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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 베트남 가족모임 원문보기 글쓴이: [부산]조박사
나, [부산]조박사는 과연 종박인가?
나, [부산]조박사는 과연 종박인가?
어떤 휜님 한분이 나, [부산]조박사를 지칭하여 종박이라고 했다.
또한 70년대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란 평도 받았다.
거기에 대한 나, [부산]조박사의 답변은 이렇다.
그러나 국가관이 투철하고 반공정신이 강하다는 것이 대부분의 평가이다.
정답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만약 나, [부산]조박사에게 여론조사기관에서 여론조사를 한다면 이렇게 답할 것이다.
지지하는 정당은?
없다 혹은 모르겠다 또는 관심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지지도는?
없다 혹은 모르겠다 또는 관심없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정당은?
민주당이다. 김한길이 친노의 바지사장이고, 본질적으로 칼 마르크스를 추구한다.
라고 답할 것이다.
대선전까지는 그 어떤 박근혜을 지지하는 글도 쓴 적이 없고,
당선후에,
베트남 출신의 한 여성의 1표가 박근혜를 살리고 대한민국을 구했다.
저것이 박근혜 향후 30년 장기집권 서광(曙光)이 아닌가
라는 글 두개만 딸랑 올렸을 뿐이다.
그러나 나, [부산]조박사를 종박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나, [부산]조박사가 종박이면 그동안 나, [부산]조박사와 정치적 논쟁을 벌렸던
소위 진보를 주장하던 회원들 모두가 종북좌빨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나, [부산]조박사는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계급이란 것이 존재할까?
지금이 양반 쌍놈 따지는 봉건주의 사회일까?
없다.
귀족과 노예라는 계급이 존재하는가?
없다.
계급이란 것은 오직 군대에서나 존재하질 않는다.
그런데 유산자계급과 무산자계급이 어디에 있을까?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계급투쟁이 존재하고,
어떻게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실현한단 말인가?
이거야 말로 완전히 모순이 아닌가?
공산주의라는 것은 절대악이란 개념보다는 바보들의 종교이고,
공산주의자들이란 것은 절대 머리가 떨어지는 IQ가 30이하의 광신도로
무지와 모순과 몽상과 싸이코패스의 절정물이다.
그들은 우리 정치권과 80년대 학번이 중심이 된 대학가 및 대졸자 속에 존재한다.
우리나라에는 사회주의자가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한다면 오직 칼마르크스 이념을 따르는 공산주의자만이 존재한다.
우리의 정신적 수준은 후진국에 머물러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도 제대로 구분할 줄 모른다.
과거 박통은 조국 근대화를 기치로 내세웠지만,
지금은 그분의 업적을 산업화라고 부르고 있다.
산업화의 부정적인 면은 2가지가 있다.
하나는 공해로 인한 환경파괴 문제이고 또 하나는 종북좌빨 세력의 등장이였다.
근대화라고 부르지 못하는 이유는 경제나 안보 등의 외형은
세계에서 제일 빠른 단시간 내에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지만은,
정신적인 면, 즉 교육이나 문화 사회 사상 등의 면은 급박한 시간내에 이룰 수 없는 문제였다.
즉 에우파트리다이[eupatridae ; '아버지를 잘 둔'이라는 뜻)의 등장이였다.
가난에 뼈가 사무친 박통나 현대건설의 정주영 회장같은 분은
경제성장이나 국가안보에 집중한 나머지 분배 등의 문제에는 매달릴 시간이 없었다.
특히 박통께서는 밑의 사소한 비리에는 관대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유능하고 깨끗한 사람이 있으면 불러오라라고 한탄했다고 한다.
산업화의 시기에 황금만능주의가 판을 친다.
일반 사람들은 청렴을 강조했던 선비정신을 버리고 돈에 환장을 해서
강남의 부동산 투기나 삼성의 사카린 밀수, 등 각종 탈법 탈세 등으로
부정한 부를 축척하는 사람들이 판을 친다.
또한 그렇게 하지 않거나 정직하게 살면은 돈을 적게 벌거나 아예 가난하게 산다.
우리친구들 중에서 중학교를 가지 못한 친구들이 약 5%~10%정도 되는 것 같다.
초등학교 친구들 중에서 무슨무슨 재건학교라고 중등교육과정에 들어간 얘들이 약 30명 정도로 기억된다.
물론 나, [부산]조박사보다 가정형편이 더 어려웠던 친구들이다.
하지만 중학교 친구들 중에서는 저보다 더 가정형편이 어려운 친구들도 있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친구들이 약10%~20% 정도는 될 것 이다.
우리 중학교 선배들을 총 동창회에서 만나면 약30%~50%정도가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고 얘기한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공납금을 납부하지 못했다는 얘기로 두, 세번 정도 정학처분을 받았다.
학교에는 꼬박꼬박 등교를 했으나,
그 당시 친구들은 '그냥 놀러다니지, 왜 등교하는냐?'하며 의야하게 쳐다보았다.
대학진학율이란 것이 고등학교(인문계) 중에서 대학가는 비율을 얘기한다고 한다.
그 당시에 인문계에 약 40%, 실업계에 약 60%정도 진학한 것으로 알고 있다.
80년도 초반에 대학진학율이 약 20%에서 30%정도로 추정한다면,
90% x 80% X 40% x 20% = 0.0576 = 5.8%
95% x 90% x 50% x 35% = 14.9625 = 15%로
실제 전국민 중 대학진학율은 6~15% 사이일 것 이다.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비율로 계산한다면,
0.288 ~ 0.4275 가 나온다.
즉 대학입학 시험을 칠 수 있다는 것이 경제여건 상위 30%에 속하는 인구들이란 것 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쯤이었을 것 이다.
학교에서 시험을 치는 도중에 잠깐의 휴식시간이 된 것 이다.
어느 친구가 학원에서 가져왔다면서 답안이 체크된 4지선답형 문제지를 보여주었다.
친구들은 우루루 달려들어와서 그 답안이 체크된 4지선답형 문제지의 답을 외우느라고 정신이 없었지만,
학교성적에는 별 관심도 없던 저는 그냥 대충 훓어봤다.
그런데 막상 시험지를 받아들자,
아뿔싸!
조금전에 봤던 그 답안이 체크된 4지선답형 문제의 그 내용은 물론,
글씨체 자체도 똑깥은 것 아닌가?
즉 시험문제가 학교에서 학원으로 유출된 것 이다.
제기랄!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좀 열심히 외워둘 것인데,,,
7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단칸셋방의 9식구가 있는 집의 아들이 예비고사에 수석으로 합격하여
서울대 법대에 장학생으로 들어가고 주위의 도움으로 장학금을 수여받던 일,
즉 개천에서 용나는 일이 있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70년대 후반 부터는 돈이 곧 성적인 시대가 된 것 이다.
20대 초반에 전국으로 무작정 무전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돈은 다 떨어져서 서울역에 노숙자 비슷한 신세로 잠을 자고 있었는데,
새벽에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와서 잠자는 나를 깨웠고,
알고보니 중국집에서 사람구하러 온 것이었다.
마침 돈도 필요하고 먹고 잘 때도 필요했던 저는 즉시 중국집 배달뽀이로 팔려나갔다.
중국집에서 기거하고 있었는데, 과외가 금지된 5공치하에서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주인집 아들은 독선생으로 모시고 몰래 과외를 받고 있었다.
물론 주인은 나에게 무거운 함구령을 강요했다.
종북좌빨들의 특징 1,2가 여기서 나오는 것 이다.
만약에 대한민국이 완전 평등사회라서
한국의 전 미성년자 학생들의 숙식이 무료로 제공되어 공부를 할 수 있었고,
그 중에 선발된 대학생들의 학비가 국고부담으로 전원 면제였다면,
과연 어찌되었을까?
머리가 나쁘더라도 부모가 돈만 있는 에우파트리다이[eupatridae] 집단들의 머리나쁜 애들도
대학 졸업장을 딸 수 없었을 세상이었다.
그러나 분배가 정의가 실현되지 못한 불공정 교육기회에서,
즉 불평등한 조건에서 proletariat에게 기회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제 아무리 머리가 뛰어난 애들이 노력해도 과외 학원이나 독선생 밑에서 정답지를 달달 외운
에우파트리다이[eupatridae]와 성적 경쟁에서는 일반적으로는 질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사실을 알기에 저는 젊었었을 때 대학생들에 대한 적개심이 엄청났다.
이런 증오심이 발생하게 된 계기는
컬러방송을 할 무렵, 울 동네에의 전파사들은 일본방송을 컬러텔레비젼으로 보여주었다.
바람만 보면, 돌아가는 안테나로 항상 골머리를 앓던 한국의 흑백 텔레비젼에 비하면,
일본의 컬러방송은 화질도 뚜렸했고, 그 지금 sbs의 '붕어빵'이란 프로그램처럼
웃고떠드는 토크쇼의 그 내용도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텔레비젼은 맨날 화염병을 던지는 대학가의 데모내용과 엄청 대조를 이루었다.
"개새끼들! 눈군 부모 잘만나서 대학갔으면 공부나 할 일이지 왜 저 지랄들 떨고 있나?"
어자피 공부할 필요도 없질 않은가?
그 당시에는 경제성장율이 높아서 대학졸업장만 있으면 무조건 좋은 직장에 좋은 조건으로 취업할 수 있는
완전 고용 상황이 아닌가?
부모세대의 죄악과 자신의 나쁜 머리에 에우파트리다이[eupatridae]에게 공산주의 사상은
쉽게 먹혀들어갔다.
지금 우리 사회에 계급이란 것이 존재할까?
지금이 양반 쌍놈 따지는 봉건주의 사회일까?
계급은 오직 군대에서나 존재하질 않는다.
그런데 유산자계급과 무산자계급이 어디에 있을까?
있다손 치더라도 빈농의 아들로 성공한 정주영이란 사람은 무산자계급입니까 무산자계급일까?
육군 상병 출신의 노무현도 국군 최고 통수권자에 올라갈 수 있고,
또한 50년대 유행했던 '빈대덕신사'의 가사처럼
아버지가 물려준 아까운 전재산도 하루아침에 술이나 도박 등으로 말아먹을 수 있는 것 아닐까?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계급투쟁이 존재하고,
어떻게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실현한단 말인가?
이거야 말로 완전히 모순 중의 모순이 아닌가?
부모세대의 죄악과 자신의 나쁜 머리에 에우파트리다이[eupatridae]는
무지와 모순과 망상과 싸이코패스로 전혀 판별력이 가지고 있질 않다.
북한의 세습왕조의 독재도 전혀 비판 못하고,
오히려 독재정권의 나팔수가 되어 국민들을 선동하고 있다.
장성택 처형도 계급투쟁론의 일환에서 생각하면 쉽다.
공산주의자가 주기적으로 학살을 자행하는 이유는
집권 후엔도 계급의 적을 쳐부수는 혁명이 늘 필요한 것 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문화대혁명이나 김일성이 저지른 대규모 숙청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이다.
여러 휜님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차이가 무었일까?
아쉽게도 우리 사회는 아직 그것을 구별할 능력이 없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노동에 따라 분배받는 사회'를 '사회주의'로,
'능력에 따리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사회'를 '공산주의'로
로 설명하는 것이 공산주의적 관점에서 설명이다.
'공산당 선언'이 무산계급의 혁명을 포함하여 계급없는 사회,
즉 공산주의를 이루기 위한 일련의 행동을 권장하였는데,
1875년 마르크스는 '고타강령 비판'에서 처음으로
이러한 공산주의를 위의 두 가지 단계로 구분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회주의 중의 하나가 공산주의고,
프랑스혁명을 기점으로 자유평등사상의 대두에 의하여 성장하였다.
영국에 있어서는 T.모어·G.윈스탠리·R.오언, 프랑스에서는 F.N.바뵈프·C.H.생시몽·F.M.푸리에·
P.M.부오나로티 독일에서는 W.바이틀링·J.K.로트베르투스·M.헤스 등의 사회주의 사상이 있었고,
여기에 계급혁명론을 주창한 칼마르크스는 자신의 사상을 기존과 독립하여 공산주의라 칭 한다.
결국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구별하는 가장 큰 관점은 계급투쟁론이다.
계급투쟁론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구별한다.
유럽의 선진국에서는 사회주의 경향이 짙다.
스웨덴도 그렇고 영국의 노동당, 독일의 사회당, 프랑스의 사회당도 그렇다.
그러나 그들은 칼 마르크스 이념을 가진 것은 절대 아니다.
사회주의는 공산주의와 대립 발전한다.
여기엔 지옥의 묵시록에 공산주의와 대립하는 사회주의자의 대화내용이 나온다.
유럽인들은 합리적인 논리와 사고가 있기에 사회주의자는 공산주의자를 억누루고
평화적 개혁방법과 의회주의가 영국은 물론 독일과 프랑스 등의 사회주의 정당들이 활동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는 사회주의자는 전혀없고 오로지 공산주의자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부모세대의 죄악과 자신의 나쁜 머리로 80년대 학번이 주축인 에우파트리다이[eupatridae]이다.
소위 자칭 진보라고 부르는 이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들중 사회주의를 지향은 켜녕 구분도 못하는
모두다 칼 마르크스를 추종하는 종북좌빨들이 싼 똥냄새를 맡으려고 달려드는 똥파리의 동조자들이다.
이들 중심에는 80년대 학번들이 주범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에우파트리다이[eupatridae] 정치적으로 강력한 힘을 행사하기는 했지만
계급 전체가 정치적 지배권을 확보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역시 역사는 반복된다.
참고로 나, [부산]조박사가 조박사란 닉을 가진 동기는
어릴적에 친구집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었는데,
음식점인 조박사 냉면집이라는 곳에서 냉면을 먹으러 오라는
광고 전단지가 날라왔었다.
그때부터 친구들이 한명 두명 저보고 조박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조박사 냉면집과 나, [부산]조박사는 성만 조씨로 같을 뿐 아무 관련도 없는데,
그래도 친구들은 차차 그렇게 불렀었고, 어릴적 내 별명 중의 하나였다.
caocao란 한메일의 닉을 쓰게 된 동기도
인터넷의 초창기에 학교후배가 한메일에 나, [부산]조박사를 등록시켜주면서,
삼국지란 일본의 시물레이션 게임에서 나오는 조조와 나, [부산]조박사가 같은 성씨라면
붙혀준 것이다.
베트남여성과 결혼했고,
신부오기를 6개월동안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느날 베트남여성과 결혼한 사람들의 모임인 인터넷 카폐에서
닉네임을 바꾸라는 쪽지가 왔었다.
그때 나, [부산]조박사는 친구 가계에서 술한잔을 하며
베트남여성과 결혼한 사람들의 모임인 인터넷카페를 보고 있었는데,
친구가 '야! 조박사. 너 거기서 뭘 보노?'하길래,
우연히 인터넷카페에 조박사란 닉네임을 쓴 것 뿐이다.
피그말라온 효과라고 했던가?
박사라는 호칭이 내게 양육의 지혜를 준 것 같다.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예쁘다고 했고,
자식자랑을 팔불출이라고 하지만,
자기 2세가 전국대회에 참가하여 상을 받는 것에 기뻐하지 않을 부모는 없다.
하지만 제대로 된 종이도 없어서 종이box를 뜯어서 그림을 그릴 수 밖에 없지만,
한자를 사람얼굴처럼 그리는 것이 마냥 귀엽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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