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대 커플의 ‘혼수품 1호’남성증명서, 성기능 검사의 문화
“당신을 건강한 남성으로 임명합니다~”
한 비뇨기과에서 발행 중인 ‘남성 증명서’가 신세대 커플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자’는 일종의 ‘방어막’인 셈이다. 일부 혼주들의 경우 남성 증명서를 혼수품으로 지목하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오는 3월 결혼 예정인 직장인 김모씨(33)는 최근 팔자에 없는 남성 건강검진을 받아야 했다. 신부측에서 혼수품으로 남성 증명서를 요구했기 때문. 결혼한 친구들 중에 건강진단서를 혼수품으로 제출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지만 남성 증명서는 ‘금시 초문’이라 적지 않게 당황스럽다는 게 김씨의 속마음이다.
그러나 ‘나 몰라’식으로 발뺌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여자쪽에서 먼저 솔선수범해 산부인과에서 받은 증명서를 김씨에게 확인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어쩔 수 없이 남성 건강검진을 받아 이상이 없음을 증명해야 했다.
이렇듯 신세대 커플을 중심으로 남성 증명서가 ‘혼수품 1’호로 떠오르고 있다. 강남 J비뇨기과에 따르면 최근 들어 남성 건강검진을 문의하는 전화가 늘고 있다. 남성 증명서란 일종의 ‘남성 건강 진단서’. 말 그대로 남자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인지를 확인하는 검사다.
발기력 등 성능력이 주요 검사
검사는 크게 3단계로 나눠 진행된다. 첫 번째는 발기력과 조루 여부를 측정하는 성기능 검사. J비뇨기과 박천진 원장은 “시청각 검사 등 각종 테스트를 통해 음경의 팽창도나 지속도를 측정하는 게 이 검사의 목적”이라며 “통상적으로 팽창도나 강직도는 70% 이상, 지속도는 5~10분 정도 유지해야 정상이다”고 귀띔했다.
첫 번째 검사를 통과하면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간다. 두 번째 검사는 생식 능력 테스트. 박 원장은 “티스푼 한 개 정도인 3~5cc당 정자수가 1억마리를 이상이어야 하고, 운동성도 60%를 넘겨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성병 유무를 확인해 이상이 없으면 병원에서 발행하는 보증서가 지급된다. 보증서에는 “위 사람은 본 원에서 실시하는 남성 건강검진에서 이상이 없음을 증명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박 원장에 따르면 검사를 받는 대부분의 남성은 정상이지만 20명 중 1명 꼴로 불합격자가 발생한다. 이 경우 약물 요법이나 수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 후 다시 검사를 받는다.
1월15일 오후 3시에 찾아간 서울 강남구청역 인근의 한 비뇨기과. 평일 오후인데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남성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성 증명서를 받기 위한 사람들 만은 아니겠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이 병원을 찾는다는데 놀랐다.
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그나마 요즘은 결혼 비수기이기 때문에 남성 증명서를 위한 환자(?)는 적은 편이라고 한다. 결혼 성수기인 봄이나 가을에는 예약을 해야 할 정도라고 한다.
남성 증명서를 발급 받으려는 부류는 크게 두가지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여자쪽의 성화에 못 이겨 병원을 찾는다. 그러나 결혼을 앞두고 배우자 몰래 검사를 받은 남성들도 더러 있다. 이 경우 보통 성적 능력보다는 성병에 걸렸는지를 궁금하게 여긴다는 게 병원측의 설명이다.
성의식 개방화의 한 단면
전문가들은 이같은 모습이 요즘 신세대들의 성의식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한다. 이명구 성인문화 평론가는 “유교 의식이 팽배한 우리나라에서 성은 항상 비밀스런 것이었다. 그러나 여성들의 성의식이 개방화되면서 은밀한 성이 점차 양지로 나오고 있다”고 분석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발달도 이같은 추세를 부추기고 있다. 종전까지만 해도 여성이 성에 대한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루트는 그리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이웃집 아낙과 수다를 떠는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나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성에 대해 깨는 주부들이 늘고 있다.
한 포털사이트의 여성 커뮤니티 ‘남편 길들이기’도 ‘여성의 해방구’ 중 하나. 이 카페에는 현재 1,000 정도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물론 회원의 90% 이상은 주부들. 요즘 이곳에 젊은 여성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카페 운영자인 이은지씨(30)는 “카페 게시판에서는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할 수 있기 때문에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들의 발길이 늘고 있다”며 “이들은 이곳에서 선배들로부터 결혼에 필요한 정보나 주의점을 배워간다”고 설명했다.
여성 전문포탈 사이트에도 여성의 성과 사랑, 삶에 대한 코너가 부쩍 늘었다. 여성의 성은 물론 궁금한 남성에 성에 대해 다양한 정보가 제공되고, 경험담이 오른다. 과거 여성잡지에서 봉인된 ‘책속의 책’형태로 소개되던 섹스나 성애, 체위, 느낌 등이 활짝 열린 사이버 공간에서 자유롭게 통용된다.
물론 불만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건강진단??혼수품에 오르내리는 것은 백번 양보한다 하더라도 남성 증명서는 너무했다는 게 많은 남성들의 생각이다. 한 남성은 “남성의 외모나 능력에 이어 성기능까지 결혼의 잣대가 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이석 르포라이터 zeus@newsbank21.com
자료출처 : 주간한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