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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1월 12일 월요일
[(녹) 연중 제1주간 월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한나는 엘카나의 아내이고,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프닌나에게 괴롭힘을 당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복음 선포를 시작하시며 어부 네 사람을 제자로 부르신다(복음).
제1독서
<프닌나는 주님께서 태를 닫아 놓으신 한나를 괴롭혔다.>
▥ 사무엘기 상권의 시작입니다. 1,1-8
1 에프라임 산악 지방에 춥족의 라마타임 사람이 하나 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엘카나였는데, 에프라임족 여로함의 아들이고 엘리후의 손자이며,
토후의 증손이고 춥의 현손이었다.
2 그에게는 아내가 둘 있었다.
한 아내의 이름은 한나이고, 다른 아내의 이름은 프닌나였다.
프닌나에게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한나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3 엘카나는 해마다 자기 성읍을 떠나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주님께 예배와 제사를 드렸다.
그곳에는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가 주님의 사제로 있었다.
4 제사를 드리는 날,
엘카나는 아내 프닌나와 그의 아들딸들에게 제물의 몫을 나누어 주었다.
5 그러나 한나에게는 한몫밖에 줄 수 없었다.
엘카나는 한나를 사랑하였지만 주님께서 그의 태를 닫아 놓으셨기 때문이다.
6 더구나 적수 프닌나는, 주님께서 한나의 태를 닫아 놓으셨으므로,
그를 괴롭히려고 그의 화를 몹시 돋우었다.
7 이런 일이 해마다 되풀이되었다.
주님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프닌나가 이렇게 한나의 화를 돋우면,
한나는 울기만 하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8 남편 엘카나가 한나에게 말하였다.
“한나, 왜 울기만 하오? 왜 먹지도 않고 그렇게 슬퍼만 하오?
당신에게는 내가 아들 열보다 더 낫지 않소?”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4-20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15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16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18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19 예수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시고,
20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그러자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그분을 따라나섰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 어부 시몬과 안드레아를 부르십니다. “나를 따라오너라”(마르 1,17). 이어서 야고보와 요한도 부르십니다. 그들은 그물과 배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나섭니다. 부르심에 응답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구원’이라는 큰 사명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던 평범한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1,17)라고 하시며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이 말씀은 삶의 방향을 바꾸는, 온 존재를 향한 부르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부르심에 대한 응답은 세상의 조건이나 계산에 따른 것이 아닌 믿음의 결단이었습니다. 그 결단은 이렇게 드러납니다. 시몬과 안드레아는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1,18). 야고보와 요한은 “아버지 제베대오를 …… 배에 버려두고 그분을 따라나섰다”(1,20). 예수님의 부르심에 그들은 곧바로, 전적으로 응답하였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1코린 1,27)라고 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선택은 우리의 능력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곧바로, 전적으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부르심은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임을 기억하며,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으로 응답합시다.(이철구 요셉 신부)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열정을 눈여겨보시는 주님!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첫 제자단, 시몬과 안드레아,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들은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아 생계를 꾸려가는 어부였습니다. 당시 어부들의 작업은 요즘과 달리 보잘것없었습니다.
조업 때 타고 다니던 배는 작은 풍랑에도 크게 기우뚱거리던 작은 목선이었습니다. 모터도 달리지 않았기에 죽기 살기로 노를 저어 나가서, 일일이 손질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던 고전적인 방식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던 그들에게 던지는 말씀 한 마디가 정말이지 절묘합니다. 예수님은 언어의 귀재, 언어의 마술사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습니다. 그들이 어부였기에, 예수님께서는 어부 입장에서, 그들의 가슴이 정곡을 찌를 강렬한 표현을 사용하십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마르 1,17)
묵묵히 그물을 던지고 있던 청년들은 예수님께서 던지신 그 말씀이 마치 화살이 과녁 정 중앙에 꽂히듯 가슴 한가운데 정확히 꽂혔습니다. 사실 그들은 오랜 세월 셀 수도 없이 호수에 그물을 던져왔습니다. 수만 번, 수십만 번, 어떤 때는 들어 올리기 힘들 정도 결과물이 좋을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그물질은 허탕이었습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평소 이런 생각들이 많이 오고 갔을 것입니다.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그물을 던져야 하는 것일까? 이토록 고되면서도 큰 의미 없어 보이는 일을 평생 하다 죽는다면 억울하지 않을까? 어디 더 신나는 일,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은 없을까?
그때 마침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다가, 그 말씀을 던지신 것입니다.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말씀하시는 바의 정확한 의도는 모르겠지만, 한번 따라 가보자. 밑져야 본전이지. 그동안 물고기는 신물 나게 잡았으니, 이제 그분 말씀따라 사람을 한번 낚아보자!
다른 한편 당신의 인류 구원 사업의 첫 제자단으로 선택하신 4명의 청년이 어부였다는 것 역시 놀랍습니다. 당신의 사명을 공유하고, 당신과 함께 만방에 나아가서 복음을 선포할 제자로 적합한 직업은 결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율법 교사도 아니었습니다. 성경에 대한 지식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저 하루 온종일 그물을 치고, 잡은 고기를 손질해서 내다 팔고 구멍 난 그물을 수선하던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복음을 선포하려면 수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조리있게 설교도 해야 하는데, 그럴 자격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것에 하느님의 방식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지극히 단순하고 평범한 사람들, 가르치는 자격이나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선택하십니다. 그들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열정을 눈여겨보십니다. 하얀 백지장 같은 그들 내면에 당신의 은총을 선물로 부여하십니다.
그들에게 당신의 능력을 불어넣으셨고, 강력한 힘과 불굴의 용기를 채워주셨습니다. 스스로 깜짝 놀랄 정도로 기적을 행할 에너지를 심어주셨습니다.
제자들 입장에서 예수님의 얼굴에서 거역하기 어려운 거룩한 그 무엇을 느꼈습니다. 그분 존재로부터 흘러나오는 강렬한 광채, 신비스러운 매력, 고결함과 신비스러움에 끌려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이윽고, 함께 작업 그물을 수리하고 있던 아버지며, 생계의 도구인 배와 그물까지 뒤로 하고 그분을 따라나섰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지난 12월 7일에 ‘자선 음악회’가 있었습니다. 연주자들은 재능을 기꺼이 기부하였습니다. 이번에는 본당 성가대, 울뜨레아 중창단, 어린이 합창단도 함께하였습니다. 청년들은 무대를 준비하고 정리하였습니다. 홍보분과에서는 프로그램 제작과 영상 제작을 맡아주었습니다. 자선 음악회의 취지를 아는 교우들도 기쁜 마음으로 함께 하였습니다. 1시간 20분 동안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즐겁게 지냈습니다. 음악회의 수익금은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수고해 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오늘 본기도의 내용처럼 해야 할 일을 깨닫고, 깨달은 일을 실천하는 분들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입니다. 다음날, 월요일 오후에 성당엘 갔습니다. 월요일은 성당을 닫기에 아무도 없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친교실 주방에 교우들이 있었습니다. 무슨 일인지 물었습니다. 자기들 구역이 돌아오는 주일 점심 봉사라고 합니다. 미리 김치를 담그고, 돼지고기볶음에 들어가 재료를 다듬으러 왔다고 합니다. 보통은 토요일 오후에 와서 준비하고, 주일에 점심 봉사하는데, 그 구역은 월요일부터 준비하였습니다. 오늘 본기도의 내용처럼 해야 할 일을 깨닫고, 깨달은 일을 실천하는 구역이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40일 동안 단식하며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를 마친 후에는 사탄의 유혹도 받았습니다. 사탄의 유혹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이겨내신 예수님께서는 해야 할 일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깨달았던 일을 실천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새로운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묶인 이에게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병든 이들이 치유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느님 나라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전해지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의로움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함께 할 동료를 부르셨습니다.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고기 잡던 베드로와 안드레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라. 너희는 이제 사람 낚는 어부가 될 것이다.” 베드로와 안드레아는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해야 할 일을 깨달았고, 깨달은 것을 실천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야고보와 요한도 부르셨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배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해야 할 일을 깨달았고, 깨달은 것을 실천하였습니다.
오늘의 본기도는 이렇습니다. “주님 백성의 간절한 기도를 자애로이 들으시어 저희가 해야 할 일을 깨닫고 깨달은 것을 실천하게 하소서.” 저는 여기에 하나 더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게 하소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께서 늘 우리 곁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맛보는 길은 나의 거짓된 마음을 비우는 것입니다. 낡은 것들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을 채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물과 공기가 늘 우리 곁에 있듯이, 우리 곁에 가까이 있는 하느님 나라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장소의 개념으로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결단의 개념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인식은 3차원에 머물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 나라는 단순한 3차원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의 본질은 버리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모든 권한과 능력을 버리시고, 인간이 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듯이, 첫 번째 제자들도 배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죽으면 살리라’라는 말처럼 모든 것을 버릴 때,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제 제자들은 하느님 나라를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2026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신앙 안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을 깨달았다면 기쁜 마음으로 실천하면 좋겠습니다.
<사람 낚는 사람이겠지요>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마르 1,17)
사람이
사람임에도
사람답지 않은
세상 한가운데서
죽어도
사람이기에
사람다운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사람 낚는 사람이겠지요
사람이
사람에게
사람이 아닌
세상 한가운데서
죽어도
사람에게
사람인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사람 낚는 사람이겠지요
사람을
사람으로
받들지 않는
세상 한가운데서
죽어도
사람이기에
사람으로 받드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사람 낚는 사람이겠지요
오늘의 성인
성 베네딕토 비스코프 (Benedict Biscop)
신분 : 수도원장
활동연도 : 628-690년
같은이름 : 베네딕투스 베네딕또 베네딕뚜스 베네딕도 분도 베네트
영국 노섬브리아(Northumbria)의 국왕 오스위의 궁중 관리이자 귀족 출신인 성 베네딕투스 비스코프(Benedictus Biscop, 또는 베네딕토)의 본래 이름은 비스코프 바두칭(Biscop Baducing)이었다.
그는 25세 되던 해에 궁중을 떠났다. 그는 653년에 로마(Roma)로 순례의 길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길에 성경 연구와 영적인 일에 헌신하려는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두 번째 로마 순례에서 돌아오던 어느 날 그는 프랑스의 레렝스(Lerins) 수도원에서 수도자가 되었으며 2년을 그곳에서 지냈다.
세 번째로 로마를 순례했을 때 교황 성 비탈리아누스(Vitalianus, 1월 27일)가 마침 캔터베리(Canterbury)의 신임 대주교로 선임된 성 테오도루스(Theodorus, 9월 19일)를 수행토록 명하여 이를 성공리에 마쳤다.
성 테오도루스는 그를 캔터베리의 성 베드로(Petrus)와 성 바오로(Paulus) 수도원의 원장으로 임명하였고, 2년 후에 그는 성인들의 유해, 종교 예술품, 회화, 원고 등을 수집하기 위하여 로마로 귀향하였다.
674년에 그는 위어(Wear) 강 입구에 수도원을 세워 성 베드로에게 봉헌하였다.
이 건물은 그 당시 영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공법으로 지었는데, 프랑스의 장인들이 지어 지금도 유명한 위어머스(Wearmouth)의 성 베드로 수도원이 되었다.
그리고 682년에는 타인(Tyne) 강에서 6마일 거리에 두 번째 수도원을 짓고 성 바오로에게 봉헌하니 이곳이 재로우(Jarrow)의 성 바오로 수도원이다.
그는 또 위의 두 수도원 수도자들에게 성무일도를 노래하고 그레고리안 성가를 익히도록 음악 전문가를 초빙하였다.
그의 지도하에 두 수도원은 학문과 로마 전례의 중심지로 변하게 되었다.
그는 생애의 마지막 3년을 중풍으로 침대 위에서 지내다가 1월 12일에 운명하였다.
그의 전기는 제자인 성 베다(Beda, 5월 25일)가 썼다.
그는 베네트 비스코프(Benet Biscop)로도 불린다.
성녀 마르가리타 부르주아 (Margaret Bourgeoys)
신분 : 선교사 설립자
활동연도 : 1620-1700년
같은이름 : 마르가리타 마르가리따 말가리다 말가리따 마가렛
프랑스 샹파뉴(Champagne)의 트루아(Troyes) 출신인 성녀 마르가리타 부르주아(Margarita Bourgeoys)는 신심 깊은 가정에서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20세 때에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 카르멜회, 클라라 관상 수도회에 차례로 입회를 청하였으나 모두 거절당하였다. 1652년에 그녀는 캐나다의 빌르 마리(Ville-Marie, 현 몬트리올)에 정착 중인 프랑스 총독이 자신의 식민지 내의 학교 선생을 원하자 그에 동의하고 1653년 퀘벡의 몬트리올(Montreal)에 도착하였다.
그 후 4년 동안 '비교회법적인 수련기'를 마친 그녀는 1658년에 개교한 학교의 교장이 되었다.
이 학교는 점차 발전을 거듭하였고, 또 그녀는 '마리아회'를 조직하고 적극적으로 활약하였지만 이로쿼이(Iroquois)족 인디언과의 전쟁으로 인하여 잠시 귀국하였다.
프랑스에서 자신과 함께 할 젊은 여성들을 모집하여 캐나다로 돌아온 그녀는 가장 버림받고 가난한 지역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1676년 마침내 퀘벡의 주교로부터 노틀담 수도회의 법적 설립을 승인받았다.
그러나 그녀의 사도직 활동이 수월하지만은 않았다.
수녀원에 화재가 발생해 자신의 조카를 포함하여 두 명의 수녀를 잃는 비극이 있었고, 또 담당 주교와의 심각한 견해 차이도 있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노틀담 수도회는 괄목할만한 발전을 거듭하였다.
73세가 된 성녀 마르가리타는 건강과 기력이 점차 쇠하자 수도원 총원장직에서 은퇴하여 여생을 지내다가 1700년 1월 12일에 선종하였다.
그녀는 1950년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2년 10월 31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성 엘레드 (Aelred)
신분 : 수도원장 저술가
활동지역 : 리보(Rievaulx)
활동연도 : 1110-1167년
같은이름 : 엘레드 앨레드 에텔레드 에일레드
영국의 헥스햄(Hexham) 출신인 성 아일레드(Aelred, 또는 엘레드)는 에텔레드(Ethelred)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신심 깊고 영적인 스코틀랜드 다윗 왕의 궁중에서 일하는 집사장이었다.
그는 궁중에서 지내는 것보다 더욱 엄격한 생활을 염원하여 24세 되던 해에 스코틀랜드를 떠나 영국 요크셔(Yorkshire)의 리보에서 시토회 수도자가 되었다.
그는 1142년 링컨셔(Lincolnshire) 리버스비의 시토회 수도원의 원장으로 피선되어 5년을 봉직하다가 다시 리보 수도원의 원장으로 되돌아 왔다.
설교와 엄격한 생활로 뛰어난 덕행을 쌓았던 그는 영국과 스코틀랜드를 두루 다니며 복음을 선포하여 생전에 이미 성인으로 공경을 받았다.
그는 "영적 우정에 관하여"란 저서를 펴냈으며 수많은 설교집과 기도문을 만들었다. "사랑의 거울"이란 책은 그리스도교의 완덕을 다룬 책으로 매우 유명하다.
성 베르나르도 (Bernard)
신분 : 수사
활동지역 : 코를레오네(Corleone)
활동연도 : 1605-1667년
같은이름 : 버나드, 베르나르두스
필리포 라티노(Filippo Latino)란 한 청년은 시칠리아(Sicilia) 섬의 코를레오네에서 신기료장수를 하던 사람인데, 그 후에는 시칠리아 최고의 검객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어떤 정치적인 분쟁에 뛰어들었다가 쫓기는 몸이 되자 성당의 성소로 은신하여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밖으로 나갈 입장이 못 되어서 성당에 머물다가 이런 생활을 계속하면 자기 영혼을 잃어버릴 것으로 단정하고, 1631년에 27세의 나이로 카푸친회에 입회하여 베르나르두스(Bernardus, 또는 베르나르도)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그때부터 그는 훌륭한 검객답게 수도생활에서도 그 능력을 발휘하여 빠른 속도로 성장하였다.
그는 단식과 세상을 가볍게 여기는 자세에서 특별히 뛰어났으나, 가끔 난폭한 검객의 기질 때문에 큰 고생을 하였다고 한다.
그는 차츰차츰 탈혼에 빠졌고, 공중에 떠오르는 체험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병든 동물을 치유했는데, 그때부터 동물들을 지극히 사랑하였으며 가끔 동물들을 위하여 주님의 기도를 함께 하기도 하였다.
성 베르나르두스 만큼 동물애호가는 없을 것이라고 한다.
팔레르모(Palermo)에서 사망한 그는 1768년 교황 클레멘스 13세(Clemens X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1년 6월 10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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