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이란 비슷한 나이로 서로 친하게 지내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세상을 살아가게 되고, 더욱이 같은 사회에서 같은 목적이나 취지를 가지고 생활하는 사람들은 자주 만나 어울리기 마련이다. 이런 인간관계 속에서 벗이 생긴다. “벗 삼다, 벗하다, 벗을 트다”는 말은 사람들의 만남에서 서로 허물없이 친하게 사귐으로써 서로 서먹서먹한 높임말을 쓰지 않으며 터놓고 정답게 지내는 사이를 말한다.
벗과 같은 뜻으로 쓰이는 말로는 친구, 동무, 우인(友人), 붕우(朋友), 붕지(朋知), 붕집(朋執), 동료(同僚), 동지(同志) 등이 있다. 이 중에서 동무라는 말은 어려서부터 친근하게 지내 온 벗을 다정하게 부르는 말이었다. 그러나 광복 후 조국의 분단과 함께 북한에서 이른바 공산주의에 뜻을 같이하는 동지라는 뜻으로 나이와 관계없이 동무라는 말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남쪽에서는 쓰기를 꺼리는 말이 되기도 했다.
벗의 옛말은 ‘벋’이었다. 한자로 벗을 뜻하는 ‘友(우)’는 왼손을 나타내는 ‘𠂇(왼 좌)’자와 오른손을 나타내는 우(又)’자를 조합한 글자로써 손을 마주잡고 서로 도우며 더불어 친하게 지낸다는 뜻을 담고 있다. 벗을 다정하게 이를 때는 벗님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렇듯 벗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은 모듬살이와 더부살이의 결과였다고 본다면 벗이라는 말의 역사도 우리 겨레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벗의 관계를 밝힌 최초의 대표적인 기록은 『삼국사기』이다. 이 책에는 6세기 후반기의 원화(源花)와 화랑(花郎) 등, 청소년의 모듬살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화랑은 그 수양방식으로 서로 도의를 닦는 일(相磨以道義), 서로 시와 노래를 즐기는 일(相悅以歌樂), 명산과 대천을 찾아 즐기는 일(遊娛山川 無遠不至)을 들었다. 이런 모듬살이에서 생기는 서로의 관계가 바로 벗의 관계이다. 여기에 새로운 유불선(儒佛仙)의 정신이 가미된 원광(圓光) 대사의 『세속오계(世俗五戒)』가 7세기에 들어 화랑들의 이념이 되었다. 원광(圓光) 대사가 화랑이었던 귀산(貴山)과 추항(箒項)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 지었다는 이 『세속오계(世俗五戒)』에는 “믿음으로써 벗을 사귀어야 한다(交友以信)는 벗의 관계가 적시되어 있는데 이 말은 삼강오륜의 하나인 ”벗의 도리는 믿음에 있다(朋友有信)“는 말이다.
벗을 노래한 옛날 문인들은 많다. 정철(鄭澈)의 “남으로 생긴 중에 벗같이 유신하랴, 이 몸이 벗님 곧 아니면 사람됨이 쉬울까”, 박인로(朴仁老)의 “벗을 사귈진 데 유신(有信)케 사귀리라, 신(信) 없이 사귀며 공경 없이 지낼소냐, 일생에 구이경지(久而敬之)를 시종 없게 하오리라”, 낭원군(朗原君)의 “남으로써 친한 사람을 벗이라 일렀으니, 유신 곧 아니하면 사귈 줄이 있을소냐. 우리는 어진 벗 알아서 책선(責善: 서로 옳은 일을 권함)을 받아보리라” 등의 시조들이 모두 벗과의 믿음을 강조하였다.
윤선도(尹善道)의 『오우가(五友歌)』도 벗을 노래한 멋진 글이다. “내 벗이 몇이냐 하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긔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또 이름 없는 어느 문인은 “거문고와 술, 달과 매화꽃으로 벗을 삼으며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세사(世事)는 금삼척(琴三尺)이요, 생애는 주일배(酒一盃)라, 서정 강상월(西亭 江上月)이 뚜렷이 밝았는데, 동각(東閣)에 설중매(雪中梅) 데리고 완월장취(玩月長醉)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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