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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제사와 전통 조상제사 비교연구
Ⅰ.
서론
1.
문제의 제기
이조
5백년의 유교 사상은 한국 사회를 지배하여 기독교 이전부터였다. 물론 사회의 밑바탕에 흐르는 샤머니즘과 불교등의 강한
종교혼합(syncrefism)작용을 간과하기는 어려우나 유교사상의 영향력은 실로 한국의 정신문화의 기틀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
홍이섭, “기독교와 유교문화”, 「기독교사상」(1963.6), p. 17.
특히
유교 사상은 한국의 전통 윤리관을 지배하여 영향을 주었다. 유교적 윤리사상의 기본적 특색은 가족중심의 윤리이며 이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그
핵심을 이루고 있다. 부자간의 관계에서도 유교의 강조점은 부모에 대한 자식의 도리로서의 효가 중심 개념을 이루었다. 2 김태길, “한국에
있어서의 전통적 도덕관념과 새조류의 조화문제”, 「논단」, 2호 (1965), p. 8.
그리고
이 효를 표현하는 방법으로서의 조상숭배 곧 제사제도가 그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제사문화와 조상숭배 사상은 이조후기 민간사회의 정신적
지주였다고 할 것이다.
이조
유교문화권에 도전한 기독교는 조상제사가 모세의 십계명 가운데 제1, 제2계명을 범하는 우상숭배라는 이유로 유교에 대하여 비판적이었고 따라서
제사를 금하게 되었다. 그러나 유교사상에 젖어있는 한국사회는 기독교가 조상을 무시하는 불효의 사교라고 하여 기독교를 배격 3 윤기석,
“조상숭배에 대한 윤리적 연구”, 「기독교 사상」 (1969.11), p. 89.
하였다.
실로 기독교가 한국문화의 갈등을 갖게 된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 바로 조상제사문제라고 할 것이다. 이 갈등으로 가족, 친족간의 불화와 단절을
가져왔고 지금도 문중에서 일부만이 신자인 경우 그 부모나 친족이 별세하여 행사를 치루고자 할 때 장례절차부터 의견이 충돌되고 이로 말미암아 형제
친족간에 대화가 끊어지는 사례가 많다. 이 문제는 선교적 측면에서 볼 때에도 복음전파에 결정적인 거침돌이 되어왔다. 특히 사상이 완고한 집안의
자녀들은 신앙을 가질 수 없게 되었고 그가 장자이거나 종가의 자손인 경우 더욱 그렇다. 믿는 자는 가족과 친족에게 따돌림을 받았고 믿는 자들
자신이 친족들의 항상 적극 참여하지 않으므로 대화와 선교의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전통 조상제사를 연구함에 있어 구약의 제사를 정확이 이해하는
것은 조상제사에 대한 필요성과 합리성의 유무를 분석 평가하는데 중요한 척도요 시금석이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전통 조상제사와 구약의 제사를
동시에 비교 연구함으로 첨예하게 상충하는 핵을 깊이 조명해보고자 한다.
2.
연구의 목적 및 방법
1)
연구의 목적
기독교는
항상 시대적인 해답을 제시해 왔다. 기독교 신학은 시대적 질문의 답변이었고 교회의 사역은 시대적 필요에 대한 대응이 였다. 시대적 답변이 없는
신학과 대안은 생명력이 없고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지 못하는 교회목회는 설득력과 영향력을 상실한 명목상의 것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비성경적인
조상제사의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이 자유함을 자질 수 있다. 신앙생활 속에서 확신을 가지고 여러 종교적인 갈등을 해결
할 수가 있다.
여기에
본 논문은 종교적 갈등과 오해로 인한 친족간의 문제를 인식하며 대화와 접근 및 갈등 해소의 방향을 모색함과 선교의 문을 보다 넓게 열어야
하겠다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제시한 논제를 다루어 나가려고 한다.
2)
연구의 방법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생활을 하는데 지침이 되는 책은 성경이다. 하나님의 일을 잘 알고 그 일에 확신을 가지려는 사람들은 성경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신적인 계시를 요약해 놓은 책이기 때문이다. 성경 안에서 인생에 대한 온갖 모든 해답이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의무와 우리에게 요구되는 헌신이
어떤 것이든 성경은 모든 해답을 우리에게 제시해 준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이다. 조상제사를 사후에 효행으로 여겨왔던 비
그리스도인의 행위는 성경에 어긋난 행위이며, 우상 숭배이다.
따라서
본 논문의 연구방법을 다음의 몇 가지 방법으로 연구하려고 한다. 먼저 문헌 연구 방법이다. 조상제사 의례는 너무나 전부터 내려오는 민간의례이기
때문에 이를 깊이 다루어 온 문헌들을 통하여 연구하고자 한다. 다음으로는 사적고찰 방법이다. 조상제사 의례를 형성과정에서 역사적 사상적 종교적
배경을 고찰함으로 그 시대와 문화속에 끼친 영향들을 연구하게 된다. 그리고 비교 연구 방법이다. 구약의 제사와 혼합된 여러 종교중에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 충돌하고 있는 유교제사를 비교 관찰하고자 한다. 본 연구는 한국 전통 관혼상제 의례 중에서 조상 제사 부분만을 연구하되, 특히
유교제사를 중심으로 다루려고 한다. 전통 조상 제사는 목회 현장에서 가장 강하게 충돌되어 문제가 있어서 제사가 갖고 있는 특성과 기독교의
구약제사가 갖고 있는 복음의 특성을 연구 하며 이에 따라서 선교 방안을 제시 하고자 한다.
Ⅱ.
구약의 제사개념
1.
구약의 제사제도의 의의
일반적으로
제사란 신령에게 음식물을 바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정성을 다하는 종교의식으로서 제사를 받드는 대상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구분할 수 있겠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일반적인 통념상 선조에 대해서 제사하는 가제를 뜻하게 되었다. 4 기독교 대백과사전 편찬위원회, ?기독교 대백과사전?, 제
13권 (서울: 기독교문사, 1984), p. 1034.
또한
일반적인 제사의 기원은 원래 원시종교의 한 형태인 사령숭배에서 비롯한 것이며 당초에는 산짐승이나 생물을 직접 바치는 희생에서 시작하여 점점
정제된 음식물이나 그 밖의 방법을 원용하는 상징적 수법으로 전개 되었다. 물론 고대의 희생제 예식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특별한 것은 없었다.
희생제예식은 이스라엘 주위의 모든 백성들에게 일반적인 평범한 행사였으며, 고대 모세 이전의 셈족 종교 행사에 속하였다. 5 J.L.Mays,
?레위기 주석?, 김중기 역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82), p. 43.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에게 의미있는 일은 단순한 희생제의 거행이 아니었다. 그 제사를 ‘누구에게’ 드리느냐 또는 그 제사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 어떤 관계를 맺느냐 하는 일이 의미있는 문제였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의 희생제사를 하나님 자신과의 면접으로, 다시 말하면 자신과의
친교를 받아들였다는 수단으로 그 희생제사를 수납하시며 주관 하셨다.
희생제사가
확실한 근거를 가졌다는 사실은 그 희생제의 전례에 따르는 고유성 때문이 아니라, 첫째는 그 제사로 하여금 제사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전폭적인 뜻에
달렸으며, 둘째는 그 제사를 드리는 취지의 완전성과 성실성에 기인되었다.
그
밖에 다른 모든 설명들을 제쳐놓고 단 한마디의 결정적인 요점을 든다면, 고대 이스라엘에서 드리는 희생제물은 ‘여호와 하나님께’ 바쳤다는 사실로
족하였다. 6 Ibid., p. 44.
모든
것은 시내산의 하나님 계약의 하나님께 집중되었으며 헌납되었다. 이 하나님은 다른 어떤 제식에서 여러 신들에게 드리는 예배와는 전적으로 구별되는
신실하신 유일의 하나님이시다. 이러한 희생제는 이스라엘에서 시행되어 오던 유일신론적 전례의 가르침이었다. 곧 이것은 단 한 분이신 그들의
하나님만이 참하나님이시라는 증거의 내용이었다. 동시에 이것은 그들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는 유일의 수단이었다. 7 Ibid., p.
44.
제사가
하나님께만 경배와 영광을 돌리는 의미있는 예식을 위해서 설명하였거니와 또 하나 예배자가 예물을 하나님께 헌납하는 것이 제사의 중심이었다. 곧
제단에 제물을 봉헌하는 것처럼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봉사하는 의미있는 행위 그 자체를 제사라고 하였다. 어떤 희생제사는 대체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인간의 제로 인하여 더럽혀지는 경우와 환경에 따라 시도되었으며, 동시에 그것들은 고백을 통한 죄의식의 표지 또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용서하신다는
속죄의 수단으로서 수행되었으며, 또 어떤 희생제사는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공고히 하며 다시 새롭게 한다는 뜻으로 지켜졌다. 8 Ibid.,
p. 45.
그러나
이제는 육축과 곡식을 제물로 드리는 예식은 회당에서나 교회에서도 더이상 시행되지 않고 있다. 결국 제사의식은 단지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겨우 그
예식이 연명되는 정도였으며 오늘날의 유대인들 가운데에서는 그 예식이 자취를 감춘지 오래다. 물론 일반 교회에서는 희생제를 드리지 않는다. 9
Ibid., p. 45..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으로써 하나님께 산 제물로 바쳐진 그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제의 의미와 목적이 단번에 완성되었으며 성취되었다.
10 Ibid., p. 46.
2.
제사제도의 기원
창조주
하나님, 만유의 주되신 하나님 앞에 드리는 거룩하고 신성한 제사에 대한 기원은 성경에 정확하게 기록된 것은 아니지만, 구약성서를 읽어보면 곧 그
기원에 대한 가능한 대답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가운데서 회막에 들어오셨을 때, 하나님은 출 25:22에 있는 그의 약속에 따라 영광스런 현존의 자리로부터 자기 자신을 모세에게
계시 하면서, 그의 신성하신 뜻을 모세를 통해 백성에게 알려 주었다(레1:1). 이런 계시들 중 첫 번째 것은 제물들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분명 그들이 하나님의 은총에 참여자가 되기 위해서는 제물들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했었다.
사실
족장들은 그들이 가나안에 거할 때, 자신을 그들에게 계시하였던 하나님에게 이미 번제와 화목제로 예배하였었다. 그들의 후손인 이스라엘 자손들이
외국 땅 애굽에서 머무는 동안 그들 조상들의 하나님에게 제물을 드렸었는지에 대해서는 430년 동안에 대한 간단한 설명 가운데서 그 문제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기 때문에 확실히 말할 수가 없다. 그러나 매우 확실한 사실은 그들이 제물을 하나님 예배의 주요 부분으로 생각하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았다는 것과 모세를 따라 광야에 나가 거기서 제사예배의 엄숙한 행동에 의히 그들 조상의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는
점이며(출5:1-3;4:31;8:4), 또한 애굽에서 나온 후 이드로가 이스라엘 사람들의 진영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께 드리고,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모세와 아론과 더불어 참가하게 될 제사음식을 준비했을 뿐만 아니라(출18:12) 모세의 명령에 따라 젊은 청년들이 계약이 끝났을 때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는 점이다.(출24:5)
결과적으로
이런 본문들에 나오는 제물에 관한 법들은 번제, 소제, 화목제를 드리는 것이 백성들에게 잘 알려진 습관이었고 또 그들의 종교적 감정의 요구에
의해 필요했던 것임을 전제하고 있다(레1:2,3,10,14;3:1,6,11등). 이제 계속해서 제사제도의 기원에 대한 성서적인 예를 살펴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는 땅의 소산과 가축의 첫 소산을 하나님께 드렸고 (창 4:3,4), 노아의 제사는 번제로 드렸다.
(창8:20). 상술한 제사의식은 점차 발전되어 가서 레위기 규례에 의해 확고한 개념이 성립되고 명백해졌다. 11 F.Meyricck,
「풀핏레위기주석」, 송종섭 역 (대구: 본문출판사, 1976), P. 11.
그러나
학자들은 모세의 율법에서 다른 나라의 법조항에서 찾아볼 수 있는 많은 규례가 담겨있다고 주장해왔으며 이러한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보다 율법(레위기)은 언약의 하나님이신 여호와께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하나님이 재정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부여된 율법과 고대근동지방에 사는 이교도의 율례와 규정 사이에는 많은 면에서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그 중 3가지만 보면 첫째는
이교도들은 피의 권세(the power of blood)에 커다란 의의를 든다. 즉 그들은 만일 피가 생명의 중추라면, 우리는 우리 신들의
생명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희생제물인 동물의 피를 마셔야 한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레위기는 여호와께 피를 속죄의 방편으로 주셨으므로 이
피는 결코 먹어서는 안된다. 제사를 드릴 때 피는 제단밑에 부어야 한다. 그 이유는 피는 여호와께 속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이교도들 가운데서는 왕이 종종 신들의 아들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대제사장으로 봉사할 수 있었지만 이스라엘은 그럴 수 없었다. 세째는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가령 동물의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함으로싸 그 제사를 참여했다는 사실을 주시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말씀속에서 제사제도의 기원을
찾을 수 밖에 없는 바, 제사의식의 처음에는 상징적 의미가 부여되고 그 다음 각양 제사제도의 특징이 부여되엇는데 그것은 레 1:1에서 볼 수
있듯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모세에게 명령하신 규례속에 모두 나타나 있다고 볼 수 있다.
3.
구약 제사제도의 필요성
타락한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인간을 구원하실 수 있다. 그러나 범죄한 인간은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에게 불순종의
대가를 치뤄야 한다. “정녕 죽으리라.” 하나님의 이 선언은 그 어떤 경우에도 번복되거나 철회될 수 없다.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 앞에 서야
한다. 그러나 창세기 3;15절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로운 선언은 생명의 언약이요, 대속의 약속이었다. 그것은 참으로 복음이었다.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느니라”(히9:22). 죽어야 할 내가 죽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대신 피흘림을 제공하신 것이다.
창세기
3:21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 의로운 존재가 되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보여주신 말씀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3:21). 이것은 매우 암시적인 사건이다. 가죽 옷은 동물이 죽지 않고는 만들 수 없는 옷이다. 동물에서
가죽을 얻자면 동물의 생명을 빼앗아 죽여야 한다.
우리는
‘가죽옷’에서 무엇보다 소죄사상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 ‘옷’은 ‘속죄’라는 말의 어근(語根)과 같은 ‘가리운다’ 또는 ‘덮는다’는 뜻이며
구약제사의 핵심인 성막의 ‘속죄소’라는 말이 여기에 기원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있는 사실이다. 12 박철수, ?성경의 제사? (서울: 풍만,
1988), p. 77.
John
Murray는 ?구속론?에서 말하기를, 성경에 나오는 ‘덮는다’(cover)는 말은 세 가지 중요한 뜻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첫째, 덮음은
항상 피에 관한 것이다. 둘째, 그 덮음의 결과는 깨끗헤 함과 용서함이다. 셋째, 덮음과 그 결과가 이루어지는 길은 ‘하나님 앞에서’이다. 즉
‘덮는다’는 말과 속죄사이에는 매우 긴밀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죄란 하나님의 진논를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벌은 하나님의
거룩으로부터 나오는 죄에 대한 필연적인 결과이며 속죄는 죄가 일으키는 하나님의 진노를 가리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 앞에는 죽음밖에 없다. 이 죽음을 다시 살리기 위해서는 피로써 생명을 가려야 한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속죄의 원리이다. 피의 제사없이는
속죄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피의 제사를 통하여 속죄의 길을 보여 주신 것 이다. Erich Sauer는 창세기 3:21절에 관하여 “인류 역사의
시초에 있었던 가죽옷의 착의 사실은 구원사의 중심적인 문제의 상징적이 예언이며 골고다의 십자가 예언이다” 13 Erich Suer, ?세계
구속의 여명?, 권혁봉 역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72), p. 114.
라고
했다.
Ⅲ.
구약 제사제도의 이론적 배경
1.
성경에 나타난 조상제사의 기본적 이해
1)
구약의 조상제사 이해
제사
문제는 인류역사의 시작부터 성경은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는 구약과 신약을 망라하여 제사의 대상과, 죽음, 죽은자 숭배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1)
제사의 대상으로서의 하나님
아담과
하와의 타락에서부터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제사가 시작된다. 가인의 살인사건도 제사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창4:1-15) 이렇게 시작된
이스라엘의 제사는 족장들을 통하여 이루어져 내려 왔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제사를 거쳐 내려온 제사는 시내산에서 구체적인 하나님의 지시에
의하여 체계화 된 민족적인 제사로 발전하게 된다. 이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여 백성을 삼으셨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 하기로
이스라엘은 계약을 맺는다. 이 계약은 수송아지를 잡아 제물로 드리는 제사로서 계약이 맺어진다.(출24:4-11) 이 계명이 바로 십계명이다.
십계명 중에서 제1계명은 하나님과 백성과의 관계를 분명히 제시해 주는 한계 선정이다.
구약성서에서
제시된 제사와 섬김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으로 국한된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다른 신을 섬기는 다신주의를 엄격하게
배격한다. 또한 섬길 뿐만 아니라 어떤 모양으로라도 신의 모형을 형상화 하거나 만들어져서도 안된다.
하나님은
어떤 눈에 보이는 현상에도 신적 권위를 부여하거나 의미나 종교를 부여하여서도 안된다. 그것들에게 섬김의 행동이나 예배의 뜻을 부여해서도 안되고
제사나 분향 등 그 밖의 종교적 행위를 용납하지 않는다.(레26:1) 하나님은 하나님 이외의 우상숭배에 대해 격분하시고 그 곳에 분노를
쏟으셨다.(신12:31) 또한 이방인들의 우상숭배적 제사형태의 모방까지도 경계하셨다. 인신제사 즉 이방인들의 우상에게 자녀들을 불살라 제물로
바치는 사례들이 있음을 지적하고 이를 금지 시키셨다. 이와 같은 속된 의식을 이스라엘은 가나안 족속들의 의식에서 받아들였다. 14 김정준,
“구약에서 본 효 문제”, 「세계선교」, 제 50호 (1977), p. 43.
이스라엘은
이것을 본 받아 유다왕 아하스는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였으며 또 산당과 작은 산위와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하며
분향하였다.(왕하16:3-4) 또한 아하스는 바알을 만들어 놓았으며 힌놈의 골짜기에서 분향하고 이방인의 본을 받아 그 자녀를 불사르고 제사하며
분향하였다.(대하28:1-5)
이방인들은
이와 같은 인신제사를 신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서 드렸고 닥친 재난을 극복하기 위하여 행하였다.(미가6:6-7)
이와
같은 행위를 하나님은 결코 용납하지 않으셨다. 그 일을 행할 때는 돌로 쳐 죽이라고 하였으며 이방인들도 그런 제사를 하는 행위를 원치 않으셨다.
이스라엘의 왕 므낫세가 일월성신을 숭배하며 자기 아들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고 신접한 자와 점치며 사술을 행하는 박수를 믿고 신앙할 때
하나님은 분노하셨다. 오직 섬김과 예배와 제사의 대상은 하나님 뿐인 것이다. 구약에는 하나님 이외의 어떤 대상에게도 예배와 섬김은 허락되지 않고
있다.
(2)
조상이해
구약성서의
조상에 대한 개념은 아버지, 열조, 선조, 조상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열조로 나타나고 있는 경우에는 부친 이전의 아버지들을 가르킨
것이다. 또 민족의 조상, 문화의 창시자로 소개 되기도 한다.(창10:21) 구약에서의 조상은 존경의 대상이고 대단한 흠모의 대상으로 소개되고
있다. 열조라는 용어만 해도 수십회 나타나고 있다. 15 Ibid.
구약에서
나타나고 있는 조상에 대한 개념은 여러가지 뜻에서 표현되고 있다. 우선 하나님을 부를 때 조상의 하나님으로 불리워지고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종교가 깊이 역사에 뿌리 박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된다. 또한 조상의 고덕을 기리는 표현으로도 사용되고 있다.(사65:7) 조상의 경건한
행위는 자손을 지키고 구원을 얻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의식을 갖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가나안 땅, 약속 등 기타 모든
유업들을 말하게 될 때는 반드시 조상에게서 주어진 것으로 인식했다. 그래서 하나님을 부르게 될 때도 조상의 하나님으로 불리워졌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도 열조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브라함이 막벨라 굴을 헷사람으로부터 사들인 기사는 이것을 말해주고 있다.
처음에는 가족묘지를 집 가까이의 자기 소유지에 있었고 나무그늘 또는 동산에 마련되어 있었다.(창35:8)
히브리인들은
선조들의 묘소에 함께 묻혀서 선조와 함께 잠 잔다는 것이 중요한 관습인식이었고 그것을 또한 영광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열조의 무덤에서 제외되는
것은 하나의 불행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상에게 주어진 기업들이 상실 되었거나 빼앗겼을 때는 그것을 회복하고 되찾고 발전시키려고 하는
의지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16 Ibid.
특히
아합의 끈질긴 유혹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나봇이 물려받은 유산인 포도원을 왕에게 줄 수 없다고 거절한 것 등은 이같은 의미를 단적으로 표현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선조 요나답이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고 경고한 것 때문에 그 후손이 평생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아니한 것을
자랑으로 생각했던 점도 같은 인식에서 해석될 수 있다. (렘35:14-18) 이렇게 볼 때 구약성서에서 나타나고 있는 조상개념은 매우 위대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고 흠모의 대상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리고 죽은 후에도 열조에게로 돌아가는 것으로 믿었고 그 열조와 함께 묻히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였다.
(3)
죽음이해와 죽은자에 대한 존경
죽음은
인간이 하나님께 반역한 죄로부터 시작되었고 아담의 범죄로부터 기원된다고 구약성서는 말하고 있다. 구약에서의 죽음은 공포의 왕으로 불리우고 있다.
인간은 죽음의 공포때문에 고뇌하며 결국 그것을 통과해야만 하는 것으로 보았다. 17 문희성, 「구약성서의 인간학」(서울: 분도출판사,
1991), p. 184.
구약에서
장수는 본인의 덕에 의한 하나님으로 부터의 축복에 의한 것으로, 단명은 하나님에 의한 일종의 벌로 여겨지고 있다. (잠4:10)또한
구약성서에서의 죽음은 기운이 진하여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같은 의미는 죽음은 생의 단절이 아니라 연결되는 것으로 인식하여
구약성서에는 부활사상이 확실하게 나타나고 있지 않다. 또 죽음은 황천에 내려가 최후의 운명을 기다리는 것으로도 인식되고 있고 멸망, 잊음,
적막, 흑암의 땅, 그늘진 문, 구더기와 지렁이가 가득한 곳 등으로 표현되고 있다. 죽은자의 부활에 대해서는 암시적으로 나타내고 있고 개인부활
사상도 나오고 있는데 이것은 신앙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보상이 아니라 악인도 일단 부활하여 그 후에 한 없는 부끄러움을 당한다는 사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단12:2)
죽은
후에는 창조주인 하나님께서 취하셨던 대로 땅의 흙이 되어 되돌아가게된다. 아담은 불순종하였던 그 때 육체와 영혼의 사망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육체적으로 그 즉시 죽지는 않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리고 육체가 죽은 그 자체를 가리켜 성경은 잠잔다고 하였다. 잠잔다고하는 말은
죽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재림시에 깨어 날 것을 전제로해서 한 말로 풀이된다. 또 다른 일면으로는 인간을 고라 처럼 산채로 지하의
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음부에 내려가 그 최후의 운명을 기다리는 것으로도 생각 되었다. 그것은 멸망의 웅덩이 또는 멸망으로
불리워졌다.(장15:11) 18 Ibid.
이렇게
음부에 내려간 사람은 무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연약하게 된 산자이고 히스기야의 기도문에 나오는 주를 찬양하지 못하는 자이고 주의 신실을 바라보지
못하는 자이다.(사14:10) 결국 구약에서의 죽음은 기운이 진하여 열조에게로 돌아가는 것이고 부덕스러운 죽음은 음부에 내려가 기다리는 것으로
나타내고 있다.
구약성서에서는
하나님 이외에는 그 어떤 대상에게도 예배와 제사의 대상이 되는 것을 허락치 않고 있다. 구약성서 안에는 조상이 후인들에게는 정신적으로 중요한
대상으로 존경되고 흠모되고 있었지만 죽은 조상들이 섬김과 예배의 대상이 되는 것은 원치 않고 있다. 따라서 죽은자에게는 인격적인 대우나 어떤
수단에 대하여도 언급하고 있지 않다. 뿐만아니라 성서는 죽은자에 대한 종교적 어떤 섬김의 절차나 형식 그리고 죽음 자체를 성별시키거나 신성한
것으로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는다. 19 문희석, Ibid.
그리고
죽은 사람이나 우상에대한 섬김의 형태로서 신체적 자해 행위나 종교적 마술 행위 등도 금하고 있다. 이와같은 금기는 죽은자와 관련된 어떤 섬김이나
종교적인 뜻을 부여하거나 숭배에 따른 어떠한 행위도 배척하기 위한 강한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 이와 같은 배척의 의도는 죽은
시체를 만진 사람에게 부정성을 부여한 것으로 잘 나타내고 있다. 즉 시체를 만진 사람은 7일간 부정하여 잿물로 정결의식을 3일과 7일에 행하도록
하였고 거역할 때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도록 엄하게 명령되고 있다. 뿐만아니라 시체가 있는 집에 함께 있었던 사람도 부정하게 되었고 뚜껑을 열어
놓은 그릇까지도 부정하였으며 죽은 사람의 뼈를 만져도 7일간 부정하여 결례의식을 행하도록 하고 있다. 이것은 사람 뿐만아니라 짐승도 죽은 짐승의
고기는 먹지 못하도록 규정해 놓고 있다.(레70:24) 구약성서는 죽음과 죽은자를 부정하게 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산자를 위하여 죽은자에게
구하겠느냐, 죽은 개같은 나를, 죽은 개 등으로 표현하므로서 죽음과 죽은자를 무력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와같은 강력한 배재는 죽은자를 신선화하여
섬기는 가나안 사람들처럼 하나님을 대신하여 섬길것을 대비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제사의 대상으로서는 하나님이시며, 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조상들의 하나님인 것이다.
(4)
무덤숭배
구약성서에는
무덤에 관한 기록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무덤을 묘실, 무덤, 묘, 매장지, 묘지 혹은 구덩이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민19:16)
구약성서시대에 팔레스타인에는 묘지는 보통 도시와 마을 근교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흔히 경작이 불가능한 골짜기의 경사지와 같은 지형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지형에는 묘실이 사용 될 수 있는 천연동굴이나 인공굴이 있어야만 하였다. 히브리의 법률은 묘실의 정황한 위치에 대한
규정한 규범은 없었다. 그러나 죽은 시체와 접촉하면 부정하다고 믿는 믿음 때문에 묘지가 대부분 마을의 밖에 위치하였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20 Ibid.
이러한
관습이 고대에 있었을 것으로 입증하는 것은 예루살렘, 게셀, 여리고, 라기스, 므깃도 등의 도성에서 발굴된 발굴물들에 의하여 입증되어 왔는데
대부분 묘실을 성벽 밖에 위치하고 있었음이 들어났다.
고대에
있어서 히브리인에게도 묘지는 하나님이 성소로 인식되었다. 아브라함은 고향을 떠난 후 가나안에 정착하여 헷족속에게서 은 400세겔을 주고 묘를
사서 사라를 매장하였고 후에 자신도 그곳에서 묻혔다. 그 후 막벨라굴은 하나의 조상의 묘지로서 이삭도 묻히고 야곱도 묻히게
된다.(창35:29)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 히브리인들은 도시 근처에 위치한 천연 또는 인공적 동굴을 묘실로 사용하고 있었던 가나안의 관습을 따른 것 같다. 기드온은 아버지
묘에 매장 되었다.(삼8:32) 아사헬도 베들레헴의 아버지 묘실에 다윗과 아하시야는 다윗성에 각각 매장되었다.(삼하2:32) 묘실은 배부분
동산이나 솟아 나온 언덕 또는 구릉의 경사지 등에 마련되었다. 그리고 열왕기와 역대기의 왕의 일생을 끝맺음에는 반드시 사망기사와 함께 다윗성이
묘지가 언급되고 있다. 히브리인들은 죽어서 조상에게로 돌아간다는 관념을 강하게 갖고 있었으며 조상의 묘실에 함께 묻히는 것을 커다란 영광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대하26:23)
열왕기에서
왕이 죽을 때는 다윗성에 매장되는 것을 반드시 기록하고 있는 것들은 바로 이런 인식에서 해석 될 수 있겠다. 그리고 성경은 불신앙 또는
문둥병으로 인하여 열조와 함께 묻히지 못한 경우 즉 여호람, 웃시야, 므낫세, 아론 등에 대하여도 자세하게 기록해 놓고 있다. 이것은 대조적인
죽음으로 인식시키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무덤과 조상의 매장 풍습을 존중한 것을 칼빈은 신성한 풍습으로 보았고 새로운 생명의
전조라고 보았다. 또 칼빈은 이와 같은 매장의식은 선조들 사이에서 존중되어온 풍습으로 인정하고 하나님은 이 같은 풍습이 이방인 가운데서도
지켜져서 부활의 모양이 눈앞에 놓여짐으로서 그들이 그 어리석음에서 깨어나게 되기를 원한다고 하였다. 21 J.칼빈, ?기독교강요?, 3권 제
25장 2절.
이와
같은 원인이 추모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하면 그것은 무덤 자체가 중요해서가 아니라 칼빈의 지적대로 불신자들로 하여금 눈으로 항상
볼 수 있는 부활의 표상이 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구약성서는 죽은자와 무덤에 대해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지
않다.
2)
신약의 조상제사 이해
(1)
제사의 대상으로서의 하나님
신약성서에서도
죽은자 숭배사상은 나타나 있지 않다. 예배의 대상은 신약성서에서도 하나님 한분으로 나타나 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영이신 하나님을
물질로나 어떤 우상의 모습으로 대치 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의 중국인들은 부모가 돌아가시면 제패를 만들어서 집 안에 놓고 그 위패를 모시는
것으로 조상을 섬기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22 이종윤, ?한국교회와 제사문제? (서울:
엠마오, 1985), p. 13.
하나님 신앙에서는 허락되지 않는 행위이다.
신약성서에서는 죽은 인간이 아닌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을 예배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된 사람을 일으켰을 때 원주민들은 바울에게 신이 임하였다 하여 바울 일행에게 제물을 가지고 와서 제사하려고
하였다. 그때 바울은 옷을 찢고 권고하기를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니 헛된 일을 버리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제사(예배, 섬김)하라고
하였다. 또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우상 섬김에서 돌아와 살아계신 참되신 하나님께 예배하라고 권고했다.
(살전1:9)
죽은자나
혹은 죽은자들에게 예배하거나 제사하는 것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으로 죽은 사람이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 바울은 아레오바고 법정에서 아덴 사람들에게 연설하는 가운데 창조주 하나님께 예배하라고 하였다. 즉 알지 못하는 신에게 예배하지 말고
만유를 지으시고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유를 주시는 하나님께 예배하라고 하였다. 23 J. 칼빈, op. cit.
예배의
대상은 돌아가신 조상이 아니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자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조상은 귀하다. 신구약성서를 통하여 볼 때 조상개념은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도 조상의 하나님으로 나타나고 있고 신약성경은 족보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조상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조상을 신으로 섬겨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 조상들이 섬기시던 그 하나님을 오늘도 후손들이 섬겨야 된다는 말이다. 24 Ibid.
제사는
오직 하나님께만 드려지는 것으로서 하나님은 그 어느 대상에게 이같이 예배되어지는 것을 배격하신다. 이방인에게와 같이 귀신에게, 우상에게,
죽은자에게 제사되고 섬겨지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히1:15) 이렇듯 신약성서에서도 죽은 사람에 대한 교훈이나 섬김의문제에 대하여 설명이나
지시도 분명하게 찾아 볼 수 없다.
(2)
조상이해
구약성서의
조상개념과 마찬가지로 신약성서 속에 나타난 조상에 대한 관념도 전통과 유전인식으로 인하여 소중한 대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신약성서에서의 조상
인식은 주로 사도들의 설교와 교훈 속에서 나타나고 특히 복음을 설명하기 위하여 서론 부분에서 많이 인용되고 있다.
스데반
설교 속에서 역사적 기술과 함께 11번이나 조상이 소개되고 있다.(행7:2-52)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을때 하나님의 부르심으로부터 시작하여
조상, 이삭, 야곱, 요셉을 열거하고 조상을 괴롭게 한 애굽으로부터의 탈출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조상과 전통을 중요시하는 유대인들에게 추호도
전통이나 물려 받은 관습이나 조상에 대하여 경히 여기거나 모독하는 일이 없었음을 변명하고 있다. 그리고 베드로의 설교 속에서 예수의 부활과
위대성을 주장하고 위하여 조상과 비교하는 설교로서 전통과 조상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고, 사도 바울의 설교 속에서도 다양하게 조상이 인용되고
있다. 안디옥회당에서 강론한 설교 속에서 율법으로 외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외로워짐을 가르치기 위하여 옛 전통의 유전을 중시하는
유대인들에게 역사를 기술하면서 조상을 인용하고 있다.(행13:17)
자신은
누구보다도 조상이 유전과 전통의 교훈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 같은 유전과 전통을 배척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행28:17) 또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를 맞이하는 사람들에게 조상 다윗의 영광의 시대의 도래를 희망하면서 조상이 흠모되고 있다. 그리고 사라미아 여인은
야곱으로부터 주어졌다는 우물에 대한 유전적 자부심과 자기들도 야곱의 자손이라는 것을 암시하여 조상 야곱의 후손임을 중시하였다. 그는 우리 조상
야곱이 우물을 팠는데 당신이 이보다 더 좋은 샘물을 준다고 하니 그러면 당신은 야곱보다 더 지혜롭다는 말이냐 그것은 우리 조상 야곱에 대한
모독이 아니냐고 하였다. 이와 같이 신약성서에서 나타나고 있는 조상에 대한 관념은 아주 큰 전통과 유전으로 인식되어 강한 관념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도들의 설교 속에서 특히 조상이 자주 인용된 것은 복음을 소개하기 위하여 전통 속에 묶여 있는 유대인들이 고집스런 교만이 의식을
깨우치기 위한 서술로서 나타나고 있다. 유대인들의 사고는 조상으로부터 주어진 전통을 고수하고 보전하려는 강한 욕구로 차 있었다. 25
Ibid.
(3)
죽음이해와 죽은자에 대한 존경
신약성서
속에서도 죽음은 죄 값으로 주어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음부는 구약성서와 마찬가지로 일반적으로 사후에 갈 곳으로 인식 되었다. 그곳은
타스타로스 즉 깊은 구덩이, 지옥으로 불리우고 있다.(눅16:23)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다른 사람들처럼 첫째 죽음을 경험하게 되지만 신자는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계20:5-6) 그러나 악인도 당연히 부활할 사람으로 인정되고 있기는 하나 그들은 둘째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게 된다. 26 Ibid.
바울에
의하면 죽음은 죄 값이므로 죽음은 단순한 자연현상만이 아니라 인간의 죄와 밀접하게 관련 되어 있다.(놈6:23) 죄는 하나님께 반역하여 떠난
상태이므로 인간의 죽음은 아담의 죄에서 유래한다고 본다.(고전15;22)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 하였나이다.”(시50:5)고 하여 인간의 욕정 가운데서 그 원죄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구약성서는 아버지의 죄는 그 자손에게 미친다고 하였고(출34:7) 인간은 모두 죄인으로서 죄를 범하지 않은 인간은 없다고 말하여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죽을 자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종교적인 입장에서는 어떻게 하여 죽음을 피하고 죽음을 물리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여 죽은
인간에게 생명이 주어질 수 있는가가 제1의 문제가 된다. 즉 탕자도 죽었던 자로 말해지고 있고 인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다고 말하고 있다.(계3:1)
또
신약성서는 그리스도는 죽음을 면케하는 자로서 이미 죽은자들에게는 살리심으로, 현세적 신앙인은 생명으로 옮겨져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성령은
이와같은 생명을 주는 영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수의 말을 듣고 예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으며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져 있다고 말한다. 현존의 인간은 죄인으로서 이미 죽은자인데 그들은 예수를 믿는 신앙에 의하여 현세에 있어서도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져 있다고 한다.(요일3:16)
그것과
동시에 불신앙은 이미 심판을 받은 것이고 이 죽음은 육체적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죽은 상태이다. 신약성서에 있어서 죽음을 잠자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고 휴식 또는 안식에 비유되고 있다. 사후에 있어서 음부에 있는 상태는 벌거벗은 상태이고 육체의 죽음과 부활의 중간상태를 의미하고
있다. 또 신약성서는 인간의 죽음을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하여 멸절 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연합되면 그의 부활과 연합되어
죽음을 이길 수 있다고 보고 있다.(롬5:14) 따라서 신자의 죽음은 예수의 죽으심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신약성서에서는
죽은자 숭배사상은 확실하게 나타나 있지 않다. 죽은 시체를 보거나 만진 사람에게 어떤 부정성을 부여하지도 않았고 결례의식을 행하도록 요구한
사례도 없을 뿐만 아니라 요구한 구절도 찾아 볼 수 없다. 다만 율법을 고수하려는 전통의식과 철저한 수칙과 준수를 강조한 바리새적 엄격주의적
생활습관으로 보아서 구약적인 전통이 그대로 지켜져 온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하나님을 죽으자의 하나님이 아니고 산자의 하나님이라고 사복음서가
강조한 것으로 보아서 죽음을 부정적으로 보았다는 점과(눅20:38) 아나니아아 삽비라가 죽었을 때 죽음 직후에 장사한 장례의식도 죽음에 대한
부정성이 내포된 뜻에서 해석 될 수 있겠다.(행5:1-7) 즉 예수님은 하나님이 죽은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자의 하나님임을 강조하여 죽음은
무력한 것 썩어질 것 그래서 하나님은 썩어질 것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자의 하나님임을 강조하였다. 그것은 죽음은 인격이 없는 것으로서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예수
부활의 아침에 무덤을 찾아 간 여인들에게 천사는 어찌하여 산자는 죽은자 가운데서 찾느냐고 반문하였다. 그것은 살아 날 자 예수는 무력하고
부정스런 죽은자와 함께 있을 수 없는 존재임을 나타내 주는 말로 해석된다. 또 성서는 “만일 죽은자에게 부활이 없다면”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롬11:15) 그것은 죽음은 소망이 없는 것, 저주스러운 것으로서 부활이 없는 인간에게 있어서는 죽음이 마지막이라는 비극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 성서는 복음으로서 다시 살아나리라고 강조하고 있다.(마10:8) 죽음은 절망, 암흑으로서 복음 안에서 살아남으로서 생명은 곧
희망과 소망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리고 성서는 죽지 않는 것으로 신앙 안에서 큰 이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신약성서에서는 죽음은 비극, 암흑,
불행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죽음은 정복되는 것 곧 죽음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저승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와 같이 볼 때
신약성서는 죽은자에 대한 숭배적 요소나 기록은 없다.
(4)
무덤숭배
신약성서에서도
무덤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나타나고 있다. 묘지는 소속한 집의 재산이었고 타인을 장사하는 일은 없었으나 후에는 특별한 경우 타인을 장사하는 경우도
있었다.(마27:60) 고대에는 선조의 묘지를 성소로서 여겨져 왔었고 열조가 잠들어 있는 묘소에 함께 묻히는 것을 좋은 관례로 인식되었었다.
그러나 후대 신약시대는 무덤은 부정한 장소로 인식되고 있다. 우선 무덤은 마을 뒤의 동산에 위치하고 있다.(요19:41) 이것은 구약적인 풍습의
하나로서 죽은자는 부정한 것으로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무덤이 있는 곳은 불결한 곳, 사람의 인적이 없는 곳, 황량한 곳으로 나타나고
있다.(눅8:27) 그리하여 그곳에는 귀신들린 사람의 거처가 되었고 음침한 곳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악령에게 사로잡힌 것으로 생각되는
사람들은 묘실 속에서 살거나 묘실 사이에서 거주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뿐만아니라 무덤이 있는 곳은 땅의 경계표시로서 상정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특히 라헬과 다윗의 묘실 등 유명한 묘지들은 중요한 땅의 경계표시로서 상징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특히 라헬과 다윗의 묘실 등 유명한
묘지들은 중요한 땅의 경계표시 였다.
예수께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을 꾸짖기를 예언자들이 묘실을 만들고 의인들이 비석을 꾸미는 위선자들이라고 비난한 것은 죽은자들을 공격하면서도 살아있는
예언자들을 무시하는 행위들을 비난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리고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비난하면서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라고 하였다. 썩은
시체가 묻힌 무덤이 열린 상태 즉 추하고 온갖 더러운 것이 다 들어있는 무덤 같은 바리새인들의 행위를 비난한 것이다.(롬3:13)그리고 이와
같은 추한 무덤에 사람이 접촉하게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멀리서도 무덤을 분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매년 봄에 석회로서 희게 칠하는
습관이 생겨났다고 한다.(마23:27)
신약성서에는
무덤을 추한곳, 더러운 곳, 악령들린 사람들이 거처하는 곳 등으로 보고 있다. 무덤을 숭배하였다는 근거는 찾아 볼 수가 없다. 지금까지 신,
구약성서에 나타나고 있는 조상제사에 대한 근거가 되는 죽음과 관련된 것들을 찾아보았다. 성서는 죽음을 부정적인 것으로 보고 있고 무덤을 부정한
장소로 보고 있다. 그 어떤 곳에도 섬김이나 예배의 대상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 다만 조상에 대한 인식은 존경과 흠모의 대상으로 뜻을 갖고
있다. 하나님께서도 조상의 하나님으로 나타나고 있고 말씀 하실 때도 조상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형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백성들은
조상에게 주어진 약속, 축복, 유업, 전통 등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지키려는 의식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2.
구약의 제사제도의 역사적 발전 과정
하나님께서
나아가는 자는 제사로서 나아갈 수 있다. 오직 ‘피’를 가지고만 그 앞에 설 수 있다. 그것이 구약에 나타난 제사이다. 그 피의 제사가
창3:21에서 최초로 시작되었다. 구약에 나타난 제사제도는 역사적 발전과정을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1)
아담의 제사
인간은
타락하자마자 스스로 무화과 나뭇잎으로 ‘치마’를 해입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치마를 벗기시고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몸소 만드신 옷을
입히셨다. 우리는 이 사실을 통해서 인간은 스스로 지어 입은 옷으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중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게
된다.
왜
하나님께서는 많은 종류의 옷 중에서 특별히 ‘가죽옷’을 입히셨을까? A.A.Hodge는 가죽옷을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이면에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속죄제사가 시작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첫째,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께 물질적 예물을 드리고, 비이성적 피조물인
동물을 잡아죽여 하나님을 유화시키려는 시도의 타당성과 유효성이 사람의 마음에 자발적으로 생겨 났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그것은 인간의 본능과
이성에 어긋나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이 인간의 구원을 계획하셨다는 계시종교로서의 성경적 대전제에서 볼 때, 구원을 이루는 이 중요한 제사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맡겨 그대로 방치해 두셨을 리가 없다. ‘나의 성도를 네 앞에 모으라 곧 제사로 나와 언약한
자니라’(시50:5) 셋째,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에게 합당한 제사, 합당한 봉사만을 받으신다는 것을 자기 계시의 특성으로
주장하신다라고 했다. 27 박철수, op. cit., p. 79.
2)
가인과 아벨의 제사
창
4:1-5에 성경에서 가장 처음으로 제사라는 용어가 나타나 있고 여기에서 바른 제사와 잘못된 제사, 즉 참 제사와 거짓 제사의 문제가 제기 되고
있다. 성경은 아벨이 어떻게 바른 제사를 알았는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으나 이때 바른 제사에 대한 지식과 실천이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28
Ibid.
아벨은
양치는 자였으므로 양의 첫새끼와 그 기름을 제물로 하여 제사를 드렸고, 가인은 농사를 짓는 자였으므로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제사를 드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으시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두 제사를 전혀 다르게 보셨다. 하나님은 절대 권력을
가진 통치자이시지만 이유없이 미소짓거나 기분 나쁜 안색을 보이시지 않는다.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며 이점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도 하나님께 제물을 가져왔다. 외형적으로, 가인은 다른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간 자 이다. (갈1:6-9) 단지 제물의 차이가
이렇게 중요한 문제이며 이토록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였을 것인가?
성경에는
직접적 언급이 없다 할지라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을 것이며 그들의 사랑스런 자녀인 가인과 아벨에게 자기들의 생애에 있었던 인간의
창조, 에덴 동산에서의 생활, 그들의 범죄, 그리고 하나님의 복음의 약속 등에 대하여 가정교육을 통해 이야기 하였을 것은 극히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가인과 아벨은 그들이 왜 제사를 드려야 하는지, 어떻게 제사를 드려야 하는지에 대해 부모에게 자세하게 들었을 것이 분명하며, 이는 그들이
나중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는 것을 보아 확실하다. 29 Ibid., p. 80.
선과
악의 판단과 기준은 하나님께만 있다. 가인은 다른 믿음을 갖고 하나님께 감히 접근하려는 모든 사람의 원형으로, 인류 역사에 ‘가인의
길’(유11절)을 열었고, 아벨은 자신의 속죄의 필요성을 알고 올바른 믿음으로 첫 희생의 피제사를 드렸다. 히브리서 기자는 아벨의 제사가 가인의
제사보다 나은 것은 ‘믿음’이었다고 말한다. (히11:4)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가인의 제사와 아벨의 제사를 통해 구약과 신약이 가르쳐 주는
바른 제물을 믿음으로 바쳐야 한다는 진리를 알게 된다.
3)
노아의 제사
노아는
악과 폭력이 만연했던 시대의 의인이었다. 세상의 모습이 너무 악했기에 하나님은 더 이상 참지 않으시고 무서운 홍수를 보내셨다. 단지 노아와 그의
가족들만이 구원 받았다. 하나님의 지시대로 노아는 길이가 약 133m 되는 커다란 방주를 지었다. 사람들은 노아가 하는 일을 보면서도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노아와 그의 아내, 세 아들과 며느리들은 모든 종류의 생물들 여러 쌍과 함께 방주에 올랐다. 방주는
물이 빠질 때까지 물 위를 떠다니다가 어느 산꼭대기에 멈추었다. 홍수 후에 하나님은 노아에게 앞으로는 홍수를 내리지 않겠다고 영원한 약속을
주셨다. 무지개는 그 약속의 표증이었다. 노아는 장수 했으며 그의 아들들은 여러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창 6-9장).
노아는
한 세계의 출발자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인물이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 맨 처음 한 일이 제사드리는 일이었다(창8:18-21). 창세기
4장세서 최초로 ‘제사’라는 단어를 보았다면, 홍수 심판 이후 창세기 8장에서는 처음으로 ‘단’(壇)을 접하게 된다. ‘단’은 히브리어로는
‘짐승을 잡는다’, ‘제물을 죽인다’는 뜻을 가진 말인데, 이는 제단이 땅이나 바위의 높은 곳이나 언덕 위에 세워진 것에서 나온 말이다. 30
Ibid., pp. 81-82.
노아가
드린 제사는 ‘번제’였다. 번제는 다른 모든 제사의 중심과 근원이되는 제사인데, 노아가 드린 번제와 제물은 레위기에 나타난 것과는 다르다.
노아가 제사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향기를 흠향하셨다. ‘흠향한다’하심은, 드린 제물이 진정한 제사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신 것을 의인화한
말 이다.
4)
족장들의 제사
아브라함이
원래 살고 있던 곳은 그 당시 세계에서는 가장 문명화된 메소포타미아 유역의 기름진 땅에 위치한 갈대아 우르라는 곳이었다. 그는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이 풍요한 땅을 떠나 우여곡절 끝에 가나안 땅에 도착했다. 아브라함이 천신만고 끝에 가나안에 도착하자 제일 먼저 한 일은
제사를 지내는 일이었다. (창12:7)
근대의
고고학적 발견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살고 있었던 시대가 우상종교가 팽배한 암흑 시대였으며,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와 그 가정이 열심히 우상을
섬겼다는 점을 생각할 때, 아브라함이 도착한 곳에서 무엇보다 먼제 제사를 드렸다는 사실은 매우 뜻 깊은 일이다.
특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는 제사에 관한 사건은 구속사에 있어서 매우 의미 있는 사건이다. 아브라함이 시행한 모리아
산에서의 희생제사의 독특한 성격과 교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형식이 아니라 마음이 실로 중요함을 보여준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하나님께 희생제물로 바쳤다. 실제로 그를 죽이려 했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제지하셨다. 이로써 제사가 참으로 희생제사가 될 수
있는 것은 외부적인 행동이 아니라 마음의 외향이며, 영혼의 헌신이라는 원리가 선포된 것이다. 이것은 그 후의 예언자들이 제사의 형식주의와
대항하여 싸우던 구약 성경의 일관된 주제이다. 둘째 이 사건은 예언적인 중요성을 가진다. 모리아산은 하나님이 나타나신 곳이며(창22:14) 후에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졌던 곳이고(대하3:1), 또한 골고다에서 예수께서 죽으시던 시간에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휘장이 찢어졌던 곳이다. 이 곳은
죽어야 할 이삭이 그리고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이삭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제물로 살아난 곳이다. 이로써 이삭은 그리스도의 모형이 되었으며, 이는
구약 성경 전체에 있어서 결정적이고도 근본적인 최절정으로, 하나님의 언약의 중심인 골고다의 십자가 사건의 상징적인 예언이 되었다. 31
Ibid.
셋째
이삭을 대신하여 수양을 번제물로 드림으로써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제사가 불경건한 것으로 정리되고 거부되었다. 사실 이스라엘 이외의 민족들간에는
어린 아이를 제물로 드리는 관습이 많이 있었다. 이스라엘 민족이 들어가기 전 가나안 족속들, 베니게 족속들, 그리고 애굽인, 모압인, 암몬인,
아람인과 아랍족속들 사이에 이러한 습관이 일반적으로 퍼져 있었다. 그러나 이삭의 제사를 통하여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제사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사가 아님을 보여 주고 있다. 32 Ibid., p. 85.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어지는 언약의 조상들인 이삭과 야곱도 가는 곳 마다 제단을 쌓았다.
이들
족장들의 제사의 특징은, 첫째로 그들 자신이 가정의 대표로서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루터가 말한대로 인류
최초의 제사장은 아담이었다. 33 Ibid.,. p. 83.
둘째
특징은, 이들 제사가 제단 중심의 제사였다는 점이다. ‘단’에서 제사드리는 제사형태는 성막에서 제사드리기 이전의 제사형태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아직은 제사가 세분화되지 않은 상태였다.
3.
구약 제사의 신학적 고찰
출애굽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이스라엘의 경험 가운데 가장 근원적인 의미를 갖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 출애굽의 구원의 역사는 이스라엘이
눌렸던 노예상태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것 이상의 더 깊은 의미를 갖고 있다. 그것은 출애굽은 속박과 압제로부터 해방이었을 뿐만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데 그 궁극적인 목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구약에 기록된 출애굽 기사에 누누이 언급되고 있다. 호렙산의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에게 자기 백성을 구출할 임무를 위임하실 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는
나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낸 다음, 이 산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리라”(출3:12). 또한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이집트의 바로 앞에 나아가 할
말을 이렇게 그의 입에 담아 주신다. “나의 백성을 해방시켜라. 그리하여 그들이 나를 예배할 수 있게 하여라”(8:1) 이 말씀에서도 이스라엘의
이집트로부터의 구원이 단순히 노예생활의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그 구원의 주체자이신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한 것임이 분명하게
드러난다.(출4:23, 5:3, 7:16)
“나의
백성들로 하여금 가게 하여라”하는 출애굽의 모토(motto)는 곧 바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라”는 후속 부분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출애굽은 노예상태로부터 구출되었다는 데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해방을 통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예배공동체로
형성되었다는 데 신학적인 큰 뜻이 있는 것이다. 34 박준서, 「구약에서의 예배의 의미」(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0), pp.
71-75.
크리스찬으로서
예배의 현장에 임한 사람은 내가 무엇 때문에 이 자리에와 있으며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못할
때 그 예배자는 맹종(盲從)의 신앙인이 되기 쉽고 또 그러한 자세 속에서는 깊은 의미있는 만남을 가져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배자는
예배 중에 점검해야 될 신학적인 의미에 대해서 전체적인 이해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35 Ibid.
레위기의
내용은 거의 모두 제사와 예식 관계의 사항들을 취급하지만, 후반부의 18장과 19장은 설정규정의 틀에서 “이웃 윤리”를 강조하고 있음을 본다.
특히 19장 18절의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는 말씀은 예수께서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을 말씀하실 때 (마22:39)인용하신 구절로 유명하다.(비교 마19:19, 막12:31, 눅10:27, 갈5:14) 따라서
레위기는 단순히 제사 예식 규정집이 아니라 윤리적 내용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구원 받은 백성에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숙된
삶으로 자라가게 하기 위해 레위기 신학을 주셨다. 이러한 의미에서 레위기 신학은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19:2)고 요구하시는 성화(聖化)의 신학이다. 말을 바꾸어 보면 레위기는 제사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법과, 윤리-도덕적
생활을 통해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를테면, 신앙과 생활이 조화된 성숙한 인간성을 도모하는 성숙한 신학이다.
오늘날
한국의 개신교는 선교 제2세기의 문턱에 들어서면서, 가공할 만한 세속화(世俗化) 신앙과 생활의 이율배반적인 괴리 현상으로 병들어 가고 있다.
신학적으로 진단해 본다면, 구원받았다는 출애굽 신학은 있는데(종종 출애굽의 해방과 자유의 진정한 의미도 세속화되고 이데올로기로 변질되고
있지만), 이제 장성한 사람으로 자라가야 할 책임과 사명의 레위기적인 성화(聖化)의 신학이 제 때에 연결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부작용이 아닐까
한다. 그러므로 레위기는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이스라엘 백성의 거룩성의 회복에는 “희생제사의 피”(the sacrificial blood)가
부정한 것과 죄를 깨끗케 하고 나아가 성결(聖潔)케 하는 대속(代贖)의 원리(레17:11)를 강조하고 있음을 주목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목적을 위해서 성경을 주셨다. 36 플핏성경주석(디모데후서), 주석번역위원회 (대구: 보문출판사, 1990), p. 461.
그러므로
제사(예배)의 일반적인 성경적 측면에서 고찰하여 이해를 돕고자 한다. 하나님은 예배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면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주시고 계신다.
첫째, 창세기에서 가인과 아벨의 제사중 하나님의 뜻에 합당치 않은 제사는 받지 않으신다는 것을 실제적으로 가르쳐 주셨다(창 4:3-50. 둘째,
모세를 통해서 주신 레위기의 대부분의 내용이 그의 백성의 예배에 관한 교훈과 열납 될 수 있도록 지켜야 할 규칙을 제시해 주셨다. 셋째, 시편은
그 전부가 예배라 할 만큼 영감어린 기도가 열거되어 있다. 넷째, 대부분의 선지자들이 야훼 예배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 그들은 잘못된
예배에 관하여 신랄하게 외치기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중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집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사 1:13)”하였고, 또한 미가 선지자도
이스라엘의 우상을 파괴할 것을 지적했다(미 5:13). 이리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예배)는 순결한 마음이 우선 요구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Ⅳ.
조상숭배 문제의 이론적 배경
1.
조상숭배의 기본적 이해
‘조상숭배’란
조상에 대한 추모나 기념이라는 의미외에 일반적으로는 종교학적인 어의를 가진다. 조상숭배란 영어로는 ‘Ancestor worship’이라고
표현되는데, 이는 ‘조상으로 간주되는 사자의 영들과 관련된 여러 형태의 종교적인 신앙과 예배’를 의미하며, ‘희생제물을 드리는
예배(Sacrificial service)’ 또는 ‘종교적인 예배(Religious service)’까지 합의하는 종교적인 용어로서 아직도
가족의 일부로서 간주되며, 그 영들은 생존자들의 생활속에서 계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믿어지는 죽은 조상들을 숭배하는
관습이다.
그
핵심은 사자가 계속 존재하며, 그 사자들이 생존자들의 생활속에 계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믿는, 즉 사자와 생존자간의 밀접한 관계에서
야기된 신앙이다. 영혼불멸이나 사후세계의 존재를 믿는 신앙 형태는 세계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는 보편적인 현상이며 죽은 조상에 대한 예배 역시
그러한 현상의 일부이다.
그런데
이 예배에 임하는 심적태도에는, 사랑과 존경, 신뢰로부터 특별한 경외심, 또는 노골적인 공포심 등 다양하나, 그러한 심적 태도의 배후에는 죽은
조상을 잘 섬기면 복을 받고, 비위를 거스리면 큰 해를 입는다는 길흉화복의 신심이 내포되어 있다. 그리고 ‘죽음’ 또는 ‘죽은사람’에 대한
예배라고 해서 모두 조상숭배의 범주에 속하지 않고, 지역 또는 상황에 따라, ?사 예찬?이나 ?영웅 숭배?로 다른 범주에 속하는 것도 있다.
조상숭배는 그 죽은 조상의 생전의 사회적인 지위나 성별에 따라 예배의 규모나 형태가 다르게 표현되기도 하여, 사회적인 기능이나 구조적인 영향을
받는 등, 다양성을 띠고 있어서, 사회 구성 단위, 즉 가족, 종교, 국가의 신분, 계급에 따라 가변적이며, 정기적으로 기념하는, 행사로서
사회제도나 규범으로서의 의미를 갖고, 사자와의 만남이라는 초자연적인 존재와의 접촉이라는 면에서 기도, 제물이나 헌물 등이 수반되는 종교행위로서
사제에 의해 집행되는 제사 또는 제례행위도 포함된다.
종교학적인
분류방법에 따르면, 원시 자연신앙의 형태로 분류된다. 37 채필근, ?비교종교론?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80), pp.
152-55.
이러한
조상숭배는 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고, 그 역사도 길다. 각기 나라마다 독특한 양상을 띄고 있는데 이는 사회적인 영향을 잘 받는 까닭이다. 세계
도처에서 예배되어온 조상숭배는 중국에서는 국교화된 유교의 제례로서 그 기능을 하여왔고, 이 중국 유교는 유교 문화권을 형성하여, 이 문화권에
사는 모든 인간의 정서를 지배하였으며, 한국도 이 범주에서 조상숭배를 시행해 왔으리라고 짐작된다.
2.
조상제사 의례의 형성과정
조상제사제도가
언제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고 누구에 의해서 시작되었는지를 밝히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가부장을 중시으로한 대가족제도와 조상숭배 사상은 상호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볼 때 원시 농경사회의 가부장제도에서부터 출발하고 있음을 간파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조상제사가 형성된 경위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1)
농경사회
공자
이전의 제례 예속을 보면 제례는 농경사회의 시조인 신농의 신화속에서 그 기원을 찾고 있다. 제사의 시초 형태는 신옹의 시대에 시작되었다는
사제에서 기인된다. 그리고 사제는 12월에 모든 경작물을 모아들여 하늘에 추수를 감사드리는 제사를 드렸다. 38 이기백, ?한국신론? (서울:
제일출판사, 1963), p. 16.
농경생활은
태양과 계절, 바람과 비, 추위와 더위 등 기상의 변화가 절대적 영향을 주고 있다. 해와 달, 4계절, 바람과 비, 추위와 더위 등의 변화는 곧
하늘의 구체적인 현현이며 인간 생활은 하늘에 의존되고 있음은 물론 하늘은 강한 지상적 의지를 통하여 인간의 생활을 지배하였을 것으로
인식되었다.
2)
혈연사회
제사의식의
생성은 씨족 혈연사회에서도 기인되었을 것으로 본다. 초기 한국민족의 생활은 씨족사회 즉 혈연 사회를 이루어 발전되어 왔다는 데서 이같은 예속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보는 또 하나의 요인이다. 씨족사회의 기본적인 특징은 혈연중심의 사회라는 점이다. 39 박근원, ?기독교와 관혼상제? (서울:
전망사, 1984), p. 12.
혈연
중심으로 뭉쳐진 씨족사회는 초기 농경생활에 있어서는 모두 공동체적 삶을 영위해 나갔다. 생산이나 종교활동도 같이 하였을 뿐 아니라 소집단으로서
자기 방어를 위해서도 필요 불가결한 결합체였다. 이런 소집단적 혈연 씨족 사회는 질서가 아주 엄격하였을 것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가부장적
권위는 그만큼 섬김과 효도를 요구하였고 씨족의 통일은 물론 결속도 요구하였다. 이아같은 생활은 후에 조상숭배나 제사례속은 물론 씨족 공동체의
배경에서 시행되었던 관례같은 예속도 되었다. 40 박근원, Ibid., p. 17.
3)
효와 연장사상
위에서
살펴본 바 이외에도 제사는 효의 연장선상에서 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조상숭배 사상의 심층에 흐르는 관념은 숭조사상이다. 죽은 조상의 영이
안식고에 들어가 있다고 믿었지만 또한 그 혼은 자손들의 끊임없는 공양을 받는 것을 행복으로 생각하였고 그 조상의 혼은 자손을 가호한다고
믿어왔다. 비록 몸은 죽어서 자손과 유리되고 타계 되었지만 생자와 사자 사이의 긴밀감이 이런 관계를 통하여 계속 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즉
죽은 혼의 생자에 대한 가호와 생자의 부조에 대한 효심의 연장이 조상제사로 표현된 것이다.
이와
같은 사상의 배경에는 선친을 추모하고 생전과 다름없는 친애감의 감정이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제사의식은 공자의 제사관처럼
효의 발로이고 순전히 보답과 보은이다. 그런데 효는 부모의 생조시 뿐만 아니고 사후에도 엄숙한 제사를 통해서 계속되는 데 마치 죽은 이를
살아있는 사람 섬기듯 하는 것이 효의 그치라 하였다. 따라서 제사는 죽은이를 계속 받들어 보본, 보은의 효를 행함이고 죽은이를 계속 공양함으로서
효를 이루어가는 것이다. 또한 제사에서 음식을 차려놓고 올리며 절을 하고 축문을 읽어 나가는 것 등의 의식들은 생시와 같이 정성껏 섬기려는
효성의 상징적 표현 들이다.
4)
조상숭배 사상
제례의식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조상숭배 사상에서 출발되었다. 그리고 관혼상제 의식의 출발 역시 조상숭배 관념을 기본 원리로 하여 형성되었다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관례(冠禮)는 반드시 기년복(朞年服) 41 한가족 구성원에 대한 가장 짧은 기간의 상복을 말한다. 이 기간 안에는 관례를 행할
수 없다.
의
이상의 상사가 없어야만 행할 수 있었던 것도 조상숭배 사상에서 나온 규범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관례를 행하기 전에 사당에 올리는 고사나
후에 알현하는 절차 그리고 혼례의 납채례(納采禮) 42 약혼에 이르는 예물 즉 사주단자.
,
납폐례(納弊禮) 43 결혼예물, 이 예물을 보낼 때는 푸른 비단과 붉은 비단을 보냈다.
,
초례(醮禮) 44 혼인예식.
,
견구고례(見舅故禮) 45 시가에 처음 당도하여 시부모와 예를 올리는 배례.
,
의 전후에 반드시 사당에 고사하는 절차 등 모두 조상에 대한 중요한 일들을 상의 또는 보고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어 이것은 조상숭배 의식에서
생겨난 의례들로 해석된다. 또한 복잡한 상례의 절차나 습속들은 이런 조상숭배 관념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치러질 수 없는 복잡한
의식들이다.
죽은
조상의 혼이 머무르는 곳에 신주를 만들어 놓고 새벽에 알현하고 출입시마다 고하며 청초, 동지 또는 매 월삭과 삭망 때마다 참배하며 시식을 올리는
일 등 모두 이런 관념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5)
사자 공포의식
고대로부터
인간은 생명의 본질인 혼의 소멸을 믿지 않고 어떤 변형된 형태로든지 지속되고 있음을 믿어왔다. 또한 죽은 자의 혼이 긴밀하게 관계되어 시체
속에도 생명적 요소가 남아 있다고 믿어왔다. 이 때 시체 속의 생명적인 것을 혼에 대한 백이라고 보았다. 이와 같은 관념은 상례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사자를 위하여 그에 필요한 물품들이 제공되었다. 관곽(棺槨)이나 분묘(墳墓)는 죽은 자의 거처이고 죽은 자의 양식으로 곡식이
제공되었고 살아있을 때와 같이 장신구를 무덤 속에 넣어 주었다. 이같은 장례의식은 사령에 대한 불안한 심리적 위안을 위하여
행해졌다.
또한
죽은 이에 대한 제사를 지성스럽게 울리는 심층에는 사자에 대한 공포 관념과 이것을 피해보려는 심리적 작용이라고도 볼 수 있다.
효경에서는
제사의 개념들을 세 가지로 들었는데 그 중 하나가 재액이나 재앙을 면하는 수단으로 보았다. 46 맹용길, 「한국교회와 제사문제」 (서울:
엠마오, 1985), p. 108.
이와
같은 관념 속에는 사령은 죽지 않고 떠돌아다니며 죽은 날 옛 집을 찾아와서 제사를 먹는다는 관념을 지울 수가 없으며 때로 불충한 공양 후에는
조상들의 분노가 길흉으로 또는 재앙으로 나타난다고 믿어왔다. 제사는 많은 제물이 요구되었으며 자손들은 조상신에 대해서 지극하게 공양을 드리게
되었다. 그래서 인간은 신들(魂)의 호의를 얻기 위하여 심지어는 인간까지를 제물로 드렸었고 풍성한 제물로서 제사가 지내졌다. 이렇게 공양함으로써
신령들은 생존인을 지켜 준다고 믿어왔다.
6)
영혼 불멸사상
고대
무속신앙은 영혼 불멸하는 것으로 믿어왔다. 이러한 신앙은 제사제도를 낳게 한 또다른 원인으로 나타난다. 이같은 신앙은 상례의식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시체를 매장하는데 여러 가지 격식을 갖추는 것은 영혼이 다시 돌아온다고 믿는 신앙 때문이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제례의 관념은 죽은
조상의 혼이 다시 찾아와서 차려 놓은 제물을 먹는다는 신앙에서 제례는 지속되고 있다.
장례의식이
호화스럽게 꽃상여에 태워 보내고 악기를 사용하였던 것도 이런 뜻에서 풀이될 수 있다. 47 윤성범, 「기독교와 한국사상」 (서울: 기독교서회,
1954), p. 177.
그리고
장례시에 시체처리에 있어서 입관한 다음에 영장을 설치하는 절차도 이승과 저승의 생활방식이 다를 것이 없는 인식의 결과이고 또한 이승과 저승의
차이를 삶과 죽음이라는 현상으로 인식한 동시에 이같은 절차도 영혼 불멸현상에서 나온 것들이다. 이와 같은 의식들은 모두 영혼불멸사상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제사제도의 생성 또한 이런 관점에서 발생되었을 것으로 본다.
3.
조상숭배의 사상적 배경
유교는
오히려 유학이라고 불리워져 마땅한 하나의 윤리적인 이론체계이지, 종교일 수는 없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지만 48 정진홍, 「기독교와
타종교와의 대화」 (서울: 전망사, 1983), p. 92.
종교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종교라고도 볼 수 있다. 제사를 지내고 그 분 앞에 무릎을 꿇고 분향을 하지만, 이것은 서구적인 종교개념에서의 예배는
아니다. 49 Ibid., p. 93.
그러나
그 종교성이 제사의식을 통하여 민중의 관습 속에 살아있을 뿐 아니라 유교가 제사를 가장 중요한 형식으로 지키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그 종교성이
입증되고, 제사는 공자 자신에게 뿐 아니라, 중국의 문화를 통하여 가장 중요한, 그리고 근원적인 종교적 제의로 전승되고 있고, 모든 유교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의 종교적 정서를 지배함을 물론, ‘상제’ 즉 ‘천’과 조상은 제사의 가장 중요한 대상일뿐더러, 유교상의 커다란 두 근원을
이루고 있다. 또한 제사가 지향하는 세계는 신앙적인 세계이고, 그 세계는 초자연성을 본질로 하며, ‘상제’에 대한 제사에서 인간은 덕을 밝히며,
조상에 대한 제사에서 덕의 ‘근본인 효를 실천하는 것이기에, 조상제사는 단순한 추모의 정을 표시하는 ‘기념’이 아닌 공경의 태도를 넘어선 예배의
태도’라고도 볼 수 있다. 50 Ibid., p. 103.
이러한
제사를 통하여 그에 참사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확인하고 선조의 현존하심을 되살리면서 그 아득한 자기 생명의 긴 근원을 지금 이 곳에서 경험함으로써
쇠잔해 가는 삶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신비에 참여하는 것이기에, 공자는 제사에 직접 참사하여 신의 흠향함을 체험했을 때 비로소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51 Ibid., p. 105.
이러한
시각에서 유교의 제례는 하나의 사상체계로서 그 종교적 기능을 수행해 왔으며, 초월적 존재인 상모와 조상에 대한 제사로서 기독교와 상대적인 위치에
서서 종교사상으로서 대립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제사는 종교적 기능으로서의 의미뿐 아니라, 윤리적인 면에서 사회의 질서를 유지시켜 윤리 사상적인
문화를 조성하여 그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의 지도이념으로써 효도사상을 배출하였다.
이
효사상은 실천윤리로서 규범성을 가지고 개인과 사회의 생활규범과 치리원리가 되었다. 이 효사상은 자식이 부모에게 취해야 할 윤리적인 자세라기
보다, 인간학적인, 더 나아가 존재론적인 종교적 차원까지를 포용하는 개념을 가지므로 부모와 자녀라는 인간윤리 문제에 그치지 않고 살아계신
부모와의 관계를 넘어 조상을 추모하는데까지 나아가며, 조상을 넘어 근천지효라고 하는 하늘에 근본한 효의 본질 개념에까지 나아가는 사상체계인
것이다. 논어에는 ‘젊은이는 집에 들어오면 효도하고’ 부모의 생전에는 예를 다하여 모시고, 돌아가시면 예로써 장사지내며, 제사를 지낼 때에는
예를 다하는 것이며, ‘부모의 상을 당하여 애도의 뜻을 다하고 먼 조상을 정성껏 추모하면 백성들의 덕성도 순후해 질 것이다.’ 고 효를
강조하며, 부모의 연령을 알아두고, 자식 자신의 건강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며, 올바른 효행과 정치는 일치함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조상숭배는 그 사상적 배경을 종교적인 차원에서의 종교사상, 실천 윤리사상으로서의 효도사상에 기초한다.
Ⅴ.
한국에 있어서의 유교의 조상숭배
1.
유교제사
우리나라에서
유교적 사상을 정치 이념으로 하여 생활 윤리가 확립된 것은 이조시대부터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유학(儒學)이 전래된 것은 역시 그보다 훨씬
앞서고 있다. 신라 선덕여왕(善德女王)9년(서기 640년)에 당태종이 경학(經學)을 장려하기 위하여 널리 학생을 국내외에서 모집한 일이
있었는데, 이때에 신라, 고구려, 백제가 다같이 자제들을 당학(唐學)에 보내어 입학케 하였다. 현상윤(玄想允)은 고구려는 A. D.372년에 이
태학(太學)을 세워 자제들을 교육하였다고 하며, 백제는 A. D.285년에 왕인(王仁)이 일본에 논어(論語)와 천자문(千字文)을 전했으며,
신라도 유학이 행해진 것은 오랜 듯하다. 국학설립(國學設立)은 A. D.682년에 실시되었다고 한다. 이때의 신라의 고구려의 대표적인 유학자로는
설총(薛聰)을 비롯하여 최치원(崔致遠), 최충(崔沖) 등과 고려에서는 이색(李穡), 정몽주(鄭夢周), 권근(權近)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정몽주는 당시 사대부(士大夫)가 다 백일탈상(百日脫喪)하는데, 그는 삼년상(三年喪)을 행했고, 또 주자가례(朱子家禮)에 의하여 가묘(家廟)를
세워 선조를 받들었다. 52 현상윤, 「조선유학사」(서울: 민중서관, 1974), p. 443.
고려
말에 이르러 불교계가 일퇴폐하여 승려들 중에는 계법(係法)을 깨뜨려 탐욕에 몰두할 뿐이요, 민중들은 저급한 미신적 신앙에 잠겨 단지
기복멸재(祈福滅災)를 구할 법교로서 하등(何等)의 위신(威信)과 신뢰성을 갖지 못했다. 또한, 여조 5백년(麗朝 五百年)은 무치(武治)를 힘쓰던
때인 만큼 군인의 발호(跋扈)가 심하고 예법이 해이하여 사회의 혼잡과 질서의 혼란이 극도에 달하였으므로 이씨 조정(李氏 朝廷)은 이 시대를
광구(匡救)하고 백성을 교도(敎導)하기 위하여 불교 이외의 새 지도이념이 요구되었고, 이에 충효를 근본 도덕으로 하는 유교가 이에 응할 만한
것이었다. 53 Ibid.
이조에서는
조정이 유학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오랫동안 불교 사상에 염증이 났던 백성은 이 유교적 윤리를 또한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유학은 이조 초기부터 모든
분야에서 주류(主流)와 중추(中樞)가 되었다. 이 효는 모든 덕의 근본이며 모든 가르침이 이에서 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 효는 여러 덕목
중에 하나로 보지 않고 모든 윤리적인 덕목이 이에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이 효는 충(忠)보다 앞선다. 그것은 효하는 정신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충신을 효자의 집에서 구한다” 하였고, 또 “효자의 가문에서 충신이 난다.” 하였으니 효의 사상이 얼마나 강조되었겠느냐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효 가운데 가장 큰 것이 부모에 대한 효라 했고, 인간의 백행지원(百行之源)이 모두 효에서 이루어진다. 이 효는 부모 살아서
예(禮)로써 섬기고, 죽어서 예로써 장사 지내고 제(祭)도 예로써 하라 하였다. “사자(死者) 섬기기를 산 사람 섬기듯 하며, 이미 죽은 사람
섬기기를 산 사람 섬기듯하라.”고 한 이것은 효의 근치(根治)라 한다. 54 김익주, 「한국의 효사상」 (서울: 서문당, 1979), p
.73.
우리는
인간 사이의 관계를 인륜(人倫)이라 하고,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를 천륜(天倫)이라 하며 누구도 마음대로 끊을 수 없는 관계를 부모 사후에는
제(祭)로서 효를 이어간다. 그러므로, 제사란 어버이가 돌아가신 후, 그 미처 다하지 못한 봉양(奉養)을 뒤좇아서 하고, 아직 다하지 못한
효도를 이어가는 한 방법이다. 이 제(祭)의 중함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무릇 사람은 다스리는 길로써 예(禮)보다 급무인 것은 없다.”
예(禮)에는 5례(五禮)가 있는데, 그 5례 가운데 여러 가지 예가 있으나 그 중에 제례(祭禮)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하였으니, 이 때문에
효자로서 어버이를 섬기는데 있어서 3도(三道)가 있으니, 살아 계실 때에는 봉양하고 돌아가시면 그 상복(喪服)을 입고 상(喪)이 끝나면 제사를
지내는 것을 3도라 하였다.
이상에서
본대로 제사는 죽은 이를 따라 공양함으로써 효를 이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사는 사람의 마음 밖에서부터 오는 것이 아니고 속 내심으로부터
솟아나는 것이니, 곧 마음 안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이를 통하여 자기의 근본을 알고 부모의 은혜를 사례(謝禮)하기 위한 것이요, 효심의
자연스러운 표현이다. 그러므로, 뒤를 이을 아들이 없어 조상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되는 것은 가장 큰 불효라 한 맹자의 말이 사후의 제사를 얼마나
중히 여겼는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2.
제사의 범위
무릇
제사는 인간의 정신 생활에 필요한 의식으로써 그의 정신 생활의 범위에 따라서 제사의 대상이 각기 다르니, 천하를 통치하는 천자(天子)는
천지(天地)에 제사하고, 국가만 정치하는 제후(諸侯)는 사직(社稷)에 제사하고, 대부(大父)에게는 오사(五祀)의 제가 있고, 서인(庶人)에게는
고비(고비-죽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제사가 있다 하였는데, 중국에서는 사대부(士大夫)에게만 사대봉사(四代奉祀)가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서인도까지도 사대봉사하는 것은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라 불리우는 우리의 미풍양속의 하나라고 본다.
우리의
상복제(喪服制)를 보면, 친근(親近)하여 은애(恩愛)가 두터우면 중복(重服)을 입고, 소원(疏猿)하며 경복(輕服)을 입는다. 이 상복제는 인간의
애정에 기초하고 있으며, 나아가 친등조직(親等組織)과 밀접한 관계가 되어져 있다. 우선 친등 관계를 보면 직계친(直系親)에서 위로 부(父),
조(祖), 증조(曾祖), 고조(高祖)에 미쳐서 각기 사등친(四等親)의 조직으로 되어져 있다. 55 이두현, 장수근, 이광국 공저, 「한국 민족학
개설」 (서울: 보성사, 1982), p. 48.
3.
제사의 종류
제사의
종류는 상중(喪中)의 우제(虞祭)와 소상(小祥), 대상(大祥), 담제(?祭), 길제(吉祭)외에 시제(時祭), 다례(茶禮), 기제(忌祭),
묘제(墓祭) 등이 있다. 필자는 각 제사의 순서나 진설하는 음식과 제수(祭需)를 진설하는 것을 하지 않고, 다만 그 제사의 의미만을 약술하려고
한다.
①
우제(虞祭): 초우(初虞)는 장례를 지낸 날 안에 지내고 묘소가 멀어서 당일로 집에 돌아갈 수 없는 때에는 중간에서 자는 집에서라도 지내야
한다. 이것은 사랑하는 부모를 안장(安葬)하고 나서의 효자(孝子)의 심리는 정말 장례를 치뤘는가 의심하는 듯하여 부모를 찾아 헤매게 된다.
심리적으로도 잃어버린 대상을 끝없이 찾는다는 것은 가까운 사람이 죽었을 때,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행동 유형이다. 그러나 마음이 차츰 안정되어
갈수록 사자(死者)를 자기 안에 받아들여 계속 지니려는 내면화의 과정으로 바뀐다. 여기서 묘지가 중심이 되지 않고 신위(神位)가 중심이 되어
안장 후 첫 제사를 일컬어 우제(虞祭)라 한다.
재우(再虞)와
삼우(三虞)는 지내는 절차나 음식을 마련하는 절차가 같다. 단지 그 날짜가 다를 뿐이다. 삼우제(三虞祭)가 지나고 삼일만에 졸곡제(卒哭祭)를
지낸다. 그 제를 지나면 조석(朝夕)으로만 곡(哭)을 한다.
② 소상(小祥), 대상(大祥): 죽은 지 1년이 되면 소상(小祥)을 지내고, 만 2년이 되면 대상(大祥)을 지낸다. 소상 때는 부모에 대한 효자의 아픈 마음이 다 순화(醇化)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