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다시 날다
가뭄이다. 비가 한두 번 오기는 했는데 마른 땅에 먼지만 폴삭 일다가 그친 정도였다. 텃밭에 물을 주면서 아내와 ‘이 물값이면 사 먹는 게 싸겠다.’는 소리를 여러 차례 했다. 물주기를 거르면 대번 표시가 났다. 오이, 호박잎이 축 늘어진다. 상추 잎도 처져 버린다. 채소뿐이 아니다. 꽃들도 볼품이 없기는 한 가지였다. 나무들도 덩치만 컸지 따로 물을 저장하지 않는지 잎을 축 늘어뜨리기는 마찬가지다. 집 울타리 안에서 자라고 자손 퍼뜨리며 살아가는 것들을 모른 체 할 수는 없다. 다 귀한 생명이다. 집에 기생하는 것이 아니고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다. 그러니 목마른 녀석들에게 물을 주는 건 식구 끼니 챙기는 것과 똑같은 일이다.
아침마다 눈 뜨면 마당으로 나간다. 밤사이 새로 핀 꽃을 반기고, 어제보다 자란 채소며 열매에 눈인사를 보낸다. 아침 손님도 반긴다. 참새며 까치가 잔디밭에서 무언가를 쪼고 연 심은 그릇의 물을 마신다. 어떤 녀석은 경계심도 풀기로 했는지 가까이 가도 옆걸음 한두 번으로 슬쩍 옮겨 앉을 뿐 달아나지도 않는다. 근처 양봉장에서 날아온 벌들도 같은 물을 마신다. 이름 모를 산새들도 보리수 열매를 쪼고 블루베리에 입을 대는 녀석들도 있다. 용케도 잘 익은 놈만 골라서 따먹는다. 이 녀석들도 자식이나 친구보다 자주 보고 익숙해진 식구들이다.
양평에 와서 텃밭 가꾸며 산 지 벌써 6년째지만 풀 이름은 아직도 어렵다. 냉이 캘 때면 한 포기씩 붙잡고 아내에게 냉이 맞느냐고 연신 묻는다. 아내는 어린 시절 농촌에서 자랐고 그 시절만 해도 딸들은 코흘리개 겨우 면하면 밥 짓고 빨래하고 동생보고 농사일까지 거드는 걸 당연하게 여기던 시절이었다. 아내도 그리 살았고 그래서 꿈도 도시 가서 사는 걸로 일찌감치 정했단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거둔 것도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단다. 어린 시절 방학 때 할아버지 댁에서 본 서너 살 위의 막내 고모가 하던 일들을 떠올려보면 고개가 끄덕여졌다. 도시로 탈출은 성공했는데 나를 만나서 늘그막에 또 흙을 만지며 산다고 투덜대기는 하지만 썩 싫은 눈치는 아니다. 농사일은 당연히 아내가 선배 아니, 선생이다. 그런데 새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촌에서 새알 꺼내고 개구리 잡아먹고 내에서 물고기 잡는 것은 사내아이들 짓이니 아내가 새 이름에 어두운 건 이상할 일이 아니었다. 채소나 감자, 고구마 키우는 일은 물론이고 꽃이나 나무 이름, 지천으로 깔린 풀 이름도 모르는 게 없다. 새에 대해서 모르기는 나도 마찬가지였으나 양평 와서부터 새에 관심을 두었다. 철 따라 날아오는 새들의 사진을 찍어서 인터넷의 사진과 대조하면서 새 이름을 익혔다. 그래봤자 직박구리, 딱새, 박새 정도가 고작이지만.
그러던 어느 날 오후였다. 다급한 날갯짓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캐노피 아래 공간으로 새가 요란하게 날아들었다. 두 마리였다. 이어서 또 한 마리가 나타났다. 흰 새였다. 두 마리 새는 캐노피 투명 유리에 머리를 부딪치곤 미끄러지고, 다시 균형을 잡고는 또다시 빛을 향해 투명한 유리에 몸을 던졌다. 부리가 깨지거나 날개가 부러질지도 모르겠다는 염려가 될 정도로 격렬했다. 흰 새는 바로 선 채 벌새처럼 앞뒤로 날갯짓하며 정지한 듯 떠 있다. 눈빛에 서늘함이 서렸다. 쫓긴 새들은 비명을 지르며 뚫을 수 없는 투명 유리를 연신 들이받았다. 퍼덕이는 날갯짓 소리, 비명 같은 새 소리가 터널 같은 공간에 가득 찼다. 짧은 시간이 지나고 흰 새는 관심 없다는 듯이 몸을 돌려 어디론가 날아갔다. 두 마리 새는 몇 번 더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하다가 위협이 사라진 낌새를 챘는지 차분해졌다. 캐노피를 얹은 벽체 끄트머리에 가쁜 숨을 쉬며 날갯짓을 멈췄다., 꽁무니를 안쪽으로 두고 앉아서 밑에서는 새들의 머리만 보였다.
눈에 공포가 가득했다. 숨을 고르기도 전에 내 시선을 위협으로 느꼈는지 다시 날며 부딪는다. 보고 있으면 위험한 몸짓에 끝이 없을 것 같았다. 1~2M만 아래로 내려오면 하늘이 열렸는데,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릴지라도 저희가 있어야 할 세상이 있는데 내려올 생각을 못 하는 모양이다. 자리를 피해 주어야 녀석들의 심기를 가라앉힐 수 있을 것 같았다. 자리를 떴다가 궁금증에 금세 돌아왔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고개를 당겨 숨어 버린다. 사라진 머리가 하나뿐인 것 같았다. 가까운 곳에서 새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뭇잎이 무성해서 보이지는 않지만, 황매나무와 보리수를 오가며 울고 있었다. 그때마다 안에 남은 새도 머리를 쫑긋거리며 답을 하듯 울어댔다. 소리마다 안타까움이 묻었다. 감정 담긴 대화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나 보다. 어둠이 안개처럼 겹겹이 내려 쌓이기 시작했다. 야행성이 아닌 새들은 밤엔 날지 못한단다. 새들에게 희망의 시간은 쌓이는 어둠에 자리를 내주는 빛처럼 줄어들었다.
바깥에 비를 피할 공간이 필요했다. 주방 문밖의 공간 위에 캐노피를 얹었다. 캐노피는 빛이 통과하는 투명한 재질로 만들었다. 캐노피를 얹을 때부터 새들이 걱정이었다. 새들이 드나들 수 있도록 몇 군데 구멍을 낼까 생각하다가 비 들이칠까 봐 그만두었다. 참새들이 잘 드나드는 것을 보고 걱정을 놓았다. 쫓겨 든 새는 몸집은 참새만하나 참새는 아니었다. 겨울이면 마을로 내려오는 산새 중의 하나로 보였다. 산에서부터 쫓기다가 예까지 온 모양이다. 이 녀석들에게는 처음 들어선 낯선 공간이었을 게다.
두 마리는 한 쌍일까? 신혼여행에서 생애 가장 무서운 밤을 맞은 걸까? 어미와 새끼일까? 캐노피에서 밤을 새운 새의 부리가 노란 거로 미루어 새끼로 짐작된다. 이튿날, 해가 떴고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쯤에서 인간의 개입이 필요할 것 같았다. 사다리를 걸치고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이를 본 새끼는 이리저리 날며 캐노피를 들이받는 통에 새의 안전을 위하여 그냥 내려왔다. 목마르면 물 찾아 내려올까 싶어서 잘 볼만한 곳에 물그릇을 놓아주고 아침 식사를 했다. 밖을 볼 수 있는 자리에 앉은 아내가 “어머! 새가 왔어. 뭘 올라가는데…” 해 뜰 무렵부터 새 한 마리가 이 나무 저 나무 옮겨 다니며 울어댔었다. 아내가 말했다. “어제 그 샌 가봐. 사람들이 왜 새대가리라고 할까? 저렇게 똑똑한데” 어쩌면 가까운 나무에서 밤을 새웠는지도 모른다. 어미 새는 먹이를 물고 와서는 빨래 건조대에 앉아 사방을 살피고는 위로 날아올랐다.
나들이에서 돌아왔다. 새들이 궁금했다. 아내와 캐노피 아래로 갔다. 없다. 발걸음에 울린 물그릇에 물 동그라미가 퍼진다. “조금 서운하네.” 조금도 서운한 것 같지 않은 아내의 목소리가 가벼웠다. 올려다본 하늘은 가없이 푸르고 깊었다. 부모의 학대로 목숨을 잃은 아이의 사연이 며칠째 뉴스 앞머리를 장식하던 무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