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속냐!' 꽤 오랜 시간, LG 팬들의 즐거운 시간은 4월까지였습니다. 그러던 LG가 어느새 포스트시즌은 당연히 갈 만한 팀으로 성장했는데요. 더 높은 곳을 바라는 팬들의 눈에는 부족한 점부터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팬들이 잠시나마 힐링타임을 가질 수 있도록 희망찬 이야기들을 전해드리겠습니다.
* 7월 14일 ~ 15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파크에서 2017 타이어뱅크 KBO 올스타전이 열릴 예정입니다. 10구단 칼럼에서는 올스타전에 출전은 못하지만 이번 시즌 다양한 영역에서 구단에 기여를 하고 있는 선수들을 찾아 '숨은 올스타'로 소개를 합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그들은 상위 1%다. 공부로 치면 서울대다.
프로야구에서 1군 주전 선수로 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매년 700명이 넘는 아마추어 선수들이 신인지명회의에 참가한다. 이중 겨우 100명 정도가 프로의 선택을 받는다. 그중에서도 절반은 육성선수로 입단한다. 계약금을 받고 정식 선수가 되더라도 이듬해 또는 그 다음해 육성선수로 전환되는 경우도 있다. 1군에서 살아남는 선수는 10명이 채 되지 않는다.
LG 트윈스 운영팀 최진영(37) 대리는 2001년 신고선수(現 육성선수)로 프로에 왔다. 포수였다. 1군에 가서 잠깐 공 좀 받아주다 오라는 말을 듣고 잠실에 갔다가 여기까지 왔다. 지금 직책은 1군 매니저다. 불펜포수부터 시작했다. 배팅볼 투수, 전력분석 보조, 전력분석을 거쳤다. '현장직원'이라 불리는 자리다. 1%가 되지 못한 선수들이 하는 일이다. 선수들의 손과 발, 눈과 귀다. 훈련을 돕고 식사를 챙겨주며 컨디션도 잘 유지되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한다.
현장직원은 미디어에 노출이 될 일이 없다. 팬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다. 그들은 야구단에서 제일 적은 연봉을 받으며 가장 궂은 일을 한다. 늘 스포트라이트의 그늘에 숨어있다. 현장직원의 세계에서 1%의 꿈을 이룬 최진영 매니저가 그 이야기를 들려줬다.
▲ 어떻게 현장직원이 됐나?
그는 "야구를 못했나봐요"라며 웃었다. "2군 경기 몇 경기 못 뛰고 일찍 정리됐다. 권유나 계기는 따로 없었다. 2군 개막전 뛰고 무릎이 아파서 쉬고 있었다. 회복해서 다시 경기에 나가는 중이었는데 1군에 가서 몇 경기만 공 좀 받아주다 오라고 하더라. 그러다 눌러 앉았다. 그때(2001년) 1군 감독이 교체되는 타이밍이었다. 아시겠지만 그런 상황에서 신고선수 1명 신경 쓸 수 없다. 자연스럽게 야구를 접게 됐다"고 돌아봤다.
야구단은 꽤 큰 조직이다. 기획, 경영, 홍보, 마케팅, 운영 등으로 구성된 프런트와 직접 경기에 관여하는 선수단으로 나뉜다. 프런트는 모기업 출신 혹은 공채 회사원 정도로 생각된다. 선수단은 감독을 포함한 코칭스태프, 트레이너, 1군 선수, 육성선수, 재활군, 현장직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선수 출신의 영역이다. 현장직원은 불펜포수, 전력분석 보조, 배팅볼투수들을 통칭한다. LG에만 17년 몸 담은 최진영 매니저도 바닥부터 시작했다.
"다들 1년 계약직이다. 나는 연봉 1500만원으로 시작했다."
운도 따랐고 스스로도 안주하지 않았다. 불펜포수로 머물던 2007년 전력분석을 뽑을 때 적극적으로 자원했다. 2001년과 2002년 어린나이에도 성실함이 돋보여 눈도장을 강하게 찍었다. 군복무 후에도 LG와 인연을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였다.
"2001년부터 불펜포수를 했다. 2002년에 전력분석 보조로 올라왔다. 운이 좋았다. 김정준 전력분석원이 계실 때였다. 대학교 때 기록을 좀 했었다. 기록할 줄 안다는 이유로 뽑혔다. 지금은 컴퓨터로 다 하지만 그때는 보조가 필요했다."
"1년을 또 하고 군복무를 했다. 사실 그렇게 군대를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개인적으로 알아서 살 길을 찾아야 한다. 나는 운이 정말 좋았던 케이스다. 감독님이나 운영팀 직원분들께서 좋게 봐주셨다. 2006년부터 다시 불펜포수를 했다."
"2007년에 배팅볼투수를 새로 뽑는데 자원했다. 배팅볼투수는 전력분석 보조를 같이 한다. 전력분석을 할 줄 아는데 기회를 달라고 했다. 2010년부터는 원정 전력분석을 나갔다. 우리 팀이 아니라 상대할 팀 경기를 보는 것이다. 2014년부터 매니저가 됐다."
▲ 전력분석이 하는 일은?
전력분석은 홈, 원정으로 나뉜다. 홈은 우리 팀을, 원정은 상대 팀을 분석한다. 홈은 선수단과 동행한다. 원정은 우리 팀과 만나기 전부터 일주일을 본다. 화요일에 만나면 일주일 전 화요일부터 6경기를 보는 것이다. 처음 3연전은 선발투수 위주다. 그들이 우리랑 할 때 들어오기 때문이다. 다음 3연전은 중간투수와 야수를 분석한다.
기계적인 데이터 놀음은 가장 기본이지만 전력분석은 더욱 세밀한 부분을 찾아야 한다. 최 매니저는 "가장 중요한 장단점은 사실 데이터만 보면 나온다. 당일의 컨디션처럼 작은 부분들을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면 이 친구가 요새 변화구에 약하다. 훈련 때 변화구 대처를 위해 특별한 연습을 하는지, 평소처럼 하는지 체크한다"고 밝혔다.
이대호를 분석했던 일화가 떠올랐다. "2011년이었던 것 같다. 이대호가 좀 안맞을 때가 있었다. 몸쪽에 많이 당했다. 타격폼을 살짝 바꾼 게 눈에 들어왔다. 브리핑 때 이 점을 설명했다. 당시 감독 코치님들이 잘 받아주신 기억이 있다"고 기억했다. 분석하기 너무 힘든 타자도 있다. "내가 했던 당시에는 양의지가 제일 힘들었다. 이대호나 김태균이라도 몸 쪽에 잘 던지면 약점을 보였다. 양의지는 잠실에서도 밀어서 홈런을 때렸는데 답을 내기가 어렵더라."
투수는 습관이나 견제 타이밍을 주시한다. 그는 "어떤 카운트에 견제를 하는지, 2번 연속 혹은 3번 연속 후에는 투구를 하는지 등이다. 100% 데이터는 없다. 최대한 확률을 높여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 배팅볼을 던질 때의 기억은
배팅볼도 아무나 못 던진다. 공이 휘면 안된다. 투수들이 배팅볼을 던지지 못하는 이유다. 무턱대고 가운데다 던지는 게 능사도 아니다. 타자마다 좋아하는 코스와 속도가 다르다고 한다.
최진영 매니저는 "어렸을 때 해봤으니까 그때는 참 좋았다. 페타지니, 발데스, 양준혁, 김재현, 이병규 등 다 던져봤다. 그날 컨디션에 따라서 평소에 잘 치던 공도 안 맞을 수 있다. 그런 부분에서 타자들 편하게 해주려고 많은 신경을 쓴다. 타자마다 잘 치는 코스가 있다. 배팅볼투수와의 리듬도 중요하다. 어디를 좋아하는지 미리 파악해놓고 던져야 한다. 배팅볼 치고 기분이 좋아지면 아무래도 경기 할 때 긍정적인 영향을 받기 마련"이라 세세하게 설명했다.
자존심도 종종 상한다. 언젠가 캠프 때의 일이다. "아침에 현장직원을 구성해서 캠프에 합류했다. 사실 배팅볼을 다 잘 던지는 건 아니다. 그런데 그때 타격코치님이 '쟤 빼, 귀국시켜'라고 하셨다. 나도 나름 현장직원 중 제일 형이다. 밑에 친구들 잘 끌고 가야 한다. 코치님 뿐만 아니라 선수들이라도 자존심을 상하게 하면 부딪히고 그랬다. 나도 참 괴짜였던 것 같다."
▲ "산업기능요원 시절 만난 와이프, 나한테 속았다."
최진영 매니저는 군복무시절 아내를 만났다. 이렇게 바쁜 사람인 줄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그는 "와이프가 나한테 속았죠. 만약에 다시 만난다면 나랑 결혼하지 않을 겁니다"라 너스레를 떨었다.
처음 만났을 땐 일상적인 데이트가 가능했다. 하지만 군복무를 마치고 야구단에 복귀하는 순간 사생활이 없어졌다. 최 매니저는 "그때는 또 비활동기간 같은 것도 없었다. 시즌이 끝나도 캠프고 시즌 때는 계속 원정이다. 남자친군데 만날 일이 없었다. 집이 인천인데 잠실에 와서 10시 11시까지 기다렸다가 만나고 그랬다. 정말 감사하게도 결혼을 해줬다"며 사람 좋게 웃었다.
"요즘에도 시간이 별로 없다. 최근에는 또 월요일 이동일(주중 원정이면 월요일에 출발한다)이 많아서 어제(7월10일) 오랜만에 같이 저녁을 먹었다. 아기가 아직 없어서 거의 아내 혼자 집에서 저녁을 먹는다. 혼자 두니까 미안하다."
▲ 성적 부진의 직격탄을 맞는 현장직원
힘든 일은 이 뿐만이 아니다. 팀 성적의 직격탄을 맞는 게 현장직원이라고 한다. 사실 스포츠단의 일반 직원은 성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선수 및 코칭스태프야 직접 경기를 하니까 책임과 보상이 당연히 따른다.
최진영 매니저는 "팀이 못하면 현장직원이 더 힘들다. 성적이 나는 팀은 분위기도 좋다. 연습량도 적고 우리도 시간이 많아진다. 요즘에는 훈련 많이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인식이 공유 돼 적절히 쉬지만 예전에는 아니었다. 무조건 연습이었다"고 회상했다.
연습량이 많아지면 그 연습을 도와야하는 말단 직원들의 일도 늘어난다. "소위 말하는 암흑기 시절, 성적 안나면 훈련이다. 마무리캠프도 더 일찍가니까 길어진다. 사실 예전에는 메리트라는 게 있었다. 그렇게 해서 성적이 나오면 돈이라도 나왔다. 선수들은 실력만큼 연봉도 확 오른다. 우리는 실력이랄 것이 딱히 없지 않나. 크게 오르지 않는다. 성적 안 나면 눈치 많이 보고 힘들다."
▲ 17년 동안 수많은 유망주와 스타플레이어를 봐 왔을텐데.
LG 트윈스 17년차다. 훈련 도우미에서 2014년부터는 숙식 및 일정을 관리하는 매니저 역할이다. 선수들의 사소한 버릇, 습관, 성격까지 속속들이 안다. 성공하는 선수만의 특징이 있을까.
야구는 잘하는 사람이 진짜 잘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센스는 확실히 타고 난다"며 묘하게 답했다. "야구 센스는 분명히 따로 있다. 스피드와는다른 영역인 순간적인 순발력도 중요하다. 잘하는 사람이 잘하는 건 있다"면서도 "하지만 야구에 목숨을 거느냐의 차이는 있다"고 생각을 말했다.
"아무리 재능이 훌륭해도 야구 하나에 인생을 건 선수들과 그렇지 않은 선수들은 다르다. LG에 있다가 다른 팀으로 가서 성공하는 선수들을 보면 비슷하다. LG에 있을 때에도 재능은 좋았다. 이적하고 나서 보면 얼굴 표정이나 의식이 달라져 있다. 자기만의 목표가 뚜렷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고 무섭다. 지금 우리 팀도 젊은 선수들이 많이 뛰고 있다. 같은 신인이라도 야구를 대하는 자세가 다른 친구들이 꼭 있다. 그런 선수들은 반드시 성공한다."
▲ 같은 길을 걷고 있는 후배 현장직원 들에게
최진영 매니저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을 먹었었다. 안정되지 않은 직장에 박봉이다. 겉보기에 화려한 일도 아니다. 그래도 묵묵히 한 길만을 걸은 결과 정직원도 됐다. 선수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야구인으로서는 성공했다고 자부한다.
그는 "허드렛일을 한다고 느낄 수 있으나 그게 다가 아니다"라면서 "내공을 키웠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선수든 코칭스태프든 야구를 가지고 그들과 대화를 하려면 내공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 3자 입장에서 보면 더욱 잘보인다고들 한다. 하지만 현실은 야구 훨씬 잘하는 선수들이 지금 유니폼 입고 있는 것이다. 그들 사이에서 인정을 받고, 같이 대화라도 하려면 야구 공부 열심히 해야한다"며 스스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당부했다.
"인성도 먼저 갖춘 친구들이 됐으면 좋겠다. 현장직원들이 선수들의 화려한 모습을 보고 동경하면 일 못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선수들 밑에서 일을 봐준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인가. 야구를 시작해 프로야구선수로 성공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야구판에서 야구밥을 먹고 있다는 것 자체로 성공했다고 본다. 나는 상위 1프로는 못 됐지만 중간 이상은 했다. 아직 LG 옷 입고 있지 않나. 나도 성공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