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EFA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가 끝나고 녹아웃 스테이지에 참여할 16팀이 정해졌고 대진표도 추첨이 완료되었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소속의 4팀 중 두 팀이 조 1위로, 한 팀은 조 2위로 토너먼트에 진출했고, 한 팀은 조 3위로 유로파 리그에 참여하게 되었다. 프리메라리가나 분데스리가와 비교해봐도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그러나 마냥 결과에 만족하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4팀의 경기력 중에 불안 요소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 끝내 승리하지 못한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조별예선 5차전. 홈에서의 무승부는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유로파행에 결정적이었다. 출처:UEFA챔피언스리그 홈페이지)
0. 프리미어리그 팀들의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조별리그 6차전에서 올림피아코스를 3:0으로 꺾은 아스날은 3승 3패의 성적을 가지고 기적적으로(혹은 과학적으로) 16강에 합류했다. 조별리그 1,2차전의 패배는 재앙과 같았다. 첼시 역시 포르투와의 6차전 경기 결과에 따라 탈락할 가능성도 있었다. 한편 맨유는 조별리그 첫 경기부터 삐걱거리더니 결국 5,6차전에서 승리를 챙기지 못하면서 유로파리그로 진출(?)하게 되었다. 그나마 맨체스터시티가 일찌감치 16강 진출을 확정지었고 조 1위를 차지하면서 프리미어리그의 체면치레를 했다. 하지만 그런 맨체스터시티마저도 유벤투스에게는 2패를 당했다.
사실 프리미어리그의 빅클럽들은 사실 선수들의 면면으로 평가되는 ‘객관적 전력’의 차원에선 상당히 강한 편이다. FC바르셀로나, 레알마드리드, 바이에른뮌헨 정도를 제외하면, 대다수의 클럽이 사실상 프리미어리그의 빅클럽을 상대로 주도권 싸움에서 이기기가 힘들다. 하지만 프리미어리그 클럽들은 의외로 비슷한 수준의 팀이나 객관적 전력에서 아래인 팀들을 만나게 되면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화려한 면면을 가진 프리미어리그 팀들이 두 줄 수비를 펼치는 팀을 만나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프리미어리그 팀들이 가진 문제는 현재의 전술적 흐름에 충실하게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1. ‘두 줄 수비’ 전술과 ‘두 줄 수비’ 격파 전술
2000년대 후반 펩의 FC바르셀로나가 등장하면서 전 세계를 강타한 ‘티키타카’는 점유율에 전술적 중점을 두고 있다. 주로 짧은 패스를 바탕으로 공을 소유하고, 상대의 압박은 짧은 패스로 풀어버린다. 과르디올라는 여기에 체계적인 전방 압박 전술까지 도입하면서 상대를 ‘가둬놓고 패는’ 축구를 보여주었다. 완벽히 주도권을 쥐고 경기를 풀어나가길 선호한다. 이들을 비롯해 패스와 기술이 뛰어난 팀들을 상대로 다른 팀들이 주도권을 가져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프리미어리그 클럽이 FC바르셀로나를 점유율과 주도권 싸움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사례는 적지 않다. 프리미어리그에서는 가장 유기적인 패스 플레이를 하는 아스날이 굴욕적인 슈팅 0개를 기록하며 패배한 10-11시즌 챔피언스리그 16강 경기가 대표적이다.
한편 이러한 주도권 장악에 대응하기 위해 등장한 전술 중 하나가 바로 ‘두 줄 수비’를 바탕으로 한 ‘선수비 후역습’ 전술이다. 두 줄 수비는 지금의 AT마드리드의 시메오네 감독이 즐겨 쓰는 전술이다. 높은 수비적 완결성을 띠기 때문에 점유율하고 관계없이 실점하지 않고, 적지만 치명적인 기회를 만들어 득점을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매번 FC바르셀로나를 상대해야 하는 프리메라리가 팀들은 AT마드리드 등장 이후, 대 FC바르셀로나 전략 즉 점유율을 포기하고도 승리할 수 있는 전술을 갖춘 듯하다. 수비를 두 줄로 구축하고 대항한다. FC바르셀로나를 막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대항하기 위해 ‘두 줄 수비’가 일반화되었다.
약팀의 ‘두 줄 수비’의 숙련도가 높아지면서 이를 돌파해야 하는 빅클럽들의 ‘두 줄 수비’ 공략도 점점 능숙해지고 있다. FC바르셀로나는 MSN(메시, 수아레즈, 네이마르)의 개인 기술을 앞세운 돌파는 물론 선수들의 유기적 연계 플레이, 적극적인 오버래핑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두 줄 수비’ 돌파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는 듯하다.
2. ‘두 줄 수비’를 찾아보기 힘든 프리미어리그, 레스터시티 돌풍
한편 프리미어리그 팀들은 어떨까. 프리미어리그의 축구 스타일은 일반적으로 빠르고 거칠다는 평가를 받는다. 잉글랜드의 많은 팬들이 열심히 달리는 공격적인 축구를 선호한다. 수비에 중점을 두고 역습을 꾀하는 수동적인 전술보다 전방부터 강하게 압박을 하는 전술이나, 공격적으로 ‘화끈한 화력’을 보여주는 경기들을 좋아한다. 이런 성향은 리그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약팀이라고 해서 수비적으로 문을 잠그는 경기를 펼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약팀이라고 해서 ‘두 줄 수비’를 하는 팀은 찾기 힘든 이유이다. 프리미어리그가 최근 유럽 무대에서의 성적은 좋지 않음에도, 경기는 재미있는 이유 중 하나는 리그 전반적으로 공격적인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두 줄 수비' 전술은 잉글랜드의 팬들이 좋아하는 축구의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의 팀들이 선택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프리미어리그 팀들은 ‘두 줄 수비’ 그리고 ‘두 줄 수비’ 격파에 대한 숙련도가 현저히 낮다. 특히 프리미어리그의 열세인 팀들도 적극적으로 공격을 펼치기 때문에 빅클럽들은 보다 쉽게 상대를 공략하는 것이 가능하다. 리그에서 ‘예방 주사’를 맞을 기회를 기회가 현저히 부족했다는 뜻이다.
유럽 무대에서 프리미어리그 팀들이 겪어야했던 어려움은 '두 줄 수비'에 익숙하지 않은 탓이 크다. '두 줄 수비'에 대항한 전술적인 움직임이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맨체스터시티가 유벤투스에 연패를 한 것도, 맨체스터유나티이드가 두 번 모두 조별리그 통과에 있어 중요했던 PSV아인트호번과의 경기에서 1무 1패를 거둔 것도 모두 두 줄 수비 공략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수비적으로 조밀하게 공간을 좁힌 상대를 두고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
‘두 줄 수비’ 공략은 선수 개인적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반드시 팀 전체의 전술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 두 줄 수비는 전후와 좌우 간격을 매우 긴밀하게 조직한 것이 특징이다. 이를 와해시키려면 팀 전체의 배치가 변해야 한다. 예를 들어 측면 공격수들이 넓게 벌려 서고 상대 측면 수비수와 중앙 수비수 사이의 넓은 공간으로 측면수비수의 오버래핑이 들어간다면 상대의 수비를 흔들 수 있다. 전체적인 형태가 흐트러진 수비는 공략하기에 훨씬 쉽다. 그러나 측면 공격수의 위치가 애매하다면 공간을 효과적으로 창출할 수 없다. 혹은 넓게 벌려선 이후라도 측면수비수가 적시에 오버래핑을 시도하지 않는다면, 만들어진 공간은 죽은 공간으로 남게 된다. 즉, 공간을 만들고 상대 수비 조직을 흔들려면 팀 차원에서의 대응이 필요하고, 당연히 이는 전술적으로 준비된 팀이라야 수행할 수 있다. 사전에 연습된 것이 없다면 당장에 해내기 어렵다.
최근 레스터시티가 프리미어리그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배경에도 '두 줄 수비' 전술이 있다. 사실 레스터시티의 전술은 단순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상대를 끌어들인 후 공을 탈취해서 세 명 혹은 네 명의 선수로 역습의 형태를 취한다. 레스터시티의 경우 무조건 수비를 내리지는 않는 팀이지만, 공간을 이용한 역습을 위해서라도 수비 라인을 깊이 내리는 것은 필수적이다. 웅크린 레스터시티를 상대로 점유율을 높게 가져가면서 자연스럽게 끌어올린 최종 수비 라인 뒤에는 넓은 공간이 발생하고, 이곳을 발이 빠른 바디를 중심으로 레스터시티가 공략하면서 현재 프리미어리그 선두에 올라있다. 많은 팀들이 레스터시티의 선수 구성과 전술에 분명한 약점이 있음에도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하고 있다.
(△ '두 줄 수비'를 펼치는 레스터시티. 하프라인 밑으로 모든 선수가 내려와서 간격을 좁히고 있다. '두 줄 수비'를 펼치다가 공을 빼앗으면 번개같은 역습을 펼친다. 잉글랜드 클럽답게 항상 이렇게 내려서진 않는다.)
3. 프리미어리그 팀들의 ‘두 줄 수비’ 전술 구사
앞으로 프리미어리그 클럽이 유럽 무대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반드시 ‘두 줄 수비’를 격파할 해법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두 줄 수비'는 프리미어리그 팀에게도 유효하다. 주도권 다툼에서 열세인 팀이 상대를 괴롭힐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전술이기 때문이다. 프리미어리그의 빅클럽들이 유럽 무대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두 줄 수비'를 구사할 필요가 있다. 주된 전술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견고한 '두 줄 수비'와 이에 동반한 역습 전술을 플랜B로 삼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FC바르셀로나, 바이에른뮌헨 등 주도권을 쥐고 흔드는 데에 능한 팀을 상대로 정면 승부를 시도했다가 대패를 당하는 경우는 매우 흔한 경기 양상이다.
최근 전술적 변화가 감지되는 것은 긍정적이다. 아스날이 바이에른뮌헨으로 3차전에 보여준 경기력은 아스날이 '두 줄 수비'로 충분히 바이에른뮌헨을 괴롭힐 수 있음을 보여줬다. 벵거의 아스날은 원래 점유율과 패스를 강조한다. 하지만 바이에른뮌헨을 상대로 철저히 수비를 두 줄로 굳힌 채, 탈압박과 드리블 돌파에 강점이 있는 외질, 산체스, 월콧 등을 내세워 역습에 방점을 찍으면서 2:0 승리를 따냈다. 경기 주도권을 포기하고도 좋은 경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경기였다.
특히 아스날의 경우 객관적 전력에서 앞서는 FC바르셀로나를 만나게 되었기 때문에, 선수비 후역습 전략을 펼칠 공산이 크고, 이 전술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은 8강의 열쇠가 될 것이 분명하다. 비슷한 수준을 가진 PSG와 만난 첼시, 강세를 갖고 디나모 키예프와의 경기에 나설 맨체스터시티의 경우도 8강행에 ‘두 줄 수비’ 혹은 '두 줄 수비' 돌파가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은 마찬가지다.
(△ '두 줄 수비'든 아니든 수비진을 초토화 시킬 수 있는 MSN트리오. 아스날은 이들을 막아낼 수 있을까. 출처:UEFA챔피언스리그 홈페이지)
전술도 유행이 있고 전술에 옳고 그름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무적처럼 보였던 전술도 파훼법이 등장하고 전술도 진화를 해야 한다. 당연히 ‘두 줄 수비’가 만능 열쇠도 아니다. 하지만 승리할 가능성을 높이는 전술이 높이 평가받는 것은 당연하다. '두 줄 수비'를 선호의 차원에서 도입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승리와 성적을 위해선 거부할 수 없는 전술적 흐름이다. 유럽 무대에서 프리미어리그가 반전을 꾀하기 위해선 '두 줄 수비'에 얼마나 익숙해질 수 있느냐가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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