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는 막으로 세상과 주체를 구분한다. 막으로 세상과 구분되지 않으면 주체는 있을 수 없고, 구분되어 세상과 분리되면 생존할 수 없다. 에너지와 영양분을 외부에서 빌려와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 막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항상 움직인다. 동적경계선을 유지한다는 점이다. 독이 들어오면 막지만, 영양분은 열어준다. .
주체는 세상을 감각한다. 내외부 감각정보를 만나는 인간의 뇌는 뼈로 둘러싸인 깜깜한 공간에서 전압의 차이로 인한 전기흐름에 감각정보를 담는다. 뇌 밖에 있는 소나무 와 그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을 머리속에 담을 수 없다. 단지 그럴듯한 추론/예측 모형을 돌릴 뿐이다.
감각정보와 예측모형이 잘 맞아주면 다행이지만 오류가 나면 다시 이 오류를 줄이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인간의 일생이다. 예측오류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니 인간의 의식이란 주어진 감각정보를 바탕으로 뇌가 능동적으로 만들어내는 환각/착각이다. 이 환각을 다수가 동의하면 현실이 된다.
당연히 이 환각의 기반은 몸이다. 몸의 요구이다. 몸은 생존하고 싶어하고,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한다. 세상의 참 모습이 아니다. 이는 뇌가 외부 세상이 아니라 몸 내부의 정보를 접수할 때 더욱 그러하다. 뇌는 세상을 지각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몸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도록 조절/통제하기위해서 존재한다.
그런데 이 과정은 흘러가는 나룻배에서 날아가는 기러기를 맞추는 것과 같다. 주체도 움직이고, 세상/대상도 움직인다. 움직이지 않는 것은 없다. 이런 움직임 속에서 세상을 포착하려면 가상/환각의 고정점을 가져야만 한다. 이렇게 하여 발생한 것이 [자아]와 [사물]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일이 일어난다. 이 가상의 고정점이 자기의 역할만 하고 사라지면 별 일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이 착각/환상이 자기를 고집한다. 그래서 생기는 것이 이기심, 자만, 편견, 욕심 등이다. 바로 불교에서는 이 과잉 자아가 괴로움을 만들므로 여기에서 벗어나라고 한다.
더 넓은 눈으로 보면 생명은 태양에서 에너지를 빌려와서 가상의 자아와 사물이라는 엔트로피 낮은 상태를 유지하다 다시 엔트로피가 높은 죽음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100년 사이에 수많은 예측을 하며 살다 그냥 죽는다. 그러나 혹자는/어떤 집단은 그중 한두 개 위대한 예측을 행동으로 실현한다. 이것이 역사다.
*이상의 내용은 박문호 선생의 강의에서 많은 개념을 빌려왔습니다. 그러나 혹시 잘못이 있다면 모두 필자의 무식함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