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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rly Shells 진주 조개잡이 / 빌리본 악단 운전면허 시험과 첫 운전
나의 첫 운전면허 시험은 군대에서 근무 할 때다. 필기시험을 대비하여 이론에 대한 공부 는 전혀 하지 않았고 문제가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나올 것을 생각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입대하면서 운전면허에 대한 사회분위기도 몰랐으며 지금처럼 면허시험에 대비한 문제은행식 책이 있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고 전혀 관심도 없었다. 응시 하게 된 동기는 군 운전면허증을 취득하면 사회운전면허증으로 교환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터다. 일단 필기시험이라도 합격하면 실기는 대대장 운전병한테 부탁해 치룰 예정이었다. 시험은 가평에 소재한 제3야전수송교육대라고 하는 군 운전교육부대인데 연병장에서 두 팔 벌린 상태의 간격을 펼치고 군 감독관 입회아래 치렀다. 결과는 합격. 남은 것은 실기시험 코스다. 대대장 집차 운전병은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허 병장이었다. 결과는 미역국. 야! 민간 운전면허증이 있는 네가 떨어지면 으흐흐......,
전역 후에 민간인 운전 면허증에 응시하려니 정녹색약이라고 하면서 응시자격이 안된다고 했다. 입대하면서 신체검사 받을 때에 잘 보며 넘겼던 색약검사 책자는 사회에서 보니 책자 안에서의 숫자를 읽을 수가 없었다. 그것이 왜 읽을 수 없었는지 도무지 모를 일이었다. 결국 수 년 동안 응시 할 수가 없어 기다리던 어느 날 정부에서 색약도 응시 할 수 있다는 법령 개정으로 인해 마침내 응시 할 수 있었다. 그해가 1988년 봄으로 기억된다. 첫 번째 필기시험은 탈락이다. 크라운판 응시책자를 한 번도 보지 않고 응시를 하고 요행을 바랬으니 합격할 리가 있겠는가. 교만도 이런 교만이 있을까. 그해 12월과 연말이라 각종 모임으로 인하여 그만 흘려보냈다. 이듬해인 1989년 36세에 드디어 월등하지 못한 성적이었지만 운전 면허증을 취득 할 수 있었다. 몇 해 동안 운전은 하지 못하고 흔히 말하는 장롱면허가 되고 말았다. 1992년부터 지금의 내 일터인 강남문구를 운영하면서도 말이다. 그 당시 나는 직장에 근무하고 있었다. 사업장 일은 두 처남과 누나 그리고 저녁 시간은 아내가 나와 있었고, 월간 잡지 등 부피가 많고 무거운 주문물품 배달은 둘째 처남이 하고 있었다.
그 후 소유했던 구형 코란도 차량을 매각하고 휘발류 차량인 스포티지 첫 모델을 구입했다. 운전면허 취득 후 몇 년이 지났을까. 시내를 벗어나고 싶으면서 운전하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물론 면허 취득 후 실습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평소 처남 옆에 타고 다니면서 눈으로 익혔던 운전모습을 기억하며 스포티지를 살살 운전하면서 주차장을 빠져 나왔다. 그동안 움츠리며 호시탐탐 스포티지 운전대를 언제 잡을까 가슴 조이고 그 때를 노리며 날 수 없었던 약한 날개를 펼치려니 망설였던 내 가슴은 콩닥콩닥 거리며 긴장이 되었다. 손바닥은 벌써 미끌미끌 거리며 땀이 나기 시작했다. 당시 내 사업장은 얼마 전 개통한 지금의 지하철 9호선 봉은사역 근처였다.
사업장을 나오면 바로 지금의 봉은사역 사거리다. 신호를 받고 직진했다. 운전을 하면서도 혹시 시동을 꺼뜨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또한 좌회전을 어떻게 하지하면서 또 다른 두려움이 내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 당시 AID차관아파트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하면서 언덕위로 올라섰다. 횡단보도가 있는 곳이기에 일단 잘 멈췄다. 멈춰 서 있는 동안에도 가슴은 쿵쿵거리며 뛰고 있으면서 손바닥은 때와 함께 계속 미끈거렸다. 시동 꺼짐을 조심하면서 지금의 우리들 병원 사거리역(7호선 청담역)방향으로 직진하면서 바깥차선으로 들어섰다. 이곳에서도 우회전 만하면 경기고등학교 정문까지 편안하게 갈 수 있는 3차선 도로다. 그런데 또 걱정거리가 생겼다. 경기고등학교 정문 사거리에서 우회전하면 삼성동 무역센터방향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떡 버티고 나를 기다릴 것이기 때문이다. 두려움은 더욱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경기고등학교 앞 사거리를 우회전하면서 언덕에 오르는 찰라 그만 시동을 꺼뜨리고 말았다. 시동을 켜고 출발하려면 이내 또 꺼지고 만다. 몇 번이고 또 꺼뜨렸다. 나의 스포티지 차량은 지금처럼 흔한 오토가 아닌 수동이었기 때문에 처음 운전대를 잡은 나는 기어작동이 매우 미숙했다. 결국 차를 출발시키지 못하고 그만 언덕 중간에 세워 놓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난감했다. 영동대교 방향에서 뒤따라오던 많은 차량들이 빵빵 대며 난리가 났다. 언덕을 오르며 진행하던 많은 차량들이 언덕 중간에 멈춰있는 내 차 때문에 비켜 오르려니 자동차들은 서행 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차량들이 모두 지나간 후 물끄러미 초조하게 서 있으니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경기고 정문 앞에 손님을 기다리던 택시기사가 와서 언덕위에 까지 내 차를 올려다 놓고 나에게 운전대를 인계해 주었다.
내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 택시기사 도움에 나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그 순간을 탈피 할 수 있었다. 정말 창피할 노릇이었다. 모든 차량이 삼성역 방향으로 갈 무렵 창피를 무릅쓰고 운전대를 다시 잡을 수 있었다. 백 여 미터만 내려가면 봉은사 사거리다. 그 사거리에서 시동 꺼뜨리지 않고 좌회전 한 번만 잘 하면 강남문구 내 사업장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좌회전 신호가 들어왔다. 살살 클러치를 떼면서 운전대를 돌리니 용케 좌회전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첫 좌회전이라는 시험에 시험 아닌 시험에 합격한 것이다. 주차장 입구가 좁아 조심조심 하면서 건물 뒤 주차장에 무사히 주차를 했다. 그리고 가계로 들어가 아내에게 “여보! 나 조금 전 봉은사 사거리를 출발하여 오천주유소를 지나 경기고등학교를 한 바퀴 운전하면서 돌아왔다“ 고 하니 아내 왈 ”어쩐지 한 동안 어디가고 안보일까“ 했다고 말하면서 언덕위에 멈춰 있었던 순간을 이야기 하니 아내가 깔깔대고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웃는 모습이 마치 웃어 죽는 줄 알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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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맑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맹호
누구나 처음으로 운전석에 앉아 운전을 하는 그 날은 잊지못할거예요. 저역시 차가 굴러가는것조차 신기했었으니까요 온몸에 식은땀나고 주차를 해놔도 뿌듯하고 차선변경 하나에도 마냥 대견하고 기특했으니.
지금은 대전광역시를 눈 감아도 훤하시죠^^^
자만하면 아니되옵니다.
아들 깁스는 다 풀렀는지요.
오늘 날씨가 무척 좋습니다. 밖에 나가고 싶기도 합니다.
호명호수 정상 최00카페에서 호수를 내려다 보았던
지난 해 야외에서의 생각이 납니다.
올해도 4.5월 봄나드리 한 번도 못해 안달이 나 있습니다.
즐건 오후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맹호
@음악과 대화 ㅋㅋㅋ 대전시내 누빌정도는 아니구요 ㅎㅎ 집 근처나 외곽도로 고속도로 쫌 다닐정도입니다.
아들이 다치지 않았을땐 아들이 운전하니 제차례까진 안오더라구요~~~^^ 아들은 깁스를 안하고 보조기랑 목발로 다니구 있어요. 찢어진 연골조각들 다 긁어내서 굳이 깁스가 필요하지않고 무릎 비틀어지지 않게 힘받아 지탱할수 있도록 보조기가 필요할뿐~~ 제자리잡기까지 좀 오래걸리겠지만 훗날에도 무릎에 충격닿는 운동은 금지라니까 걱정이긴해요. 축구.농구.배드민턴..... 금지라네요.
@코알라야 베스트 드라이버!!1
운전 많이 하고싶으신가뵈요^^^
무리한 운동은 진짜 금지해야 하겠습니다.
적당히 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에....여!
어른이 되어 가면서
원래대로 잘 나앗으면 하면 바랩입니다.
맹호!
@음악과 대화 그랬으면 좋은데 반월상연골은 재생이 안되서 한번 망가지면 그걸로 끝이래요. 조심해서 살아가야하는데....
@코알라야 기적을 바라봅니다.
맹호!
여름노래도너무좋고요 나는아직면허증도없네요 술먹는면허증은금방딸것같은데 자동차운전면허증은없답니다
주말이네요 주말잘보내세요
주일 저녁인데 비가 제법 내립니다.
안녕하셰요. 시골땅님.
자동차 운전면허 쉅습니다.
술 마시는 면허보다 쉽고 고통도 없습니다.
새로운것 도전이라 생각하시고
큰 마음 먹고 일단 시도해 보셔요^^^^
올 봄에 비가 충분히 내리는거 같구요.
하시는 일에 촉촉한 비 처럼 채워지고 형통이
있기를 바랍니다. 맹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