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너!!! 머리!!!"
집에 들어가자마자 하리가 삿대질을 하며 버럭 소리쳤다.
하리는 샤워를 하고 나오는 길인지 반바지만 덜렁 하나 걸치고 있었다.
까무잡잡한 근육질의 몸이 보였지만 비는 별 생각 없었다.
근육질의 몸을 가진 남자라면 주변에 널리고 널렸기 때문이다.
"네 머리 대체 왜 그런 거냐? 왜 그렇게 짧아진 거야? 그러면... 그러면..."
하리가 몹시 충격이란 표정으로 다가와 커다란 두 손으로 비의 양 볼을 감쌌다.
"네 못 생긴 얼굴을 가릴 것이 하나 없어지는 거잖아."
"......."
"그럼... 이제 널 보는 사람들은 이제까지보다 10배의 충격을 받아야 한다는 건가?"
"비켜, 원하리. 너랑 장난칠 기분 아니니까..."
비가 하리의 손을 툭툭 쳐서 떼어내고 몸을 돌리려는데, 하리가 비의 어깨를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가만히 비의 눈을 응시하던 하리가 말했다.
"애들이 억지로 잘랐구나?"
"........"
"이렇게까지 당하면서 왕따를 그만 두지 않는 이유가 뭐냐?"
"어쩔 수 없잖아. 애들이 날 왕따 시키는데..."
"내가 보기엔 네가 애들을 왕따 시키는 거 같은데?"
"네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왕따를 당하는 중이야. 저리 비켜."
"유민정이 그랬냐?"
"알아서 뭐하게? 가서 잘했다고 칭찬해주게?"
하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 비를 놓아주며 말했다.
"아니. 혼내주게."
"대체 왜? 관둬."
"이건 룸메이트에 대한 예의다. 내 룸메이트가 유일하게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머리카락을 잘려왔는데,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는 거 아니겠냐?"
"응. 아니겠어. 그러니까 제발 아무 짓도 하지 마. 네가 끼어 들면 난 더 괴로워져."
"왜?"
"정말 몰라서 물어?"
"응."
하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걔들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가 뭔지 알아? 너 때문이야, 원하리. 너와 내가 룸메이트가 되니까 부러워서 그런 거라구."
"왜? 걔들이 너 좋아하냐?"
하리의 말에 비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걔들이 널 좋아하는 거야. 널 좋아하기 때문에 너와 같이 살고 있는 나를 미워하는 거고...
만약 네가 이번 일로 날 두둔하고 나서면 걔들은 더 화가 나서 날 괴롭힐걸."
"그럴 리가 없어. 여자들은 날 별로 안 좋아하거든."
"바보."
중얼거리며 돌아서는 비를 하리가 다시 한 번 붙잡았다.
그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거... 정말이냐?"
"뭐?"
"걔들이 나 때문에 네 머리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말."
비는 가만히 하리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농담이야, 바보. 걔들, 원래 그런 애들이잖아. 자, 이제 나 들어가서 옷 좀 갈아입어도 될까?"
비가 방으로 들어간 후, 하리는 흐트러진 은색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나 때문이구나.... 제길..."
다음 날.
거실이 조용해서 하리가 아직도 자나 싶어 나왔던 비는 식탁에 차려진 음식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식탁엔 비를 위해 준비된 듯한 따뜻한 국과 이런저런 반찬들, 그리고 꿀이 준비되어 있었다.
하리의 밥은 없었다.
"원하리."
"왜?"
먼저 나갔을 줄로만 알았는데 바로 들려오는 대답에 비는 좀 놀랐다.
"먼저 나갔나 해서..."
"오늘은 학교 같이 못 가겠다. 먼저 가라."
"언제는 같이 갔냐?"
"꼬박꼬박 토 달지 좀 마라, 기집애가..."
"기집애가 뭐?"
"됐다, 됐어."
방에서 하리는 건성으로 대꾸하고는 입을 다물었고, 비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하리가 차려준 아침을 다 먹은 후에 집을 나섰다.
방에 누워서 천장을 올려다보며 비의 잘린 머리에 대해 생각하던 하리는 자기도 모르는 새에 잠이 들었다가
2시간이나 지나서야 일어났다.
멍한 표정으로 시간을 확인한 하리는 머리를 긁적이며
"제길..."
이라고 중얼거리고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일단은 룸메이트니까... 화가 나는 건 당연한 거겠지."
기분이 나빴다.
비가 자처해서 왕따가 되는 것 같기는 하지만, 어쨌든 기분이 좋진 않았다.
민정에게 붙들려서 머리가 잘렸을 비를 생각하면 뱃속에서부터 무언가가 울컥하는 것이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래서 하리는 민정을 조금 혼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민정 패거리는 오늘도 비에게 시비를 걸었다.
해은은 자기가 자리를 비운 새에 민정이 비에게 안 좋은 해코지라도 할까 싶어서 아예 교실에서 나가질 않고 있었다.
"너네 엄마는 너 낳고 미역국 먹었대니?"
"......"
"아마 못 먹었을 것 같다. 네 얼굴 보고서 기절하셨을 거 아냐. 까르르르르륵."
해은은 피식 웃었다.
'나중에 비의 진짜 얼굴 봤을 때의 모습이 기대되네.'
비는 그들의 말을 무시하려 애썼지만, 그들이 엄마인 승현이 미역국을 "먹었"는지, "드셨"는지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상당히 불쾌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어른에게는 드셨느냐고 하는 거야."
라고 쏘아주는 게 좋을까 하고 깊이 번뇌하고 있을 때,
드르륵-
교실 문이 열리며 하리가 모습을 나타냈다.
민정은 하리를 흘끗 쳐다보고는 아무 일도 없는 척 패거리들과 함께 자리로 돌아가려 했지만,
큰 걸음으로 걸어온 하리가 민정의 앞을 막아섰다.
갑자기 앞을 막는 하리의 가슴에 얼굴을 부딪힌 민정은, 어쨌든 안긴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는 생각에 얼굴을 붉히며
하리에게서 조금 떨어졌다.
차마 하리를 올려다보지는 못했다.
해은은 손에 턱을 괴고 약간 비스듬한 자세로 하리와 민정, 비를 쳐다보고 있었다.
비가 시야에서 약간 벗어나긴 했지만...
"너냐?"
"뭐, 뭐가?"
"네가 강순자 머리를 저렇게 만들어놨냐?"
"...그... 그런... 아냐, 그런 거..."
"그래?"
"으, 응..."
"그거 거짓말이면... 어떻게 될까?"
하리가 씩 웃으며 물었다.
악의가 없는 듯 하면서도 소름이 오싹 끼치는 미소였다.
비는 그런 하리를 보며
'보통이 아닌 녀석이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라는 생각을 했다.
그건 해은도 마찬가지였다.
하리에 대한 소문은 많이 들었지만, 하리가 직접적으로 누군가를 협박하는 일은 드물었기에
민정에게 보여주는 하리의 모습이 굉장히 생소하게만 느껴졌다.
"거...짓말이라니..."
"강순자가 내 룸메이트라는 건 너도 알고 있겠지?"
"응..."
"난 말이지, 최소한 내 룸메이트에 대한 예의는 지키면서 살고 싶다.
그런데 누군가가 자꾸 내 룸메이트를 건드리면 내가 나서야만 하는 경우가 많이 생기는 거잖냐.
그게 얼마나 짜증나는 일인지 아냐?"
"......."
"내가 나서는 경우는 없도록 하자. 응?"
"그... 그래. 걱정하지 마."
하리가 여전히 미소지은 얼굴로 말했다.
"그럼 나한테 싸대기 한 대 맞자."
"에?"
민정이 눈을 크게 뜨고 하리를 쳐다봤다.
하지만 하리의 표정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내가 봤을 때, 강순자 머리는 분명 네가 자른 것 같거든. 강순자는 내가 못 미더운지 말을 안 해주려고 하지만 말이야."
"......"
"네가 강순자의 머리를 저렇게 만들어 놓은 게 분명한데, 내가 그냥 넘어가면 내 꼴이 뭐가 되겠냐?
난 룸메이트를 위해 아무 것도 못 해주는 배신자가 되어버리는 거잖아. 그러니까 한 대 맞자."
"어, 어째서? 난 저 애 머리를 저렇게 만들지 않았어!! 쟤가 기분 전환이라도 하려고 자르고 온 모양이지."
"강순자도 자기 얼굴을 잘 아는 애야. 설마 그 긴 머리를 다 잘라서 자기 얼굴을 훤히 내보이고 다니려 했겠냐?"
"으..."
"눈 딱 감고 한 대만 맞아라. 안 그러면..."
하리의 표정이 약간 변하는 듯 했지만, 다시 미소 띤 얼굴로 돌아갔다.
그 변화를 눈치챈 것은 해은뿐이었다.
비는 더 이상 하리를 보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기와는 무관한 일인 것처럼 수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되는지는 나와 같은 학교였던 네가 더 잘 알 테니까..."
하리의 말에 민정의 표정이 크게 변했다.
지금껏 좀 당황한 표정만 짓고 있던 민정의 얼굴에 공포가 떠올랐고, 곧이어 하얗게 질린 얼굴이 된 민정은
이를 악물고 눈을 꽉 감았다.
하리가 손을 치켜들었다.
짜악-
커다란 소리와 함께 민정은 비틀거렸지만 옆에 있던 패거리들이 잡아줘서 넘어지진 않았다.
주르륵-
입안이라도 터진 건지, 민정의 입술에서 피가 한 줄기 흘렀다.
"으흑...."
민정이 흐느꼈다.
민정의 눈에선 눈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하리가 무서워서인지 크게 울지는 못하고 있었다.
'호오... 대체 어땠길래?'
해은은 하리가 중학교 때 어땠길래, 그 한 마디로 민정을 저렇게 만들 수 있었는지가 궁금했다.
하리는 웃으며 민정의 어깨를 툭툭 쳤다.
"자, 자. 이걸로 된 거다. 앞으로는 내 룸메이트를 너무 심하게 건드리지 말아라."
"거봐, 좋은 녀석이지?"
비가 씩 웃으며 물었다.
옥상 문을 잠그고, 얼굴에 쓰고 있던 가면을 벗은 비의 표정은 무척 상쾌해 보였다.
비의 설명을 다 들은 정운이 조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야, 좋은 녀석이라기보다는...."
그 때, 해은이 정운의 말을 가로챘다.
"그래, 좋은 녀석이네. 네 판단이 맞았어."
"훗. 별 거 아니다."
비가 자랑스레 고개를 치켜들며 중얼거렸다.
오후의 햇살을 받는 비의 얼굴은 태양이 무색할 정도로 밝고 예뻤다.
정운은 고개를 갸웃하며 해은을 한 번 쳐다보고는, 곧 어깨를 으쓱하곤 말했다.
"해은이 너, 요새 현도진인가? 그 새끼랑 자주 만난다며?"
"응? 아... 걔? 걘 정말 개야, 개. 후후."
"왜 그런 놈을 상대해주는 거냐?"
"상대해 주는 거 아냐. 걔가 억지로 날 불러내는 거지. 걱정하지 마. 적당히 놀아주는 중이니까..."
"난 그 놈 마음에 안 들어."
"나도 동감이야."
해은이 살짝 눈을 찌푸렸다.
점심을 다 먹은 비가 다시 가면을 뒤집어쓰며 말했다.
"나 내려간다."
"그래. 우린 좀 이따가 내려갈게."
"그래, 바이바이."
비가 옥상에서 나가자마자 정운이 해은에게 물었다.
"아까 왜 그런 거야?"
"아까 뭐?"
해은이 시치미를 땠다.
정운이 얄밉다는 듯 해은의 코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원하리 말이야. 그건 아무리 봐도 원하리가 비를 좋아한다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구."
"아아..."
해은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정운을 쳐다봤다.
"이 바보야! 이제 막 재미있어지려는 참인데 왜 벌써 원하리의 마음을 비에게 알려주려는 거야?
이대로 놔두면 원하리는 원하리대로 자기 마음을 모르고 고민하다가 비를 도와줄 거고,
비는 비대로 원하리를 좋은 녀석이라고만 생각할 텐데 말이야.
그러면 우리는 중간에서 무척 재미있는 상황들을 보게 될 거란 말이야."
"이런..."
정운은 크게 충격을 받은 듯 했다.
뒤통수를 맞았다는 듯한 충격의 표정이 정운의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한동안 충격 받은 표정으로 앉아있던 정운이 중얼거렸다.
"내가... 모든 걸 망쳐버릴 뻔 했잖아."
하나님을 빽으로 세상과 맞짱 뜬다...by백묘
카페 게시글
로맨스 소설 1.
[ 장편 ]
新사악소녀 8
백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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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31 22:10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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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ㅋㅋ 너무 재밌어요~ ^ㅇ^
ㄲㅑ,~ 너무재밋어요오오^0^ 유후-!ㅋ
역시 백묘님의 소설은 넘 잼이써요~~~
우와우와우와 ! 무지무지 재밌어요 어떻게될지 정말 궁금하네요 //ㅅ//
기다린 보람이 있구료...쿠쿡♡
하리가 좀더 자신의 맘을 빨리 깨닫길....... 감기조심하세요.
ㅋㅋ 백묘님 소설은 정말 재미있네요~!^^ 다음편 기대합니다!^^
ㅋㅋㅋ악악악> .< 정운이 기여워 ㅠ _ㅠ 난 왜자꾸 정운이만 보이지..호호 다음편 기대되요+.+
백묘님 왜 이렇게 늦게 하셨어요ㅜ_ㅜ보고싶어 죽는줄....ㅋㅋ
백묘님 안뇽하세요 .. 많이 기달렸습니다...ㅎㅎ;;; 눈꺼풀빠지고 다리털 빠질때까지 기다리진 않았슴....ㅎㅎ;;; 하지만 소설 재미 있습니다...ㅎㅎ;;;
우아우아 눈 빠지게 기다렸따구요..ㅠㅠ 어제 글이 없어서 몇번이나 찾았는데요..ㅠㅠ 어쨌든.............>ㅅ< 넘 재밌네요~담편 기대합니다..ㅎㅎ
ㅋㅋㅋ 정말 괴짜들이라니까요
백묘님~~넘 잘 봤습니다~!!!재밌게 써주세요~~~
이렇게 늦게라도 읽으니 좋네요,,,, 한꺼번에 왕창읽을수가 있어서 아우,,, 정말 잼나다
꺄아 백묘님 완전 존경해요 ! 자야돼는데, 안자고 백묘님 소설에 빠졌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