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도 시골이건만 이제는 명절전후로 해서 왁자지껄한 소리도 들을수가 없다 또한 진하게 흘러나오던 기름냄새도 사라진지 오래다 모 시장가면 얼마든지 살수가 있으니 굳이 개고생 하면서 또한 예전처럼 많이 먹는것도 아니니 그저 간단한 제사상에 올릴 정도만 구입하면 되니까 아마도 우리세대가 지나가면 더이상 명절의 풍습은 사라질거라 생각을 해본다 유난히 동태전을 좋아했던 지존이 그래서 동태전을 많이 만드셨던 울 박여사의 손맛이 무척이나 그립다 음식솜씨 하나만큼은 타고 나셨던 박여사의 손맛 어디 음식뿐이랴 노는것도 잘놀고 성격도 좋고 암튼 내고향 상암동에 돼지엄마 하면 모르는 이가 없었으니 돼지는 나를 칭하는 별명 이였다 어렵게 상암동에 발붙이고 이내 내가 태어난후 에도 하루하루 먹고 살아야 했기에 츠녀때 배워둔 미용 <파마> 기술을 가지고 동네를 댕기면서 야매파마를 해줘서 그렇게 우리세가족이 그렇게 사방을 쏘다니며 일을 하니 언제 이꼬맹이 에게 젖을 줄수 있었을까 그래서 그때부터 나또한 젖동냥을 했으니 울동네 아줌마젖은 아마 내가다 빼앗아 먹었을 거라고 그래서 남들보다 통통해지면서 돼지란 별명을 얻게 되었으니 .. 내가 다커서도 동네 아줌마들은 " 니놈 내젖먹구 큰겨" 그렇게 악착같이 살아냈던 울 박여사 였다 거기에 또 성격좋지 인물좋지 하니 그누메 인기는 ... 그와 반대로 완전 이북 삼팔 따라지 출신의 아버지는 고지식한 사람으로서 박여사와는 정반대의 성격을 .. 나태어나기전 잘나가던 중앙정보가관에 근무하다 연좌제법이 생기면서 의용군 출신의 빨갱이라 해서 결국 옷을 벗게 되면서 할수없이 박여사가 일선에 나설수 밖에 없었으니 얼마나 남자로서 자존감이 .. 고진감내 라고 여전히 고시공부 한답시고 7년이란 세월동안 박여사를 개고생 시키다가 결국 고시공부 포기하고 학교 순위고사에 합격하여 저멀리 강원도 산골짜기 정선으로 발령받아 방학때만 집을 오셨던 ..
오늘따라 박여사의 화려한 음식솜씨가 무척이나 그립다 넌 울 박여사를 날날이 엄마라 부르곤 했었다 아니 솔찍히 젊어서 개고생 하며 집안을 꾸려 나갔지만 나중에 자리를 잡게 되면서 부터는 완전 날날이 엄마로 바뀌어서 가끔학교에 올때 난 아는척을 안했으니 지금 말하면 쪽팔려서 그당시엔 나또한 고전적인 사고방식에 빠져 박여사의 그짧은 미니스커트 모습을 완전 날날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가끔 나때문에 한복을 입고 오면 그렇게나 좋아했던 . 내일은 울 날날이 박여사와 근엄함의 상징이고 흐트러짐 없으신 아부지 산소에 울아들 슛돌이를 데리고 갈것이다
돌이켜 보면 그때 나도 아버지 처럼 그런 고라타분한 사고방식에 묶여 있었던 거란 .. 사실 나중에 나도 날날이가 돠었건만 ..
첫댓글 날라리면 어때요~
타고난대로 사는 것이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
포함되어 있다면,
마음껏 자신이 타고난 빛깔대로
노래하는 것이 좋은 것이지요.
맞아요 걍 울엄마를 맨날 날날이 라고 불렀어요
아부지 으므이 대하여 함부로 혈레발까는 게 아녀!
이 시상에 지존이를 데리고(소풍) 나온 것만해도 백 번 천 번 고마운 분여!
지존 아자씨 닥치고 입, 큰 절 108번하고 참회혀!
1년 선배로서 좋은 게 좋다고 말로 타이르는겨.
아주 매를 벌어요
어머님이 정말 활달하시고 능력이 많은 분이셨네요
지존님처럼 친척이 없는 우리집 추석풍경도 고요 그자체였지요
그래도 외할머니가 가끔오셔서 송편도 빚어주시고
아버지는 워낙 말이 없으신분인데 고향사람들 모임에 가시면
사회도 보고 서도민요도 잘부르시고 그러셨답니다
아 ! 지나고 나면 항상 후회뿐이네요
체면치례 하구 사셨어면
아마도 가정이 더 파탄 어려워
졌을 겁니다. 주변 남의 시선
의식치 아니하고 억척같은
생활력으로 사셨어니 참으로
훌륭하신 분 이십니다.
저도 오늘 동태전 더 살까말까
하다 까다로워진 입맛에 물어
보니 아닌것 같아 패쓰 해
버렸어요. 요새 참 편리한 세상
꼬옥 시장아니더라도 마트에
가도 맛깔스런 제사 음식이
지천으루 넘처나더군요.
근데도 요새 그 차례땜시 맨날
문제가 생긴다니 아이러니
합니다. 저혼자서도 직접 제사상 차리고 십수년 지냈는데?? 넘 편하려 하는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고 저는 제사라는걸 아예
인제 없애버리려 합니다.
에고 힘든데 무슨제사 까지 그런데 그마져도 안하면 넘허전하니
그렇지 그 당시엔 맘보 아줌마라 부르기도 좀 차리고 다니면 그렇게 불렀제
그래도 엄마가 있어 다행이제 형제가 흩어지지 않았으니 잘 컸지뭐
엄마 생각이 많이 나는 명절이네 나는 아니지만 헤~
그러게요
엄마생각
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