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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2 章. 인연(因緣).
1.
산 중턱.
일장 높이에서 떨어저 내리는 폭포의 물줄기는 세차기만 했다. 폭
포 주위의 경관은 아름답기만 했다. 하지만 어디를 둘러보아도 먹을
것이라고는 없었다. 이제 봄의 문턱을 넘어선 산에 먹을것이 있을리
없다.
도일봉은 억지로 걸으며 주위를 살펴 보았지만 역시 먹을만한 것
은 없었다. 물 속을 들여다 보았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작은 물고기
들이 헤엄처 다니고 있었다.
"물고기가 있다!"
도일봉은 너무 기뻐서 환호성을 지르고 말았다. 몇일동안 먹을 것
이라고는 구경도 못한 도일봉에게 물 속에 있는 물고기들은 더없이
반가운 먹이감 이었던 것이다.
도일봉은 활과 화살을 챙겨들고 물 속으로 들어갔다. 물이 얼음처
럼 차가왔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차가운 것 보다는 배고픈 것이
더 절박했다. 허리까지 차오르는 곳까지 들어가 화살을 재고 조용히
기다렸다. 물고기들은 약삭빠르기 으를데 없어 좀체로 가까이 다가오
질 않았다. 손바닥만한 놈이 그중 큰 놈이라 겨냥도 잘 해야 했다.
두시간이 넘도록 화살을 날리고 또 날려서야 겨우 네 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것만해도 감지덕지다. 도일봉은 잡은 물고기들을 갈무리한
체 주위의 흔적을 지웠다. 누가 또 나타나서 흔적을 보고 덤벼들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숲으로 들어온 도일봉은 활촉으로 물고기를 다듬어 굽지도 않고
날름거리며 먹어 치웠다. 불을 피울 도구도 없거니와, 연기를 보고
누가 다가올까봐 불을 피울수도 없었다. 그래도 그 맛은 천하일품(天
下一品) 이었다. 비늘이고 가시고 간에 으적으적 씹어 먹는데 그 맛
이 산해진미(山海珍味) 보다도 나았다. 맞바람에 게 눈 감춘다는 말
이 있더니 물고기 네 마리는 순식간에 없어지고 말았다. 겨우 허기를
면할 지경이었으나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는 않았다. 허기가 가시니
졸음이 쏟아ㅈ다. 도일봉은 마른 풀들을 꺽어 자리를 마련하고 그대
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주위를 자세히 살펴 보았다. 추적자(追跡者)들이 있는지 알아보아
야 했던 것이다. 추적자들은 이미 산 아래로 내려 갔는지 보이지 않
았다. 도일봉은 그곳에서 움직이지 않고 몇일을 더 머물렀다. 폭포아
래 연못에서 물고기들을 잡고, 물가에서 쑥이나 냉이 등의 나물을 뜯
어 함께 먹기도 했다. 그리고 남는 물고기들은 잘 말려 두었다. 산을
내려가기 위해서는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으므로 비상식량을 마련해
야 했던 것이다. 칠일이 지나서야 움직일 마음이 생겼다.
도일봉은 잡혀 있던 곳의 반대방향 쪽으로 무작정 걸었다. 몇일
동안이나 추적자들이 무서워 감히 불도 피우지 못하다가 멀리 떨어졌
다고 느꼈을 때에야 활촉과 돌을 부딪처 불씨를 얻었다. 불에 구워먹
는 물고기 맛은 가히 일품이었다. 산꿩도 한마리 활로 쏘아 잡아 구
워 먹었다. 허기진 배가 그제서야 정상으로 느껴졌다.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다더니 불에 구워먹으니 곧 소금 생각이 간절했다. 도일봉은
계속해서 걸었다. 전직이 사냥꾼인 도일봉이 산 속에서 굶어 죽지는
않겠으나 벌써 보름 이상 산 속에서 헤매고 있자니 은근히 걱정이 되
기도 했다. 이곳이 도대체 어디쯤인지 도무지 감을 잡지도 못하고 있
었다.
"이 짐승들이 모두 어디로 사라져 버린거야?"
하루종일 산 속을 헤매면서 사냥할 짐승을 찾던 도일봉은 끝내 투
덜거리고 만다. 어제와 오늘 연 이틀에 걸처 짐승은커녕 산 새 한 마
리 볼 수 없었다. 이상한 일이다. 이처럼 깊은 산 속에 산짐승들이
이처럼 보이지 않을 리가 없는데 말이다. 도일봉은 할 수 없이 커다
란 소나무에 올라 솔방울을 따고 솔씨를 발라서 요기를 해야했다. 잘
못 먹기라도 하면 배탈이 나고 설사를 하지만 급한대로 요기는 할만
했다. 나무 밑에서 밤을 보낸 도일봉은 날이 밝자 계속해서 걸었다.
사냥감도 없어 활을 든체 터덜터덜 걷기만 했다.
산 허리를 도는데 저 멀리서 으르렁 거리는 소리가 가물가물 들려
왔다. 도일봉은 짐승 소리에 귀를 바짝 세웠다. 분명 호랑이 울움소
리 였다. 소름이 오싹 끼첬다. 호랑이란 놈이 근처에 있어서 다른 짐
승들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같은 이치도 모르다니! 내가 몇 달 고생을 하더니 머리까지 망
가진 모양이다!"
사냥꾼으로 여직 살아왔던 자신이 이틀 동안이나 짐승을 보지 못
했으면 응당 이같은 일을 생각했어야 옳았다. 호랑이 같은 큰 짐승이
버티고 있는 근처에 어찌 다른 짐승들이 있겠는가 말이다. 도일봉은
아직 호랑이를 잡아보지는 못했다. 동네 노련한 사냥꾼들이 잡은 호
랑이를 보기는 했지만 직접 잡아본 적은 없다. 그 때는 얼마나 부러
워 했었던가! 도일봉은 몸 안의 피가 단번에 끓어 오르고 신경이 바
싹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호랑이를 잡으라고 피가 재촉하고 있는 것
이다. 너무 지쳐있고, 가진 무기라야 활 밖에 없었지만 도일봉은 벌
써 활을 움켜 쥐고 발을 옮기고 있었다.
으르렁 거리는 소리가 멀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호랑이는 분명
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으르렁 거리는 소리로 보아서는 또다
른 짐승과 싸움이라도 하는 것도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는
히히잉! 말 울움소리가 들려왔다. 틀림없이 호랑이란 놈이 들말을 공
격하고 있는 것이리라. 도일봉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소리는 점점 가
까워 지고 있었다.
숲을 빠저 나와보니 앞은 탁 트인 넓은 골짜기다. 나무는 별반
없고 키만한 풀들만 가득하다. 그 풀 밭 복판에 지금 커다란 호랑이
가 말을 좇고 있었다. 호랑이의 크기는 큰 송아지만 했으며, 하얀 바
탕에 검은 줄무늬가 아주 대담하고 위풍당당(威風堂堂)해 보였다.
"정말 큰 놈이다!"
호랑이도 호랑이지만 좇기고 있는 말도 대단한 놈이었다. 온통 검
정색 윤기나는 털에 발목에만 흰털이 한웅큼 박혀있다. 이제 망아지
를 벗어난 잘생긴 숫말이다. 두 귀가 쫑긋하니 서 있고, 큰 눈은 흑
갈색이다. 앞 가슴의 근육이 튼튼하고 네 다리가 쭉쭉 뻗어 있다. 땅
을 박차고 달리는 모습은 마치 바람과도 같았다. 대단히 용감하여 호
랑이에게 좇기면서도 간혹 뒷발질을 해대는지라 호랑이란 녀석도 함
부로 덤벼들질 못했다. 호랑이나 말이나 모두 짐승중에 뛰어나 보였
다. 골짜기 구석에는 수십필의 말들이 있었다. 호랑이에게 좇기는 검
은말이 아마도 이 말들의 대장인 모양이다.
"산중의 영물(靈物)들이 자리다툼을 벌이고 있구나!"
도일봉은 벌써 한시간 이상 호랑이와 말의 추격전을 흥미진진(興
味津津) 지켜보았다. 호랑이가 들말을 잡아 먹는다는 말은 들은적은
있어도 들말이 호랑이와 싸운다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던 사실이다.
이처럼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았다. 호랑이는 그 모습이 당당하고 맹
렬했으며, 말은 튼튼하고 바람 같았다.
계속 뒤만 좇고 있던 호랑이란 놈이 언듯 꾀가 생겼는지 일순 멈
짓했다가 갑자기 방향을 바꾸었다. 말이 방향을 꺽을 곳인데 호랑이
가 먼저 그 자리를 차단한 것이다. 앞을 막은 호랑이는앞발을 번쩍
들어 달려오는 말을 향해 후려쳤다. 말이 비록 용감하고 영리했으나
불시(不時)에 공격을 당하고 보니 미처 피하지 못하고 넓적다리를 할
퀴고 말았다. 새까만 털 위에 금세 피가 흘러 내렸다. 말이 길게 울
부짖으며 다시 방향을 바꾸어 달리기 시작했다. 힘차게 달리고는 있
으나 뒤좇는 호랑이란 놈이 만만치 않다.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았
다.
"큰일났다!"
도일봉은 말이 상처를 입자 저도 모르게 안타깝게 소리치고 말았
다. 사냥꾼으로서 호랑이를 잡는 것은 커다란 기쁨이다. 말은 한 번
쯤 타보고 싶은 동물이다. 두 마리 짐승중 도일봉으로서는 말 편이
다. 말이 곧 당할 것 같았다.
도일봉은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었다. 도일봉은 바람과 방대 방
향에서 빠르게 호랑이 쪽으로 접근했다. 그리고 화살이 다을 거리에
이르러 힘껏 화살을 날렸다. 화살은 빗살처럼 날아가 정확히 호랑이
옆구리에 명중(命中)했다. 화살이 명중되자 도일봉은 크게 기뻐서 환
호성을 내 지르려 했다. 그런데 호랑이 옆구리를 꽤뚫었어야 할 화살
이 맥없이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도일봉은 크게 놀라고 말았
다. 화살이 어째서 가죽을 뚫지 못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간 고생을 심하게 한 덕분으로 힘이 없는 것일까?"
활 촉이 제대로 박혀 있는지도 살폈다. 이상 없었다. 도일봉이 놀
라고 있을 때, 호랑이란 놈이 "어흥!" 하고 울부짖었다. 화살이 가죽
을 뚫지는 못했으나 맞은 자리가 상당히 아팟던 모양이다. 호랑이는
잠시 추적을 멈추고 사방을 둘러 보았다. "어느놈이 감히 방해를 하
느냐!"하고 노려보는 모습이었다. 도일봉은 몸을 납작 엎드렸다.
잠시 두리번 거리던 호랑이란 놈이 저만치 떨어저 있는 말을 향해
다시 달려 들었다. 이젠 결판을 내고 말겠다는 기세였다. 말은 허벅
지를 할퀴어서 인지 멀리 달아나질 못하고 있었다. 앞 뒷발을 마구
걷어차며 맞서기는 했으나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어 보였다.
도일봉은 말이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도일봉은 살금살금
좀 더 접근하여 이번에는 연속해서 두 대의 살을 날렸다. 호랑이란
놈이 알아채고 한발은 피했지만 다음것은 피하지 못하고 목덜미에 맞
았다. 이번에도 역시 고통만 주었을 뿐 가죽을 뚫지는 못했다.
"화살이 가죽을 뚫지 못한다!"
도일봉은 그제서야 호랑이 가죽이 확실히 두꺼운 것을 알아챘다.
화살이 뚫지 못하는 호랑이 가죽이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지만 엄연
한 현실이었다. 이놈은 호랑이 중에서도 특별난 놈인 모양이다. 도일
봉은 생각을 바꾸어 고개를 돌려 울부짖는 호랑이를 향해 연속해서
세발의 화살을 날렸다. 도일봉의 활 솜씨는 대단한 바가 있었다. 어
려서부터 소문난 궁수(弓手)였다. 호랑이가 비록 영리하고 몸놀림이
빨라 처음 두 발을 피하기는 했지만 도일봉은 그 피할 것까지 예상하
고 화살을 날렸으므로 마지막 한 발은 그대로 호랑이의 왼쪽 눈에 박
히고 말았다. 가죽이야 단단하기 이를데 없을지 모르지만 눈은 역시
급소(急所)였다.
왼쪽 눈에 화살을 맞은 호랑이는 커다랗게 울부짖으며 마구 몸부
림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말을 버려두고 이번엔 도일봉을 향해 맹
렬하게 달려 들었다. 호랑이가 이토록 맹렬하게 달려들자 도일봉은
그만 오금이 저려오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을 느꼈다. 몸을 돌려 달
아날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지금 호랑이에게 등을 보인다면 그것으
로 끝장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도일봉은 뒷걸음질을 치며 다시 네
발의 화살을 날렸다. 이번엔 오른쪽 눈과 떡 벌리고 있는 입을 겨냥
했다. 왼쪽 눈을 맞은 호랑이는 미처 피해내지도 못했다. 두 발은 눈
두덩 근처에 맞았고, 두 발은 그대로 벌어진 입 속을 파고 들었다.
입에까지 화살이 박히자 호랑이는 더욱 큰 소리로 울부짖으면서도 계
속해서 달려 들었다. 호랑이가 당하는 것을 본 검은말이 푸드득 푸드
득 고개를 내저으며 바람처럼 달려와 호랑이에게 달려 들었다. 무섭
지도 않은 모양이다.
도일봉은 계속해서 뒷걸음질 치며 연신 화살을 날렸다. 이번엔 머
리통에 맞았다. 다시 화살을 날리려 허리춤을 더듬는데 아뿔싸! 화살
이 없다. 소름이 오싹 끼치며 등으로 식은땀이 주루룩 흘러 내렸다.
호랑이가 그대로 덮처 들었다. 도일봉은 크게 당황을 하면서도 옆으
로 몸을 피했다. 그리고 들고 있는 활로 호랑이의 눈가를 후려 갈겼
다. 호랑이는 눈두덩을 얻어맞는 동시에 꼬리를 옆으로 쓸어 도일봉
을 후려첬다. 꼬리의 힘이 굉장했다. 도일봉은 꼬리에 옆구리를 얻어
맞고는 그만 저만치 나가 떨어지고 말았다. 호랑이란 놈이 상대가 나
가 떨어진 것을 알아채고 그 커다란 몸을 단번에 허공으로 도약(跳
躍)하여 덮처왔다. 도일봉은 기겁을 하고 옆으로 굴렀다. "부욱!"하
고 옷과 살점이 함께 찢겨 나갔다. 왼쪽 어깨였다. 호랑이가 다시 앞
발을 휘둘러 끝장을 내려는데 검은말이 비호(飛虎)처럼 달려들어 뒷
발로 호랑이의 옆구리를 걷어차 버렸다. 검은말의 뒷발길질에도 대단
한 힘이 실려 있어 호랑이는 그만 나가 떨어지고 말았다. 도일봉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옆으로 구르는 호랑이의 눈을 발로 걷어차 버렸
다. 눈에 박힌 화살끝을 걷어차니 화살은 더욱 깊이 파고 들었다. 호
랑이는 고통에 겨워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호랑이가 재빨리 일어서긴 했으나 화살이 눈을 통해 머릿속으로
파고 들었는지 방향감각(方向感覺)을 잃고 마구 날뛰기 시작했다. 얼
마 후 말에게 다시 한 번 옆구리를 걷어 차이고 말았다. 호랑이는 이
성을 잃고 아무데나 마구 내달리기 시작했다. 도일봉의 발걸음으로는
도무지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말이 앞을 막아서며 발길질을 해대고
서야 겨우 따라 잡을 수 있었다. 호랑이는 이제 한자리를 빙빙 맴돌
며 쩌렁쩌렁 울부짖기만 할 뿐 덤비지는 못했다. 눈과 입에서 계속해
서 피가 흘러 내렸다. 오래 버티지는 못 할 것 같았다. 화살을 한 대
만 더 박아주면 끝장이 날텐데 위급지경에 활로 후려치는 바람에 활
은 이미 망가저 있었다. 도일봉은 말과 함께 호랑이가 도망가지 못하
게 감시만 하며 지처 쓰러질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호랑이란 놈이 마지막 발악을 하려는 것인지 빙빙 도는 것을 딱
멈추고는 도일봉을 향해 벼락같이 달려 들었다. 어느정도 안심을 하
고 있던 도일봉은 호랑이의 이와같은 기세에 그만 간이 찢어지도록
놀라 급히 뺑소니를 치려 했다.그러나 호랑이란 놈이 어느새 덮처와
입을 떡 벌리고 어깨를 물어 뜯으려 했다. 도일봉은 이제 끝장 났다
고 느끼며 눈을 질끈 감으려는데 어깨에 심한 통증만 올 뿐 호랑이
이빨에 물린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호랑이란 놈이 고통에 겨워
울부짖고 있었다. 본래 호랑이 입 속에는 화살이 두 대나 박혀 있었
다. 입 밖으로 삐저나온 화살이 있는대도 입으로 뭘 물으려 했으니
물기전에 화살에 걸렸던 것이다. 화살이 어깨에 부딪처 더욱 깊이 들
어갔을 뿐이다. 호랑이가 손해를 보긴 했지만 달려들던 힘이 워낙 대
단하여 도일봉도 저만치 나가 떨어지고야 말았다. 호랑이가 도일봉의
위치를 알아채고 다시 앞발을 번쩍 들어 내리첬다. 도일봉은 옆으로
떼굴떼굴 굴렀다가 퉁기듯 몸을 일으켜 호랑이의 목덜미를 잡고 몸을
날려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 올라타서는 목을 졸랐다. 있는 모조리
동원하여 힘껏 졸랐다. 그리고 눈에 박힌 화살을 잡고 안으로 더욱
깊이 밀어 넣기도 했다. 호랑이가 발광을 하듯 몸을 뒤틀었다. 도일
봉은 더욱 힘껏 매달렸다. 호랑이가 땅바닥에 몸을 굴릴때야 떨어저
내렸다. 호랑이는 땅바닥을 몇번 구르며 커다랗게 울부짖더니 이내
털썩 무너지고 말았다. 한동안 큰 숨을 몰아쉬는 것 같더니 곧 그것
도 잠잠해 졌다. 끝이었다. 장장 한시간이 넘는 그야말로 혈투(血鬪)
였다. 도일봉은 너무 기뻐서 피곤하고 아픈줄도 잊고 펄쩍 뛰었다.
"내가! 이 도일봉이 호랑이를 잡았다! 나도 진짜 사냥꾼이 되었다!
핫핫핫."
기뻐서 부르짖던 도일봉도 더는 버티지 못하고 그만 호랑이 옆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칼 끝 같이 곤두선 긴장감(緊張感)과 거듭된
힘의 분출로 인해 온 몸이 물 먹은 솜처럼 늘어저 버렸다. 도일봉은
하늘을 바라보며 벌렁 드러누워 버렸다. 이른 봄의 하늘은 맑기만 하
다.
긴장감이 해소되자 심한 갈증이 몰려왔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물
이 있을만한 곳은 없다. 도일봉은 근처에 떨어저 있는 화살을 하나
주워 들었다. 호랑이에게 다가가 살촉으로 옆구리를 찔러 보았다. 역
시 뚫리지 않는다. 이번에는 목덜미의 털을 가려내고 힘껏 찔러 보았
다. 생각밖으로 쉽게 들어가 버린다. 화살을 뽑으니 피가 솟구친다.
도일봉은 그곳에 입을 대고 마구 빨아 마셨다. 쭉쭉 힘차게 빨아마셔
배가 두둑해질 때에서야 그만 두었다. 몸이 더워지고 갈증과 허기가
단번에 가시는 것 같았다. 잠이 몰려왔다. 도일봉은 호랑이 옆구리를
베개 삼아 누웠다. 지치고 피곤하여 금방 잠이 들었다.
다음날 정오(正午)가 지나서야 눈을 떳다. 배가 고파 다시 한 번
호랑이 피를 빨아 마셨다. 어제는 느끼지 못했었는데 피비린네가 진
동하고 짐승 구린네가 심해 마시기 힘들었다. 조금 마셔본 후 그만
두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말은 보이지 않았다. 갈 곳으로 가버린 모
양이다. 다소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호랑이를 잡긴 잡았는데 처치 곤란이다. 인가는커녕 산 속을 벗어
날 방법도 찾아내지 못하는 형편이니 호랑이를 옮길 일이 난감한 것
이다. 칼이라도 있으면 가죽이라도 벗겨 가련만! 도일봉은 호랑이를
다시 한 번 살펴 보았다. 정말로 커다란 놈이다. 발톱 하나가 손가락
보다도 크다. 그러다가 도일봉은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흰 털이다!"
도일봉은 기뻐서 펄쩍 뛰었다. 자신이 잡은 호랑이가 백호(白虎)
였던 것이다. 보통 호랑이는 누런 바탕에 검은색의 줄무늬가 있는데,
이 호랑이는 흰 바탕에 검은 줄무늬가 있는 그야말로 보기드문 희귀
한 종류이다. 도일봉은 어제도 이 호랑이가 흰색 바탕에 검은 줄무늬
가 있는 것을 보기는 했다. 그러나 워낙 경황중이었고, 또 신경을 쓰
지도 않았는지라 미처 백호라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도
일봉은 껄껄 대소를 터뜨렸다.
"하핫핫! 내가. 이 도일봉이 백호를 잡았구나!"
사냥꾼으로써 호랑이를 잡는 것은 커다란 긍지(矜持)다. 더욱이
백호는 호랑이 중에서도 귀한 것으로 노련한 사냥꾼에게도 쉽사리 눈
에 띄지 않는 영물이다. 그런데 이제 도일봉이 무의식(無意識)에 그
런 영물을 잡은 것이다. 어찌 기쁘고 가슴 설레이지 않겠는가!
"짊어 지고라고 가져 가야겠다!"
일반 호랑이라면 아까운 마음이 들더라도 버리고 갈 수 있다. 하
지만 백호라면 가다가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은 가지고 가야한
다. 사천 촌구석의 사냥꾼이 백호를 잡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꼭 자
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도일봉은 호랑이를 어떻게 끌고갈 것인가 궁
리하기 시작했다. 어깨에 들처메기는 힘들었다. 호랑이란 놈은 도일
봉 보다도 키가 커서 들처 업으면 땅바닥에 질질 끌릴 것이다. 칼이
없는 것이 정말 아쉬웠다.
도일봉이 백호를 어떻게 옮길까 고심하고 있는데 풀밭 저쪽에서
"히히힝!"하는 말 울움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어제 힘을
합처 호랑이를 때려 잡은 그 검은말이었다. 말은 도일봉에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콧바람을 불어대고 앞 발으로 땅을 긁어대며 반가움을 표
시했다. 어제 도와준 것이 고마왔던 모양이다. 도일봉은 크게 기뻐서
입을 열었다.
"하하. 정말로 훌륭한 말이로구나! 하지만 너무 고마워 할건 없어.
네 덕분에 백호를 잡았으니 말이야. 나도 널 도왔지만 너도 날 도운
셈이지. 넌 정말 잘 생겼구나? 너처럼 잘생긴 말은 처음본다."
말은 자신을 칭찬하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 듯 콧바람을 불어대며
좋아했다. 하지만 도일봉이 반갑다고 등을 만저주려 할 때는 금세 뒤
로 물러서며 위협하는 자세를 보이기도 했다. 본래가 야생마(野生馬)
인지라 사람의 손길을 반기지 않는 모양이다. 도일봉은 다소 섭섭한
마음도 들었으나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말은 푸드득푸드득 고개를
내저으며 앞 발을 긁더니 풀밭을 바람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뛰는 모
습이 마치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듯 했다. 그 모습을 본 도일봉은 신
이나서 자신도 말의 뒤를 좇아 내달리기 시작했다. 도일봉의 두 다리
로는 말을 따라잡지도 못했지만 말은 주위를 한바뀌 돈 후 도일봉과
나란히 달리기 시작했다. 도일봉은 크게 기뻐하며 다리에 더욱 힘을
주었다. 말과 사람이 넓은 풀밭을 몇바뀌나 돌았다. 도일봉은 말과
친해지는 것이 기뻐서 호랑이를 까맣게 잊기도 했다. 말도 새로 사귄
친구를 좋아하는지 밤이 되어서도 돌아가지 않았다.
도일봉은 다음날까지 말과 함께 풀밭을 달리다가 호랑이 피만으로
는 허기를 체울 수 없어 돌아갈 생각을 했다.
"좋아, 친구. 난 이제 가야겠어. 아쉽지만 여기서 헤어저야 겠는
걸?"
도일봉은 말을 하고 백호를 들처멨다. 역시 호랑이의 뒷발이 땅에
끌렸다. 그래도 짊어지고 갈 생각이었다. 백호를 한 번 추수린 후 도
일봉은 발을 떼어 걷기 시작했다. 풀밭을 벗어날 때 쯤해서 뒤를 돌
아보니 말은 그 자리에 있었다. 고개를 내두르며 앞발로 계속해서 땅
을 긁고 있었다. 도일봉은 마지막으로 손을 들어 흔들어 주고는 계속
걸었다. 그런데 얼마를 더 걷다보니 말이 따라오는 기척이 있었다.
고개를 돌리면 걸음을 멈춘다. 꼭 배웅이라도 해주는 것 같았다. 도
일봉이 걷기 시작하니 말도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왔다. 도일봉은 크
게 기뻐 껄껄 웃었다.
"친구간에 헤어짐이 섭섭해 멀리까지 배웅을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말이 사람을 배웅했다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런데도 저 영특
한 말은 사귄지 얼마 되지도 않는 나를 멀리까지 배웅해 주는구나!"
도일봉은 말이 자신을 따라 함께 산을 내려 갔으면 하는 마음도
생겼다. 그러나 저런 말이 세상에 나가면 필시 크게 곤욕을 치룰 것
이다. 온 산과 들을 마음껏 달리던 말이 좁은 마굿간에서는 버티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얼마를 걷다보니 물이 있었다. 도일봉은 오랜만에 구경하는 물인
지라 목을 축이고 몸을 씻고 상처자리를 깨끗이 닦았다. 말도 거리를
두고 물을 마셨다. 몸을 씻은 도일봉은 말에게 다가갔다.
"배웅을 해주는 것도 좋지만 이제 돌아가야지?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잖아."
말은 고개를 흔들며 콧바람을 불어댔다. 도일봉은 아쉬운 마음을
떨처버리며 호랑이를 들처업고 다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날이
이미 저물고 있는데도 말은 아직도 따라오고 있었다. 도일봉은 이상
하게 생각하면서도 속으로는 크게 기뻐했다. 말이 자신을 따라 세상
에 나간다면 알마나 멋진 일이겠는가 말이다! 도일봉은 아무런 내색
도 않고 밤을 보낸 후 다시 산을 내려갔다. 이틀을 더 걸어도 말은
여전히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도일봉은 너무 기뻐서 그야말로 소리
라도 치고 싶었으나 끝내 내색은 하지 않았다. 단지 몇번 뒤를 돌아
보고 말을 향해ㅔ 고개를 끄덕여 주거나 손을 흔들어 아는체를 할 뿐
이다. 말에게 함부로 가까이 가지도 않았다. 한 번 마음이 상해서 돌
아서 버리면 그것으로 말과는 끝이겠기 때문이다. 도일봉은 배가 고
플때마다 호랑이 피로 허기를 떼우며 계속해서 산을 타고 내려갔다.
다시 이틀을 더 걸었다. 그리고.
"야호! 길이다. 길이야!"
저 밑으로 한 마리 누런 용처럼 구불구불 이어진 것은 분명 길이
었다. 눈을 씻고 다시 보아도 역시 길이었다. 도일봉은 너무 반갑고
기뻐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사람을 본지가 어느덧 한달이 넘었고,
산으로 끌려와 중노동을 한지는 다섯달이 지났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도일봉은 너무 기뻐서 펄쩍펄쩍 뛰다가 급히 고개를 돌려 말을 바
라보았다. 말이 더 이상 따라오지 않으면 어쩌나 싶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말은 말은 그 자리에 서서 앞 발을 들며 히히힝! 거
리고만 있었다. 도일봉은 가슴이 철렁했다. 말이 가버린다면 정말이
지 섭섭할 것이다. 그렇지만 억지로 따라오게 할 수도 없는 일이다.
또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도일봉은 한숨을 내쉬며 말에게 다가
갔다.
"배웅을 온 것이라면 이정도로 족해. 이제 가족에게 돌아가렴."
도일봉이 가까이 다가가 목을 쓰다듬는데도 말을 잠시 주춤 했을
뿐 그대로 있었다. 도일봉은 아쉬운 마음을 두고 백호를 둘러멘체 다
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말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체 푸드
득 거리고 있었다. 곧 길에 들어섰다. 도일봉은 고래를 내저으며 섭
섭한 마음을 달랬다. 그런데 저 뒤에서 말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
다. 도일봉은 크게 기뻐서 얼른 고개를 돌려 보았다. 말은 얼마간 거
리를 두고 멈추었다.
"나를 따라 가겠다고?"
하지만 말은 말을 못하니 뜻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자신을 따라
올지도 모르고, 아직은 인적이 없으니 좀 더 배웅을 하겠다는 뜻인지
도 모른다. 그래도 도일봉은 좋기만 했다. 마을에 당도해서도 따라온
다면 그건 역시 좋은 일이리라. 도일봉은 조마조마한 마음을 금치 못
하며 길을 걸었다.
어두어 질때까지 걸었는데도 마을은 보이지 않았다. 도일봉은 이
제 너무 지처 걸을 힘도 없었다. 그만 털썩 길가에 주저앉고 말았다.
도일봉은 정말이지 너무 지처 있었다. 호랑이 피로 허기를 떼우는 것
도 이젠 지긋지긋 했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고 주위는 온통 적막
뿐이다. 고개 저 아래를 멀건히 내려다 보던 도일봉은 아주 멀리 무
엇인가 깜빡이는 것을 보았다. 침침한 눈을 손등으로 쓰윽 비벼보았
다. 흐릿하긴 하지만 분명 사람이 피워놓은 등잔불이다. 도일봉은 펄
쩍 뛰며 부르짖었다.
"불빛이다! 저건 분명 사람이 쓰는 등잔불이다! 아이코 살았다!"
도일봉이 워낙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통에 말이 놀라 푸드득 거렸
다. 도일봉은 어디서 힘이 났는지 호랑이를 들처업고 언덕을 내달리
기 시작했다. 사람의 흔적을 발견하고 보니 절로 힘이 난다. 불빛이
있는 거리는 생각보다 훨씬 멀었다. 나중에는 지처서 걷기도 힘들었
으나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확실히 마을이었다. 인가(人家)라야 많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이 모
여사는 마을인 것이다. 도일봉은 정신없이 달려 마을 입구까지 와서
뒤를 돌아보았다. 말은 마을 입구에 서서 크게 망설이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마을로 들어설 마음이 일지 않는 모양이다. 도일봉은 한숨
을 내쉬며 말에게 다가갔다.
"더 이상 따라오지 않으려고? ... 그래도 할 수 없지 뭐..., 섭섭
하긴 해도 말이야. 우린 그동안 좋은 친구였지? 난 이제 가야겠어.
잘 가라고!"
짐승과 사람이 합세하여 그 무서운 백호를 잡고, 여러날 인적없는
곳에서 친구로 지낼 수 있어 그간 쌓인 정도 많았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야생마는 야생마다. 도일봉은 아쉬운 마음을 남기고 돌아섰다.
말은 앞으로 나왔다가 뒤로 물러났다가 한동안 망설이는 모양을 하더
니 도일봉이 멀어지자 앞 발을 번쩍 처들어 보이고는 이내 도일봉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도일봉은 그야말로 기뻐서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도일봉은 크게 웃으며 성큼성큼 마을로 들어섰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잘보았습니다
잘밨습니다
잘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즐독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잘읽었습니다
ㅋ
감사합니다 ^.^
일거양득이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동물도 은혜를 입으면 알아보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