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교구 계산성당 다음으로 오래 된 성당!"
가실성당은 1895년 본당이 창립되기 전부터 이미 1784년 한국 천주교회 창립 시에 천주교의 복음을 받아들인 실학자 성섭 가정이 바로 이곳에 오랫 동안 살고 있었습니다.
그 후 그의 증손자인 성순교는 1860년 경신 박해 때 상주에서 순교하였습니다. 성당 입구에 있는 순교현양 기념비에는 그 가문의 역사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편 가실 성당은 한국교회에서 11번째 설립되었으며, 대구 대교구에서는 대구 계산성당 다음으로 1895년에 설립되었습니다.
그 때는 본당 관할에 칠곡, 성주, 김천, 선산, 상주, 문경, 예천, 군위, 영천 지방의 31개 공소가 있었습니다.본당 신부가 각 공소에 매년 적어도 2회 이상 순회 사목을 했는데, 그 때는 말과 도보로 다녔습니다. |
현재의 이 성당 건물은 1922-1923년에 지어졌습니다. 건축양식은 신로마네스크 양식이며 설계자는 프랑스인 Victor Louis Poisnel - 박도행 신부입니다. 그는 1896-1925년까지 대구 계산성당을 비록하여 30년간 한국교회의 거의 모든 교회 건축물을 설계했습니다.
가실성당의 공사는 중국기술자들이 했는데 벽돌은 현장에서 구워서 썼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의 본당 신부는(프랑스인 Victor Tourneux - 여동선) 망치로 벽돌을 한 장씩 두드리면서 일일이 다 확인을 했다고 합니다.
가실 성당의 주보성인은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인 안나
입니다. 성당에 있는 안나상은 건축할 때 프랑스에서
수입했고 14처 액자들은 중국에서 들여왔습니다.
6.25 때 양측 군인들이 가실 성당을 병원으로 썼습니다. 그래서인지 낙산 지역에 전투가 심했는데도 가실 성당이 전혀 상하지 않았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새로운 신학에 따라 1964년에 제대 쪽의 구조가 많이 바뀌었고 제의방을 만들기 위해서 약간의 확장공사가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