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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궁(神弓) 3장 第 3 章. 갈림길. 1. 계속 북상하던 도일봉은 바다와도 같은 동정호(東庭湖)의 장관을 구경하고 이번엔 동쪽으로 길을 꺽었다. 양자강(陽子江)의 도도한 물 결도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바다처럼 넓은 동정호, 수천년 쉬임없이 흐르는 장강의 물줄기는 호호탕탕 도도함이 절로 탄성을 지르게 했 다. 도일봉은 장강을 따라 내려가 이번에는 파양호도 구경할 참이었 다. 강남(江南)의 유월은 오리알도 익힌다는 말이 있더니 그 말이 실 감나도록 유월의 날씨는 그야말로 모든 것을 익혀 버릴 듯 뜨거웠다. 도일봉도 장군도 더위에 지처 헉헉 거리며 길을 걸었다. 너무 더 워 낮에는 그늘에서 쉬고, 아침 저녁으로만 걷기도 했다. 길을 가는 도중 물이라도 만나면 사람과 짐승이 물로 뛰어들어 시간 가는줄도 모르고 물놀리를 즐기기도 했다. 파양호에 다다를 무렵. 도일봉은 벌써 이틀째 인가를 만나지 못해 노숙(露宿)을 해야 했 다. 더욱이 준비해 둔 음식도 벌써 바닥이 나서 쫄쫄 굶기까지 하면 서 길을 걸어야 했다. 요 몇일은 정말 지겨운 여행이 아닐 수 없었 다. 터벅터벅 길을 걷기도 지겨웠다. 근처에는 물도 없고, 더위를 피 할만한 곳도 없었다. 보이는 건 온통 드넓은 들판 뿐이다. 장군도 도 일봉 만큼이나 지처 있었다. 길 위엔 온통 먼지만 가득하여 입고 있 는 옷도 먼지 투성이다. 머리위에 까지 먼지가 쌓였다. 다음날도 하루종일 걸었는데 인가는 보이지 않았다. 배가 고파 죽 을 판이다. 어디에서라도 좀 쉬어야겠는데 들판엔 잡초만 무성할 뿐 나무도 없다. 한낮이 다 되어서야 겨우 키 작은 나무를 발견하고 그 밑에 털석 주저앉고 말았다. "아니고, 더는 못 가겠다! 장군, 여기서 해가 너머갈때 까지 쉬었 다 가자꾸나. 아이고, 다리야!" 도일봉은 나무에 기대에 쉬다가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장군은 근처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잠이 들었던 도일봉은 장군이 푸드득 거 리는 소리에 문득 눈을 떳다. 해는 여전히 중천(中天)에 걸려 있다.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다. 도일봉은 잠이나 더 자야겠다고 생각하며 돌아 누우려다가 저쪽에서 사람들이 오는 것을 보고는 크게 반가와 벌떡 일어섰다. 물이라도 얻어 마시려는 생각 에서였다. 다가오는 사람들을 향해 달려 나가려던 도일봉은 급히 발을 멈추 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그들은 모두 한결같이 청의 차림이었고, 밖으 로 무기를 보이지는 않았으나 분명 무사(武士)임을 알 수 있었다. 도 일봉은 그만 간이 철렁하고 말았다. 도일봉은 저번에 몽고놈들에게 무술(武術)에 당한이후 무사들을 크게 두려워 하고 있었다. 싸움을 하는 것이야 크게 두려울 것이 없었으나, 한꺼번에 무더기로 덤벼들 고 이상한 손가락 요술을 부려대는 것은 정말이지 좋지 않다. 더욱이 잡혀서 산 속으로 끌려 가는 것이라면 치가 떨린다. 저번에도 이런 차림의 가짜 산적들에게 잡혀반년이 넘도록 죽어라 고생하지 않았던 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눈빛이 번쩍번쩍 하는 무사들은 한 대의 마차를 호위한체 걷고 있 었다. 마차가 저번보다 화려하긴 했으나 이는 필시 사람들의 이목 (耳目)을 속이려는 수작이 분명했다. 물론 저들이 진짜로 사람을 잡 아가는 가짜 산적인지 스스로도 장담할 순 없었으나 자라에 놀란 가 슴 솥투껑만 봐도 놀란다는 말이 있듯이 도일봉은 제풀에 놀라고 있 는 것이다. "이거 큰일났구나! 어쩌지....." 어찌해야 좋을지 금방 떠오르질 않았다. 놈들이 여덟명이나 되니 도망가는 것이 상책인 것 같았다. 도일봉이 엉거추줌 하고 있을 때, 마차는 벌써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모두들 눈빛이 형형하고 체격이 좋은 것이 역시 가짜산적 같았다. 도일봉은 장군을 바라보았다. 장군은 한쪽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이때, 무 사들도 가까이 다가와서 도일봉과 장군을 의심스런 눈초리로 살피기 시작했다. 도일봉은 그들의 눈빛을 대하자 등골이 오싹해서 뒤돌아 뺑소니를 치기 시작했다. "장군. 어서 도망처라! 무서운 도둑놈들이다." 도일봉의행동이 워낙 급작스럽고, 벼락과도 같이 소리를 치는 바 람에 오히여 무사들이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들은 저만치 도망치고 있는 도일봉을 이상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무사들중 나이가 지긋하고 수염이 희끗한 위엄있게 생긴 자가 입을 열었다. "좇아가 보게. 어쩌면 우리를 감시하는 자들일지도 모르니 말이야. 함부로 다치진 말고." 노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세명이 말을 제촉하여 달려나갔다. 도일봉은 이미 저만치 달리고 있었고, 도일봉이 달리는 것을 본 장군 도 덩달아 달려 나갔다. 장군은 무사들 말보다 늦게 달리기 시작했으 나 곧 무사들의 말을 따라잡고, 이내 도일봉까지 따라잡아 저만치 앞 서 달려나갔다. 도일봉의 발걸음이 아무리 빠르다 해도 말이 달리는 속도보다는 못하다. 3-4리 달리다 보니 어느새 세말이 말이 바짝 다가서 있었다. 마음이 급해진 도일봉은 저만치 앞 서 달리고 있는 장군을 향해 소리 첬다. "장군, 장군. 돌아와라! 나를 테우고 가란 말이야. 빨리 와!" 소리를 지르는 통에 발걸음이 늦어졌다. 무사들이 들이 닥첬다. 도일봉은 화가 치밀어 욕을 했다. "장군, 이놈아. 나를 죽일 셈이냐? 어서 돌아와!" 장군은 그때서야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그때는 이미 도일 봉은 무사들에게 따라잡힌 상태였다. 한 무사가 대뜸 손을 뻗어 도일 봉의 뒷덜미를 낚아채려 하고 있었다. 도일봉이 위기에 처한 것을 본 장군은 길게 울부짖으며 달려왔다. 달리는 속도가 쏜 살 같았다. 도일봉은 벌써 세 번이나 무사의 손을 피해내며 달아나려 애쓰고 있었다. 무사가 네 번째 손을 뻗어 도일봉을 잡으려 할 때 장군이 어 느틈에 달려와 무사가 타고 있는 말을 향하여 뒷발질을 했다. 무사가 타고있는 말은 장군의 이와같은 기세에 눌려 몸부림을 처댔다. 무사 의 기마술(騎馬術)이 남보다 좋지 못했다면 당장에 말등에서 떨어지 고 말았을 것이다. 무사가 억지로 버티려 하자 장군이 또 달려들어 이번엔 진짜로 말 옆구리를 걷어차 버렸다. 말이 길게 울부짖으며 나 가 떨어지자 무사도 어쩌지 못하고 말등에서 뛰어 내려야 했다. 말등 에서 뛰어내리는 모습이 마치 물찬 제비와도 같이 날렵하고 매끄러웠 다. 분명 상승(上昇)의 무공공부(武功工夫)를 익힌 솜씨였다. 도일봉은 기회다 싶어 몸을 날려 장군의 등에 오르려 했다. 장군 의 등에만 오르면 제 아무리 무서운 산적놈들이라 해도 충분히 따돌 리고 도망칠 수 있다. 그러나 도일봉이 막 장군의 등에 오르려 할 때, 다른 무사가 달려들어 방해를 했다. 장군은 자기일에 방해하는 자가 있자 화가 치밀었는지 푸드득 콧바람을 불면서 무사를 향해 덤 벼들었다. 장군이 워낙 거세고 험악하게 덤벼 드는지라 다른 무사들 도 버티지 못하고 말등에서 내려 피해야 했다. 한명의 무사는 도일 봉을 잡으려 달려들었고, 다른 두명의 무사는 장군이 도일봉에게 접 근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 무사들도 일단 사람이 말 등에 올라타 면 잡을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장군이 화가 나서 마구 몸부림 치고 있을 때, 도일봉은 한 무사와 이미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도일봉은 그저 손발을 마구 휘두르고 잡 고 늘어지는 건달패의 싸움밖에는 몰랐다. 무공에 대해서는 일자 문 외한(門外漢)인 것이다. 그러나 무공을 배웠음이 분명한 무사는 그런 도일봉을 쉽사리 잡을 수가 없었다. 무사는 이십대 중반의 청년이었 다. 생긴것도 멀쑥하고, 허리가 곧으며 하관이 쭉 뻗었다. 손발을 휘 두르는 모습이 안정되어 있었으며, 주먹 하나하나에도 힘의 안배가 적절하였다. 도일봉이 마구잡이로 손발을 휘두르는 빈틈을 찾아 매섭 게 주먹과 장력(掌力)을 날리고 있다. 도일봉은 벌써 여러차례 그런 청년에게 얻어맞을 뻔 하면서도 그때마다 마치 족제비처럼 몸을 움직 여 간신히 피해내곤 했다. 도일봉의 눈썰미도 보통은 아니어서 청년 의 주먹은 쉽사리 도일봉을 적중시키지 못했다. 도일봉은 시간이 갈 수록 초조해저서 급기야는 욕을 해댔다. "빌어먹을 산적이 세기도 하구나!" 당장 한놈도 거꾸러 뜨리지 못하는데 남은 자들이 한꺼번에 덤벼 들면 어쩐단 말인가? 그야말로 다시 잡힌몸이 되어 죽도록 고생하다 죽는 도리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걸 생각할때면 소름이 오싹 끼첬다. 도일봉은 힘을 다해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윙윙!" 바람소리가 일었다. 한 대만 맞으면 튼튼한 뼈마디라도 박살이 날 것 같았다. 그러나 청년의 무공도 만만치 않아 도일봉의 주먹도 어쩌 지 못했다. 도일봉은 마굽잡이로 처들어 가서 청년의 안면에 주먹을 후려 갈겼다. 서두르는 통에 다리쪽에 빈틈이 생겼는지 청년은 재빨 리 도일봉의 주먹을 피해내며 장을 날려 옆구리를 후려첬다. "퍽!"하 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강하게 얻어맞은 도일봉은 몸을 휘청하고 말 았다. 대단한 통증이 몰려왔다. 무사가 계속 달려들어 이번엔 가슴을 치려했다. 도일봉은 몸을 옆으로 틀며 청년의 팔둑을 움켜 잡았다. "도적놈. 맛 좀 봐라!" 주먹으로 치는 것이 아니라 팔둑을 잡고 끌어 내뺑게치려는 것이 다. 그런데 갑자기 팔둑이 찌르르 하더니 단번에 힘이 빠졌다. 도일 봉은 크게 이상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러고 있다가는 다시 또 얻어 맞을 것 같아 "으악!"하고 괴성을 지르며 청년의 옆구리를 향해 발길 질을 가했다. 청년은 옆구리를 걷어체여 저만치 나가 떨어졌다. 도일 봉은 뒤로 물러서 팔둑을 살폈다. 아무렇지도 않았다. 어째서 갑자기 팔둑이 씨끈하며 힘이 빠졌는지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나가 떨어졌던 청년이 퉁겨 일어나더니 더욱 맹렬하게 대들었 다. 도일봉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무사가 약이 올라 더욱 거세게 나오자 도일봉은 생각을 바꿔 먹었다. 이렇듯 시간만 끌다가는 득될 것이 없다. 도일봉은 달려드는 청년을 향해 손을 벌리고 마주 달려들 었다. 한두대 얻어맞는 한이 있더라도 청년을 처치하고 도망치려는 수작이다. 청년은 상대가 이처럼 무모하게 나오자 오히려 크게 당황 을 하고는 주춤 뒤로 물러서다 어이없게도 멱살을 잡히고 말았다. 도 일봉이 바짝 끌어당겨 업어치기를 하려 했다. 청년은 주먹을 쓰기가 곤란하여 손가락을 뻗뻗이 세운체 도일봉의 자궁혈(子宮穴)을 꾹 찔 렀다. 청년을 잡아 던지려던 도일봉은 갑자기 반신이 뻗뻗하게 굳어 지는 것을 느끼고는 크게 놀랐다. 하지만 "끄응!"하고 힘찬 기합을 넣더니 그대로 청년을 들어 메다 꼰고 말았다. 청년은 그야말로 꼴 사납게 나뒹굴고 말았지만 도일봉도 몸을 휘청하고 말았다. 아직까지 도 몸이 뻗뻗하여 마음대로 움직이기 곤란했던 것이다. 도일봉은 이 청년들이 과연 무서운 놈들이라 생각하고 더 이상 싸 울 마음이 일지않아 뒤돌아 뺑소니를 치려 했다. 그런데 몇발작도 가 기전에 누군가 등 뒤의 영태혈(靈太穴)을 또 꾹 찔렀다. 이번에는 아 까보다 더욱 심한 충격이 오더니 버티지 못하고 그만 앞으로 고꾸라 지고 말았다. 아까는 반신이 바미되어 오더니 이번엔 하체가전부 바 미되면서 걸을 수도 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고끄라진 도일봉은 다시 벌떡 일어서서 달리려 했다. 그러나 이번의 충격은 아까보다도 심해 생각대로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도일봉은 간신히 몸을 바로잡고 품 속에서 단도를 싹 빼들었다. 도일봉의 이러한 행동에 무사들은 크게 놀라고 있었다. 그들은 분 명 도일봉이 세 번씩이나 혈도(穴道)를 격타당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 다. 그런데 혈도를 격타당하고도 이처럼 멀쩡하게 움직이고 있으니 놀랄 수 밖에. 이들 무사들은 모두 훌륭한 스승에게서 무예를전수 (傳受) 받았거니와 점혈수법(點穴手法)이 비록 배우기 어려운 공부이 기는 해도 장시간 익히고 수련하여 일단 시전하면 착오가 없다. 이런 점혈법에 걸리기만 하면 내공이 일류급에 속하는 무공의 고수들도 몸 이 마비되어 움직일 수 없는 것인데, 이제 이처럼 무공도 모르는 듯 한 자가 점혈을 당하고도 이처럼 멀쩡하게 움직이고 있으니 어찌 놀 랍지 않으랴! 무공의 종류에는 점혈법에 대항하는 십삼대보횡련(十三 大保鐄鍊)이나 철포삼(鐵浦三) 등의 고급 외문무공(外門武功)이 있긴 하다. 하지만 이 외문무공은배우기가 어렵고 몸을 극도로 단련해야 하므로 일반 무림인들도 함부로 배우지 못하는 무공이다. 도일봉의 모습이 까무잡잡하고, 마치 철과도 같긴 했으나 이런 종류의 무공을 배운 것 같지는 않았다. 도일봉은 이제서야 이들이 저번의 가짜산적 몽고 귀신들처럼 손가 락 요술(妖術)을 부리고 있음을 알았다. 도일봉은 단도를 단단히 움 켜쥐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 "이 도적놈들! 이제서야 본색(本色)을 드러 내는구나. 내가 그따위 몽고귀신이 가르처준 손가락 요술을 두려워 랄 줄 알았느냐? 어림도 없다. 흥흥!" 사실로 말해서 도일봉은 이 가짜 산적들의 재간 중에서 이런 손가 락 요술을 가장 두려워 하고 있었다. 허장성세(虛張聲勢)로 큰소리 치고 있을 뿐이다. 몽고귀신의 이와같은 손가락 요술에 걸려 반년이 넘도록 죽을 고생을 한 걸 생각하면 치가 떨리도록 두렵고 무서웠다. 무사들은 이 요상하게 생긴 작자가 지금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슬금슬금 남의 눈치나 살피다가 꽁무 니를 빼고 도망치던 인간이 아닌 밤중의 홍두깨 같이 산적 어떻고, 도적들 어쩌고 하니 기가 막힐 뿐이다. 더군다나 무공중에서도 상승 공부에 속하는 점혈법을 일러 손가락 요술 어쩌고 하는데는 어이가 없기도 했다. 한 청년이 앞으로 썩 나섰다. "왠 놈인데 헛소리를 해대고 있느냐? 너는 뭐하는 자냐?" "뭣이라, 헛소리? 네놈들에게 한 번 속지 두 번 속을 바보도 있다 니? 날 속이려 하지만 어림도 없다. 덤빌테면 덤벼봐라!" 도일봉은 나머지 다섯명의 산적들이 모두 도착한 것을 보고는 단 도를 더욱 단단히 움켜쥐고 "똥돼지!" "자라새끼!" "몽고귀신!"등 마 구 욕을 퍼부어 댔다. 사천 촌구석의 사투리는 워낙 거필고 딱딱하여 욕하는 소리도 들어주기 힘들다. 장군은 한쪽에서 아직도 두명과 씨 름을 하고 있는데 잡힐 것 같지는 않았다. 도일봉이 워낙 거칠게 욕을 해 대자 일행의 우두머리 쯤으로 보이 는 위풍당당하고 위엄(威嚴)이 가득한 모습의 노인이 손을 저으며 입 을 열었다. "이보게 젊은이. 어찌 그리 입이 거친가? 그리고 왜 우릴 보고 도 둑이라 욕을 하는게지? 자네는 어느분의 문하(門下)인가?" 도일봉은 노인의 여유있고 위엄 가득한 모습에 찔끔하여 다소 기 가 죽었지만 억지로 흥! 하고 코웃움을 처주며 노인을 향해 삿대질을 해댔다. "야. 우두머리 도적이구나! 이 늙은이. 그렇게 점잖게 생겨 가지고 가짜 산적 노릇을 해서 양민들을 잡아가다니 부끄럽지도 않느냐? 내 가 또 다시 너희 놈들에게 잡혀 그 고생을 하느니 죽도록 욕이나 하 고 끝까지 싸우겠다. 덤빌테면 덤비시지. 날 잡아갈 생각은 애전에 버리는 것이 좋을걸! 그리고 우리집에는 대문도 없는데 무슨 문아래 를 찾느냐?" 학문(學文) 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는 도일봉은 어느분의 제자냐 고 물어 보는데도 알아듣지 못하고 헛소리만 해 댄다. 노인이 어이가 없어 오히려 웃고 마는데, 한 무사가 썩 나섰다. "이놈. 듣자하니 방자하기 으를데 없구나! 감히 어느분에게 그따위 말버릇이냐?" "흥. 어느분? 그럼 내가 너희같은 산적 나부랭이에게 존대를 할까? 너희들이 다른 순진한 양민들은 속일 수 있어도 이 두 눈은 속이지 못한단 말이다. 저 마차안에는 순진한 양민들이 가득하지 않느냐! 이 귀신들아!" 듣고 있던 노인도 안색을 굳히며 호통을 첬다. "놈! 감히." "흥. 해 볼테면 해 보라지. 그렇계 눈을 험악하게 부라린다고 내가 눈이나 깜빡 할 것 같으냐? 어림도 없다!" "그래도 이놈이....," 무사들은 도일봉의 방자하고 버릇없는 말투에 점점 화가 치밀어 당장에라도 잡아먹을 듯 노려 보았고, 주먹을 불끈 쥐고 때려 죽이려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마차 안에서 아름답기 이를데 없는 목소리 가 들려왔다. "그만두세요 총관(總管). 저 분 공자님께서 오해를 하신 모양인데 마차안을 보여 주어도 무방해요. 그럼 오해가 풀어질 것이에요. 그리 고 공자께서는 먼저 말부터 진정 시키세요. 저러다간 사람이 다치겠 어요." 옥쟁반에 구슬이 굴러가는 소리가 이러할까? 은은한 풍경(風磬) 소리가 이러할까? 사람의 목소리가 어찌 이다지도 영롱(玲瓏)하고 그 윽하단 말이냐? 목소리를 듣는 것 만으로도 심신(心身)이 맑아 지는 것 같고, 천상(天上)에라도 와 있는 듯 착각을 일으켰다. 봄바람처럼 상쾌하고도 시원하다. 도일봉은 어느 여인이 있어 이처럼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녔을까 고개가 저절로 돌아갔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도일봉은 자신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 앉는 소리를 듣고 말 았다. "아!" 입은 헤에 벌리고, 두 눈은 있는대로 커지고, 들고있던 단도는 제 풀어 손에서 떨어저 내렸다. 예쁘다. 마차에서 나와 땅에 내려선 여 인은 그야말로 아름다왔다. 녹색치마와 구름같은 머릿결, 눈을 바라 보면 저절로 시원해진다. 도일봉은 맹세코 꿈에서조차 이처럼 아름다 운 여인은 처음 보았다. 노인들의 옛날 이야기에서나 듣던 천산(天 山)의 선녀(仙女)나 황궁(皇宮)의 공주님이 이처럼 아름다울까? 아니 다. 이 여인은 필시 선녀가 틀림 없으리라! "나는... 이 도일봉은 이제 죽었구나!" 도일봉은 저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리고 말았다. 삽시간에 싸움 이고, 산적이고, 몽고귀신이고 다 잊고 말았다. 감히 선녀나 공주님 앞에서 어찌 소란을 피울 수 있겠는가 말이다. 앞에 있는 여인이 천 산의 선녀라면 어른들 말대로 자신은 선녀를 잊지 못하고 상사병(相 思病)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 죽을 것이고, 또 공주님이라면 이미 무 례를 범하고 말았으니 그 죄를 어찌 다 갚는단 말인가? 출세하여 대 장군이 되는 것은커녕 목숨도 제대로 보존하지 못하게 생겼다. 그러 니 무슨 싸움이고 뭐고가 있겠는가. 도일봉이 완전히 넋나간 표정으로 여인을 바라보고 있자 여인은 부끄럽고 무안하기도 하여 얼굴을 살짝 붉혔고, 무사들은 너도나도 험악하기 이를데 없는 얼굴을 하고는 도일봉을 때려 잡을 듯 벼루고 있었다.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도일봉은 그 자리에 털썩 꿇어 엎드려 통통통 소리가 나도록 땅바닥을 찧으며 큰 절을 하는 것 이었다. 도일봉이 계속해서 큰 절을 하자 여인은 크게 당황스럽고 부 끄러워 어쩔줄을 몰라하며 겨우 옆으로 피했다. 도일봉은 그래도 계 속해서 큰 절을 올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아주 작게 입을 열었다. "소인이... 몰라뵙고...몰라 뵙고 무례를 범했으니 용서해 주십시 오!" 무사들은 그토록 똥배짱을 부리던 놈이 삽시간에 이러는 꼴을 보 자 어리둥절 하기만 했고, 여인은 난처하고 부끄러워 연신 손을 저으 며 입을 열었다. "일어 나세요. 어서 일어나세요!" "예...," 도일봉은 몸을 일으키려다가 여인이 용서한다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을 알고 다시 무릅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여인은 더욱 당황했으 나 곧 이를 깨닫고 다시 입을 열었다. "일어나세요. 어서요. 그대는 내게 잘못한 것이 없어요." 도일봉은 그제서야 주섬주섬 일어났다. 그러나 감히 여인을 똑바 로 처다보지도 못하고 다소곳이 서 있기만 했다. 여인이 말을 계속했 다. "먼저 그대의 말부터 진정 시키세요. 다치겠어요." "예 예.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도일봉은 얌전하기 이를데 없이 대답을 하고는 아직도 두 무사를 괴롭히고 있는 장군을 향해 소리첬다. "장군, 장군아! 그만하고 이리오너라. 더 이상 무례를 하면 않돼! 어서 와라." 장군은 그때서야 몸부림을 멈추고 길게 울부짖으며 재빨리 달려와 도일봉 옆에 딱 버티고 섰다. 그 모습이 위풍당당하여 진짜 대장군 같았다. 무사들은 하나같이 또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디서 저런 명마(名馬)가 나왔을까! 사람은 멍청하기 이를데 없 는데 말은 진정 뛰어나구나!' 도일봉은 여전히 쥐 죽은 듯 끽소리도 않고 조용히 서 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토록 안하무인(眼下無人), 눈 앞에 사람이 없는 듯 날뛰던 인간이 여인을 보자 갑자기 이처럼 얌전해 지자 사람들은 그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여인은 도일봉에게 누가 말을 걸든 정확한 대답을 듣기 어렵다는 것을 느끼고 다시 입을 열었다. "공자께서는 어느분의 자제신가요?" "예? 아 예. 소인은 사천 사는 도대붕(陶大鵬)의 큰아들 입니다 요." "그러시군요. 성함이...?" "예 예. 도 일봉이라 합니다요. 하지만 그 무슨 공자는 아니고, 사 냥꾼 입니다." "아! 본래 도공자 이시군요! 그런데 어째서 우릴 보고 그처럼 욕을 하셨나요?" 도일봉은 황송해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뒷머리만 긁적 거렸다. "저는.. 소인이 백번 잘못 했습니다요. 그저... 옷차림이 비슷해서 그만.. 용서 하십시오." "아니에요. 용서라니 당치 않아요. 하지만 서로 오해가 풀려서 다 행이에요." 여인은 도일봉이 어째서 이마가 깨지도록 땅바닥에 대소 큰 절을 하고, 이처럼 공손하게 나오는지 도무지 이유를 알 수가 없어 궁굼증 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공자께서는 무슨 연유로 그런 대례를 올리셨나요?" 도일봉은 잠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 여인이 필시 선녀인지 공 주님인지 확신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물었으니 대답은 해야 했다. "잘은...모르겠습니다만... 선녀가 아니시면 공주님이 아니십니 까?" 그 말에 무사들은 하나같이 웃움을 터뜨리려다가 억지로 참고 말 았다. 여인은 자신들의 상전인지라 그 앞에서 함부로 웃움을 보일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중 한명은 터저 나오는 웃움을 도무지 참지 못하고 입을 손으로 가린체 "풋!"하고 웃움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여 인이 워낙 아름다워 많은 남자들이 도일봉과 같이 입에 침도 안바르 고 칭찬을 해 대지만 도일봉처럼 멍청한 표정은 짓지 않는다. 그 표 정으로 보아 이 촌놈은 여인이 필시 선녀나 공주로 보이는 모양이었 다. 도일봉이 워낙 진지하고 간곡하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 이 워낙 엉뚱해 보여 여인도 참지 못하고 실소를 짖고 말았다. "훗! 그건... 아니에요. 저는 선녀도 아니고, 더군다나 공주는 더 욱 아니랍니다." 도일봉은 여인의 말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 몰래 고개를 들어 여인을 훔처 보았다. 하지만 여인의 추수(秋收)같은 눈을 대하자 그 만 재빨리 고개를 다시 떨구고 말았다. 그러면서 고개를 갸웃 거렸 다. 여인 스스로 선녀나 공주가 아니라고 말하니 그런줄 알아야겠지 만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선녀나 공주님 이었다. 여인이 혹 우수겟 소리를 하는지도 몰랐다. 진자냐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 으나 여인 앞에서는 감히 입도 뻥긋할 용기도 나지 않았다. 도일봉은 노인 앞으로 가서 허리를 깊숙히 숙였다. "노인어르신. 욕을 해서 죄송합니다. 벌을 내리신다면 어떤 벌이든 달게 받도록 하겠습니다." 노인은 도일봉의 진지한 태도에 웃움이 나와 참을길이 없었다. 노 인은 희끗한 수염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벌은 무슨. 하지만 어째서 우릴 보고 도적의 무리라고 했는지는 꼭 말해줘야 하겠네." "예 예." |
첫댓글 잘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재미있어요
감사합니다
잘밨습니다
즐독입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잘읽었습니다
ㅋ
즐감요
감사히 읽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부를 만날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