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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수난(受難).
2.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사람들은 별별 추측을 다 해보았다. 그러나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그동안 사람들은
다소 여유가 생겨 서로 이야기도 주고 받았다. 열흘이 넘어서야 한사
람씩 불려 나갔다. 그리고는 돌아오지 않았다.
청년은 네번째로 불려 나갔다. 그가 불려간 곳은 같은 건물안의
방이었다. 방안엔 다른 물건은 없고, 탁자가 하나 있을 뿐이었다. 탁
자엔 사십대 사내가 앉아있었으며 문가엔 두사람이 칼을 들고 지켜
서 있었다.
탁자에 앉아있는 사내는 눈가에 권태스러움이 가득했다. 사내는
탁자위의 서류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름은?"
"도일봉(覩一峯)."
사내는 백지위에 이름을 적어넣었다.
"고향은?"
"사천(四川)."
"나이는?"
"열아홉."
"직업은?"
"사냥꾼."
"사냥외 다른일은? 특기?"
"없소."
도일봉의 대답에 사내는 눈살을 찌뿌리며 노려보았다. 그러자 그
것이 신호인듯 뒤에 서 있던 한 녀석이 도일봉의 허리를 모질게도 쥐
어 밖았다. 급시에 당한 일이라 도일봉은 "헉!"하고 헛바람을 들이키
며 허리가 꺽였다. 눈에 불똥이 튀었다.
화가 치민 도일봉은 뒤로 돌아서며 냅다 발길질을 했다. 도일봉을
쥐어 박았던 장한은 그만 발길질에 사타구니를 걷어채여 비명을 지르
고 바닥을 뒹굴었다. 도일봉은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바닥에
구르고 있는 장한의 옆구리를 걷어차 버렸다.
또다른 장한이 칼을 뽑아들었다. 도일봉은 칼을 뽑아든 장한을 매
섭게 노려보고는 "흥!"하고 코웃음을 치며 돌아섰다. 장한이 덤비려
하자 탁자의 사내가 손을 흔들어 물러가게 했다. 사내는 도일봉을 무
심히 바라본 후 다시 물었다.
"무공(武功)을 배운적이 있나?"
"없소."
"그럼 싸움 기술은 어디서 배웠나?"
"배운적 없소."
사내는 다시 한번 눈살을 찌뿌렸지만 뒤의 사내들은 가만히 있었
다.
"어디를 가는 중이었나?"
"친구집."
"어디? 뭐하러?"
".....돈벌러 가는 길이요."
"돈! 돈을 벌겠다고?"
"출세도 하고."
"돈? 출세?"
사내는 잠시 도일봉을 바라보다가 허허 웃었다. 조금은 가소롭다
는 비웃음이었다. 도일봉은 그저 못본척 했다.
"무었을 하여 출세를 하고 돈을 벌텐가?"
"....."
그런것까지 대답할 필요는 없지.
"무술을 배우려나? 출세를 할 수도 있지."
".....싫소."
"싫어? 왜?"
"무술을 배워 산적질만 한다면 그 무었에 쓰겠소? 무술은 당신이나
배우시오."
너는 산적질이나 해 먹으라는 지독한 욕이었다. 도일봉의 말에 사
내는 얼굴을 붉히며 눈살을 찌뿌렸다. 자신을 산적 취급을 하니 화가
난 것이고, 한편으로는 도일봉의 말에 부끄러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내는 "꽝!"하고 탁자를 내리첬다. 탁자엔 금세 손바닥 자국이 생겼
다. 대단한 장력이었다. 도일봉은 눈을 동그랗게 떳다.사내는 화를
삭힌 후 두 무사에게 말했다.
"채석장(採石場으)로 보내라! 단단히 감시하고.. 그리고 너는 무공
을 배울 마음이 있다면 말만해라. 네가 바라는 것이 이루어 질 것이
다."
사내의 말이 끝나자 무사는 도일봉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사내는
밖으로 나가는 도일봉을 바라보며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음.."
그리고 다른 사람이 들어왔다.
밖으로 끌려 나온 도일봉은 다른 무사에게 끌려갔다. 가는 동안
주위를 살펴보니 곳곳에 잡혀온 사람들이 중노동을 하고 있었다. 성
을 쌓는 모양이었다.
어떤 사람은 각지게 다듬은 돌을 운반하고, 어떤 사람은 돌을 다
듬고, 어떤 사람들은 진흙을 이기고, 어떤 사람들은 목재를 다듬고
있었다. 사람의 수가 많아 몇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무두들 지친 모
습이고, 억지로 일하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곳곳에 채찍과 병기를 든
군사가 지키고 있었다. 게으름을 피거나 수작을 부리려 하면 여지없
이 채찍이 날아와 살을 찢어놓았다.
"이새끼. 빨리빨리 걸어! 산보 나온줄 아니?"
도일봉이 딴생각을 하며 걷자 무사가 사정없이 등에다 채찍질을
가했다. 도일봉은 아프기도 하고, 화가 치밀어 무사놈을 후려치려다
이내 마음을 바꾸어 그만 두었다. 한대를 때리고 백대를 맞으면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힘을 아껴야 다른일도 할 수 있으니까! 우선은 그
저 시키는대로 하는 것이 상책이다.
도일봉이 끌려간 곳은 성을 쌓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바위산이었
다. 구리빛 피부의 사내들이 돌산을 깨뜨리고, 돌조각을 떼내고 있었
다. 이곳은 다른곳보다 연장이 많아서인지 경비도 더욱 철저했다. 일
을 하는 사람들이 백명도 넘는것 같았다.
'운도 더럽게 없구나! 이들도 나처럼 끌려온 것이겠지.'
무사는 도일봉을 한 사내에게 인계했다. 그 사내놈은 같이 끌려온
처지인데도 더럽게 딱딱 거렸다. 하긴 어딜가도 아첨하는 무리는 있
게 마련이니까! 사내는 호통을 내질러가며 도일봉을 돌을 깍아내는
사람들 쪽으로 보냈다. 정과 망치로 돌산을 조각으로 떼어내는 일이
었다. 도일봉과 함께 일하게 된 자들은 본체만체 망치질만 해대고 있
을 뿐이었다. 도일봉은 여러말 않고 그저 고개만 끄덕여 준 후 익숙
치 않은 망치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날이 어두워저서야 일을 멈추었다. 군사들은 인원을 정확히 파악
한 후 일꾼들을 숙소로 끌고갔고, 도망칠까봐 발에 착고를 채워 두었
다. 한방에 이십명이 있었다. 모두들 하루종일 일에 지치고 피곤하여
곧 잠자리에 들었다. 도일봉도 고개를 저으며 잠자리에 들었다.
매일매일.
비가오나 눈이오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비를 맞아도, 눈이
덮혀도 일은 해야했다. 겨울이라 더욱 고생 스러웠다. 매일 똑같은
작업의 반복이었다.
날이 지남에 따라 도일봉은 작업에 적응을 해나갈 수 있었다. 사
냥을 다니며 사천의 험준한 산도 평지처럼 넘나들던 도일봉도 망치질
엔 두손을 들어야 했다. 손바닥이 온통 부르트고 발바닥도 말이 아니
었다. 어깨가 떨어저 나가는 것 같았고, 허리가 끊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건강한 체질을 타고 났는지라 남들보다는 쉽게 적응해 나갈
수 있었다. 갈수록 요령도 생기고, 체력도 더욱 단단해지는 기분이었
다. 허나 먹는게 시원치 않아 체력을 유지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채석장에 익숙해 지면서 도일봉은 주위를 자세히 관찰했다. 보초
들의 위치, 인원 수, 장비, 교대시간, 보초들의 버릇까지도 일일이
살펴 머리속에 기억해 두었다.
채석장 주위에는 철책이 처저 있었고, 철책 밖에도 군사들이 지키
고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같은 방에 있는 자들중에 군사들의
간세(奸勢)들이 있었다. 이런 놈들이 밖에서 지키는 군사들 보다 훨
씬 조심해야 할 놈들이다. 그리고 제일 급하고도 중요한 문제는 바로
발에 채워진 착고였다. 착고를 달고 달려봐야 헛일인 것이다.
한달이란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그동안 일꾼들과도 친
해ㅈ고, 보초의 허실과 간자가 누군지도 알아냈다. 그러나 기회는 좀
처럼 오지 않았다. 도일봉은 열심히 일하는 척하며 정에서 떨어진 쇳
조각을 하나 감추었다. 몰론 쇳조각을 감준것을 들키면 작게는 채찍
형, 크게는 처형이었다. 그러니 조심해야 했다.
도일봉은 쇳조각을 잘 갈아 착고의 열쇠를 만들어 갔다. 시간도
없고, 감시도 심해 쇠를 가는 일이 여간 힘들지 않았으나 한달정도가
더 지나자 착고의 열쇠를 만들 수 있었다. 도일봉은 평소 손재주가
좋아 시간이 없었을 뿐이지 열쇠를 만드는 것은 어려운일이 아니었
다.
한겨울도 이젠 지나가고 햇볕이따뜻해 지고 있었다. 더우기 이곳
은 산과 골이 높고 깊지만 남쪽인지라 북방의 추위보다는 한결 나았
다.
도일봉이 열심히 착고의 열쇠를 만드는 동안 채석장 인부중에 세
사람이 탈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철책도 벗어나지 못하고 잡히고 말
았다. 세사람은 장대끝에 매달려 굶어죽었다. 사람들을 위협하려는
수작이었다. 시체는 썩은 냄새가 날때까지 그렇게 장대끝에 매달려
있었다.
도일봉은 또 기다려야 했다. 이번일로 인해 경비가 더욱 심해졌던
것이다. 도일봉은 열쇠를 소중히 간직해 놓고 열심히 일하는 척 했
다.
봄이 오고 있었다. 가지끝에 물이 오르고, 새싹이 돋았다. 벌써
잡혀온지 세달이 지나고 있었다.
그동안에도 여러 사람들이 탈출을 시도했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말
았다. 그동안 가끔 도일봉에게 무공을 기르처 주마고 했던 사내가 와
서 도일봉을 살피고 돌아갔지만 도일봉은 모르는 척 했다.
날씨가 풀리면서 도일봉이 있는 막사가 암중(暗中)으로 술렁이고
있었다. 몇칠을 두고 살펴본 결과 몇명이 탈출을 시도하려 하고 있음
을 알았다. 도일봉은 그저 모르는 척 했다. 자신이 이미 눈치를 챌
정도라면 이 탈출은 실패로 돌아갈 것이 분명했던 것이다. 주동자(主
動者)는 전삼(全三)이라는 자였다. 30대의 건장한 사람으로 도일봉과
한조에서 일하고 있었다.
몇일이 더 지났을때, 일을 마치고 모두 잠이든 사이 전삼이 슬그
머니 다가와 도일봉을 흔들었다. 도일봉이 눈을 뜨자 전삼은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한 후 귓속말로 속삭였다.
"도형, 할 말이 있소이다."
도일봉은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잘 알고 있는지라 그저 조용히
있었다.
"도형도 눈치를 채고 있으리라 생각하오만 조용히 들으시오... 우
린 내일밤 이곳을 탈출할 생각이요. 준비는 다 해두었소. 어제 많은
수의 군사들이 떠났으니 마춤한 기회이요...."
확실히 전삼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이곳 군사들은 세달에 한번
씩 이곳을 떠나는데 그건 인원을 보충하기 위해서였다. 이곳에선 많
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기 때문에 보충을 하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
다. 군사들은 평복으로 갈아입고 멀리까지 가서 인원을 충당했다. 도
일봉의 경우처럼 산적으로 가장한 이들이 있는가하면, 보수(報酬)가
많다고 선전하여 사람을 모으기도 했다.
"..착고의 열쇠도 있소이다. 무기도 몇자루 구해두었고. 그리고 몇
일전 우연히 발견한 것인데 철책에 구멍이 있더란 말이요. 철책까지
만 간다면 일단은 안심이요. 산속으로 도망친다면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요. 다른 막사에서도 호응을 할것이요."
도일봉은 조용히 듣고는 있었지만 이미 마음속으로는 고개를 흔들
었다. 우선은 인원이 너무 많다. 자신까지 합치면 여섯인데 수가 많
으면 그만큼 발각되기도 쉽다. 또 군사들이 많이 빠저 나갔다고는 하
나 그만큼 경비를 철저히 할것이다. 이럴때가 오히려 더 위험할 수도
있다. 더우기 구멍이 뚫려 있다니? 그건 어쩐지 더욱 찜찜했다. 군사
들이 나가기전 틀림없이 재차 확인을 했을텐데 구멍이 그대로 있다는
것은 역시 이상한 일이었다.
전삼은 말했다.
"어찌되었든 내일까지 가부간(可否間) 결정을 하시오. 우린 가고
말거요."
도일봉은 고개를 끄덕이는 도리밖에 없었다. 전삼은 곧 제자리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도일봉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래도 수상해...'
도박을 해야 한다면 유리한 쪽을 택해야 한다. 그러나 전삼의 패
는 이미 딸아지에 불과해 보였다.
하루가 지나고, 거사일이 닥치자 전삼 일행은 극도로 긴장하고 있
었다. 동료들이 어쩐 일이냐고 물을 지경이었다. 도일봉은 그 꼴을
보고 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어찌되었든, 밤이 오고 시간이 되자 전삼 일행이 움직이기 시작했
다. 이미 도일봉은 고개를 저은 상태라 그들은 자신들의 일을 해 나
갔다. 삼경이 지날무렵. 전삼등은 준비된 열쇠로 착고를 열고 하나둘
씩 일어났다.
그들의 행동은 생각보다 민첩했다. 착고를 벗는 순간 이미 두사람
이 ㅂ으로 나갔고, 밖에서 ㅉ은 비명성이 일었다. 이어 두사람이 따
랐다. 도일봉은 그들이 어찌될지 궁굼하여 슬그머니 일어서 밖을 살
폈다.
네사람이 한쪽을 바라고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곳 지리는 누
구보다 잘아는지라 어디에 숨고, 어디로 가야할지 이미 결정되어 있
는 것이다. 그들은 곧장 철책을 향해 접근했다.
그때.
다른 막사를 지키고 있던 보초가 그들쪽으로 다가가는 것이 보였
다. 그러나 전삼등은 미처 보초를 보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도일봉
은 고개를 흔들며 주위를 살폈다. 옆에 전삼일행이 쓰러뜨린 보초가
있었다. 그들의몸에는 킬과 활이 있었다. 도일봉은 재빨리 활을 집
어들고 화살을 걸었다. 보초가 전삼일행을 발견하고 호각(號角)을 불
려하고 있었다. 도일봉은 급히 화살을 날렸다. 화살은 유성처럼 날아
가 보초의 관자놀이를 꽤뚫었다. 도일봉은 어려서부터 사냥의 명수였
고, 활도 잘쏘았다.
보초가 비명도 못지르고 쓰러지자 전삼일행은 그때서야 위험했다
는 것을 깨달았다. 도일봉은 재빨리 착고를 벗고 화살과 칼을 챙긴
후 전삼에게 다가갔다.
"계속 가시오! 내 적의 이목을 흐뜨려 놓으리다!"
전삼등은 조금전 상황에 등골이 오싹함을 느꼈다. 전삼이 급히 말
했다.
"고맙소 도형제! 같이 갑시다!"
전삼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도일봉은 벌써 다른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전삼등도 더 지체할 수 없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일단 마음을 정한 도일봉은 빠르게 움직였다. 어슴프레 비추는 달
빛의 그림자 사이를 가로지르며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밤고양이와도
같았다. 도일봉은 군사들이 사용하는 마굿간 쪽으로 달렸다.
도일봉이 마굿간에 당도할 즈음 저쪽에서 확! 하고 횃불들이 밝혀
ㅈ다. 이미 생각 했던대로 전삼일행이 움직인 쪽은 함정이었던 것이
다. 많은 수의 군사들이 공사장을 비우자 분명 탈출하려는 자들이 있
을 것을 예상하여 일부로 함정을 만들고, 잡아서 엄단에 처해 남은
자들에게 본떼를 보이려는 수작이었을 것이리라.
도일봉은 고개를 흔들며 죽은 보초에게서 얻은 화석(火石)으로 마
굿간 옆 건초더미에 불을 당겼다. 물기가 없는 건초더미는 한순간에
불이 붙어 옆으로 번ㅈ다. 십여마리의 말들이 놀라 발을 걷어차며 소
란을 부리기 시작했다. 도일봉은 마굿간의 문을 열어 말들을 풀었다.
도일봉은뛰처 나가는 말들을 전삼등이 있는 철책쪽으로 몰았다. 때
아니게 건초더미에 불이 일고 말들이 소란을 부리자 전삼일행을 좇던
군사들이 일순 당황했다. 군사들중 몇 명이 그제서야 마굿간 쪽에도
탈출자가 있는 것을 알고 마굿간 쪽으로 달려왔다.
도일봉은 망설이지 않고 한쪽을 향해 뛰었다. 전삼 일행과는 반대
방향이었다. 도중에 한 막사에 들어가 잡혀 있는 자들이 덮고 자던
몇장의 담요를 걷어 들고 다시 뛰었다. 온 막사가 이미 난장판이다.
막사를 돌아 달리던 도일봉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군사 한명
과 그만 정면으로 부딪치고 말았다.
"어이쿠!"
하마터면 둘 다 고끄라질뻔 했다. 도일봉은 재빨리 균형을 잡으며
급히 칼을 뽑아 휘둘렀다.
"으악!"
어정쩡하게 균형을 잡지못한 군사는 그만 칼을 맞아 비명을 지르
며 거꾸러졌다. 도일봉은 군사의 몸에서 화살뭉치를 떼어 챙겼다. 그
리고 다시 뛰었다. 군사들이 그제서야 도일봉을 발견하고 몰려왔다.
고함소리가 요란하고 화살이 빗발쳤지만 도일봉은 신경쓰지 않았다.
어짜피 주사위는 던져진 셈이다. 어떤 수가 나올지는 뚜껑을 뒤집어
봐야 한다.
도일봉은 달리고 달려서 철책에 도착했다. 도일봉은 가시가 박혀
있는 철책을 향해 담요를 던졌다. 담요가 가시를 어느정도 막아줄 것
이다. 도일봉은 담요를 타고 올랐다. 담요를 뚫고 나온 가시들이 온
몸을 할퀴어 댔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대로 담장을 넘었다.
군사들이 곧 뒤를 추격했다.
도일봉은 몸을 숨길만한 곳을 찾아 뒤돌아 활을 쏘았다. 군사들은
손에손에 횃불들을 들고있어 겨냥하기가 쉬웠다. 백발백중(百發百
中)! 군사들은 크게 당황하여 급히 뒤로 물러서며 분분히 횃불을 껐
다.
도일봉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시 달렸다. 숲이었다.
"그래. 숲이라면 해볼만 하다!"
아홉 살도 되기전에 이미 험악한 산등성이를 넘나들며 사냥을 해
왔던 도일봉이다. 원숭이도 피해간다는 촉도(燭道)의 벼랑들도 뛰어
다녔다. 숲이라면 자신이 있다. 도일봉은 쉬지않고 달렸다. 나뭇가지
들이 사정없이 얼굴을 후려쳤다. 도일봉은 신경쓰지 않았다.
대체 얼마를 달린 것일까? 이젠 뛸 힘도 없다. 두 발이 풀려 걷기
조차 힘들었다. 앞쪽에서 졸졸졸 물소리가 들려왔다. 도일봉은 물소
리가 나는쪽으로 걸었다. 역시 물이 흐르고 있었다. 도일봉은 냇물
에 뛰어들어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이정도면 안심일까?"
그러나 천만의 말이었다. 물을 마시고 잠시 나무밑에서 쉬려할 때
나무 위에서 사람이 떨어져 내리며 칼을 날렸다.
"어이쿠! 제기랄..."
너무 놀란 도일봉은 그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칼날이 아슬아
슬하게 머리를 비켜갔다. 칼이 재차 처들어 왔다. 도일봉은 일어서지
도 못하고 땅을 굴러 피했다. 떼굴떼굴 몇번이나 구르는 사이에 적이
한둘이 아님을 알았다. 커다란 나무밑으로 굴러간 도일봉은 나무를
끼고 돌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그때 칼 한자루가 불쑥 처들어왔
다. 기겁을 한 도일봉은 또한번 나무를 끼고 돌았다. 칼은 푹! 하고
나무에 박혀버렸다. 그걸 놓칠 도일봉이 아니었다. 도일봉은 나무를
한바퀴 돌아 나오며 나무에 박힌 칼을 뽑으려고 힘을 쓰는 자의 옆구
리에 칼을 모질게 박아 넣었다.
"으악!"
놈이 비명을 내지르는데 뒤에서 칼바람이 윙! 하고 몰려왔다. 도
일봉이 옆으로 돌아 몸을 피하자 닥쳐온 칼바람은 그대로 도일봉에게
옆구리를 찔린자의 등에 푹 박혔다. 놈은 또한번 비명을 지르고는 이
내 고개를 떨구었다. 도일봉은 재빨리 달려들어 동료의 죽움에 얼떨
떨해 하는 자의 사타구니를 걷어차 버렸다. 놈이 죽는다고 비명을 내
지르며 사타구니를 감싸쥐고 땅바닥을 굴렀다. 남은 한놈이 품속에서
호각을 꺼내 불었다.
삐익! 삑!
분명 동료를 부르는 신호이리라. 다급해진 도일봉은 적을 그대로
두고 산아래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쯤 달리다 보니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놈들이 벌써 따라붙은
것이다. 도일봉은 자신이 적을 너무 가볍게 보았다고 생각했다. 잠시
라도 꾸물거릴라 치면 어느새 달려들어 뒷 등을 할퀸다. 또 얼마를
달리다보면 나무위에서 적이 뛰어내리며 칼을 휘둘렀다. 도일봉이 도
망치면 호각을 불어 신호하고 위치를 알렸다.
도일봉은 뛰다가 쉬었고, 놈들이 달려들면 칼을 휘두르고 화살을
날리며 다시 도망쳤다. 해가 떳다가 어느새 서산으로 너머갔다. 칼도
어디서 놓쳤는지 몰랐다. 화살도 이젠 십여발 밖에 남지 않았다. 이
대로 가다가는 하루도 더 못버틸 것 같았다. 도일봉은 그래도 뛰는것
만이 오로지 살 길이라고 느끼며 죽을 힘을 다해뛰고 또 뛰었다.
갈증이 일어 목이 타는 듯 했고, 배가 몹시 고파왔다. 그동안 채
석장에 먹은 음식이라야 근근히 체력을 유지할 정도였다. 그런 몸으
로 하룻밤, 하룻낮을 꼬박 달리고 보니 도무지 버텨내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이젠 호각소리도 멀어졌다. 도일봉도 더는 달릴 수 없었다.
놈들을 만나 한바탕 하는 일이 있더라도 우선은 좀 쉬어야 했다. 터
벅터벅. 얼마를 더 걷던 도일봉은 움푹 채인 바위밑에 털썩 주저앉았
다. 한동안 쉬고난 도일봉은 풀려 후둘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추수리
며 몸을 일으켰다.
삐이익. 삑!
호각소리가 가깝게 들려왔다.
"제기. 빌어먹을 놈들! 정말 끊질기구나. 흥."
욕을 하려해도 너무 지쳐 말소리가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이제는
불쑥뿔쑥 튀어나오는 칼날은 없었다. 그러나 호각소리는 여전히 간격
을 유지하며 따라붙고 있다. 도일봉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든 추격자들과의 거리를 불여야 했고 시간을 벌어 흔적을 지워야 한
다. 흔적이 남는 이상 추격자들을 따돌릴 순 없으리라. 유능한 사냥
꾼도 좇기다보니 여유가 없다.
쏴아 쏴아.
흐르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도일봉은 소리나는 쪽으로 방향을 틀
었다. 넓이가 일장가량되는 제법 빠른 물줄기였다. 도일봉은 물로 뛰
어들었다. 벌컥벌컥. 물을 들이키고 있을 때 또 호각소리가 들려왔
다.
"정말로 개 코를 가졌구나!"
놈들중에는 분명 유능한 사냥꾼 못지않은 추적의 능수(能手)가 있
는 모양이다. 도일봉은 욕을 내뱉으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물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던 도일봉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가 이내 물줄기
를 거슬러 오르기 시작했다. 좇는 적도 어느정도 눈치는 채겠지만,
아무래도 위로 거슬로 올라갔다는 생각보다는 밑으로 내려갔다는 생
각을 하기 쉬우리라. 도일봉은 또 물에서 나가지 않고 걸었다. 물 속
이라면 숲보다는 흔적이 덜 남을 것이다.
위로 오를수록 냇물은 좁아졌다. 대신 물살이 빨라졌다. 물이 얼
음처럼 차가와 뼛속까지 얼얼했지만 도일봉은 그대로 걸었다. 물살이
갈수록 빨라져 자칫하면 떠내려 갈 판이다. 더욱 조심해서 걸어야 했
다. 어느새 해가 져서 주위는 어둠에 휩싸였다.
우르릉 쏴아아!
좀더 걷다보니 물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앞에는 낙
차가 제법인 폭포수가 있었다. 도일봉은 더 이상 걸을 힘이 없었다.
폭포가에 주저앉고 말았다. 어딘가 쉴곳이 없나 둘러보았다. 한곳이
다른곳보다 유난히 시커멓게 보였다. 도일봉은 그쪽으로 걸었다.
역시 생각대로 움푹 패인 곳이었다. 사람 하나가 들어가 쭈구리고
앉을만한 공간이 있었다. 도일봉은 굴을 살핀후 그리로 들어갔다. 옆
에 있는 커다란 돌을 굴려 입구를 가렸다. 굴 안에 물이 가득했으나
그런걸 따질 겨를이 없었다. 물소리가 그토록 요란한대도 도일봉은
쏟아지는 잠을 어쩌지 못했다. 의식이 급속도로 가물가물 해졌다.
얼마를 그렇게 잠에 빠졌었는지 몰라도 눈을 떠보니 밖이 훤했다.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어 입구를 가렸던 돌을 굴리려 하던 도일봉은
기겁을 하고 몸을 움추렸다. 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폭포소리 때문
에 뚜렸하진 않지만 분명 두런두런 사람의 말소리였다. 무슨 말을 주
고 받는지는 알 수 없었다. 서너사람은 있는 듯 했다. 도일봉은 숨소
리마저 죽이며 기다렸다. 말소리는 좀처럼 멀어지지 않았다.
날이 어두워질 무렵에야 소리가 멀어지는 것 같았다. 도일봉은 안
심이 되지 않아 그 밤도 그렇게 굴 안에서 쭈구리고 보냈다.
다음날.
도일봉은 겨우 굴에서 나올 수 있었다. 온 몸이 물에 젖어 덜덜
떨렸다. 무릅아래 감각조차 없다. 너무 지쳤다. 도일봉은 간신히 지
친 몸을 이끌어 햇볕이 잘 드는 곳을 찾았다.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몸을 편히 하고 감각없는 발부터 주물렀다. 다리에 어느정도 감각이
되살아나자 이번엔 머리를 무릅사이에 박고 손으로는 발끝을 잡은체
조용히 피가 돌기를 기다렸다.
첫댓글
내용이흥미진진 ..
즐독합니다,
잘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감사합니다
잘보았습니다
잘 밨습니다
즐독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내용이 기대가 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잘읽었습니다
ㄳ
즐감요
무사 탈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