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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주신 우선권
호세아서 5:8~15
8 너희가 기브아에서 뿔나팔을 불며 라마에서 나팔을 불며 벧아웬에서 외치기를 베냐민아 네 뒤를 쫓는다 할지어다
9 벌하는 날에 에브라임이 황폐할 것이라 내가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반드시 있을 일을 보였노라
10 유다 지도자들은 경계표를 옮기는 자 같으니 내가 나의 진노를 그들에게 물 같이 부으리라
11 에브라임은 사람의 명령 뒤따르기를 좋아하므로 학대를 받고 재판의 압제를 받는도다
12 그러므로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좀 같으며 유다 족속에게는 썩이는 것 같도다
13 에브라임이 자기의 병을 깨달으며 유다가 자기의 상처를 깨달았고 에브라임은 앗수르로 가서 야렙 왕에게 사람을 보내었으나 그가 능히 너희를 고치지 못하겠고 너희 상처를 낫게 하지 못하리라
14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사자 같고 유다 족속에게는 젊은 사자 같으니 바로 내가 움켜갈지라 내가 탈취하여 갈지라도 건져낼 자가 없으리라
15 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
1970년대에 대한민국 광고 역사상 가장 전설적이고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농심라면의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는 멘트로 시작하는 광고 있었습니다. 밀짚모자를 쓰고 농부 복장을 한 당시의 유명 코미디언인 구봉서씨와 곽규석씨가 끓인 라면 한 냄비를 가운데 두고 서로 양보하며 옥신각신하는 코믹하면서도 정겨운 상황을 연출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우선권이 중요합니다. 부자지간과 밥상에 앉아 식사할 때도 어른이 먼저 수저를 들어야 아랫사람이 먹는 것이 예의입니다. 그러나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향하여 우선권을 양보한 경우가 있습니다.
구약성경 창세기 13장에 기록된 일화로, 아브라함(당시 이름 '아브람')과 그의 조카 롯이 재산이 많아져 서로 거주지를 나누게 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갈등의 시작은 이집트에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 아브라함과 롯은 가축과 은, 금 등 재산이 매우 많아졌습니다. 두 사람의 소유가 너무 많아 비좁은 지역에 함께 머물기 어려워졌고, 결국 목초지와 물을 차지하기 위해 아브라함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잦아졌습니다.
가족 간의 다툼을 원치 않았던 아브라함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롯에게 먼저 거주지를 선택할 수 있는 우선권을 줍니다. 이때 아브라함이 창 13:8~9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고 제안하며 당시의 관습에 따라 연장자가 갖는 우선권을 조카 롯에게 양보하는 것입니다.
이런 아브라함의 결정에 하나님은 그가 바라보는 동서남북의 모든 땅을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시며 큰 축복을 내리십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아브라함의 마음에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 사랑으로 사랑의 대상인 사람에게 우선권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을 향하여 선택한 것에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넓으신 배려가 있습니다. 나의 인격을 존중하고 사람의 자유 의지를 하나님이 보장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인간의 책임을 부여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내 삶의 결론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내가 땅에서 푼 것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임을 말씀하시므로 이 땅에서 내게 주어진 시간과 환경을 통하여 바른 선택을 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마 18: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이에 대한 반응할 것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이뤄진 모든 것과 장차 영원한 나라인 하나님 나라에서 성취될 것에는 내가 뿌려놓은 것에 근거를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본문의 말씀도 그렇습니다.
호세아서는 1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장부터 3장까지는 호세아와 고멜의 혼인관계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고 있고 4장부터 14장까지는 9편의 설교입니다. 첫 번째 설교는 지난주에 말씀드렸고 5장 5절부터 6장 3절까지가 두 번째 설교인데 배역한 이스라엘 백성이 신앙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이냐는 것이 주제입니다. 호세아는 부도덕한 고멜을 노예 시장에서 돈 주고 사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아내로 대접하고 사랑을 보여줬습니다. 이것은 배역한 이스라엘 백성이라도 하나님께서는 다시 용서하시고 회복시키신다는 사실을 드라마처럼 보여준 것입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과 남 유다 백성들이 뿌려놓은 것에 하나님이 어떻게 반응하시는지 말씀하면서 오늘을 사는 저와 여러분에게 좋은 선택을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내 것이 소중하면 남의 것도 소중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마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거울에 비쳐진 내 모습을 보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것입니다. 거울 앞에서 내가 화를 내는 얼굴을 가지면 거울도 똑같은 모습이 나타내게 됩니다.
거울 효과(Mirroring Effect)라는 심리학적 현상이 있습니다. 대화 중인 상대방의 행동, 표정, 말투, 자세 등을 마치 거울을 보듯이 무의식적으로 따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마주 앉은 상대방이 턱을 괴거나 팔짱을 끼면, 나도 모르게 비슷한 자세를 취하게 되거나 하품을 하는 사람을 보면 따라 하품을 하거나, 상대방이 환하게 웃을 때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 것도 모두 거울 효과의 일종입니다.
본문 호 5:8~9에서 “너희가 기브아에서 뿔나팔을 불며 라마에서 나팔을 불며 벧아웬에서 외치기를 베냐민아 네 뒤를 쫓는다 할지어다 벌하는 날에 에브라임이 황폐할 것이라 내가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반드시 있을 일을 보였노라”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사이에 흐르던 긴박한 전운과 이를 통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시각적, 청각적 표현으로 나팔 소리와 외침으로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당시 신흥 강대국인 앗수르(Assyria)가 서쪽으로 무섭게 세력을 확장하며 영토를 위협해 오고 있었습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본문의 에브라임 즉 북이스라엘의 베가 왕은 아람(시리아) 왕 르신과 손을 잡고 반앗수르 동맹을 결성했습니다. 이들은 남유다의 아하스 왕에게도 동맹에 참여하라고 압박했으나 거절당하자, 아예 남유다를 침공하여 친(親)아람계 왕을 세우려 했습니다.
위기에 몰린 남유다의 아하스 왕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 앗수르 왕에게 막대한 뇌물을 바치며 구원 요청을 보냈습니다. 이에 앗수르가 북이스라엘과 아람을 배후에서 공격했고, 북이스라엘이 치명상을 입고 퇴각하는 틈을 타 남유다 군대가 국경을 넘어 북이스라엘 영토(베냐민 지파 영역)로 세차게 북진하며 보복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본문은 바로 이 유다 군대의 북상 과정을 묘사하고 있습니
8~9절 바로 뒤인 10절을 보면 “유다 지도자들은 경계표를 옮기는 자 같으니”라며 남유다를 향한 불같은 책망이 이어집니다. 남유다는 북이스라엘이 심판을 받아 무너지는 비극적인 틈을 타서 형제의 땅을 더 차지하려고 국경선(경계표)을 패역하게 밀어붙였습니다. 율법(신명기 19:14)은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는 것을 엄히 금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도구로 유다를 쓰시는 듯했지만, 형제의 고난을 기회 삼아 이기적인 탐욕을 부린 유다에게도 동일하게 “진노를 물같이 부으실 것”이라 경고하십니다.
내 땅이 소중하고 지켜야 할 사명이 있다면 이웃의 땅도 귀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내 재물이 소중하면 다른 사람의 소유도 귀하게 여겨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는 내 건강을 지키는 비결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건강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깊은 병에 걸리게 되면 여기서 헤어 나오기 어렵습니다. 호 5:13 “에브라임이 자기의 병을 깨달으며 유다가 자기의 상처를 깨달았고 에브라임은 앗수르로 가서 야렙 왕에게 사람을 보내었으나 그가 능히 너희를 고치지 못하겠고 너희 상처를 낫게 하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병과 상처는 단순한 육체적 질병이 아닙니다. 앗수르의 압박과 형제 전쟁, 그리고 내부적 부패로 인해 두 왕국이 파멸 직전에 이른 정치적, 군사적, 사회적 위기를 뜻합니다. 바로 앞 12절에서 하나님은 내가 그들에게 ‘좀’과 ‘썩이는 것’ 같을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 심판의 결과가 가시적인 고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 위기의 원인이 ‘하나님을 배반한 죄’에 있다는 본질적인 영적 사실은 깨닫지 못했다는 점에 이들의 비극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진짜 병명은 영적인 '우상 숭배와 불순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유일한 치료법은 의사이신 하나님께 나아가 죄를 회개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나를 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그 매를 멈추고 싸매어 주실 분도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내게 건강을 책임져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요삼 1: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했습니다. 내 영혼이 잘 되는 비결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우리의 감각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분을 사랑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그가 계신 것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자임을 믿고, 하나님이 성령으로 나와 세상 끝날 때까지 함께 계심을 인정하는 것으로 출발합니다. 성령으로 내 안에서 내가 숨 쉬고 생각하고 감정의 변화가 있을 때도 함께 하심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내 마음을 온전히 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할 때 나의 약함이 강함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오직 그분만을 의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에 속한 재물과 권세, 명예를 의지하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상 숭배에 빠지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화평을 유지하는 비결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고 하였습니다. 마음에 근심이 생기고 두려움이 쌓이는 것은 그 배후에 마귀가 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이 과거에 비해 물질적으로 훨씬 풍요롭고 안전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내면의 근심과 두려움에 시달리는 현상을 가리켜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부릅니다.
현대인은 절대적인 빈곤보다 남보다 뒤처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큽니다. 특히 SNS의 발달로 타인의 가장 화려한 순간과 나의 평범한 일상을 끊임없이 비교하게 되면서, 객관적으로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결핍된 존재로 인식하게 됩니다. 또한 가진 것이 많을수록 그것을 지켜야 한다는 방어 기제가 강해집니다. “지금의 지위, 자산, 건강을 잃으면 어쩌지?”라는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이 끊임없는 염려를 낳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손실 혐오(Loss Aversion) 성향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호 5:14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사자 같고 유다 족속에게는 젊은 사자 같으니 바로 내가 움켜갈지라 내가 탈취하여 갈지라도 건져낼 자가 없으리라”는 말씀에서 하나님이 우상 숭배로 하나님을 배역한 백성에게 그들이 소유한 정신적인 평안과 재물을 빼앗아 가리라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현상이 생길 때 하나님께 돌아갈 때입니다.
호 5:15 “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는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녀에 대한 사랑을 그칠 수 없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호세아서를 「구약의 복음서」라고 부릅니다. 음탕한 여인 고멜이 호세아의 아내가 된 후에도 몇 번이나 옛날의 남자를 찾아서 달아났지만 호세아는 그를 다시 받아 들였고 그를 데려오기 위하여 은과 곡식들 주는 등 대가를 지불하기도 하였습니다(호 3:2-3). 세상 정욕을 따라 멸망의 길로 달리던 고멜은 이처럼 끈질긴 호세아의 사랑과 노력으로 말미암아 마침내 안정되고 행복한 길로 돌아서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것입니다. 지난날의 모든 허물을 덮어놓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얼굴 앞에 서게 된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아야 됩니다.
누가복음 19에 등장하는 세리장 삭개오는 작은 키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습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하여 자기 동족 유대인을 등지고 로마의 세금을 징수하는 세리 일을 했습니다. 부지런히 일한 대가로 세이장까지 올라갔지만, 불안과 더불어 염려, 근심 그리고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삭개오는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찾게 되었고 자기 집으로 초청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고 하면서 회개와 더불어 예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눴습니다.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실 때 성령이 내 안에 들어 오시고 내 안에는 진정한 평안을 맛 볼 수 있습니다. 삭개오는 이런 평안을 누린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이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소유를 탐하여 그것을 빼앗으려 탐욕을 부리면 내게 있는 것을 빼앗기는 슬픔을 겪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건강을 해치지 않고 잘 보존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오직 성령꼐서 내안에 계실 때 가능합니다. 건강은 나의 마음의 문을 열고 믿음의 주님을 영접할 때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있어 친밀한 교제를 나눌 때 가능합니다.
모든 것이 우선권이 내게 있습니다. 좋을 씨를 뿌리고 언제나 복된 것으로 거두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