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렷을 적에 우리집 주위엔 참으로 다양하게 종교의 집단들이 있었다
산꼭대기에 사는 관계로다가 우리집 주위엔 바윗돌마다 무녀들이
제를 올린흔적과 또 동창인 남자 덕영이 할머니가 함경도 무술인어서
한달이면 몇번씩 굿판이 벌어져 구경거리가 많었다.
자매할머니중에 동생이 무당인데 특기는 줄타기와 작두타기
그시절엔 티브가 없었고 라디오도 별로 였던 시절에 유일하게
구경이 굿과 동네 길자엄마의 (쌈쟁이)싸움이 지금의 드라마보다 더 실감났다
입에 개거품을 물고 애는 들쳐없고 싸우다 막판에는 머리 끄덩이 잡고 힘자랑하고
길자엄마의 언니는 참 착한사람이고 그언니가 말려서야 싸움이 끝났다
같은 형제라도 앞뒷집에 살면서 성격이 천지차이가 나니 한뱃속에서 어케...
그러고보니 자매지간에 같은데 사는게 많았네...무당집도 자매할매고
산아래는 절이 쪼르르 산을 둥그렇게 돌면서 세곳이 있어서
눈뜨면 아래로 한강이 보이고 (지금도 한강잎구에 그절 돌부처는 아직도 있더만...
5호선을 타고 마포역에 내리면 아직도 한옥집들은 죄다 없어지고 절은 마당이 잘라진체로
아직도 스님들이 있어요)
절에 사는 스님들과 고아들이 여러명이 절에서 자라 같은 반 할적도 있었고(방난자가 절에서
자랐는데 그아이 현재 스님이 되있을려나?)
그리고 울동네 이름은 망째(망제:아마 나라에 몬일이 있으면 올라와서 신호를 보내는 자리?아님
제를 올리던 자리일수도)
그밑이 꽃째(여기는 마포 부호들의 집들인 한옥이 거창하게 자리를 잡고 잇는 옆에
구세군이 있었다.(여기가 구세군 본산일수도)
구세군에서 피난민을 위해 구호물자와 우유죽 강냉이 죽을 점심때 주기에
줄을 서서 기다려 가지고간 그릇 생긴데로 죽을 퍼주엇다
그리고 망째에서 한강 을 바라보는 뒷편 용산구에 산꼭대기에 성당이 높이 솟아있고
고아래 작은 언덕위에 전도관이 천막으로 크게 지어서 (여기가 전도관의 본관..나중에 신앙촌이 덕소에 생
기면서 엄청 번창을 한곳이다.)
주위가 이렇듯 천주교성당, 구세군, 절, 무당집. 이런곳을 매일 접하다보니
두루 두루 구경할수밖에 초파일에는 절마다 등을 달아서 밤에도 불야성을 이루었고
크리스마스때는 성당 구세군 전도관을 순회공연을 했으니 종교에 대해 알기도 전에
구경은 실컷 한샘이다.
학교에 가고부터 무당은 미신이라 배우고 부터는 구경도 시들해졌고
교회에서 주어들은 부처나 돌이나 무녀의 깃발이나 대고 절하지 말라는 말을 듣고
난 절을 할줄 모르면서 글타고 교회도 마음에서 우러나와 당기지도 않고
생긴것이 맘이 모질고 드세서 종교관이 없었다.
나이가 먹고 결혼하고 아이가 생겨 남편의 이상스런 성격으로 인해
마음이 멍들면서 동네 교회가 나가기 시작하였는데
내마음은 정말 신앙심이 두터운 사람이 되고팠는데
당최 목사님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를 않고 기도할때는 왠 그리 잡스러운 생각들이
떠오르는지 집중이 안되고 그저 끝날때 아~멘하고 마무리를 한다
구역식구들이 사람들이 좋은데 내믿음이 따라가지를 못해
몇년댕기다가 그만두었다.
그리고 면목동으로 이사와서 보험회사에 다닐때 목이 아파 여러병원을 다녀도 안낫고
동네에 기독병원에 갔더만 의사선생님이 날보러 교회에 나가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간호사 의사들을 불러모아 나를 위해 기도를 해주시고
책을 보라며 외국서적 번역판을 주셨다. 아무교회나 아는 사람따라 나가보라고
그선생의 말데로 식염수로 코를 통해 목으로 넘기는 것을 2년하니 좋아졌고
같은 삼실에 있는 동료가 교회권사라서 따라서 "금란교회"를 나가게 되면서
교회식구들을 많이 알게되었는데 십년이 넘어도 날라리 신자를 면치 못하고
기도한줄 말 할줄 모르고 목사님 말씀에 요점도 모르고 기도할때 딴 생각만하고
그러다 울아들 결혼할무렵 갑자기 남편의 변덕으로 교회를 못가게 해서 2008년부터 안나갔다.
왜? 나는 남들처럼 믿음이 안 생길까? 마음에 문을 열면 넘칠터인데
좀처럼 마음에 문을 안연다고 하는데 나자신 너무나 삭막하고 갑갑하다.
햇수로 1997년부터 이면 (어제 교회식구가 기록을 보더니 정말 오래되셨네...하기에..)
벌써 4년째 안나가도 금란교회에서는 일년에 한번씩 지역장 전도사가 바뀌는데
바뀔적마다 인사오고 전화하고 문자보내고 일주일에 한번씩 우리집을 방문하는데
이젠 나도 지쳤다. 현재로서는 다시 교회에 다닐수 없는 관계로
남편이 변하지 않는한 ...현재도 서로가 으르렁대는데 내가 나가면
그입에서 육자베기가 나올티고...정도가 과하면 아직도 꺼지지 않는 옛날 버릇이 남아
자식한테나 손주들앞에서 내가 개방신을 당하게 생겻고
내가 믿음이 굳세면 억세게 밀어부치련만 나도 쑥맥이니...정말 멋없는 인간인것이
부끄럽고 한심하다.
종교전쟁도 난 이해 할 수가 없으면서 믿음이 깊은 사람들을 보면 넘 부럽다.
그냥 학교 다니듯 건상 다니기엔 이젠 내 나이가 창피한데
오며가며 만나는 예전의 신도뜰땜시 난 변명하는것에 질려서...
도대체 종교란 무엇인고?
난 내가 살아가면서 마음의 위로를 받고 상처를 치유하며 좋은 글귀로
인생의 도움이 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목사님과 전도사는 우리집까지 쳐들어와서 내손을 잡으며 유일신이 하나님을 믿는것은
잘 살기위해서가 아니라 구원을 받고 천당가기위해서 믿는 거란다
믿으면 아멘하세요~~ 난...천당과 지옥을 믿지못하고 부활을 믿지못하는데.....
정말 좋은 사람들이 우리모두 천당갑시다~~하는데 그냥 그사람들 따라 교회에 나간들
난 영 구제받지 못할 인간이구만은...우짤꼬~~~?!!!
나..세상 살 가치가 없는 사람인가?
명쾌한 답을 구실분~~~~~~!
결국 천당과 지옥은 내마음속에 있는것 아뉴~?아이참나...
첫댓글 ㅎㅎ 지도 예배당,성당, 절, 여호와의증인도 해보고 남묘호랭게교도 불러 봤더랬시요....
근디유.. 하느님 말쌈을,, 부처님 말쌈을 그대로 실천에 옮겨야 되는데..
그 말쌈에 거역은 못하지마는...
따라 가지를 못하긋더마요....... 그래서.. 소인은 암데도 안가고 퍼질러 자빠져 있니더...
다만, 하느님 말씀은 성서이고 부처님 말씀은 염불(불경)이라 카능거만 알고 있니더.
건강하이소.^^
우리말 덕경을 아시나요 ?
불경 중 한 경전이온데 " 신약성서 랍니다. ㅎㅎ
덕경인지 면경인지 소인은 무식해가꼬....ㅎㅎ
저는 성당에 다니는데 부지런하지 못해서 그런지 종교생활이 참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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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도 어릴적엔 교회에 가고싶어햇지요...주일학교 넘넘 재미있더라구요..근디..
울엄니가 불교신자인지라..교회에다니는걸 반대하더라구요..
한가정에서 제각각 종교가틀리면 서로의 의견대립이생겨 가정이시끄럽다나요.ㅎㅎㅎ
그래도 참으로 살기가 힘들고어려울땐 때로는 믿음이있으면 극복하기가 싶지않을까 하는 생각이드네요...
지는여, 열심히 믿는 사람이 부러워얘. 믿는자에게 복이온다꼬 않합니까? 열심히 믿는게 좋읍니다. 그래야 천당 가지얘.
천당/지옥이 없다카는 사람은 죽어가 천당/지옥이 진짜로 있으면 어캅니까? 낭패지여. 또 열심히 믿고나서 천당/지옥이 있으면
다행이고요. 없어도 미쪄봐야 본전 아닌교? 본전은 더하지요. 착하게 살고 종교의 힘으로 맴도 퍈안하게 살고. 좋은기라얘.
전 카톨릭신자인데 모태신앙인입니다. 그래서인지 저또한 믿음이 약합니다.
가끔은 부끄럽고 더러는 한심하지만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누가 이런말을 하더군요. '여수천당 불신지옥'
ㅎㅎㅎ
경기, 성남, 여수동이 천당 집 입니까 ?
거긴 이대엽 전 시장님의 천당이겠지요 ㅎㅎ
이제사 뒤돌아보는 여유가 생기셨나 보네요 저 같으면 종교란 필생의 과제 였지요
종교라기보다 삶과 죽음의 의문에 대해서 끊임없는 구도의 연속이었지요
종교를 찾는다는것 결국은 자신의 본질을 찾아 가는 겁니다 간구하는 자세로 올한해는 맞이 하시길..^^
`천당과 지옥을 믿지못하고 부활을 믿지못하는데`.....인간은 삶이 두려워 사회를 만들고 죽음이 두려워 종교를 만든다.
선배님! 잘 읽었슴니다 사후 천국가는 방법이 넘 쉽다 보니 혼돈도 올수 있겠죠 성경 66권 어데를 찾아보아도 어떤 행위로 인한
구원은 없네요 믿음은 들음으로 생겨 나지요 지구 전체 늘려진 모래알 보다 밤 하늘에 있는 별 숫자가 많답니다
우리 인간의 나약함은....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가 얼마든지 있답니다 무당이 작두에 서고 불치병을 종교 지도자가 고치고....
암튼 긍정적인 자세로 마음을 모으시면 새로운 세계를 경험 하실겁니다?^^ 필~승!
저는 외할머님 등에 업혀 통도사 주지 "경봉 스님"께서 아호를 " 창호 "로 지어 주셨습니다. 지금도 필명을 가끔 무창호로 써지요
외할아버님이 일본인들을 피하여 영남 알프스 동편 배냇골에 왜정 시대를 사시다가 6. 25 동란으로 범냇골에서 사셨는데
저의 어머님과 아버님의 결혼으로 저는 외할아버님의 무릎에서 천도교, 유교를 배웠습니다. 한학도요.. 유치원을 다닐때에 기독교에 입문, 친가 진주로 이주 후 증조 할머님의 기독교에 빠져.. 지난 50살 때 경주 성동 성당에 들어가서 교육과 영세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불교, 유교, 천도교, 천주교, 기독교, 가리지 않고 자유 왕래 합니다.
제가 쓴 글들은 이웃이 하나님, 하느님, 부처.
ㅎㅎㅎ 참 여러교를 두루 살폈네요. 우리나라 처럼 종교의 자유가 있어 다양한데 어떤때는 국교로 하나만 있엇으면 하는 생각도 들어요, 갈등이 없게시리...헌데 원체가 무종교스타일이 되어놔서 푹 빠지지 않아 늘 맹송매송하네요.
종교로 갈등이 생긴다면 안타까운 일이지요.....
편협함에 빠지지 않는것이 중요하다고 생각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