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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성취한 일들19:31~37
31 이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32 군인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33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34 그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35 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 증언이 참이라 그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36 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37 또 다른 성경에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의 장례19:38~42
38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39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40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41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42 이날은 유대인의 준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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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한 군인이 예수님의 다리를 꺾는 대신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자 피와 물이 나옵니다.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의 허락을 받아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갑니다. 니고데모는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가져옵니다. 이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싸고, 동산 안의 새 무덤에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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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성취한 일들19:31~37
율법은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 두는 것을 금합니다(신 21:22~23). 게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다음 날은 안식일과 유월절이 겹치는 ‘큰 날’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빌라도에게 십자가에 달린 자들이 빨리 죽도록 다리를 꺾고 시체를 치워 달라고 요청합니다. 군인들이 예수님 좌우편 사람들의 다리를 꺾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죽었다고 판단해 다리를 꺾지 않습니다. 이는 유월절 어린양의 뼈를 꺾지 말라는 말씀을 이룬 것입니다(출 12:46). 한 군인이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르니 피와 물이 나옵니다. 이 일도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라는 말씀을 이룬 것입니다(슥 12:10). 이 증언이 진실한 이유는 직접 본 자(요한)의 증언이기 때문입니다(35절).
● 더 깊은 묵상
예수님의 다리가 꺾이지 않고 옆구리가 창에 찔린 일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나를 위한 예수님의 희생을 생각할 때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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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장례19:38~42
믿음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시신을 처리하고자 하면 위험이 따릅니다
. 첫째, 예수님이 로마에 저항한 두 강도와 함께 처형되셨기에 반로마 체제 인물로 낙인찍힐 수 있습니다(막 15:27).
둘째, 유대 종교로부터 출교될 위협이 따를 수 있습니다(38절; 12:42).
셋째, 사회적으로는 수치스럽게 죽은 사람과 한 부류라는 불명예가 따를 수 있습니다. 그동안 제자임을 숨기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용기를 내어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요청합니다. 니고데모도 용기를 내어 몰약 등 향품을 가져와서 예수님의 장례를 돕습니다(39절; 참조 3:1~2).
믿음에 용기를 더한 사람들로 인해 예수님의 장례가 아름답게 마무리됩니다.
● 더 깊은 묵상
요셉과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위해 용기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 앞날에 손해가 되더라도 믿음에 용기를 더할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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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주시는 기회
죽기 전에 해 보고 싶은 일들을 기록해서 하나씩 실천해 보는 ‘버킷 리스트’가 유행입니다. 이러한 시도는 우리 인생에 후회와 아쉬움이 많음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셨을 때 아리마대 요셉은 이런 후회와 아쉬움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성경을 보면 그는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버릴 만큼 확신 있게 살지 못했습니다. 그가 머뭇머뭇한 사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제자로서 예수님을 직접 섬길 기회를 상실한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의 모습도 비슷하지 않습니까? 믿음이 부족하고 현실도 녹록하지 않아 예수님 섬기기를 주저하다가 그만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한다면, 우리 마음은 어떨까요?
그런데 아리마대 요셉에게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총독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간청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각오로 한 선택입니다.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었기에 그럴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에게 기회를 주십니다(눅 23:51). 요셉이 제공한 새 무덤과 예수님의 시신을 싼 세마포는 부활을 증언하는 확실한 도구로 쓰임받았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눈을 뜨고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고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기회를 주시며, 우리 삶을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언하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지금 선택해야 할 것들 / 김형준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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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요한복음 19장 38절
예수님의 죽음은 슬픔과 절망이 아닙니다. 감동과 소망을 넘어 생명과 영생의 시작입니다. '죽음을 이긴 승리의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유대인들의 이목이 두려워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실을 숨기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님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 달라집니다. 그는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 영원하지 않은 것을 버리기로 결단합니다. 그에게 십자가는 이제 수치와 죽음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참된 생명을 누립니다.
정확한 시간에 적절한 장소에서 주님의 뜻에 적합한 일 을 하는 것이 제자의 임무다. - 척 피어스
오늘의 기도
하나님,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못한 종교인은 누군가를 죽음으로 내모는 무서운 죄인이 될 수 있음을 봅니다. 종교적 겉치레에 치중하는 사람이 아닌,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주님을 향한 사랑을 삶으로 실천하게 하소서.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어떠한 상황, 어떠한 순간에도 주님의 말씀이 온전히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행동해 나갈 수 있도록 하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당당하게 밝히고, 주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기 위해 맡겨 주신 소명을 잘 감당해 나가도록 하자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그 크고 놀라운 일들에 감사하고, 늘 그 사랑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들을 해 나가도록 하자
요한복음19:31-42절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예수님은 안식일 하루 전 십자가에 돌아가셨고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시신이
안식일까지 그대로 둠으로 안식일이 더럽혀지길 바라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빌라도를 찾아가예수님의 시신을 치워달라고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의 요구가 받아졌고 예수님의 시신을 치우는 과정 중에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 되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다리를 꺽지 않음이 성취 되었습니다
십자가 형에 처한 사람은 폐에 산소를 공급하려고 몸을 들어올리고 그 과정에 다리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다리를 꺽어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죽음을 앞당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미 돌아가셨기에 다리를 꺽을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성경의 예언이 성취가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36절입니다 "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꺽이지 아니하이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그리고 요한복음의 저자 요한은 예수님이 메시야 임을 말씀합니다
37절입니다 "또 다른 성경에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
무슨 말씀인가하면 예수님을 찌른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보리라 즉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보리라
알게 되라라는 말씀입니다
정리하면 요한복음의 저자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다리가 꺽이지 않은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가 된것이라 말하면서 예수님이 바로 구원자이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가 예수님이 구원자이시다는 말은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믿을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당시 예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구원자라는 사실은 큰 위로와 힘이 되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구원자이시고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믿는 것은 동일하게 우리에게도 위로와 힘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도 힘을 낼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구원자 이신 예수님을 믿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2) 이어서 유대의 공회원이었던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 두 사람이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달라하여
예수님을 장례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유대 공회원인 신분으로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하는 것은
공회원 자격을 잃을수 있고 그리고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들애개 공격을 받을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상의 사실을 통해 두 사람에게 변화가 있었음을 알수가 있습니다
두 사람의 변화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달으면서 변화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을 알때 예수님에 대해 깨달을때 변화가 찾아온다고 할수 있습니다
변화인데 어떤 변화이냐 하면 두 사람이 보여준것처럼 자신의 명예보다 혹시 있을지 모를
공격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두 사람의 변화의 시작은 예수님을 알면서 깨달으면서의 변화입니다
바라기는 예수님을 더 알아가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 사람에게 있었던 좋은 변화들이 우리에게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어떠한 열매를 맺는 삶이어야 합니까?
➲ 자유와 안식의 열매를 맺는 삶이어야 합니다(31~33절).
유대인들에게 가장 큰 절기인 유월절 주간에 찾아온 안식일이기에 그들은 부정해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나무에 달린 자마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들이며, 그대로 방치할 경우 그 사람이 받은 저주로 인해서 그 땅까지 더럽혀진다고 믿었습니다(신 21:22~23, 갈 3:13). 그래서 예수님의 시신을 십자가에 두지 않으려고 빌라도에게 찾아가 죄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31절)고 부탁했습니다.
군인들은 예수님이 양 옆에 있는 사람들의 다리는 꺾었지만, 예수님은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않았습니다(32~33절). 예수님은 심문 과정에서 매우 혹독한 채찍과 조롱 등을 당하셨기에 다른 죄수들보다 훨씬 빨리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유월절의 진정한 어린양이심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무죄한 사람을 죽여서 하나님 앞
에 죄를 지었다는 사실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그 땅과 자신들이 더럽혀지는 것만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기들의 이익과 욕심을 위해서 악독한 일을 저지르기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뼈가 상하지 않았다는 것은 예수님이야말로 진정한 유월절의 어린양이 되심을 보여 주는 증거가 되며, 구약 예언의 성취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내 자신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오르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나의 모든 죄 값을 치르셨습니다. 구원은 바로 이러한 예수님의 고난과 고통 속에서 얻어진 것입니다. 결코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죄의 노예로 살아가지 않아야 합니다.
죄로 인하여 쓰러진 자리에 머물러 있지 말고, 십자가를 붙들고 다시 일어서야 하겠습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므로 주님이 주시는 참된 자유와 안식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정결과 거룩의 열매를 맺는 삶이어야 합니다(34~37절).
한 군인이 예수님이 죽으신 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몸에서 피와 물이 흘러 나왔습니다(34절). 예수님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육신을 갖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대속을 완성하셨습니다.
이것은 목격자가 증언한 것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이 죽으신 것을 믿게 하려는 것(35절)이라고 요한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성경의 예언대로 돌아가신 것(출 12:36; 민 9:12; 시 34:20; 슥 12:10)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36~37절).
성도로서의 삶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것이고, 그 이름을 힘입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끊임없이 성장해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러야 합니다(엡4:13). 왜냐하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 자신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보혈의 값어치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쏟으신 물과 피로 내 자신이 정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피를 마심으로 내 자신은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물과 피를 흘리신 예수님은 이 땅에 남은 자들을 위해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은혜 아래 살아가는 내 자신의 삶을 주님을 위해 온전히 드리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거룩하고 정결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변화와 헌신의 열매를 맺는 삶이어야 합니다(38~42절).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님의 제자였음에도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겼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요구해 허락을 받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많은 양의 향료를 준비해서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예수님의 시신을 세마포로 감쌌습니다. 그리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에 예수님의 시신을 모셨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원이라는 지위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을 감췄던 아리마대 사람 요셉, 그리고 유대 관원이었던 니고데모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예수님이 돌아가시자 자신들의 신앙을 분명하게 드러내며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였습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경험한 후에 요셉과 니고데모는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최고의 헌신을 드렸습니다. 성도는 고난과 어려움이 닥칠 때 더더욱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이 해서 그 기쁨을 드러내는 삶이어야 합니다.
십자가는 내 삶의 변화를 가져오게 합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경험할 때, 삶에 분명한 변화가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변화와 헌신이 없이 축복을 바란다면 십자가의 고난 없이 부활의 영광을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더 이상 비겁한 그리스도인으로 그리고 소심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담대하게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므로 변화와 헌신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모든 것을 내어 주신 예수님 안에서 참 자유와 거룩과 헌신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갈 뿐만 아니라 거룩하고 존귀하신 주님의 희생을 기억하며 삶의 전 영역에서 십자가의 열매를 아름답게 맺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요 19:31~42절)...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32-34절 자신의 피와 물을 다 쏟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쏟으신 물과 피는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이며, 정결하게 하는 샘입니다.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고 약속하신 성령에 대한 보증입니다(7:38). 죽음을 확인하려고 찌른 창은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었을 뿐입니다. 소나무가 제 몸을 찍은 도끼에 향을 묻히듯, 예수님은 자신을 찌른 이들에게 생명을 쏟아 내셨습니다.
40-42절 하나님이 창조를 마치고 안식하셨듯이, 예수님도 구원의 일을 마치고 안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은 니고데모가 가져온 엄청난 양의 향품과 함께 세마포에 싸여 새 무덤에 안치되었습니다. 왕의 즉위식 후에 이어진 왕의 장례식이었습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새 무덤은 새 창조(부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31절 ‘큰 날’ 안식일에 시체를 밤새 나무에 매달아 두는 것은 땅을 더럽히는 일이었기에(신 21:23), 유대인들은 빌라도에게 시체를 치워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불법적으로 예수님을 죽인 이들이 율법을 지키려 하고, 마음이 더러운 이들이 땅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하는 꼴입니다. 씻어야 할 것은 그들의 탐욕이었고, 치워야 할 것은 그들의 위선이었습니다.
35-37절 예수님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은 자기가 본 바를 있는 그대로 증언했고, 그분의 죽음이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이요(출 12:46) 예언의 성취(슥 12:10)임을 설명했습니다. 목격자의 증언과 해석 덕에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을 알고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되었습니다. 구원을 경험했고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적 사실을 아는 우리가 신실하게 증언한다면 분명히 믿는 사람들이 생겨 날 것입니다.
38-40절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는 요셉의 요청은 자신의 지위는 물론, 인생을 건 모험이었습니다. 왕의 장례에 바칠 만한 양의 향품을 가져온 니고데모도 위험하긴 매한가지였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그들은 밤에서 낮으로, 기존 체계에서 새로운 세계로, 주저하던 선을 마침내 넘었습니다. 진정한 제자는 어려움을 만날 때 그 진가를 드러냅니다.
기도
공동체-주저하며 숨어 있던 자리에서 나와 예수님의 제자로 당당히 살게 하소서.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셨고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시신을 인수받아 몰약을 가지고 찾아온 니고데모와 함께 장례를 치른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신을 인수 받는 과정에서 한 군인이 예수님이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않고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자 피와 물이 나왔음을 덧붙이면서 요한이 말하려는 것은 당시 부활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것에 대한 반증이며, 예수님의 죽음이나 죽음 이후의 일까지 모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졌으며 구약 성경의 예언에 대한 성취임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은 로마 군인에 의해 죽임 당하신 것이 아니라 나 때문에 스스로 죽으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며 값싼 은혜가 아니라 예수님의 생명과 바꾼 값비싼 은혜임을 생각하고 그분의 보혈의 값어치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니고데모는 자신이 드러나고 비난받는 것이 두려워서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고 아리마대 요셉은 자신의 평판과 명성을 지키기 위해 예수님의 제자임을 숨겨왔으나 십자가의 예수님을 경험한 후 그들은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하여 장례를 치르는 최고의 헌신을 드렸습니다.
숨어있던 잠재적 제자에서 행동으로 옮기는 고백적 제자로 변화 되었습니다.
믿음을 숨기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의 대속을 인정하고 어려움 속에서도 신앙을 고백하며 표현하는 사람이 참 제자라 하겠습니다.
사순절 넷째 주간이 시작됩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묵상하며 어떤 장소, 누구 앞에서나 신앙을 고백하고 주님을 드러내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한 주간 보내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날은 유월절이자 해가 지면 무교절이 시작되고 큰 안식일이 시작되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않으려고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고 했습니다
이에 군인들이 가서 예수님 좌우편에 못 박힌 자들의 다리를 꺽었으나 예수님은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꺽지 않았습니다 이 역시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서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시34:20) 그때 한 군인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니 피와 물이 나왔습니다 이 역시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이루신 것입니다(슥12:10)
그날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 빌라도에게 와서 예수님의 시체 가져가기를 구하니 허락하는지라 시체를 모셔왔고, 니고데모가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가져오니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싸서 동산 바위에 판 새 무덤에 장사했습니다 이 역시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사53:9)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모든 말씀을 준비일에 다 이루셨습니다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요19:14) 무슨 준비일이라는 걸까요?
보통은 안식일 전날을 준비일이라 불렀습니다
왜냐하면 안식일에는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준비일에 먹을 것과 마실 것 등등을 미리 준비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날은 그냥 준비일이 아니라 유월절의 준비일이었기 때문에 가장 큰 준비일이었습니다
바로 영원한 안식할 날을 위해 모든 속죄를 이루시고 그 날에 모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아서 영생의 양식을 주께서 준비하셨기 때문입니다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요4:36) 그러므로 우리가 확실히 믿는 것은 주께서 유월절의 준비일에 모든 것을 예비하셨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마22:4)
그러므로 이제 우리에게 주께서 완전하게 예비하신 나라를 곧 주실 줄 믿습니다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마25:34) 참으로 주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모든 전무후무한 것들을 곧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전2:9)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31~33,36절 예수님의 죽음은 성경에 이미 예고된 일이었습니다. 심지어 시신 처리 방식까지도 정해져 있었습니다. 무기력한 죽음처럼 보이지만, 무의미한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른 죽음에 사람들은 놀랐지만(마가복음 15장 44절), 예수님은 십자가도, ‘이른’ 죽음도 스스로 취하셨습니다.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목숨을 아버지께 드린 것입니다(누가복음 23장 46절). 그것이 세상을 살리려는 아버지의 뜻이고, 아버지의 영광에 참여하는 길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31,42절 유대인들은 유월절과 안식일이 부정해지는 것을 원치 않아 시신 처리를 요구했지만, 하나님은 유월절 어린양이신 예수의 죽음을 통해 우리를 정결케 하시고 참 생명과 안식을 안겨 주셨습니다. 문자와 형식에만 매인 차가운 종교에 복음은 질식당하고, 안식은 깃들지 못합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34~37절 이미 죽은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자 그 몸에서 물과 피가 쏟아집니다. 요한은 심문(18장 15절)부터 죽음까지 전 과정을 지켜보며, 이 모든 것이 역사적 사실이며 예언의 성취(스가랴 12장 10절)라고 증언합니다. 처형을 집행한 군인들도, 보고받은 빌라도도 확인한 사실입니다. 세상은 복음의 증거가 부족해서 안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 복음이 자신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바꾸고 인생의 주도권을 주께 이양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에 거부하는 것입니다.
38~42절 반역죄로 처형당한 예수의 시신을 요구하는 것은 위태로운 일이지만, 아리마대 요셉은 목숨을 걸고 그 시신을 거두어 새 무덤에 장사합니다. 말로 신앙을 장담하던 제자들이 떠난 자리에, 아무 말 없이 따르던 요셉은 실천해야 할 때가 오자 예수님과의 관계를 숨기지 않고 할 일을 합니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그 헌신이 그가 예수의 제자임을 입증해 주었습니다.
39절 밤에 예수님을 찾아 진리를 묻던(3장 2절)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비싼 향료를 준비합니다. 밤의 사람이던 그가 때가 되니 빛으로 나왔고, 숨은 제자에서 드러난 제자가 됩니다. 진실한 믿음은 위기의 순간에 빛이 납니다.
기도
공동체-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더는 숨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지 않게 하소서.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유월절 규례는 이러하니라 이방 사람은 먹지 못할 것이나
각 사람이 돈으로 산 종은 할례를 받은 후에 먹을 것이며
거류인과 타국 품꾼은 먹지 못하리라
한 집에서 먹되 그 고기를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고 뼈도 꺾지 말지며
이스라엘 회중이 다 이것을 지킬지니라.(출 12:43~47)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시 16:9~10)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서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시 34:19~20)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슥 12:10)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고전 5:7)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고전 6:1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 히브리서 7:22
도저히 덮여질 수 없었던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독생자의 생명을 내어 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섭리를 찬양하며 높여 드립니다.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세상 가운데 그 피를 끝까지 쏟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행하는 제자의 삶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은 여전히 악하여 주님의 그 사랑을, 어둠을 밝히는 그 빛을 알지 못하고 악의 세력에 붙들려 있지만, 이미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견고한 진들이 파해지고 영원하고 더 큰 소망이 주어졌음을 믿고 증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열방 구석구석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발걸음 위에 기름 부어 주시고, 그 모든 사역과 가정과 자녀들의 기도 제목 가운데 넘치게 응답하는 은혜를 매 순간 체험하게 하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모든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회복과 치유의 역사로 덮어 주시옵소서. 분열과 다툼, 미움과 분노 가운데 사로잡혀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멀리 한 모든 죄를 회개하고, 제사장 나라로서의 사명을 넉넉히 감당하도록 선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 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