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꾸르실료 DE COLORES 원문보기 글쓴이: 야고보 아저씨
2022년 9월 26일 연중 제26주간 월요일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46-50
그때에 46 제자들 가운데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그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다.
47 예수님께서는 그들 마음속의 생각을 아시고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곁에 세우신 다음, 48 그들에게 이르셨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49 요한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와 함께 스승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50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막지 마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인격 교육
요즘 인격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인격이 부족한 탓도 있고, 우리 사회가 너무 인격적으로 피폐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도 그렇습니다.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이 잘못되어서 인격수양이 잘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격이 갖춰지지 않은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격이란 [①사람으로서의 됨됨이, 사람의 품격(品格). 자격(資格). 개인(個人)의 지(知), 정(情), 의(意) 및 육체적 측면을 총괄하는 전체적(全體的) 통일체(統一體) ②도덕적(道德的) 행위의 주체(主體) ③법률(法律) 관계 특히 권리(權利), 의무(義務)의 주체(主體). 신(神)에 대하여 인성(人性)을 갖춘 품격(品格)]이라고 사전에서는 정의하고 있습니다.
원래 한자의 인격(人格)이란 말은 사람의 격(格)을 말합니다. 격(格)은 고정(固定) 또는 고정된 중심의 뜻으로서, 자기 자신을 유일한 지속적(持續的) 자아(自我)라고 생각하는 개체로 설명됩니다. 설명이 더 어려워졌을지도 모릅니다. 나무로 된 책상을 예로 들어봅니다. 각각(各各)의 나무(木)가 합해져서 책상이라는 형상을 만듭니다. 현재의 책상은 각각의 나무가 책상이라는 요건에 통합된 것입니다. 그 각각의 나무가 그 자리에서 그 책임을 다하지 아니하면 책상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인격은 의식의 현재의 단면에서의 통일성, 시간상의 변화를 통하여서도 유지되는 통일성을 요건으로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도 각자가 현재의 위치에서 그 책임을 다하여 전체에 통일성을 가질 때 인격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윤리학에서는 여기에 진위(眞僞)와 선악을 판단하는 능력 및 자유로운 의사결정 능력이 더해집니다. 칸트는 물건(物件:동물도 포함된다)과 구별되는 자아의식으로서의 인격을 말했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성령·신격(神格)과 함께 이성적 성질을 가진 불가분의 실체로서의 인격을 신학적으로 체계화하였습니다.
새무얼 스마일스(Samuel Smiles, 1812 – 1904 : 영국의 정치 개혁가)는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인격이다!’라고 그의 저서 ‘인격론’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세상과 인간을 변화시키는 동력은 바로 인격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개인과 조직의 인격적 고결성이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정치적 개혁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정치개혁만이 사회악을 타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새무얼 스마일스는 정치 개혁만으로 사회악을 타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개혁이 동반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개혁의 방향을 정치에서 개인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천재성은 감탄을 불러일으키지만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바로 인격”이라고 주장하면서 사람들에게 천재는 찬미의 대상일 뿐이지만 인격적인 사람은 신뢰하고 존경하게 된다는 얘기합니다. 인격을 수양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자아를 관찰하고 단련하며 컨트롤하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스마일즈는 노동을 통해서 자제력, 주의력, 적응력, 인내심을 키우게 되는 만큼 노동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낼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인간에 내려진 저주는 노동이 아니라 게으름이며 녹이 철을 좀 먹듯, 게으름은 사람과 국가를 좀먹는다고까지 했습니다.
재주가 있어도 이용하지 않으면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없습니다. 재주를 이용하고 유용하게 활용할 때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지치는 것은 움직일 때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격의 최고의 스승은 일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인격의 최고의 지침은 습관과 의지가 올바른지 그렇지 않은지에 따라 인격을 달리한다고 하였습니다. 인격을 단련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곳은 가정과 학교이기 때문에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을 통해서 정치개혁도 이루어지고 사회개혁도 이루어진다고 역설하였습니다.
우리 죄인이며 종인 인간을 하느님의 자녀로까지 격상시키신 예수님은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에 합당하도록 항상 하느님나라에 대해서 설명해 주십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신격에 걸 맞는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격에 걸 맞는 사람은 인격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인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이 잘 되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습관을 잘 키워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의지를 튼튼하게 길러줘야 합니다. 어려서부터 노동의 신성함을 교육시키고 맡은 바 책임을 잘 수행하도록 길러줘야 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작지만 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인격적인 사람을 기르는 데 더 헌신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사회는 인격적인 교육면에 있어서는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서 있는 형국입니다. 자녀교육을 소홀히 하고 자녀들에게 일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자손만대를 망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게으름을 부리면 하느님을 받아들일 수도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가져가시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
▥ 욥기의 말씀입니다. 1,6-22
6 하루는 하느님의 아들들이 모여 와 주님 앞에 섰다. 사탄도 그들과 함께 왔다.
7 주님께서 사탄에게 물으셨다. “너는 어디에서 오는 길이냐?”
사탄이 주님께 “땅을 여기저기 두루 돌아다니다가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8 주님께서 사탄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 욥을 눈여겨보았느냐?
그와 같이 흠 없고 올곧으며 하느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은 땅 위에 다시 없다.”
9 이에 사탄이 주님께 대답하였다. “욥이 까닭 없이 하느님을 경외하겠습니까?
10 당신께서 몸소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를 사방으로 울타리 쳐 주지 않으셨습니까?
그의 손이 하는 일에 복을 내리셔서, 그의 재산이 땅 위에 넘쳐 나지 않습니까?
11 그렇지만 당신께서 손을 펴시어 그의 모든 소유를 쳐 보십시오. 그는 틀림없이 당신을 눈앞에서 저주할 것입니다.”
12 그러자 주님께서 사탄에게 이르셨다. “좋다, 그의 모든 소유를 네 손에 넘긴다. 다만 그에게는 손을 대지 마라.”
이에 사탄은 주님 앞에서 물러갔다.
13 하루는 욥의 아들딸들이 맏형 집에서 먹고 마시고 있었다.
14 그런데 심부름꾼 하나가 욥에게 와서 아뢰었다. “소들은 밭을 갈고 암나귀들은 그 부근에서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15 그런데 스바인들이 들이닥쳐 그것들을 약탈하고 머슴들을 칼로 쳐 죽였습니다.
저 혼자만 살아남아 이렇게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16 그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다른 이가 와서 아뢰었다.
“하느님의 불이 하늘에서 떨어져 양 떼와 머슴들을 불살라 버렸습니다. 저 혼자만 살아남아 이렇게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17 그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또 다른 이가 와서 아뢰었다. “칼데아인들이 세 무리를 지어 낙타들을 덮쳐 약탈하고
머슴들을 칼로 쳐 죽였습니다. 저 혼자만 살아남아 이렇게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18 그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또 다른 이가 와서 아뢰었다.
“나리의 아드님들과 따님들이 큰아드님 댁에서 먹고 마시고 있었습니다.
19 그런데 사막 건너편에서 큰 바람이 불어와 그 집 네 모서리를 치자, 자제분들 위로 집이 무너져 내려 모두 죽었습니다.
저 혼자만 살아남아 이렇게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20 그러자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를 깎았다. 그리고 땅에 엎드려 21 말하였다.
“알몸으로 어머니 배에서 나온 이 몸 알몸으로 그리 돌아가리라.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가져가시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
22 이 모든 일을 당하고도 욥은 죄를 짓지 않고 하느님께 부당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축일9월 26일 성 고스마 (Cosmas), 다미아노 (Damian)
신분 : 의사, 순교자
활동 연도 : +303년?
같은 이름 : 고스마스, 코스마, 코스마스
전승에 따르면 성 코스마(또는 고스마)와 성 다미아누스(Damianus)는 아라비아(Arabia)의 명문 가정에서 태어난 쌍둥이 형제로 어려서부터 어머니에게 훌륭한 신앙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들은 시리아에서 의학을 공부한 후 의사가 되어 소아시아 남동부에 위치한 실리시아(Cilicia) 지방 에게해(Aegean Sea) 근처에 살며 복음을 전하기 위해 환자와 가축들을 무료로 치료해주었다. 의료기술이 뛰어나 명의라는 소리를 들었을 뿐만 아니라, 의약으로 낫기 어려운 병자들도 간절한 기도로 돌봐줘서 육신과 영혼의 건강까지 치유해주는 의사로 신자와 비신자를 막론하고 모든 이에게 칭송을 받았다. 실제 기도의 힘으로 중병이 완치되는 기적도 일어났다.
3세기 말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교에 대한 대박해를 시작했을 때, 성 코스마와 성 다미아누스 형제는 실리시아의 집정관인 리시아스(Lysias)에 의해 체포되었다. 곧바로 그들은 배교할 것을 강요당하며 모진 고문을 받았다. 하지만 굳은 믿음을 지니고 있던 이 형제는 끝까지 집정관의 요구를 거부하고 사형선고를 받았다. 전설에 의하면, 리시아스가 처음에 성 고스마와 성 다미아누스를 돌로 쳐 죽이려 했으나 그 돌이 되돌아와 던진 이들이 다치고, 다시 십자가에 묶어 놓고 화살을 쏘았으나 그 화살 또한 쏜 사람에게 되돌아와 꽂혀버렸다. 그래서 활활 타오르는 불 속에도 바다에도 던졌지만, 그래도 죽지 않자 참수형에 처했다고 한다. 이때 성 고스마와 성 다미아누스 외에도 그들의 형제인 성 안티무스(Anthimus), 성 레온티우스(Leontius), 성 에우프레피우스(Euprepius)도 함께 처형당했다.
그들의 순교 후에 많은 기적이 일어났고, 또 그들의 높은 신앙심을 증명하는 일들이 자주 일어났다고 전해온다. 이미 4세기 초부터 예루살렘,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등지에 그들을 기념하는 성당이 건립되었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그들이 순교한 지 백 년이 되었을 때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에 그들의 유해를 모신 대성당을 건축했는데, 이곳은 점차 주요한 순례지가 되었다. 6세기에 교황 펠릭스 4세(Felix IV, 526-530년 재위)도 로마에 두 성인에게 봉헌한 대성당을 건립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개혁 이전, 두 성인의 축일은 다른 형제들과 함께 9월 27일이었는데, 이날은 바로 로마의 성당이 봉헌된 날이라고도 하고 순교한 날이라고도 한다. 현재 그 성당은 재건축되었으나 내부에는 두 성인을 묘사한 6세기의 모자이크가 여전히 남아 있다. 또한 두 성인은 이미 6세기경부터 로마 전문(Canon, 오늘날 미사 경본의 감사기도 제1양식)에서 기억하는 성인들 명단에 추가되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성 코스마와 성 다미아누스는 약제사의 수호자이고, 성 루카(Lucas) 복음사가 다음으로 의사들의 수호성인으로 존경을 받고 있다.
축일9월 26일 성녀 유스티나 (Justina)
신분 : 동정 순교자
활동 지역 : 안티오키아(Antiochia)
활동 연도 : +304년경
같은 이름 : 유스띠나
역사적인 확실한 근거는 희박하나 성 키프리아누스(Cyprianus)는 안티오키아에 살던 이교도로서 잡귀신들을 불러 마술을 부리는 마법사였다고 한다. 그는 이런 능력 때문에 그리스, 이집트, 마케도니아 그리고 심지어는 인도까지 두루 여행하면서 그의 능력을 과시하고 추종자들을 모았다. 그런데 한 이교도 청년이 안티오키아의 그리스도교 신자로 미모의 처녀인 성녀 유스티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성 키프리아누스에게 그녀의 사랑을 완전하게 얻을 수 있도록 도움을 청했고, 성 키프리아누스는 자신이 알고 있는 온갖 예식을 거행했으나 성녀 유스티나의 굳은 신앙심 때문에 모든 것이 허사로 끝났다. 그는 자기 창고에 있는 모든 도구를 동원해 성녀 유스티나를 괴롭힐 악마들을 불러냈다. 그러나 성녀 유스티나는 십자가의 표지로 마귀들의 공격을 막아 냈다. 이에 그는 갑자기 자신이 무력해지면서 억누를 수 없는 어떤 무서운 힘에 압도당하고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 자신이 오히려 위험한 지경에 빠진 것이다.
성 키프리아누스는 이때부터 악마의 도움을 구하지 않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악마가 그를 덮치고 괴롭히기 시작했다. 지난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친 성 키프리아누스는 십자가를 만들어 악마의 세력에서 빠져나오는 행운을 맛보게 되자, 즉시 에우세비우스(Eusebius)라는 사제에게 달려가서 교리를 배우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 그는 온갖 마술 서적을 불태우고 자기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희사했으며, 마침내 이교도 청년과 함께 세례를 받았다. 그 후 그는 사제가 되었고 또 안티오키아의 주교로 선임되었다. 성녀 유스티나는 수녀원장이 되었다.
그 후 그들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체포되어 다마스쿠스(Damascus)로 압송되어 가혹한 고문을 당했다. 모진 고문에도 불구하고 성 키프리아누스와 성녀 유스티나의 신앙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황제 앞으로 끌려나가 재판을 받았고, 니코메디아(Nicomedia, 오늘날의 이즈미트)의 갈루스(Gallus) 강 언덕에서 황제의 명으로 참수형을 당해 순교했다. 이때 성 키프리아누스를 찾아와 위로했던 테옥티스투스(Theoctistus)라는 신자도 함께 처형을 당했다. 그들의 시신은 매장되지 않고 6일 동안 방치되어 있었으나, 밤중에 그리스도인 선원들에 의해 로마(Roma)로 옮겨졌다. 그들의 유해는 루피나(Rufina)라는 귀족 부인의 영지에 매장되었다가 후에 콘스탄티누스 성당 안에 안치되었다고 한다.
오늘 축일을 맞은 고스마, 다미아노 형제들과 유스티나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
|
출처: 꾸르실료 DE COLORES 원문보기 글쓴이: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