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생들과 밤새 게임·성경공부”… 부모 마음으로 제자양육
동양인 여성 최초 미 하버드대 이금하 교목
입력:2024-11-23 03:01
미국 하버드대 이금하 교목이 지난 19일 서울 관악구 갈릴리침례교회에서
지난 40여년간의 캠퍼스 선교에 대해 이야기하며 미소를 짓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세계 최고의 사립 명문대로 꼽히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동양인 여성 최초의 교목으로 선출돼 30년 가까이 활동했다. 그동안 100명이 넘는 교역자를 길러내고 목사인 남편과 함께 세계 14곳에 교회를 설립한 이금하(영어명 레베카 김·73) 교목은 이제 일흔이 넘은 할머니가 됐다. 작은 체구의 그가 서울대 재학 시절 성경공부로 하나님을 만난 뒤 50년이 넘도록 흔들리지 않고 미국의 명문 대학이 밀집한 지역에서 ‘캠퍼스 선교’라는 한 길을 어떻게 달려올 수 있었을까.
수도권 외국인 대학생을 위한 영어 사역을 시작하기 위해 최근 방한한 이 교목을 지난 20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인근 갈릴리침례교회에서 만났다. 그는 침체한 캠퍼스 선교 상황에서 고군분투하는 수많은 사역자에게 “당장 열매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에도 하나님은 일하신다는 것을 믿길 바란다”는 위로를 건네면서도 “캠퍼스 선교가 사역으로 그치면 안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더 집중하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손자뻘 학생과 밤새는 할머니 사역자
이 교목은 손주가 있는 진짜 할머니다. 그러나 여전히 하버드대 교목으로 대학생과 밤새기 일쑤다. 캠퍼스 사역 외에도 전 세계 교회의 목사와 선교사 등 교역자들로부터 쏟아지는 카카오톡 메시지에 대응하느라 ‘누더기 잠’을 잘 때가 많다고 했다.
“세계에 흩어진 우리 교회 성도 800여명으로부터 실시간 연락이 와요. 어떤 것은 촌각을 다투는 긴급한 사안도 있어서 답변을 늦출 수가 없어요. 듣고 결정하고 함께 기도하다 보면 밤낮이 바뀌는 때가 많을 수밖에요. 잠을 쪼개서 자도 충전이 잘 되는 편이에요. 하나님께서 이런 사역을 하라고 건강을 주신 게 아닐까 생각해요(웃음).”
하버드대 ABSK 모임에 참석한 학생들이 학교 근처 이 교목 집에서 보드게임을 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금하 교목 제공
그는 하버드대에서 1991년 ABSK(Asian Baptist Student Koinonia)를 시작해 현재까지 이끌고 있다. 매주 금요일 저녁 7시에 학생들과 만나 밤을 새우는 일이 잦다고 했다. 찬양하고 성경공부를 하는 것은 물론 맛난 음식을 나눠 먹고 다양한 보드게임을 하면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모임 후 몇몇 학생들은 학교에서 가까운 이 교목의 집으로 자리를 옮겨 친교한다고 했다.
말씀에 사랑 더해 진리·참사랑 알리다
“모든 인생의 문제의 답은 오직 성경 말씀에 있음을 가르치심은 물론 그대로 사시는 그 모습에 학생들이 군말 없이 교목님을 신뢰하는 것 같아요.” 갈릴리침례교회 박상혁(62) 목사의 평가다. 그는 이 교목과 남편 폴 김(76) 목사가 1981년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에 창립한 버클랜드침례교회에서 UC버클리 신입생 시절 그들의 첫 제자가 돼 지금까지 캠퍼스 사역에 동참하고 있다.
박 목사는 “일만 스승이 있되 아비는 많지 않다는 사도 바울의 말씀처럼 이 교목님 내외는 교인 숫자에 연연하시지 않고 부모의 심정으로 제자 하나를 길러내시기에 사람들이 저처럼 한번 만나면 수십 년간 함께하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이 교목의 남편인 김 목사는 부부가 두 번째로 개척한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의 안디옥침례교회 원로목사로 있으며 현재 미군한국전참전용사회(KWVA) 군목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교목은 청년들이 물질적 풍요가 넘치는 현대 사회에서 진리와 참사랑에 대해 더 깊이 갈망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세대의 젊은이들은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 여인처럼 진리와 참사랑에 목말라 있다”며 “나와 나의 제자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영적으로 변화한 것처럼 많은 학생이 참사랑이신 예수님을 만나길 원하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진리 안에서 자유케 되기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21세기 리더 키우라’ 부르심 따라… 100여명 실현
이금하(앞줄 왼쪽), 다니엘 조(앞줄 오른쪽) 하버드대 교목이 교내 기독교 모임인
ABSK에 참석한 학생의 지난 5월 졸업식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금하 교목 제공
이 교목은 40여년 전 미국 남침례교단 기자로부터 ‘왜 캠퍼스 선교를 시작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그는 “21세기의 지도자를 양성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답했다고 했다.
이 교목은 “지나고 보니 하나님 은혜로 그때 한 말이 이뤄진 셈”이라고 했다. 1980년에 미국에서 만난 남편과 함께 미국 명문대 밀집 지역에서 캠퍼스 사역을 하면서 길러낸 목회자와 사모, 선교사 등이 100명이 넘기 때문이다.
10년 전부터 하버드대에서 함께 교목으로 활동하는 다니엘 조 목사는 이 교목의 하버드대 ABSK의 첫 제자 중 하나다. 현재 안디옥침례교회의 담임목사이자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교목으로 활동하는 데이비드 엄 목사도 학부 시절부터 이 교목에게서 성경을 배웠다. 한국 미국 우즈베키스탄 아르메니아 등 세계 14곳에 설립한 교회의 목회자도 그의 제자다. 하버드대 ABSK 모임에서는 하버드대 졸업생이 든든한 지원군으로 활동한다. 다양한 전문 분야에서 일하는 8명이 모임을 돕는 것은 물론 재정적으로도 후원한다.
이 교목은 한 알의 썩는 밀알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미국 최초의 해외 파송 침례교 선교사인 아도니람 저드슨 부부의 이야기를 캠퍼스 사역자들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200년 전 미얀마에서 전도지 수만 장을 나눠주며 6년간 성도 한 명도 구하지 못했지만, 이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결신자가 나왔다”며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반드시 기쁨의 열매를 거둔다는 하나님 말씀처럼 인내를 가지고 그 역할을 감당하면 하나님이 그의 때에 거두실 것”이라고 했다.
대학 때 만난 하나님… 캠퍼스 선교의 중요성
이 교목이 하버드대 ABSK 모임에서 성경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금하 교목 제공
이 교목은 ‘하나님 제일주의자’로 살아간다. 하지만 한때 허무주의에 빠질 정도로 신앙과 거리가 먼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미션스쿨인 배화여고를 다녔지만 채플 수업을 잘 듣는 착한 학생에 불과했다. 공부를 잘해 서울대에 들어갔지만 ‘최고를 향해 달리는 삶은 끝이 없다’는 마음으로 괴로워했다고 한다. 그러다 대학 3학년 직전 겨울방학에 1년간 자신을 전도한 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UBF) 친구를 통해 그 모임에서 창세기를 공부하며 하나님을 만났고,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됐다고 했다. 그는 “모든 것의 시작, 곧 나의 근원을 알게 되니 희열이 느껴졌다”고 했다.
서울대에서 식물학을 전공하고 미국에서 박사과정 중 기도 끝에 진로를 바꾸며 당시 믿음 생활을 하지 않던 가족과 부딪히기도 했다. 이 교목은 “결국 제가 다 전도해서 부모님께서도 예수님을 믿고 돌아가셨다”며 “가족 중에는 목사 등 교역자가 많다”고 했다.
그는 미국 골든게이트신학교(M Div)와 고든콘웰신학교(D Min)에서 공부했다.
서울대 후배인 조카 변진수(49) 사모와 조카사위인 홍대원(55) 목사는 서울대 ABSK를 맡고 있다. 홍 목사는 하버드대에서 박사후과정 중 이 교목의 성경공부를 통해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됐다.
그는 “기고만장했던 제가 변화한 것처럼 서울대 등 한국 대학생들에게도 그런 기회를 주고 싶다”고 했다.
캠퍼스 사역 앞서 하나님 더 사랑하길
이 교목은 현재 하버드대 교목 40여명 중 세 번째로 오래 활동하고 있다. 그처럼 복음주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교목은 전체 3분의 1 정도라고 한다. ‘학교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캠퍼스 사역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이 교목도 잘 안다. “30년 전 하버드대에서 캠퍼스 사역을 했을 때만 해도 크리스마스가 되면 거리에서 캐럴을 부르는 등 노방전도가 가능했지만, 이제는 그렇게 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그러나 성경공부 모임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의 제자들이 또 다른 제자를 만들며 50여년을 보낸 이 교목은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사도 바울이라는 한 사람 때문에 세계의 역사가 달라질 수 있었던 것처럼 한 사람의 중요성을 사역하는 내내 절감했습니다. 캠퍼스 사역자들이 한 사람을 바로 세우는 일만 바라볼 때 세계를 변화시키는 21세기 바울이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캠퍼스 사역은 사랑하는 예수님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믿습니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1732155672&code=23111111&sid1=ch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