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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주님을 만난 막달라 마리아20:11~18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12 흰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13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14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18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부활의 주님을 만난 제자들 20:19~23
19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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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무덤 밖에서 울던 막달라 마리아가 두 천사 및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마리아가 제자들에게 가서 주님을 본 일과 주님이 자기에게 하신 말씀을 전합니다. 안식 후 첫날 저녁 제자들이 모인 곳에 주님이 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숨을 내쉬시며 “성령을 받으라.”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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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주님을 만난 막달라 마리아20:11~18
주님은 그분을 찾는 자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제자들은 돌아갔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끝까지 주님 무덤에 남아 있습니다. 울며 시신을 찾는 마리아에게 예수님이 나타나 위로하십니다. 예수님을 동산지기로 오인한 마리아에게 예수님은 “마리아야”라고 이름을 불러 주십니다. 예수님이 마리아에게 “나를 붙들지 말라”(17절)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전처럼 그분을 의지하려 하지 말라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곧 승천하시고 보혜사 성령님이 오시기 때문입니다(16:7). 예수님은 제자들을 ‘내 형제들’이라 부르시며 그들에게 마리아를 보내십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마리아는 부활의 첫 증인이 됩니다.
● 더 깊은 묵상
부활의 주님을 알아본 막달라 마리아의 심경은 어떠했을까요?
부활의 주님을 만난 이후, 나는 증인의 사명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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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주님을 만난 제자들 20:19~23
부활 소식을 들었지만 제자들은 두려움 때문에 문들을 닫고 모여 있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19절)라고 선포하십니다. 그리고 못 박히신 손과 창에 찔리신 옆구리를 보이시며 부활을 확증하십니다. 예수님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21절)라고 또다시 선포하시며 제자들의 두려움을 완전히 제거해 주시는데, 이는 앞으로 제자들이 해야 할 사역이 ‘평강’과 관련된 것임을 시사합니다. 파송의 말씀 후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22절)라고 하십니다. 이는 예수님과 성령님의 내재적 일치(14:26)와 더불어 사명 수행에서 성령의 절대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자의 특징은 죄 사함과 용서입니다.
● 더 깊은 묵상
부활의 주님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두 번 선포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 마음에 평강이 깨졌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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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함없는 진리
오래전, 근심 걱정에 시달리던 시기에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상담자는 내게 최악의 시나리오만 상상하는 버릇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일단 목사님의 두려움이 다 사실이라고 해 봅시다. 자, 이제 시계를 빨리 감아 백 년 뒤 최악의 시나리오대로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목사님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매주 남들에게 설교하고 계시잖아요!”
내가 혼자가 되어도,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이며 그분을 믿는 자들은 죽어도 산다는 진리는 변함이 없다. 하나님은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내 자리를 마련해 놓으셨다. 내가 불치병에 걸려도,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이며 그분을 믿는 자들은 죽어도 산다는 진리는 변함이 없다. 예수님이 썩지 않는 육체로 부활하신 것처럼 나도 그렇게 될 것이다. 내가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없다고 해도,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이며 그분을 믿는 자들은 죽어도 산다는 진리는 변함이 없다.
예수님은 부요함 자체시다. 감정적·영적·관계적으로 모든 면에서 부활의 진리를 따르려면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이 필요하다. 이 믿음이 있으면 현실의 고통을 직시하면서도 장래의 소망 가운데 살 수 있다. 진짜든 상상이든 모든 악몽은 결국 끝날 것이며 우리는 그분과 영원히 살 것이다. 그리스도는 죽었다가 살아나셨으며 다시 돌아오실 것이다. 이 얼마나 감사한가!
선에 갇힌 인간, 선 밖의 예수 / 스캇 솔즈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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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요한복음 20장 21절
보냄 받은 사명을 완수하신 후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제 제자들을 보내십니다
제자들에게 사명을 위임하시는 것입니다.
성도의 사명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점으로 '와서 보라'에서 '가서 전하라'로 바뀝니다.
부활로 완성된 구원을 적극적으로 전하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보냄 받으신 것처럼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보냄 받은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불안과 두려움을 이기는 '평강'을 우리에게 주시고, 보냄 받은 자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도우십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예수님이 그 누구도 기대할 수 없는 곳에 희망을 가져오시는 분임을 증명한다. - 앨리스터 맥그래스
오늘의 기도
주님, 상실과 아픔 많은 이 세상에서 눈물짓는 저의 곁에 살아 계신 주님이 함께하시니 감사합니다. 부활의 주님을 온전히 믿고 마음에 모심으로 평강이 제 삶 가운데 흐르게 하소서. 주님께 모든 죄를 용서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제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는 하루 되게 하소서.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우리를 찾아와 주셔서 부활의 기쁨에 참여할 수 있게 해 주신 주님의 그 사랑에 감사를 올려 드리도록 하자
주님께서 우리를 이 땅으로 보내시고, 이 땅에서 당신께서 맡겨 주신 일들을 감당해 나갈 수 있도록 해 주신 것임을 잊지 말고, 내가 감당해야 할 일들을 성실히 잘 감당해 나가도록 하자
항상 섬김의 자세를 잃지 않도록 하고, 주님과 더 깊은 교제 안에 거하면서 주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일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도록 하자
요한복음20:11-23절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베드로와 요한이 떠나고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는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다는말씀입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가 최초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어떻게 최초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을까
이유는 막달라마리아가 부활의 현장에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집으로 갔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계속해서 부활의 현장에 남았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의 현장에서 떠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처음에 천사를 만났습니다 물론 천사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드디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동산지기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마리아야 부르셨습니다
동산지기라면 자신의 이름을 알리가 없습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부활하신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최초로 부활하신 에수님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최초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은 부활의 현장에 남아있었기 떄문입니다
그런의미에서 부활의 현장에 남아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부활의 현장에 남아 있는다는것은 경건의 시간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경건의 시간을 가지는데 사실은 이미 주님께서 나를 만나시려고 기다리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경건의 시간을 통해 부활의 주님을 만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축복합니다
다음은 예수님의 사역의 본질이 "평강"임을 말씀합니다
마리라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하였기에 이번에도 이 사실을 제자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러면 놀랍고 반가워 해야 합니다 그런데 19절에 보시면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달았다"고
말합니다
무엇을 의미할까요 부활하셨다는 기쁨과 평강보다는 두려움이 훨씬 컸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있거나 두려움이 크면 평강할수가 없습니다
감사한 것은 두려워하는 현장에 부활하신 예수께서 나타나셨고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
"평강이 있을지어다"는 말씀입니다
21절에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는 말씀은 예수께서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고자 함을 알수가 있고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평강을 얻을수 있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평강을 얻으면 어떤 두려움도 이겨낼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평강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평강을 받을수 있겠습니까? 오늘도 평강 가운데 살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예수께서 성령을 받으라는 말씀에 답이 있습니다
평강 가운데 살수 있는 것은 성령과 함께 할때 가능합니다
성령을 받으라에서 성령의 사역이 죄사함의 사역입니다
죄용서의 사역입니다
성령을 받고 성령과 함꼐 하면 죄사함의 은혜가 함께 합니다
성령과 함께 하는 삶 그것이 곧 평강의 삶입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하신 말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을 주셔서 평강 가운데 살아갑니다
평강의 은혜는 돈으로 환산할수가 없습니다
그 평강을 누리며 그리고 퍙강의 주인이신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며
사는 우리 모두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와 제자들에게 차례로 보이신 내용입니다.
마리아에게 나타나심
무덤을 확인한 베드로와 요한이 돌아간 후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 앞에 혼자 남아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때 무덤 안에 두 천사가 있었고 뒤에는 예수님이 서 계셨으나 오랜 기간 따라다녔던 마리아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동산지기라고 생각했습니다.
마리아는 죽은 예수님을 찾았으나 살아계신 예수님이 거기 계셨습니다.
죽은 예수님을 찾아 헤매는 한 슬픔을 해결할 수 없지만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면 부활의 증인이 됩니다.
제자들에게 나타나심
부활하신 날 저녁에 예수님은 문을 닫아 건 채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평안을 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부활을 증명해 보이시기 위해 제자들에게 손의 못 자국과 옆구리의 창 자국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들이 잡으러 올 것에 대한 두려움과 염려에 빠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자 기뻐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것은 평안과 기쁨, 담대함입니다.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손과 옆구리의 상처를 보여주며 제자들을 믿음의 자리로 이끄신 예수님은 앞으로 그들이 감당해야 할 사명을 일러주셨습니다.
죄를 용서하는 십자가 은혜의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성도라면 누구나 이 사명에 눈을 떠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 사명을 감당하도록 세상으로 보내시며 우리를 도우실 성령님을 보내주십니다.
증인이 해야 하는 일은 자신이 목격한 사건,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죄를 용서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삶을 통치하고 계신 하나님을 날마다 경험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 불신을 넘어선 부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11~15절).
무덤 밖에서 마리아는 서서 울고 있었습니다. 마리아의 눈물은 예수님의 사랑 때문이기도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염려와 불신 때문이기도 합니다.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는 우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인생에서 겪는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로 인하여 답답함도 느낄 수도 있고, 절망과 슬픔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부활하신 예수님과 동행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의 삶의 자리에 찾아오십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모든 문제의 해답을 찾도록 해 주십니다. 부활 신앙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답게 답답하고 어두운 상황에서도 불신의 벽을 넘어서는 믿음을 잃지 않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복음을 나누는 부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16~18절).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을 알아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붙들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을 ‘내 형제’라 부르시면서 그들에게 자신이 부활한 것과 자신이 아버지 하나님께로 올라가야 할 것을 전하라고 부탁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마리아는 부활의 메시지를 전하는 첫 증인이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자신의 이름을 직접 불러 주실 때, 기쁨을 회복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연약한 내 자신에게 기쁨과 평안을 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총까지 허락해 주셨습니다. 영원한 기쁨의 근원이 되시고, 소망이 되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는 일에 온전히 쓰임 받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영원히 마르지 않는 기쁨의 근원이 되시고,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변화된 인생을 살아가도록 역사하시는 우리 주님을 전하는 일에 열심을 내는 부활 신앙을 갖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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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을 믿음으로 평강을 얻습니다(19~23절).
안식 후 첫날 저녁 때까지 제자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아주 철저히 문들을 닫고, 함께 모여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 나타나셨고,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19절) 말씀하십니다. 일상생활 속에서의 평안을 가리키기보다는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이룬 상태의 평강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증명하시기 위하여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셨고, 두려움에 떨고 있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자 기쁨에 사로잡혔습니다(21절). 그리고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신 것처럼,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성령 받기를 말씀하시면서 동시에 죄를 사하는 권세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평강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 임하게 되었고, 이제 그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구원의 증거가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자들에게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강을 선물로 받습니다. 아울러 영생과 성령의 능력을 선물로 받습니다.
이 선물을 받은 자는 그에 합당한 사명을 감당해 나아가야 합니다. 하늘에 속한 자답게 일상으로 나아가 주님의 평안과 죄 용서의 은혜를 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늘 내 자신과 함께 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평강의 복음을 세상에 널리 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마리아는 빈 무덤을 보고 울었습니다 주께서 살아계실 때에도 지켜 드리지 못했는데 시신마저 지켜 드리지 못했다는 자괴감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때 두 천사가 물었습니다 "어찌하여 우느냐"(요20:13) 천사들은 마리아의 눈물을 공감하려고도 위로하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가장 기뻐해야 할 때에 울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도 물으셨습니다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요20:15)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동산지기인 줄 알았습니다 그때 주의 사랑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마리아야"(요20:16) 우리도 삶에 지쳐 현실이 절망스러워서 눈물 날 때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아2:10) 그때 우리의 삶의 정황과 상관 없이 우리의 눈물은 그치고 웃음이 깃들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창21:6)
그날 저녁 제자들이 유대인들이 두려워 문을 닫고 있었는데, 주께서 오셔서 가운데 서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20:19) 참으로 우리도 캄캄한 현실이 두렵고, 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어서 걱정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시122:8) 그때 주께서 못 박하신 손과 창에 찔리신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했습니다
참으로 주께서는 우리의 눈물이 그치고 웃음이 깃들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지속적인 기쁨과 평강의 삶을 위해 세 가지를 당부하셨습니다 첫째는 사명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20:21) 둘째는 성령충만입니다 "성령을 받으라"(요20:22)
오직 성령 안에서만 의와 평강과 희락의 참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롬14:17) 셋째는 서로 용서하며 항상 화해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요20:23)
우리가 항상 성령충만을 구하고, 주의 사명에 충성하며, 늘 화해하며 화목함으로, 부활하신 주께서 주신 기쁨과 평강이 항상 가득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4:29~32)
19-20절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평강의 근원을 말씀해 주셨다면 21절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강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지는 새로운 역할에 대한 선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셨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신다고 선언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강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향한 예수님의 메신저가 되는 것입니다. 메신저의 역할은 보내신 자에 대한 증거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세상을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메신저로 세상에 보내실 때 홀로 보내지 않습니다. 22절에서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모습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할 때의 모습과 유사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마치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듯이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영적으로 재창조하시는 것입니다.
이 모습은 성령을 받게 되는 오순절 날에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유대인들이 무서워 문을 닫고 있었던 제자들은 성령을 받자 담대하게 예수님의 부활을 전했던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23절에서 “누구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라”라는 말은 우리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능력을 가진 예수님을 이제 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영생을 소유하게 된 우리가 할 일은 구속의 능력을 가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메신저로 부름을 받은 우리가 전할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주어지는 복음 밖에는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우리의 부활에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한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의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그의 복음을 전하는 메신저가 되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받은 평강을 전해줄 책임이 생긴 것입니다. 우리는 참된 평강을 전해야 합니다. 세상이 주는 가짜 평강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참된 평강을 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이 땅에서 하늘나라의 평강을 충만히 누려야 합니다.
우리가 기뻐해야 하는 이유,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메신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갈 때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지는 평강을 풍성히 누리시는 여러분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웃에게 하나님의 평강을 전하는 메신저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5~18절 목자가 자기 양의 이름을 부르듯, 근심과 낙심에 빠진 마리아를 불러 위로하시고, 여전히 시신에 집착하는 그에게 자신의 정체를 거듭 확인시켜 확신을 주십니다. 그리고 놀람과 기쁨으로 자신을 붙드는 마리아를 부활의 첫 증인으로 삼아, 이 부활의 진실과 의미를 증언하도록 보내십니다.
주님의 부활을 믿는다면, 그 어떤 상처와 상실도 우리를 미움과 슬픔의 자리에 오래 머물게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19~21절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제자들에게 찾아가 평강과 사명을 주십니다. 십자가의 의미를 모르는 그들에게 부활은 믿기 힘든 현실이었을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부활하신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부활의 참 믿음을 심어 주시고 부활의 증인으로 파송하십니다.
부활이 아니고는 복음이 성립될 수 없고, 부활을 확신하지 않고는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처럼 두려워하며 주저앉아 있을 것이냐고 물으실지 모릅니다. 오늘 부활의 메시지는 내게 어떤 의미로 다가옵니까?
22,23절 평강과 사명에 이어, 예수님이 주신 또 다른 선물은 ‘성령’입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새 사람으로 거듭날 수도, 새 창조의 증인으로 살 수도 없습니다. 성령에 힘입지 않고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세상을 사랑하고 적대적인 세상 한복판에 하나님 나라를 세울 수 없습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1~15절 홀로 빈 무덤 앞에서 울고 있던 마리아는 자기 앞에 서신 예수님을 보고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예수님을 산 자가 아닌 죽은 자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찾아가 경배할 분은 역사 속에 묻힌 예수가 아니라 지금도 살아 계신 예수입니다.
무덤 속에 시신으로 누워 있는 실패한 혁명가가 아니라 부활하여 온 세상을 다스리는 영광의 왕입니다. 이처럼, 해답 없는 현실과 알 수 없는 미래로 불안한 일상에 ‘확신에 찬 생명력’을 주는 것은 변화된 상황이 아니라 내가 예수님을 보는 변화된 인식입니다.
기도
공동체-부활의 감격을 안고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부활의 증인으로 살게 하소서.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창 2:1-3)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눅 24:5~6)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눅 24:32~35)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고전 16:2)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계 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