의 고향인 논산에 건립됐다. 별세하신 지 12년 만이다.
▲ 한국문인협회 이광복 이사장 축사(사진제공=논산문화원 / 대전수필문학회)
논산시의 지원을 받아 문학비를 건립한 작가의 고향 문화원장의 취지문을 읽고 나서 나는 책장에서 고인의 옛 작품집을 다시 꺼내 살펴보았다.
수많은 작품 중에서 어느 한 편을 선정하여 세상에 소개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작가에 대해 잘 모르는 신세대 독자를 위함이다.
내가 뽑은 수필 작품은 「사랑이 맞닿은 지평」 이다. 1990년에 출간된 김영배 수필집 『사랑이 맞닿은 지평』의 표제작이기도 하다.
▲ 저자인 김영배 수필가가 생시에 필자에게 보내준 친필 서명 작품집
이 작품을 읽기 전에 독자는 우선 작가에 대한 ‘예비지식’이 필요하다. 작가가 어느 상황에서 이런 글을 쓰게 됐는지, 그 배경을 책의 「머리말」에서 감지할 수 있다.
작가는 ‘엊그제까지 식물 인생으로 살아온’, ‘10년 지병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떠나버린’ 부인을 ‘내 여인’이라고 표현했다.
자신을 일컬어 ‘사내 몸종’이라고 했다. ‘밤이면 밤마다 화장실 출입 시중을 들어 주어야 했고, 끼니면 끼니때마다 밥 수저를 떠넣어 주어야 했던 사내 몸종의 생활’. 어디 그뿐인가.
‘그 위에 짓눌려 오는 직장의 일 더미. 그런 세월은 밤마다 잠을 못 이루게 했고 공휴일까지도 나를 편히 쉬지 못하게 했다.’라고 술회한다.
이런 힘든 세월을 보내고 시골 중학교 교장으로 발령 나 하숙 생활하면서 이 책을 썼으니, 책의 ‘머리말’ 제목이 「굴레 벗은 말이 되어」이다. 참으로 가슴이 아려오는 ‘머리말’이다.
▲ 김영배 수필집『사랑이 맞닿은 지평』 머리말
나는 30여 년 문단 활동하면서 기회 있을 때마다 이런 말을 한다.
“힘든 인생 체험을 하지 않고 어찌 글이 나오는가. 진정 글다운 글은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꽃과 같아. 힘든 고뇌의 과정 없이 창작물이 어찌 만들어지나?”
과거 일선 경찰서에서 과중한 업무로 파김치가 되어 귀가했을 때 C 대학교 문창과 학생들이 2인 1조로 지도 교수의 지시라면서 찾아 왔다. ‘리포트 제출용’으로 「지역 작가와의 인터뷰」를 위해 찾아온 것이다. 이때도 ‘힘든 인생 체험, 인고의 바탕’ 등등 똑같은 말을 들려주었다.
생때같은 두 자식을 잃고 한평생 응어리진 가슴으로 살아오신 내 어머니를 가장 가까이에서 눈물로 바라보면서 원고지를 메워왔던 내 경험담을 들려주기도 했다. ‘쓰지 않고는 못 배길 때’가 바로 그런 절절한 상황,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돌파구 찾기’가 문학 작품으로 승화하기도 한다.
수필 「사랑이 맞닿은 지평」에서는 작가의 교단 체험담이 충격적이다. 심한 기침을 하는 선생님. 불결한 액체를 손수건으로 훔쳐내는 선생님. 이를 바라보는 학생의 충격적인 언사가 가슴을 때린다.
“폐병 3기한테 배우게 됐군, 어이 불결해.”
어느 녀석이 내뱉은 말인지 작품을 읽는 도중에는 쉽게 감지할 수 없다. 결말 부분에 가서야 ‘그’의 정체가 드러난다.
충격적인 사실을 묘사하면서도 교육자로서 품위를 잃지 않는 잔잔한 어조의 이야기 전개 기법이 수필의 정수를 보여준다.
“동식아, 나 아직 건강하단다. 내 나이 오십이니 아직도 십 년은 더 교단에 설 수 있어, 항상 너희들 같은 가능성 있는 후세들을 직접 교단에서 가르치는 평교사로 서서 추잡해지지 않고 깨끗하게 늙어가며 열심히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마.”
작가가 눈물을 흘리면서 내뱉는 독백이다. 여기에는 심훈의 소설 「상록수」에 등장하는 채영신의 교육열의(熱意) 한 구절이 나온다. 문맹 소년 소녀들을 가르치던 교사의 열정과 교육 철학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뜻밖에 한약 한 제를 선물로 보내온 동식이 아버지는 자신보다 ‘더 불행한 소아마비 장애인’이라는데 작가는 ‘가슴이 짜릿해 왔다’라고 고백한다.
이 작품의 압권은 배달부가 던지고 간 편지에 있다. 작가는 긴 편지를 읽고 또 읽는다. ‘올 여름방학에는 꼭 저의 집에 내려와서 요양을 하고 가라’는 따뜻한 편지.
‘그’가 누구인지, P 시에서 내과병원을 내고 있는 ‘그’가 누구인지, 독자는 따뜻하게 전해오는 인간애를 감동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엔드(END) 자막이 올라가도 자리에서 쉽게 일어나지 못하는 관객의 입장이 된다. ■
2021년 11월 24일
윤승원 讀後記
■ 김영배 수필 「사랑이 맞닿은 지평」 전문
.
첫댓글 ♧ 본 독후기는 대전수필문학회 <초대수필 / 평론>과 대전문총 <명작감상>에도 소개합니다.
김영배 선생님의 문학비 건립을 늦게나마 깊이 깊이 경하드리오며, 선생님의 문학이 더욱 더욱 읽히기를 희망합니다.
선생님을 저는 직접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장천선생의 소개로 여러 가지로 나의 경험과 오버랩되고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첫째 저의 담임선생님이셨던 선생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고, 말년에 폐병을 앓게 된 것도 공통되기 때문입니다. 감명을 받은 것은 선생님의 인품과 문학적 뛰어난 점, 그리고 교사로서의 사명감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언제 선생님의 책을 구해 읽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좋은 소개의 글에 감사를 깊이 드립니다.
김영배 선생님은 늘 겸손하셨습니다. 자신의 수필작품이 됐든, 시조작품이 됐든, ‘낙서장이’의 글이라고 낮추시며, 남의 글에 대해서는 찬사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그 어른의 제자가 저의 초등학교 동창생과 경찰 동기생 중에 여럿 있는데, 한결같이 훌륭한 인품의 스승으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문학비에 새긴 글에서도 “헌신적인 교육자로서 제자들에게 존경받는 스승이셨고, 인품이 훌륭하여 모든 사람이 칭송하였다”라는 표현이 보입니다. 돌아가신 후에 <인품이 훌륭하여 존경받는> 분으로 제자나 문인들 모두가 기억해 주는 분이니 이 시대에 참다운 교육자로서 문인으로서 거울이 될 분입니다. 존경하는 정 박사님께서 감명을 받으셨다니, 졸고 독후기를 소개한 보람을 느낍니다. 따뜻한 축하의 말씀 감사합니다.
※ ‘윤승원의 청촌수필 블로그’ 댓글
◆ 산빛(고 김영배 수필가 가족) 2021.11.26 13:22
윤승원 선생님 안녕하세요.
아버지의 문학비 제막식 날
경황이 없어서 선생님께 연락드리지
못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늘 아버지를 높여주시고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보여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의 고마움 가슴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문학비가 저희 가족들에게 훌륭한 유산이기에
잘 보존하고 자주 찾아서
아버지를 기리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건필하세요
- 고 김영배 선생님의 자녀 올림
▲ 답글 / 윤승원(전 대전·충남수필문학회장) 2021.11.26. 13:50
아! 이 분이 누구십니까?
존경하는 김영배 선생님 따님이신 김성숙 시인이 아니신지요?
참으로 김영배 선생님을 직접 뵈온 듯, 반갑고 기쁩니다.
따님이 올려 주신 귀한 댓글은 마치 김영배 선생님이 환생하신 거나 마찬가지로
저를 크게 기쁘게 합니다.
늦게나마 김영배 선생님 문학비 건립을 축하합니다.
따님이 말씀하신 대로 가족에게는 ‘훌륭한 유산’입니다.
어디 가족뿐이겠습니까?
대전·충남수필문학회 초대 회장님이셨던 論江 선생님은
생시에 대전·충남 수필문학인의 자존감과 긍지를 한껏 높여주신
대한민국 수필 문단의 거목이셨습니다.
저도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논산에 건립된 ‘문학비’를 둘러 보고
김영배 선생님의 ‘문학 혼’을 다시금 가슴에 새겨보렵니다.
정말 반갑고 고맙습니다.
- 윤승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