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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 2: 14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 2 )
4] 주님께 돌아오라 ( 욜 2:12-14 ) / 이영훈 목사
이 세상에 죄 없고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누구나 실수하고 죄를 짓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죄를 지었을 때 속히 그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야 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죄 가운데 살아가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판을 받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죄의 습관에서 돌이키지 않고 계속해서 우상숭배에 빠져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은 죄의 습관 가운데 빠져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기 위해서는 잘못된 삶에서 속히 주님께로 돌아서야 합니다.
1.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
요엘 선지자가 활동하던 당시, 유다는 전례 없던 메뚜기 떼의 공격과 가뭄으로 인해 큰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땅은 완전히 황폐케 되었고, 곡식의 씨가 말랐으며, 성전에서 포도주를 따라 드리는 전제도 드릴 수 없을 정도의 극심한 궁핍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때 요엘 선지자는 고통 중에 있는 유다 백성들을 향해 그들이 겪고 있는 재앙의 원인이 우상숭배와 불순종 때문임을 지적하며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기를 촉구했습니다. “야훼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야훼께로 돌아올지어다”(욜 2:12-13)
여기서 ‘이제라도’라는 말은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 전 아직 회개의 기회가 남아 있음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의 심판 경고는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판의 경고를 들을 때에 회개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회개하고 죄의 길에서 돌이켜 주님께로 돌아오기만 한다면 야훼의 날에 임할 심판에서 건짐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시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마음을 다하여’ 죄로부터 돌아서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의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께로 돌이킬 수 있을까요?
요엘 선지자는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며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고 말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죄를 속하기 위해 대속죄일에 금식했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가슴을 치면서 대성통곡함으로 하나님께 진정으로 회개하고 있음을 나타냈습니다. 또한 극심한 슬픔에 사로잡히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회개할 때 옷을 찢곤 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 옷을 찢는 행위는 내면적인 슬픔을 겉으로 표현하는 방법이었지만, 당시 유다 백성들은 진정한 슬픔을 표현하기보다는 형식적인 것에 그쳤습니다.
따라서 요엘 선지자는 옷이 아니라 마음을 찢으라고 말한 것입니다. 의례적인 행사로서의 형식적인 회개가 아니라 진정한 마음의 변화를 요구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형식적인 회개가 아닌,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아파하며 통회하는 상한 심령을 받으십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
나단 선지자가 다윗 왕을 책망했을 때 다윗이 했던 회개가 바로 마음을 찢는 회개입니다. 나단 선지자는 부하를 죽게 하고 그 아내를 취한 다윗을 찾아가서 죄를 지적했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즉시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진심으로 회개했습니다.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야훼께 죄를 범하였노라”(삼하 12:13)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회개입니다. 나단 선지자는 상한 심령으로 회개하는 다윗에게 하나님의 용서를 선포했습니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야훼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삼하 12:13)
하나님은 우리가 어떠한 죄를 지었을지라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만 하면 우리를 용서하시고 다시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우리는 늘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회개할 때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과 같이 지금이 구원의 때인 것입니다.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우리의 삶 가운데 고난이 다가오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멀리 떠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로 다시 돌이키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이 다가올 때 낙심할 것이 아니라 더욱 주님의 십자가를 붙들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부어주시고 새로운 기회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2. 우리를 기다리시는 사랑의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마음을 찢고 진심으로 회개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요엘 선지자는 하나님을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신 분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욜 2:13)
요엘 선지자가 이렇게 하나님의 성품을 열거한 이유는 유다 백성들의 죄는 미워하셨지만 그 백성들은 미워하시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깨닫고 회개케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회개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죄악의 도성 니느웨가 요나의 메시지를 듣고 회개하자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욘 3:10)
요나는 하나님의 행하심과 사랑의 성품을 깨닫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욘 4:2)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한다 할지라도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죄짓고 불의하고 추하여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회개하고 돌아가기만 하면 무조건 용서하시고 받아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야훼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 1:18)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는 무한대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하고 돌이켜 그 사랑의 품에 안기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평화로운 한 시골 마을에서 안정된 목회를 하고 있던 데이빗 윌커슨(David Wilkerson) 목사님은 어느 날 한 잡지에서 ‘뉴욕에서 소아마비 소년을 7명의 아이들이 칼로 살해하는 장면’을 담은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진을 보고 있을 때 마음속에 ‘뉴욕에 가서 그 소년들을 도우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목사님은 그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품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뉴욕에 센터를 마련하고 뉴욕 거리를 공포로 떨게 한 갱단과 마약 중독자들을 위해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살인, 마약, 동성애와 폭력 등 악한 죄를 스스럼없이 저지르는 그들의 삶에는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은 너무나 가슴이 아파서 그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과 성령의 역사로 그들이 변화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문을 연 지 한 달 만에 500명 이상이 변화되어 구원을 받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온갖 죄를 저지르는 그들을 세상은 버렸지만 하나님은 버리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는 결코 용납하지 않으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지만, 죄인 자체에 대해서는 무한히 용서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오늘도 죄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오래 참으심으로 기다리고 계십니다.
3. 회개하는 자에게 복 주시는 하나님
메뚜기 재앙을 당한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완전히 버리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요엘 선지자는 그들의 절망적이고 비관적인 태도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만약 그들이 진실로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이라는 희망을 전했습니다.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야훼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욜 2:14)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심판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멸망이 아니라 심판 이후의 회복입니다. 요엘 선지자는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소제와 전제를 드릴 수 있게 하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예배가 회복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제는 곡식을 제물로 드리는 제사이며, 전제는 포도주를 부어 드리는 제사입니다. 따라서 유다 백성들이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땅에 다시 곡식이 나게 하시고 과일나무에 열매가 맺히게 하심으로써 소제와 전제를 드릴 수 있도록 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들짐승들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다 힘을 내는도다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야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욜 2:22-24)
유다 백성들은 회개를 통해 그들의 범죄로 인해 황폐해져 광야처럼 변해 버린 땅까지도 다시금 축복의 땅, 열매 맺는 비옥한 땅으로 변화시킨 것입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회개하면 죄로 인한 심판, 죄로 인한 재앙을 중지하시고 모든 것이 넘쳐 나는 복을 우리에게 넘치게 부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를 통해 예배를 회복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바른 예배를 통해 우리와 교제하기 원하시기 때문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 4:23)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돌아와 마음을 찢고 회개하며 중심을 다 드려 예배드릴 때 긍휼히 여겨주시고(욜 2:18), 다시는 열국 중에서 욕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이며(욜 2:19), 기름진 곡식으로 채워주시고(욜 2:19),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게 하시며(욜 2:23),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게 하는(욜 2:26)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욜 2:28-29)
성령은 죄로 말미암아 황폐해진 우리의 심령에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단비입니다. 성령의 단비로 충분히 적셔진 심령은 옥토로 변하여 풍성한 영적 열매를 맺게 되어 꿈과 희망을 품고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께서 회개하는 자에게 부어주신 최대의 복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끊임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회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예배를 회복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날마다 거룩한 꿈을 꾸며 하나님의 뜻 안에서 귀하게 쓰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 하나님을 움직이는 길 ( 요엘 2:12-14 )
요엘 선지자는 주전 800년경에 활동하던 선지자였습니다. 그 당시는 이스라엘 민족이 죄악으로 인하여 기근과 환란이 그치지 아니하였습니다.특히 메뚜기의 환란이 극심하여 사회와 경제는 가난으로 피폐하여 졌습니다.
우리들이 생각하는 메뚜기는 어릴적 고향을 추억하는 아름다운 기억이 있지만 이스라엘의 메뚜기는 전혀 그런 여유있는 추억을 기억할 메뚜기가 아니고 이 메뚜기 떼가 날라 오면 그 수효가 하늘을 덮어 어둠이 오게 되고 그것들이 내려앉으면 수천마리의 메뚜기가 땅에 내려와 푸른 식물은 모두 먹어 치우고 심지어는 풀뿌리조차 남지 않는 무서운 재앙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메뚜기 떼가 지나가면 그해의 농사는 망치게 되고 한해의 무소출은 견디기 힘든 어려운 것이었습니다.그러나 당시의 사람들은 이러한 재앙이 재수가 없어서려니 하고 근본적인 자신들의 불신앙과 죄악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요엘 선지자로서는 너무도 안타까운 상황이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개와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을 촉구하게 된 것이 이 요엘서의 내용입니다.
그는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으면 우리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수 있고 그 뜻을 돌이킬수 있으며 메뚜기의 환란을 면할수 있고 거기에다가 하나님의 축복과 응답을 받을수 있다고 간절하게 이스라엘 민족에게 촉구하였습니다.
오늘 이 아침에 요엘 선지자의 회개와 믿음을 촉구하는 말씀으로 주님의 뜻을 깨닫고자 합니다.주님 앞에 합당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먼저 회개하고 우리 하나님을 움직여 놀라운 축복을 받는 북실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떤 회개와 믿음의 자세가 우리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1) 금식하는 자세입니다. (2:12)
금식은 음식을 먹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의미하는 금식은 단지 음식을 먹지 않는 자세를 가르키는것이 아니라 식음을 전폐할 정도의 절대 절명의 간절한 마음을 함께하는 금식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욕구 가운데서 제일 강한 욕구가 식욕입니다.먹는다는 것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일이기도 합니다.한끼를 굶어보시면 얼마나 배고픔이 어려운 일이고 참기 힘든 일이라는 것을 경험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참을수 없는 식욕을 금하고 전념을 다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는 자세는 넉넉히 우리 하나님을 움직일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니누웨성 사람들이 요나의 멧세지를 듣고 왕으로부터 모든 백성이 금식하고 심지어는 짐승들까지 금식하며 회개할 때에 40일내에 무너뜨리려던 하나님의 심판이 거두어진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먹는 일이 중요하지만 그것을 거두고 배고픈 쓰라림을 안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향하여 자신의 아픔을 부르짖을 때우리 하나님은 감동하시고 놀라운 역사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 금식하는 절박한 심령으로 회개하여 우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하나님을 움직이셔서 우리 상한 심령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받는 북실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울며 애통하는 자세입니다. (2:12)
두 번째 우리 하나님을 움직이는 회개의 자세는 울며 애통하는 것입니다.눈물이 없는 회개는 참다운 회개가 아닐 것입니다.그리고 눈물 앞에는 누구나 약해지게 되어있고 인격적인 우리 하나님도 우리의 눈물에는 뜻을 돌이키실수 있습니다.
저희집 아들 00이가 예배 시간에 떠들어서 사택으로 데려와서는 혼을 낼려고 했는데 눈물을 흘리면서 손을 싹싹 빌면서 잘못했다고 비는 겁니다. 누가 가르쳐 준것도 아닌데 사색이 되어 울면서 비는데 그 불같이 화났던 감정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오히려 그 아이가 불쌍해지고 측은히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회초리를 들려던 손을 거두고 오히려 안고서는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용서해 주고 오히려 맛있는 과자를 준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이 울며 용서를 비는 모습에 한없이 약해지는 것처럼 우리의 아버지되시는 우리 하나님도 우리의 애통하는 회개에 너무나도 약하여지는 사랑의 하나님임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히스기야 왕을 보십시오! 선지자 이사야로부터 그대의 생명을 거두어 가신다는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그런데 그가 벽을 향하여 얼굴을 대고 통곡하며 자신의 병을 고쳐주시기를 간구할 때에 하나님은 그 뜻을 돌이키시고 그의 질병을 고쳐주시고 그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셨음을 믿고 이시간 애통하며 회개하는 성도들이 되셔서 우리 하나님을 움직여서 하나님의 역사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마음을 찢는 자세입니다. (2:13)
이스라엘 사람들은 회개의 기도를 하게 될 때 옷을 찢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요엘 선지자를 통하여 외적인 옷을 찢지말고 마음을 찢으라고 촉구하십니다.
마음을 찢는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부패하고 약하기 때문에 마음을 의지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고집과 아집으로 가득차 있습니다.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보다 세상과 향락을 좋아하는 세상적인 요소가 더 강합니다.따라서 마음을 찢는다는 것은 이러한 것들을 부숴 버리라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 주님은 요엘 선지자를 통하여 저와 여러분에게 마음을 찢으라고 촉구하고 계십니다. 나의 마음속에 있는 고집과 아집과 위선과 독선, 그리고 세상의 향락을 좋아하는 육적인 생각, 그리고 우리 마음을 지배하는 선입관을 과감히 깨트리시어 고운 가루를 만드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마음이 움직이면 우리에게 놀라운 축복과 역사가 나타납니다.
우리 하나님이 움직여지면 우리에게 어떠한 은혜가 옵니까?
첫째,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시면 우리에게 올 재앙이 내리지 아니합니다. 당시의 이스라엘에게 임한 두려운 메뚜기의 재앙이 내리지 아니할 것이고 또한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삶에 시도 때도 없이 임하는 무서운 환란을 면케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환란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시 50:1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귀한 예배를 통하여 온전한 회개로 우리 교회와 우리 가정에 환란과 재앙을 내리지 않게 하시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복을 내려 주십니다.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화가 바뀌어 복이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면 우리 하나님은 화를 바꾸어 복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요!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이 번제물로 죽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기막힌 일입니까? 아브라함은 아내에게도 이말을 하지 못하고 당사자 아들 이삭에게도 이말을 하지 못합니다. “아버지 제단을 쌓고 제물을 태울 장작은 준비되었는데 제물은 어디 있습니까?” 아들 이삭의 질문에 아브라함은 여호화께서 예비하실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삼일길을 걸어서 드디어 모리아 산에 왔습니다. 그는 장작을 쌓고 아들을 결박하고 두말하지 아니하고 그 목에 칼을 겨누어 찌르려고 합니다. 이 마음과 자세가 우리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하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한마디의 불평도 한마디의 원망도 하소연도 하지 아니하고 지체없이 아들을 향하여 칼을 겨누는 아브라함의 자세에 하나님은 만족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셨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향하여 두 번이나 급하게 부르셨습니다. 그리고는 네가 네 독자 이삭까지도 나를 위하여 아끼지 아니한 마음을 내가 보았다하시고 그 제사를 양으로 대신하게 하셨습니다. 가정에 말할 수 없는 환란이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이후에 하나님은 이브라함의 소원은 모두 이루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약속하신 모든 약속은 일점일획도 남김없이 완성시켜 주셨습니다.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 이 하나님을 믿으시고 소망 중에 굳게 서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제사를 열납하십니다. (2:14)
처음에 하나님은 그 백성들에게 최고의 예물인 제사를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뜻을 아는 이들은 열심히 단을 쌓고 열심히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렸습니다. 그러나 인생이 죄악을 범하고 그 마음은 무디어져 갔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제사가 형식이 되고 제사의 주인공인 하나님은 배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진노하셨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그들의 제사를 받지 아니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렘 14:12) “그들이 금식할지라도 내가 그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번제와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그들을 멸하리라”
그런데 금식하고 애통하며 마음을 찢는 회개를 하면 우리 하나님이 그 예배를 받으신다는 놀라운 약속을 우리들에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주일을 성수하며 정성된 예배를 드리고 아무리 목청을 돋워 찬송하고 밤을 새워가며 기도하여도 하나님이 듣지 아니하신다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오늘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온전한 회개의 모습으로 하나님을 움직이셔서 우리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축복을 넘치시도록 받으시는 사랑하는 00교회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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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잠 22:9).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살아 가면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고 실천 하면서
모든 일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모든 사람에게 사랑으로 대하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참된 하루 하루가 되시기 바라며
무더운 날씨에 마음 만은 뽀송 뽀송한 하루 즐겁고 신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