숀 코너리(THOMAS SEAN CONNERY)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영국의 위대한 배우, 그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는 역시 007 시리즈, 그는 최고의 첩보원 '제임스 본드'가 돼 우리 앞에 나타났었지요. 보는 사람들은 누구나 魅了될 만큼 막강했습니다. 007 영화에선 我軍, 敵軍도 따로 없이 그를 만나는 여인들은 모두 그에게 陷落(?)돼 '본드 걸'이 됐습니다. 그런 그가 90년 세월을 살고 떠났습니다.
숀 코너리는 1930년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났습니다.
젊었을 땐 우유 배달, 막노동, 바디빌딩, 쇼 비지니스 등 힘든 세월을 거치기도 했던 노동계급 출신입니다.
그는 불과 32살 때 007 영화에 전격 발탁됩니다.
섹스어필하고, 늘 준수한 용모의 그가 한창 미남이었던 시절입니다.
그의 007 첫 작품은 1962년 작 '닥터 노'(Dr. NO)인데, 우리나라에선 제2탄 '위기일발'(FROM RUSSIA WITH LOVE. 1963)이 먼저 상영됐기에 그걸 첫 편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만, 그깟 게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이후 '골드 핑거', '선더 볼 작전', '두 번 산다'에서 주연하며 007에서의 제1대 제임스 본드 역을 인상 깊게 연기하면서 일약 세계적 스타로 우뚝 섭니다. 6탄은 '다이아몬드는 영윈히', 그리고 한참 후인 1983년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그건 어쩐 일인지 공식 007 작품으로 공인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제임스 본드 역을 넘겨받은 배우는 순서대로 조지 레젠비(1편), 로저 무어(7편), 티모시 달튼(2편), 피어스 브로스넌(4편), 다니엘 크레이그(4편)입니다.
그러나 뒤를 이은 배우들 중 누구도 '코너리의 본드'를 능가하진 못 했다는 게 衆論입니다.
애초에 원작자 이언 플레이밍은 제1대 본드 役으로 캐리 그랜트나 데이비드 니븐을 원한다는 意思를 내비치기도 했다지만, 행운의 여신이 코너리의 손을 들어준 모양입니다.
그나저나 007시리즈는 2015년 제23편 '스펙터' 이후엔 스톱된 상태, 그러나 언젠가는 또 보게 되지 않을까요?
007을 내려놓은 후, 숀 코너리는 바람과 라이온, 장미의 이름, 붉은 10월, 王이 되려고 한 사나이, 마니, 머나먼 다리, 살라코,
더 록, 쿠바, 앤트랩먼트 등 열거하기도 벅찰만큼 많은 작품에 출연했고, 얼마 전까지도 새 영화에 모습을 나타내며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지요.
케빈 코스트너와 주연한 '언터처블'(1987)에선 노련한 경찰관 역으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평안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 '이라듯 그가 세계적 흥행작 '반지의 제왕'에서의 '간달프' 役 제의를 거절했을 땐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안 맥케런이 대신했지요.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잠자다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는 숀 코너리, 생전의 인기만큼 그는 '죽는 福'까지 누렸군요.
사람들은 그를 오래도록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