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6월이면...
우리나라의 6월이면 다른 때보다 나라에 대한 생각을 하는
달로 여겨지고 있다.
6월 6일은 현충일.
6월 10일은 6.10 민주화 항쟁 기념일.
6월 15일은 615남북공동성언
그리고 6월 25일 6.25 사변일
6월을 빼고, 우리나라의 한국현대사를 논할 수 없다.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에
대한 다양하고 한다.
이 책의 저자 박태균은 한국전쟁이라 명명했다.
그리고 한국전쟁 자체 뿐만 아니라 전쟁 전후의 나라및 국제정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 박태균은
한쪽에 치우지지 않으려고 노력한 것이 엿보인다.
지금까지 한국전쟁에 대한 평가는
남한과 미국의 관점에서 본 평가가 대부분이다.
그러면서 민주화세력이 정권을 잡기 시작하면서,
한국전쟁에 대한 시각도 많이 바뀌게 되었다.
그것이 좌로 치우친 평가가 아닌,
보다 객관적인 정보를 통한 평가라는 것이다.
그리고 KBS, MBC에서도 방송을 통해서 한국전쟁을 다시 평가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국내외 전문가들이 한국전쟁에 대한 연구결과를
연구 논문이나 책으로도 펴내고 있다.
인터넷 서점에서 '한국전쟁'으로 검색해봐도 여러 권의 책이 나온다.
지은이는 세계 역사에 가장 영향을 미친 우리나라 역사로
한국전쟁을 꼽고 있다.
이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이 책은 예전에 헌책방에서 구입한 것인데,
6월에 읽으면 어울릴 것 같아 이제서야 집어들었다.
다시한번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숨기고 싶은 역사를 짚어보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기원해 보았다.
그리고 과연 우리나라의 미래는 어찌될까도 생각해 보았다.
분명히 남북이 다시 합쳐질 날이 오긴 올텐데,
그날이 언제쯤 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반공교육을 철저히 받던 초등학교 시절...
그래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노래부르던 시절...
나는 생각하기를, 내가 어른이 되면 통일이 되는 줄 알았다.
어른이 된 지금 나는 생각하기를,
과연 내가 죽기 전에 통일이 될 수 있을까? 하고 있다.
지지부진한 남북관계.
앞으로 전진하기에도 먼 남북사이가
최근에는 뒤로 후진만 하는 것 같아 답답하다.
1. 한국전쟁의 원인
한국전쟁의 원인을 한가지로 딱집어 이야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은이 또한 한국전쟁의 원인을 국내정치와 국제정세로 구분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알다시피 광복 후 우리나라는 우리의 뜻에 상관없이
둘로 나뉘어지고 말았다.
둘로 나뉘어지면서도 그 기간이 이렇게 오래갈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좁은 땅은 남북으로 나뉘었고, 사상은 좌우로 나뉘게 되었다.
이런 역사는 일제시대 독립운동 때부터 어느정도 예견되어 있던 것이다.
독립운동을 할때는 사람들은 사상에 따라 분파에 따라 각기 독립운동을 하였던 것이다.
그것을 하나의 통일된 단체로 통합하려는 노력도 있었지만,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광복 후 하나의 독립정부를 세울 수 있는 기회도 있었지만,
소련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이상하게 일이 꼬이기 시작하였다.
...
한국전쟁의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남북 분단의 원인을 먼저 알아야한다.
먼저 광복이후 좌우 합작의 실패로 볼 수 있다.
지은이는 당시 많은 사람들 중에 여운형을 비중있는 인물로 다루었다.
그는 소련과도 친하고, 미국과도 친한 인물로써,
그만이 좌우합작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가 암살된 동시에 좌우합작은 물건너 간것으로 평가하였다.
당시 나라는 친탁과 반탁으로 분열되어 극히 혼란되었던 것이다.
...
국내사정 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계도 새로운 사상대립으로 냉전시대에 막 발을 들이고 있었던 시기였다.
미국은 일본과 대만을 아시아의 교두보로 두고 있었는데,
한반도가 소련의 영향력 아래에 있게 되면 그들에게 유리함이 없었다고 판단하였다.
그로 인해, 미국이 한반도에서 쉽게 발을 뺄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49년 미군이 철수했던 것은 왜일까?
진짜로 일각에서 의심하는 남침유도설을 증명하는 것일까?
2. 남침인가? 북침인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지식에 의하면 한국전쟁은
북한이 남한을 공격한 남침이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남한이 먼저 공격한 북침이라고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당시 전쟁의 주인공들만이 알고 있겠지만,
여러 정황을 봐서 남침을 정설로 보고 있다.
한편, 일각에서는 미국이 북한으로 하여금 남한을 침략하도록 유도했다고 하는
남침유도설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의 증거로 주한미군철수를 들기도 하는데,
이것은 당시 미국의 정책상 한국이 주요원조국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지,
남침을 유도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당시 미국방위선은 대만과 일본으로 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남침유도설이 정황상 사실이 아니긴 하지만,
전쟁 일주일만에 미군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의 개입과
전쟁 발발에 대한 정보를 알고도 아무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은 의심을 살 일이다.
그리고, 당시 미국이 남한에 대한 지원을 제한한 이유는
바로 이승만의 북진통일론에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래기도 하였다.
이승만은 당시 북진통일론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고 한다.
이는 이승만이 정치적으로 기반이 허약하여 이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하는데,
참 그때나 지금이나 한심한 지도자는 여전하다.
...
그럼 왜 다른 때가 아니고 1950년 6월인가?
지은이는 이 문제도 당시 상황을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설명하고 있다.
1948년 남한은 단독정부 수립 후 정치적으로 혼란을 겪었고,
1949년 여순사건을 수습하면서 점차 안정을 찾게 되었다.
한편,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스탈린의 소련과 마오쩌둥의 중국과 계속된 협상을 하여
전쟁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였다.
처음에 스탈린은 미군이 남한에 주둔해있었고,
그런 미군을 건들였다가는 다시 세계전쟁으로 확대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여 반대하였다.
그런 상황은 변화되었다.
중국 공산당혁명이 성공하였고, 소련이 원자탄 개발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미군이 남한에서 철수하였다.
이로 인해 스탈린과 마오쩌둥은 동의를 하였다.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스탈린의 공산주의 확대를 위해
먼저 명령을 내려서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과는 좀 거리가 있었다.
중국도 공산당혁명 성공에 도움을 준 북한의 요청을 외면할 수 없었다.
1950년 5월 중국이 협력할 것을 동의했다고 한다.
그렇게 1950년 6월 씻을 수 없는 우리 민족의 피를 흘리게 된 것이다.
3. 전쟁의 실패들
어느 전쟁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순간의 선택이 전세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전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중에 지은이는 실패들을 눈여겨 보았다.
제목을 실패라고 적었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패를 불러일으킨 실수라고 봐야 옳겠다.
먼저 북한의 실수이다.
단시일에 서울 정복에 북한은 서울에서 3일간 머물게 된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로 볼 수 있는데, 정확한 원인은
당시 북한의 수뇌부만 알 수 있을 것이라 한다.
서울을 점령하면 나머지는 저절로 그들 손에 들어올 것이라고 북한이 생각했다는 설과,
전략적인 문제로 인해 3일을 머물렀을 것이라는 설과,
전면전이 아닌 제한전으로 생각했을 것이라는 설 등 여러가지가 있지만,
정확한 이유는 무엇인지 모른다고 한다.
아무튼 그 3일은 남한과 미군이 반격준비를 하는데 큰 시간이었다고 한다.
그 결과는 북한이 얼마 후 다시 퇴격하게 된다.
...
오만은 금물이다.
특히 사람의 생명을 담보를 하는 전쟁같은 경우
적을 얕보는 것은 금물이다.
2차 세계대전의 승리가 그들을 오만하게 만들었는지,
미국은 한국전쟁 초기 저지선 방어에 실패하고 만다.
대전 지역 등 충청지역에 방어선을 쌓았지만,
지형에 익숙하지 못하고, 적의 얕본 죄로 미군은 전투에서 지고 말았다.
이후 북한은 낙동강까지 거침없이 진격하게 된다.
하지만, 낙동강 전선이 오래 지속되면서 북한 또한 두번째 실수를 하게 된다.
누구나 예상가능했던 인천상륙작전을 허용했던 것이다.
당시 군사력이 넉넉치 못했던 북한군이 부산과 인천을 동시에 대비할 수 없었다는 것이
그 이유라고 한다.
맥아더의 인천상륙의 성공으로 인해 북한은 허리가 잘리고 보급선도 원활하지 못했다.
각개전투로 후진하는 길 밖에 없었다.
다시 지은이가 맥아더의 실수로 지목한 것이
인천상륙작전에 비해 너무나 늦어진 서울 수복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북한이 북으로 도망가기에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는 것이다.
아무튼 미군은 늦었지만, 북으로 밀어붙였다.
하지만, 미군은 중국과 마찰을 피하기 위해 조심하기도 하였다.
압록강 주변에는 유엔군은 되도록 가지 말라고 지침을 내렸다.
이런 미국의 전술은 맥아더와 갈등을 빚게 되었다.
맥아더는 핵폭탄을 사용하자는 등 보다 강경하게 나가게 되었고,
계속된 미국정부와 마찰로 인해 그는 사령관 지휘를 내놓게 된다.
압록강을 얼마 앞둔 전선은 중국의 개입으로 다시 후퇴하게 된다.
중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무기도 없이 투입되었다고 하는 인해전술.
이 또한 사실과 많이 왜곡되어 전해진 내용이라고 한다.
중국과 대치했던 미군의 입을 통해 전해진 내용일 뿐이라고 한다.
그들은 중국공산당 혁명을 이끌었던 이들이고,
분명 많은 중국인들이 전쟁에 참여했지만, 무기도 없이 맨손이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다시 미군과 남한은 밀렸다가 다시 반격하여
전쟁이 처음 시작한 38선 부근에서 전선이 형성되었다.
지금까지가 전쟁 발발 1년 정도 되었을 상황이다.
4. 전쟁의 결과
51년 여름 처음, 정전협상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협상은 쉽지 않았다.
포로의 문제도 많았고,
경계선의 문제도 많았다.
정전협상 중 도장찍은 그때까지의 점령영토를 각각 남북한의 땅으로 한다고 하였기에
전선이 형성된 곳에서는 매일같이 고지를 뺏고 빼앗기는 전투가 계속되었다.
물론 그로 인해 수많은 젊은 군인들이 죽어갔다.
그들의 희생은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는가?
계속된 정전협상은 시작한 지 2년여만에 타결을 보았다.
...
누가 승리한 전쟁인가?
남한, 북한은 서로 자신들이 승리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전쟁 시작하기 전의 분단선과 거의 비슷하게 휴전선이 남아있고,
양쪽 모두 군인 뿐만 아니라 수많은 백성들이 목숨을 잃었고,
국토는 재건할 수 없을 정도로 폐허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남한이 승리한 것인가?
북한이 승리한 것인가?
뿐만 아니다. 남한과 북한은 서로에 대한 적대감이 하늘을 치솟아
다시는 하나가 될 수 없을 것만 같은 상대가 되었다.
전쟁을 하기 전보다 남한, 북한 모두 상황은 더 안 좋아진 것이다.
남한도 패배한 전쟁이고, 북한도 패배한 전쟁이다.
승리한 나라가 있다면 지은이가 지목했듯이 일본이다.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 나락에 빠져있던 일본.
미국의 군사 기지를 일본에 두면서,
한국전쟁을 이용하여 재건에 힘쓴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을 도와주면서 2차 세계대전의 전쟁에 대한 죗가도 어느정도 씻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자국의 보호를 목적으로 한 자위대를 만들 수 있도록
미국으로부터 허가를 받게 되었다.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일본이야말로 진정한 승리국가였다.
5. 또다른 전쟁
세계 전쟁사에서 한국전쟁처럼 빠른 시간내에 점령지가 바뀐 전쟁도 드물다고 한다.
금방 북한 한반도 전체를 점령하려는 듯 했다가
반전이 일어나 다시 남한과 미군이 압록강까지 밀어붙이고,
그것도 잠시 다시 대전지역까지 밀리는 이런 전쟁의 양상은 또다른 불행을 만들었다.
이는 양민들에 대한 학살이다.
전선은 앞뒤로 빠르게 왔다갔다 했지만,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힘없는 백성들은 그곳에 항상 있었다.
피난을 떠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1.4 후퇴를 빼고는 그렇게 피난을 떠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그렇다보니, 점령한 군인들의 성향에 따라 많은 양민들이 죽었다.
이것에 대한 책임은 남한과 북한, 그리고 미국이 모두 자유로울 수 없다.
최근에 와서까지 밝혀지는 양민학살사건이 있지만,
그것조차도 일부일 뿐이다.
그들의 죽음은 모두 과거가 되었고,
괜시리 그것에 대해 책임지려고 다시 그 일을 자진해서 들추려는 정부는 없다.
그들의 불쌍한 넋만이 아직도 이땅에 떠돌고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리고 전쟁속에 경제 혼란은 또다른 전쟁을 방불케 하였다.
전쟁이 일어나면 물가상승은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국가재정이 마비된 상태에서 유엔군 지원까지 담당해야 했던 남한은
다시한번 백성들의 희생을 강요했던 것이다.
정말이지 전쟁이란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질 않는다.
인류 역사를 통해 이런 진리를 모두들 알고 있지만,
끊이지 않는 것이 바로 전쟁이다.
도대체 전쟁의 목적은 무엇일까?
6. 끝나지 않은 전쟁
한국전쟁의 정전협상이 완료된지 반세기가 훌쩍 넘었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둘이다.
그리고 언제 하나가 될지 기약도 없다.
최근에 와서는 그 둘이 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고 부자되는 것으로 변해버렸다.
통일이 되면 분명 한동안 남한 경제는 뒷걸음질을 하게 될 것이다.
그것 때문에 통일을 반대해야 하는가?
언제고 해야할 통일이라면 그런 것쯤은 희생해야 하지 않는가?
그런 것은 둘째 치고라도 한반도가 하나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하나둘이 아니다.
50년 넘게 벌어진 사상과 생각의 차이 또한 문화적 차이가 날 정도로 많이 벌어져 있다.
그리고 주변 강대국 조차 한반도의 통일을 꺼림칙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 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우리나라는 통일을 할 수 있을까?
그런 현실적인 어려움을 생각해보면
지난세기 말에 독일이 통일을 이룬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부럽기도 하지만, 우리 또한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늘 이야기하지만, 북한에 있는 명산이 나를 부르는 듯하다.
책제목 : 한국전쟁
지은이 : 박태균
펴낸곳 : 책과함께
펴낸날 : 2005년 6월 25일
정가 : 16.800
독서기간: 2008.05.02 - 2008.06.04
페이지: 407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