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의 크기가 달라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지난 한 주간은 제게 참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바울처럼 몸에 가시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가끔식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며 뜬금없이 나타나는 나름의 고통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문제를 수없이 만납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기기도 하고, 믿었던 관계에서 상처를 입기도 하며, 애써 쌓아 온 것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지금 겪고 있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크고 무거운 문제처럼 느껴집니다. 고통의 한가운데에 서 있을 때에는 그 고통 너머의 세상을 바라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실 작은 가시 하나가 손끝에 박혀도 온 신경이 그곳으로 쏠립니다. 다른 곳이 아무리 건강해도 지금 아픈 손끝만 계속 의식하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도 이와 비슷합니다. 마음에 상처가 생기면 삶 전체가 그 상처로 덮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아직 잃지 않은 것보다 잃어버린 것이 더 크게 보이고, 여전히 남아 있는 은혜보다 당장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더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이전보다 훨씬 더 크고 깊은 고통을 만나는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문득 지난날 그렇게 힘들어했던 문제가 지금의 고통에 비하면 그리 크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당시에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던 일이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던 일이었고,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느껴졌던 순간도 인생의 한 장면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더 큰 고통이 이전의 고통을 작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그때의 아픔도 분명히 아픔이었고, 그때 흘린 눈물도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더 깊은 고통을 지나며 우리는 고통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얻게 됩니다. 문제의 크기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좁아질 수 있는지 알게 되고, 한때 전부라고 생각했던 일이 사실은 인생의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도 배우게 됩니다. 지난 고통이 작아 보이는 시간은 어쩌면 우리의 삶이 그만큼 넓어졌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이전에는 하나의 문제밖에 보지 못했지만, 이제는 그 문제를 둘러싼 더 넓은 삶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상실만 보던 자리에서 아직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 닫힌 문만 바라보던 눈으로 다른 곳에서 열리고 있는 작은 길을 살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고통은 우리의 시야를 좁히기도 하지만, 잘 통과한 고통은 오히려 우리의 마음을 넓혀 줍니다. 이전에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쉽게 판단했지만, 내가 아파 본 뒤에는 함부로 말하지 않게 됩니다. “그 정도 일로 왜 그렇게 힘들어하느냐”고 말하기보다, 그 사람에게는 그 일이 지금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짐일 수 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더 큰 고통을 경험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작은 아픔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내가 더 깊이 아파 보았다는 사실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평가할 자격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조심스럽게 품어야 할 책임을 줍니다. 아픔은 객관적인 크기로만 결정되지 않습니다. 같은 일도 누군가에게는 지나가는 바람일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의 뿌리를 흔드는 폭풍이 될 수 있습니다.
돌아보면 우리가 지나온 수많은 고통 가운데에는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시간이 지난 뒤 비로소 의미를 발견하게 된 것들이 있습니다. 고통 자체가 선했던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고통마저도 헛되게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교만을 낮추셨고,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게 하셨으며, 내가 붙잡고 있던 것이 얼마나 연약한지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무엇보다 문제없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믿음은 지금의 고통이 작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일이 아닙니다. 믿음은 아픈 것을 아프다고 정직하게 고백하면서도, 그 아픔이 내 삶의 마지막 결론은 아니라고 믿는 것입니다. 지금의 눈에는 고통밖에 보이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여전히 일하고 계심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고통을 멀리서 바라보시는 분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주님은 우리의 아픔을 설명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친히 고통 속으로 들어오셨고, 버림받음과 상실과 죽음의 깊은 자리까지 내려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통 속에서 드리는 신음은 하나님께 낯선 언어가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의 눈물을 아시며,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아픔까지도 이해하십니다.
동시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지금 겪는 고통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 주십니다. 십자가가 끝이 아니었던 것처럼, 우리의 어두운 시간도 마지막 장면은 아닙니다. 오늘은 이해할 수 없고 견디기 어려운 일이라 해도, 언젠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돌아보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고통이 없었다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그 고통이 우리를 완전히 무너뜨리지는 못했다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살다 보면 지나온 고통이 작아 보이는 날이 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의 눈물이 무의미해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눈물을 지나며 우리의 마음이 조금 더 깊어졌고, 우리의 시선이 조금 더 넓어졌으며, 하나님의 손길을 이전보다 더 오래 바라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고통이 너무 크게 느껴진다고 해서 스스로를 책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아픈 만큼 충분히 울어도 됩니다. 다만 이 고통이 내 삶의 전부이며 영원할 것이라고 단정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이전의 고통을 지나 여기까지 온 것처럼, 지금의 고통 또한 하나님의 손 안에서 지나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오늘을 돌아보며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때는 모든 것이 끝난 줄 알았지만 끝이 아니었다고, 그 아픔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더 컸으며, 그 고통보다 나를 붙드신 하나님의 손이 더 강했다고 말입니다.
고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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