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글쎄. 어떤 학생이 신호가 바뀌자마자 잽싸게 튀어나가는데, 정말 이런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니까!”
나는 불현듯 잽싸게 현장으로 달려가 보았다. 붉은 선혈이 흩뿌려진 질척한 바닥을 조심스레 밟으며, 군중 속을 헤쳐 나갔다. 피비린내가 진동하였다.
“혜······, 혜정아!!!”
참혹했다······. 이로 말할 수 없는 뜨거운 눈물이······, 마침내 폭포처럼 쏟아지기 시작하여 미친듯이 내 볼을 타고 미끄러져 내렸다······.
“······진······.”
혜정이가 숨을 헐떡이며, 간신히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혜정이는 힘 없이 축 늘어진채로, 가느다란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누가······, 도와주세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퀭한 눈으로 내려다보는 군중들이 마치 악마처럼 보였다. 이때 한 사람이 휴대폰을 꺼내, 급히 도움을 청했다.
나는 혜정이를 있는 힘껏 껴안았다······, 따스한 체온이 팔에 감겼다. 그녀는 마치 인형처럼 나에게 안겨 있었다. 그녀의 가느다란 눈물이 쉴새 없이 쏟아졌다. 나는 차마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없어서, 그녀의 볼에 내 얼굴을 대었다. 그녀가 간신히 입을 열어 말했다.
“나······, 죽으면······, 슬퍼하지 말구······.”
눈에 뜨거운 안개가 낀 것 같았다······, 혜정이의 볼이 점점 더 차가워 짐을 느끼며, 나는 찢어지는 가슴을 뒤로 하고는 힘겹게 한마디를 토해내었다.
“죽긴······, 누가 죽어······,”
“······”
“얼른 일어나서······, 학교 가야지······.”
······그녀의 떨리는 손이 내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지었다. 거친 숨소리를 뜨겁게 내뱉으며, 그녀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진······, 이럴때 만큼은······, 너보다 늦고 싶었는데······.”
혜정이는 눈물을 잔뜩 머금은 채 웃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 환하게······.
“안돼······, 제발·······.”
“그래도······, 다행이야······, 마지막에······, 네 얼굴을 볼 수 있어서······.”
“제발······, 연약한 소리 좀 하지마······, 다 괜찮을 거니까······.”
‘쿵······, 쿵······.’
······시간이 마치 죽은 것 같았다. 들리는 것은 나의 심장 소리뿐, 그녀의 눈물도 볼살을 타고 흐르다 멈춰버렸다. 그녀는 한 없이 기쁜 눈으로 나를 올려보고 있었으나, 어떠한 미동도, 그녀의 심장소리 조차 들리지 않았다.
“혜······, 혜정······아?!”
“······”
“야······, 이혜정······.”
“······”
······가슴이 무너져 내려앉으며, 그 아래 쌓였던 뜨거운 무언가가 내 가슴에서 용솟음치며,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되어 마구 쏟아져 내렸다.
“으아아아아!!!”
“안되, 혜정아······, 안되······.”
그녀의 볼은 아직 따스했으나, 그녀의 마지막 생명의 불꽃은, 그렇게 서서히 꺼져가고 있었다. 주위의 사람들도 숨죽이고 이 광경을 지켜보는 듯 했다. 바람소리 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한 순간이었다. 그녀는 멍하게 허공을 응시한 채, 어떤 숨소리도 내지 않고 있었다. 그때였다.
‘타닥, 타닥’
매끄러운 발소리가 부드럽게 땅에 미끄러져 가는 소리에, 나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저 만치 한 실루엣이, 구름조차 멈춰있는 아득한 하늘의 푸른빛을 등지고 내게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대충 짐작해, 그 형상이 사람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게다가, 아주 낯이 익어있던 실루엣······.
“마스터······.”
그렇게 날 불렀던 여자. 바로 꿈에서 나왔던, 어깨아래까지 헝클어진 은빛 머리칼이, 이제는 깔끔하게 정돈되어 부드럽게 흘러내렸었다. 며칠전에 보았던(?) 이미지와 사뭇 달랐다. 그녀는 깔끔하게 정돈 된, 마치 어느 나라 공주님을 연상시키는, 가슴이 움푹 파인, 결혼식장에서나 입을 법한 검은 레이스드레스를 입고 걸어오고 있었으나, 그 이미지와는 반대로, 그녀에게는 알 수없는 차가움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내게 사뿐히 다가오더니, 가볍게 인사했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어리둥절한 내게 그녀가 물었다. 안녕하셨습니까? 라고. 아니, 이건 꿈이다. 애초부터 꿈일 수 밖에 없다. 혜정이가 사고를 당하고, 이젠 이상한 여자가 내게 다가와 인사를 건내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꿈이다. 게다가, 주위사람들은 그 동작을 멈춘 그대로, 혜정이만을 내려보고 있지 않은가? 이건 꿈이다.
“그녀는······,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긴 여정을 시작 해야겠지요······.”
“아뇨!”
무심결에 내 입밖으로 알 수 없는 의미의 말이 튀어나왔다. 아니? 아니라고? 부정할 가치조차 없는 물음이다. 왜냐면, 그녀는 죽지 않았고, 이건 꿈이니까. 지독한 악몽이로군······.
“마스터······, 전 그녀의 영혼을 인도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물론, 마스터의 격한 감정을 느끼고 온 것이기도 하지만, 제 목적은 그녀의 영혼을 올바른 곳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부디, 제가 그녀의 영혼을 안전하게 인도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녀는 자신없는 듯, 말끝을 천천히 흐렸다. 나는 말도 안되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주위사람들을 둘러봤으나, 그들은 그저 퀭한 눈으로 혜정이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나 역시 그 자리에서 일어나, 혜정이와 알 수 없는 그녀를 번갈아 보기 시작했다. 그녀는 역시 알 수 없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무슨······, 소리입니까?!······”
슬픔이 가시지 않은 볼멘 목소리로 내가 그 정체불명의 소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 방긋 웃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어리둥절 한 와중에도, 그녀에게 적의가 없다는 것을 알아채곤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따스한 온기 조차 느껴지지 않는 그 손을······.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제 이름은, 카로니. 저번에 말씀드렸듯이, 이곳과 다른 세계에서 왔지요. 흔히 ‘저승’이라고 불립니다만······.”
카로니가 검지를 치켜들며 빙빙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빙빙돌렸던 그 자리에 자그마한, 끝없이 검은 구멍이 생기더니, 이내 점점 밝아지기 시작했다. 카로니가 계속 말했다.
“전체적으로 보여드리지 못하지만, 부분적으로는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제가 태어난 곳, 제 고향입니다.”
“고향······, 말이군요.”
나는 어안이 벙벙해, 허공에 둥둥 떠있는 그 한없이 깊은 구멍을 주시했다. 마치 금방이라도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빨아드릴 듯한 기운이 흐르는, 그런 구멍이었다.
“예······, 이제········, 보이실 겁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이 꿈이라는 것 조차 망각한 채, 그 구멍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곳 그 끝없는 구멍이 밝아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청명하고 푸르른 하늘을 보여주었다. 뜨거운 햇살이 한가롭게 내리쬐는, 어느 중세시대같은 분위기를 연출시키는 한적한 마을을 보여주었다. 하늘을 찌를듯할 정도로 높게 뻗어있는 첨탑과 위용이 넘치는, 굳건한 철벽을 연상시키는 갑옷을 입은 채 무뚝뚝하게 서있는 한 기사의 조각이 마을의 수호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마치 커다란 거인처럼 커다란 성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옆에 또 하나의 첨탑위로 또 하나의 조각상이 보였는데,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 아래로,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지붕이 인상적인 중세시대풍의 집들이 마구 들어서 있었으며, 그 집들 사이로 구불구불 마을의 중앙을 뚫고 흐르는 가느다란 강이 보였다. 그 강에 모여 한가롭게 빨래를 하는 아낙네들, 물놀이 하는 아이들이 보였다. 청명한 하늘아래 펼쳐져 있는 꿈같은 도시, 그곳에서 나는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우와아······.”
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마치 세상에 나온 아기가 처음으로 세상을 둘러보는 것처럼, 눈에 불을 켜고 그 공간을 주시했다. 푸르름이 유독 눈에 띄는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와, 그 나무들 사이로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가, 내 마음 속 한구석에서 일렁이기 시작했다.
“이제 아시겠나요?!”
카로니가 손가락을 ‘딱’ 하고 튕기자, 그 알 수 없는 공간은 허공에서 스멀스멀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나는 아까 봤던 장면들이 눈앞에 아른거림을 느끼고는, 눈을 천천히 감아보았다. 알 수 없는 감정들, 그리고 역겨움이 내 몸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왔다. 카로니가 말했다.
“저는······, 그녀를 인도할 겁니다······.”
“그럼, 혜정이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까 보았던 그곳으로 갑니까?”
카로니가 고개를 좌우로 새차게 흔들었다. 저건 분명히 부정의 뜻이라는걸, 나는 이미 알아채고 있었다. 카로니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녀는, 이미 죽었습니다. 따라서, 죽은자들이 모여 환생할 기회를 기다리는 ‘그 곳’으로 인도 할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
그녀가 말 끝을 흐렸다.
“경우에 따라서······?”
“환생하지 못 할 지도······.”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 나는 그녀의 멱살을 잡고 따지고 싶었으나, 일단 분을 가라앉히고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카로니라 자신을 소개했던 그 여자는, 내 눈빛에 번뜩이는 심정을 잠깐이라도 느낀 듯이, 움찔하며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에······, 크흠!······, 그러니까······, 흔히 ‘명계’의 도시라고 불리는 곳. 그곳은, 사람들이 죽음의 고통을 맛본 후, 다시 세상에서 환생할 때 까지, 안락한 휴식을 즐기는 곳입니다······, 물론, ‘안락하다’의 기준점이 다르긴 하지만요.”
카로니라는 여자는 되도록이면 명쾌하게 설명하려 했으나, 나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명계의 도시? 환생? 마치 판타지소설에서나 등장 할 법한 생소하지만 익숙한 단어들이 내 머릿속을 마구 휘저어 버렸다. 우선, 이 말도 안되는 상황, 즉,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이 상황. 이 상황부터 물어보아야 할 것 같다.
“예에······, 근데, 지금 저 사람들은 왜 미동도 않고 저렇게 멍하게 서 있는 거죠?”
“······”
그녀는 고개숙인채, 아무 말없이 가만히 자신의 발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자연스레 내 시선도 그녀의 발로 옮겨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