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중에 방 정리를 하다가 몇 년 전 취재한 촬영 테이프들을 찾았습니다. 먼지를 뽀얗게 덮어 쓴, 잊혀진 테이프들 중에서 몇 개를 다시 편집해서 올리겠습니다.
2000년 여름, 곰PD는 한 방송사의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석 달 동안 해군 환태평양 훈련(RIMPAC) 분대 함정에 동승해서 취재 한 적이 있습니다. 5월 초순 진해항을 떠난 우리 해군 훈련 분대는 기함 을지문덕(DDH-972)을 비롯해서 호위함 전남(FF-957), 잠수함 박위(SS-65), 항공 전력으로 P3-C 대잠 초계기 1대, 슈퍼링스 대잠 헬기 1대로 구성 되어 있었죠. 이 해 훈련이 특별했던 것은 대양해군의 첫 결실로 평가되는 한국형 구축함 을지문덕함이 참가해서 대함, 대공 미사일을 실제 발사, 표적에 정확하게 명중시킴으로써 우리 해군의 첨단무기 운용 능력을 증명했을 뿐 아니라 사상 최초로 수상-수중-항공의 3박자 전력의 조화를 보여주었다는데 있습니다. 특히 우리 잠수함 박위함은 청-홍군으로 나누어 자유 공방전을 벌인 훈련에서 단 한 차례도 대항군에게 노출되지 않고 미 항모를 비롯한 대항군 수상함 11척을 가상 격침시키는 눈부신 활약을 보여줬지요.
첫 번째 영상은 진해를 떠난 을지문덕함과 전남함이 미 해군 급유함으로부터 연료를 공급받는 ‘해상 연료수급 훈련’입니다. 원양에서 작전하는 해군 함정들은 원자력을 동력으로 하지 않는 이상 필연적으로 해상에서 연료를 보충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해군은 그 시점이 연료가 60% 남았을 때를 최저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해군 함정은 어디서 작전을 하든 연료를 보충 받은 지점까지는 돌아 올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대한민국 해군 구축함 을지문덕 DDH-972, KDX-1계획으로 건조된 3,900톤 광개토대왕급의 2번함으로 국제적으로는 옥포급으로 불립니다. DDH의 D는 구축함(Destroyer)-H는 헬리콥터(Helicopter)를 나타냅니다. 바로 헬리콥터 탑재 구축함이지요.
3,900톤급의 을지문덕함이 경제속도(15노트·약 28㎞)로 1시간을 항해할 때 소모하는 연료량은 약 1300ℓ. 그러나 긴급작전이나 기동훈련 시 최고 속력(30노트)으로 기동해야 하는데, 연료 소모량은 경제속도로 움직일 때의 몇 배(자세한 건 군사기밀이라...)로 늘어나게 됩니다. 연료뿐만 아니라 실전 상황에서는 탄약과 청수(淸水) 등도 보급을 받아야겠지요.
2,200톤급 한국형 호위함 전남함(FF-957), 1981년 취역한 울산함을 시작으로 총 9척이 배치된 호위함입니다. 전남함은 1989년에 취역하였습니다.
5월 10일 아침 멀리서 우리 함대의 전방에 연료를 보급 받는 캐나다 함대가 보입니다. 오늘 바다의 주유소는 미 해군 급유함 존 에릭슨(T-AO 194, John Ericsson)으로 만재 배수량 40,700톤의 제법 큰 함정입니다. “총원 배치 붙어” 구령에 따라 갑판 수병들이 을지문덕함 우현에 정렬 합니다.
미 해군 급유함 존 에릭슨 (T-AO 194), 미 해군은 동형의 급유함을 14척 운용하고 있습니다. 속력 15노트, 작게 보이던 급유함에 다가서자 그 큰 덩치가 카메라 앵글안에 꽉 들어차는군요. 존 에릭슨의 좌현에는 을지문덕함이, 우현에는 전남함이 나란히 항진하며 동시에 유류를 공급 받아야 합니다. “굿모닝, 을지문덕...” 존 에릭슨의 스피커에서 어눌한 한글발음이 들려 오는군요.
을지문덕의 갑판에는 긴장감이 흐릅니다. 존 에릭슨의 갑판에서 을지문덕함으로 로프를 매단 투색총이 발사됩니다. 급유 파이프를 연결하기 전에 파이프를 당길 수 있도록 로프를 보내는 것이죠. 우리 해군 갑판요원들이 재빠른 솜씨로 로프를 낚아채 도르레에 연결합니다.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조금만 방심해도 대형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죠. 수천톤의 덩치를 자랑하는 함정들이 태평양의 거친 파도와 부딪치면서 불과 몇 십미터 거리로 나란히 움직입니다.
존 에릭슨함으로부터 직경 20cm의 거대한 고무 송유관이 서서히 넘어 옵니다. 철커덕하는 소리와 함께 송유관이 유류 탱크에 정확히 꽂힙니다. (“만땅, 가득 넣어” 어쩌면 을지문덕함장님이 말씀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유류수급에 걸리는 시간은 약 30분, 자칫 한 함정의 기동 방향이 조금이라도 달라지면 함정끼리 충돌할 수 있기 때문에 각 함정들은 피겨스케이팅 파트너처럼 나란히 파고 3m의 거친 바다를 헤쳐 나갑니다. 갑판 한쪽에서는 수병들이 수시로 두 함정간의 거리를 측정하며 목이 터져라 “현측거리 170피트...현측거리 160피트”를 외쳐 댑니다.
유사시에는 이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라고 말합니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 나란히 움직이는 함정들은 공습이나 잠수함의 공격으로부터 취약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죠.
연료를 보급 받은 을지문덕함과 전남함은 존 에릭슨을 뒤로 하고 각각 전속으로 멀어져 갑니다. 근데 한 가지 궁금한게 있는데 “을지문덕 함장님, 기름값 결제는 카드로 하셨나요? 아님 현금으로??” 물론 농담인거 아시죠? |
첫댓글 외상거래죠 ㅡ.,ㅡ ;;
ㅋ;;;;
위험 부담이 클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