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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 2: 13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 1 )
욜 2: 13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찌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
1]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유대인들에게 옷을 찢는 행위는 내면적인 큰 슬픔을 겉으로 표현하는 공식적인 방법이었다.
* 창 37:29-35 – 29 르우벤이 돌아와 구덩이에 이르러 본즉 거기 요셉이 없는지라. 옷을 찢고 30 아우들에게로 되돌아와서 이르되, 아이가 없도다. 나는 어디로 갈까? 31 그들이 요셉의 옷을 가져다가 숫염소를 죽여 그 옷을 피에 적시고 32 그의 채색옷을 보내어 그의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이것을 발견하였으니 아버지 아들의 옷인가 보소서. 하매 33 아버지가 그것을 알아보고 이르되,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 먹었도다. 요셉이 분명히 찢겼도다. 하고 34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35 그의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 대하 34: 27 - 내가 이 곳과 그 주민을 가리켜 말한 것을 네가 듣고 마음이 연약하여 하나님 앞 곧 내 앞에서 겸손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그들은 진정한 슬픔을 표현하기보다는 형식적인 것에 그쳤다.
그러므로 요엘은 의례적인 행사로서의 회개가 아니라 마음의 진정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마음을 찢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키르우 리바브켐'(*)은 철저한 내적 변화를 의미하며, 마음의 할례를 받는 것과 같은 이미지를 갖는다.
* 신 10: 16 -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 신 30: 6 -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 렘 9: 25 -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면 할례 받은 자와 할례 받지 못한 자를 내가 다 벌하리니
2]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하나님 여호와께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웨슈부엘 아도나이'(*)는
12절의 '내게로 돌아오라'(*, 슈부 아다)와 병행 구절을 이룬다.
여기서 사용된 '...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엘'이 '아드'보다는 약한 표현으로
12절보다 돌아오라는 점에 강조를 두고, 이스라엘 백성이 돌아올 수 있는 근거를 여호와의 은혜로우신 성품에 둔다.
3]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1) 은혜
'은혜'(창 6:8)의 원어 '헨'은 '하난'(불쌍히 여기다, 아랫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다)에서 파생된 말로
하나님께서 경건한 자(시 4:3)와 고생하는 자(시 6:2)를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사랑, 은총, 긍휼등을 의미한다.
* 창 6:8 –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 시 4:3 -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그를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 시 6:2 -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 창 30:27 - 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그대로 있으라.
* 출 33:12 -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그렇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본성이 곧 사랑과 긍휼, 공의임을 뜻하는 '헤세드'(렘 9:24)와는 달리
먼저 은혜를 받는 자가 경건하며 의로운 자여야 한다는 조건이 필요하는 단어이다(9절).
* 렘 9:24 -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기서 우리는, 비록 하나님의 강권적인 사랑이 없다면 구원 얻을 자가 아무도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 롬 3:10-12 –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 같은 사랑에 대한 인간 편의 적극적인 반응과 노력이 함께 있어야 됨을 알 수 있다.
* 계 3:20 –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구약에서의 은혜:
구약에서 은혜를 의미하는 단어는 ‘헨’(창 6:8, 에 5:8, 잠 3:34, 전 10:12)과
‘라하밈’(rahamim)과 ‘헤세드’(창 20:13, 창 24:12, 출 15:13, 룻 2:20, 렘 32:18, 단 1:9, 욘 2:8) 등이다.
* 창 6:8 -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 에 5:8 -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고 왕이 내 소청을 허락하시며, 내 요구를 시행하시기를 좋게 여기시면, 내가 왕과 하만을 위하여 베푸는 잔치에 또 오소서. 내일은 왕의 말씀대로 하리이다. 하니라.
* 잠 3:34 -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 전 10:12 - 지혜자의 입의 말들은 은혜로우나 우매자의 입술들은 자기를 삼키나니
* 창 20:13 - 하나님이 나를 내 아버지의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 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었노라.
* 창 24:12 - 그가 이르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오늘 나에게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 출 15:13 - 주의 인자하심으로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 룻 2:20 - 나오미가 자기 며느리에게 이르되, 그가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 그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하고, 나오미가 또 그에게 이르되, 그 사람은 우리와 가까우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의 하나이니라. 하니라.
* 렘 32:18 - 주는 은혜를 천만인에게 베푸시며 아버지의 죄악을 그 후손의 품에 갚으시오니 크고 능력 있으신 하나님이시요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니이다.
* 단 1:9 –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 욘 2:8 -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헨’은 하나님께서 경건한 자와 고통당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말한다.
* 시 4:3 -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그를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 시 26:11 - 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하오리니 나를 속량하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 시 6:2 -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 시 25:16 - 주여 나는 외롭고 괴로우니 내게 돌이키사 나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라하밈‘은 죄 사함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 출 34:6 -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 시 51:3 -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헤세드’는 인자한 하나님의 본성을 말한다.
* 시 112:4-5 – 4 정직한 자들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그는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며 의로운 이로다. 5 은혜를 베풀며 꾸어 주는 자는 잘 되나니 그 일을 정의로 행하리로다.
* 렘 9:24 -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된 단어는 ‘헨’(hen)인데,
이것은 원래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보여준 호의’를 뜻하는 말이었다.
구약에서는 신약에서처럼 분명하게 은혜에 대한 개념이 드러나지 않는 것 같지만,
은혜는 분명히 구약에도 나타나고 있다.
특별히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의 선택과 그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인내에서 드러나고 있다.
또한 은혜에 대한 분명한 표현은 모세에게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신 것에서 발견되어진다.
* 출 34:6-7 – 6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7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신약에서의 은혜:
헬라어 ‘카리스’(charis)는 일반 헬라어에서는 사람을 끄는 매력 또는 아름다움,
친절한 혹은 호의적인 태도, 어떤 친절에 대한 감사를 의미했다.
* 잠 1:9 -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 사슬이니라.
* 눅 4:22 -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헬라 인들은 이 단어를 좋아했으며 다른 사람으로부터 보상이나 호의를 기대하지 않는
관용을 표현하기 위해 이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그 후 그리스도인들은 이 단어를 ‘선물’이라는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서
곧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구속해 주시는 ‘구원의 선물’이란 뜻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즉 구속적인 사랑을 말하는 데 사용되었고
특별히 바울은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말할 때 사용했다.
* 롬 5:8 -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은혜는 죄인에게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 엡 2:4-5 –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은혜는 긍휼보다 좀 더 적극적이다.
* 딤전 1:2 -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 딤후 1:2 -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바울은 그의 서신서 마지막을 대부분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딤전 1:2)라고 기록했다.
은혜는 기독교 신학에서 가장 결정적인 개념인 것 같다.
왜냐하면 은혜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멀어진 피조물을
하나도 공을 드리지 않은 행위를 통하여 구원해 주시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모든 기독교 교회가 이러한 공식적인 정의를 인정하지만,
이 공들이지 않은 행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며,
멀어진 것은 무엇을 의미하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서로 다르다.
그러나 은혜의 개념은 신학적인 관점에서 다른 모든 결정적인 개념들과
밀접한 관계를 하고 있기에
모두 은혜의 개념 때문에 결정된다고 말할 수 있다.
서방 기독교의 두 주류인 로마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사이의 주요한 불일치를 연구함으로
이 개념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은혜에 대한 천주교의 개념은 구원을 영혼의 신성화(divinization)에 지나지 않은 것,
즉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축복을 통한 기쁨을 보는 확신에 최종적으로 기초를 두고 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영혼이 더 높은 존재의 단계에까지 올라가는 것이 필요하다.
초자연적인 능력과 덕목들의 주입(infusion)이 요구되며,
이런 것들의 실행은 마지막 축복의 환상을 위하여 사람에게 공로가 되며,
성화의 은혜는 올라갈 수 있는 초자연적 능력이 될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타락 이전에는 이것을 소유하고 있었으나
에덴동산에서의 재난으로 그것을 잃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성과 의지의 자연적 능력은 상실하지 않았다(참조. 원죄).
구속은 그것이 주입하는 초자연적 능력과 덕목들의 회복을 의미하며,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신비적인 몸인 교회 안에 신자들이 동참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가 만족되어 가능해지며, 이것을 통하여 잃었던 성화의 은혜는 다시 한번 얻게 된다.
여러 세기 동안 천주교 신학자들은 이 계획에 대하여 자연히 발생된 문제들을 취급하려는
많은 우수한 신학적 특수성을 창안해 냈다.
신앙을 향한 의지의 첫째 동작은 은혜의 결과인가
혹은 단순한 자유롭고 자주적인 인간의 행위인가?
만일 이것이 은혜의 결과라면 은혜에 의하여 촉진된 것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고의로 포기하실 수 있겠는가?
만일 포기하실 수 있다면 구원받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책임을 지실 수 있는가?
현실적 은혜, 성화시켜 주는 은혜, 선행하는 은혜, 종속하는 은혜, 충분한 은혜, 효과가 있는 은혜
그리고 이외에도 많은 개념이 개신교 신학자들이 알지 못하는 것들로서,
천주교에서는 매우 미묘하게 질서를 만들고 또한 그들의 신앙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특수성이 기초로 하는 견해들은
은혜가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자유 의지를 무시하지 않으며,
영혼 속에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초자연적 덕목들을 주입하고,
덕목들은 마지막 환상 때에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따라서 은혜는 여러 등급으로 수여되며, 이것을 잘 이용하여 사람이 공로를 세우면 은혜를 증가시킬 수 있다.
루터(1483-1546년)에게는 은혜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죄와 율법으로부터의 구원을 의미한다.
구원이란 의인(의인)이고 복음이며 사죄다.
은혜는 실체적인 것이 아니고 관계적인 것이며 형식적인 것이다.
그것은 우리 안에서의 주관적인 변화로서의 영혼의 자질이 아니라 하나님의 호의로 생각된다.
루터는 인간의 공로나 자유 의지를 일체 반대하고,
은혜는 그저 받는 것뿐이라고 했다.
은혜를 받는 것을 신앙이라고 하면 신앙은 완전히 수동적인 것이 된다.
마치 여자가 수태하는 경우와 같다.
그러면 이러한 은혜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그것은 의인이다.
그는 의인의 조건으로서의 선행 사상을 강력히 물리치고,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 때문에 하나님께서 입혀주시는 의이다.
즉 이 은혜는 전가된 의이다.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시키는 것이다.
그는 은혜를 바로 그리스도 자신이라고 한다.
그리스도는 계명이나 교훈을 주려고 온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을 주려고 왔다.
그의 대속적 행위 자체가 은혜이다.
그리스도는 생명이요 평안이며 구원인데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았다.
그리스도의 모든 좋은 것은 우리의 것이 되고,
우리의 모든 조악된 것은 그분의 것이 되어서 소위 "행복된 교환"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뜻에서 그리스도가 곧 하나님의 은혜이다.
칼빈(1509-1564년)은 은혜 사상도 루터의 사상과 대동소이하다.
약간 다른 점은 첫째로 은혜의 무류성을 덧붙인 것이요,
둘째는 소위 이중의 은혜를 말한 것이다.
이중의 은혜라는 것은 의인의 은혜와 성화의 은혜이다.
루터가 은혜를 의인에 집중시키는 데 비하여 폭을 조금 넓힌 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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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무리에게서 스스로 갈라지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잠 18:1).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은 미소가 없는 사람이라고 했고
꾸밈 없는 미소, 주변을 편하게 해주는 미소,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해주는 미소, 배려와 소통이 함께하는 미소,
오늘도 주변과 이웃에 곱고 예쁜 미소 가득한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