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양정은 정면3칸 측면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구조의 정자이다.
고려시대에 경상북도 울주군 기성면 망양리 해안가에 세워졌으나 오랜세월이 흘러 허물어졌으므로 조선시대인 1471년(성종2)평해군수 채신보가 현종산 남쪽 기슭으로 이전하였다.
이후1517년(중종12년) 거센 비바람에 파손된것을 1518년 중수하였고 1590년(선조23) 평해군수 고경조가 또 중수하였으나 허물어진채로 오랫동안 방치되었다.
1854년(철종5) 울진현령 신재원이 이축할것을 제안하였으나 여러해동안 재정을 마련하지 못하여 추진하지 못하다가 1858년(철종9) 울진현령 이희호가 군승 임학영과 함께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이후 일제 강점기와 광복의 격변기를 거치면서 주춧돌만 남은것을 1958년 중건하였으나 다시 퇴락하여 2005년 기존 정자를 완전 해체하고 새로건립하였다.
망양해수욕장 남쪽의 바닷가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어 동해를 한눈에 굽어볼 수도 있다.
정자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관동팔경 가운데 으뜸이라 하여 조선 숙종이 "관동제일루" 라 하는 현판을 하사하였다.
또 정철은 관동별곡에서 망양정의 절경을 노래하였고 숙종과 정조는 어제시를 지었으며 정선은 관동명승첩으로 화폭에 담는등 많은 문인 화가들의 예술조재가 되기도 하였다.
태초의 기운 아득히 바다에 풀어지니
뉘라서 이곳 망양정을 알수있으리
흡사 문선왕 공자의 집을 훓어보듯
종묘며 담장 하나하나 훓어본다.
-정조의 어제시-
십리사평망대해:실비 모래밭에서 큰바다를 바라보니
해천요활월창창:멀고 넓은 바다 위 하늘에 달이 창창하다
봉산정여진쇠격:신선들 세계라 인간 세상과는 막혀있고
인재부룡일엽방:바람들은 물위에 뜬 한잎 마름잎과 이웃하네.
- 김시습(등망양정간월)-
뭇 멧부리들이 첩첩이 둘러있고
놀란 파도 큰 물결은 하늘에 닿아있네
만약 이바다를 술로 만들 수 있다면
어찌 한갖 삼백 잔만 마시랴
-숙종대왕어제시-
1580년 1월 강원도 관찰사로 원주에 부임한 송강 정철이 3월에 관동팔경 즉 간성의청간정,강릉경포대,고성의삼일포,삼척죽서루,양양의낙산사,울진망양정,통천의총석정,평해월송정,내금강,외금강,해금강을 유람하고 이작품을 지었다.
1단은 부임해서 원주로 가는길,2단은 내금강의 풍치,3단은 외금강,해금강과 동해안의 풍경,4단은 자신이 신선이 된것으로 비유하며 풍류를 노래했다.
채무기 교수님께서 모두들 바라를 바라보게 했습니다...
입간판에 있던 사진을 잠시 담아봤습니다.가을에 다시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첫댓글 망향이 아닌 망양정 곁에두고
우리가 차올린 신발들 풍경이
압권~~그림이네요..
너도나도 담고자 나란히 섰던
그것,
바구니속에 담고자한
그것은 비단 신발 한켤레뿐이었을까~~ ㅎ
그렇네요.망양으로 수정했습니다.
그리고 이번답사에 채무기교수님께서 배부해주신 자료를 사진사이사이에 설명자료로 올렸습니다.
푸른 바다, 푸른 숲, 정자
즐거운 식사......
좋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네.
동상의 미모가 돋보이네.
관동팔경중 최고의 경치라는 말에 깜짝놀랐습니다.
망양휴게소만 지나쳤지 망양정에는 처음 가봤습니다.
필사님 사진감사~
생전에 낙동강동쪽에서 최고의 사진작가인 필사님을 만난 것은 대단한 행운이고 인연입니다.
그런데 난 가시도 없는데 사진찍자는 미녀가 한명도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