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는 성령세례와 충만이 선택이 아닌 필수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약속 하셨습니다.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여기서 다른 보혜사는 ‘완전히 다른 분이 아닌 같은 종류의 다른’을 의미합니다. 즉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종류의 사역을 하시는 다른 보혜사가 되십니다.
2.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보혜사 성령님은 성도와 함께 있기 위하여 주신 인격체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다른 보혜사 성령님을 통해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을 받습니다.
3. 그러면 보혜사 성령의 성령 세례와 성령 충만의 차이는 뭘까요?
4. 존 스토트는 그의 저서 성령 세례와 충만에서 이같이 말합니다.
“성령의 세례와 관련된 신약성경의 일곱 구절은 모두, 부정과거형이거나 현재형 또는 미래형의 직설법으로 되어 있으며, 명령형으로 된 권면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성령의 충만과 관련된 이러한 구절들, 즉 어떤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다시 충만해졌는지를 묘사하는 구절들과 또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계속 충만함을 받으라고 명령하는 이런 구절들이 있다는 사실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잃어버리는 것이 가능하며 또 애석하게도 그것이 흔한 일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존스토트, 성령 세례와 충만, 2장 성령의 충만 중에서-
5. 결국 성령세례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고, 성령충만은 우리에게 인격적 반응이 요구되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6. 보혜사 성령님은 어떤 분입니까? (요14: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7. 보혜사 성령님은 진리의 영입니다. 진리의 영이신 보혜사 성령님은 예수님에 관한 진리를 정확하게 드러내는 역사를 하십니다. 우리는 성령을 특정한 능력으로 오해합니다. 또 잘못된 은사주의를 성령의 역사로 착각합니다. 성령의 사람은 능력이 있어야 하고, 특별한 은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령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현상입니다.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
8. 성령의 사람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성령의 사람입니다. 다만 성령충만한 사람은 성령님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수준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9. 왜 보혜사 성령님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 못할까요?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10. 진리의 영을 받지 못하면 영적 세계를 보지 못합니다. 알지 못합니다. 바로 세상이 알 수 없는 진리의 영인 보혜사 성령님은 오직 거듭난 그리스도인들만 받습니다.
11. 그런 까닭에 교회는 세상과 똑같은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세상과 다른 진리의 영의 통치와 다스림이 실재하는 곳입니다. 그것이 진짜 은혜입니다.
이상갑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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