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졌던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님은 조선의 명문가 광산김씨 문중의 후손이다.
본 칼럼에서는 김수환 추기경님의 가계를 분석하고자 한다.
광산김문의 대표적 학자이며, 조선 중기 예학의 대가로서 문묘에 종사되었던
사계 김장생 선생님이 추기경님의 11대조부가 된다.
10대조부는 허주 김반 선생님으로서 사계 선생님의 3남이 되는데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대표적인 관직은 이조참판이다.
허주 선생님은 6형제를 두었는데 특히 6형제의 후손들중에서 광산김문의 유명한 인물이 다수 배출된 점을 주목한다.
허주 선생님의 6남이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대사헌을 역임한 김만경 선생님인데 9대조부가 된다.
8대조부는 김만근 선생님인데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사헌부 지평을 역임하였다.
7대조부는 김진륜 선생님인데 호는 동강이며,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6대조부는 김무택 선생님인데 호는 연소재로서 판관을 역임하였다.
5대조부는 김상의 선생님이며, 관직은 감역이며,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고조부는 김기은 선생님이며, 국조방목에 근거하여 1799년 알성시에 응시할 당시
화성에 거주한 것으로 나와 있으며, 관직은 이조참판에 이르렀다.
시호는 청헌공이다.
김기은 선생님이 김재성 선생님과 김재형 선생님을 두는데 추기경의 증조부는 장남인 김재성 선생님이다.
증조부 김재성 선생님은 생원시에 급제하고 관직이 호조참판에 이르렀다.
그동안 추기경님의 조부님은 모든 자료에 김보현 선생님으로 되어 있었으나 광산김문
인터넷 족보와 허주공파 계보에는 김익현 선생님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인데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김재성 선생님은 김보현 선생님과 김익현 선생님을 두었는데 형제가 전부 문과에 급제하였다는 사실이다.
김보현 선생님은 1826년생이며, 국조방목에 근거하여 1848년 증광시에 응시할
당시 서울에 거주한 것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1984년 간행된 허주공파 족보에 의하면 관직이 부제학과 판서를 역임한
것으로 되어 있으며, 문충공이라는 시호를 증직받은 것으로 나와 있다.
인터넷족보에 근거하여 추기경의 종조부로 되어 있는 김보현 선생님은 임오군란이
일어난 해인 1882년에 서거한 것으로 되어 있으며, 김영철 선생님과 김영준 선생님의 형제를 둔 것으로 나와 있다.
한편 추기경님의 친할아버지로 되어 있는 김익현 선생님은 1829년생이며, 역시
국조방목에 근거하여 1858년 정시에 응시할 당시 서울에 거주한 것으로 되어
있다.
관직은 참판에 이른 것으로 나와 있다.
이와 관련하여 기존의 알려진 사실은 추기경님의 조부님이 1868년 무진박해시에
충남 연산에서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어 순교된 것으로 되어 있는데, 1858년
당시 서울에 거주하고 있던 김익현 선생님이 어떤 경위에 의하여 천주교를 믿게 되었으며, 연산에는 언제부터 거주하고 있었던 것인지 이 부분이 명쾌하게 풀리지
않고 있다.
광산김문 인터넷 족보에는 김익현 선생님이 1869년 충남 연산에서 체포된 것으로 나와 있는데 반하여 기존의 대부분의 자료에는 1868년 무진박해때 체포된 것으로
나와 있다는 점이다.
김익현 선생님은 김영덕 선생님과 김영석 선생님의 형제를 두는데 엄밀히 말하여 김영덕 선생님과 김영석 선생님은 이복형제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것은 인터넷 족보를 분석한 결과이다.
구체적으로 김영덕 선생님의 모친은 해평윤씨이며, 김영석 선생님의 모친은 진주강씨로 나와 있다.
추기경님의 백부가 되는 김영덕 선생님은 1859년생으로서 국조방목에 근거하여 1877년
정시에 응시할 당시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와 있다.
이조참판을 비롯하여 여러 벼슬을 역임하였으며, 특히 경술국치이후 장렬한 순국을
하였다는 점이다.
김영덕 선생님의 이복동생이 되면서 추기경의 선친이 되는 김영석은 인터넷족보에 의하면 1869년생으로 나와 있다.
이와 관련하여 추기경님 관련자료에서 백부가 김영덕 선생님이라고 소개된 자료는
인터넷 족보이외에는 전혀 발견하지 못하였다.
이상과 같이 김수환 추기경님의 가계를 분석하였으며 현재 풀리지 않는 몇가지 문제가
있는데 그 진실이 명쾌하게 풀렸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2015년 11월 1일(일) 작가.칼럼니스트 문 암 박 관 우 올 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