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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도의 판결19:14~16
14 이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15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하소서 없이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16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주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예수님 19:17~22
17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18 그들이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
19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20 예수께서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
21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라 쓰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 하니
22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쓸 것을 썼다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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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빌라도는 가이사 외에는 왕이 없다는 유대인들의 외침에 굴복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줍니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다른 두 사람도 양옆 십자가에 못 박힙니다. 빌라도가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한 패를 십자가 위에 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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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도의 판결19:14~16
예수님의 십자가형 선고는 짧은 시간에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체포 시간을 목요일 저녁 9~12시경이라 추정하면, 빌라도의 선고 시간은 금요일 낮 12시경이기에(14절, 제육시) 이 일은 불과 15시간 이내에 이루어진 즉결 재판인 셈입니다. 참된 왕을 외면한 대제사장들은 가이사 외에는 왕이 없다고 외치며(15절) 로마에 대한 철저한 복종을 내세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권력자들의 악한 행동을 인류 구원을 위한 선한 역사로 바꾸십니다.
● 더 깊은 묵상
대제사장들이 가이사에 대한 충성을 빌라도에게 강조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내 주변에서 바른 판단을 흔드는 요소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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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못 박히신예수님 19:17~22
십자가형은 잔인한 사형 방법입니다. 이것은 페르시아인이 고안하고, 카르타고인이 발전시켰으며, 로마인이 완성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해골’이라는 뜻)로 오르십니다. 이때 십자가의 가로 기둥(파티불룸)을 지고 가셨을 것입니다. 골고다 언덕에는 세로 기둥(스티페스)이 준비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골고다에서 군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18절). 가로 기둥에 예수님의 양쪽 손목 윗부분을 못 박고, 발은 한 발 위에 다른 발을 올려놓고 못 박았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19절)이라고 쓴 패를 붙였을 것입니다. 희롱조의 패지만, 이는 예수님이 인류의 왕이심을 알리는 글입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십자가를 똑바로 세웠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혐오와 저주의 상징인 십자가 죽음을 통해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 우리에게 새 생명을 선물하셨습니다.
● 더 깊은 묵상
예수님이 혐오스러운 십자가 형벌을 오롯이 감당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금 내가 겪는 고난은 예수님의 고난에 비하면 어느 정도인가요?
한절묵상:요한복음 19장 15절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로부터 자신들을 해방시켜 줄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수많은 표적과 말씀으로 하나님 아들의 정체성을 드러내셨지만,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이길 꾀했습니다. 심지어 대제사장들은 "가이사 외에는 왕이 없습니다."라고 소리쳤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자들이 로마 황제를 자신들의 왕으로 인정한 것입니다. 진정한 왕은 인간적 필요와 유익에 따라 바뀌지 않습니다. 나의 마음이 어떤 왕을 향하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진정한 권위는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복종으로 표출된다. - 맥시 더남
오늘의 기도
주님, 시기심에 눈멀어 하나님의 약속이 눈앞에 있어도 보지 못한 저를 용서하소서. 만왕의 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임을 선포합니다. 세상과 악이 이긴 것 같은 순간에도 하나님의 계획은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승리가 이미 저희에게 주어졌음을 늘 기억하게 하소서.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묵묵히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시기 위해 나아가신 것처럼 그렇게 내게 주어진 십자가를 짊어지고, 담대히 나아갈 수 있도록 하자
주님께서 맡겨 주신 사람들을 돌보고, 주님께서 맡겨 주신 일들을 섬기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도록 하자
십자가를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께서 더 큰 목적을 위해 사용하시는 통과의례와 같은 일임을 잊지 말고, 잘 받아 들이고, 기꺼이 그 길로 나아가도록 하자
요한복음19:14-22절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빌라도가 종교지도자들에게 예수를 보이며 너희의 왕이라 합니다
그말을 들은 종교지도자들은 가이사외에는 왕이 없다고 대답합니다
빌라도가 종교지도자들에게 예수를 너희의 왕이라 한 것은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조롱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채찍에 맞았습니다 불쌍합니다
죄 없는 예수를 너희 욕심으로 인하여 예수를 죽이다니 종교지도자들 너희들도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이 이 말을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15절에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의 이 말은 예수를 부인하며 동시에 로마 황제 가이사를 왕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의 말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있습니다
당장의 눈앞의 이익이나 목적만을 바라보면 왕이신 예수님을 놓칠수가 있습니다
사탄은 항상 눈앞의 이익으로 유혹합니다
사탄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예수님에게 돌로 떡을 만들어봐라라고 시험했습니다
당장의 이익으로 유혹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당장의 이익보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2)예수께서 능동적으로 십자가 지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확한 표현은 로마 군인들에 의해 십자가 지시는 수동적인 표현으로 하는게 맞습니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17절입니다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라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예수께서 자발적으로 십자가로 표현하는 것은 구원계획을 믿으시는
그리고 구원을 이루시기 위한 표현이라 할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의 신앙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배웁니다
우리에게도 십자가가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십자가 지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구원이 있음을 알고 자원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십자가를 질때 구원으로 인도하십니다
믿고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찬양을 불러야 합니다
3)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는데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성을 출입을 할때 모든 사람이 볼수 있도록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
3가지 언어로 볼수 있게 했습니다
3가지 언어로 하였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볼수 있게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종교지도자들이 반발합니다 21절에 유대인의 왕이라 쓰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고 말합니다 자칭 유대인의 왕이란 말에서
알수 있듯이 스스로 왕이라 해서 내란 죄로 십자가 형에 처하게되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가 일언지하에 종교지도자들의 말을 거부했습니다
빌라도가 거부한 이유는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감정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빌라도의 감정까지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시며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왕이십니다
위의 사실을 통해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오늘날도 어떤 이유를 대서라도 예수님이 왕이심을 거부합니다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거부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십니다
우리의 소망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이 알기 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왕이심을 알리는 우리 모두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주님의 인내와 승리를 신뢰해야 합니다(12~16절).
빌라도는 재판석에 앉아 마지막으로 판결을 내리기 전에 유대인들에게 다시한 번 조롱하며 말합니다. ‘...보라 너희 왕이로다...’(14절). 그들은 소리 소리를 지르며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라고 외칩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가이사 외에는 자신들에게 왕이 없다고 하는 배교의 말까지 내뱉습니다. 이들의 이러한 말은 이제 하나님을 섬기지 않겠으며, 유대인들이 그토록 기다려 왔던 메시아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하는 선언과 같은 말입니다.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16절).
세상에 참 빛이 왔지만, 사람들은 그 빛을 믿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았고, 도리어 자신들의 죄악이 드러날 것을 두려워하여 빛을 거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고, 그 걸음은 실패가 아닌 승리의 걸음이었습니다.
현실에서 진리를 위협하는 상황을 자주 맞닥뜨릴 수 있습니다. 그럴 때라도 진리이신 예수님을 인정하는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현실의 이익보다 진리를 더욱 기뻐할 때, 예수님을 드러내는 능력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끝까지 인내하며 결국 승리하게 될 진리의 편에 서 있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십자가의 주님을 따른 삶이란 그래서 주님의 인내와 승리를 신뢰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 고난의 십자가를 통해 영광을 누려야 합니다(17~22절).
예수님은 스스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친히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예수님 좌우편으로 두 사람의 행악자가 함께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이는 범죄자로 취급당하셨다는 구약의 성취(시 22:16;사 53:12)일 뿐만 아니라 죄인 된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우리와 동일한 모습으로 심판을 당하셨음을 보여줍니다.
빌라도는 십자가 위에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19절)이라는 명패를 붙입니다.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어로 기록해서 유대인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알아볼 수 있게 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고쳐 쓸 것을 요구했지만, 빌라도는 자신이 쓸 것을 썼다는 말로 그 요구를 거절합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십자가를 직접 지고 가심으로 자신의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예수님의 십자가는 수치스러움이요, 비극적인 실패일 뿐입니다. 그러나 오늘 나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왕이신 예수님이 나를 위해 고난 받으신 것이요,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이며 영광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와 고난이 없는 믿음은 거짓 된 믿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영광은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서 옵니다. 비록 내 자신의 삶의 환경이 내가 바라는 것과 전혀 다른 상황이라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 안에서 십자가를 바라볼 때, 고난 그 자체는 지금은 감춰진 것이지만 확실한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은 단순히 ‘유대인의 왕’만이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의 진정한 왕’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을 통해 십자가의 영광을 누리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했다지만 결국 예수님은 유대인들 요구에 따라 로마군병들의 손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히셨고 빌라도는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유대인의 왕'이라는 팻말을 써붙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칭이라는 말을 앞에 넣으라고 했지만 빌라도는 쓸 것을 썼다고 대답합니다.
다시 말하면 빌라도는 이방인이지만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 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니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도 '가이사 외에는 왕이 없다'고 아우성치는 유대인들과 비교가 됩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 목적을 위해 하나님 외에 신(왕)이 없다는 것 때문에 제국과 싸웠던 것도 잊어버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지만 십자가 위에서 조롱 당하신 예수님은 구원을 베푸시는 메시아이자 만왕의 왕이 됩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십자가로 우리를 부르시고 당신을 우리 인생과 가정과 일터와 나아가 온 세상의 왕이심을 인정하고 순종하며 살라고 하십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풀어주려고 했다지만 사람을 두려워하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에 결국 어두운 세력의 도구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 하더라도 실천하는 행동이 없으면 효과가 없고 신앙생활 잘 하겠다는 마음도 결심으로 끝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진리의 말씀을 붙들지 않고 현실의 유익을 추구하다 보면 왕이신 예수님을 밀어내게 되므로 선택의 기로에 설 때 항상 예수님을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부활의 영광 앞에 십자가의 고통이 있었듯이 우리도 현실의 먹구름 뒤에서 통치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조롱을 승리로 바꾸신 예수님을 따라 살아야 하겠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넘겨 주었고,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를 십자가 위에 붙였습니다 그들은 끝까지 주를 대적하여 패에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써달라고 했지만, 빌라도는 쓸 것을 썼다고 하며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이렇게 우리 주님은 우리의 왕으로서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사실 골고다는 예루살렘 성에서 매우 가까웠고, "예수께서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요19:20) 지나가는 사람이 많은 길목이었으며,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마27:39) 멀리서도 잘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다 멀리 서서 이 일을 보니라"(눅23:49)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 제단에서 속죄의 모든 제사를 완성했다는 이 복음은 모두가 알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도 알도록 십자가의 패는 히브리어만 아니라 로마와 헬라어로도 기록되었습니다
또한 골고다는 히브리어로 "גלגלת"(굴골레트)인데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했던 길갈(גלגל)에서 유래한 것으로 "수치를 굴려버리다"는 뜻입니다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수5:9) 참으로 모두가 알아야 할 기쁜 소식은 우리 주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악을 제거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수치를 굴려버리셨다는 것입니다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욜2:27)
우리가 아직 죄인되고 연약할 때에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롬5:5~6)
그러므로 주께 소망을 두는 자 결코 수치를 당하지 않을 줄 믿습니다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사49:23) 오히려 주께서 우리로 수치 대신에 보상을 갑절이나 받음으로 즐거움이 넘치게 하실 줄 믿습니다 "너희가 수치 대신에 보상을 배나 얻으며 능욕 대신에 몫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할 것이라 그리하여 그들의 땅에서 갑절이나 얻고 영원한 기쁨이 있으리라"(사61:7)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7-22절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따라 골고다를 향해 나아가셨습니다. 모두가 처형식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실상 그것은 왕의 즉위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 ‘가운데’ 높이 들리셨습니다. 세 가지 언어로 쓰인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명패는 예수님이 온 세상의 왕이심을 선포했습니다. 예수님은 칼을 휘두르지 않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온 세상의 왕이 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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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23,24절 예수님이 수치를 당하시는 동안, 군인들은 예수님의 옷을 나눠 가졌습니다. 그들에겐 사형수의 죽음이 그저 일거리였고, 예수님의 수치가 놀이였습니다. 그들이 한 일이 비록 예언의 성취였다곤 하지만(시 22:18),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악행이 정당화될 순 없습니다. 성찰 없이 하는 일이 악행이 되기도 하고, 무심코 한 일이 누군가를 고통스럽게도 합니다. 주어진 일을 하기 전에 잠시 멈춰 돌아보면 어떨까요?
기도
공동체-십자가를 지심으로 만왕의 왕이자 구원자 되신 예수님을 일평생 찬송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를 지시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상당히 절제되어 십자가를 지시는 과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에 관한 영화들을 보면 예수님께서 당하시는 고통을 아주 상세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왜 요한복음은 이렇게 절제된 표현을 할까요? 요한복음의 저자인 요한은 26절에 나오는 ‘사랑하는 제자’로서 다른 복음서의 저자와는 달리 실제로 십자가의 사건을 목격했던 자입니다. 오히려 더 자세하게 십자가의 고통을 묘사할 수 있었던 요한이 이렇게 절제해서 묘사하는 이유는 그 당시 사람들이 십자가의 형벌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통을 단순히 감정적 느낌보다는 구약에서 약속하신 예언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강조하기 원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왕으로 오셨는데 이 땅에서 수치와 멸시를 당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방인인 빌라도를 통해서 다시 한번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인의 왕이심을 보여줍니다. 빌라도의 명령에 따라서 유대인의 왕이라는 패를 십자가에 붙입니다. 그러자 대제사장들은 그 문구를 ‘자칭 유대인의 왕’으로 바꾸어 주기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그 요구를 무시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쓸 것을 썼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하는 유대인들은 진정으로 왕이신 예수님을 버렸지만, 오히려 이방인을 통해서 모든 사람의 입으로, 그들의 언어(히브리, 로마, 헬라)로 예수님이 왕이심을 선포하게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처참하고 수치스러운 사형제도 앞에서 가장 존귀한 이름이 불렸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좌우편에 두 개의 십자가가 더 세워집니다. 이들은 강도요, 행악 자라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편의 강도는 좀 괜찮아서 구원을 받았고 또 다른 편의 강도는 회개하지 않고 심하게 욕을 예수님께 욕을 해서 구원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둘 다 예수님을 저주했다고 증언합니다. 둘 다 죄인입니다. 결코 구원은 행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두 강도처럼 우리의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받을 형벌은 영원한 죽음입니다.
그런데 우리와 함께 십자가를 지고 계신 분이 있습니다. 바로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와 저주를 감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고백했던 한 강도처럼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십자가는 사람들이 보기에 수치스럽고 처참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왕이심이 드러납니다. 그 십자가를 통해서 죄 없는 어린 양이 피 흘려 모든 믿는 자들의 제물 되심이 드러납니다.
그 십자가를 통해서 한 강도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드러납니다. 우리는 이 모든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슈바이처 박사처럼 이 십자가의 죽음이 하다 하다 안돼서 할 수 없이 내버려진 죽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이루어진 십자가의 죽음이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지독한 사랑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의 계획 속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직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내 가족을 위해, 이웃을 위해 마지막까지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를 사용하여 주의 복음을 전하실 것을 믿고 열심히 주의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 사랑을 받은 자의 의무입니다.
오늘 하루도 여러분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풍성히 누리시는 하루가 되길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직도 믿지 않는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창 22:6~7)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사 53:12)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 12:48)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요 18:38)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행 3:14~1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 이사야 53:7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어둠 가운데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죄악의 수렁 가운데 어찌할 바를 몰랐던 저희를 그 십자가에 들려서까지 건져주시고, 그 보혈로 덮어주신 놀라운 손길에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우리의 인생 가운데 오셔서 사랑으로 안아주시고, 우리의 심령 깊은 곳까지 그의 영으로 채우는 축복의 문을 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늘도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자녀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금도 열방 가운데 주님을 증거함으로 땀흘리시는 선교사님들의 발걸음을 축복하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풍성하게 채워 공급하여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말할 수 없는 핍박과 폭력의 고통 가운데 신음하는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사, 회복과 치유의 광선을 비춰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모든 분열과 다툼, 분노와 미움을 버리고 서로 사랑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 가운데 전하는 거룩한 통로로 쓰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