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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도 교육정책 세미나 -
효 교육을 통한 인성교육 실천방안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 일시 : 2014. 11.4(화) 10:00∼
▶ 장소 : 천안신부문화회관 대강당
충청남도교육삼락회
- 목 차 -
인사 및 발제
❀ 효(孝)정신을 되살려야 합니다 ----------------- 5
주 제 강 연
❀ 효(孝) 교육을 통한 인성교육 실천방안 ----------- 9
발 표
❀ 현모양처(신사임당)에 가려진 효교육 ------------ 31
❀ 傳統과 現代의 孝 敎育 比較 ----------------- 59
학생효행사례
❀ 초등학생부 ----------------------------- 79
❀ 중학생부 ------------------------------ 87
❀ 고등학생부 ----------------------------- 92
인사 및 발제
효(孝)정신을 되살려야 합니다.
반 인 충 회장 (충청남도교육삼락회)
효(孝)정신을 되살려야 합니다.
반 인 충
(충청남도교육삼락회장)
존경하는 시‧군삼락회원님, 그리고 각급학교 교장선생님과 학부모님 안녕하십니까?
오늘 여러분을 모시고 교육정책 세미나를 개최하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며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교육정책세미나의 주제인 “효(孝)교육을 통한 인성교육”이라는 주제는 매우 시의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군사부 일체’라하여 나라에 충성하고 스승의 가르침을 순종으로 따르고 부모께 효도하는 미풍양속이 이어져 격조 높은 문화민족으로 발전해 왔는데 급속한 경제 발전과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물질의 풍요를 가져와 황금, 향락 문화에 젖어 정신문명이 황폐해지는 결과를 초래했고, 가족제도의 변천 등으로 효(孝)생활의 퇴보를 가져 왔습니다.
우리가 효 교육을 소흘히 하는 동안 인성교육마져 무너져 가족간의 두터운 신뢰가 엷어지고, 이웃간의 따뜻한 사랑과 인정이 메말라졌습니다.
물질주의 가치관이 우리 청소년들을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청소년들의 바른 가치관교육에 힘써야 합니다. 가치관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인생의 길에서 가장중요한 것이 무엇이고 어떤 것이 불변의 가치요 추구해야 할 가치인가를 심어 주어야 합니다.
공자는 효(孝)는 백행(百行)의 근본(根本)이라고 했습니다.
효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 불변의 가치는 효(孝 )라고 생각합니다.
효 정신을 승화 발전시켜 나가면 인성교육은 저절로 이루어지리라 생각됩니다.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도 우리 청소년들에게 효(孝)를 가르쳐야 합니다.
효(孝)는 가정에서부터 배워야 합니다.
효자 집에 효자가 난다는 말을 음미해야 합니다.
비록 시대가 변하여 효 생활의 방법은 변하더라도 어린시절부터 효도의 정신은 변함없이 가르쳐야 하고 효도의 생활은 이어져 나가도록 지도 하여야 합니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효(孝)사상은 인류(人類)를 위한 가장 위대한 사상이다.
“한국에서 장차 인류문명(人類文明)에 크게 기여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부모를 공경(恭敬)하는 효(孝) 사상일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민족에 뿌리 박혀있는 효(孝)사상과 경로(敬老)사상, 가족(家族)제도를 영원히 보존해야 할 것입니다.
충청남도교육삼락회에서는 청소년들에게 효행실천을 강화하기 위하여 매년 효행실천사례 공모을 통해 시상, 장려하고 있으며 이번에도 「효(孝)교육을 통한 인성교육」실천방안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정책세미나가 효(孝) 교육의 불씨를 일으키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 합니다.
끝으로 세미나를 개최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신 김지철 충청남도교육감님을 비롯한 관계자 여러분과 발제자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2014년 11월 4일
주 제 강 연
▶ 효(孝) 교육을 통한 인성교육 실천방안
이 대 형
경인교육대학교 교수
효(孝) 교육을 통한 인성교육 실천방안
이 대 형(경인교육대학교 교수)
Ⅰ. 서 론
현대는 급격한 사회변화와 발전으로 인해 인간성의 상실과 가정교육 특히, 효 교육에 있어서 커다란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러한 위기를 낳은 원인 중 하나로 인성교육의 부재를 주장하는 학자들이 늘고 있다. 물론 전통적으로 학교교육에서 인성교육과 도덕교육을 강조하였으며, 인간의 존엄성과 개인의 가치를 존중하고 이해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과 방법들이 개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간성 상실로 인한 사회문제는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증가하는 추세이다.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실시한 ‘2012년 교육 여론조사’에서 일반인․학부모․교사 모두가 학생에 대한 인성교육 강화를 시급한 문제로 꼽은 것은 이러한 우리의 사회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 따라서 학교 현장에서 나타나는 학교폭력, 따돌림 등 부작용을 완화하여 학생들의 바른 인성 함양을 위해 가정교육과 연계된 교수․학습 방향과 전략이 보다 구체화되어야 할 것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효’를 모든 인간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으로 삼았으며, 다른 어떤 가치나 덕목보다 효를 중요시 하였고 국가의 근간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사회에서 ‘효’는 커다란 혼란을 맞게 되는데, 이는 물질만능주의, 개인주의, 한 두 자녀로 인한 핵가족화 그리고 맞벌이부부의 증가 등으로 그 가치가 점점 퇴색되어가고 있다. 특히, 우리는 부모의 재산을 취하기 위해 부모를 끔찍이 살해하는가 하면,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형제자매나 자녀를 살해하는 비인간적인 사건 보도를 종종 접하게 된다. 이것은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인성 교육의 부재와 더불어 효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까닭이다.
이에 따라 2007년 8월 “효행 장려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 공포됨으로써 효 교육이 21세기 인성교육 실천을 위해 중요하게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효 교육을 통한 인성교육 실천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것은 바로 인성에 대한 개념의 모호성이다. 인성은 그 개념의 모호성으로 인해 학자마다 교육 프로그램마다 제각각으로 이루어져왔으며(엄혁주, 2012), 그 결과 또한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미국의 인성교육을 이끌어온 Lickona 교수는 사회의 도덕적 타락을 개인과 가정, 사회의 복합적인 문제로 규정하고 있으며 학생들의 인성함양에 기여할 수 있는 통합적인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도덕적, 실천적 인성을 통해 제기하였다. 이는 결국 가정만의 역할 뿐만 아니라 학교, 사회가 공동으로 인성교육을 위해 책임감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성교육이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학교교육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효 교육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이에 본 글에서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행해지고 있는 효 교육의 실태와 인성교육으로서의 효 교육의 과제에 대해 알아보고, 효 교육을 통한 인성교육의 실천방안에 대하여 논의하고자 한다.
Ⅱ. 인성교육으로서의‘효 교육’의 과제
1. 인성교육에 대한 문제 제기
학교교육에서 인성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인성교육이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학교를 찾아보기 쉽지 않은 것이 우리네 교육계의 현실이다. 우리사회의 대다수 구성원들, 특히 학교현장의 교사와 학부모 그리고 교육정책 당국조차도 지식에 선행한 인성교육의 필요성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좀처럼 진전이 없다. 지난 정부시절 교육정책의 기저는‘창의·인성’이었다. 그러나 학교현장에서 초점을 맞춘 것은 창의교육이었고, 인성교육은 창의교육의 그늘에 가려져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질 못했다. 우리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인성교육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의식하고 있고, 학교폭력, 사회구조적 비리가 파헤쳐 질 때마다 가정과 학교교육에서 인성교육의 부재를 제기하고 있지만 사건이 마무리되고 여론이 수그러들면 인성교육에 대한 관심은 이내 사라지고 만다. 현 정부 들어서도 인수위 교육분과의 교육정책 건의 1순위가 인성교육을 강화하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학교현장에 어떤 시그널도 감지하기 어렵다. 그냥 또 물 건너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학교 현장에 인성교육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존재한다. 우선은 학교현장에 인성교육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정립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학교현장에서 교육 내용의 구성이 모호하고 지도방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무엇이 인성이며, 인성교육을 실시하기 위해서 초·중·고등학교 과정에서 어떤 내용을 가르쳐야 하는지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도출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국가가 인성교육 실천을 권장하면 학교 현장에서는 주관적인 관점에서 인성교육을 실시하곤 한다. 이렇다보니 어느 학교에서는 창의교육 강사를 초청해 교육을 시키고 인성교육을 시켰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물론 어떤 지식의 내용을 가르쳐도 일본의 학교들이 접목하고 있는 방식처럼 수업의 내용과 관계없이 인성을 전제로 접근 한다면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우리 학교현장의 실정은 학교급별 교육목표에 인성 함양 요소가 연계되어 있지 않아 학생 발달 단계별 인성교육 실천에 한계가 있다. 학생들이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고, 소통하며,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실제적 능력 함양을 위한 실천․체험 중심의 교육이 부족하다. 학교 인성교육은 비교과 중심으로 이루어진 측면이 강하며, 교과에서는 지필 평가를 위한 지식 습득이 중심이다. 봉사활동, 계기 교육 강연회 수련회 등을 통한 행사 위주로 1회성 교육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생활지도 등 인성교육을 잘하는 교사를 우대하는 정책이 미흡하여 학교현장에서 인성교육을 후순위로 미루는 실정이다. 수석 교사 선발이나 학습 연구년 대상 교사 선발, 각종 시상, 교장․교감 승진 등에 있어서 인성교육 우수 교사 우대책도 미흡하다.
그러나 학교현장에 인성교육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오랜 동안 겉돌고 있는 보다 큰 이유는 대학입시와 연계성이 없어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심지어 교사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 누구나가 학교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면 인성교육의 부실문제를 꺼낸다. 하지만 정작 자녀가 다니는 학교가 인성교육에 치중할라치면 “그러면 대학입시는 어떻게 하냐?”고 걱정스런 표정을 짓는다. 인성교육이 필요하긴 한데 자신의 자녀가 다니는 학교는 빼고 다른 모든 학교들이 인성교육에 치중했으면 좋겠다는 모순된 생각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이와 같은 생각의 근원은 대학입학전형제도에 기인한다. 인성교육 강화를 위해 입학사정관, 자기주도 학습전형 등 새로운 입시 제도를 도입했으나 성적중심의 학생 선발 관행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초중등교육이 대학입시에 종속(?)돼 있는 상황에서 대학들이 지식위주의 입학전형제도보다 인성위주의 전형으로 전환하기 이전에는 일선 학교들의 인성교육 뿌리내리기는 요원할 것 같다. 우리사회의 대다수 국민들이 지식중심의 학교교육의 폐해를 실감하고 있고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대통령이 나서서 국가개조론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초·중·고등학교의 배움의 과정에서 사람됨의 교육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한 제도의 개혁만으로 국가개조가 이뤄질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좀처럼 활성화 되지 못하고 있는 인성교육은 대학입시란 전봇대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해 학교폭력이 사회적 이슈로 제기됐을 때, 인성교육을 추진했던 고등학교들이 있었다. 하지만 자녀들의 대학입시를 우려한 학부모들의 거센 항의로 중단되고 말았다. 국민 누구나가 학교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면 인성교육의 부실문제를 꺼낸다. 하지만 정작 자녀가 다니는 학교가 인성교육에 치중할라치면 “그러면 대학입시는 어떻게 하냐?”고 걱정스런 표정을 짓는다. 인성교육이 필요하긴 한데 자신의 자녀가 다니는 학교는 빼고 다른 모든 학교들이 인성교육에 치중했으면 좋겠다는 모순된 생각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대학입시를 목표로 인성교육을 한다는 게 말이 되냐”고 목적과 수단이 바뀐 것이란 비판을 할 수도 있다. 대학입시를 전제로 인성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성교육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대학입시 제도를 활용하는 방안에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사회가 오래전부터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인성교육의 필요성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지만 인성교육이 여지껏 제자리걸음만을 되풀이 하고 있음은 유용성이 담보되지 않기 때문 아니겠는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오로지 목표는 하나,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는 것인 학생들에게 대학입시에 반영되지 않는 내용에 시간을 투자하지 않으려 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학교현장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단 하나, “선생님, 인성교육이 대학입시에 반영 되나요?” 그것뿐이다. 대학입시와 관련 없는 그 어떤 내용도 관심과 가치를 공유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 우리사회의 풍토다. 비단 초중고등학교 현장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대학생들을 상대로 인성교육을 강화할라치면, “교수님, 인성교육이 입사시험에 반영 되나요?”를 왜 묻지 않겠는가. 이것이 시장적 가치를 지닌 자본주의 교육의 문제이기도 하다.
오래전 우리사회에 사회봉사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대학입시에 사회봉사 점수를 연계했고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시작단계에서는 사회봉사가 과열돼 심지어 학부모들이 자녀를 대신해 봉사활동의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10여년이 지난 지금, 사회봉사는 우리사회에 일상적 가치로 정착했고 한국인들의 봉사는 국내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 산간 오지까지 파고들고 있다. 이제는 어떤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사회봉사활동을 통해 삶의 보람과 의미뿐만 아니라 즐거움도 찾게 되지 않았는가? 초중고등학교의 교육이 대학입시에 종속되어 있음은 매우 서글픈 일이다. 그러나 대학입시 제도를 활용하면, 빠른 기간에 인성교육이 활성화 되고 뿌리를 내리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지식에 앞서 인성을 중시하는 평가기준이 대학입시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취업에도 반영시켜야 한다. 그래야 인성이 중심이 되는 대한민국, 행복한 국민시대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2. 인성교육의 이해
도대체 ‘인성이 무엇인가?’ 그리고 ‘인성을 구성하고 있는 내용들은 무엇인가?’와 관련해 이렇다 할 합의 된 정의와 구성요소들을 제시하는 선행연구들이 흔치 않다. 다양한 학자나 단체들이 규정하고 있는 내용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 어느 것도 학교교육현장에서 전적인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내용들은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본 발표자는 다음과 같은 의미 있는 정의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이찬승, 2012). 인성교육(character education: CE)에 관한 첫 번째 정의는 ‘선을 알고(knowing the good), 선을 지향하며(loving the good), 선을 행하는 것(doing the good)이고, 또 다른 정의는 ’아동이 핵심적인 윤리적 가치(core ethical values)를 이해하고, 이런 가치에 대해 마음을 쓰며(care about), 이에 따라 행동할(act upon)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의도적이고 집중적인 노력’이라는 정의다(Thomas Lickona). 본 발표자가 찾아낼 수 있었던 비교적 잘 정리 된 정의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인성교육의 내용의 내용은 어떻게 구성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가? 이와 관련해 미국의 청소년 윤리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비영리단체인 Josephson Institute가 개발한 인성교육의 구성요인들을 보면, 신뢰(Trustworthiness), 존경(Respect), 책임감 (Responsibility), 공정성(Fairness), 배려(Caring), 민주시민의식 (Citizenship) 등 6가지를 들고 있다. 그렇다면 인성교육의 내용의 내용은 어떻게 구성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가? 이와 관련해 미국의 청소년 윤리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비영리단체인 Josephson Institute가 제시하고 있는 인성교육의 구성요인들을 보면, 신뢰(Trustworthiness), 존경(Respect), 책임감 (Responsibility), 공정성(Fairness), 배려(Caring), 민주 시민의식 (Citizenship) 등 6가지를 들고 있다. 선행연구를 통해 제시된 인성의 개념을 정리한 내용들을 소개하면 <표 1>과 같다.
<표1>인성의개념정리
구 분
인성의 개념
황응연(1992)
환경에 대응함으로써 나타나게 되는 행동 및 태도, 동기, 경향성, 인생 과정들의 총합, 사람들에게 있어 시간과 상황에 걸쳐 지속되는 독특한 구조이며, 인성은 어떠한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크게 변화될 수 있다는 의미를 포함
이근철(1996)
좁게는 도덕성, 사회성 및 정서(감정)등을 의미, 넓게는 지‧덕‧체 또는 지‧정‧의를 모두 골고루 갖춘 전인성
이윤옥(1998)
다른 사람에게 주는 그 사람의 전체적인 인상으로 성품, 기질, 개성, 인격 등 가치개념의 의미를 내포
남궁달화(1999)
사람의 성품이며, 성품은 성질과 품격. 성질은 마음의 바탕이고 사람됨의 바탕을 가리키는 말
조난심(2004)
인성은 태어나면서 지니고 있는 성격이나 특질의 개념이 아니라, 의도적 교육이나 학습에 의해 습득하거나 변화가 가능한 인간의 성품을 지칭하는 것
조연순(2008)
자신의 내면적 요구와 사회 환경적 필요를 지혜롭게 잘 조화시킴으로써 세상에 유익함을 미치는 인간의 특성
미교육부
(2007, 2008)
존중, 공정성, 보살핌 등의 도덕적, 윤리적 가치와 책임감, 신뢰, 시민성 등을 망라하는 개념으로, 개인 또는 집단의 정서적, 지적, 도덕적 자질은 물론 이러한 자질들이 친사회적 행동으로 발현되는 것을 포함하는 것
Lickona &
Davidson
(2005)
인성을 도덕적 인성과 행동적 인성으로 구분함. 도덕적 인성은 핵심 윤리적 가치가 될 수 있는 정직, 정의와 같은 덕목을 의미하며, 행동적 인성은 인내심, 용기와 같이 옳은 것을 행하지 않도록 유혹하는 상황을 잘 견딜 수 있도록 하는 내적인 강인함을 의미
한편, 인성교육의 구성요소들을 분류한 선행연구의 결과를 소개하면 <표 2>와 같다.
<표2>인성의구성요소(덕목)분류
출처(연구)
영 역
개인/심리
타인 및 사회
조연순 외
(1998)
자기존중의식: 자신감, 자아수용, 자기표현, 자기통제
타인존중의식 : 권위의 존중과 수용, 예의범절,
효, 사랑, 배려, 정직, 신뢰
민주시민의식: 준법정신, 봉사정신, 협동정신,
책임감, 정의감, 애국심,
환경보호의식
박효정 외
(2000)
정직
생명존중
환경보호의식
절제
타인배려: 연민, 관용, 양보, 친절, 봉사, 헌신
공공질서의식: 준법의식, 공중질서 준수
사회연대의식: 책임과 협동, 공익 우선, 신의
애국애족: 나라사랑, 민족사랑, 인류애
경로효친
성윤리
평등의식
강선보 외
(2008)
전인성
도덕성
영성
생명성
창의성
관계성
민주시민성
Greenawalt
(1996)
자기에 대한 존중: 전념, 인내,
자기통제, 절약, 절제, 수용
시민정신: 권위의 존중과 수용, 평등, 양심과
표현의 자유, 정의의 자유, 관용
타인에 대한 존중: 공손, 동정, 예의범절
직업윤리 : 성취, 협동, 신용, 성실, 자신감,
생산성, 창의성
애국심
Josephson Institute
신뢰: 정직, 성실, 충실
존경
책임감
공정
배려
시민의식
3. 인성교육의 문제점
인성교육은 특정한 방법이나 틀에 얽매여 의존하는 것보다 다양한 방법을 발전시켜야 하며,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라 하더라도 상황과 개인에 맞게 재구성되어져야 한다(엄혁주, 2012). 따라서 인성교육이 성과를 거두기위해서는 먼저 해결해야 할 이론적, 실제적 문제점을 알아야 한다.
그 문제점 중 하나는 인성교육론자들이 인성의 개념을 인지, 정의, 심동적 요소의 통합적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교육의 과정에서 학습자는 인지적인 측면에 치우친 수동적인 존재로 평가되고 있다. 인성교육의 핵심을 Lickona(1991)는 머리와 가슴 그리고 손의 습관을 강조하고 있다. 즉 인성교육은 인지적, 정의적, 심동적 영역이 상호 연관성과 일치를 강조해야 한다.
둘째, 인성의 개념의 모호성으로의 어려움을 강조하다보니 실천적인 교육보다는 개념과 이론적 틀을 만드는데 너무 집중하고 있다. 물론 개념을 명확히 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여러 덕목 가치들을 다 가르칠 수도 없고 무엇이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이해 그리고 공감을 통한 교육이 필요할 때이다. 이러한 교육은 가정에서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태어나면서 처음 애정을 형성하게 되는 부모역할 그리고 자라면서 대인간의 관계를 배우게 되는 형제자매들 역할 등 가정에서의 교육이 바로 인성교육의 첫 출발이자 가장 큰 모토가 된다.
셋째, 교육 대상인 학생들을 인지적으로 바라보거나 너무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존재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수업을 통해 엄격한 규율준수, 사회적 보상과 처벌로 인한 사회 가치 수용 그리고 평가를 통한 수동적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이것은 지나친 사회화 강조로 학생들의 독립성, 자율성, 비판적 사고 그리고 고등사고 능력의 계발에 대해 소홀해 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글로벌 사회에서는 고등사고 능력과 비판적인 사고를 통한 사회적 상호작용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인성교육도 위의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4. 인성교육 중심의 효
우리는 흔히 옛 성인이나 어르신들에게 “하늘의 이치를 따라야 한다.”는 말을 듣곤 한다. 사실 지금 이 시대의 사회문제를 살펴보면, 자연의 순리를 따르지 않고 역행하거나 어긋난 행동을 함으로써 발생한 것들이 많이 있다. 여기서 ‘하늘의 이치’라는 것은 현재 각자에게 자신이 따를 수밖에 없는 도덕적 명령이다. 전통적으로 인성교육(덕 교육)의 정당성은 시대를 이어져 내려온 도덕교육의 실천에 있다. 시대를 이어져 내려온 도덕교육에 있어 그 핵심은 가정교육 즉 효 교육이다.
인성교육에서도 인간의 근본이 되는 효가 그 중심이 된다. 손지선(2003)은 현대 사회의 인성교육에서 효 교육이 인간의 가치 정립과 원만한 가족관계 형성에 큰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이돈호(2004)도 효 교육은 우리 전통의 윤리로써 성실성과 애경심을 바탕으로 한 윤리가치이기 때문에 인간 스스로의 사명을 다하기 위한 책임감과 적극적인 태도와 능력을 기르게 함으로써 도덕적 인간을 육성하는데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결국 인성교육의 출발점은 효 교육이고, 이러한 효 교육을 기반으로 한 인성교육을 위해서는 효 교육 지도방법을 통한 인성교육과 그에 따른 부모와 교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5. 효 교육 지도를 위한 부모와 교사의 역할
인성교육이 제대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대해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본 글에서 효 교육을 바탕으로 한 인성교육을 강조하였듯이 효 교육이 인성교육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인위적인 인성교육이 아니라 가정생활과 학교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습득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부모와 교사가 인식해야할 역할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부모와 교사는 아이들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 아이들에게 항상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무조건적인 봉사자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학생은 학교와 교사를 통해 배운다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둘째, 부모와 교사는 늘 아이들을 긍정적인 사랑의 존재로 바라보아야 한다. 부모는 자녀에 대해 긍정적인 존재로서, 가족 간의 애정을 재인식하는 기회를 자주 갖고 긍정적인 대화와 격려를 자주 해야 한다. 그리고 교사는 학생들을 자녀처럼 보살피고 이끌어야 하는 존재로 인식해야 한다. 이를 위해 효행 일기쓰기나 효행 실천록 작성하기, 효 관련 독서지도 등을 지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셋째, 가정, 학교, 사회의 통합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효행 장려법에 따르면 일상생활에 적용되는 표준적인 습성을 형성시켜 주는 일, 대상에 따라 공경할 수 있는 태도를 길러 주는 것 등을 강조하는데 이는 학교, 가정, 사회가 연계하여 지도해야 그 효과가 극대화 된다. 학교는 학교생활에서 쉽게 적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매뉴얼을 통해 실천 가능하도록 하며, 가정에서는 가족 간에 서로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점검의 시간 등과 같은 생활교육으로 정착되어야 하며, 사회에서는 정책적 제도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Ⅲ. 효 교육 실천 방법
효 교육은 모든 인성교육의 근간이 된다. 인성 교육이 학교와 가정, 그리고 사회가 혼연일체가 되어 학생들을 지도할 때 그 효과를 거둘 수 있음을 직시할 때, 각각의 실정에 맞게 효 교육 실천을 위한 역할과 실천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본 장에서는 인성교육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효 교육을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학교와 가정을 중심으로 각종 교육기관에서 효 교육을 위해 제안된 실천사례를 살펴보고 이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향을 살펴보았다.
1. 효(孝)의 의미 재탐색
인성교육의 근간으로서 효를 실천하기에 앞서 효(孝)의 의미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효를 말할 때는 부모 자식 간에 지켜야할 도리이자 덕목으로서 자식이 부모에 대한 공경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공자는 효경에서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덕행의 근본이며 하늘로 부터 부여받은 천성적인 것이라고 하였다. 특히, 공자는 효의 본질에 있어서 공경하는 마음가짐을 가장 중시하였다(2004, 조성남 외). 이처럼 효는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며 섬기는 일 방향적 의미로 인식되어진다. 그러나 가족의 환경이 과거와 다른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일방적인 봉양의 의미는 젊은 세대들에게 효를 기피하거나 불편한 것으로 인식하게 한다.
퇴계 이황은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공경하고, 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 인자하게 대하는 것이 부모자녀 관계의 기본 도리이며 이것이 곧 효의 기본원리라고 주장하였다(성규탁, 1995). 이처럼 효라는 것이 자식이 부모에게 행해야하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식에게 베푸는 인자함과 사랑의 상호호혜적인 관계로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는 곧 효라는 덕목을 한 가정에서의 부모와 자식 간에 지켜야할 도리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의 부모와 자식까지 포괄함으로써 사회 공동체 구성원 간에 지켜야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가 인간 사회에 있어서 모든 질서의 근원은 효에서부터 출발한다고 한 이유이다. 효의 기본적인 개념은 현대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적인 배려와 공경을 강조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효의 실천을 한 가정의 울타리로 한정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로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 다음은 가정, 학교, 사회에서 활용 가능한 효 교육 실천 방안을 탐색하였다.
2. 가정에서의 효 교육 실천 방안
가정은 사람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인간관계를 맺는 곳이자 일생을 통해 지속적으로 개인의 인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회 구성의 기본이자 핵심이 되는 곳이다. 따라서 가정교육은 인성교육의 밑거름이자 효행 실천의 시발점으로 그 어떤 사회 공동체보다 중요성을 지닌다. 과거 전통사회 또는 농경사회에서는 대가족으로 가족을 구성하였으며, 원만한 가족 간의 인간관계가 효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가족은 자녀들의 기본적인 교육과 인격수양이 이루어지는 곳이자 경제활동의 근간이 되는 곳으로 그 역할이 매우 중요하였다.
그러나 현대 산업 사회와 작금의 정보화 시대로 급변하면서 가정의 형태와 역할도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소가족을 넘어 핵가족, 1인 가족의 형태를 나타내면서 과거처럼 많은 역할을 수행하는 곳이 아니라 보육과 주거 중심으로 변하고 있다. 각종 경제활동과 교육활동은 사회나 학교로 이관되면서 가족 간의 끈끈한 유대관계가 약해지고 있는 것이 현재 효 교육을 통한 인성교육 실천을 다시 강조하게 되는 이유가 되고 있다.
특히, 현대 가정에서는 가족 간에 원만한 인간관계 형성을 통해 자녀와 부모 간에 소통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데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부모와 자식이 상하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며 부모와 자식 간의 세대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인식의 전환이 효 교육의 중심이 될 수 있다. 다음은 가정에서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프로그램의 예시이다.
효 실천 프로그램
기본 내용
비 고
밥상머리 교육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음식을 먹으며 소통하는 시간을 갖는 것. 대화의 장을 통해 가족 간의 이해를 도모하고 예절, 인성, 사회성 교육을 함께 할 수 있음.
매주 수요일 가족 사랑의 날로 정하여 캠페인 활동
가계도 만들기
집안의 가계도 제작을 통해 조상의 의미를 이해하고 촌수에 따른 호칭 교육을 실시할 수 있음
1일 1효 실천하기
자녀는 부모님을 위해 하루에 한 가지씩 효행을 실천하도록 하고, 부모는 자녀를 위해 한 가지씩 사랑을 베풀면서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를 형성함
행동, 언행, 편지/문자 등 다양한 형태
사이버 가족관
가족구성원만의 온라인 카페나 블로그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을 활용한 각종 커뮤니티를 구성하여 소통의 공간을 마련함. 자녀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음.
표 . 가정에서의 효 실천 프로그램 예시
3. 학교에서의 효 교육 실천 방안
최근 학교에서는 미래 사회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창의ㆍ인성을 강조하는 다양한 교육과정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사회적 부조리 및 각 종 범죄로 인해 인성교육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학생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학교인 만큼 학교에서 경험하고 배우게 되는 인성교육 활동이 학생들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
학교에서의 효 교육은 주로 도덕·윤리 교과의 교육목표와 내용 속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학교 교육의 주된 내용은 지식 교과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도덕·윤리 교과의 시수는 가장 적기 때문에 효의 내면화, 행동화, 습관화의 지도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학교에서의 효 교육은 특정 교과에 한정하거나 일회적 구호성 교육을 탈피하여 전 교과를 통하여 통합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최근에는 창의적 체험활동 등의 범교과 활동이 강조되고 있기 때문에 학교와 학생들의 특색에 맞게 효 관련 내용을 교과내용으로 편성하여 지도할 수 있다. 효 관련 독서지도, 효행 학생 표창 등 발달 단계에 맞는 효 교육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의 개발과 운영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나아가 효 교육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효 관련 교육내용의 학습뿐만 아니라 직접적 실천이 이루어져야 한다. 예절 교실, 노인정 방문 등 다양한 효 관련 체험 학습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학교에서는 학생과 가정 또는 사회를 연결하는 중개 역할이 가능한 만큼 가정과 지역 사회시설과 연계하여 운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단지 이론적이며, 일회성의 교육활동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가족 및 웃어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면 부모들의 관심을 학교교육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학생과 부모가 함께 교육활동을 전개함으로써 가족 간에 소통하고 상호 이해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효 실천 프로그램
기본 내용
비고
효 실천 전시회
학생들이 실천했던 다양한 효행의 모습을 전시회를 통해 공유하는 교육의 장을 마련
효행 신문, 보고서, 사진 등
효 실천 프로젝트
학생들이 모둠으로 가정 및 사회에서 실천할 수 있는 효행 실천 계획을 수립하여 실천하고 이를 발표하는 과정을 통해 효행을 내면화 함
효행 봉사활동, 노인시설과의 자매결연
가족동반 스포츠클럽 및 체육행사
토요스포츠데이를 활용하여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스포츠 프로그램을 운영과 가족이 함께하는 체육대회 및 행사를 운영함
배드민턴, 줄넘기, 등반대회,
자매결연
지역 사회의 노인 시설이나 독거노인 등과 자매결연을 통해 학생들이 직접적인 효행을 실천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줌.
표 . 학교에서의 효 실천 프로그램 예시
4. 사회에서의 효 교육 지원 방향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의 교육을 본받을 것을 말했다는 기사가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는 우리나라의 주지주의 중심의 교육의 성과로 기초학력이 우수함을 말하는 것으로 지금의 우리가 희구하는 인성교육과는 거리가 멀다. 대학 입시로 대변되는 우리나라의 지식위주의 교육 풍토는 똑똑한 인간을 만들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인성이 바른 올바른 인간을 양성하는 데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교육이 본질적으로 '사람다운 사람'을 기르는 가치 지향적인 활동이라 할 때, 우리 교육이 지니고 있는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문제점은 지식의 제공에 편중된 나머지 인간 교육을 등한시함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식 위주의 교육에서 전인 교육의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2004, 조성남 외).
지성과 인성이 균형 잡힌 전인교육을 위해서는 인성교육의 기본 바탕이 되는 효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이 되어야 한다. 사회 전반에 걸쳐 사랑의 정신인 효 의식을 고취하여야 하며, 가정이나 학교에서만이 아니라, 지방 자치 단체, 사회단체, 종교 단체, 대중 매체를 통해서도 효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사회에서의 효 교육은 일상생활의 구체적이고 생생한 경험과 더불어 이루어지기 때문에 효심과 효행진작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사회에서 효 교육 활성화를 위해서는 지방 자치 단체, 사회단체, 대중 매체, 종교 단체에서 다양한 효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하고, 가정, 학교, 지역 사회가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각종 단체에서 효행 사례를 발굴하여 널리 홍보하고 효행 자를 찾아 표창하고 우대해 주는 정책 개발 등 효심을 진작하고 효 실천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한 사회적인 노력이 절실히 요청된다(2004, 조성남 외).
효 실천 프로그램
기본 내용
비 고
효 실천 캠페인
사회 전반에 걸쳐 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캠페인 활동을 통해 효를 실천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일조할 수 있음
언론 및 방송 매체의 지원, 공익광고 등
효행자 우대 프로그램
지역 사회 단체에서 효행 자를 발굴하여 표창하고 이런 사람들을 우대하는 주는 풍토를 조성함
취업 및 진학에 인센티브
노인 자원 봉사 활동 프로그램
노인들의 사회봉사 활동 참여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이 노인에 대한 고마움과 공경하는 마음을 갖도록 지원
실버 봉사단. 청소 및 교통 봉사
표 . 사회에서의 효 교육 지원 방안
Ⅳ. 결 론
우리나라 교육의 목표는 널리 인간을 이롭하게 하는 홍익인간의 기본 신념아래 지ㆍ덕ㆍ체가 조화로운 전인교육을 지향하는데 있다. 덕으로 대표되는 인성은 사람의 됨됨이를 이르는 것으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인 지와 체의 가치를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올바른 인성이 갖추어지지 않고서는 아무리 뛰어난 지식과 신체적 능력을 갖추어도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렇게 중요한 인성은 다양한 요인들로 구성되어지는데 그 핵심적인 덕목 중의 하나가 바로 효이다.
공자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덕을 인(仁)이라 하면서 그것의 근본 중 하나를 효라 할 정도로 효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효는 윗사람에 대한 공경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아랫사람에 대한 인자함도 포함하는 것으로 인간관계의 기본이자 핵심이 되는 덕목이다.
최근에는 효행 장려법을 제정하여 시행함으로써 법적으로도 효의 중요성을 뒷받침하며 실천을 지원하고 있다. 최근 들어 효의 중요성이 재차 강조되는 것은 그만큼 효의 실천을 통한 인성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아직도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세월호 참사는 바른 사람의 모습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모습을 확연히 보여준 사건이다. 대한민국이 다시는 이런 비극을 겪지 않기 위해서라도 효를 바탕으로 한 인성교육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효 교육을 근간으로 한 인성교육은 특정 기관이나 단체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범국가적으로 이루어질 때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그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나부터 실천한다는 생각으로 국민 모두가 작은 것에서부터 효행을 실천한다면 분명 우리나라의 동방예의지국의 옛 명성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나와 너와 함께 하여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이 싹틀 때, 효의 시작은 다시금 되살아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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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표
▶ 현모양처(신사임당)에 가려진 효교육
유 현 숙
(인천해송중학교 교사)
▶ 傳統과 現代의 孝 敎育 比較
김 명 운
(국제효문화선양운동본부장
성산효대학원대학교 충청효교육원 교수)
-- 현모양처(신사임당)에 가려진 효교육 --
유 현 숙
(인천해송중학교 교사)
Ⅰ. 신사임당이 이 시대 자녀교육에 필요한 이유
부모가 자녀를 양육함에 있어 효를 바탕으로 한 가정교육은 자녀들의 윤리적 판단력과 행동발달은 물론 통합적 인성교육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자녀들을 키워낸 신사임당의 효사상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신사임당을 현모양처 또는 예술가의 면모에 주목하다보니 그 결과 신사임당이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모범적인 여성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으나 그것은 그녀를 인물 자체로서 평가하기보다 율곡의 어머니라는 점에 초점이 맞춰져 현모양처의 측면만 부각되었다. 그리하여 신사임당의 효교육이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워낸 교육적 핵심을 보려고 한다.
신사임당은 조선이라는 시대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결혼 후, 친정에서 생활하면서 자유롭게 작품생활도 하고 자녀를 양육하는 등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간 여성이다. 그런 배경에는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학식이나 연륜이 깊었던 외할아버지나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그처럼 원만한 친정에서의 삶은 서울 시댁에서의 생활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신사임당은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를 잘 봉양하고 가솔들을 잘 거느렸다. 신사임당은 그런 삶의 모습을 통해 자녀들에게 자연스럽게 효의 모범을 보일 수 있었다.
신사임당의 생애와 가정교육의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 신사임당은 조선시대를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독립적이고 인격적 주체로서 교육이념의 근간인 효를 중심으로 인간의 도리를 강조하고 실천하였으며 아들이 없던 친정부모에게 아들의 역할까지 대신한 훌륭한 여성이었다. 율곡은 어렸을 때부터 외가에서 어머니 신사임당이 행하는 효를 배우고 몸에 익혔다. 율곡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서모 권씨를 마음을 다해 섬겼다. 율곡이 서모 권씨를 감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마음을 다해 효를 행한 율곡의 정성을 보여주는 것이고 그것을 심어준 신사임당의 생애가 어떠했는가를 반증하는 것이다.
둘째, 신사임당은 자녀들이 장차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깨닫고 ‘입지’를 자녀교육의 목적으로 삼고 무엇보다 먼저 뜻을 세우도록 도왔다.
셋째, 신사임당은 교육이란 인격과 인격의 만남으로 성립되는 것으로 여겨 성실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았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성실을 다할 것을 강조했다.
넷째, 신사임당은 효와 더불어 형제간의 우애를 심어주었다. 자녀 칠남매가 어른이 되어서도 남다른 우애를 지니고 살 수 있었던 것은 늘 형제간에 화목을 강조한 어머니의 가르침의 열매라고 여겨진다.
다섯째, 신사임당은 부모의 바른 태도가 태아에게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여 태교에 힘썼다. 이처럼 태교의 중요함을 인식한 신사임당의 혜안은 시대를 앞서가는 것이었다.
여섯째, 신사임당이 자녀들에게 교육했던 효는 이론적으로 가르친 것이 아니라 말과 행동으로 실천하였다. 이러한 가정교육의 방향은 효를 바탕으로 부모공경, 자녀사랑, 가족사랑, 나라사랑, 자연사랑, 이웃사랑의 실천으로 자녀들에게 나타났다.
그 해결책의 원천은 곧 효교육을 통한 가정화목일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의 효사상은 가정교육의 근간이다. 따라서 신사임당은 조선시대뿐 아니라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어머니상으로 자녀교육에 표상으로 삼아야 한다.
Ⅱ. 현대 가정과 효의 상관성
가정은 혈연(血緣)으로 맺어진 가장 밀접한 인간관계로서 가족구성원의 인격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일선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할 때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 대부분이 그들의 부모 또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흔히 문제 있는 부모에게 문제 있는 자녀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학생들이 지닌 문제는 학생 개인의 문제가 아닌 가족이나 부모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가정은 자녀의 성장과정에서 바른 행위를 익히게 하고 올바른 사회적 가치나 윤리의식을 가르쳐 바른 인격을 가진 인간으로 성장하도록 양육해야 한다.
가정의 기능을 일반적으로 볼 때 경제적 기능, 자녀양육과 보호의 기능, 사회화 기능, 자녀출산의 기능, 교육의 기능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자녀양육 및 사회화 기능과 교육의 기능은 가정에서 자녀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부모의 영향을 받고 기본적인 사회화를 경험하게 된다는 의미이며 사회생활을 할 때, 가져야 할 협동적인 태도나 인간관계도 가정이란 생활공동체에서 배우는 것이므로 가정은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교육적 기능을 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가정의 기능 중 교육의 기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교육적 기능의 중요성을 반영하듯 그에 대한 연구사례도 많다. 그러나 현대 가정에서는 실제로 자녀교육이라는 기능 중 많은 부분이 부모로부터 사회로 이전되고 있다. 맞벌이 부부의 증가와 조기교육으로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 집이 아닌 외부 기관에서 교육을 받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 이유로 아이들은 공동생활을 통해 사회화기능을 습득하기에는 좋은 환경적 요소가 제공되지만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할 기본적인 인성과 품성교육의 기회는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핵가족의 증가로 인하여 조부모에게서 배울 수 있던 전통적인 관습이나 규범, 그리고 예절교육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도 어려워졌다. 이렇게 성장한 아이들은 학교나 사회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전통적인 가치관 중에서 인성을 기르는 데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가정교육의 가치기준이자 목표였던 효를 가르치는 일이 점점 어려운 환경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데 그 이유가 있다. 효교육은 여성에 대한 유교 이념의 지배가 약화되고 인격적 평등을 주장하는 현모양처 여성상의 유입으로 점차 약화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현대사회는 서구의 가치관과 급격한 산업화에 영향을 받아 효의 가치를 상실하게 되었다. 여기에 자녀들에게 입시위주의 교육을 강요함으로써 학원이나 학교교육에만 의존하게 되면서 가정에서의 효교육은 완전히 소홀해진 것이다.
가정은 부부를 중심으로 부모와 자녀가 모여 의 ․ 식 ․ 주 등 일상생활을 공동으로 하는 집단생활을 통해 사회의 가치관이나 규범들이 자연스럽게 다음 세대에 전달되고 교육된다. 따라서 효에 관한 교육도 특별한 방법론이 아니라 부모들이 자신의 부모에게 하는 효성 지극한 행위를 통해 자녀들에게 전달되고 교육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사임당이 자녀들에게 행한 가정교육이다.
Ⅲ. 신사임당에 대한 재조명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신사임당만큼 오랜 세월 후세에 존경과 흠모를 받아 온 여성도 드물다. 신사임당은 우리나라 모든 여성들의 모범이요, 롤 모델로서 주목받아왔다. 본인이 중고등학교 시절여인들 중에서 에는 여학생들을 현모양처로 기르는 것이 여성교육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였고 따라서 현모양처의 전형이라 여겨졌던 신사임당과 같은 훌륭한 여성이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아왔다. 그런 이유로 그 시대에는 많은 여학생들의 꿈이 신사임당 같은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신사임당은 오늘날의 여성들에게 닮고 싶은 대상이 되기보다는 조선시대의 모범적인 여성상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그녀를 인물 자체로서 평가하기보다 율곡의 어머니라는 점에만 초점을 맞춰 현모양처의 측면만 부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게다가 그녀의 이미지는 중후하며 근엄한 무게가 느껴진다. 항상 온화하고 자애롭게 자식교육에 임했을 신사임당의 표상은 오늘날의 여성들이 따라 하기엔 너무나도 버거운 짐이 되어버렸다. 그것은 시대가 바뀌고 세월이 흐르면서 역사 속의 인물들에 대한 평가와 이해도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또 다른 요인으로는 신사임당이 현모양처의 상징처럼 숭앙되고 있는 이유는 학교에서 교육받은 대로 또는 어디선가 전해들은 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신사임당의 이미지는 이 같은 경로를 통해 형성되고 고착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사임당에 관해서는 적지 않은 선행연구가 있다. 자녀교육에 대하여 아들 율곡을 훌륭히 키운 어머니로서의 연구를 비롯하여 그녀의 작품세계와 예술관에 대한 연구 신사임당의 생애사에 대한 연구 등이 있다. 그러나 신사임당은 현모양처 여성상이 들어오기 이전의 여성이며 그녀가 자녀들에게 교육하였던 효는 그녀를 수식하는 현모양처 여성상에서 제외된 전통적인 윤리적 가치기준이다. 일반적으로 신사임당은 조선시대의 유교적 여성관을 드러내주는 삼종지도(三從之道)나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으로 교육받은 여성이라고 인식하고 있고 그것이 현모양처 여성관과 같다고 여기고 있다.
신사임당은 조선시대의 대학자 이율곡의 어머니로서 그 자신도 시나 그림에 뛰어난 예술가였을 뿐만 아니라 시부모나 친정부모를 모심에 있어서도 정성을 다한 우리나라 어머니상의 전형적인 인물이다. 그녀가 남긴 걸출한 삶의 족적을 따라가다 주목하게 된 것은 그녀가 여성의 권리가 억압된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대단히 독립적이고 인격적인 주체로서 삶을 살았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여성들이 자녀교육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녀들을 교육함에 있어서도 엄격한 교육자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발견한 신사임당의 교육이념의 근간은 효를 중심으로 인간의 도리를 강조한 것이었다.
따라서 현모양처 여성상이 신사임당이 살았던 조선시대의 여성상과 다르다는 것이다. 또한 오늘날 도덕적 상황은 너무도 다원화되어 모호하기 때문에 윤리적 판단을 함에 있어 어떠한 보편적 법칙을 세우는 것이 어려운 현실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 할지 공통적 방향이나 목적, 행동기준을 세우는데 신사임당이 교육한 효교육이 자녀들에게 적용방법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하여 자녀교육이 점차 사회로 이전되어 방임되고 있는 가정교육의 문제점에 대한 해소 방안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Ⅳ. 신사임당의 효교육론을 기초로 한 다양한 효 표현
효는 인간의 인간다움을 확인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이다. 모든 동물이 내리사랑을 한다는 점에서 부모사랑은 공통적이지만, 그 은혜에 대한 보답하는 효는 인간만이 갖는 특징이다. 이런 효는 부모로부터 교육에 의해서만 배울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신사임당은 율곡뿐 아니라 칠남매를 효를 통해 가장 아름다운 인간으로 길러낸 어머니이다. 신사임당은 자상하고 인자하며 언제나 온화한 미소로 자녀들을 대했지만 내유외강이라는 말처럼 잘못할 때는 부드러움 속에 엄격함으로 자녀들을 가르쳤다. 『율곡전서』에 신사임당이 규범(閨範)이 매우 엄하고 자녀가 잘못이 있으면 훈계를 하였다.는 내용만 봐도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할 규범을 중히 여긴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 자녀들도 솔선수범 효행을 실천하면서 부모를 섬기고 봉양하는 것을 시작으로 국가와 사회에 대한 사랑도 함께 실천함으로써 효와 충을 다하였다. 그리고 입신양명(立身揚名)의 도리로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을 실천하려고 하였다. 이것은 효경에서 말하는 처음과 끝에 해당한다.
신사임당은 자녀들의 교육에 많은 관심과 정성을 기울인 어머니이다. 오늘날 어머니들도 교육열 면에서는 신사임당 못지않다. 예나 지금이나 자녀를 잘 키우고 싶은 어머니들의 소망은 변하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효는 부모와 자녀관계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현모양처 여성관에서는 대가족제도의 효사상을 부모공경의 획일적 · 수직적 · 단선적 사고로만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 효는 수평적인 관계가 중시되는 근대사회로 넘어오면서 적합하지 않은 사상으로 치부되었고 폐기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 신사임당이 자녀들에게 보여주는 효실천 항목은 과거로부터 현대까지 지속되는 통념이며 이것이 조화를 이룰 때 가정이 행복해지고, 학교 교육이 바르게 되며 사회가 안정되게 한다. 따라서 현대사회의 복잡 다양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효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효가 더 이상 과거의 가치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임을 확인할 수 있다. 오늘날 부모들은 자녀들의 출세를 위해서라면 도덕적 규범의 기본인 효와 거리가 멀어져도 용납하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사회문제들이 속속 드러나고 문제의 심각성이 대두되었다. 이런 사회적 문제가 드러날 때 “효가 나라를 살린다.”는 새로운 시각에서 효개념을 정립해야 한다.
1. 효 실천의 대상으로 보는 부모공경
신사임당이 친정부모를 사랑하는 내용보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자세에서 빠진 부분이라면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었던 일상의 태도를 살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홍씨의 앞에서는 희첩(姬妾)도 꾸짖는 일이 없고 말씀은 언제나 따뜻하고 안색은 언제나 온화했다.
말과 안색이 언제나 온화하고 따뜻하기란 힘든 일이다. 칠남매와 식솔들을 거느리며 어찌 힘들지 않았겠는가. 말이 따뜻하다는 건 짜증을 내거나 언성을 높이지 않은 것이며 안색이 부드러운 것은 화를 내거나 인상을 찌푸리지 않았다는 뜻인데 요즘 참을성이 부족하여 길에서든 집에서든 가리지 않고 자녀들에게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는 어머니들을 볼 때 신사임당의 한결 같음이 더욱 값져 보인다
부모를 대하면서 늘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기란 쉽지 않다. 온화한 얼굴빛으로 부모님 대하는 것도 효의 한 덕목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것이 부모공경이다. “효자의 지극함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고, 부모를 공경함의 지극함은 천하로써 봉양하는 것보다 큰 것이 없다.”
신사임당은 철저하게 부모공경을 솔선수범하며 자녀들을 양육했는데 그것이 율곡으로 하여금 「선비행장」을 쓰게 한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부모공경은 공자가 구체적으로 인(仁)을 실천하는 근본이라고 하였다. “낳고 길러 주신 은혜보다 더 큰 것이 없다.”는 우리의 일상적 관념에서 설득력을 지닌다. 이처럼 부모 은혜에 대한 공경의 표현을 맹자는 부모님이 가장 크다는 말로 나타냈다.
섬기는 일 중에 무엇이 가장 큰가? 어버이를 섬김이 가장 크다. 지키는 일 중에 무엇이 가장 큰가? 몸(몸의 지조)을 지킴이 가장 크다. 몸의 지조를 잃지 않고 그 어버이를 잘 섬긴 자는 내가 들었고, 몸을 잃고서 그 어버이를 잘 섬긴 자는 들어 보지 못하였다. (섬기는 일중에) 무엇인들 섬김이 되지 않겠는가마는 어버이를 섬김이 섬김의 근본이요, (지키는 일 중에) 무 엇인들 지킴이 되지 않겠는가마는 몸을 지킴이 근본이다.
‘부모공경’을 최고의 가치로 표현한 내용이다. 물론 여기서 ‘부모 섬김’과 자기 ‘몸의 지킴’을 함께 말하고 있지만, ‘몸의 지킴’도 결국은 ‘부모 섬김’을 위한 것이고, 또 그것이 효의 한 표현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몸을 지키고 사랑하는 것이 부모 섬김이며 그것은 바로 효다. 효는 자기 부모뿐 아니라 가족 이외의 어른을 공경하고 스승을 공경하는 데까지 연관되고 확대되어야 하는 미덕이다.
부모를 섬기는 자녀의 행동은 현대사회에서 리더의 자질을 인정받는 요소이기도 하다. 결국 섬김과 리더의 행동은 효와 연관이 크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섬김으로써만 진정한 사회와 가정을 이끌 수 있는 리더가 될 수 있다. 신사임당은 자녀들 모두를 특히 율곡을 가장 잘 섬기는 리더로 성장시켰다고 볼 수 있다.
“효에는 세 가지가 있다. 가장 큰 효는 부모님을 공경하는 일이고(尊親), 그 다음은 부모님을 부끄럽게 하지 않는 일이고(弗辱), 그 아래는 봉양하는 일이다(能養).”
2. 효 전승의 핵심으로 보는 자녀사랑
신사임당은 자녀들에게 효를 통하여 절제된 사랑을 교육하였다. 이에 관해서는 율곡이 남긴 기록에서 보이듯 율곡은 어머니를 가장 사랑했고 신사임당 또한 아들 율곡에게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것으로 보인다. 율곡은 신사임당에게 그리고 신사임당은 어머니 이씨에게 실천한 효와 사랑은 서로 간의 ‘예’의 한 표현방식이었다. 효는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행위이다. 따라서 효가 행해지려면 부모와 어른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부모가 먼저 효도의 본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녀들은 가르치는 대로 본 대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가 자녀를 잘 가르치기 위해 사랑이 담긴 칭찬과 매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신사임당도 효를 통해 자녀사랑을 실천했다고 볼 수 있다.
“자녀가 잘못이 있으면 훈계를 하였으며 좌우가 죄가 있으면 꾸짖으니 종들도 모두 존경하며 떠받고 좋아했다.” “자식을 가르침은 본래 그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자식을 사랑한다면, 좋은 스승을 선택해서 가르쳐야 한다.”
게다가, 부모의 자녀교육은 그 시기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조기교육은 인간됨됨이에 대한 교육이므로 오늘날의 조기교육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효’와 ‘예절’ 은 어릴 때 할수록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어린아이가 남의 표정을 알아보고 기뻐하거나 노여워하는 남의 감정을 알 정도가 되면 곧 가르 치기 시작하여 해야 할 일은 하게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대여섯 살이 되면 매를 드는 것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부모가 위엄이 있으면서도 자애로우면 자녀는 부모를 어려워하고 언행을 조심하면서도 효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세상의 부 모들을 보면 가르치지는 않고 귀여워만 해서 늘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식사와 언행을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멋대로 하게 내버려두고, 당연히 타일러야 하는데도 도리어 잘한다고 추어주고, 응당 꾸짖어야 하는데도 오히려 웃어 넘겨서 철이 들어서도 당연히 그래도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교만함이 몸에 밴 후에는 새삼스레 이를 제지하려고 죽도록 매질을 한다면 부모의 위엄은 서지 않고, 자식의 분노는 날로 커지고 원망만 쌓여, 성장해서는 끝내 패덕한 자가 되고 만다.·····속담에도 ‘며느리는 처음 시집왔을 때 가르쳐야 하고, 아이는 어렸을 때 가르쳐야 한다.’고 하는데, 참으로 옳은 말이다.
자녀를 사랑한다면 때론 엄격하게 매를 사용해서라도 나쁜 버릇을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 부모의 의무이다. 자녀가 어리다고 또는 너무 사랑스러워 가르치고 훈계해야 할 시기를 놓친다면 그것은 병을 키우는 결과가 되어 도리어 자녀에게 해가 된다. 바른 인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부터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바로 부모의 자녀사랑 방법이고, 그것이 효성스럽고 예절바른 자녀로 키우는 방법이다.
3. 효의 관계과정으로 보는 가족사랑
신사임당은 칠남매를 두었고 그들에게 형제우애(兄弟友愛)의 정신을 강조했다. 율곡이 아홉 살 때『이륜행실도』를 그려서 어머니를 기쁘게 하였다는 사실은 앞에서 살펴보았다. 율곡은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못하였다. 황해도 해주 석담에 집을 마련하고 겨우 생활이 안정되자 일찍 세상을 떠난 형 대신에 형수 곽씨와 조카들을 불러 함께 살며 형의 사당에 제사지내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한다. 율곡은 형의 가족을 자기 가족처럼 돌보아 어머니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아래 내용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형과 아우는 부모가 남겨주신 몸을 함께 받은 것이니, 나와 더불어 한 몸과 같은 것이다. 그 러므로 마땅히 저와 내가 간격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음식과 의복이 있고 없고를 모두 똑같이 하여야 한다. 가령 형은 굶주리는데 아우는 배부르고 아우는 추운데 형은 따뜻하다면 이는 한 몸 속의 팔다리와 몸뚱이가 한 편은 병들고 다른 한 쪽은 튼튼한 것과 같은 것이니, 이렇게 되면 그 몸과 마음이 어찌 한 쪽만 편안 할 수 있겠는가? 지금 사람들이 형제끼리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것은 모두 자기들의 부모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그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다면 어찌 그 부모가 낳은 자식을 사랑하지 않겠는가? 형제 중에 만일 좋지 못한 행실이 있다면 마땅히 정성을 쌓고 충고를 하여 차차 도리로써 깨우쳐 주어 감동으로 깨닫게 할 일이지, 갑자기 노여운 안색을 하거나 거슬리는 말을 해서 형제간의 화목을 잃어서는 안 된다.
동서양에서 개인이 맨 처음 만나게 되는 공동체는 가족이다. 가족은 개개인이 공동체를 경험하는 최초 공간이고, 거기서부터 더 큰 공동체를 지향한다. 개인과 가족 서로 간에 바른 관계가 형성되는 데 필요한 곳이고, 사회나 국가의 더 큰 공동체와의 관계를 올바르게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는 곳이다. 개인(身)은 가족공동체(家)로 이것은 나라공동체(國)로 관계가 형성되어 세계공동체(天下)로 이어진 관계를 이루게 된다. 이 관계의 역학을 살펴보면 수양(修)은 관리(齊)로 관리는 통치(治)로 통치는 평정(平)으로 이어지는 기능이다. 수행이 이어져 표현된 것이『대학』에서 말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이다. 자신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가족구성원을 잘 관리할 수 있고, 가족구성원을 잘 관리하는 사람이 나라를 안정되게 다스릴 수 있으며, 나라의 국민들을 잘 다스릴 때에 세계를 평화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으로 세계를 평화롭게 만들고자 한다면 먼저 나라를 사랑으로 잘 다스릴 능력이 있어야 하고, 사랑으로 나라를 통치하려면 사랑으로 가족을 잘 돌봐야 하고, 가족을 사랑으로 대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이 올바르게 수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최소단위인 가족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개인이 인정받을 수 있는 최초 단위가 가족이고, 그곳에서 인정받아야 다음 단계의 단위에서도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사임당의 뜻을 이어 율곡은 신사임당이 효제(孝悌)를 강조하고 인간행위의 근본이라 여겼기에 가족 내에서 부모를 공경하고(孝) 형제간에 우애하는 것(悌)을 인간행위의 근본적 인(仁)이라 생각한 것이다. 효제가 생활 속의 가족에 대한 사랑이라면 조상숭배는 나를 있게 한 선조에 대한 효의 행동이다. 효는 살아 있는 가족은 물론 돌아가신 조상에게까지 실천하려는 가족 사랑인 것이다.
율곡은 외조모가 세상을 떠나자 안타까운 마음에 다음과 같은 제문을 남겼다. “오직 조모님 한 분만이 자나 깨나 가슴속에 계셨는데, 이제 또 저를 버리시니, 하늘은 어찌 그리 혹독하십니까. 돌아가실 때 반함(飯含)도 못하여 드리니 저의 끝없는 슬픔을 더하여 줍니다.
가족에 대한 사랑의 실천은 결국 정치안정으로 이어진다. 한마디로 부모와 조상에 대한 공경, 즉 ‘가족사랑’이 정치안정의 기본인 것이다.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공동체이며 그것이 가족인 것이다. 그러므로 가족이 건강하고 행복해진다면 사회 또한 건강해진다.
4. 효의 확장성 대상으로 보는 나라사랑
신사임당은 자신보다 나라를 더 사랑한 어머니였다. 자신이 얼마 살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남편 이원수공과 함께 간 아들 율곡과 선(璿)에게 알리지 않았다. 남편과 아들에 대한 보고 싶은 마음을 편지에 담아 참아내며 세상을 뜨게 된다. 신사임당이 자신이 가장 아끼는 아들 율곡을 왜 아니 보고 싶었겠는가. 자신이 아프다는 소식을 전하면 혹시라도 나랏일에 지장을 줄까 우려한 이유라고 보여진다. 아래 내용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경술년(1550) 여름에 가군이 수운판관에 임명되고……조운(漕運)의 일로 관서(關西)에 가셨는데 이때 아들 선(璿)과 이(珥)가 모시고 갔다. 이 때에 자당은 수점(水店)으로 편지를 보내시면서 꼭 눈물을 흘리며 편지를 썼는데 사람들은 그 뜻을 몰랐다. 5월에 조운이 끝나 가군께서 배를 타고 서울로 향하였는데…… 17일 새벽에 갑자기 작고하시니 향년이 48세였다.
위와 같이 나라 일을 집행하고 있는 것이 자신의 일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 신사임당의 나라사랑은 율곡의 나라사랑으로 이어진다. 신사임당의 자녀교육은 궁극적으로 아들 율곡을 통해 꽃을 피웠다. 율곡은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현실정치에 구현했다.
그가 부귀(富貴) ․ 빈천(貧賤)이나 훼예(毁譽)․ 영욕(榮辱)에는 그 마음이 일절 움직이지 않고 오직 선인(善人)과 군자가 형통(亨通)하느냐 부색(否塞)하느냐 하는 것만을 자기의 기쁨과 근심으로 삼고, 국사가 다스려지느냐 어지러워지느냐 하는 것만을 자기의 근심과 즐거움으로 삼았다. 항상 말하기를, ‘군주의 마음은 정치를 하는 근본이다.’하고 경연(經筵)에서 강학(講學)을 권하고 소장(疏章)으로 진설(陳設)하되 매우 부지런하고 간절히 하였는데 모두 인의(仁義)에 근본을 두었다. 매양 주상 앞에서 치도(治道)를 개진(開陳)하고 별도의 사의(事宜)를 아뢰되, 의(義)와 이(利), 공(公)과 사(私)의 분별과 하늘과 사람, 왕도(王道)와 패도(覇道)의 구분과, 백성을 다스리고 변방을 방비하는 계책에 이르기까지 마음을 다하여 나열하고 고금(古今)의 사례를 끌어 증거를 대니, 주상도 또한 허심탄회(虛心坦懷)하게 귀를 기울여 듣고 감탄 칭찬하는 바가 많았으며, 혹 해가 진 뒤에야 대화를 그만두게 되었다.
나라를 위해 모든 생각과 마음이 향하는 그를 누가 충신이라 하지 않겠는가. 나라사랑하는 마음이 임금을 생각하는 마음이며 부모님을 대하는 것과 같이 임금도 대하는 모습이 정성스러워 보인다.
살아생전 율곡은 왜침이 있을 것을 걱정하여 10만 명의 군인을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가족 상당수가 외적들의 칼에 희생되고 말았다. 율곡이 10만 명의 군사를 양성해야 한다고 임금 선조에게 건의하는 내용이다.
율곡은 다른 신하들과 다르게 자신의 처지에 안주하지 않고 오로지 나라의 안위에 관심을 가졌다. 그런 그의 눈에는 주변국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게 보였던 것이다. 나라사랑하는 마음이 앞섰기에 자신의 이익이나 명예에는 관심이 적었다. 그는 실로 나라를 위기에서 구할 수 있었던 위인이었다.
또한 율곡은 생명이 다할 때까지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대단했다. 그런 모습을 다음 글에서 살펴볼 수 있다.
죽기 이틀 전에, 서익(徐益)이 순무어사(巡撫御史)로 명을 받아 북도(北道)를 안찰(按察)하러 간 다는 말을 듣고 불러와서 방략(方略)을 제시해주려 하였다. 자제들이 번갈아 가며 간하니, 선생 이 말하기를, ‘이것은 국가의 큰일인데, 내가 어찌 신병을 지나치게 염려하여 이 중요한 시기를 놓쳐서야 되겠느냐. 더구나 죽고 사는 것은 천명에 있는데, 내가 어찌 반드시 이로 인하여 죽으랴.’하고는, 부축을 받고 일어나 입으로 부르고 아우 우(瑀)를 시켜 쓰게 하였는데 무릇 6조이니, 이것이 곧 절필(絶筆)이었다. 쓰기를 마치자, 엄엄히 곧 끊어지려는 형상이 병이 마침내 위급하여졌다. 숨이 끊어질 때에 잠꼬대처럼 순순(諄諄)히 말하였는데, 그것은 두 나라의 일이고, 집안일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이처럼 율곡은 눈을 감는 순간까지 걱정하며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보여주었다.
그는 당시 사회에서 유학자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위인이었고 경세가였다. 그의 위대함은 학자나 정치가로서 그 현명한 두뇌와 명석한 사리판단을 나라를 위해서만 썼다는 점이며 그의 선경지명은 실로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율곡은 어려운 시대에 처했으면서도 현실의 사리를 잘 판단하여 거기에 적당한 처방을 내렸을 뿐 아니라, 어떻게 하면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할 수 있을까 하고, 그 방법을 책과 고사에서 찾고 주야로 나라를 걱정하며 초조히 애민하고 우국한 그 충정의 정신은 실로 위대하다.
위의 사례를 통해 보더라도 율곡의 국가에 대한 충정을 보면 가족사랑의 근본인 효제(孝悌)가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효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당연한 결과이다. 가족 집단과 국가라는 집단에서 나오는 효는 하나의 모습으로 볼 수 있겠다. 가족 내에서의 효와 나라 안에서의 충이 한 뿌리에서 나왔듯이 효와 충은 하나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이다. “충신은 그 임금을 섬기고, 효자는 어버이를 섬기는데, 그 근본은 하나이다.”
효와 충이 근본적으로 하나의 정신이다. 이것을 순자는 “국가를 위하는 것은 반드시 효로써 한다.”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효와 충은 어느 시기부터 항상 함께 사용되었다. 불효(不孝)를 불충(不忠)과 같이 큰 죄인으로 취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군주를 기만하는 것은 불충이고, 부모님을 병들게 하는 것은 불효이다. 불충과 불효보다 더 큰 죄악은 없다.”
효와 충을 인간의 근본도리이자 당연히 실천해야 할 행위로 여기기 때문에 불충불효를 가장 큰 죄악이라 말한 것이다.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이유가 효는 충의 근본이고, 충은 효의 근본이며, 그것을 공경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결국 효가 나라를 살리게 되어 잘 다스려지는 안정된 나라가 된다는 것이고, 부모 · 자녀 간에 효도와 사랑이 없고 형제간에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그것이 곧 세상에 해를 끼친다는 것이다. 나라사랑이 우리 전통사회에서 얼마나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가를 잘 표현한 내용이다.
5. 생명보호의 효와 자연보호
신사임당의 그림을 보면 대부분 자연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 모습은 자연과 공존공생하려는 조화의 모습이며 자연의 속성을 섬세한 감각으로 파악하여 자연에 순응하는 삶의 자세로서 신사임당이 자연을 사랑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이 자연을 바라보는 모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공존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을 정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들 유형 가운데 자연을 정복하려고 하는 태도는 과학의 발달로 이어져 인간에게 온갖 문명의 이기와 풍요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게 하였다. 도전적인 자세가 인간의 삶을 어느 정도의 풍요로움으로 이끌기는 하였으나, 인간이 미처 예기치 못했던 여러 가지 문제가 뒤따랐다. 과학의 발달이 가져온 풍요로움은 개발과 오염의 증가를 초래해 결국 인간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실정이 되고 말았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해소하여 맑고 깨끗한 자연을 어떻게 되돌릴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 모두가 감당해야 할 절실한 과제이다.
신사임당은 자연을 아끼고 사랑했기에 자연의 소중함을 그녀의 작품에 담았고 자식들도 자연히 그런 마음을 배우게 되었을 것이다. 율곡이 남긴 글을 통해 신사임당의 자연 사랑을 살펴보려고 한다. 율곡의 자연 사랑의 본질은 궁극적으로 서로 비슷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자연을 사랑한다는 것은 시대를 초월한 인류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율곡의 자연사랑에 대한 내용을 다음에서 살펴보면서 이를 확인해보자.
당신의 말씀은 감탄할 만합니다. 그러면 당신의 자손에게 이러한 훈계의 글을 드리겠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다음에 아버지께서 읽으셨던 책을 차마 읽지 못하는 것은 그 책에 아버지 의 손때가 묻어 있기 때문이고,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다음에 어머니께서 쓰시던 그릇을 감히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그 그릇에 어머니의 입김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당신의 집 주 변에서 자라고 있는 소나무는 당신의 아버지께서 손수 정성껏 기르신 것으로 이 소나무에 대한 정감이 얼마나 절실하겠습니까. 이 소나무가 순간적으로 눈에 스쳐만 가도 감회를 불러일으켜 두근거리는 마음이 생길 것이고, 나무의 잎사귀 하나라도 조심스럽게 생각하여 오히려 조금 이라도 손상될까 두려워할 터인데 하물며 가지나 줄기를 해치는 일이 후손들에 의해서 저질러 지리라는 상상을 할 수 있겠습니까…….
글이나 말로의 교육보다 행동이나 뜻으로 직접 보여주는 교육의 효과가 크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시대가 지남에 따라 옛 사람의 진실 된 뜻과 행동은 직접 볼 수 없는 것이고 오직 그들이 남겨준 글만이 전해질 뿐이다. 그런데 뜻과 행동의 교육 효과만은 못하다 하더라도 글의 교육적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 인식되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본성이 하늘로부터 받은 것으로 하늘만큼이나 소중하다는, 그래서 모든 인간에게 하늘 정도로 소중한 것이 잠재되어 있다는 의미로 진지하게 인식하는 일이다.
6. 효의 검증대상으로 보는 이웃사랑
“세상에는 우리가 보살펴야 할 대상으로 가족만 있는 것이 아니라 ‘딱한’ 사람도 많다. 거지, 버려진 아이들, 등등……. 산업화 정보화 사회라는 문명의 축복 저편에는 그에 못지않은 음지의 사람들이 존재해 왔다.”
유교사상에서 효는 “사람들이 오로지 자기의 어버이만을 어버이로 섬기지 아니한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유교사회는 효를 통해 이상적인 이웃사랑을 가르쳤다. 유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효의 실천으로 홀아비 · 과부 · 고아 · 독거노인이 모두 봉양을 받게 된다는 것이고, 고아와 독거노인을 불쌍히 여기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한다는 것이다.
아래의 내용에 보면 신사임당은 자녀들에게 내 부모, 내 가족에게만 효를 실천하지 않도록 교육한 것을 볼 수 있다. 신사임당은 현재 중요하게 생각하는 복지사회의 이웃사랑과 나눔의 개념을 이미 자녀들에게 교육했다. 그녀가 자녀들에게 교육한 효는 부모형제 및 친족의 범위에 머무르지 않고 가족 외의 이웃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율곡과 형제들은 자신을 낳지 않은 서모에게 공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 율곡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많은 무리들이 통곡하고 애도했다는 기록도 신사임당의 이웃사랑이 자녀들에게 그대로 교육되어 전해진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신사임당이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 이원수는 포악스러운 성격을 가진 권씨를 후처로 맞이하게 된다. 서모의 성격이 포악함에도 불구하고 율곡 형제들은 자신들의 지위에 개의치 않고 극진히 효를 다하였다. 아버지 이원수 공도 신사임당이 세상을 떠난 후 십년 만에 별세하나 그 후에도 율곡과 형제들은 서모에게 끝까지 자식의 도리를 다하며 효행을 한다. 『율곡전서』「시장(諡狀)」과 「제자기술잡록(諸子記述雜錄)」에 서모 권씨에 대한 일화가 전해진다.
어느 날 이웃집에서 홍시 한 쟁반을 가지고 와서 율곡에게 선물하였다. 그때 마침 율곡은 손님과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손님이 무척 시장해 보이므로 홍시 한 개를 주고 자기도 한 개를 든 다음 남은 감을 쟁반채로 서모 권씨에게 들여보냈다. 그런데 자기에게 이야기 하지 않고 두 개를 덜어내었다고 해서 야단을 치며 노한 목소리가 들려 나왔다. 율곡은 그 소리를 듣고 곧 손님에게 사과하고는 곧 손님에게 주었던 감과 자신이 먹으려고 집었던 감 두 개를 곱게 받쳐 들고 안으로 들어가서 빌고 간신히 서모 권씨의 노여움을 풀어드렸다.
이 같은 효행은 포악스러운 서모의 행동에도 변화를 주게 된다. 율곡이 세상을 뜬 후 서모 권씨가 삼년상을 입었다는 기록만 봐도 알 수 있다.
다음은 율곡이 세상을 떠나자 많은 백성들이 슬퍼하며 안타까워했다는 내용이다.
종유하던 선비와 풍채를 들고 의리를 사모하던 무리, 그리고 깊은 시골 촌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 모여서 통곡하고, 슬피 부르짖으며 서로 조상하기를, ‘백성들이 복이 없다.’하고 태학생 수백여 인 및 금군 ․ 시민 ․ 유품 ․ 서관과 관사의 이서가 모두 나와 곡하고 전을 드리고 슬픔을 다하고 갔다. 발인하던 날 교외를 바라보며 횃불을 잡고 길에 나와 전송하는 자가 수십 리를 뻗치었으며 거리와 골목을 메우고 비호하는 소리가 들판을 진동하였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 가운데 사람의 인격과 품성을 알려면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주위에서 진정으로 애도하는 사람의 수로 알 수 있다는 말을 한다. 위의 내용은 살아생전 율곡이 평생 이웃을 부모와 같이 효로 공경하고 마음으로 사랑하며 살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율곡과 자녀들의 이웃사랑은 어머니 신사임당으로부터 교육받았다. 행동을 통하여 교육하는 신사임당은 신분의 구분이 뚜렷한 시대에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부리는 종들에게 화를 내지 않고 꾸짖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그 시절의 종들은 인간으로서의 대접보다 재산의 일부로 취급받았다. 이 점을 감안한다면 신사임당이 종을 따뜻한 마음으로 대했다는 것은 위의『예기』에 나오는 유교적 효의 가르침과 성경적 효의 이웃사랑과 너무도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효에서 이웃사랑이 중요한 이유는 시대가 변해감에 따라 지구촌의 모든 인간은 점점 더 직접적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유기적인 관계에 놓이게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재 지구촌은 하나라는 개념이 점차 확장되어가고 있다. 또한 국제교류가 활발해지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나라에 취업하러 오고 정착하게 되면서 다문화가정이 많아지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효의 이웃사랑이 교육되어야 한다.
이웃사랑을 고전에서 살펴본다면 효를 이웃은 물론 인류 전반에 대한 사랑으로 해석한 것은 『묵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묵자는 유가의 사랑을 차별애라 비판하며 박애(博愛)를 주장하였는데, 거기서 묵자는 인류애로서 효를 강조했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여 남을 사랑하기를 자신의 몸을 사랑하듯 한다면, 어찌 불효하는 자가 있겠는가? 부형이나 군주 보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한다면 어찌 불효를 하겠는가? 어찌 자애롭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아우와 자식과 신하 보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한다면 어찌 자애롭지 않게 행동하겠는가? 그러므로 불효하는 것과 자애롭지 못한 것은 없어질 것이다. …… 만약 세상 사람들이 서로 사랑한다면 나라와 나라는 서로 공격하지 않을 것이며 집안과 집안은 서로 어지럽히지 않을 것이며 도적은 없어지고 군주와 신하와 아버지와 자녀들이 모두 효성스럽고 자애로울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천하가 다스려질 것이다.
한마디로 효자애(孝慈愛)를 이루면 천하태평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물론 그 효자애의 대상은 자기 아닌 타자로서 이웃이나 인류를 말한다. 인류의 치세가 가능한 것은 자기와 자기 가족에 대한 효자애를 타자에게로 확산 실천하는 데 있다. 인류애의 실천이 천하태평한 인류를 만들 수 있고, 그 인류애는 효 실천을 통해 가능하다는 말인 것이다.
Ⅴ. 효교육 실천방안
현재 일어나는 청소년의 문제는 가정에서부터 출발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자녀수가 줄어들어 부모들은 더욱 사랑과 정성을 쏟지만 청소년 문제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를 가정교육 그 가운데서도 효를 중시하는 풍토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효가 중시되던 시대에는 가족 간의 문제나 각종 사회병리 현상과 패륜 행위의 발생 비율이 현저히 낮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처럼 개인주의에 빠져 성공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체제 그대로 간다면 머지않아 우리 사회도 미국이나 유럽처럼 많은 사회적 문제를 안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고 이미 그런 징후가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교육의 패러다임을 전환하여 전통적인 가치관을 존중하고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특히 관계를 중시했던 효사상을 실천한 신사임당의 효교육의 의미를 되새기고 현대사회에 맞는 효사상과 원리를 바르게 이해하고 구축하여 이를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효는 전통적으로 인간의 인격과 도덕적 자아를 형성하는 유아기와 청소년기에 가정의 가족관계에서 교육된다. 그래서 더욱 중요한 것이다. 그러면 신사임당의 교육사상을 다시 한 번 정리하면서 우리의 나아갈 방향을 찾아보고자 한다.
첫째, 율곡은 어렸을 때부터 외가에서 어머니 신사임당이 행하는 효를 배우고 몸에 익혔다. 전통사회나 봉건사회는 물론이고 경제개발 시대까지만 해도 대가족제도 하에서 부모와 자녀 간에 지켜야 할 윤리로서 부자자효가 강조되었고 가족 간의 효도문화 속에서 인격교육과 사람됨의 윤리도덕이 강조되었다.
둘째, 신사임당의 교육목적은 자녀들이 장차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입지’를 자녀교육의 목적으로 삼고 무엇보다 먼저 뜻을 세우도록 돕는 것이 어머니의 할 일이라고 보았다. 본인이 그랬던 것처럼 개인의 자아실현은 가정으로부터 출발하고 어머니에 의해 성취된다고 본 것이다. 이와 같은 근거는 그의 아들 율곡의 저서에서 ‘입지’가 강조되는 것으로 알 수 있겠다. ‘입지’는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므로 어린 시절 어머니가 자녀가 뜻을 가질 수 있도록 의지를 북돋아주는 것은 교육적인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셋째, 신사임당은 교육이란 인격과 인격의 만남으로 성립되는 것으로서 성실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았기 때문에 자녀교육에 성실을 다할 것을 강조했다. 성실이라는 말은 진실과 참을 뜻하는 말로 거짓(僞)이 없는 것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성실과 진실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생각과 행위의 기초를 이룬다. 따라서 신사임당은 자녀를 교육할 때도, 하인이나 계집종을 대할 때에도 늘 성실한 마음으로 대했던 것이다. 사람됨의 길과 모든 사고행위의 바탕이 되는 성실은 그의 교육사상에서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넷째,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됨됨이를 부모에 대한 효성 여하로 판단한 것은 효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신사임당의 효는 율곡이 서모에게 행한 효성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율곡이 효를 실천하여 서모 권씨를 감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어머니 사임당의 생애가 어떠했는가를 반증하는 것이다.
오늘날 효는 전통적인 유물로 여기는 시대적 상황에서 특별히 강조되어야 할 덕목이다. 우리와는 달리 서구인들이 우리의 효를 부러워 한다는 것은 효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
신사임당은 효와 더불어 형제간의 우애도 올바르게 실천하는 사람이 되도록 가르쳤다. 그의 자녀 칠남매가 어른이 되어서 남다른 우애를 지니고 살 수 있었던 것은 매일같이 형제간에 화목을 강조한 어머니의 가르침의 열매라고 여겨진다.
다섯째, 신사임당은 부모의 바른 태도가 태아에게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여 태교에 힘썼다. 실제로 많은 현대과학자들이 임신 중 감정적인 불안은 태아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임산부의 감정적인 안정이나, 남편의 협조는 곧 좋은 태교가 된다. 태교란 아이를 향한 부모의 바른 자세와 몸가짐을 가지고 정성을 쏟는 것이다. 이처럼 태교의 중요함을 인식한 신사임당의 혜안은 시대를 앞서가는 것이었다.
소위 서구문명의 근대화 물결이 밀어닥치며 우리의 의식구조에 핵을 이루었던 효가 혼미에 빠지면서 국가와 민족에 대한 의식이 약화되었다. 이를 극복하는 길은 신사임당의 교육이념인 효교육을 바탕으로 하여 자녀들에게 입지와 성 그리고 경의 생활로 이끌어 나아가야 한다. 무한경쟁으로 몰아나가는 삭막한 인간관계를 벗어나 서로 존중해주는 인간존엄사상으로 전환시키는 일이 오늘날 우리 어머니들이 앞장서 자녀들에게 교육해야 할 일이다.
여섯째, 우리가 효교육을 교육답게 하는 과제가 필요하다고 볼 때 신사임당의 자녀교육관의 효교육은 최성규 목사가 주장하고 있는 효행장려운동의 ‘효가 나라를 살린다’와 같은 맥락임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전통적인 효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거의 비슷하게 이루어져 왔음을 알 수 있고 더욱이 현대사회에 와서 뜻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조기교육의 중요성과 필요를 느끼게 한 것이다. 여기서 신사임당은 효를 이론적으로 가르친 게 아니다. 직접 말과 행동으로 실천하였다. 즉, 신사임당은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종합적인 교육을 맡아했으며 이러한 가정교육의 방향은 효를 바탕으로 부모공경, 자녀사랑, 가족사랑, 나라사랑, 자연사랑, 이웃사랑을 실천하는데 역점을 두었던 것이다.
이 점에서 유교적 사상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효는 우리 전통사상의 기초요 뿌리임을 자각하고 현대 부모의 지침서로 삼아 현실생활에서 부딪치는 많은 사건들을 무시하지 않고 그 해결방안을 찾도록 모색해야 한다. 그 방법의 원천은 곧 효교육을 통한 가정화목일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의 효사상은 가정교육의 근간으로서 신사임당의 교육철학에 의해 충실히 자녀들에게 실천함으로 칠남매를 모두 훌륭히 교육시켰던 것이다.
따라서 신사임당은 조선시대뿐 아니라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어머니상으로 자녀교육에 표상으로 삼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신사임당을 통하여 인간완성의 의지를 배우고, 올바른 어머니의 표상으로, 조기교육의 선구자로, 전인교육의 바탕을 세운 모범으로 그녀의 뜻을 되살려나가야 할 것이다.
학 생 효 행 사 례
1. 초등학생부
2. 중학생부
3. 고등학생부
Ⅰ. 학생효행사례
가. 초등학생부
1. 엄마의 일기장 대천동대초등학교 6학년 강민수
2. 부르고 싶은 그 이름, 아버지 공주금학초등학교 6학년 이민우
3. 엄마가 울었다 금산동초등학교 6학년 김이레
나. 중학생부
1. 나의 나눔 이야기 한내여자중학교 3학년 명세인
2. 사랑하는 우리 아빠 서산중학교 2학년 강병욱
3. 너무나 당연해서 몰랐던 일 대천중학교 3학년 박혜성
다. 고등학생부
1. 작지만 위대한 나의 부모님 당진고등학교 1학년 박총희
2.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효도 금산여자고등학교 1학년 김재은
3. 존재하는 것으로 감사합니다. 계룡고등학교 3학년 김지현
엄마의 일기장
대천동대초등학교 6학년 강민수
“엄마, 왜 나는 돌 사진이 없어?”
“응? 응, 그러니까...”
엄마는 말끝을 흐리셨다. 동생 사진은 있는데...... 아주 선명하게 잘 찍혀 있는데 왜 내 사진은 없는 거지? 동생은 배냇저고리도 있는데.. 왜 나는 아무것도 없는 거야? 날 보고 배시시 웃는 동생마저 미워진다. 왜 하필 나일까? 나는 왜 엄마자식으로 태어났을까? 서운함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그렇게 내 마음 한 구석에는 서운함이 쌓여가고 있었다.
그런 마음으로 지낸지 며칠이나 지났을까? 우리 가족들은 봄 맞이 대청소를 하게 되었다. 아빠는 유리창을, 엄마는 부엌을 청소하셨고 나는 집안 곳곳에 있는 서랍을 정리하였다. 낡은 옷가지들이 고이 잠들어 있는 장롱속을 정리하던 나는 마음의 먼지를 털어내고자 다른 때보다 더 열심히 청소를 했다.
‘먼지가 정말 많네. 낡은 옷들도 많고, 그런데 이게 뭐지?’
이것 저것을 정리해 쓰레기통에 집어넣던 중 나는 이상한 것을 발견하였다. ‘푸름이 아기 수첩’ 이라고 쓰여 있는 작은 수첩이 내 눈에 띈 것이다. 나는 호기심에 수첩을 한 장 한 장 넘기기 시작했다.
2001년 3월 2일. 내 뱃속에서 무엇인가가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다. 입덧이 심하지만 엄마 잘 참을 수 있어. 대신 우리 아기만 건강하게 나와 줬으면 좋겠다. 사랑한다. 우리아기
2001년 5월 17일. 조금씩 더워지고 있지? 우리 푸름이 만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엄마는 너무 기대돼. 어서 나와서 엄마랑 재밌게 놀자. 사랑해
2001년 6월 25일 내일이면 드디어 너를 만날 수 있게 되는구나. 건강하게 잘 자라주어 고마워. 내일 보자.
마지막 장까지 읽어내려 가던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것은 엄마가 나를 가졌을 때부터 써 오던 아기 수첩이었던 것이다. 내가 강낭콩만할 때부터 내가 태어난 이후까지 모든 일들이 세세히 적혀 있었고, 사진들도 같이 붙여져 있었다. 그 많은 시간동안 엄마는 나를 감싸 안고 참고 견디고 기다렸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엄마의 마음도 모르고 돌 사진 한 장 없다고 투덜거리고 서운해 하고 엄마를 미워했던 것이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눈물에 나는 큰 소리로 엉엉 울어댔고 놀라신 엄마와 아빠가 쏜살같이 달려오셨다.
“지수야! 무슨 일이야? 어디 다쳤니? 왜 울어?”
엄마와 아빠는 걱정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에 더 큰 소리로 울었다. 뒤 늦게야 내 손에 쥐어진 수첩을 보고 엄마는 안도의 한숨을 쉬셨다.
“아 이거... 우리 지수 가졌을 때 엄마가 쓰던 일기장이야.”
“엄마.... 죄송해요. 엄마를 오해해서.....”
나는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알아채셨는지 엄마는 나를 꼬옥 안아주셨다. 알싸한 엄마 냄새가 내 몸에 베어 들었다. 엄마의 따스한 가슴속에 얼굴을 묻은 나는 생각했다. 엄마 제가 엄마께 받은 사랑 다 되돌려 드릴 때까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셔야 해요. 제가 다음 생에는 엄마의 엄마로 태어나서 엄마께 받은 사랑 되돌려 드릴게요. 사랑해요 엄마. 유난히 따스한 햇살이 엄마와 나를 감싸는 일요일이었다.
부르고 싶은 그 이름, 아버지
공주금학초등학교 6학년 이민우
평소와 다르지 않은 날이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평소보다 더 기분이 좋았던 날로 기억합니다. 학교에서 공부도 즐거웠고 친구들과 보내는 방과 후 시간도 웃음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평소와 다르지 않았던 그 날은 저 멀리서 창백한 표정으로 헐레벌떡 달려오는 또 다른 친구의 말 한마디로 평생 잊을 수 없는, 하지만 죽을 만큼 잊고 싶은, 그래서 평소와는 너무나 다른 하루가 되고 말았습니다.
작년 6월 26일, 수요일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암 치료를 위해 서울에 있는 병원에 계셨습니다. 그래서 제 집에는 부모님이 아닌 친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저희 남매를 돌봐주고 계셨습니다. 암이라는 병이 큰 병이라는 것도, 아버지의 암은 이미 치료시기를 놓쳤다는 것도 어깨너머로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 아버지가 돌아가실 거라곤 절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꼭 기적이 일어나 아버지가 훌훌 병상을 털고 돌아오실 거라 굳게 믿었고 매일 기도드렸습니다. 하지만 그 믿음도 기대도 그리고 제 기도도 뛰어오느라 숨이 찼었는지, 아니면 차마 전할 수 없었던 것인지 제대로 말을 잊지 못하던 친구의 울먹임으로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민..민우야..., 너희... 너희 아버지 방금... 돌아가셨데... 어머니가 빨리 집으로...오라고 하셨어...”
사실 그 뒤로는 어떻게 집에 갔는지, 서울에 있는 병원까지는 또 어떻게 도착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하염없이 울기만 했었습니다. 집으로 뛰어가는 도중에도 차안에서도 가끔 이것이 사실이 아닐 것이라며 고개를 세차게 가로 저었을 뿐 아무것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사람의 눈에서 그렇게 많은 눈물이 나올 수 있는지 그 날 처음 알았습니다. 마음속에 세상에서 가장 큰 단어인 ‘아버지’가 없어져 버린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크기만큼 제 마음속에 구멍이 뻥 뚫린 듯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난 뒤에야 아버지의 죽음이 실감났고 아버지가 이제 평생 제 곁에 계시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고 긴 어두운 터널에 들어간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터널 속에서 전 밀려오는 후회와 죄송한 마음으로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그 동안 말썽만 피웠었는데... 조금 더 잘 해드릴걸’
‘아버지가 동생과 사이좋게 지내라고, 어머니 말씀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하라고 하셨는데... 살아계실 때 한 번도 흡족히 기쁘게 해드린 적이 없었구나.’
그제야 그렇게도 듣기 싫어했던 아버지의 잔소리가 아들을 사랑하시기에 하셨던 진심어린 말씀이셨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요즘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부모님의 잔소리가 너무 듣기 싫다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전 그럴 때마다 빙긋이 웃기만 합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그래도 그 잔소리가 뼈에 사무치게 다시 듣고 싶어질 때가 올 거라고’
한참을 어둑한 터널 속에서 헤매던 저는 멀리서 나를 인도하는 한줄기 빛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빛은 바로 세상에서 또 다른 큰 이름. ‘어머니’였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전 다짐했습니다. ‘어머니에게만은 이런 후회스러울 일을 절대 하지 말자’라고 말입니다.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기쁘게 해드리자 백번 천 번 되뇌였습니다. 저보다 훨씬 힘들고 슬프셨을 어머니를 위해, 그때부터 저는 어머니의 얼굴에 슬픔이 아닌 행복을 심어드리도록 노력하였습니다.
몇 달 전이었습니다. 그날은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실 때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머니를 대신하여 서툴지만 집안일을 했었습니다. 세탁기 돌리기, 밥하기, 설거지, 청소까지.
그제야 어머니가 하셨던 너무나 당연한 일들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공부와 학교생활에 가끔 힘들다 투정부렸던 제가 얼굴이 빨개져 부끄러워질 만큼 어머니는 묵묵히 고된 일을 매일같이 하고 계셨습니다. 이렇게 힘든 일을 하고 계셨어도 항상 아들 앞에서 웃음으로 답하셨던 어머니를 생각하니 너무 감사하기도 또 때론 신기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제부터는 저도 조그만 일에 투정부리지 않고 또 힘든 일을 묵묵히 할 수 있는 아들이 되도록 다짐하였습니다. 제가 아닌 어머니를 위해서 말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5학년 때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었습니다. 마지막 날 기념품 가게에서 부모님을 위해 효자손을 샀습니다. 그런데 버스에서 친구가 깔고 앉아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전 할 수 없이 부러진 효자손을 들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저를 반겨주셨고 전 부러진 효자손을 내밀며 그 동안의 일을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그것을 테이프로 붙이고는 빙긋 웃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괜찮아, 이렇게 하면 부러져도 한참을 쓸 수 있는 걸?’ 그리고는 ‘우리 아들이 사다준’ 녀석을 일 년이 넘도록 쓰고 계십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제가 잘못을 하여 넘어지고 부서져서 산산조각이 나더라도 마법처럼 다시 붙일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부러진 효자손을 보며 언제나 다짐합니다. 이젠 내가 어머니가 닿지 않는 곳, 보이지 않는 곳까지 시원하게 긁어드릴 수 있는 자랑스럽고 듬직한 아들이 되기로 말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도 이제 곧 일 년이 되어 갑니다. 시간은 바삐 흘러갔지만 아버지가 남겨주신 사랑과 가르침, 그리고 제 그리움은 오히려 더 커졌습니다. 너무나 무섭고 힘들었던 시간이었지만 앞에 어머니가 계셨고 어머니의 사랑을 깨달았으며 부모님의 아들이라는 것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던 일 년이기도 합니다. 저는 아버지가 병으로 힘들어하신 모습이 아닌, 죽음 앞에서도 당당히 두려워하지 않는 아버지로 기억하고 싶습니다. 누구나 당연하게 부르는 그 이름이 저에게는 이제 너무나 어려운 말이 되었지만 마음속으로는 항상 그 누구보다 크게 외칩니다.
‘아버지, 어머니 정말 사랑합니다. 그리고 보고 싶습니다.’
엄마가 울었다
금산동초등학교 6학년 김이레
2014년 4월 7일, 선생님께서 쉬는 시간에 갑자기 동영상을 보여주셨다.
EBS에서 만들어진 동영상이었는데 제목이 ‘엄마가 울었다’였다. 이 동영상의 주제는 ‘부모님도 칭찬받고 싶다.’라는 것이었다. 나는 솔직히 놀랬다. 칭찬은 늘 부모님이 우리들에게 해주시는 것이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동영상 속 학생들은 부모님 모르게 부모님 칭찬을 한 후 칭찬일지에 칭찬한 내용과 부모님의 반응, 자신의 소감을 간단하게 기록하였다. 어떤 언니가
“엄마, 오늘 왜 이렇게 예뻐?”
라고 용기 내 칭찬을 하였다. 엄마의 돌아오는 말은
“공부나 해.”
부모님의 반응을 본 언니의 소감은 “나는 힘들게 했는데 반응이 정말 힘이 빠진다.”
부모님의 반응이 웃겨서 친구들과 나는 많이 웃었다. 그러나 칭찬하는 날과 칭찬 횟수가 늘어나면서 부모님의 반응도 달라져 갔다.
“고마워, 우리 딸.”
“어머, 정말?”
칭찬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은 우리들과 다르지 않았다. 이 동영상을 보고 나서 나는 마음이 찡해졌다. 그때 마침, 선생님께서 우리 반도 한 달간 이 칭찬일지 프로젝트를 해보자고 하셨다. 한 달간 칭찬한 후 기록한 칭찬일지를 5월 8일 어버이날에 선물하는 것. 부끄럽기도 했지만 의미 있는 어버이날 선물이 될 것 같아서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그 날 바로 집에 가서 칭찬을 시작했다. 어떻게 얘기를 꺼낼지 고민을 하다가
“엄마, 엄마가 끓여주신 이 국 맛있어. 우리 엄마가 최고!”
엄마의 반응은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무반응. 뭐라고 말이라도 해주시면 좋겠는데. 다음 날 다시 도전했다. 이번엔 아빠다. 엄마보다 아빠가 더 어색한데 잘할 수 있을까?
“아빠, 오늘 진짜 멋있어요! 넥타이 잘 어울리세요.”
아빠의 반응은
“용돈 필요해?”
내가 원한 건 이게 아닌데. 선생님과 친구들과 서로의 칭찬 얘기를 하며 우리는 한 달간 이 프로젝트를 몰래 진행했다. 한 달이 되어가자 부모님의 반응은 다양해졌다.
“사랑해, 딸.”
“딸이 그렇게 생각해 주는 줄은 몰랐네.”
너무 뿌듯했다. 칭찬을 받는 부모님만큼이나 나에게도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우리 가족은 칭찬프로젝트 이후로 서로에게 더 예쁜 말을 사용하고, 대화하는 시간도 늘어났다. 선생님 말씀처럼 효도는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늘 뭔가 해드리지 못해 죄송했는데 말 한마디로도 마음을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엄마와 대화를 하면서 안마도 해 드리고, 자연스럽게 집안일도 도와드렸다. 칭찬으로 시작한 효도는 여기저기 번져 나갔다. 이런 기회를 주신 선생님께 감사하고, 앞으로 공부도 열심히 하고,늘 효도하는 착한 딸이 되고 싶다.
나의 나눔 이야기
한내여자중학교 3학년 명세인
초등학교 6학년, 학교에서 아프리카 기아 아동들에 대한 영상을 보여줬다. 그들은 정말 갖은 질병과 기아로 지쳐보였다. 그들의 고통과 아픔이 영상을 보고 있는 나에게 넘어와 나의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실제로 겪고 있는 그들은 얼마나 괴로울까. 매년 이런 시간을 가질 때마다 나는 눈물을 훔치곤 했다.
동영상을 본 뒤, 우리는 기아 아동들에게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영상으로 본 아이들을 향해 소신껏 편지를 썼다. 그 편지에는 기아 아동들을 돕고 싶은지 아닌지를 체크 하는 칸이 있었다. 나는 돕고 싶다고 체크 했다. 그 며칠 뒤, 엄마한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그 전화는 내가 기부를 희망하는 쪽에 체크해서 온 전화이었다. 나는 무조건 하고 싶다고 해서 엄마가 허락해 주셨다.
몇 주가 지나서 내가 결연 맺은 아동에 대한 소개와 기부 영수증이 왔다. 그 아이의 이름은 ‘황 반 루옹’, 나이는 7살, 베트남아이였다. 이 아이의 사진도 딸려왔다. 체격은 좀 왜소한 편이었다. 루옹의 부모님께서는 농부시고 월수입이 단지 20달러에 불과하다고 써 있었다. 하지만 이런 악한 환경 속에서도 루옹은 간호사라는 꿈이 있었다. 이 아이가 꿈이 있는 걸 알고 나니 내가 이 아이가 잘 커서 꿈을 이룬 모습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결연을 맺은 지 몇 달이 지나서였다. 굿네이버스 우편에 한 통의 편지가 끼어서 온 것이다. 신기한 마음으로 루옹의 그림과 아기자기한 베트남어로 쓰인 편지와 번역되어 온 편지가 온 것이다. 나는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내용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나 덕분에 학교에 다녀 선생님과 친한 친구가 생겼다는 내용이었다. 마음이 너무 기뻤다. 내가 조금 절약하여 생긴 돈이 한 아이의 미래를 밝게 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하며 즐거웠다.
나는 이 아이에게 후원하면서 많은 것들을 느끼는 것 같다. 나의 작은 나눔이 그 나눔을 받은 사람들은 이것보다 큰 선물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들의 작은 나눔으로 한 사람의 꿈을 이루게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며 살아가야겠다. 작은 베품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이 기부뿐만 아니라 해외 봉사활동에도 관심이 많다. 난 그들의 아픔과 힘듦을 온 몸으로 느껴 더 그들을 이해하는 내가 되고 싶다. 항상 남을 도와주고 남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내가 되어야겠다. UN전문요원이 되어 그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치유해주고 싶다. 나의 마음이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우리 아빠
서산중학교 2학년 강병욱
아빠, 안녕하세요? 이렇게 아빠께 존댓말 쓰는 것도 오랜만인 것 같아요. 그래도 쑥스러움을 무릎 쓰고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아빠가 지지고 볶으며 살자고 한 그 말이 너무 기억에 남네요. 제가 9살 때 엄마를 여의고 살며 다른 집은 엄마가 있는데, 우리 집은 없다는 게 매우 창피했어요. 그래서 매일 엄마가 계시다고 거짓말 친 적도 많지요. 하지만, 지금은 당당합니다. 제 꿈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 꿈을 깨닫게 해 주신 이민석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5학년 때 친구랑 크게 싸워서 집에서 쫓겨난 것이 생각나네요. 그때는 말할 용기가 없어서 그렇지만, 지금은 이렇게 편지로라도 말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사실 제가 싸운 이유는 엄마를 비하 발언하고 욕하며 먼저 때려서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매우 부끄럽네요. 하지만, 싸울 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었기에 싸웠습니다. 아버지 말씀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싸우지 마라. 화가 나면 크게 심호흡을 하고 속으로 3초를 세라.’를 강조하신 것이 너무나도 생각나네요. 하지만, 이 세상 누가 부모님을 욕하는데 가만히 있겠습니까? 아마 가만히 있을 사람,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겁니다. 어쨌든 그 때의 행동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아빠,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우리 아빠, 사랑해요. 나의 간, 심장, 신장, 위를 꺼내어 주어도 아깝지 않은 우리 아빠, 아내가 없어도 내색 하나 하지 않고 나만을 위해 사시는 아빠, 내가 아프면 홀로 밤을 지새우는 아빠, 아파도 참고 병원 하나 안 가고 나만 괜찮으면 된다는 우리 아빠, 너무 소중한 우리 아빠, 바른 길로 이끌어 주시는 우리 아빠, 그리고 세상에서 하나 밖에 없는 우리 아빠, 저도 사랑합니다.
2014년 5월 14일
하나뿐인 아들 병욱
너무나 당연해서 몰랐던 일
대천중학교 3학년 박혜성
효행이라고 쓰기엔 너무 당연스러운 일을 적는 난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우리 집은 원래 아버지가 혼자 일하시고 엄마는 전업주부셨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엄마가 집에 있다는 것이 소중한 것인 줄 몰랐다. 5학년 때 학교 끝나고 피씨방을 가는 친구들은 보니 나도 너무 가고 싶었다. 하지만 피씨방에서 노는 것은 절대 안된다는 엄마가 있어 그럴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때는 엄마가 너무 미웠다.
시간이 지나고 엄마가 잠깐의 직장을 나가시고 집에 늦게 돌아오셨다. 엄마는 바쁘셔서 나에게 신경을 별로 쓰지 못하셨다. 처음에는 그저 좋았다. 잠깐 피씨방을 가서 놀 수도 있고 텔레비전도 마음대로 볼 수 있고... 등등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잠깐 뿐이었다. 학교와 학원을 갔다가 오니 평소에 계셨던 엄마가 안계시니 분명 내 마음은 놀 수 있다고 하고 기쁜 반면에, 마음 한 구석에는 쓸쓸함이 있었다. 그 쓸쓸함은 점점 커지더니 어느덧 엄마가 집에 없으면 허전했다.
저녁 11시에 들어오신 엄마는 힘이 드셨는지 밤새 끙끙 되셨다. 다음날 학교와 학원이 끝나고 집에 오니 역시 엄마는 없었다. 그래서 집에 와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문득 일하시는 엄마 생각이 났다. 그래서 나는 일하시는 엄마대신 약간의 집안일을 하기로 했다. 설거지를 하는데 너무 힘이 들었다. 계속 서있어서 다리는 아프고 손은 너무 차가웠다. 설거지를 하니 벌써 녹초가 되었다.
이렇게 힘든 것을 더 힘든 일이 끝난 후에 또 엄마가 한다는 사실에 울컥하였다. 그저 엄마는 결혼을 해 한 남자의 와이프가 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을 뿐인데 너무도 힘든 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많은 것을 포기하셨다. 그런 엄마께 반찬 투정이나 한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한참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있을 때 엄마가 오셨다.
엄마는 힘드신지 바로 쇼파에 누워 계셨다. 나는 따듯한 물을 대야에 받아 엄마에게 가져갔다. 엄마는 놀라셨고 나는 엄마께 족욕을 해드렸다. 족욕을 해드리고 있는 순간 문득 내가 태어나서 엄마께 사랑한다고 한 적이 없는 것이 생각나 머뭇거리며 “엄마, 낳아주셔서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하니 엄마는 “엄마도 아들 사랑해!”라고 하셨다. 족욕이 끝나고 나는 내방에 들어갔고 엄마는 아빠와 안방에 계셨다. 이런 행동을 처음으로 한 난 내 자신이 부끄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금이라도 용기를 낸 것이 다행으로 여겨졌다.
작지만 위대한 나의 부모님
당진고등학교 1학년 박총희
나의 엄마는 중국 사람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조선족이다. 나의 집은 소위 다문화가정인 것이다. 나는 ‘다문화가정’이라는 이 말이 정말 싫다. 사람들이 왠지 부정적인 이미지로 바라보는 것 같아서 내가 어렸을 때는 엄마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하기 싫어했고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차츰 커가면서 나의 생각이 편협하고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가 단지 국적만 다를 뿐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것이다. 조선족도 결국 일제 강점기에 중국으로 이주해서 살게 된 우리 민족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마음이 훨씬 가벼웠고 엄마에게 못되게 굴었던 어린 시절이 죄스럽고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지금 바라보는 나의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위대하고 대단한 분이시다. 중국어, 일본어, 영어, 한국어 4개 국어를 사용할 수 있는 그런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분이시다. 나는 어렸을 때 알지 못했던 엄마의 진정한 모습을 알고 나니 나의 엄마가 자랑스럽고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특히 그런 능력을 가진 엄마가 우리 아버지와 결혼하셔서 농촌에서 농사를 짓고 사시며 우리 가족을 끔찍이 헌신적으로 위하신다는 점이다. 농사일은 해본 사람만이 안다. 그 일이 얼마나 힘들고 고되며 경제적으로는 넉넉하지 않고 때론 궁핍하기까지 하다는 것을.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 후 기숙사에서 생활하기에 부모님의 농사일을 많이 도와드리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기 위해 주말에는 틈틈이 외출 허락을 받고 집에 가서 농사일을 도와드린다. 부모님은 괜찮으니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하시지만 일손이 바빠서 쩔쩔매시며 힘들게 일하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공부가 집중되지 않고 마음이 편하지 않아 차라리 주말에는 집에 가서 일을 도와드리고 주중에는 최선을 다해 공부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여 자주 외출하고 한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성인이 된 남들은 부모님께 효도한다고 선물꾸러미들을 싸들고 집에 와서 효도한다고 법석들을 떤다. 나는 아직 학생이라 아무것도 사드리지는 못하지만 마음으로라도 부모님께 효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효도는 어버이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늘 평소에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할 수 있는 효도는 공부를 열심히 하여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짬을 내어 농사일을 돕는 것이 진정한 효도라고 생각한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최선의 효도인 것이다. 그런데 농사일을 도와드리다보면 힘들고 피곤하여 자꾸 꾀를 부리게 되고 농땡이를 피우게 된다.
농사처가 넓지 않지만 가족이 모든 일을 다 하다 보니 일손이 항상 모자랐다. 얼마 전 비닐 씌우는 일을 하였다. 아버지께서 기계로 끌고 지나가면 나는 호미로 흙을 파서 비닐 위에 덮어 바람에 날리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남들이 보면 단순 노동으로 흙만 파서 비닐 위에 덮는 일이 뭐가 그리 힘드냐 하겠지만 그 일은 정말 힘들고 다리 아프고 나중에는 흙을 쳐다보기도 싫어서 대충 덮고 밭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일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꾀를 부리며 대충 일하고 있었고 엄마가 덮은 부분과 내가 덮은 부분이 현저히 차이가 나서 엄마가 다시 내가 한 일을 손봐야 할 정도였다. 그런 내게 엄마는 힘들고 피곤하면 들어가서 쉬라고 하시며 야단도 치지 않고 웃으셨다. 나보다 더 일찍 새벽에 일어나셔서 일하시느라 피곤하실 텐데도 전혀 내색하지 않고 웃으시는 엄마를 보니 너무 미안하고 죄스러워서 앞으로는 꾀부리지 말고 열심히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 전에는 고구마를 심고 나서 흙으로 덮는 작업을 했다. 이 일만큼은 최선을 다해 부모님을 도와드리고 힘들더라고 참고 잘 견디리라 마음먹고 일을 시작하였다. 내가 한 일은 고구마 심은 것을 호미로 흙을 퍼서 고구마 주위를 흙으로 둘러싸는 작업을 했다. 무슨 봄 날씨가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듯하게 찌고 뜨거워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팔을 계속 사용하니 팔도 아프고 날씨는 정말 덥고 일을 하면서도 저절로 투덜거리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어쩌다 잠깐씩 도와드리는데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매일 눈만 뜨면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항상 일하시는 부모님은 얼마나 힘드실까를 생각하니 계속 투덜거릴 수가 없었다. 부모님의 고통이 느껴져서인지 죄송스럽고 존경스러워서 아무말도 않고 열심히 일만하였다. 내가 한 일은 기본 중 기본인데 도대체 내가 한 일보다 더 힘든 일을 하시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내가 학교가면 웃으면서 인사해 주고 동생에게 밥이나 준비물도 챙겨줬는지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힘든 일이 있으면 나와 동생을 시켰으면 되는데 부모님이 사는 낙이 자식 키우는 것이라 하며 참고 견디시는 부모님이 정말 대단하시다. 자식이 뭐 길래 이렇게까지 희생을 감수하시는지 모르겠다. 나와 동생을 위해서 이렇게 까지 힘든 일들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일하시는 부모님을 위해서 안마도 해드리고 집안일도 하고 더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며칠 전에는 농사일을 돕겠다고 했더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며 집에서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밖에서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니 가만히 쉴 수가 없어서 집 안의 일을 도와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동안 부모님이 일하시느라 피곤해서 빨지 못한 옷들을 다 내가 직접 손빨래도 하고 세탁기에 돌려서 털어 말리기도 했다. 오랜만에 빨래를 해서 그런지 빨래하는 것도 큰 고통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설거지를 했다. 설거지도 양이 어마어마해서 팔이 저리고 아파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저녁에는 안마를 해드리기로 했다. 하지만 나 스스로가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서 안마를 해드리지 못했다. 안마를 하지 않고 잠을 청하는 밤이 마음이 무거워서 편치 않았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부지런한 농사꾼에게는 나쁜 땅이 없다면서 다음날 아침 일찍 나를 깨우셨다. 나는 5시에 밥을 먹고 장화를 신고 아버지와 함께 논으로 갔다. 논에는 지푸라기가 물에 떠 있었다. 나는 그 지푸라기를 건져내는 일을 했다. 처음에는 이 정도는 그래도 할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양이 엄청 많은데다가 물을 먹어 그 무게가 많이 나가서 하면 할수록 팔이 아파왔다. 하지만 나는 전에 생각하고 다짐했던 일들이 떠올라 다시 아픔을 참고 묵묵히 일을 했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자랑스러웠는지 간간히 나를 쳐다보시며 힘드냐고 물으셨다. 나는 너무 힘들어서 팔이 떨어져나가는 것 같았지만 더 힘드실 아버지를 생각해서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대답했다. 아버지가 빙그레 웃으시는 모습에 왠지 내가 자랑스러웠다. 그 일을 마치고 나는 고통을 참고 차를 타고 모판을 들어 날랐다. 아버지 역시 묵묵히 이 일을 계속 하셨다. 나는 아버지에게 천천히 하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할 일이 많다고 서두르시는 아버지를 보며 아무 말도 못하고 일만 하였다. 그러다 나는 갑자기 마음 한쪽이 찡해졌다. 아버지께서는 이런 힘든 일들을 하시면서 겉으로는 웃으며 안 힘든 척하시는 것이 믿겨지지가 않았다. 한번쯤은 자식한테 아프다고 말하실 수도 있으실 텐데 전혀 내색하지 않는 아버지가 불쌍해 보이기까지 했다.
효는 항상 마음으로 느끼고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음 없이 행동만 해도 안 되고, 행동하지 않고 마음만 먹어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공자가 ‘견마지양(犬馬之養)’이라는 말을 하며 효도는 그리해서는 안 된다고 표현했다고 한다. 진심으로 공경하는 마음 없이 하는 부양은 효도가 아니라며 마음으로 공경하고 행동으로 공경함을 표현해야 진정한 효도라는 것이다.
나는 과연 몸과 마음으로 효도하는지를 돌아보며 더욱 진정으로 효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효도
금산여자고등학교 1학년 김재은
‘효도’라는 것을 하고 싶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까? 간단하게 마음을 표현하고, 거창하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항상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고 책에서 보아 왔었다. 그러므로 효는 일상생활 속에서 집안일을 돕거나, 부모님께 안마를 해드린다거나, 예쁜 짓을 하는 것이겠지만 몇 년 동안 안했던 것을 갑자기 하기에는 너무 어색하고 창피하다. 그렇기에 나는 어버이날이 항상 기다려진다. 1년 동안 잘 표현 못하고, 표현하고 싶어도 못했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으니 말이다.
고등학생이 되어 철도 많이 들다보니 부모님의 은혜도 중학생 때 느꼈던 것보다 더욱 깊이 느끼게 되었고, 부모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그 끝을 알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 어버이날은 꼭 무언가 특별한 것을 부모님께 해드리고 싶었다. 많이 고민을 해봤다. ‘무엇을 좋아하시면서 드셨지?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쓸모 있는 것을 사야하는데…….’ 여러 질문들을 던져보았지만 부모님께서 좋아하시는 음식은 딱히 없는 것 같고, 단 것은 좋아하지 않으시고, 집안에 필요한 물품들은 벌써 샀기 때문에 부모님께서 필요해 하시는 것이 내가 보기에는 없었던 것 같았다. 학생이다 보니 주머니 사정도 넉넉지 못하고, ‘내가 이렇게까지 부모님께 무관심 했다니…….’ 회의감까지 느꼈었다. 그래도 이번 어버이날을 잘 챙겨서 부모님이 좋아했으면 하는 의지를 불태우면서 포기하지 않고 한참을 고민한 결과 결국에는 빵집에 가서 덜 단 쿠키와 빵을 사고 짧은 편지를 썼다.
편지를 쓰는 내내 너무 죄송스러웠던 것이 매년 비슷한 내용의 편지글과 딱히 부모님께서 좋아하실 거란 생각이 들지 않는 한없이 작게 느껴지는 선물, 그 모든 것이 불만족스러웠지만 나는 학생이고 내가 원하는 그런 큰 이벤트는 못한다는 생각에 조용히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쓰고 집에 돌아와 부모님께 전해 드렸다. 그리고 나는 깜짝 놀라게 되었다.
아빠의 얼굴에는 이 이벤트가 끝날 때까지 기뻐하셨다. 나의 아빠는 그리 표현을 잘 안하시는 분이다. 나와 동생이 학교에서 있던 일,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말하는 것들을 다 들으시다가 웃기면 피식 웃으시고, 가끔씩 중재하시는 등 별 반응이 없는 분이셨다. 그런데 그런 분이 선물을 받으시는데 입 꼬리가 씰룩 씰룩 올라가는 것을 다잡으시면서 “이런 걸 다 사왔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내 동생에게 “누나가 빵 사가지고 왔다.”라고 자랑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그 웃을 듯 말 듯한 묘한 표정을 안다. 나 또한 그 표정을 많이 지어 봤기에……. 그 표정은 정말 기분이 날아갈 듯 한데 ‘나 정말 좋아!’란걸 티내긴 싫을 때 짓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말을 돌리는 것도 정말 고맙기도 하면서 쑥스러울 때 내가 종종 하는 것들이었다.
의외로 아빠께서 정말 기뻐하셔서 나 또한 놀라고 솔직히 조금은 부끄러워져서 아빠의 얼굴은 잘 바라보지 못했다. 동생이 그 선물을 구경하고 내가 동생이랑 떠드는 동안 아빠는 천천히 내가 쓴 편지를 읽으셨다. 동생과 이야기 하면서 힐끔 아빠의 표정을 보니 정말 부드러운 얼굴로 웃고 계셨다. 더 보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그 잠깐 본 것만으로도 만족해하면서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난 알았다. 선생님이나 책에서 말하는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는 효’는 내가 생각한 만큼 그리 큰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결국 내가 사온 것들은 거의 대부분 나와 동생의 배 속으로 들어갔지만 쿠키와 빵들을 아빠와 함께 먹는 내내 아빠는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으셨다.
지금 다시 생각하면 이렇게 아주 작은 것들에도 감동하시는 아빠를 보며 지금까지 내가 이 좋은 것을 못했을까 싶다. 항상 ‘효도’라는 것을 어렵게 생각한 내가 너무 바보스럽게 느꼈으며, 지금부터라도 많이 부모님을 위해 작지만 진심을 다해 여러 일들을 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그것이 부모님의 큰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요. 효도이므로.
존재하는 것으로 감사합니다.
계룡고등학교 3학년 김 지 현
가족이란 무엇일까? 부모와 자식 사이란 무엇일까? 난 이런 생각을 그 동안은 해본 적이 없다. 당연하였고 당연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약 5년 전 부모님은 이혼을 하셨다. 그리고 아빠와 떨어져 엄마와 나, 동생들 넷이 내가 어렸을 적 살았던 계룡시로 이사와 지내기 시작했다. 우리 여섯 식구는 마음적으로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부모님과 가족이 얼마나 소중하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한 관계인지를 깨달았다.
엄마는 식당에서 9시간씩 서빙을 하시며 생계를 이어나가셨다. 4년 전 엄마가 일하는 시간을 바꾸시기 전까지 엄마는 오전 11시에 나가셔서 오후 9시까지 일을 하셨다. 자연스럽게 동생들의 저녁 식사나 간단한 집안일들은 첫째이자 중1이었던 내 몫이 되었다. 청소를 하고 빨래를 널거나 걷고 밥을 짓고…. 그 전에도 밥을 한다거나 빨래를 널고 걷는 집안일을 하기는 했었지만 내심 엄마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던 집안일들이 엄마가 일을 나가시고 내가 대부분의 집안일을 맡게 되면서 점점 사라져갔다. 다만 가끔 하던 때와는 달리 매일이 되어버리니 점점 귀찮아지면서 지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유 없이 엄마에게 짜증도 잘 내고 동생들에게 화도 잘 내기 시작하였다. 그러한 나를 보며 엄마가 나에게 혼을 내셨는데 ‘나를 이해를 못 해주나’하고 그것에 대해 엄마한테 원망스러운 마음이 컸었다. 하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면 첫째였고 유일한 딸인 내가 믿음만큼 따라주지 않는 것에 실망하시고 어린 나이에 동생들을 챙기는 내가 안쓰러워서 그러셨을 것이다. 그런 엄마의 마음을 조금 있으면 성인이 되는 나이가 돼서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엄마가 되기 전까진 엄마의 마음을 100% 다 이해는 못 하겠지만 이해하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만큼, 내가 엄마께 여태까지 짜증을 냈던 만큼 감사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많이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하였고 현재 진행 중이다. 대입을 앞둔 고3이지만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엄마를 도와 집안일을 하는 것은 가족이 있기 때문이고, 그 자체가 가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식당에서 서빙 일을 하신다. 무거운 그릇을 들고 하루 종일 서서 일을 하시다보니 손목, 팔, 어깨, 다리 등등 안 아프신 곳이 없으실 정도로 이곳저곳 다 아프시다. 집안형편도 안 좋으니 안마도 받을 엄두도 못 내셔서 대신 나와 둘째 동생의 안마를 받으신다. 2년 전 쯤 물리치료사라는 직업을 꿈 꿨던 이유가 엄마께 안마를 해드리던 중 엄마가 ‘너는 안마를 잘하니 그쪽으로 가면 좋겠다.’라고 말을 하셨기 때문이었다. 요즘 학교 다니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한동안 안마를 해드리지 못했는데 얼마 전 안마를 해드리는 도중 외할머니처럼 관절이 다 안 좋아지겠다고 말씀하시는 걸 듣고 기분이 편치 않았다. 그리고 평일엔 불가능하더라도 주말에 안마를 많이 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현재는 물리치료사란 꿈이 자동차 설계엔지니어로 바뀌었는데 이것도 100%는 아니지만 엄마의 영향이 크다. 새 차 한 번 몰지 못하고 항상 중고차를 타시는 엄마께 자동차를 사드리겠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사드리는 것만이 아닌 그 자동차가 내가 만든 자동차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물론 얼마 동안의 시간이 필요하단 것을 안다. 그리고 내가 꿈을 이룰 때까지 엄마와 네 명의 동생들도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가고 공부해야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엄마와 동생들이 존재한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힘이 솟는다.
앞으로 엄마께 꼭 내가 만든 첫 번째 자동차를 선물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서 자동차설계엔지니어가 될 것이다.