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자키 ; 지난 회에 불법발상지 ‘인도’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인도에서도 종문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놀랍게도 한국에 이어 중에게 ‘학력사칭’을 시켜 대학에 유학시키려는 획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인도 최고봉의 대학인 국립 델리대학교의 대학원이었지요.
사토 ; 그렇습니다. 종문은 대학도 학교도 아닌 닛켄의 사숙 ‘후지학림대학과’의 졸업증서를 이용하여 2명의 중을 부정입학시키려고 획책했습니다. 금년 3월입니다.
아키야 ; 그런데 델리대학 당국의 조사로 학력사칭이 발각. 이 추한 책략은 대실패로 끝났습니다.(웃음)
다니가와 ; 완전히 웃음거리입니다. 이 부정입학의 건은 곧바로 현지에서도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매스컴도 사건을 대대적으로 취급했습니다. <산디아타임지 - 9월 24일자>는 “외국인의 입학신청은 대사관의 확인을 요한다는 규정이 있다. 대사관은 2명이 제출한 졸업증서에는 허위가 있다고 판단하여 승인을 거부했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사토 ; 더욱이 <더 힌두지 - 10월 4일자>는 이렇게 보도하고 있습니다. “2명의 학생은 입학원서에 ‘후지학림 유니버시티’ 졸업자라고 기입. 그러나 그런 이름의 대학은 일본에 존재하지 않는다. ‘대학’의 이름을 쓰고 있지만, 실제는 일본에서는 대학으로 승인되어 있지 않다. ‘후지학림 유니버시티’를 졸업한 승려는 일본사회에서 아무도 ‘대졸’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고.
이즈미 ; 정말로 악질 중이군요! 게다가 종문은 임시 방편으로 ‘교학사’인 ‘학사학위’까지 날조하여 그럴듯하게 대학처럼 위장하고 있지 않은가.
다니가와 ; 뭐가 ‘교학사’인가.
사토 ; 이전에 이 학교에 간 적이 있는 청년승려개혁동맹출신의 스가와라 유세이 씨의 증언에는 입학시험에는 ‘삼류의 강적을 쓰시오.’ 등의 문제가 나온다고 합니다.(웃음)
아키야 ; 그래도 낙제하는 중이 있다고 하니까 웃음거리입니다. 초등학교보다도 못한 사숙이 아닌가.(폭소)
이즈미 ; ‘대석사 창건 7백주년 기념사업’으로 만든 학림이라고 대대적으로 떠들썩하게 선전했지만, 그것은 닛켄의 허영심과 고집과 콤플렉스가 만든 장난감입니다. 그것도 교육부의 허가도 받지 않았다. 사회에서 전혀 통용되지 않는다. 이런 사숙으로 자기 만족하고 있으니 얼마나 바보인지 알 수 있습니다.
다니가와 ; 그래도 사의(邪義)의 닛켄을 보란 듯이 일어선 정의의 청년승려동맹의 젊은 승려들의 활약은 훌륭하군요.
사토 ; 아니, 전부 우수합니다.
아키야 ; 참으로 우수합니다. 우수한 두뇌이기에 정사(正邪)를 명확히 분별한다. 당연 사의(邪義)의 닛켄을 버리고 정의의 광선유포의 창가학회에 왔다는 사실이 그 증거입니다.
다니가와 ; ‘두파작칠분 - 머리가 깨져 7개로 된다.’을 모릅니다.
이즈미 ; 내가 입신한 당시에 참석한 회합에서 ‘어본존을 향해 오른쪽 위에 씌어 있는 이 <두파작칠분>은 무슨 뜻입니까?“라고 어느 부인에게 질문했습니다. 그 곳에 있던 학회의 간부가 ”그것은 법화경에 있는 문(文)이다. 간단히 말하면 머리가 조금 돌아 있다. 더 엄하게 말하면 올바른 사고를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대로라고 생각합니다.
쓰지 ; 청년승려개혁동맹은 몇 명 입니까?
사토 ; 12명입니다. 모두 그 활약은 훌륭합니다. 어디에 가도 그 법론과 파절은 훌륭한 행동입니다.
아키야 ; 그렇게 말하니 종문과 결별하여 이 곳에 온 일련정종개혁동맹, 우종호법동맹, 청년승려개혁동맹의 승려에 대해 이케다 선생님은 “깊은 사명이 있는 분이다. 간단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생애 소중히 해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최고 간부들에게 엄하게 말씀하신 것이 선명하게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사토 ; 지금의 더러운 중, 타락한 중, 탐욕에 빠진 중들은 ‘속인(俗人)’이하의 최저입니다. 대성인의 정통을 이어받은 진실하고 정의로운 승려는 이 분들 이외는 없을 것입니다.
아키야 ; 그렇지요. 그러나 ‘사기유학’의 건도 여기까지 커지면 웃고 말 이야기가 아닙니다. 심각한 국제문제입니다.
이즈미 ; 그렇습니다. 닛켄종이 얼마나 반사회적인 집단인가. ‘학력사칭’ 하나로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다니가와 ; 학력사칭이라면 저 다케이리 요시카쓰입니다.
사토 ; 그렇습니다. 그 학력사칭은 국제적으로도 알려졌습니다. 그 놈은 초등학교 졸업인데도 40년 동안 ‘육군항공사관학교졸’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지지자, 유권자를 끝까지 속여 왔습니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놈입니다.
센자키 ; 저도 계속하여 그렇게 들었습니다. 어떻게 거짓이라는 것을 알았습니까?
다니가와 ; 작년 놈이 <아사히신문>에 거물인양 낸 ‘회고록’이 발단입니다. 그 제1회(1998년 8월 26일자)의 프로필에 ‘육군항공특별간부후보생 때 패전’이라고 명확히 씌어 있었습니다.
사토 ; 그런데 지금까지 다케이리가 약 30년간의 의원시절에 정당에 제출한 이력서와 공간(公刊)의 인물록에는 ‘육군항공사관학교졸업’이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1975년 1월 3일에 방영된 NHK TV의 인터뷰에서도 다케이리는 사관학교 재학 중 패전이라고 말했습니다.
쓰지 ; 그렇습니다. 이름은 비슷하지만 ‘특별간부후보생’과 ‘사관학교’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전쟁 당시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이즈미 ; 나는 헌병출신으로 잘 알고 있지만, 당시 사관학교라고 하면 제일 어려운 학교입니다. 시험도 동경대학교보다 어렵다고 하던 ‘엘리트 학교’입니다.
쓰지 ; 특별간부후보생이란 당시 전쟁 상황이 악화되어 하사관을 양성하기 위해 설치된 제도입니다. 패전이 짙어져 그들은 학력의 제한도 특별히 없었으며 엘리트 사관학교와는 전혀 성격이 다릅니다.
다니가와 ; 여러 가지 일로 공명당 관계자는 어딘가 이상하고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조사한 결과 뜻밖에도 ‘사관학교 졸업’은 새빨간 거짓말. 다케이리는 악질적인 학력사칭을 한 것이 판명되었습니다.
사토 ; 더 자세히 조사해 보니 놀랄만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 놈은 종전 당시 일개 ‘작업 병사’로 ‘육군항공사관학교의 부지 내에 있었을 뿐’이었다는 것이 판명되었습니다.
쓰지 ; 참으로 무서운 놈입니다! 다케이리의 주장이라면 동경대학교 안에 이쓴 사람은 모두 동경대학생이라는 것과 같습니다. (큰 웃음)
다니가와 ; 더욱 놀란 것은 다케이리는 ‘구제(舊制) 다카치호 중학교 졸’이라고 말해 왔다. 그런데 이것이 새빨간 거짓말. 당 관계자가 알아본 결과 동창생명부에 이름이 없으며 동급생에게 물어도 누구도 모른다. 이것 또한 완전히 ‘학력사칭’이라고 알았습니다.
사토 ; ‘구제 중학교졸’까지 거짓말을 했단 말인가! 전대미문의 사기꾼입니다!
쓰지 ; 초등학교졸이라면 초등학교졸업으로 좋지 않은가. 부끄러운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것을 국회의원이 되었다고 하여 허영을 피우고 거물인양 행세하고 학력을 사칭한다. 이것이야말로 놈은 근본이 거짓말쟁이, 사기꾼이라는 증거입니다.
허영으로 가득 찬 다케이리 일가(一家)
이즈미 ; 그 놈은 거짓학력으로 의원이 되고 그것으로 훈장을 받았습니다. ‘학력사칭’으로 훈장을 받았다는 사람은 지금껏 없을 것입니다. (큰 웃음)
사토 ; 보통 사람이라면 부끄러워서 누가 말하지 않아도 이미 훈장을 반납했을 것입니다. 다케이리는 아직도 침욱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즈미 ; 그렇습니다. 그 놈은 이전부터 교활한 놈입니다. 학력사칭으로 도둑질한 더러운 훈장에 미련이 남아 꼭 껴안고 있습니다. 사회상식도 부끄러움도 모르는 상놈 중의 상놈입니다. 그 놈의 성격은 이전부터 자주 만났기 때문에 알고 있습니다. 그 놈의 아내도 알고 있습니다. 같은 총지부였기에.
쓰지 ; 거짓말투성이의 ‘회고록’ 등을 낼 여유가 있다면 ‘나의 학력사칭회고록’이라도 쓰면 어떤가. (큰 웃음)
아키야 ; 참으로 이케다 선생님은 사람이 좋습니다. 다케이리에게 송두리째 속았습니다. 다케이리를 신용하고 지켜 준 사람이므로.
이즈미 ; 참으로 나쁜 놈이다! 은혜를 모르는, 개돼지만도 못한 놈입니다.
다니가와 ; 사칭이라고 하면 놈의 아내 기쿠도 ‘학력사칭’이 발각되었습니다.
사토 ; 그렇습니다. 축생근성에 있어서는 다케이리 이상의 추한 아내! 이것은 기쿠도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즈미 ; 기쿠도의 학력을 관계자가 조사했습니다. 그러자 학력란에 어떤 곳에는 여학교졸, 어떤 서류에는 ‘이와테사립직업학교졸’, 또 다른 카드에는 ‘여고졸’ ‘여학졸’ 등등이라고 있어 무엇이 진짜인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감쪽같이 지금까지 교활하게 거짓말을 해 왔습니다.
다니가와 ; 게다가 ‘미용사를 했었다.’고 하지만, <고메이신문>에 의하면 자격증을 취득한 증거가 없습니다. 이력서에는 ‘스기나미 미용 여학원졸’이라고 씌어있지만, 그런 학교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결국 이것도 전부 거짓말이었습니다.
쓰지 ; 본디 그녀를 잘 아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특히 전후의 기쿠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수수께끼에 쌓여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전혀 정체를 모른다. 무엇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신출귀몰한 도깨비를 연상케 하는 존재였다고 합니다.
사토 ; 다케이리의 장남도 의과대학을 뒷문으로 들어갔다는 깊은 의혹이 있습니다. 부모가 부모인지라 그 자식도 그 자식입니다. 이것도 중대한 사회문제입니다. 아니, 사건입니다.
쓰지 ; 남편도 사칭, 아내도 사칭, 아들도 부정입학 의혹. 이렇게 비열하고 허영에 찬, 내력이 불분명한 일가족은 본 적이 없습니다.
이즈미 ; 참으로 그렇지요. 사기꾼 야마자키와 상통하는 피가 흐르고 있겠지요.
사토 ; 대성인은 “분(糞)을 모아서 전단이라고 말해도, 태울 때는 오직 분의 향이며, 대망어를 모아서 부처라고 호칭하더라고 오직 무간대성이니라. - 어서 311” 그렇기에 다케이리는 국회의원이 되어 훈장을 받아 자신으로서는 공(攻)을 세우고 이름을 날렸다고 생각하겠지만, 하지만 결국 그저 분(糞)이라는 것이 알려져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14) 스승의 유언을 엄수하며 실천
거짓 정치가의 정체
센자키 ; 지난 회는 다케이리의 학력사칭, 아내 기쿠의 학력사칭, 아들의 부정입학 의혹이라는 놀랍도록 극악한 일가족의 일단이 나왔습니다만.
사토 ; <고메이신문>에 의하면 다케이리는 ‘학력’ ‘군인경력’ 뿐만이 아닌 ‘직업경력’까지 사칭했습니다. 놈은 ‘육군항공사관학교’를 졸업하여 전후 바로 국철직원이 되었다고 했지만, 실은 ‘견습공’이었던 것이 당시 기록으로 밝혀졌습니다.
다니가와 ; 다케이리가 저지른 나쁜 일은 열거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조금 예를 들면 교토부지사건거를 둘러싸고 2천만 엔 양도의혹(1970년), 사가와큐빈으로부터 6억 엔 양도의혹(1992년 발각). 당을 사물(事物)화, 공사혼동의 낭비, 마구 씀, 중국 등지에서의 보석 사재기, 시부야의 호화저택, 가루이자와의 별장문제 등 예를 들면 한이 없습니다. 그 중에서도 놈의 축생근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것이 얽히고설킨 여성관계입니다.
사토 ; 그렇습니다. 놈의 도를 지나친 주색잡기는 놀랄 뿐입니다. 듣는 것 조차 역겨울 정도입니다.
이즈미 ; <고메이신문.의 기사(1998년 10월 10일)에는 다케이리는 당위원장 시절 일부러 변장하고 아카사카의 호텔에서 밀회를 즐겼다고 하지 않는가(웃음).
사토 ; 그것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남에게 얼굴을 보이지 않도록 모자를 깊숙이 쓰고 안경에 수염까지 붙이고 살금살금 호텔을 출입했다고 합니다(웃음). 다케이리가 당위원장 당시의 부위원장이었던 나노미야 씨, 다다 쇼고 씨들도 질렸다고 합니다.
이즈미 ; 그렇게 말하니까 1970년 무렵이었던가. 의원들 사이에 ‘다케이리가 이상한 병에 걸린 것 같다. 한심한 일이다.’라는 소문이 퍼진 일이 있습니다.
쓰지 ; 나도 들었습니다. 확실히는 모르나 오키나와의 밤거리에서 성병에 걸렸다고 합니다.
이즈미 ; 당시, 본토 귀환 전후의 오키나와에서 다른 공명당 의원은 미군기지의 총점검 등 산적한 과제에 열심히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땀을 흘리고 있을 때에 어처구니없는 놈입니다. 여하튼 1970년 ‘정교분리’ 선언을 한 후 학회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빌미로 마음대로 놀고 다녔습니다.
용서할 수 없는 공당(公黨)의 사물화
쓰지 ; 다케이리는 당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학회와 분리하여 아무 말도 하지 못하도록 ‘정교분리’를 자신이 앞장 서서 자신을 위해 지껄이고 다녔습니다. 뒤에서 매스컴을 움직인 것도 다케이리였습니다. 얼굴을 보면 잘 알 수 없지만, 전혀 마음이나 행동이 빈틈없이 교활한 놈입니다.
이즈미 ; 시간이 흐르면 점점 사실은 명확해 지는 것. 나쁜짓을 해서는 안 됩니다.
쓰지 ; 그렇지요. 학회가 ‘정교분리’를 선언했을 때, 다케이리는 ‘이것으로 내 세상이다.’고 으스대며 크게 떠들었다. 이것은 당시 공명당의 많은 사람이 알고 있습니다. 모두 질려 있었습니다.
사토 ; 다케이리는 이밖에도 수없이 많은 여성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그 여성 중 한 사람의 입을 막았다고 합니다. “인생에는 무덤까지 가지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비밀이 있다. 이 일은 죽을 때까지 입 다물어라.” 마치 폭력단과 같은 협박입니다.
여성이 가엾으니까 이름은 덮어두지만, 지금도 그 여성이 선배에게 눈물 흘리며 분함에 떨며 그 놈한테 받은 보석을 시궁창에 내던졌다고 합니다. 너무나도 약아빠진 놈입니다. 가면을 쓴 축생입니다.
이즈미 ; 그 놈은 본디 그런 놈입니다. 다케이리는 나와 같은 총지부였기에 하나에서 열까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놈을 아는 사람은 모두 ‘본디 그놈은 그런 놈이 아닌가. 젊을 때 자주 미쳐 날뛰며 칼을 휘두른 적이 있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다니가와 ; 다케이리는 최근 “나는 도다 선생님의 제자다.”라고 말하기 시작했답니다.
이즈미 ; 뭐라고! 도다 선생님은 다케이리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도다 선생님 곁에서 다케이리가 말하고 있었다든가, 그런 일은 누구도 본 일이 없습니다. 무서워하며 교활하게 도망치지 않았는가.(웃음)
쓰지 ; 도다 선생님은 참으로 엄한 지도자이셨습니다. 사람을 간파하는 힘은 그야말로 굉장하셨습니다. 다쓰와 후지하라 등이 있었지만 의원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예리한 눈길로 주의 깊게 보고 계셨습니다. 우리들 측근은 자주 선생님의 간파력에 압도당했습니다.
도다문하생을 사칭
사토 ; 이번 다케이리 사건이 시작된 다음 도다 선생님의 초상화를 그려놓고 그것도 존경하고 있는 듯이 최근 집에 걸었습니다. 실은 그 초상화를 그린 사람이 학회원이었습니다. 그 사람도 질려있었습니다. 대단한 스릴만점의 곡예입니다. 그런데 추한 아내의 초상화도 함께 그린 것을 들켰습니다. 어디까지 제정신인지. 사실은 아내 기쿠가 스승이고 다케이리가 제자일 것입니다.
아키야 ; 학력사칭의 다음은 이번에는 ‘도다문하생’의 사칭인가. 후자하라도 다쓰도 그랬지만 도다 선생님의 제자를 들먹이는 것은 퇴전자, 반역자들이 늘 써먹는 방법입니다. 전부 자기 자신을 위해 이용하고 있습니다. 악으로 뭉쳐진 인간들만이 도다 선생님, 이케다 선생님을 들먹거리면서 자신의 나쁜 짓을 감추려고 한다. 속이 들여다 보이는 ‘연극’입니다.
이즈미 ; 그렇지요. 적어도 도다 문하생이라고 한다면 선생님의 유언을 지켜라! 특히 도다 선생님은 “제3대 회장을 생애 지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3대 회장을 지키면 광선유포는 성취된다. 절대로 지켜라!” 이것이 도다 선생님의 유언이 아닌가. 그것을 하나도 지키지 않는다.
쓰지 ; 이케다 선생님의 덕분으로 가난하고 배운 것도 없는 노동자에 불과한 다케이리가 국회의원이 되고 위원장이 되어, 이젠 최고로 최대로 학회에 그리고 이케다 선생님에게 일생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보통 사람의 마음이 아닌가.
다니가와 ; 그러고 보니 다케이리는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1962년 8월 30일자 <세이쿄그래프>에 명확히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병과 가난의 밑바닥 생활 속에서 어본존과 이케다 회장을 만나게 되어 오늘의 내가 있습니다. 회장의 지휘하에 끝까지 싸워 이 일생 마치고 싶습니다.”
또 1965년 6월 15일자의 <세이쿄그래프>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은 전부 이케다 선생님의 덕분이며 창가학회에 머리를 숙일 뿐, 내가 훌륭하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토 ; 얼마나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이런 일구이언! 병적인 성격! 결단코 용서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까지 폐를 끼쳐놓고.......
아키야 ; 이런 다케이리도 반역하고 결국 닛켄과 결탁했습니다.
다니가와 ; 그렇습니다. 금년 6월 28일에도 다케이리는 추한 아내와 두 딸 부부, 운전사를 데리고 본산에 갔습니다. 그리고 닛켄과 밀담했다고 합니다. 법화강의 무리가 다케이리를 보면서 껄껄 웃으며 말했습니다.
사토 ; 그렇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닛코에 있는 도쇼구에 구경 갔다고 합니다. 축생가족의 나들이에 닛코의 원숭이들도 필시 깜짝 놀랐겠지요.
센자키 ; 신심 따위는 전혀 없습니다. ‘유흥에 빠진 사람’의 인생. 지금까지 응원해 온 지지자가 분노하기도 하고 경멸하여 웃기도 하고 질린 나머지 불쌍함을 느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니가와 ; 그렇다고 해도 마지막에는 닛켄에게 쓰레기들만 모여드는군요. 다케이리, 야마모토, 하라지마, 다쓰 등등 이 놈도 저 놈도 최저 최악의 쓰레기들뿐입니다. 어서에는 ‘출가(出家)의 곳에 일체(一切)의 악인을 섭함-어서 223’라고 있습니다.
아키야 ; 대성인의 말씀은 굉장하군요. 실로 그렇습니다. (폭소)
대어본존을 부정한 닛켄
이즈미 ; 그 닛켄은 최근 ‘대어본존은 가짜’라고 말한 것이 발각되었습니다. 법주로서 종문의 교의의 근본인 어본존을 부정했다. 이것을 보면 닛켄이 얼마나 뇌란하였는지, 대방법의 극악인지를 알 수 있는 부동의 증거입니다.
사토 ; 전적으로 그렇군요. 영원히 용서할 수 없는 중입니다. 대성인이 얼마나 격분하고 계실까. 이것은 닛켄의 약점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가와베 지토쿠의 메모가 발단이 되었습니다.
쓰지 ; 가와베의 메모에는 닛켄의 발언이 이렇게 명확히 있습니다. “계단의 어본존은 가짜다. 여러 방법으로 필적 감정의 결과 알았다.”고. 법주가 대어본존을 명확히 부정했습니다. 대방법의 본산에는 영원히 가서는 안 됩니다. 그 자체가 대방법이고 등산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아키야 ; 여하튼 선사 닛타쓰 법주의 유업을 전부 부정하고 파괴했습니다. 그리고 또 종문 7백 년의 역사에 최대 최고의 공양을 하여 본산을 세계적으로 흥륭시킨 SGI회장을 제명한 종문에는 영원히 가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가짜 신심입니다.
쓰지 ; 얼마나 본산에 공양하였는가. 속았는가. 또 얼마나 많은 학회원이 등산을 했는가. 언젠가는 명확히 발표해 두고 싶습니다.
아키야 ; 그렇군요. 그렇게 합시다.
다니가와 ; 젊은 청년부는 예리합니다. 본존은 별도로 하고 닛켄의 중들은 천리교보다도 심하지 않은가. 입정교성회보다도 나쁘다고. 우리들을 노예취급하고 거만하게 구는 중들의 모습을 보고 분개하고 있습니다.
사토 ; 방법(謗法)과 결별해서 참으로 후련합니다.(웃음)
가와베 지토쿠의 이성문제.
아키야 ; 그대로입니다. 저 가와베도 얼마나 무식하고 야비하고 저질인가. 그 구체적인 예를 들면 끝이 없습니다. 예를 들면 그 놈에게 피해를 입은 여성의 고발이 1997년 7월 <중외일보>에 연재되었습니다.
사토 ; 그 고발에 따르면 가와베는 1981년 8월 ‘중’이라는 얼굴을 최대한 이용하여 이 여성에게 접근해 갔다. 그 무렵 가와베는 도쿄 묘인사에 있었다. 그리고 그 여성 신도에게 손을 댔습니다.
쓰지 ; 그 기사는 나도 읽었습니다. 여성은 분노를 담아 이렇게 고발하고 있다. “나는 가와베에게 데이코쿠 호텔, 신주쿠의 센트리하얏트 호텔에 빈번히 불려 다니며 전적으로 욕망의 탈출구로 이용되었다.” 그리고 “가와베는 뱀처럼 집요하게 나를 붙들고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가토 ; 게다가 색욕과 인색하기로는 닛켄종에서 둘째라면 서러워할 정도입니다. 그런 동안에 호텔에서의 밀회는 돈도 들고 성도 차지 않았다. 그래서 도쿄 주오쿠에 밀회용 아파트를 구입했습니다.
다니가와 ; 기사에 의하면 그 집세도 ‘은밀한 자료정리를 위해’라는 명목으로 거짓말을 하여 닛켄이 지불했다고 하지 않는가.
아키야 ; 닛켄은 알고 있는가? 완전히 당했구만.(큰 웃음)
쓰지 ; 여성의 고발에는 가와베는 비열하기 그지없는 ‘호색 땡중’ 그 자체다. 자세한 것은 너무나도 비열하여 입에 담기도 거북하므로 이점 이해해 주기 바랍니다.(웃음)
다니가와 ; 그렇습니다. “아무개 아가씨가 머리를 비벼주면 기분이 좋아진다.”라고 하여 저 더러운 중의 머리를 몸에 비벼대기 시작한다고 한다. (큰 웃음)
이즈미 ; 그렇게 말하니 닛켄도 비행기 속에서 금발의 스튜어디스의 몸에 까까머리를 비벼대는 사건이 있었습니다.(웃음) 1963년 3얼의 저 시애틀 사건의 다음 날입니다.
사토 ; 추잡스러운 놈들입니다!
다니가와 ; 가와베는 다케이리와 닮았습니다. 야마자키와 닛켄도 ‘천생연분’입니다. 그들을 잘 아는 사람은 모두 그렇게 비웃고 있습니다.
사토 ; 우선 다케이리와 가와베는 학문이 없습니다. 지성도 교양도 없습니다. 두목 기질의 어리석은 놈, 야만하고 거만한 놈. 자신의 어리석음을 감추려고 톱클래스의 리더인 체하고 폼을 잡는 놈. 예절이 없다. 사람을 속이는 것에 뛰어난 천재. 허풍쟁이. 거짓말쟁이. 여자 밝힘. 그리고 최후에는 반역......아직도 많지만 이것이야말로 악당의 ‘승속일치’입니다.(폭소)
아키야 ; 여하튼 닛켄이든 가와베든 이런 축생들의 먹이가 되어 있는 법화강의 무리들이 얼마나 불쌍한가. 정말로 가엾기 그지 없습니다.
(15) 종문을 위한 미증유의 적성(赤誠)
학회가 기진한 대석사
아키야 ; 이번 회는 학회가 지금까지 얼마나 본산과 종문에 공양해 왔는가, 얼마나 종문이 악랄한가, 명확히 역사에 남겨두기로 하지요.
쓰지 ; 그렇군요. 우선 본산에서는 도다 선생님 시대에 봉안전(1955), 대강당(1958)을 기증한 것에 이어 이케다 선생님의 대에 들어서 대화성(1960), 대객전(1964), 정본당(1972)을 비롯하여 신총방(1988, 1990) 등등 본산에 있는 건물 시설의 대부분을 건립 기증해 왔습니다.
이즈미 ; 건물뿐만이 아닙니다. 본산 소유의 토지 대부분을 학회가 기증했습니다. 1970년에 닛타쓰 법주는 “전쟁 후 농지개혁으로 남은 토지는 경내를 포함하여 불과 5만 1천여 평, 그것이 1960년 이후 이케다 회장이 1백만 2천여 평을 공양하여 지금은 소유지 총면적 1백17만여 평이 되었습니다.”라고 명언하고 있습니다.
쓰지 ; 그렇다면 이케다 선생님이 회장에 취임한 이래 불과 10년으로 농지개혁 직후의 약 23배로 비약했습니다. 나는 대석사의 황폐한 모습을 패전 직후부터 잘 알고 있습니다. 황폐할 대로 황폐한 시골의 산사를 여기까지 훌륭히 만든 것은 누구 덕분인가. 전부 이케다 선생님 그리고 학회의 덕분이 아닌가.
다니가와 ; 전적으로 그렇지요. 또 전국 각지의 말사의 건립 기증은 선생님의 시대만해도 무려 3백20개의 절에 이릅니다. 도다 선생님 시대부터 헤아리면 356개의 절. 건물의 수리 등을 포함하면 400개의 절이 훨씬 넘습니다.
아키야 ; 닛켄의 대에 들어서도 전국에 150개의 절을 건립했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이 얼마나 정성에 정성을 다해 왔는가.
사토 ; 세간에서는 하나의 절을 짓는데도 대사업입니다.
쓰지 ; 그렇지요. 종문의 종규(1989)에도 공로자 자격으로서 “사원 또는 교회의 신설 혹은 부흥 및 당탑의 신축 또는 개조 등을 위해 특별히 진력하고 또는 거액의 정재를 희사한 자.” “정재 또는 부동산을 희사하여 종문 영원의 기초를 확립한 공로가 있었던 자.”라고 명확히 있지 않은가.
이즈미 ; 1990년 질투에 미친 닛켄이 냉혹한 학회 파괴의 C작전을 개시한 이후 닛켄은 도대체 절을 몇 개나 지었는가! 놀랍게도 호화저택은 지어도 절은 단 한 칸도 짓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공양 도둑놈입니다.
쓰지 ; 공양 도둑놈! 그대로입니다. 놀랄만한 암흑에 쌓이 어둠의 마왕입니다.
이즈미 ; 전적으로 그렇지요. 정말로 기가 막힙니다. 지금가지 학회로부터 공양으로 받은 절도 건물도 전부 반납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종문은 영구히 방법의 공양의 토지, 건물 위에 있는 것이 됩니다.(웃음) 닛켄은 물론 중들은 절에서 나가야 합니다. 나간 다음에 말을 하라!
아키야 ; 이즈미 씨의 발언은 영구히 남을 닛켄 일행에 대한 중요한 ‘지남’의 말씀입니다.(웃음)
사토 ; 그렇습니다. 신총방은 아직도 법화강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학회가 방법이라고 한다면 왜 정본당이나 대객전을 부수고 신총방은 부수지 않는가. 빨리 부수어라! 언제 부수는가! 명확히 하라! 이 착란에 빠진 도둑놈들!
다니가와 ; 그렇다고 해도 1952년 10월부터 시작된 학회의 월례등산회도 1991년 닛켄에 의한 등산정지까지 약 7천만 명이 참가하고 있습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숫자입니다.
쓰지 ; 내가 아는 불교학자는 7천만 명의 등산은 세계에서도 아주 드문 일이라고 경탄했습니다. ‘이슬람교의 메카나 유태교의 예루살렘 등 오랜 관습으로 신자가 모이는 곳은 있다. 그러나 단지 40년도 안 되는 기간에 한 종파에서 훌륭한 신심을 하는 사람들이 바람부는 날에도 눈오는 날에도 7천만 명이 참예해 온 것은 불교사상 특례 중의 특례로 칭찬할 만한 사실이다.’
이즈미 ; 그렇습니다. 이 7천만 명의 어개비 공양이나 토지, 건물의 기증 그밖에 현금 공양까지 포함하면 도대체 얼마만큼의 금액이 되는가.
아키야 ; 지금의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족히 3천억 엔을 상회할 것이라는 결과가 나옵니다. 게다가 본산이나 각 말사에 학회원이 개별로 공양한 금액은 별도입니다. 그것을 합치면 도대체 얼마가 되는가. 도저히 계산이 안 될 정도입니다. 참으로 천문학적인 숫자가 되겠지요.
쓰지 ; 그렇지요. 학회에 공양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총본산에 총력을 다해 공양해 왔습니다. 조금 전의 우인 학자가 “참으로 사람이 좋은 이케다 씨이군요. 기성 종교에 바보 취급당한 창가학회이군요.”하며 웃고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일생동안 잊을 수 없습니다.
이즈미 ; 이렇게까지 공양했습니다. 종문을 흥륭시켰습니다. 그 이케다 선생님과 전 학회원의 진심을 닛켄은 흙발로 짓밟았습니다. 단지 자신의 추한 야망과 질투와 광기로 1천만 명의 적성의 신도를 무조건 잘랐습니다.
쓰지 ; 닛타쓰 법주는 1963년 7월 15일에 낸 ‘훈유’에서 명확히 이렇게 단언하고 있습니다.
“이 청정무구하고 아낌없는 외호와 건립의 적성에 불타는 일대화합승단 창가학회에 대해 사실이든 아니든 그릇된 생각을 품고 헐뜯는 말을 하는 자가 있다면 그 소속 종(宗)의 내외를 막론하고 전부 이 광포의 정업(淨業)을 저해하는 대벽견의 사람, 죄를 무간에 여는 자라고 말해야 할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쓰지 ; ‘어떤 의미로도 학회를 비방하는 자는 무간지옥이다!’ - 이 말 하나를 보아도 닛켄은 완전히 선사에 반역하고 있습니다. 무간지옥은 틀림없는 놈입니다! 할말이 있다면 닛타쓰 법주에게 말하라.
이즈미 ; 아니, 교활하고 검은 마음의 닛켄은 닛타쓰 법주에게 말할 수 없습니다.(웃음)
아키야 ; 광선유포를 막으려한 대죄는 절대로 대성인이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불의불칙의 단체인 학회를 ‘비방’에 그치지 않고 ‘파괴’하려고 획책했다. 무간지옥 정도가 아닙니다. 금세에서는 추태와 수치를 드러내고 미래영겁 지옥의 업의 불에 타 괴로움의 연속일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망은, 극악, 타락, 광기의 중은 세계의 역사를 보아도 극히 드물 것입니다. 참으로 전대미문입니다. 세계의 종교사상 악명을 떨쳐갈 것은 틀림없습니다.
제1차 종문사건의 단면
사토 ; 그대로입니다. 지금 그 개 돼지만도 못한 닛켄에 아첨하는 자가 같은 축생동지인 야마자키입니다.
쓰지 ; 그러고 보니 제1차 종문사건도 그랬습니다. 야마자키가 종문에 교활하게 아첨한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즈미 ; 그렇군요. 그 때도 야마자키가 종문에 아첨하는 방법은 심상치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1979년에 유명한 ‘보트놀이사건’이라는 것이 있었지요.
쓰지 ; 그렇습니다. 놈은 시즈오카의 공원묘지를 둘러싸고 악질의 ‘토지전매’로 4억 5천만 엔의 검은 돈을 손에 넣은 다음 마구 뿌리며 놀대로 놀고 다녔습니다. 하루 아침에 부자가 된 야마자키는 보트놀이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즈미 ; 1979년 6월 21일의 일입니다. 야마자키는 닛타쓰 법주를 크루즈(레저용 고급보트)에 태우고 유람했습니다. 그런데 바다가 험하여 도중에 닛타쓰 법주가 멀미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이에 당황한 야마자키는 아타미에 닛타쓰 법주를 내려 놓은 사건입니다. 너무나도 심한 짓이어서 당시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아키야 ;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모두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쓰지 ; 아니 이럴 수가. 내가 아는 불교학자는 그것을 듣고는 ‘질린 나머지 말이 안 나온다.’고 비웃는 정도를 넘어 ‘그런 종문은 없애버려라.’고 노기에 차 말했습니다.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아키야 ; 그래서 모두 어떻게 될까 하고 걱정하였는데 결국 1개월 후 7월 22일에 닛타쓰 법주는 돌아가셨습니다.
이즈미 ; 닛타쓰 법주는 당시 77세였지요. 심장도 좋지 않았다. 크루즈에 타기 전날도 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갔다고 합니다. 그런 닛타쓰 법주를 크루즈에 태우고 여기저기 돌아다닌 것은 정신 나간 짓입니다. 일부로 수명을 줄이려고 했던 짓이 아닌가.
아키야 ; 그렇다고 해도 야마자키는 그 크루즈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다고 합니다.(웃음) 자구 측근들을 태우고 희열을 느꼈다고 합니다.(큰 웃음)
쓰지 ; 비열한 야마자키입니다. 허세를 부리며 돈 많은 부자인 척하고 싶었겠지요. 크루즈를 타은 것은 자못 멋지게 보이는 돈 많은 사람들의 그럴듯한 취미입니다. 어떻게 보아도 그 놈은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인 격이지요.
아키야 ; 정말 그렇군요. 놈의 크루즈 놀이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가 더 있습니다.
센자키 ; 더 있다면 무엇입니까?
아키야 ; 야마자키의 사무소에서 일했던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1978년 경 놈은 신명이 난 듯 떠들며 크루즈를 타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바람이 강하여 가발이 날아갈 지경이었습니다.(큰 웃음)
센자키 ;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키야 ; 허풍쟁이 야마자키는 언제나 자신의 가발이 제 머리인 양 보여 왔기에(웃음) 어떻게든 머리를 가다듬는 척하면서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가발을 필사적으로 누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폭소)
이즈미 ; 머리숱이 없는 내가 뭐라고 말하는 것은 뭐하지만(웃음), 말하는 것도 거짓인데 머리도 가짜인가(폭소). 처음부터 끝까지 온통 거짓뿐입니다.
사토 ; 이 보트 사건에 대해 저는 이번에 자세하게 조사해 보았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1979년 6월 21일은 목요일이었습니다. 이 배의 주인은 야마자키와 절친한 사이인 애니메이션 프로듀서 N씨. 닛타쓰 법주의 사위 스가노 지운. 후지노미야의 토목업자 등이 동승하고 있었습니다.
다니가와 ; 상세하게 조사했군요. 사토군.
사토 ; 날씨는 쾌청. 장마기간에 맑은 날씨가 계속되어 동경에서는 4일 연속 한여름 날씨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마자키가 배를 띄운 곳은 물이 거칠기로 유명한 ‘사가미탄’이었습니다. 어업관계자에 의하면 6월 하순에도 풍속 15미터가 넘는 바람이 분다고 합니다.
아무리 대형보트라도 크게 흔들리고 맙니다. 10대, 20대의 건장한 젊은이도 익숙하지 않으면 바로 배멀미를 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아키야 ; 그렇다면 하물며 77세의 노체(老體)로는 당연히 뼛속까지 느꼈을 것입니다.
쓰지 ; 그렇군요. 그러면 야마자키가 닛타쓰 법주의 수명을 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우리들과는 관계없는 일이지만.
아키야 ; 야마자키는 이 1개월 전에 법화강의 대강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년 후에 흉악한 공갈사건을 일으켰습니다. 신심 등은 손톱만큼도 없는 이런 놀기 좋아하는 어중이 떠중이가 거짓과 사기로 종문의 중핵에 들어 앉았습니다. 그래서 종문은 쓸모 없게 된 것입니다.
쓰지 ; 어떻게 하여 대강두가 되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 때는 놀랐지요. 종문은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하고 모두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요.
이즈미 ; 야마자키와 닛켄은 똑같이 유흥을 즐기는 사람으로 어중이 떠중이 동지입니다. 비슷한 사람끼리 사이좋게 지옥으로 가는 크루즈를 즐기자는 것이지요(큰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