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명- 식탁 위의 한국사
책명- 식탁 위의 한국사.hwp
저-주영하
출- 휴머니스트 출판그룹
독정-2018.2. 27 화
ㆍ20세기 한국 음식사 시대 구분
1876년 고종 13년. 조선과 일본 사이 강화도조약으로 서양인, 중국인, 일본인이 한반도에 유입한 1900년대 이들 나라 음식 유통
2. 1900년대 이후 조선총독부 농사시험장에서 음식 재료의 특성화 지역적 대량 생산 체계 구축 시도, 1930년대 중반에 산분해간장인 아미노산 간장이 왜간장이라 불리며 1960년대에 전국에 150여개 공장이 있었음
3.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수 1960년대 까지- 북한에서 500만 이주 전쟁 기아로 60년대 양조간장, 화학조미료 갑 싸 이용. 60년 대 박정희 정부는 소비재인 식품공업의 성장을 불량식품이라며 단속을 강화했다.
1951년 12월 동아일보 보면 자작면(짜장면) 소반(볶음밥) 1800원. 비빔밥, 만둣국 2000원, 장국밥 1500원. 짜장면이 1950년 대 후반부터 한국인의 대중음식으로 자리잡기 시작, 화교는 중국 대륙의 공산화와 한반도의 남북 분단으로 1.4 후퇴 때 귀국. 남하한 화교 38따라지는 해뱡 후 6.25 전란 때 까지 1천 3백명. 1.4 후퇴 때 3백 30명, 총 1천 6백여 명이 남하하고 주로 무역업을 하던 화교들은 본국과 연결이 끊겨 타이완으로 가고 나머지 영세 상인들이 중국 음식점을 차려 호구지책을 마련함-
1950년대 말부터 중국 음식점이 급증한 이유는 1963년 한국 정부가 화교인의 토지 소유를 금하는 정책으로 농촌에서 채소 재배하던 화교인이 도시로 나와 음식점을 하나 고급 청요리를 만들 기술이 없어 조리법이 수월한 우동과 짜장면, 짬뽕 등 음식 사업에 참여함. 박정희 정부는 수시로 짜장면 가격에 시비를 걸어 밀가루의 무상공급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1964년부터 중극 음식점은 짜장면에 감자를 넣어 면의 양을 줄이고 고기값이 올라 가격을 올렸으나 보사부가 가격 인하를 종용. 70년대까지 가격 통제함.
1969~1980까지
서민이 재래시장에서 떡갈비를 사먹었다면 자가용 있는 사람들은 야외애서 갈비구이를 먹는 일을 호사로 여겼다. 이때부터 강남에 갈비구이 전문집이 우후죽순. 천여 평 대지 건물 바닥에 열대어가 다니고 인공폭포와 물레방아 시설을 구민 수속공원이 개발된 신도시 강남에 들어섰다. 이름도 ‘가든’, 1963년 9월 인스턴트 라면이 생산되어 라면의 면 반죽에 공장제 간장을 사용. 60년대에 각종 조림, 구이에 양조간장을 서 한국 음식은 공장제 간장의 단맛에 빠짐.
76년 박정희 정부는 화교의 교육권과 재산권 박탈 정책으로 화교의 중국 음식점을 한반도에서 쫓아내기 시작, 중국 음식점이 한국인에게 넘어감. 이때 한국인이 배달해 먹는 음식 1위로 짜장면을 꼽았다. 한국 전쟁 이후 미국은 한국에 자미국 정부의 과잉생산 농산물을 강제로 사도록 MSA (상호안전보장법) M40조(원조액 가운데 일정액을 미국 잉여농산물 구매에 쓰도록 규정한)를 내세워 군사동맹을 내세워 서유럽에 농산물 수입을 강요. 프랑스와 독일은 전쟁으로 망가진 농촌을 복귀해 점차 미국산 농산물 수입량을 줄였다. 그런 와중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해 잉여농산물의 또 다른 소비자가 생김. 미국 잉여농산물을 원조국의 빈곤층 원조, 재해구제 원조, 학교급식에 무상 제공했다. 1955년 후 한국 초등학교에 식빵과 밀가루가 무상 공급, 칼국수, 수제비, 잔치국수가 한국집에서 식사가 되었다. 이때 미국 잉ㅇ여농산물 밀가루, 설탕, 면직물의 산백산업이 한국 경제의 중심축이 되었다. 1963년 인스턴트 라면이, 69년에 인스턴트 칼국수가 상품으로 출시, 제 3공화국이 줄기차게 추진했던 혼분식 장려운동은 밀가루 음식의 소비를 부추겼다. 71년에는 쌀 편식서의 일대 변혁으로 유명 칼국수집은 점심시간에 만원(분식점 3백 20여 개)
80년 후반에 바지락칼국수 개발
미국의 밀가루 원조로 국수 머기 시작하자 개펄에서 캐낸 바자락을 칼국수에 넣어 먹게 되었고 제부도 방조제 공사로 건설현장 인부들이 즐겨 먹자 방조제 완공 후 관광객 메뉴가 됨. 81년 전두환 정부 초기에 프라이드 치킨 집에 불황 극복을 위해 생맥주를 함께 팔기 시작. 1730년대 미국 남부 흑인 노예들이 농장주 백인이 내다버린 닭 날개나 발, 목 등을 먹기 쉽게 바싹 튀겨 먹은 데서 유래. 한국은 한국전쟁 이후 미군 부대 중심으로 유입. 미군 부대에서 근무하던 한국인의 입소문으로 ‘치킨센터’가 생기고 2000년에 유행했던 안동찜닭도 70년대 초 안동 구시장에서 튀김통닭을 팔던 상인이 개발해낸 음식이다. 1980년대 면류 프랜차이즈 회사의 색심 전략은 빠르고 친절한 서브스로 성공함.
1990년대 세계화 시대에 진입.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해외교류 확대. 1998년 전국 초등학교 집단급식 김치 필수 반찬. 1990년 7월에 미국계 ᅟᅡᆮ국적 커피 체인점이 스타벅스 1호점을 이화여대 근처에 냄. 맥도날드화로 동네 밥집을 사라지게 만들었고 1980년대 산업화로 교통이 편리해지자 지역 특색을 잃어버리고 사는 입맛의 일체화가 되어 메뉴와 맛의 균질화가 됨
2012년 밀 자급률은 2%, 국내 밀 수입량은 연간 240만 톤, 이중 60%가 국수용
ㆍ일찍 일어나 찬 기운에 목을 웅승거리고 선술집(탁배기) 구수한 냄새와 푸군히 더운 김이 쏟아져 나오는 목노 안에 들어서 개다리 상에 걸터앉아 밥 한 술을 놓아 훌훌 마시는 맛은 산해 진미. 콩나물 국 옆에(겨울 음식)
ㆍ음식을 비교할 때 끼니만을 해결하는 음식점인지, 사교 목적 레스토랑인지 구분하자면 서양인, 중국인, 한국인은 집에서 여러 음식을 펼쳐놓고 먹는 공간 계열형이고 시간 계열형(사교 목적 고급 음식점)은 고급 레스토랑 뿐이다.
미국에서 20년 살다 한국 온 사람의 여섯 살 아들이 닭걀 찜을 혼자 다 먹고 다른 반찬에 손을 대자 한국 할머니, 할아버지는 음식 독시이라며 버릇없는 태도라 했다. 미국 대학 식당에서도 식판에 빵, 채소, 고기 요리, 디저트를 함께 받아 오지만 먹을 때는 하나씩 따로 먹는다하지만 한국인은 밥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은 채 곧장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어넣고 국물을 떠먹어야 간이 안 되어 있는 밥과 간을 맞춰 먹을 수 있다.
ㆍ천정환은 이어령의 <흙속에 저 바람 속에>는 민족을 바라보는 눈이 타자, 서구와의 비교를 통해서만 작동한다고 지적하며 내면화된 오리엔탈리즘(서양의 동양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태도)이라며 멋진 학문의 포장지를 둘러준 셈이라 했다. 이는 선진국인 남과 다른 우월한 한국 문화론을 심어주었다고 한다. 모든 음식을 식탁 위레 펼치는 공간전개형의 프랑스식 상차림은 16세기에 형성, 19세기까지 유럽 후작의 궁궐에서 열린 행사 때 행해졌던 식사 방식이었다. 혁명 이후 러시아식 상차림이 도입- 커다란 구이는 음식이 차려진 상에서 바로 썰어 대접한 걸 보면 서유럽의 시간 계열형 방식은 20세기 파리 레스토랑에서 일반화되었다.
2000년대 이후 한국 음식이 세계 여러 곳 관심을 받는 이유는 한국 경제의 성장과 함께 한국인이 세계 각지로 이동한 결과다. 다문화사회인 오늘날 한국 사회는 외국인 노동ㅈ의 고유한 식생활 문화에 관심보다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려 애쓴다. 다문화가정을 위한 식재료 공급 서비스에 대한 관심보다 외국인 주부를 행사장에 불러내기 바쁘다. 이것은 차이를 전재한 동화 정책의 변주다. 한국인이 생산, 소비하는 한국 음식이란 것도 혼종 과정을 겪은 것이다. 2005년 대장금 열풍으로 인한 한국음식에 대한 관심도 혼종의결과다 미셀 오바마의 한국 김치 사랑은 미국 사회의 비만 문제 해결을 위한 한 방편이지 그녀가 한국 김치를 메일 먹는 유사 한국인이 되겠다고 한 것은 아니다. 이런 일에 열광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그보다 한국 사회에서 먹고 마시는 일을 두고 벌이는 다양한 사건들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식량자급자족문제, 식품첨가물 문제, 수입농수축산물 문제, 공장제 농축수산업, 생산물의 안전 문제, 농수축산물을 둘러싼 유통 문제, 음식물 쓰레기 문제, 불량식품, 농민과 어민의 가난, 결식아동 문제, 학교급식의 균질화가 만들어낸 음식 기피 문제, 영양과 건강의 진실 문제, 식구가 해체되는 문제, 갑을 관계에서 신음하는 식음료 가맹점주의 비애, 음식점 주방과 홀 사이 감정싸움, 음식점 감정노동자의 인권 침해, 음식점과 식품회사를 골탕 먹이는 블랙켠 슈머, 원산지 표시 없는 마트나 시장의 불안감
식사로서의 음식은 일상이지만 문화와 역사로서의 음식은 인문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